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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역에서 지인에게 받은 선물을 분실했다가 되찾은 아찔한 사연을 소개할까 합니다. 최근 지인을 만났습니다. 점심 식사를 함께 했지요. 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웠지요. 지인은 식사 후 작은 선물 꾸러미를 제게 주었습니다.

 

지인은 작은 정성의 선물을 준 것이었지요. 선물은 쇼핑백에 책과 색연필 정도를 넣어 주었습니다. 지인과 헤어진 저는 혜화역 대학로에 갔습니다. 또 다른 약속이 있었지요. 지하철 혜화역에 내린 후 저는 화장실부터 들렀습니다. 배가 슬슬 아프고 대장에서 신호를 보냈던 것이지요.

 

아직은 약속 시간과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화장실에서 나와 무심코 대학로 구경을 했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저는 대학로 풍경에 흠뻑 빠졌지요. 스마트폰으로 생동감넘치고 이색적인 풍경을 사진에 담았습니다. 오월의 대학로는 싱그럽기만 했지요. 

 

 

중간에 똥모양의 조형물을 봤습니다. 재밌기도 했지만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예정된 시간에 약속 장소로 갔습니다. 그 곳은 혜화역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였지요. 막 미팅을 시작할 무렵이었지요. 거기에 나온 분이 책을 꺼냈습니다.

 

그 때 저는 '아차!' 싶었습니다. 지인에게 받은 책과 색연필통이 생각난 것입니다. 어디에 쇼핑백을 놓고 왔을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지하철 혜화역 화장실이었습니다. 미팅을 시작한 시간은 이미 1시간이 훨씬 더 지난 상태였습니다. 이미 늦은 것이지요. 쇼핑백을 그대로 두었던 터라 누군가 가져갔을 것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어도 특색있는 색연필통이라도 들고 갔겠지 생각했지요.

 

약 1시간 정도 미팅을 했습니다. 또 다른 지인은 그래도 혜화역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분실물 신고센터에 있을 수도 있을 가능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별 기대도 하지않고 혜화역에 들렀습니다. 우선 화장실로 갔습니다. 한참 동안 해당 화장실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볼 일을 본 사람이 나온 후 해당 화장실칸을 찾아보니 역시나 선물은 없었습니다.

 

 

저는 그다지 값어치있는 문건이 아닌 것이라고 애써 자위했습니다. 지인의 정성이 담긴 것이라 아쉽지만요. 그렇게 낙담하고 돌어서려는 순간 가까운 곳에 인포메이션 안내장소가 보였습니다.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인포메이션으로 갔습니다. 거기에 안내원이 있었습니다. 나이가 지긋한 아저씨였지요.

 

저는 "혹시 누군가 쇼핑백을 맡기지 않았었? 화장실에서 분실한 건데요."라고 문의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안내원은 "아, 그거요. 이것인가요?"하며 쇼핑백을 내밀었습니다. 제가 찾던 쇼핑백이었습니다. 이미 2시간에 넘었는데 지인의 선물이 든 쇼핑백을 다시 찾은 것입니다. 갑자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순간 "역시 착한 사람들이 많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안내원에게 고개 숙여 감사를 표했습니다. 그리고 안내원에게 어떤 분이 맡겼는지 물었습니다. 20대 대학생 정도라고 했습니다. 연락처도 없어 아름다운 그 분에게 감사 인사도 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이 글을 그 분이 본다면 고마움을 대신하고 싶습니다.

 

 

그 중에서 색연필통이 가장 반가웠습니다. 저희 아이들에게 주면 좋은 선물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만약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면 쇼핑백이 열려 있어 색연필통만 가져갈 수 있었겠지요. 쇼핑백의 물건들은 모두 그대로 였습니다. 여전히 세상은 착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분실 물건을 되찾는 경우가 많은지 였지요. 안내원 아저씨에게 물었더니 한 달에 100여건 정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화장실과 인포메인션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 것 같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화장실에서 인포메이션까지는 10미터도 안되는 거리였습니다.

 

이러한 분실물 사례를 감안해 지하철역 분실물 신고가 용이한 방법을 고려하는 것도 서울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가령 분실물이 많은 화장실 등을 고려해 인포메이션이나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것이지요. 혜화역 사례가 좋은 선례가 되는 듯 합니다. 서울시 뿐만 아니라 전국 지하철역에서도 고려해 볼 수 있겠지요. 작은 선물이지만 정성이 담긴 마음이 더 소중합니다. 아름다운 대학로의 추억으로 남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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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탐진강


며칠 전, 연히 책상 정리를 하다가 아이들 사진을 발견했습니다. 사진을 본 순간, 웃음이 빵 터졌습니다. 촌스런 아이들이 60~70년대 풍경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진 속 아이들은 저희 두 딸과 이웃 아이들이었습니다. 현대 도시의 아이들이 과거로 돌아간 듯 보였습니다.

 

사진이 찍힌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난 2005년 8월경 일산 킨텍스에서 '학교종이 땡땡땡'이라는 이색 체험 전시회가 열렸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현장 체험 학습에 나섰습니다. 절친하게 지내는 이웃 아줌마의 두 아이도 함께 갔었지요. 그 당시 아이들은 유치원에 다니거나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나이였지요.

 

'학교종이 땡땡땡'이란 60~70년대 학교 모습이나 생활상을 체험하는 행사였습니다. 엄마 아빠가 학교에 다닐 때의 학교 수업 풍경 등을 재현한 것이지요. 그 곳에는 60~70년대의 학교 부근에 있던 만화방, 불량식품 파는 가게, 문방구, 상회 등 여러 풍경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이 다니는 등하교 길 학교 앞 풍경에서 간혹 일부 나타나기도 하지만 많이 다른 모습이지요. 

 

무엇보다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 개구장이같은 아이들의 얼굴을 보면서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사진 속에 보이는 아이들 모습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그 당시 아이들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언제 이런 사진을 찍었나 싶더군요. 어린 시절에 제가 살았던 풍경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과거의 옛 추억이 생각날 정도로 신기하더군요.

 

 

제가 학교 다닐 당시가 1970년대였습니다. 그야말로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노래를 부르던 시절이었지요. 실제로 초등학교에는 종이 있어 수업시간이 되면 '땡땡땡' 종을 쳤습니다. 점심 시간에 양은 도시락에 싸간 밥을 먹던 장면도 떠올랐습니다. 그 당시 겨울에는 조개탄(조개 모양의 석탄을 일컫는 말)을 이용해 난로에 불을 피우고 학교에서 공부를 했었지요.

 

과거 생활 모습을 재현한 풍경도 새록새록 했습니다. 바작(짐을 담는 바구니 형태의 도구)이 지게에 얹혀있는 장면도 눈에 익었습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지게를 등에 지고 나무나 짐을 나른 적도 있었으니까요. 소쿠리 등을 비롯한 생활 도구들이 눈에 선했습니다. 아이들은 그런 과거 생활 속으로 들어가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과거를 재현한 학교에서 수업도 체험했습니다. 체험이 모두 끝나면 졸업장도 주었더군요. 커다란 졸업장을 들고 서 있는 아이들이 귀엽기만 합니다.

