어제 저녁 우연히 공신(공부의 신) 강성태에 대한 사연을 방송에서 시청하게 됐습니다. 공신 강성태는 전국 상위 0.1% 우등생 출신으로 현재 사회적 기업 '공신닷컴' 운영자입니다.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강성태가 살아온 길을 보면 앞으로 사회에 바람직한 롤모델로 성장하지 않을까 큰 기대를 걸게 되더군요.

강성태가 꿈꾸는 세상은 보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이 아닐까요? 사실 공신 강성태의 이야기를 관심깊게 본 이유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첫째 딸이 공부에 흥미가 없던 터라 함께 시청해 무엇인가 느꼈으면 하는 부모의 바람이었지요. 첫째 딸은 겨울 방학 이후로 점차 공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목표도 정한 상태라 공신 강성태의 이야기가 조금이라고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강성태는 어떻게 공신이 되었을까요? 공신 강성태는 어제(4일) 방송된 '이야기쇼 두드림'에 출연해 '공부를 잘해야 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특별한 사연을 공개했습니다. 강성태는 "내가 아마 두드림 출연자 중 가장 거만한 출연자가 아닐까 싶다. 공부의 '신'이 아니냐"고 너스레를 떨더니 "나는 공부의 신이 아니라는 고백을 먼저 해야할 것 같다"며 공신에 된 사연을 공개했습니다.

강성태가 공부의 신이 된 사연은?

실상은 강성태도 당초에는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전국석차 0.1%에 수능 수리영역 주관식 답마저 예언할 정도로 공부에 통달한 공부도사 강성태에게 과거에 안좋은 기억이 있었던 것이지요. 강성태는 경북 점촌에서 서울로 전학을 온 촌놈으로 왕따 신세였습니다. 어떤 이유도 모른 체 급우들에게 맞는 날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강성태 이야기는 저도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과거 추억이 생각나는 대목이었습니다.

               시골 촌놈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공신이 되고 결국 사회적 기업 창업자가 됐다

무엇보다 강성태에서 씻을 수 없는 치욕적 사건이 있었습니다. 강성태가 중학교 다닐 때 발생했던 사연입니다. 강성태는 학교에서 흡연을 하는 이른바 '노는 학생'의 얼굴을 쳐다보고 웃은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강성태는 가해자 학생이 뱉은 가래침을 얼굴에 정확하게 맞았는데 씻기 위해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할 용기도 없는 학생이었습니다. 

지금은 담담하게 말하는 강성태이지만 그 당시 얼마나 모욕적이었을까요? 강성태는 "사람의 침이 오래되면 썩은 냄새가 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쉬는 시간 화장실에서 침을 닦아내는데 '난 살 자격이 없다' '밥 먹을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이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그러나 강성태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강성태는 "처음에는 남 탓을 하다가 공부를 잘하니 무시 안당하는 학생들을 보고 내 동생만은 이런 전철을 밟지 않게 하고자 공부하면서 느낀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좋은 성적과 '공신닷컴'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공신이 된 사연을 밝혔습니다.

사회적 기업 공신닷컴을 창업한 이유는?

결국 강성태는 중학생 시절에 있었던 치욕과 모욕을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서울대를 졸업한 후 번듯한 대기업 보다는 공신닷컴이라는 사회적 기업에 매진했습니다. 강성태는 과거 
학창시절의 아픈 기억이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눈길을 돌린 것입니다.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인해 공부에 전념할 수 없는 학생들에게 동등한 공부의 기회와 방법을 전하고자 '공신닷컴'을 운영하게 된 것이지요.

강성태 등 공부의 신들이 모여 만든 사회적 기업 공신닷컴 사이트는 저소득층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높다

작년에 공신닷컴에 참여하고 있는 배인호 강사가 무려 7억원이라는 '통큰 기부'를 한 것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20대 청년 개인이 서울대에 7억원이나 기부한 것이지요. 배인호 강사 또한 강성태와 마찬가지로 드라마 '공부의 신'의 실제 주인공이자 2006년 저소득층을 위한 '친형 멘토링'을 내걸며 '공신닷컴' 사이트를 함께 오픈했던 서울대생 중 한 명입니다. 배인호가 내놓은 7억원 기금은 매월 110만원씩 20년간 보험금을 납부해 사망 시 해당 보험금이 학교에 기부되는 약정보험 형태입니다.

공신닷컴을 운영하고 참여하는 강성태와 배인호 등 사람들이 얼마나 사회적 책임에 투철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사회적 기업이란 단순히 돈벌이 수익이 목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를 하는 '착한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강성태가 꿈꾸는 사회적 기업은 안철수 박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사회적 기업은 아마도 안철수연구소일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용어가 없었지만 지금으로 따지만 안철수 박사가 꿈꾸던 세상일 수 있겠지요.

