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히스토리 이야기'에 해당되는 글 55건

  1. 2017.07.29 안철수 박사가 위대한 세가지 역사적 사회적 가치의 이유와 우리 국민이 대한민국 미래 희망으로 지켜내야 하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
  2. 2017.01.29 안철수 관련 네거티브 흑색선전 거짓과 진실 15문 15답 총정리 2017년 최신판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
  3. 2016.08.13 안철수 '청년이 안철수에게 묻는다 - Why 공정성장 How 공정성장' 주제 17일 강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1)
  4. 2015.08.08 안철수 정신 깃든 동그라미재단 가보니, 청년 기업가정신 미래 대한민국 희망을 만드는 산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5. 2014.11.23 안철수 음해비방한 개표 조작 허위사실 유포 범죄행위에 강력 법적 처벌해야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
  6. 2014.11.16 안철수 선택의 순간, 안정된 의사 대신 혈혈단신 공익 백신연구소 설립...아무도 가지 않는 대한민국 정보보안 소프트웨어 역사의 시작(1) by 진리 탐구 탐진강
  7. 2014.11.10 의대생 안철수가 컴퓨터 바이러스와 처음 만나 V3 백신을 개발하던 날, 영혼이 있는 기업의 태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8. 2014.11.09 안철수의 수줍은 사랑, 2000년 당시 전직원에 주식 무상분배했던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
  9. 2014.11.07 안철수의 시간 정복, 최연소 27세 의학박사와 V3 백신 개발 동시에 해낼 수 있었던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 2012.11.10 11월 11일 가래떡데이 유래는 안철수, 아시나요? by 진리 탐구 탐진강 (2)


안철수  박사가 위대한 이유는 여러 분야에 걸쳐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 늘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왔다는데 있다.

안철수는 의대생 때 무료 백신 V3를 개발해 전 국민에 혜택을 주었고 안랩을 창업해 정보안산업을 처음 개척하고 대한민국을 사이버 안보 자주국가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사이버 안보의 핵심이 백신이라는 점에서 순수 자국산 기술을 가진 백신을 가진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안철수가 위대한 두번째 이유는 평생 사회공헌이다.  백신을 일반 국민에 무료 보급한 데 이어 자수성가 재산 50%(당시 1500억원)을 사회환원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1500억원 이상 사회환원한 인물은 안철수 유일한 김준기 등 단 3명 뿐이다. 당초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을 세우려 했던 이유도 백신을 국민에게 무료로 계속 보급하기 위한 공익연구소 개념이었는데 정부도 대기업도 도와주지 않아 창업할 수 밖에 없었다.

안철수가 위대한 세번째 이유다. 안철수는 해방 이후 70년간 고착된 수구보수=수구진보 양극단 기득권 구체제를 붕괴시키고 제3의 중도개혁정당을 개척했다는데 있다. 혈혈단신으로 시작해서 말이다. 그것은 자라나는 아이들과 청년들이 살아갈 새로운 대한민국의 미래 가치를 실현하는데 있다. 안철수의 개척자적인 미래 정당 모델은 향후 세계사적 의미로 남을 것이다.

안철수가 만약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대한민국은 사이버 안보 자주국이 아닌 미국에 예속된 정보보안 노예국가였을 것이다.  자수성가 성공한 기업인이 재산 50%를 사회환원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선행은 명맥이 끊겼을 것이다. 양극단 기득권 구체제 노예로 계속 살아갈 것이다.

안철수가 구체제 세력에 의한 온갖 흑색선전과 허위사실유포 등 네거티브로 끊임없이 정치적 탄압을 받아오고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미래와 희망이다. 우리가 안철수를 지켜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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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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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박사(현 의원)의 국민적 지지와 열망이 커지자 2012년 새누리당과 국정원 댓글부대를 필두로 민주당까지 가세해 기득권 양당과 악성언론에 의한 온갖 흑색선전과 음해 정치공작이 난무했습니다. 지금은 문빠 달레반들이 새누리당과 국정원 댓글부대가 자행한 흑색선전 마타도어를 그대로 자행하는 야만의 폭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만큼 안철수 의원이 무섭고 초조하다는 반증이겠지요. 이러한 흑색선전 네거티브 행태는 우리나라 정치판이 얼마나 후진적인지 알 수 있습니다. 낡고 썩은 정치는 지긋지긋합ㄴ다.

이제 정치도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 정신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을 헐뜯고 비방하는 정치는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합니다. 국민을 상대로 싸움질 편가르기하고 이간질 헐뜯기하는 정치는 결코 국민 통합이나 화합과는 거리가 멉니다. 미래를 이야기하고 국민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는 후보에게 국민의 선택이 따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안철수 의원에 대한 새누리당과 국정원 댓글부대에 이어 문빠 달레반들 그리고 악성언론의 흑색선전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그리고 거짓과 진실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대부분 거짓이거나 왜곡 음해하는 악질 마타도어입니다. 헐뜯기 깍아내리기 수준입니다. 심지어 유언비어를 만들어 인신공격 흑색선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Q1. 안랩은 국내용으로 정부 공공기관 매출이 대부분으로 정부가 키워줘 성장한 기업이다?