 

 

여러 사진 중에 가장 웃음을 준 것은 연탄재 옆에서 아이들이 쪼그리고 앉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아무 설명이 없이 사진을 봤다면 옛날 아이들도 착각할 정도입니다. 다행히 까만 고무신을 신고있지 않아 제대로 살펴보면 옛날 아이들은 아니겠지만요. 다 사용한 연탄과 연탄재가 쌓인 곳에서 해맑은 웃음을 짓는 아이들이 귀엽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커서 이 사진을 본다면 자신들도 웃음을 짓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거 선도부 학생도 사진 속에 있었습니다. 그 당시 중고등학교는 까만 교복을 입었지요. 저도 중학교 시절에 까만 교복을 입었던 세대입니다. 그 때 그 시절에 선도부는 무서운 존재였지요. 선도부는 학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학생 선도 역할을 했지요. 말이 선도이지 실제는 학생이 '얼차려'와 같은 군사 문화를 이용해 괴롭히기도 했지요.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인 셈입니다.

 

 

그렇지만 아이들에게는 모두가 신기한 체험일 것입니다. 60~70년대 경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군사 독재의 공안 통치를 가능하게 하는 존재였지요. 요즘도 경찰이 권위주의 정권의 시녀 역할을 한다는 비판도 있지만요. 한편으로 지역에 있는 경찰 아저씨 중에는 친근한 분들도 많았지만요. 비록 가난한 생활이었지만 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 풍경이었지요.

 

아이들에게는 소중한 체험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이 부모님 세대의 생활을 체험하면서 문명의 혜택이 주는 고마움도 느낄 수 있었겠지요. 벌써 7년전 이야기가 됐습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였기에 지금 다시 사진을 보면 깜짝 놀랄 수도 있겠지요. 아빠로서 아이들의 귀여운 시절의 사진을 보니 웃음이 계속 흐릅니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두 딸은 이제 초등학교 6학년과 중학교 2학년이 됐습니다. 어떨 때는 아이들이 어렸을 당시가 그립기도 합니다. 이제는 자신들의 세계를 찾아가는 아이들을 위해 더 나은 세상을 물려줄 책임을 가진 동시대 부모들의 책임감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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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탐진강


지난 4월에 제2의 신혼여행 기분으로 아내와 함께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여러 일상들로 인해 여행기를 자세히 올리지 못했습니다. 제주도는 언제 가도 새롭기만 합니다. 특히 이번에 제주도 여행은 알차고 여유있는 여행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2박3일 여행을 어떻게 잘 보낼 수 있을지 소개할까 합니다. 사실 이번 제주도 여행은 사전에 코스를 정하지 않고 떠났습니다. 다만 숙박장소와 렌트카 등 필수적인 것만 준비했습니다. 렌트카만 있다면 가보고 싶은 곳은 즉흥적으로 어디든 잘 수 있으니까요. 또 단 둘이서 여행이라 기동성도 뛰어난 상황이었지요.

 

결국 부부나 연인이 제주도 여행을 하기에 좋은 방법이 되겠습니다. 사전에 준비사항은 교통수단, 숙박장소, 렌트카 대여 등이 고려사항이 되겠네요. 저희는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떠났습니다. 비행기 외에 전남 장흥의 노력항에서 쾌속선을 타고 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우선 육로로 장흥 노력항까지 여행을 한 후 자동차를 그대로 싣고 제주도로 갈 수가 있습니다.

 

숙박장소만 정한 후 렌트카를 이용해 자유롭게 즐기는 제주도 여행의 신선함

 

그리고 숙박장소는 서귀포 쪽에 정했습니다. 제주시 보다는 서귀포가 여행지가 많고 리프레쉬하기에 좋은 듯 합니다. 렌트카를 대여했기에 제주공항에서 제주도를 횡단해 드라이브하는 기분도 즐길 수 있지요. 숙박장소는 해비치리조트로 정했는데 주변 경관이 다양했습니다. 볼거리가 풍성했지요. 바다와 작은 항구 그리고 바닷가 풍경도 여러 형태였습니다. 백사장도 있고 현무암 해변도 펼쳐져 여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지요.

 

 

무엇보다 해비치리조트 바로 곁에 제주 민속촌이 있어 곧바로 관광 코스로도 좋았습니다. 아침 식사를 한 후 산책 삼아 해변을 걷고, 그 후 오전에 민속촌을 구경하는 코스가 좋더군요. 이 때는 수학여행 시즌이라서 중고등학생들이 대거 몰리기도 했습니다. 제주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도 인상에 깊었지요. 단 둘이라서 천천히 쉬어가면서 구경할 수 있어 제주도에 대해 많이 공부도 했습니다.

 

해비치리조트 바로 곁에 있는 민속촌에서의 다양한 제주도 생활 체험

 

사실 제주도에는 간혹 여행을 했지만 이번처럼 자세히 둘러본 적은 처음입니다. 과거에는 꽉 짜여진 일정으로 인해 잠깐 구경하다 이동하기에 바빴지요. 여유있게 구경해도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단 둘이서 이동하는 것이라 쓸데 없이 지체하는 시간이 적었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아내는 모처럼 소녀가 된 듯 즐거워 했습니다.

 

 

민속촌에는 제주도의 과거 초가집과 같은 주거시설은 물론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장소가 많은 것도 즐거움을 배가시켰습니다. 제주도 흑돼지, 토종 소 등을 직접 볼 수가 있더군요. 재래 방식으로 사육하는 모습이 그대로 재현돼 있었지요. 제주 관아의 형벌 틀도 마련돼 있어 감옥이나 형벌 체험 등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추노 등 드라마 촬영장소도 그대로 보존돼 있더군요. 오전 시간이라 그리 붐비지 않아 마음껏 체험할 수 있는 점도 좋았지요.

 

초록 우도 해안도로를 달리는 ATV와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은 최고였다

 

그 다음으로 좋았던 장소는 우도였습니다. 초록 우도라고 불릴 만큼 맑고 깨끗한 바다가 반겼습니다. 우도는 성산항에서 배편으로 약 15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렌트카는 성산항에 주차하고 우도로 갔습니다. 무작정 간 곳이지만 다행히 우도에는 이동수단이 많았습니다. 당초에는 버스로 이동하려고 했는데 우도에는 4륜오토바이인 ATV가 여행객들에게 인기였습니다. 젊은 연인들이 주로 많아 타더군요. 저희 부부는 처음에는 주저했지만 중년 부부도 타는 것을 보고 용기를 냈지요.

 

 

가장 좋은 선택 중 하나가 바로 ATV로 우도의 해안도로를 일주하는 것이었지요. 언제라도 쉬어가고 싶으면 쉬어가고 달리고 싶으면 쌩쌩 달릴 수 있었지요. 달리다 마주친 바닷가 카페 분위기도 멋지더군요. 그 당시 우도에는 유채꽃이 만발해 있어 ATV를 달리다 사진을 찍는 재미도 쏠쏠 했습니다. 우도 해안도로를 달리는 중 중간에 안정희 갤러리를 발견하고 구경간 것도 즐거움이었지요.

