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라마 '각시탈'을 시청한 사람이라면 통쾌함을 느낄만 했습니다. '각시탈' 주원이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 조선총독부에서 일본 총독을 비롯해 일본 순사들에게 일격을 가하면 신출귀몰한 활약을 펼쳤기 때문이지요.
최근 치욕스런 성노예였던 일본군 위안부 동상 소녀상에 말뚝을 박은 극우 일본인이 등장하는 등 국민적 분노와 울분이 극에 달한 현실 속에서 각시탈의 통쾌한 저격은 카타르시스를 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또한 친일파 매국노들을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여전히 친일파 세력이 득세하는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회에 각시탈의 활약이 빛났지만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어제 방송된 각시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담사리(전노민)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은 일제가 벌이는 한일합방기념식 자리에서 폭탄을 터뜨릴 의거를 계획했습니다. 우선 독립군은 종로경찰서에 침입하여 무기를 탈취하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순사들은 무기고가 탈취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경계 태세를 강화했지요. 이강토(주원)는 담사리에게 사전에 이를 알려주어 일단 포기하기를 바랐지만 담사리는 끝내 한일합방기념식에 초대받은 금광채굴회사 사장으로 위장 잠입해 거사에 나섰습니다.
조선총독부 심장부에 잠입한 독립투사의 거사 실패와 철없는 목단
총독의 기념사를 시작으로 한일합방기념식 행사가 거행되고 대형 욱일승천기가 걸린 연단 앞에서 채홍주(한채아)는 기미가요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담사리는 준비한 폭탄을 꺼내려고 했지요. 그러나 담사리를 수상하게 여겼던 일본 순사 간부 슌지(박기웅)가 순식간에 달려와 담사리를 제압했습니다. 슌지는 담사리를 현장에서 체포한 후 잔인할 정도의 발길질과 주먹 세례를 퍼부으며 폭력을 가했고 이강토는 분노에 떨며 일그러진 담사리의 얼굴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조선 총독부에 대한 폭탄 투척 거사 계획이 실채하자 함께 동행했던 독립군 여성이 그 자리를 조용히 피신했습니다. 이강토는 담사리와 동행한 여성을 찾아오라는 슌지의 명령에 곡바로 행사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 후 이강토는 독립군 여성을 뒤쫓고 있던 순사를 발견했지요. 이강토는 순사에 일격을 가해 독립군 여성의 탈출을 도왔지요. 한편, 그 당시 담사리의 딸 목단(진세연)은 아버지의 거사 후 탈출을 돕기 위해 차량에서 기다리고 있었지요.
한 동안 소란스러웠던 행사장이 정리되자 다시 조선 총독은 연단에 섰습니다. 총독은 담사리를 언급하며 "불령선인(일제 강점기 식민지통치에 반대하는 조선인을 불온하고 불량한 인물로 지칭한 용어) 따위에 합방경축일을 망쳐서야 되겠습니까?"이라 말하며 건배 제의를 했습니다. 그 때 각시탈이 나타나 총독의 건배 잔을 깨뜨리며 저격했습니다. 행사장은 순간 아수라장이 되었지요. 각시탈은 행사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순사들을 일망타진해 나갔습니다. 종로경찰서장 기무라(천호전)는 각시탈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지만 모두 허사였지요.
그러한 상황에서 각시탈을 하늘로 뛰어올라 한일합방기념식 현수막을 반토막으로 잘라 버렸습니다. 그리고 기무라의 총격을 피한 후 그를 큰 칼로 제압해 인질로 붙잡았습니다. 현장에 다시 돌아온 슌지는 권총을 각시탈에게 조준했지요. 기무라는 쏘라고 명령했지만 슌지는 아버지 기무라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라 주저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다시 각오를 다진 슌지는 권총 한 발을 쏘면서 이번 회는 끝이 났습니다.
민족의 울분을 풀어준 각시탈의 일격과 흥미진진한 드라마 전개
다음 회가 무척 기다려지는 드라마 '각시탈'의 활약상이었습니다. 일제에 억눌려있던 당시 조선인들에게 있어 각시탈은 민족의 영웅이었지요. 민족의 울분을 통쾌한 카타르시스로 승화시켜준 각시탈의 모습이니까요. 요즘 스파이더맨이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듯이 각시탈은 한국판 스파이더맨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번 회 각시탈에서 허전함과 아쉬움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많은 시청자들은 각시탈이 욱일승천기를 반토막 낼 줄 알았을 것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인 욱일승천기를 잘라야 진정한 민족의 울분이 풀렸을 타이밍이었지요. 더욱이 벽을 가득 채운 초대형 욱일승천기와 더불어 기미가요를 방송에서 들어야 하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결국 이번 회에는 그러한 분노를 욱일승천기를 댕강 잘라 카타르시스를 심어주었다면 더욱 좋았겠지요.