(답변) 사실이 아닙니다. 안랩(전 안철수연구소)은 민간 기업 매출이 65% 내외이고 공공기관 매출은 35% 내외에 불과합니다. 정부 공공기관은 정보보안에 대한 예산이 너무 적어 저가 백신이나 외산 백신 및 보안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심지어 사이버 안보에서 핵심적인 국가 중요기관도 외산 백신이나 보안제품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외국 용병에게 국가 핵심시설을 맡길 수는 없는 일인데요.

우리나라는 제조업 위주 성장정책을 추구해 왔기에 소프트웨어 산업은 열악합니다. 제대로 살아남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거의 없고 전멸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안랩은 매출 1300억원을 돌파하며 국내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이제는 국내를 넘어 미국, 유럽, 일본, 중국 등 전세계 시장을 향해 나아가는 대표적 국산 소프트웨어 기업입니다. 대한민국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특히 보안 소프트웨어는 정말 보수적인 시장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 공공기관은 절대 러시아산 보안제품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이버 국방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무료 백신 전국민 배포는 물론 사이버 대란 등에서 안랩이 무료 봉사로 국민의 안전을 앞장서 지켜준 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수조원에서 수십조원 가치가 있을 것입니다.


Q2. 안철수가 1988년 개발한 백신 V3는 세계 최초의 백신 중 하나가 아니다?

(답변) 세계 최초의 PC용 바이러스는 1986년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브레인’ 바이러스입니다.
그 당시 PC나 인터넷이 발달돼 있지 않아 수년에 걸쳐 디스켓에 감염돼 천천히 전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V3 백신은 세계 최초의 PC용 바이러스가 한국에 상륙했을 때 당시 의대생이던 안철수가 개발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계 최초의 PC용 바이러스를 퇴치한 백신 중 하나입니다. 1988년~1989년 당시 전세계에 브레인 바이러스를 퇴치한 백신은 미국 시만텍, 맥아피 등 몇 개에 불과했습니다. V3 백신은 세계 최초의 백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계 최초의 PC용 바이러스인 브레인을 퇴치한 백신 중 하나라는 의미입니다. 그 전에는 컴퓨터용 바이러스가 보고된 적도 있지만 일반 PC용 바이러스로 널리 퍼진 것은 브레인 바이러스가 세계 최초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1988년 V3 개발 이래 무려 7년간 의학 공부와 V3 개발을 병행하며 국민들에 공익 차원에서 무료로 배포했습니다. 시만텍 등은 보안회사를 차려 전세계 시장을 공략했던 시기입니다. 안철수 박사가 안정된 의사를 그만 두고 안랩을 창업한 것도 공익연구소 개념에서 외국 기업을 한국 점령을 막고 일반에 무료로 백신을 계속 보급해 사이버 안전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1995년 당시 돈도 안된다고 정부도 대기업도 도와주지 않던 시절에 작은 중소기업인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를 설립해 온갖 고생 끝에 오늘 날의 안랩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Q3. 안철수가 모든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준 것처럼 말했지만 거짓말이다?

(답변) 예능 프로그램 내용을 말꼬리잡기 식으로 왜곡해 헐뜯기하는 비방 행태입니다.
'모든 주식을 나눠준 것처럼 말했다'는 것은 당시 무릎팍도사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가 재미있게 이끌기 위해 질문을 한 것을 잘못 이해한 결과입니다. 2000년 10월 당시 모든 직원에게 주식을 주었다는 내용이 명확히 전달되지 않은 것입니다. 해당 프로를 다시 살펴보면 당시 '모든' 직원들에게 줬다고 했으며, '모든' 주식을 다 줬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경영권이 필요한 주식회사에서 모든 주식을 무상 분배가 가능한 말인가?

그리고 안철수 박사가 직원들에게 무상 분배한 주식은 지분이 2.7% 정도입니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1.5%가 아닙니다. 창업자 CEO가 본인 주식을 무상 증여하는 일은 그때나 지금이나 흔한 일이 아닙니다. 최근 지분의 절반을 사회환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것에 비추어봐도 당시의 진정성은 의심할 이유가 없습니다. 좋은 일 마저 헐뜯기 흠집잡기 행태는 사라져야 겠습니다.


Q4. 안철수가 PC 바이러스 백신 개발을 위해 군 입대 아침까지 개발하다가 가족에게 연락조차 못하고 입영열차를 탔다고 하는데 거짓말이다?

(답변) 예능 프로 특성상 가족에게 인사를 제대로 못했다는 것을 우스개로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를 일부 악의적 말꼬리잡기로 왜곡한 주장입니다.
진지한 토크보다 재미 요소가 강하고 4시간 분량을 1시간에 줄이는 편집 문제로 맥락이 끊길 수밖에 없는 프로그램의 특성도 무시한 말꼬리잡기 식 주장입니다.