 

우도는 여러 가족들이 함께 여행해도 좋은 장소였습니다. 여러 가족이 ATV를 줄지어 타고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가끔 좋은 장소가 나타나면 쉬어가면서 함께 즐기는 느낌도 색다르겠지요. 하얀 등대가 있는 해안을 비롯해 낮은 산을 오르는 ATV의 스릴이 있기도 했지요. 우도는 ATV로 2시간 이내에 아기자기한 바다와 내륙을 모두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가면 더 좋은 곳, 김녕 미로공원의 즐거운 학습 코스

 

 

또한 김녕 미로공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학생들이 많이 찾는 장소였습니다. 한번 미로에 들어가면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미로공원에 대한 지도를 먼저 나눠주기 때문에 사전에 코스를 정해 찾는 것이 좋더군요. 저희 부부는 2~3번 길을 잃었지만 결국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 미로를 완주했습니다. 중간에 미로가 헷갈릴 경우 그 자리에서 지도를 다시 보고 잘 찾는 것이 포인트더군요.

 

사실 부부끼리는 다소 아쉬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녀와 함께 미로공원을 간다면 더 체험학습이 될 것 같았습니다. 미로는 사람의 키보다 큰 나무들 사이로 길이 만들어져 있더군요. 미로 속에 들어가면 전체 구성을 전혀 알 수 없는 것이지요. 미로를 다 찾게 되면 구름다리가 나오고 종을 칠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설문조사 요원들이 있었는데 작은 이벤트로도 좋더군요.

 

천년의 숲 비자림은 최고의 걷기 코스였고 인생을 관조하며 사색할 수 있는 곳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곳 중 하나는 비자림이었습니다. 비자림은 10년 전에도 찾은 적이 있습니다. 제주도에 사는 친구의 추천이었지요. 천년의 숲이 너무 좋았기에 다시 찾은 비자림이었습니다. 이번에도 비자림은 천연 그대로 저희 부부를 리프레쉬시켜 주었습니다. 둘이 걷는 길은 삼림욕으로 최고의 코스였습니다. 마치 정글 속 길을 걷는 듯 했지요.

 

도시 문명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는 곳이 바로 바자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삶을 관조하고 조용히 내면과 대화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지요. 세상의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는 비자림의 오묘함이었지요. 연인이나 부부가 함께 걷기에 가장 추천할 만한 곳입니다. 조용하고 신비로운 장소였지요. 다만 빠르게 관광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 느리게 흘러가는 장소로 느껴질 수 있으니 사전에 잘 생각해야 겠지요.

 

인적이 드문 계절에 찾은 함덕 해수욕장의 바다와 모래사장 분위기는 압권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서귀포에서 제주 공항으로 오는 길에 함덕 해수욕장에 들렀습니다. 그 당시가 4월이라서 모래사장은 조용했습니다. 인적도 드물었지요. 그렇지만 사람이 없는 해수욕장이지만 나름대로 분위기가 색다르고 좋더군요. 둘이서 바닷가를 걷고 바닷물에 사는 해조류 등 생물들도 바라보는 느낌이 신선했습니다. 바닷가 바위 위에서 바라보는 바다도 가슴을 뚫리게 하더군요.

 

바닷물은 옥빛이었습니다. 여름철 사람들이 붐비는 계절도 좋지만 인적이 드문 해수욕장의 분위기는 여태껏 느끼지 못한 바다의 장면이었지요. 아내도 바닷물에 손을 담가보면서 연신 즐거워 했습니다. 연인이나 부부가 함께 바다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었지요. 바닷가를 거닐면서 이야기꽃을 나누는 것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바다를 찾는다면 인적이 드문 계절에 가는 것도 새로운 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꼭 함덕 해수욕장이 아니더라도 인적이 드문 계절에 어떤 해수욕장이라도 분위기 있는 곳이라면 좋겠지요.

 

 

마지막 코스는 러브랜드였습니다. 사실 꼭 가고 싶은 곳은 아니었습니다. 제주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시간까지 여유가 있다보니 찾은 곳이었지요. 신혼 부부를 비롯 성인들에게는 한번쯤은 가볼 수도 있지 않나 싶기는 합니다. 그러나 너무 노골적인 조각품 등이 많아 싫은 사람들도 있을 듯 합니다. 입장료가 다른 곳에 비해 비싼 편이었습니다. 가격에 비해 만족도는 낮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러브랜드는 색다른 구경을 원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무료한 기분을 전환하고 자극적인(?) 무엇인가를 찾는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러브랜드에는 중국 관광객과 나이드신 분들이 더 많이 찾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어떤 아줌마 단체 관광객들은 조각품에서 중요 부위를 만지는 분도 있더군요. 화장실을 비롯 모든 장소가 남녀의 성기 모양이 자주 나타나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뭔가 기분 전황이 필요할 때 여행은 참으로 좋은 것 같습니다. 혼자 여행도 의미가 있지만 가족이나 부부끼리 여행도 특별한 것 같습니다. 제주도를 찾는다면 어떤 곳으로 갈까 고민도 많습니다. 저는 관광객들이 많은 곳도 좋지만 새로운 코스를 찾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제주도는 렌트카를 이용해 가보고 싶은 곳은 자유롭게 여행하는 기분도 더 낫지 않나 싶습니다. 제주도 여행은 언제나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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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우연히 보라매공원을 가로질러 산책을 했습니다. 지인이 근처에 있어 잠시 만난 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지나가는 길이었지요. 5월의 공원 풍경은 수채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시간이 멈춰진 듯 평화로운 광경 그 자체였지요.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흐르고 태양은 부드럽게 대지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 아래 땅에는 싱그러운 연두색 나뭇잎이 햇살을 받아 빛났습니다. 나무 아래에는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사람들은 한가로이 자연과 하나가 되어 하나의 그림이 되었지요.

 

잠깐, 지인의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인은 한 기업의 고위 임원입니다. 그와 점심을 함께 하면서 깜짝 놀랐습니다.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고혈압이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건강에 치명적인 상황이었지요. 지인은 그 때부터 운동과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주말마다 가까운 산을 올랐습니다. 아침에도 걷기 등 운동을 했지요. 주중에는 탁구를 했습니다.

 

그렇게 3개월이 흘렀습니다. 지인은 자신의 신체 변화에 스스로 놀랐습니다. 고혈압은 정상 수준에 가깝게 달라졌습니다. 의사도 놀랄 정도였지요. 더 큰 변화는 바지를 사러 백화점에 가서 알았습니다. 평상시 대로 허리 사이즈 32를 골랐습니다. 지인은 바지를 입어본 후 허리춤이 너무 많이 남아 어리둥절했습니다. 점원은 더 작은 사이즈의 바지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산책과 등산으로 심각한 고혈압을 극복한 지인의 놀라운 경험담 

 

지인의 몸에 맞는 사이즈는 28이었습니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않는 변화였습니다. 3개월만에 20대 나이 시절의 허리 사이즈로 변한 것이지요. 몸무게도 젊은 청춘 시절로 돌아갔습니다. 지인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걷기를 비롯해 등산이 큰 효과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인은 보라매공원을 산책하면서 지하철을 타고 가라고 했습니다. 제가 공원 산책을 하게 된 사연이지요.

