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없이는 대표선수마저도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월드컵 출장이 결정되고 곧바로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감격으로 서로 말이 안 나와, 대화가 되지 않았어요."

정대세가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이 결정된 후 가장 먼저 기쁨을 알리기 위해 전화 통화를 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습니다. 정대세에게 있어 어머니는 정신적 지주이자 가장 열성적인 팬이었습니다. 정대세가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성장하기까지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은 절대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 G조 예선 브라질과의 첫 경기에서 정대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현지 경기장에서 직접 열렬한 응원을 하던 어머니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대세의 형인 정이세는 모 인터뷰에서 동생의 눈물은 '한국 국적이면서도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어야 하는 일본의 재일동포3세의 설움과 현실'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대세 선수의 인생역정을 통해 일제시대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서글픈 역사를 고스란히 알게 됐습니다. 정대세의 조선인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강제 이주 이후 일본 나고야에서 부당한 차별과 핍박을 견디며 그대로 살게 되었고 한국 국적을 이어받은 아버지는 조선 국적의 그대로 보유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일본은 북한과 국교관계가 아니라 북한 국적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대세의 불꽃투혼과 영광을 이끈 어머니가 월드컵 현지 응원에 직접 나서고 있다 

정대세를 비롯 형과 누이는 일본과 외교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서 한국 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즉, 정대세는 다른 북한 선수들과 달리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교포 3세입니다. 정대세는 중국 언론이 보도한 글 속에 불행한 우리나라 근현대사 역사의 아이러니가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니다. 한국인이지만 북한 국가대표팀을 위해 봉사한다. 북한팀 선수지만 일본에서 생활한다. 이 모든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독일과 예멘이 과거 분단국가였으나 지금은 통일된 하나의 조국을 갖게 되었지만 유독 우리 민족만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채로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정대세는 겉으론 눈물을 흘린 이유를 '최고의 월드컵 무대에서 세계1위의 브라질팀과 경기를 하게 돼 기뻐서'라고 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설움과 역경 속에서 재일동포 3세로 살아가며 느꼈던 분단된 조국의 비애와 일본인으로 사는 남북한 사이 경계인의 고뇌가 함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감수성 풍부한 소년 정대세, 경계인으로 삶과 정체성의 혼란

정대세는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의 혼돈을 많이 격어야 했습니다. 가족사 자체가 곧 혼란이었을 것입니다. 정대세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눈물이 유난히 많은 것도 그의 정체성과 닮아있는지 모릅니다. 울보이지만 결코 축구 경기에서는 야생마나 인간 불도저와 같은 모습으로 쓰러지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그의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그런 정대세의 투혼과 영광 뒤에는 항상 어머니 리정금 씨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정대세가 일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 남게 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상류층이 다니는 유치원에 정대세를 입학시켰습니다. 정규 교육도 일본 학교가 아닌 일명 '우리학교'에 보냈습니다. 학비가 매월 2만엔(20만원) 남짓한 정도로 만만치 않았지만 정대세를 포함한 누이와 형 등 삼남매를 위해 '우리학교' 12년 교육과정에 보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감수성 풍부한 소년 정대세는 울보였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정대세의 아버지 정길부씨는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풍족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정대세가 어릴 적부터 좋은 교육을 받도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피아노, 수영 등을 배우게 하며 다양한 능력을 키우도록 헌신적인 교육을 했습니다. 교육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우리나라 전통의 어머니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학교는 일본 학교에 비해 절반 정도 크기의 열악한 운동장이지만 정대세는 거기에서 축구도 배웠습니다.

'사회에 큰 사람이 돼라'는 의미, '대세(大世)'라는 이름

정대세의 이름도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에 큰 사람이 돼라'는 의미로 '대세(大世)'로 부모가 직접 작명했다는 것입니다. 정대세는 이름처럼 세상의 큰 사람이 된 셈입니다. 아들 정대세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 온 어머니의 삶은 진한 감동을 줍니다. 눈물겨운 어머니의 삶이었기에 정대세도 늘 어머니를 이야기합니다. 정대세는 자신을 키워내기 위해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합니다.

마치 한국계 미국 프로풋볼 선수 하인스워드의 어머니의 감동적인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대세는 그런 어머니였기에 월드컵 본선이 결정된 순간에 대해 친구로부터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순간 또 울어버렸습니다. 친구가 전한 이야기는 월드컵 본선행이 결정되자 정대세의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듣고 저도 울어버렸어요. 그때부터 몇번 울었는지 몰라요. 10분 간격으로 울고 있었어요."

추성훈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는 신세대 재일동포 3세의 꿈

그런데 정대세는 한편으로 신세대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과거 모 인터뷰에서는 '추성훈처럼 한국에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한 적도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확실히 정대세는 한국에서도 유명 인사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중국 언론에서는 정대세가 명차 수집을 즐기며 음악듣기를 좋아하고 패션과 헤어스타일에 각별히 신경쓴다고 합니다. 특히나 쇼핑과 스키를 즐기는데 한국 미녀에게 장가가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고 합니다. 

일본 프로축구팀에서 평상시 선수생활을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에 대한 동경도 함께 갖고 있는 경계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정대세는 국적의 한계를 뛰어넘어 살아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당당하게 운명과 맞서 싸우는 '아름다운 청년'인 것입니다. 정대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자신의 매력에 대해 "역시나 축구하는 모습이 아니겠냐"고 했듯이 말입니다.