안철수 박사가 한 말은 군대 입대 전 아침까지 백신 개발해 PC통신에 올려놓기 가느라 부산의 부모를 비롯 가족과 함께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함께 시간을 못가져 아쉬웠다는 의미입니다. 군대에 입영해보니 다른 사람들은 입대 전에 가족과 식사도 하고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딸과 아내 비롯 부모 등 가족에게도 미안했던 것이지요. 1991년 군대 입영 당시 안철수는 전세계에 창궐하기 시작한 미켈란젤로 바이러스 퇴치 백신을 만들어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 컸던 셈입니다.
안철수의 책임감과 공익정신을 칭찬할 일이지요.


Q5. 안철수 박사는 과거 룸살롱 간 적이 있는데 무릎팍도사에서 거짓말했다?

(답변) 예능을 갖고 말꼬리잡기 식 왜곡 비방 행위입니다. 예능 프로그램 무릎팍도사를 다시 봐도 룸살롱이란 말은 전혀 나오지도 않습니다.
무릎팍도사 진행자 강호동이 '단란히 먹는 술집에 가봤냐' 질문에 우스개로 '단란한 게 뭐죠?'라고 답변한 것입니다. 안철수는 1997년 급성 간염으로 입원한 이후 술을 끊고 줄곧 술을 마시지 않아 왔습니다.(정치 입문 후 최근 2~3번 한 잔 건배 수준은 했습니다만)

그렇지만 비즈니스 상 장관 등이 주최하는 술자리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한 적은 두어번 정도 있다고 합니다. 물론 당시 안철수 CEO는 장관 앞에서도 술은 마시지 않았습니다. 당시 증언 기사도 있습니다. 악성언론에서 안철수의 도덕성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 룸살롱 단어를 붙여 악의적 공격하는 행태는 추악한 일입니다.

경찰도 안철수에 대한 사찰 조사를 했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실토한 바 있습니다. 구시대 구태 인신공격 흑색선전은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술 담배 골프 등을 하지 않으며 사생활도 매우 깨끗합니다. '걸어다니는 도덕교과서'라는 별명도 CEO 당시 IT/과학 기자들이 지어준 것입니다.


A6. 약 17년 전인 2000년과 2001년에 안철수 박사 부부가 각각 다운계약서를 작성했다?

(답변) 안철수는 이유를 불문하고 곧바로 사과했습니다. 앞으로 더 엄중한 잣대로 살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당시 다운계약서(검인계약서 기재 가격)는 국민 대다수가 관행적으로 있어 왔던 일입니다. 사과할 일도 아닌데요.

(문재인은 청와대 민정수석, 핵심 공직에 있던 시절에 다운계약서를 작성했기에 이런 일은 후보를 사퇴할 중대 사안이겠지요.)

그 당시 검인계약서는 실거래 가격과 기준 시가 중 하나를 기재하면 됐습니다.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는 2006년부터 실시됐습니다. 2006년 이전에 다운계약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부동산 중개소가 작성한 대로 했던 시기였습니다.

납세자연맹도 10여년 당시 다운계약서는 합법적 절세였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또한, 검인 계약서는 매매 당사자나 그 동의가 있어야만 발급받을 수 있는데 안철수 박사를 헐뜯기 비방하기 위해 불법 유출한 구청과 여당의 악성 정치공작 행태가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특히, 안철수 처럼 깨끗하게 즉시 사과할 수 있는 진정성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과거에 아무 문제가 될 수 없는 관행적 사안임에도 이유를 대지않고 깔끔한 사과를 할 수 있는 안철수 야 말로 대인배이고 용기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A7. 1993년 당시 안철수의 논문 표절 의혹이 있다?

(답변) 악의적 허위 왜곡보도에 의한 일방적 흑색선전입니다.
서울대 해당 교수를 비롯 대다수 전문가들도 표절이 아니라고 명확히 밝혔습니다.

대학에서 석사, 박사 논문 발표자가 자신의 논문을 학술저널에 발표하는 것은 국내외에서 적극 권장 의무사항입니다. 이공계 논문의 경우 제1저자 외에 제 2, 3 저자는 제1저자에게 조언, 조력을 준 사람을 다 올리는 것이 규칙입니다.

이를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무식하거나 악의적인 행위입니다.


A8. 1999년 산업은행 투자팀장 강 모씨가 안철수 박사에게 뇌물을 받았다?

(답변) 전혀 사실이 아닌 음해 흑색선전입니다.
당시 전도유망한 안랩(구 안철수연구소)에 투자하려는 투자자가 오히려 넘쳐났는데 뇌물을 주면서 투자 유치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강씨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고 당시 검찰 수사에서도 안랩은 아무 문제점도 없었기에 수사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A9. 안철수가 전세 살이 안했는데 전세 설움을 안다고 거짓말했다?

(답변) 악의적 왜곡 주장에 의한 헐뜯기 흡집내기 행태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결혼 후 약 8년 정도 전세 살이를 했습니다.

안철수 박사는 결혼 전부터 동생들과 함께 살던 집에서 1988년 김미경 교수와 신혼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 집에서 딸을 낳고 약 1년 반 정도 거주한 후에 1989년 말에 부모님이 마련해준 아파트로 동생들과 함께 이사를 했습니다.

이사한 집은 사당동 소재 25평 아파트인데 축의금, 결혼자금 등을 모아서 부모님이 신혼집으로 마련해준 것입니다. 안철수는 그 집에서 4년간 살았고, 그 후에는 직장, 유학 등으로 여러 차례 이사를 다녔습니다.