 

 

이러한 지인의 변화는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이 가져다 준 선물일 것입니다. 각박한 도시 문명 속에서 살아가다보면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건강은 물론 가족이나 이웃과도 소홀해질 수 있습니다. 지인은 건강이 좋아지면서 가장 큰 기쁨은 아내와 더 돈독해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신혼으로 되돌아간 기분이라고 하더군요. 더 나아가, 집안이나 회사의 일도 술술 잘 풀리기도 했답니다.

 

저는 보라매공원을 거닐면서 수채화같은 풍경이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거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수채화 속의 주인공으로 느껴졌습니다. 나무와 잔디 그리고 사람들이 서로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 수채화 풍경을 만들어 냈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연인은 햇살을 우산으로 가리고 그 아래서 밀어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또 노인들은 긴 의자에 옹기종기 앉아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소풍나온 중학생 고등학생 아이들은 스케치북에 5월의 풍경을 담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길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학생들 마저도 하나의 평화로운 풍경이었지요.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공원을 거닐면서 배운 행복에 대한 소중한 철학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 나온 아줌마들도 한적한 풍경 속에 있었습니다. 아이가 노니는 모습이 참 맑고 귀엽기만 했지요. 도시락을 먹은 후 주위의 쓰레기를 줍는 소녀들의 모습도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에서 장난을 치며 노는 남학생들에게서 저의 과거 그 당시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꽃들도 만발한 5월의 공원은 4계절 중 가장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습니다.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 있겠지요. 그래서 5월의 신부도 꽃처럼 아름다운 모양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결혼하는 축복이겠지요. 그렇게 저는 보라매공원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공원도 끝이 났습니다. 지하철역을 향해 나아가는데 거리에서 커다란 칡으로 칡즙을 만드는 노인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무심코 지나쳤을텐데 이것 마저도 신기했습니다. 거리의 풍경도 눈에는 모두 아름다운 자연이었지요. 세상이 이토록 크고 아름답게 보이다니 5월의 자연이 주는 혜택이 아닐까요.

 

 

그 날 이후로 저도 변화를 시작했습니다. 주말에 가급적이면 등산을 가는 일부터 했지요. 그리고 시간이 날 때 마다 아파트 인근에 산책도 했습니다. 무심코 지나갔던 아파트 풍경도 관심있게 바라보니 아름다운 수채화였습니다. 공원에서 만났던 풍경이 바로 우리 곁에 있었던 셈이지요.

 

대개 사람들은 행복을 멀리서 찾곤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자신의 주변을 둘러 보세요. 가족, 건강, 주변 자연환경 등이 모두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5월의 공원을 산책하면서 소중한 자연의 이치를 배웠습니다. 5월이 다 가기 전에 산으로 들로 나가보고, 아니면 자신이 사는 집 주변이라도 둘러노는 여유는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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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탐진강


"내일 수원에 올라가야 겠다."

 

그저께 갑자기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무슨 일인가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이종 사촌 동생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아직 젊은 나이의 사촌 동생이 병원에서 위암 말기 진단을 맏았다니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그것도 6개월 시한부 인생이었습니다.

 

어제 병원으로 갔습니다. 어머니는 외숙모와 함께 외사촌 형의 자동차를 타고 왔더군요. 외사촌 형은 마음이 급했던지 예상보다 빨리 자동차를 몰아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전에 이종 사촌의 병환 소식을 듣고도 전화조차 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떤 말로 위로를 해야 할지 망설여 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모가 더 걱정이 됐습니다. 일찍이 남편을 사별하고 오직 아들 하나만을 애지중지 키워야 했던 이모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아들이 청천벽력같이 위암 말기라는 진단에 이모는 얼마나 슬펐을까요.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이모는 막내였습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에도 저희 어머니를 도와 수발을 다 해주었습니다. 저로서는 막내 이모가 어떤 친척들 보다 소중한 분이지요.

 

병실에 도착하자 어머니 일행이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이종 사촌 동생은 밝게 웃으면서 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겉으로는 시한부 인생을 진단받은 환자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사촌 동생은 오히려 저희들이 걱정할까봐 농담도 던지고 밝은 대화를 했습니다. 혈색도 환자로는 보이지 않아 조금이라도 안심은 됐습니다. 저는 '힘내라'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더군요.

 

나중에 막내 이모가 병실로 들어왔습니다. 항상 밝게 살아오셨던 분이었습니다. 이 날도 이모는 밝은 표정이었지만 더 자세히 다가서면 수심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이모를 비롯해 가족들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이모는 제대로 식사를 못하시더군요.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후 병원 밖의 그늘진 곳에 마련된 휴게소로 갔습니다. 저는 이모를 조금이라도 위로해 드리고자 옛날 고마웠던 이야기도 하고 용기를 드렸습니다.

 

외사촌 형은 오월의 화창한 날씨가 좋다면서 이종 사촌에게 병실에서 잠시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종 사촌도 갑갑한 병실에서 나와 모처럼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닥칠 삶에 대해 걱정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종 사촌은 "죽더라도 고통없이 죽는 것이 행복"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런 말 하지 말고 강한 의지를 가지라고 이야기할 수 밖에 없었지요.

 

무엇보다 막내 이모의 마음이 아프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이종 사촌도 자신의 어머니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모든 희망을 버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막내 이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이모는 하나님의 기적을 믿었습니다. 이모가 믿는 기적이 정말 현실이 됐으면 하는 바람은 저도 같은 마음이었지요. 이모는 홀로 아들을 키워야 했던 인생이었고 그런 아들이 아직 장가도 못가고 죽음 앞에 선 모습이 너무나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아직은 희망을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모는 수원의 병원에서 정밀 진단이 나오면 곧바로 일산의 암센터로 아들을 옮길 예정이었습니다. 암 관련 전문 의사들과 시설들이 좋은 국립 암센터가 조금이라도 더 낫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지요. 저는 이종 사촌 동생이 아직 젊고 강한 의지가 있는 만큼 위암을 이겨내고 다시 건강한 모습을 되찾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했습니다.

 

저는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건강이 좋을 때 종합검진을 비롯한 자기 관리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종 사촌 동생은 그 동안 종합검진을 받는데 소홀했습니다. 몸이 좋지 않아 병원에 갔을 때는 이미 위암 말기 상태였던 것이지요. 조금이라도 더 빨리 위암을 알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이 시한부 진단은 받지 않았을텐데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함께 갔던 아내는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라면서 건강 관리는 평소에 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사촌 동생이 혈색이 좋으니 이겨낼 것이라 희망도 말했습니다. 막내 이모는 아들의 병환 소식에 곧바로 병원으로 달려온 어머니와 외숙모에게 거듭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저는 이런 슬픈 소식에 특히 가족 형제자매가 그래도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신의 일처럼 함께 슬픔을 나눌 수록 가벼워질 수 있겠지요.