또한, 정대세의 가슴에는 뜨거운 조국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정대세는 상해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남북대결 1차전에서 뜨거운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 후 정대세는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일본에서 온 내가 북한 대표팀으로 한국에서 뛴다는 의미를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올 뻔 했다"고 당시 심정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대세에게 조국은 정체성의 혼돈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조국은 존재합니다.

정대세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일까요? 정대세에게 있어 "조국은 나를 키워준 나라"라는 것입니다. 즉, 정대세는 '자신을 키워준 일본, 한국, 조선은 모두 조국'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당시 정대세는 "서울에서 묵는 동안 삼엄한 경비와 단절된 남북관계에서 아직도 통일까지는 멀다는 생각에 슬펐습니다. 스포츠로 통일의 한걸음이 되고 싶습니다"는 말이 요즘의 우리들에게 더 울림을 주는지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작문 '나는 장래 반드시 국가대표가 될테야'

정대세는 월드컵에서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게 된 것도 운명이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국적 조선에 영향을 받았을 듯 합니다. 초등학교(소학교) 시절에 이미 정대세가 적은 작문은 '나는 장래 반드시 국가대표가 될테야.'였습니다. 어린 정대세의 꿈은 한결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국적이지만 한국을 몰랐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그만 들뜬 마음에
"나는 꼭 조국대표가 돼서 여기(평양)로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선언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선택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FIFA에서 북한팀 선수로 뛰기 위한 조건으로 여권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대세가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J-리그 프로축구팀에 갈 때 까지도 한국 국적의 정대세가 북한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 국적의 정대세에게 북한과 국교가 없는 일본은 북한 국적을 허용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FIFA에 북한팀에서 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유권해석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 국가대표로 뛴 경력이 없어야 하고, 여권 비자를 북한에서 발급받는 조건이었습니다. 마침내 정대세가 꿈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국가대표가 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박지성을 존경하는 정대세, 꿈의 무대에서 어머니와 눈물

그렇다면 정대세는 박지성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정대세는 월드컵 예선 당시 모 인터뷰에서 "이전부터 저는 박지성 선수를 텔레비전에서 경기를 많이 보면서 팬이 됐어요. 그래서 박지성 선수의 동점골(북한팀이 월드컵 진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예선전 한국팀과 다른 팀 경기에서 나온 골)에는 정말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월드컵에 출장하면 같은 조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함께 조별리그를 돌파하고 결승 토너먼트에서 싸우게 되면 그 이상 기쁜 것은 없네요."라며 박지성에 대해 존경과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대세는 월드컵 본선에서 죽음의 조에서 축구 강호들과 겨루게 됐습니다. 그것은 월드컵 본선 통과 직후 자신의 바람이었습니다. 정대세는 개인적으로는 월드컵에서 득점하고 어필할 수 있도록 하고 싶고 가장 기대하는 것은 '죽음의 조'에 들어가서 브라질 잉글랜드 네덜란드하고 맞서고 발버둥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정대세는 브라질 포르투갈 등 최강의 우승후보들과 맞서 불꽃투혼을 불사르고 있습니다. 정대세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지만 결코 물러섬없이 불굴의 투지로 극복해 왔듯이 더 강해진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이겨내고 있는 셈입니다.

J리그 가와사키 프로팀에서 정대세는(`ε´) 이모티콘으로 표현되며 큰 활약을 한다

감수성 풍부한 순수의 청년 울보 정대세는 자신을 잡초혼 덩어리라고 말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투혼의 근간은 바로 잡초같은 자신의 인생과 꿈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재일동포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편견과 차별 속에 살면서도 아들을 위한 살아 온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정대세 어머니 리정금 씨는 브라질전에서 아들의 눈물을 또 지켜보며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경기에 응원나오지 않으면 골을 넣을 수 없다고 울던 아들이가 세계 최고 월드컵 무대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우리 민족의 어머니는 더 위대합니다. 정대세의 어머니도 국적으로 떠나 우리 민족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정대세의 눈물의 의미는 곧 어머니의 눈물입니다. 세상의 큰 인물이 돼라는 의미의 정대세라는 이름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스포츠를 통한 통일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정대세라는 의미도 있다 하겠습니다. 정대세를 불꽃 투혼과 영광으로 이끈 어머니가 있어 월드컵은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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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정대세 '한국팀 아르헨티니전 승리 기적을 응원하겠다'
정대세는 모 인터뷰에서 "축구를 하다보면 결코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상대도 열 번을 싸워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날이 온다. 바로 그 날이 한국에게는 오늘일지도 모른다. 스위스가 스페인을 이길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한국 선수들도 그 기량을 놓고 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와의 경기를 통해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나 또한 한국의 선전을 응원하겠다"며 한국팀이 아르헨티나전에서 승리의 확신과 응원을 다짐했습니다.

아울러, "박주영-정대세 투 톱이 서는 팀에서 뛰어보고 싶냐"는 질문에는 "너무, 너무 뛰어보고 싶습니다"고 주저하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답변했습니다. 박지성 정대세 등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뛰는 환상의 드림팀이  나올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정대세, 그를 보면 '피는 물 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한 민족으로서 정대세에게 정이 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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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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