안철수 가족이 자기 집이나, 부모님 소유의 집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 전세로 거주한 기간은 8년입니다.


Q10. 1999년 안랩 CEO 시절 당시 BW 저자 발행 의혹이 있다?

(답변) 적법한 절차에 의한 BW 발행으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BW 발행과 관련해서는 강용석 새누리당 전 의원이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는 등 여러 차례 근거 없이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세무당국의 조사 2차례, 그리고 금융감독원과 검찰에서 검토한 끝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내려진 사안입니다.

BW 가격은 외부기관의 적정 평가에 의한 정상적 절차는 물론 주주총회까지 거쳐 투명하게 진행된 일입니다. 적법하고 정상적인 BW 발행마저 문제삼는다면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Q11. 2000년 안랩에 V3 백신을 국정원과 협의없이 북한에 제공해 국가보안법 위반 의혹이 있다?

(답변) 안랩은 V3 백신을 북한에 제공한 일이 없습니다. 어이없는 악성 흑색선전입니다.

V3 백신 프로그램을 북한에 제공한 사실 자체가 없기 때문에, 국정원 통일부 등 국가기관의 승인 문제가 성립될 수도 아예 없습니다.

안랩은 2000년 4월에 컴퓨터 백신 프로그램 V3를 북한에 제공했다는 악성루머와 관련, 안랩은 V3의 소스 코드는 물론 개별 백신 제품도 북한에 전달한 바 없음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Q12. 안랩 창업 초창기에 가족에 이사 및 감사에 등재돼 영향력 행사 의혹이 있다?

(답변) 악의적 비방 행위입니다. 오히려 칭찬받을 일입니다.

안랩 창업 초창기 어려운 시절에 아내, 동생 등이 이사 및 감사에 이름이 등재된 것은 주식회사 상법상 책임만 갖는 위험 부담입니다. 1995년 창업 이후 안랩은 수익 모델이 없어 아무도 이사나 감사로 이름을 올려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대신 책임을 진 것입니다. 가족은 책임만 지고 월급 등 경제적 이득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김미경 교수는 안랩 설립 초창기에 몇 년에 걸쳐 직원 월급 줄 돈이 없으면 자신이 받은 봉급을 쓸 정도로 기여를 했기 때문에 상장 때 스톡 옵션을 받거나 혹은 상장 이후 임원으로 재직하면서 보수를 받겠다고 해도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어려울 때부터 함께 한 창업공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김미경 교수는 어떠한 형태의 경제적 이익도 받지 않고 안랩이 좋아지던 시기인 상장(2001년) 이전에 이사직에서 물러났습니다. 물론 다른 가족들도 모두 물러났습니다.

제대로 회사가 기틀을 다진 이후 안랩에는 가족이나 혈연이 단 한 명도 근무하고 있지 않습니다. 윤리경영의 모범이라고 할 수 있는 사례를 두고 비판을 하는 것은 황당한 일입니다.


Q13. 안철수가 브이소사이어티 모임에 참여한 것은 문제가 있다?

(답변) 브이소사이어티는 주식회사이며 2000년대 초반 대기업-벤처중소기업 상생 산업발전을 논의하고 공부하는 곳인데 무조건 비판은 옳지 않습니다.

브이소사이어티는 벤처산업의 미래에 대해 공부하고 연구하는 모임으로 바람직한 일입니다.
대기업과 벤처기업 CEO들이 모여 대한민국 벤처 산업의 발전을 위한 경험 공유, 학습과 협력 등을 도모하기 위해 설립된 주식회사입니다.

일각에서 말하는 재벌 2, 3세들과의 사교모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각각 참가자들이 주식회사 출자금(각각 2억원)을 내고 설립된 주식회사이기에 투명한 경영 형태와 더불어 학습모임이 이루어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브이소사이어티는 매주 정기포럼을 개최하여 주주 및 외부인사들과 경제 및 기업현안에 대해 세미나와 컨퍼런스 형식으로 논의를 했으며 이후 후발 벤처기업들에게 관련시설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안철수는 2005년 안랩 CEO 사임 후 미국 와튼스쿨 MBA 유학을 가면서 브이소사이어티 모임은 참석치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브이소사이이어티는 대기업과 벤처기업이 함께 대한민국 경제 및 산업 발전을 추구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수 있습니다.


Q14. 안철수는 브이소사이어티 당시 2003년 최태원 SK 회장 구명 탄원서에 서명했다?

(답변) 안철수는 탄원서에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브이소사이어티 회원 44명이 탄원서에 서명했지만 안철수는 서명하지 않았습니다.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흑색선전 공세가 십자포화일 때 안철수가 사과한 것은 10여년 전 일에 대해 경황이 없어 오래 전 일이라 잘못 알았던 것 같습니다)


Q15. 안철수 박사의 부인 김미경 교수의 서울대 임용은 특혜다?

(답변) 정상적 임용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것을 특혜라고 한다면 황당한 비방 흑색선전입니다.

김미경 교수는 우리나라 여성 중 최고의 융합학문 전문가입니다. 서울대가 요청해 김미경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서울대로 옮긴 것입니다.