 

너무나 사랑하는 동생인 막내 이모의 소식에 어머니도 많이 놀라셨습니다. 이러한 일을 알고있던 저희 두 딸은 할머니를 위해 어젯밤 노래와 피아노 공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손녀 딸들의 위로에 어머니도 웃음을 되찾았지요. 저에게는 인생의 멘토가 어머니입니다. 늘 아들을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도움이 되고 이웃들에게 배려하는 삶을 살도록 가르쳐 주셨지요. 저도 그렇게 살기 위해 늘 노력했습니다.

 

어머니는 저희 집에서 하룻밤을 주무시고 오늘 오전에 다시 시골집으로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농사 일이 바쁜 시기였기에 마음이 또 급했습니다. 늘 쌀쌀맞은 표정의 아버지도 이번 만큼은 어머니를 이해해 주셨지요. 저와 아내는 고속터미널까지 배웅해 드렸지요.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도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이종 사촌 동생이 마지막 소원이 가슴이 아팠지만 이모와 어머니가 바라는 기적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모는 아들의 병환이 회복되면 온 가족 친지들이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습니다.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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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오늘날 어린이날이 만들어진 유래는 소파 방정환 선생이 우리 아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만든 색동회가 시초가 되었습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야 할 좀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어야 할 책임은 우리 어른들에게 있겠지요.

 

사실 저는 오늘이 어린이날인지 깜박 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작은 딸의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와 작은 딸의 대화는 이러했습니다.

 

작은 딸 : "엄마, 저 어린이날 선물은 문화상품권으로 주세요."

엄마     : "어, 너 어린이니?"

 

작은 딸 : "저 초등학교 6학년이라고요."

엄마     : "아, 그렇구나. 니가 너무 커서 깜박 했다."

 

작은 딸 : "어린이날 선물은 문화상품권으로 주시면 좋겠어요."

엄마     : "응, 알았다."

 

아내와 저는 아직 작은 딸이 어린이라는 사실을 알고 서로 웃음을 지었습니다. 작은 딸은 키가 164cm 정도에다가 몸무게도 50kg이 넘습니다. 작은 딸은 큰 딸과 아내 보다도 키가 약간 큽니다. 이미 성인의 체형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저와 아내는 작은 딸이 어린이라는 사실 조차 깜박 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 날 저녁에 양배추를 씻던 작은 딸이 무엇인가 놀란 듯 했습니다. 아빠가 보이자 작은 딸은 "여기 달팽이 좀 잡아주세요. 등껍질이 있는 달팽이는 잡을 수 있는데 민달팽이는 징그러워서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자세히 살펴보니 양배추 사이에 민달팽이 한 마리가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민달팽이를 잡아서 치워주었지요.

 

작은 딸이 양배추를 씻고 있었던 이유는 학교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은 딸의 초등학교에서는 어린이날 기념으로 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체험학습을 했던 모양입니다. 벌써 훌쩍 커버린 작은 딸이지만 민달팽이에 놀라는 여전히 여린 아이였습니다.  

 

다음 날, 어제 저녁에 작은 딸은 밝은 표정이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물었더니 학교에서 문화상품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학부모 운영진들이 어린이날 선물도 문화상품권을 학생들에게 선물로 주었다고 합니다. 작은 딸이 선물로 받고 싶다던 문화상품권을 어떻게 알고 학교에서 주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지요.

 

저는 작은 딸과 간단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빠     : "그냥 돈으로 받을 수도 있는데 왜 문화상품권을 갖고 싶었니?"

작은 딸 : "돈으로 받으면 군것질로 다 쓸까봐 그랬어요. 책도 사고 문구류도 사려구요."

 

아빠     : "아, 그래. 꼭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문화상품권을 선물로 받고 싶었구나. 다른 아이들도 그러니?"

작은 딸 : "아니요. 다른 아이들은 돈이 좋겠죠. 문화상품권을 선택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어요."

 

아빠     : "그런데 너는 어린이가 아닌 것 같다. 어른이나 다름없잖아."

작은 딸 : "저는 그러면 어른이인가요?"

아빠     : "맞아. 너는 어른이야. 어린이날이 아니라 너에겐 어른이날인가 보다. 하하."

 

지난 겨울방학 동안 작은 딸은 파워포인트 A등급 자격증을 받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랬습니다. 작은 딸은 속깊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현금을 받아서 과자 등 군것질에 돈을 써버리지만 작은 딸은 자신이 꼭 필요한 책이나 문구류 등을 사기 위해 문화상품권을 원했던 것이지요. 어린이같지 않은 초등학교 6학년 딸을 보면서 흐뭇한 시간이었습니다.

 

아내는 작은 딸이 어린이날 선물로 갖고 싶은 1만원권 문화상품권을 준비했습니다. 작은 딸에게는 마지막 어린이날 선물인 셈입니다. 작은 딸은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니 올해가 마지막 어린이날이지요. 몸도 어른처럼 커버리고 생각도 어른 보다 깊은 생각을 하는 작은 딸을 보면서 대견함을 느꼈습니다.

 

최근 뉴스를 보면서 저는 마음이 편치는 않았습니다. 6살 9살인 대통령 외손자는 각각 9억원의 주식이 있고,그 형님의 11살 외손자는 40억의 주식이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재벌들의 어린 아이들도 수억원의 재산이 있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일반 서민들의 삶과는 너무 다른 소식을 접하니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부모들은 어린이날에 작은 선물 하나 마저도 부담될 수 있으니까요.

 

비록 저는 가난한 부모지만 아이들이 밝고 모습과 건강한 생각으로 자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딸에 큰 돈이나 재산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여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수단방법 가리지않고 돈에 집착하여 사회에 피해를 주는 탐욕스런 인간이 아니라 보다 따뜻한 사회를 위해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어린이날에 부모로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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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저녁 식사를 끝낸 후 아내와 함께 산책을 했습니다. 날씨가 풀려 밤에 산책하기에 딱 좋더군요. 낮에는 더위를 느낄 정도였지만 밤에는 시원한 기분이었지요. 모처럼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동네 한 바퀴를 걸었습니다.

 

산책 후 아내는 시원한 얼음과자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가게에 들러 빙과류를 여러개 샀습니다. 아이들도 함께 먹어야 하니까요. 쭈쭈바, 누가바, 추억의 아이스께끼 등 다양한 빙과류가 있더군요. 그 때 저는 구름과자도 별도로 샀습니다. 구름과자란 담배를 칭하는 말이지요.

 

가게 아저씨는 빙과류 얼음과자를 까만 봉지에 넣어 주었습니다. 또 구름과자도 빙과를 담은 봉지에 함께 넣었습니다. 그 후 저희 부부는 까만 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도착한 후 TV 뉴스 시청을 하흔 동안 한참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구름과자가 생각났습니다.

"구름과자 어디다 꺼내 놨어?"

