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오는 11일 금강산 피격사건 1주기를 앞두고 "대북사업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 동안 남북을 하나로 잇던 금강산과 개성관광이 중단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멀어져가고 현대아산은 물론 현대그룹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7월 발생한 박왕자 씨가 금강산 관광 중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 이후 1년간 북한 관광 사업이 중단되고 있고 최근 남북 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있습니다. 지구 상의 마지막 분단 국가인 남북한의 현실과 우리 민족의 아픔이 안타깝습니다. 그나마 같은 동포로서 북한 땅을 밟아볼 수 있는 공간으로 금강산과 개성 관광이 있었는데 1년이나 중단되고 서로 반목과 대결만 심화되는 것 같습니다. 대결과 반목 보다는 빨리 신뢰 회복과 함께 화해 평화 협력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지난 2000년 초에 북한 금강산 관광을 간 적이 있었는데 10년전 생각이 납니다. 1998년 말에 故 정주영 현대 회장의 소떼 방북을 계기로 당시 역사적인 금강산 관광이 처음 시작되었으니 당시는 초창기였던 것 같습니다. 반세기 이상 분단의 모진 세월을 헤치고 시작된 금강산 관광이었으니 이산가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습니다.
금강산 관광은 유람선 풍악호를 탔던 것 같습니다. 2박 3일 관광이었고 잠은 유람선에서 자고 낮에는 금강산 관광을 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당시는 겨울이라서 금강산 관광을 위해 등산용 아이젠 등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첫 날, 금강산을 가기 위해 북한의 검색대를 지나는데 잠시 검문을 당했습니다. 주머니에 아이젠을 넣고 있어 그런 것이었습니다. 저는 잠시 긴장했습니다
"그게 뭐입네까?"
"아이젠인데요. 등산용 도구입니다."
"불편하지 않습네까?"
"안미끄러지고 괜찮아요."
이것이 제가 북한 땅에서 북한 사람과의 첫번째 대화였습니다. 그리고 금강산 관광은 순조롭게 이루어졌습니다. 금강산을 오르다보면 중간 중간에 북한 안내원이 있었습니다. 목에는 털실 목도리를 하고 있었었는데 모두가 순박한 아가씨들 모습이었습니다. 관광객 한 명이 북한 아가씨에게 물었습니다.
"호랑이가 여기 사나요?"
"착한 사람에게는 호랑이가 보이고, 나쁜 사람에게는 안보입네다."
북한 아가씨의 답변을 듣고 관광객들은 순수한 답변에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호랑이가 있다고 믿으면 호랑이가 있을 것이고, 나쁜 생각을 갖고 보면 보이지 않을 것이란 답변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사실 산다는 것이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생각하면 안되는 일도 잘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금강산 관광이 다시 재개되고 남북 관계가 다시 평화와 화해의 길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현재의 대결과 반목의 모습을 보면 쉽지 않아 보입니다만 언제나 대결만 하고 살 수는 없는 일인 듯 합니다.
이산가족들의 사연에야 예외 없이 눈물이 배어 있다.
1·4 후퇴 때 평안남도 진남포에 부인과 7남매를 남기고 내려왔다는 심재린 할아버지, 97살로 최고령 관광객이었다. 할아버지는 고맙다고 말했다. 함께 내려온 어머니는 임종하며 손을 잡고 이런 유언을 남기셨다. “너라도 살아서 고향 땅을 밟아라.” 어머니의 유언을 지킬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황해도가 고향이라는 70살의 김승룡씨는 북에 두고 온 어머니에게 “불효자를 용서해달라”고 절을 올리러 간다고 말했다. 고성군 해금강이 고향이라는 70살의 권만희씨는 부모님 제사를 지내러 관광선에 올랐다.
아쉬운 관광이 끝나고, 21일 저녁 9시 금강호가 장전항을 빠져나올 때다. 마침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바다로 나오면 분계선을 따라 확연히 구분되는 빛과 어둠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남쪽으로는 가로등 불빛이 촘촘히 이어지다 도시의 불빛과 만나게 되지만, 북쪽으로는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그때는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도 없었다. 그날 관광을 마치면 다시 배로 돌아와 숙박을 했던 시절이다.
배가 항구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모두들 갑판 위에 나와 아쉬움을 달랬다. 이산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했겠는가. 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누군가 멀어져가는 어둠을 향해 “어머니” 하고 목놓아 불렀다. 또 누군가는 갑판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 당시 기사 중에서 -
1·4 후퇴 때 평안남도 진남포에 부인과 7남매를 남기고 내려왔다는 심재린 할아버지, 97살로 최고령 관광객이었다. 할아버지는 고맙다고 말했다. 함께 내려온 어머니는 임종하며 손을 잡고 이런 유언을 남기셨다. “너라도 살아서 고향 땅을 밟아라.” 어머니의 유언을 지킬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렸다. 황해도가 고향이라는 70살의 김승룡씨는 북에 두고 온 어머니에게 “불효자를 용서해달라”고 절을 올리러 간다고 말했다. 고성군 해금강이 고향이라는 70살의 권만희씨는 부모님 제사를 지내러 관광선에 올랐다.
아쉬운 관광이 끝나고, 21일 저녁 9시 금강호가 장전항을 빠져나올 때다. 마침 싸락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가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바다로 나오면 분계선을 따라 확연히 구분되는 빛과 어둠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남쪽으로는 가로등 불빛이 촘촘히 이어지다 도시의 불빛과 만나게 되지만, 북쪽으로는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그때는 숙박시설이나 편의시설도 없었다. 그날 관광을 마치면 다시 배로 돌아와 숙박을 했던 시절이다.
배가 항구에서 점점 멀어지면서 모두들 갑판 위에 나와 아쉬움을 달랬다. 이산가족들의 심정은 오죽했겠는가. 우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누군가 멀어져가는 어둠을 향해 “어머니” 하고 목놓아 불렀다. 또 누군가는 갑판에 주저앉아 통곡을 했다.
- 당시 기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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