김미경 교수는 서울대 의학박사 출신에 삼성의료원 의사와 성균관대 교수로 10년 이상 일하다가 나이 40에 미국 워싱턴주립대 로스쿨에 입학해 법학 공부를 했습니다. 로스쿨에서 일종의 법학박사(JD)를 취득했고 까다롭기로 유명한 뉴욕주와 캘리포니아주 변호사 자격증도 획득했습니다.

그 후 스탠포드대학 생명과학과 법센터 연구원으로 일하다 카이스트에 이어 현재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의료, 법학, 지적재산권 등 여러 분야의 여성 전문가로 융합 학문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미경 교수만큼 훌륭한 경력과 실력을 갖춘 여성 인력은 드물 것입니다. 가정 살림은 물론 남편 사업 뒷바라지 등은 물론 전문가로서 스스로 최고의 전문가로 성장한 김미경 교수는 대한민국 여성의 롤모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의학, 경영, 기업가정신, IT 및 소프트웨어 등 융합학문의 전문가에 비견될 정도로 부인 김미경 교수도 우리 사회에 소중한 자산인 셈입니다.


* 자, 어떤가요?
2012년 당시 새누리당의 흑색선전 이었습니다. 당시 국정원 댓글부대가 안철수에 대한 공격을 문재인에 비해 2배 이상 더 했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새누리당 수법 흑색선전을 요즘은 문빠 달레반들이 그대로 복사해 악질 네거티브 마타도어를 자행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깔 게 없나요?
더 웃기는 건 깔 게 없자 말도 안되는 이명박과 엮어 MB 아바타 식의 저질 흑색선전을 하기도 합니다. 2011년 이전으로 돌아가 보라. 민주당은 새누리당(한나라당)에 연전연패 하면 사망 작전의 시절이었는데 안철수가 등장해 역사의 물줄기 막는 새누리당 확장 반대를 선언하며 민주당을 살려주었습니다.

그 후 민주당의 박원순에 서울시장 양보-문재인에 대권 양보 유세 지원을 했습니다. 세계 역사상 50% 지지율을 아무 조건 없이 주는 사람이 누가 있었습니까? 도움받고도 감사는 커녕 덜 도와줘 졌다면 그걸 까대는 양심불량 후안무치 배은망덕한 자들, 바로 문빠 달레반들이 문제인 겁니다. 그럼 문재인은 혼자 아무 것도 못하는 자 인가요?

먼저 사람이 돼야 합니다.

4차산업혁명 시대, 이제 낡은 구체제 정치 청산하고 미래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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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안철수 '청년이 안철수에게 묻는다 - Why 공정성장 How 공정성장' 주제 17일 강연
- 미국 방문 후 첫 메시지 주목
- 일반 국민 누구나 참석 가능

안철수 의원(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이 성남시 분당구 코리아디지인센터에서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초청강연회를 17일 오후 4시 실시한다.

안 의원은 이 날 ‘청년이 안철수에게 묻는다 -
Why 공정성장 How 공정성장"을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성남시민사회포럼 청년위원회 주최로 진행된다.

이번 강연은 안 의원이 미국 방문 후 첫 대외 행사라는 점에서 공정성장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던질지 주목된다.

안 의원은 미국 방문에서 워싱턴주 리치랜드에 있는 퍼시픽 노스웨스트 국립연구소(PNNL)를 찾아 환경과 에너지, 국가보안 등에 대한 연구 현황을 둘러볼 것으로 전해진 바 있다.

따라서, 안 의원은 미국 방문을 통해 4차 산업혁명과 미래 먹거리, 청년 일자리 등 자신이 주목하는 가치를 단계적으로 구체화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안 의원은 지난해 설 연휴 독일 방문 후 "우리나라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독일의 히든 챔피언(강소기업)을 벤치마킹해 꾸준한 연구개발 및 투자를 해야 하고 정부는 중소기업의 생존 확률을 높이고 실패해도 재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히든챔피언 육성을 강조한 바 있다.

이번 '청년이 안철수에게 묻는다 - Why 공정성장 How 공정성장' 주제의 안철수 의원 초청 강연회는 일반 국민 누구나 무료로 참석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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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우연히 역삼역 부근을 지나다 동그라미재단에 들렀습니다. 사실 동그라미재단은 필자와 인연이 있는 사회공헌기관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당시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지난 2011년 9월, 안철수 박사는 대한민국 정치의 중심에 섰습니다. 당시 "서울시장 고민 중" 한 마디에 정치판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시 50% 지지율이 넘던 안철수 박사가 5% 지지율의 박원순 변호사에게 아름다운 양보를 하자 국민들은 감동했습니다.

그리고 안철수 박사는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대통령 후보 1위 지지율로 치솟았습니다. 그 해 12월, 안철수 박사는 자신의 재산 50%를 사회환원한다 발표했습니다. 국내 최초로 백신 V3를 개발해 국민에 무료 배포 후 안랩 (당시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일종의 국내 최초 사회적 기업을 운영했던 안철수 박사가 자수성가한 재산을 사회 환원한다는 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그 당시 기자회견 준비와 사회는 필자의 역할이었습니다. 안랩 재직 시절 마지막 업무가 사회공헌 기자회견이었던 셈 입니다. 안랩 자체가 공익 연구소로 탄생했기에 사회공헌이 일상과 같습니다. 안랩 경영이념 (존재의 의미)이 "우리는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한다"일 정도니까요.