 

그러자, 아내는 갑자기 냉장고로 달려갔습니다. 아뿔싸, 아내는 깜박 잊고 까만 봉지 채로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것이지요. 아내는 까만 봉지에 담긴 빙과류와 더불어 구름과자를 그대로 냉동시켜 버린 셈입니다. 까만 봉지 속의 구름과자는 차갑게 얼음과자 신세가 되어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냉동실에 들어갔던 구름과자를 시원하게 피워야 했습니다. 난생 처음 빙과류와 함께 냉동실에 들어간 담배를 피우는 기분이 색다르더군요. 나중에 아내는 얼음과자를 내밀었습니다. 저는 구름과자에 이어 얼음과자도 시원하게 먹었습니다. 더워진 날씨에 진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냉동실에 함께 들어간 구름과자가 얼음과자나 똑같은 역할을 했으니까요.

 

그 다음 날, 저녁에 처남이 잠시 놀러왔습니다. 냉동실 구름과자 이야기를 듣더니 깔깔 웃었습니다. 처남은 "구름과자는 냉동실에 넣어두면 더 맛있다."는 주장도 펼쳤습니다. 실제로 냉장고에 담배를 보관해두는 애연가들도 있다고 합니다.

 

아내의 귀여운 건망증으로 저는 시원한 구름과자를 처음 접할 수 있었습니다. 냉동실에 들어간 구름과자는 시원했습니다. 게다가 얼음과자와 한 봉지 속에 있었으니 구름과자의 독특한 여행이라 할 만도 합니다. 저는 예기치 않게 냉동된 구름과자를 피워보는 재미도 느꼈던 것이지요. 아내가 남편이 담배를 못피게 하려는 고도의 술책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네요.

 

얼마 전에도 아내는 건망증으로 저를 웃게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함께 외출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자가용 자동차로 단거리 이동의 경우 주로 아내가 운전하는 편이었지요. 갑자기 아내가 허겁지겁 아파트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무슨 일인가 알고보니 자동차 키를 집에 두고 온 것이었습니다. 그 전에 제가 자동차 키를 챙기라고 말했던 터라 아내의 건망증에 웃을 수 밖에 없었지요.

 

사실 저도 건망증이 자주 있는 편입니다. 외출을 하기 위해 지갑을 챙겨두고 그냥 나간 적도 있었지요. 나중에 계산을 해야 할 때 난감한 경우도 있었지요. 스마트폰 충전기를 다른 옷에 넣고 옷을 바꿔 입고 외출했다가 밧데리가 떨어져 낭패인 경우도 있었지요. 나이가 들수록 건망증이 심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요즘 봄이라 그런지 춘곤증도 심해지고 건망증마저 조금 더 찾아오는 듯 합니다. 어쩌면 작은 건망증은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아내의 귀여운 건망증 덕분에 시원한 구름과자의 맛을 체험했듯이 말이지요. 어제 저녁에 두 딸이 얼음과자를 먹고있는 모습에서 문득 냉동실 구름과자가 순간 떠오르더군요. 혼자 미소만 짓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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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숲에 들어서자 신선한 향기가 온 몸을 정화시키는 듯 했습니다. 제주도 비자림은 그렇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10년 만에 다시 찾은 비자림, 역시나 최고의 삼림욕 장소임에 틀림없었습니다.

 

지난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좋은 곳을 꼽으라면 단연 비자림입니다. 마음껏 바닷가 해안도로를 달리고 싶다면 우도를 꼽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야말로 도시 콘크리트 숲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다면 비자림이 첫 손가락에 올라 옵니다.

 

저희 부부는 10년 전에 처음 비자림을 찾았을 때의 감동적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는 겨울이었는데도 비자림은 공룡시대의 정글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에 이렇게 이국적인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지요. 그리고 저희 부부는 연인처럼 조용히 숲길을 걸었습니다. 새로운 시작을 향한 발걸음은 도시의 찌꺼기들을 모두 사라지게 하고 깨끗한 정신으로 만들어 주었지요.

 

 

이번에 다시 비자림을 찾은 이유도 비슷합니다. 그 동안 10년의 찌꺼기들을 또 비우고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걷는 것이지요. 상쾌한 향기가 숲 속을 휘감고, 하늘을 이고 있는 나무들이 반갑게 맞이해주는 기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비자림은 부부나 연인이 조용히 걸으면서 이야기나누기 좋은 공간입니다. 물론 친구나 가족과 함께 거닐어도 상큼한 곳이지만요. 그렇게 대자연의 신비감 속으로 들어가 모든 근심 걱정을 덜어낼 수 있겠지요. 그리고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요.

 

처음에 비자림을 적극 추천해준 것은 제주도에 사는 친구였습니다. 처음에는 몇 그루의 나무가 있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제주 비자림은 400년 이상된 아름드리 비자나무가 무려 2800여 그루나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유네스코가 인정한 세계자연유산 중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는 천년의 세월에 가깝게 긴 수명을 견뎌온 비자나무도 있었지요.

 

 

그 동안 비자림이 달라진 것도 있었습니다. 삼림욕 코스가 과거에 비해 더 길어졌습니다. 작년에 1km가 더 늘어나 3km 정도의 코스로 길어졌더군요. 1시간 이상 여유있게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길이지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아지기는 했지만 아주 붐비지 않아 조용한 산책이 가능했습니다. 다만 아줌마들이 단체로 온 경우는 간혹 시끄러운 수다 소리가 귀에 거슬리기는 했습니다.

 

비자나무에는 비자라는 열매가 열립니다. 저도 어렸을 때 비자 열매를 먹어본 기억이 있지요. 비자 열매는 아주 작은 땅콩과 같은 견과 종류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습니다. 대개 비자나무는 바둑판 등 고급 목재로 쓰이고 비자 열매는 구충과 소화 촉진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문종 당시 탐라국 왕자가 비자나무와 열매 등은 특산품으로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도 합니다.

 

 

비자림 길은 코스마다 다른 느낌이 있어 전혀 지루하지도 않았습니다. 흙길도 있고 작은 자갈길 느낌을 주는 코스도 있었지요. 가는 길 마다 서 있는 나무들도 달랐습니다. 특히 나무 두 그루가 하나로 붙어버린 연리목은 신기했습니다. 숲 속에 돌탑 모양이 여러개 쌓여있는 모습도 특이한 분위기였지요. 걷다가 중간에 비자림의 신선함이 담긴 약수터의 물맛도 일품이었습니다.

 

아내는 비자나무 숲에 들어서자 소녀시절로 돌아간 듯 신났습니다. 하늘을 덮은 나무들 사이로 공간이 나타나는 모습은 경이롭기도 했습니다. 숲길에는 양치류 식물들이 많아 공룡이 머리를 내밀고 나타날 듯한 분위기도 연출되더군요. 아내는 실제로 군데군데 공룡 조형물을 만들어도 재미있는 체험이 될 것이라는 아이디어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나 학생들도 재미있는 탐방 코스가 되겠지요.