왜 욱일승천기를 잘라버리지 못한 것일까요? 드라마 전개 상 욱일승천기를 반토막 내야 확실히 카타르시스가 느껴졌을텐데요.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데 일본 눈치를 보는 것일까요. 욱일승천기를 자르면 한일 외교문제로 비화될까 제작진이 두려워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진의가 궁금한 대목입니다. 사실 욱일승천기는 일본 국기가 아니라 제국주의 상징일 뿐입니다. 극우 일본인들이 아무리 설친다고 하더라도 시원하게 욱일승천기를 반토막내야 일제에 치욕과 수모를 당한 민족의 울분이 어느정도 씻어지겠지요.
또 하나 드라마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것은 어리버리한 목단의 등장이었습니다. 목단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얼굴내미는 독립투사의 딸로만 비추어졌습니다. 철없는 목단이라고 할까요. 그 동안 목단은 어설프게 독립군 흉내내다가 매번 일본 순사에 붙잡혀 고문을 당하고 불쌍한 모습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일본 순사들의 표적이고 얼굴도 알려져 있는데 현장 부근에서 어리버리한 모습이 안타깝더군요. 그러다보니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좋겠다는 시청자들이 되레 많아졌지요. 또 뭔가 사고칠까 두려운 것이지요.
어쨌든 각시탈은 전반적으로 긴장감도 넘치고 흥미진진했습니다. 또한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역사와 친일파 매국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회가 끝난 후 어떤 시청자는 "지금 이 시대에 각시탈이 나타나도 경찰은 말뚝박은 쪽발이는 근거가 없어서 처벌안하고 황국 신민을 공격한 각시탈은 영장 발부하고 잡아 넣겠지? 발끈해서 욕하는 시민들은 모욕죄로 벌금 때리고..."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글이라는 네티즌 반응이 많았습니다. 민족의 정기가 사라진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40년전 원작 만화 각시탈이 등장한 배경과 독재시대 만화 분서갱유 사건
저는 1970~1980년대 당시 허영만의 만화 '각시탈'을 즐겨봤던 세대입니다. 그래서 드라마 각시탈이 반갑기도 했습니다. 만화 '각시탈'은 1974년 부길문고에서 처음 발간됐고, 1980년에는 물개문고에서 12권짜리 시리즈로 출간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독재시대였던 당시 각시탈 등 만화는 '청소년 유해매체'로 분류돼 불태워졌습니다.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견되지요. 그래서 만화 각시탈은 대부분 소각되거나 유실돼 사라졌습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전설 속의 만화'가 된 것이지요.
현재 유통 중인 '각시탈'이 하나 있긴 있는데 이는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지난해 내놓은 복간본입니다. 1976년부터 월간지 '우등생'에 연재된 내용을 묶은 것입니다. 어딘가 모자란 듯 보이는 청년 이강토가 뛰어난 택견 실력을 가진 각시탈로 변신해 어릴 적 친구인 사카다 일본군 소위와 맞서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현재의 매끈한 그림에 비해 다소 거친 '신인 허영만'의 그림체도 매력적이고,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반갑기만 합니다.
각시탈은 일제시대가 배경이지만 이 작품은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불의와 싸우는 두 얼굴의 영웅'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1970년대에 각시탈이 탄생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보면 스파이더맨과 비슷한 영웅 이야기가 이미 우리에게 있었던 셈이지요. 작가 허영만은 "일제에 대항하는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로 당시 엉터리 사회구조에 '엿 먹어라'고 한 방 날리는 의미도 있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 당시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군사 독재정권은 "탈 쓴 주인공이 나오는 만화가 너무 많다"는 황당한 이유로 각시탈 연재 중단을 명령했었지요. 만화 '각시탈'은 아직도 미완성인 이유입니다.
그리고 드라마 각시탈에 주원이 주인공으로 나온 사연도 있더군요. 일본팬들 눈치 보느라 출연을 고사했다는 한류스타들을 대신해 주원이 주인공을 맡게 됐다는 후문입니다. 만화 원작과 드라마에서 차이가 있는 각시탈도 흥미롭습니다. 만화 '각시탈' 속 각시탈은 얼굴 전체를 가리는 전통적인 각시탈인 반면 드라마에서 '이강산'(신현준)과 동생 '이강토'(주원)가 이어 받은 각시탈은 얼굴의 상부만 가리는 형태라는 것입니다. 드라마 각시탈을 원작 만화와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일제시대와 독재시대를 거쳐 다시 2012년 현실에 등장한 각시탈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국민들에게 민족의 울분과 현재의 암담한 현실을 말하려 한 것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