그렇습니다. 필자는 동그라미재단 탄생의 시작을 알리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기자회견 준비와 현장 사회를 보면서 안랩에서 10년을 마무리했습니다. 안랩으로 사명 변경도 바로 그 이전있지요. 그리고 안랩을 떠나 새로운 사회생활을 또 시작했지요. 그래서 더 추억의 페이지입니다.

돌이켜보면 안랩에 처음 입사한 2002년 그 해, 박원순 변호사가 설립한 아름다운가게와 사회공헌 인연을 시작한 것부터 주마등처럼 추억이 스칩니다. 그 후 매년 사회공헌 활동을 계속 했고 안철수 박사와 박원순 상임이사 만남도 그 때 입니다. 아름다운재단과 처음부터 함께 했고 희망제작소로 계속 인연은 이어졌지요.

동그라미재단은 어쩌면 오래 전부터 잉태했는지 모릅니다. 안철수 박사는 늘 사회에 공헌히는 삶을 살아왔으니까요. 안철수 박사가 재산 50%를 사회환원한다 했을 때 놀라기 보다 언젠가 올 일이라 생각했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거 아세요? 당초 안철수 박사는 자신의 전 재산, 안랩 지분 100%를 사회환원하려 했다는 것을. 그렇지만 안랩 임원 등이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만약 100% 지분 전체를 내놓을 경우 안랩이 국민기업인데 경영권 분쟁 등 휘말려 문제가 생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동그라미재단은 탄생했습니다. 필자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 이런 연유입니다. 그렇지만 동그라미재단 설립 후 한번도 찾지 못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생기면 들르겠다 했지만 차일피일 미뤄진 것이지요.

그러면 본격적으로 동그라미재단 (당초 안철수재단)으로 들어가 볼까요.

동그라미재단 로고가 눈길을 끕니다. 서로 손잡고 걷는 사람의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안철수 출연자의 정신과 뜻이 새겨진 벽면이 있습니다.

여기는 '모두의 홀' 입니다. 청년 기업가들이 함께 모여 토론과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창의와 혁신이 느껴집니다.

소셜네워크 벽인데 여러가지 아이디어가 벽면에 붙어 있습니다. 차원이 다른 공간이지요.

동그라미재단 입구에서 본 내부 분위기가 산뜻합니다.

모두의 홀 내부에서는 청년 기업가들의 창의와 혁신이 넘치네요. 미래 대한민국의 꿈과 희망이 만들어지고 있지요.

내부 벽면도 신선한 아이디어로 넘칩니다.

동그라미재단 입구에서 문 안으로 들어가면 처음 마주치는 모습입니다.

동그라미 재단 입구 부근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모두에게 기회를' 공감입니다. 두더지잡기 게임을 비롯 안전모 등 여러 도구가 걸려 있습니다. 현재 공사중인데 곧 완성되겠지요.

살짝 열린 문 사이로 본 재단 사무실 공간이 밝고 신선합니다.

모두의 희망을 담은 나무와 나뭇잎에는 각자 소망이 담겨 있더군요.

안철수 박사도 "공동체 복원을 위해" 잘 이끌어 달라는 친필 메시지가 있었습니다.

모두의 홀 한쪽 벽 공간에는 커피 등 음료가 준비돼 있었습니다. 종이컵이 아닌 머그컵이, 믹스 대신 원두 커피가 있더군요. 환경을 고려한 듯 합니다. 더욱이 각자 컵을 씻도록 싱크대도 있더군요. 신선한 아이디어지요.


자, 어떤가요? 동그라미재단 모습을 보니 차원이 다른 공간이란 생각입니다. 안철수 출연자의 뜻이 담겨 더욱 창의와 자율, 그리고 소프트 및 스마트한 분위기가 넘치지 않나 싶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동그라미재단 창립 당시 쓴 글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더 자세한 동그라미재단 소개는 홈페이지(http://www.thecircle.or.kr) 참고하세요.

■ 안철수 출연자의 글

동그라미재단의 설립은 제가 우리 사회로부터 받은 과분한 은혜와 격려를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는,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작은 결심의 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사회 문제 해결과 기부 문화 확산을 통하여 우리 사회에 필요한 긍정적인 변화의 시작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동그라미재단은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대안을 찾아가는 일을 할 것입니다.

먼저, 일자리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에 대해 함께 지혜를 모아보고자 합니다.일자리는 자신의 업을 정하고 그것으로 생계를 영위하고 보람을 찾는 삶의 총체적인 문제이며, 개인이나 사회 모두에게 근본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동그라미재단은 모든 사람이 일자리와 관련해 스스로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상호 협력의 장을 마련할 것입니다.