 

 

더욱이 나무를 감쌀 정도로 넓게 퍼진 이끼와 콩짜개덩굴이 비자나무를 휘감고 있는 모습은 신비할 정도였습니다. 그 만큼 세월의 흐름을 알려주는 장면이었지요. 아무도 없는 천년의 숲길을 걸을 때는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잊고 신선한 향기를 맡으며 걷는 느낌은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실제 비자림을 걸어보면 금방 느끼겠지만요.

 

제주도를 가면 잘 알려진 관광코스를 찾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제주도에는 숨겨진 비경들이 많습니다. 비자림도 그 중의 하나이지요. 아름다운 비경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걷는 느낌은 인생을 살면서 잊지못할 추억입니다. 태초의 자연 그대로 속에서 가장 정직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면 비자림이 제 격입니다. 도시 생활에서 찌든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리프레쉬하고 싶을 때도 비자림이 가장 좋을 듯 합니다. 비자림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우리 인간들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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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월요일 새벽부터 아내는 바빴습니다. 둘째 딸의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었지요.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딸이 2박3일 동안 수학여행을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도시락으로 유부초밥을 만들었습니다.

 

아침 식사는 첫째 딸과 둘째 딸은 유부초밥이 식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는 학교를 가야하는 첫째 딸과 수학여행을 떠나는 둘째 딸이 식탁에 앉아있었지요. 둘째 딸은 벌써부터 들뜬 표정이었습니다. 어느새 초등학교 졸업반인 6학년인 둘째 딸입니다.

 

그런데 둘째 딸은 수학여행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수학여행지는 경주였는데 제주도로 못가는 것이 아쉽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전에 살던 화정의 초등학교에서는 이번에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소식에 둘째 딸은 실망감이 들었던 것이지요.

 

아내는 경주도 볼 것이 많다며 둘째 딸의 마음을 달래주었습니다. 제주도는 다음에도 갈 기회가 많으니 이번에는 경주를 잘 살펴보고 오라는 당부였지요. 사실 경주는 역사의 도시이지만 생각보다 가볼 기회가 적습니다. 저도 경주는 고등학교 당시 수학여행에서 처음 갔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보면 요즘은 수학여행 풍경도 크게 달라진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에 이미 경주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갈 정도로 변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중국, 일본, 동남아 등 해외 다른 나라로 수학여행을 간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끼지요. 심지어 유럽이나 미국과 같이 멀리 떨어진 국가로 수학여행을 떠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처제가 다니는 영재학교 학생들은 미국으로 학습차 떠난다고 합니다. 영어 학습을 위한 미국 방문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미국 수학여행이나 다름없겠지요. 그런데 그 영재학교 학생 중 단 1명만 못간다고 하더군요. 그 학생은 영어 실력이 안되서 못간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비용이 많이 드는 여행이라서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타깝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운 이유겠지요.

 

저는 식탁에 앉아 유부초밥을 보면서 아내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유부초밥 보다 김밥이 좋지 않을까?"

 

아내는 웃으면서 답변했습니다.

"아니야. 다들 김밥을 싸오니까 유부초밥이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그 말을 듣고나니 이해가 됐습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김밥을 싸오기 때문에 유부초밥이 상대적으로 인기를 끌 수 밖에 없어 보였습니다. 아내의 차별화 전략이었던 셈이지요. 아이들은 도시락을 함께 꺼내놓고 식사를 하는 동안에 서로 다른 도시락도 함께 먹는 상황을 상상해 보면 되겠지요.

 

그렇게 둘째 딸은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하루 종일 아내는 다소 쓸쓸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됐습니다. 저녁 식사는 아내와 단 둘이서 하게 됐습니다. 첫째 딸은 학원에 갔던 터라 부부만 남게 된 것이지요.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부끼리 남는 경우가 많지만 이날 저녁은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습니다.

 

 

훌쩍 커버린 두 딸은 이제 아내와 키도 비슷해 셋이 걸어가면 마치 친구나 자매처럼 보이기도 한다

 

아내가 저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작은 딸이 수학여행을 가니까 집안이 더 허전한 것 같아. 자기 방에만 있어도 막내라 그런지 집안에 활기가 있었잖아."

"그렇기는 하네. 둘째 딸이 분위기 메이커였지. 없으니까 집안이 너무 조용해."

 

지난 겨울방학에는 첫째 딸이 2박3일 동안 체험학습을 떠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이번 만큼 허전한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잘 적응할까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첫째 딸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고 중학생이라서 걱정이 덜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둘째 딸이 수학여행을 떠나자 아내는 마음이 울적해진 듯 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이제는 아이들이 부모 품을 떠날 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편하게 생각하라."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얼마 전에 저희 부부는 제주도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없는 동안에 어떠했는지 물었더니 두 딸은 이구동성으로 "재밌게 잘 지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둘째 딸은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았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 만큼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는 이야기이겠지요.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부모의 역할도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부모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아이들이 더 많이 훌쩍 자랐을 수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보면 아이들이 큰 만큼 부모는 늙어가는 것이지요. 저는 둘째 딸이 이제는 부모 품을 떠나서도 잘 지내는 모습이 한편으로 대견합니다. 결국 부모가 살아왔던 것과 같이 아이들도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겠지요.

 

하지만 늘 막내로서 보살핌을 받던 둘째 딸이 수학여행을 떠난 자리가 허전한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어느 집안이든 막내는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위치라서 더 그렇겠지요. 요즘같이 자식을 하나 또는 둘만 낳는 핵가족 시대에는 둘째 아이가 막내 역할을 하니까요. 아이를 하나만 낳아 기르는 부모의 경우 자식 하나에 온 정성을 쏟기 때문에 자식에 대한 애틋함이 더 클 수도 있겠지요. 둘째 딸이 없는 빈 방을 기웃거리는 부모의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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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탐진강


최근 2박3일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내와 단 둘이서 여행을 간 것은 10여년만에 처음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제2의 신혼여행이라 생각했습니다. 결혼 후 아이들이 생긴 이후에는 단 둘에서 여행을 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두 딸이 크다보니 이제는 아빠 엄마가 여행을 가는 것을 적극 응원해주었습니다. 모처럼 저희 부부는 둘만의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제주도는 16년전 신혼여행지로 찾기도 했지만 10년전에 1박2일 부부여행을 다녀온 곳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변화의 시기에 제주도는 마음의 안식처와 같이 포근한 곳이었지요.

 

이번 제주도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우도였습니다. 저는 언젠가 꼭 우도를 찾고 싶었지만 그 동안 기회가 없었습니다. 이번 제주 여행은 여유롭게 가고싶은 곳을 들러 휴양을 하는 목적이 컸습니다. 그래서 렌트카를 빌려 어디든 가고싶은 곳에서 잠시 쉬어가면서 편안한 일정이 가능했지요. 특히 우도에서의 시간은 마치 동화 속의 아름다운 섬을 만끽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제주 성산항에서 배를 타고 15분 정도면 초록 우도에 도착합니다. 배를 타기 전부터 설레임이 감돌더군요. 성산항에는 제주 호박엿을 파는 분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아내도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상쾌한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연신 신나 있었습니다. 마음 편하게 이렇게 부부가 여행을 하게 되니 더욱 기분이 좋았겠지요.

