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가 MBC '100분 토론' 진행자에서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밝혔습니다. 우리나라 방송 사상 가장 훌륭한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가 '보이지 않는 힘'에 굴복해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자진사퇴의 형식으로 100분 토론 진행자에서 물러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강제퇴출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이미 KBS가 김제동을 '스타골든벨'에서 하차시킨데 이어 MBC가 손석희 교수를 사실상 교체키로 방침을 정하면서 정치적 외압설이 제기된 바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흑백논리라는 이분법으로 재단하려는 냉전시대의 좌파 우파 극단적 편가르기가 우리 사회에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흑과 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총천연색 컬러풀한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아직도 낡은 레코드판이 튀면서 나오는 '흘러간 유행가'처럼 무덤 속 유령들의 노래가 반복되는 듯 합니다. 지나간 1970년대 낡은 흑백TV 화면을 보는 것과 같은 착각을 갖게되는 우리나라의 최근 현실은 더욱 슬프고 안타까운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바르게 살라고 교육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요즘 세상은 인간으로서 정의와 진리를 위해 바른 소리하면서 살면 안되고, 힘있는 자들과 부자들, 그리고 이에 빌붙어 완장찬 자들에게 아부하면서 숨죽여 살도록 강요당하는 세상이 되어버린 듯 합니다.
민주주의란 정글과 같은 약육강식의 세상이 아닙니다. 힘없고 헐벗고 어려운 이웃이나 사회적 약자들도 보호받고 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올해 벌어졌던 용산참사에서 보여주듯이 사회적 약자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용산참사의 해결을 촉구하면 무기한 단식을 하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문규현 신부가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로 중태라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매일 안타까운 소식들만 들려옵니다.
문규현 신부는 힘없고 어려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평생 헌신해온 분입니다. 우리 사회에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푸른 하늘처럼 넘실대는 세상을 위해 언제나 약자의 편에 서서 양심을 지켜온 분입니다.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의 심정으로 우리 사회의 한줄기 빛이 되어주신 우리 시대의 성인입니다. 부디 빠른 쾌차하기를 기원드립니다.
다시 손석희 교수의 자진사퇴 문제를 짚어보겠습니다. 정치적 외압에 따른 방송장악 논란 속에서 손석희 교수는 자진사퇴로서 스스로 십자가를 진 셈이 되었습니다. 끊임없이 정권의 압박을 받고있는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었을 수 있습니다. 이미 MBC의 실질적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현 정권의 인사들로 교체된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MBC 노조는 엄기영 사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방송문화진흥회 압박에 굴복한 것이라는 지적을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 이전에도 MBC는 신경민 앵커를 '뉴스데스크'에서 하차시킨 바 있고 김미화 씨를 교체하려다 라디오PD들의 집단 반발에 직면하며 일단 그 문제는 수면 아래로 잠복한 상태입니다. 조금이라도 '바른 소리'하는 사람은 가차없이 퇴출 압박에 시달리는 것입니다.
손석희 교수의 자진사퇴도 실상은 강제퇴출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처음 손석희 교수의 '100분 토론' 하차를 언급했던 시사주간지 <시사IN>에 따르면, MBC의 한 관계자는 "노조의 반발을 의식한 경영진이 은근히 손 교수의 '자진 사퇴' 의사를 타진했지만 손 교수는 '그만둘 수는 있어도 자진 사퇴는 곤란하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안다"라고 밝힌 바 있었습니다.
오랜 침묵으로 일관하던 손석희 교수가 내린 결론은 결국 자진사퇴였습니다. 손석희 교수가 자진사퇴의 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신의 거취가 공론화된 마당에 MBC 경영진이나 여러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이 가장 고뇌였을 것입니다. 무려 8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자신의 분신과도 같이 소중한 프로그램이었던 '100분 토론'을 외부의 힘에 의해 강제 퇴출되는 것 보다는 차라리 깨끗하게 스스로 물러나 자부심을 지키는 편을 택했는지도 모릅니다.
손석희 교수는 '토론진행자로서 허물이 없을 순 없겠지만 8년을 진행하고 물러나면서 가질 수 있는 이 정도의 자부심은 허락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라며 자신의 자부심을 허락해 줄 것을 시청자들에게 호소하며 글을 마무리한 것도 이같은 발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문규현 신부의 단식 중 중태와 손석희 교수의 자진사퇴가 안타까운 하루입니다.
'100분토론'을 사랑해주시는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손석희입니다.
제가 '100분토론'을 두 번 진행한 후인 지난 2002년 1월 26일에 이 게시판에 처음으로 인사차 글을 올린 후 7년 10개월 만에 두 번째 글을 올립니다.
제 거취문제가 언론에 보도된 이후 열흘 가까이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들었습니다. 걱정도 해주셨고 격려도 많이 받았습니다. 또한 진심으로 저를 아껴주시는 차원에서 조언도 많이 주셨습니다.
물론 저의 퇴진 문제와 관련해서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은 없습니다. 제가 상황을 다 아는 것은 아닙니다만, 회사측도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지는 않다고 들었습니다.
보도된 것처럼 제 문제는 노사관계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제가 입장을 좀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회사측의 결정에 따른다고 말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퇴진이 결정된다는 전제하에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결국 이 글은 마지막 인사차 올리는 글입니다. 이미 저의 퇴진 문제가 공론화된 마당에 모두에게 부담만 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혹 제가 '100분토론'에 남게 되더라도 이 상황에서는 프로그램에 도움이 되질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을 그대로만 받아들여주셨으면 합니다. 어떤 정치적 배경도 없으며, 행간의 의미를 찾으실 필요도 없습니다.
7년 10개월 전에 제가 이 게시판에 올린 첫 글에 "저는 어떠한 정치적 당파성으로부터도 자유롭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저는 지난 8년 가까운 시간 동안 '100분토론'을 진행하면서 이 약속을 크게 어긴 적은 없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부에선 저의 퇴진 문제를 논하면서, 편향된 면은 있었지만 퇴진시키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는 걸 봤습니다. 물론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만, 자칫 이것은 인상비평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가 실제로 그랬다면 '100분토론'이 오늘날 대표적 토론프로그램으로 자리 잡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토론진행자로서 허물이 없을 순 없겠지만 8년을 진행하고 물러나면서 가질 수 있는 이 정도의 자부심은 허락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저의 퇴진문제가 프로그램의 새로운 출발과 연관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 저의 퇴진문제로 더 이상의 논란은 없었으면 합니다.
사실 지난 8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주일에 하루씩은 거의 밤을 새워야 했습니다. 이제는 밤샘에서 해방됩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했던 회의에서도 벗어나게 됩니다. 남는 시간은 학업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좀 더 매진하는 데에 쓰겠습니다.
그 동안 새벽 두시가 돼서야 끝나는 프로그램을 시청해주시느라 함께 고생하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잊지 않겠습니다. 동시에 저나 '100분토론'을 아프게 비판해주신 분들께도 특별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한 비판 덕분에 또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개편때까지 이제 저의 진행은 네 번 정도 남았습니다. 11월 26일부터는 새로운 진행자와 함께 한 단계 더 도약하는 '100분토론'을 저도 시청자가 되어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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