10억원 거절한 강성태는 안철수와 닮았다

그렇다면 강성태는 안철수 박사를 롤모델로 했을까요? 놀랍게도 강성태는 안철수 박사와도 인연이 있었습니다. 강성태는 안철수 교수에게 사회적 기업에 대한 조언을 들으려 메일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안철수 박사에게서 "청년실업의 시대이지만 확실한 열정만 있다면 많은 분들이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열정에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안철수와 강성태는 이심전심으로 통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안철수 교수는 우리나라에 가장 바쁜 인물 중 한 명인데 일일이 답변까지 주었다는 감동적인 사연이지요.


강성태는 매출도 없던 공신닷컴 상표권을 10억원에 팔라는 교육업체 제안을 거절해 고생했지만 성공했다

안철수 박사가 1995년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한 사연도 강성태와 비슷할 수도 있습니다. 안철수는 당시 안정적인 의사 직업을 포기하고 벤처사업가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의사는 많지만 당시 백신 및 보안전문가는 안철수 혼자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V3 백신을 무료로 보급하는 일이 훨씬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이었기에 공익연구소를 세우기 위해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정부기관이나 대기업 어느 곳도 안철수의 연구소 설립에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정부기관과 대기업은 당시 돈이 되지 않는 안철수의 무료 소프트웨어에 무관심했던 것이지요. 안철수가 어렵게 벤처 CEO 사장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지요. 안철수연구소의 창업이념이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한다"라고 합니다. 1995년 창업 당시에 안철수는 이미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지요. 기존 재벌 대기업과는 확연히 다른 기업가정신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함께 사는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안철수-강성태가 필요한 이유

강성태의 공신닷컴도 안철수연구소와 유사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강성태는 드라마 '공부의 신' 자문위원을 비롯해 이름을 알리던 당시 한 사교육 업체로부터 10억을 제안받았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교육업체는 공신닷컴 상표권을 넘기라며 10억을 제안한 것이지요. 강성태는 오랜시간 고민했지만 결국 거절했습니다. 강성태는 "대한민국 모든 사람에게 멘토 한 명 씩 만들어 주자.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쳐 주고 희망을 말해주면 범죄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는 것이 거절 이유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외국 대기업이 1997년 V3를 1천만달러에 팔라고 했지만 국민를 생각해 단번에 거절했다

당시 강성태에게 10억원은 매우 큰 돈이었습니다. 돈 앞에 초연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강성태는 돈 보다는 더 의미있는 일을 택했습니다. 강성태의 10억원 거절 이야기를 보면서 안철수가 또 떠올랐습니다. 안철수는 안철수연구소 설립 이후 1997년 미국의 대기업 소프트웨어 업체로부터 1천만달러에 V3를 팔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안철수는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만약 V3를 미국에 판다면 안철수 자신은 평생 편하게 살 수 있지만 국민들의 비싼 가격에 외국 백신을 사야 하고 사이버 안보는 외국에 의존하게 되기 때문이었지요. 안철수의 애국심과 사명감을 엿보게 합니다.

자, 생각해 볼까요? 과연 우리들이 강성태처럼 10억원을 거절할 수 있을까요. 당시 아무 매출도 없던 공신닷컴 상표권이었으까요. 안철수가 1997년 당시 1천만달러 인수 제의 거절은 더욱 대단합니다. 당시 1천만달러는 100억원으로, 요즘으로 따지만 1000억원에 버금가는 거액입니다. 그 때 안철수가 V3를 외국업체에 팔았다면 우리나라는 외국보안업체가 안방을 차지하고 사이버 전쟁이 발생해도 외국 용병에 엄청난 국민 세금을 지불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안철수가 지난 20여년간 국민에에게 수십조원의 혜택을 준 셈입니다.

그러나 거액을 거절한 안철수와 강성태는 그야말로 고생의 연속이었습니다. 안철수는 창업 초기 몇년동안 직원 월급 주기도 벅찰 정도였습니다. 어려운 시절에 직원 월급을 당시 의사였던 김미경 씨가 마련할 정도였다고 하지요. 그러나 안철수연구소는 현재 매출액 1000억원이 넘는 대한민국 1위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우뚝 성장했습니다. 강성태도 10억 제안 거절 이후 삼각김밥 등을 먹으며 어렵게 생활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공신닷컴은 이제 수십만의 회원을 거느린 대박 교육업체로 성장했습니다. 안철수 멘토의 도움이 강성태를 만든 셈입니다.

눈 앞에 이익이 아닌 사회적 책임을 먼저 생각한 안철수와 강성태의 성공 스토리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자신의 재산 주식 50%를 사회에 환원해 기부재단을 설립할 예정입니다. 안철수의 사회적 책임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표적 귀감입니다. 강성태는 사회적 기업 공신닷컴을 통해 어려운 아이들과 사회적 약자를 위해 활용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희망이 있는 이유입니다.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시대정신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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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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