 

우도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2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이었기에 점심 식사부터 했습니다. 아내가 중국집을 발견하더니 '짜장면(자장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TV 광고를 통해 유명해진 '마라도 짜장면'이 생각난 것이었지요. 그렇게 우도에서 해물 짜장면을 먹게 됐는데 생각보다 맛이 별로 였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제주도에서는 중국집은 권유를 하지 않는 편이라 하더군요.

 

 

우도 여행을 어떻게 할까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버스로 투어를 할 것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항구 부근에는 우도를 여행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여러가지 있었습니다. 오토바이는 물론 ATV, 전기차 등 탈 것이 많았습니다. 실제 직접 운전해본 적이 없던 터라 처음에는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우도에 도착한 젊은 연인들이 대부분 ATV를 선택하는 것을 본 후 저도 결심을 했습니다.

 

여기서 ATV(all terrain vehicle)는 모든 지형을 달릴 수 있는 사륜 오토바이 정도로 이해하면 됩니다. 처음 타는 ATV지만 바퀴가 4개라서 운전하기가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ATV를 타고 우도의 해안도로를 한 바퀴 도는 코스에 들어갔습니다. 우도 해안도로의 주변 경관은 참으로 아름답더군요. 4월이라 바다는 초록을 더해가고 대지에는 곳곳에 노란 유채꽃이 싱그러운 자태를 뽐냈습니다.

 

그렇게 해안도로를 달리다 만난 바닷가 카페는 휴식처로 너무 좋았습니다. 아내와 저는 커피 한 잔을 들고 바다 풍경을 즐겼습니다. 그러던 중 ATV를 탄 4쌍의 연인들이 거기에 멈추더군요. 우리 부부는 단 둘이 여행이지만 4쌍이 함께 ATV를 타고 무리를 지어 여행하는 모습도 좋아 보였습니다. 다음에는 여럿이 이렇게 우도 여행을 와도 좋겠구나 생각했습니다.

 

 

다시 해안도로를 달렸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던 ATV 운전도 안정감을 찾게 돼 신나게 달렸습니다. 그런데 길가에 언뜻 스치는 안내판을 본 후 저는 ATV를 멈췄습니다. 안내판에는 '안정희 갤러리'라고 돼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이었습니다. 오래 전에 신문 기사에서 안철수 사촌여동생이 화가인데 이름이 안정희였던 것 기억이었지요. 아내는 '시간도 넉넉하니 한번 가보자'고 했습니다. 저희 처제도 화가인지라 더욱 호기심이 발동한 듯 합니다.

 

그렇게 저희 부부는 해안도로를 벗어나 표지판이 가르키는 내륙으로 들어갔습니다. 해안도로에서 약 500미터 정도 구불구불한 길을 가자 작은 카페같은 구조물이 나타났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버스를 개조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안정희 갤러리'였습니다. 일단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 예술가의 느낌이 드는 여성 분이 있더군요.

 

저는 혹시 안정희 화가가 아닌가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정말 안정희 화가였습니다. 우연히 신문에서 본 안정희 화가를 만나다니 신기했습니다. 더욱이 안정희 화가는 안철수 원장의 사촌 여동생이었습니다. 안철수 원장 이야기를 하자 안정희 화가는 2년전 출간한 책 '우도를 그리는 꽃잎바다'를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안철수 원장이 카이스트 석좌교수 시절에 써준 추천 글이 함께 있었습니다.

 

 

안정희 화가의 사촌 오빠인 안철수 원장이 쓴 격려의 추천사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십대의 감수성을 간직하고 있는 사촌동생이 지난 십여년의 노력을 모아 책을 낸다는 소식을 접했다. 책은 자식과도 같다. 책을 내기까지의 고통은 직접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정도로 힘든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나 출간된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때의 형언할 수 없는 느낌은 그 동안의 고생을 모두 잊게하는 힘이 있다. 이 책의 출간이 지금까지의 예술적 성취를 정리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든든한 받침대가 되기를 바란다.'

 

그 내용을 보면서 저는 안정희 화가는 정말 10대의 감수성을 가진 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안정희 화가가 우도에 살게 된 것은 너무나 동화같은 이야기로 유명합니다. 안정희 화가가 혼자 우도 여행을 하다가 우연히 거기서 한 남자를 만나게 됐지요. 그 남자는 우도에 살고 있었고 안정희 화가는 육지의 여행객이었는데 처음 만나 두 사람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안정희 화가는 육지로 떠나고 헤어져야 했습니다. 운명같은 사랑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인지 모릅니다. 둘은 헤어질 수 없는 사랑의 운명이 사로잡고 잇었으니까요. 안정희 화가는 모든 안락함을 포기한 채 다시 우도로 왔습니다. 우도 청년과 안정희 화가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만의 동화같은 사랑을 부부의 인연으로 만들 수 있었지요.

 

저희 부부가 본 안정희 화가는 활달한 성격으로 밝은 모습이었습니다. 갤러리로 개조한 버스에는 손수 만든 커피는 물론 그림 엽서, 귀걸이 등이 있었습니다. 그림엽서나 귀걸이 등도 안정희 화가가 직접 만든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귀걸이는 보더니 예쁘다고 즉시 구입을 했습니다. 그림엽서도 글과 사진을 안정희 화가가 직접 제작한 것이라 신선했습니다. 그 그림들은 아름다운 우도가 수채화로 펼쳐진 모습이었는데 동화의 나라처럼 보였습니다. 특히 멀리 해안가의 하얀 등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초면이었지만 저와 아내는 안정희 화가와 이야기도 재밌게 나누고 사진도 찍었습니다. 밝은 얼굴로 맞이해준 안정희 화가가 너무 좋았습니다. 다음에 또 우도를 찾는다면 거기서 해안을 바라보면서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알콩달콩하게 순수한 삶을 살아가는 안정희 화가 부부가 더 아름답게 느껴진 시간이었습니다. 화가인 아내에게 근사한 갤러리를 만들어주고 싶은 남편은 버스를 개조해 갤러리로 대신했습니다. 언젠가 근사한 갤러리의 꿈이 이루어질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아름다운 섬을 보면서 안정희 화가가 초록 우도와 섬 총각에 한 눈에 빠질 만도 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큰 욕심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살아가는 안정희 화가의 밝은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도 시골에서 텃밭 가꾸면서 사는 것이 궁금적 꿈이기 때문에 더욱 와닿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우도의 시간들은 흘러갔습니다.

 

초록 우도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아내와 저는 우도를 ATV로 여행하는 동안에 여러 곳을 들렀습니다. 가는 곳이 모두 동화나 수채화처럼 멋지더군요. ATV를 달리면서 그 동안 머리 속 상념도 잊어버렸습니다. 다음에 또 제주도를 찾게 되면 온 가족들이 우도 여행을 하자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화 속의 섬을 떠나는 동안에도 지금 육지에 도착한 후에도 우도는 계속 추억의 장면들도 오버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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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