또한, 동그라미재단은 기부문화의 확산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누구나 쉽고 즐겁게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기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나눔이 필요한 사람도, 나눔에 참여하는 사람도 수평적 관계 안에서 사회의 긍정적 선순환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저는 재단에 출연하면서 두 가지 “일하는 원칙”을 제안했습니다.

하나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전문가, 혁신가, 실무자, 기부자들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전문성과 진정성을 가진 다양한 사람, 기관, 단체들과 함께 토의하고 함께 성장할 것입니다.

또 하나는 혁신적인 도전을 지원하는 것입니다. 혁신에는 실패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실패에서 배우고 다시 발전하려 할 때 더 많은 성과를 이뤄낼 것입니다. 재단은 일을 한 크기보다는, 그것으로 만들어낸 변화의 크기로 평가 받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한 사람의 기부자로서 동그라미재단이 이 사회의 변화에 기여하는 소중한 재단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합니다. 재단이 나아가는 길을 지켜봐주시고,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동그라미재단 출연자 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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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인터넷에 안철수를 음해 비방하기 위해 허위사실 유포한 상습적인 범죄 글이 자주 목격됩니다. 그러한 왜곡비방 음해의 글들은 거의 대부분이 허위사실입니다. 안철수가 워낙 깨끗한 삶을 살아왔기에 불법이나 부도덕한 행위가 발견되지 않자 온갖 흑색선전 마타도어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주로 지난 대선 당시 만들어낸 허위 왜곡 비방글입니다. 강용석은 깔 게 없자 이것저것 짜깁기해 안철수의 거짓말 시리즈라면 허위비방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조선일보가 노무현 대통령을 음해 비방할 때 자주 써먹던 수법인 '거두절미'식 왜곡 비방 글입니다. 황장수는 한 발 더 나아가 안철수의 업적 그 자체를 부정하며 카더라통신 수준의 루머를 만들어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허위 비방을 일삼았습니다.

 

극렬 보수언론(찌라시)는 근거없는 허위비방 글을 바탕으로 안철수에 십자포화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당시 상황에 대한 내용은 <안철수 신상털기 헐뜯기 언론의 이중잣대 융단폭격, 천박한 흉기인가?> 글을 참고하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기레기의 만행이었습니다. 사실 확인도 없이 안철수 비방에만 혈안이 되던 시기입니다.

 

당시 경향신문은 <안철수 신상털기 진원지를 아십니까>라는 기사를 통해 악의적 허위비방의 진원지에 대해 상세히 보도한 바 있습니다. 안철수는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던 시절인데 새누리당을 비롯 수구보수 진영과 보수찌라시언론은 안철수의 출마를 막기 위해 야만적 허위왜곡 비방에 혈안이었던 것이지요. 이러한 기레기언론의 난도질에도 안철수는 털어도 불법이 등이 전혀 발견되지 않자 거짓말 논란, 카더라 루머 등을 양산해 흠집내기 여념이 없었습니다.

 

안철수 신상털기 진원지를 아십니까 (경향신문 보도 중에서 발췌)

 

황장수의 < 안철수, 만들어진 신화 > '안철수 의혹'의 또다른 진원지는 소위 '찌라시'라고 말하는 정보지다. 정보지에 나오는 안 원장과 관련한 의혹들은 대부분이 팩트를 찾기 힘든, 실체가 없는 것들이다. 룸살롱 파문도 정보지에서 비롯됐다.

안철수 원장과 관련한 의혹이 기사화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일부 언론들이 인터넷 상에 떠도는 문건 등을 바탕으로 '이런 논란이 있다'는 식으로 보도한다. 이를 다른 언론들이 받아 보도하면서 뉴스가 확대된다. 이와 관련, 일부 인사들은 언론사 기자들과 직접 접촉해서 안철수 원장 관련 자료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안철수를 허위비방하는 내용이 수구보수만의 추악한 행태가 아니었습니다. 일부 극렬 문재인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암암리에 안철수를 흠집내기 위한 허위비방 글이 양산되기 시작했습니다. 황당한 일이지요. 단일화 국면은 물론 대선 이후에도 안철수를 음해 비방하는 허위사실 유포 글이 인터넷에 양산됐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혐오하는 일베나 박사모 게시판의 황장수 등 왜곡비방글을 퍼다가 안철수를 음해비방하기도 했습니다. 안철수는 문재인에게 대통령 후보 양보를 하고 매서운 강추위 속에서도 선거운동을 해주었는데 되레 안철수를 허위비방하는 글을 만들어 퍼뜨리다니 배은망덕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 근거없이 안철수를 선거 조작과 연루시킨 허위사실 유포 글은 명백한 범죄행위

 

그 중 대표적인 허위비방 글이 <안철수업체 직원 폭로 "모든 선거가 조작>과 같은 형태의 음모론식 글입니다. 제목에 안철수라는 이름을 넣었지만 내용을 살펴보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짜깁기 글에 불과합니다. 안철수업체 직원이 누구인지 실체도 없는 글입니다. 안철수가 창업한 안랩 직원의 폭로인가 싶은 제목인데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IT보안업계의 누가 카더라식으로 한 후 억지로 안철수 이름을 끼워넣은 제목으로 허위 낚시를 한 글에 불과한 아주 비열하고 추악한 행태의 글입니다.

 

 

필자는 과거 안랩에 10년간 근무한 적이 있어 안랩은 물론 IT보안업계 벤처업계 등에 대해 소상하게 잘 아는 편입니다. 저런 허위비방 글을 보면 단번에 거짓으로 꾸민 음해 흑색선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랩은 수개표 등과 전혀 무관한 업체이기도 하고 상식적으로도 중앙선관위가 전혀 무관한 업체이자 경쟁상대 대선후보였던 사람의 업체에 맡길 수 없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허위사실 유포 글을 만들어 안철수에 대한 허위비방을 하는 것일까요? 필자가 보기엔 문재인이 박근헤에 대선 패배한 후 멘붕상태의 지지자들의 허탈감을 다른 곳으로 회피하기 위한 누군가의 공작이 아닌가 의혹을 갖습니다. 어떻게든 이명박과 엮어 안철수를 음해비방하는 방식의 또 다른 행태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더럽다고 하더라도, 문재인을 도와준 안철수에게 감사는 못할 망정 오히려 패륜적 허위사실 유포 공격을 일삼는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람 먼저, 그리고 예의가 기본인 사람이라면 이런 짓을 할 수 없을텐데 말입니다.

 

얼마 전에 어떤 분이 필자에게 물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안철수가 억울하게 허위비방 공격을 당하는 건 충분히 아는데 실제 인터넷에 퍼진 허위왜곡 글에 대해 확실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IT나 기술에 무지한 일반 사람들은 그런 허위비방 글에도 속아서 믿는 경우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좀 어이가 없긴 했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일반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일부러 그럴 듯 하게 허위 글을 만들어 퍼뜨리며 속는 사람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조금만 유심히 봐도 허위비방 글인데 제목만 대충 보고 짜깁기된 내용이 어려워 그냥 그렇게 믿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겠다는 것이지요.

 

안철수와 안랩을 허위비방한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고라 등을 비롯 인터넷 몇군데 올라와 있습니다.

안철수업체 직원 폭로 "모든 선거가 조작"... 진실은

http://blog.daum.net/hi-carrot/2226185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articleId=2665780&bbsId=D115&pageIndex=1

 

안철수업체 직원 폭로 "모든 선거가 조작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2639964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122649 

필자는 더욱 확실히 하고자 안랩에서 초창기부터 최근까지 CTO(최고기술책임자)로 근무한 바 있고 국내 최고 권위의 보안전문가인 조OO 전 CTO에게 확인을 요청했습니다. 조OO 전CTO는 1996년 안랩 창업 초기부터 2013년 말까지 안랩에 근무했으니 무려 17년간 보안분야 전문가로 유명한 분입니다. 필자는 해당 글이 확실히 허위비방 글인지 알았지만 혹시나 추가적으로 재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메일로 문의를 했는데 다음과 같은 답변이 왔습니다.

 

2013년까지 안랩 17년 근무, 국내최고 IT보안전문가 전 CTO "상식을 넘은 소설"

 

<조OO 안랩 전 CTO 답변 내용 1996년 ~ 2013년 근무>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을 엮은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안랩에 있을 때 대선과 관련하여 연구소에서 지원한 건은 한 건도 없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온 허위비방 글) 내용조차 이해를 못하겠어요.

나 몰래 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탐진강)님이 더 잘 알테고...

선개 개표와 안철수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겠어요.
상식을 넘은 소설이네요.
(선거 조작과 관련하여) 안철수와 연결한 것과 안랩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완벽한 소설입니다.

조OO

 

그렇습니다. 안랩 초창기부터 근무하며 우리나라 정보보안 분야 최고 권위의 전문가이자 전 CTO조차 이해할 수 없는 황당한 짜깁기로 소설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소설도 아닙니다. 그냥 짜깁기로 안철수를 흠집내기 위한 쓰레기글 수준입니다. 소설도 그럴 듯 해야 하는데 아예 글 자체가 누가 봐도 쓰레기 비방 글이라는 것을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안철수를 엮어보려고 과거 코코넛이 수개표 관련 기업인 것처럼 거짓을 꾸며낸 경우도 있었습니다. 코코넛은 보안관제(외부 인터넷 등에 대한 보안 모니터링 회사) 전문기업이지 수개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회사입니다. 코코넛은 2007년 안랩과 합병해 지난 대선 당시 존재하지도 않는 회사입니다. 아무리 정치가 추악하다고 해도 이렇게 까지 허위사실 유포로 안철수를 헐뜯고 물어뜯기 위해 혈안인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18대 대선 비롯 총선, 지방선거 등 이명박 정권 보안관제는 이글루시큐리티 담당

 

그렇다면,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관리위원회가 채택한 실제 보안관제 담당회사는 어디였을까요? 이글루시큐리티라는 보안회사입니다. 이글루시큐리티는 2008년 18대 총선 당시도 보안관제를 담당한 바 있습니다.(참고 기사 : 이글루시큐리티, 18대 총선 보안관제 업무 완료

 

이명박 정권 당시 G20 등 국가 주요 행사의 보안관제는 이글루시큐리티가 담당했던 것입니다.(기사 참고 : 이글루시큐리티, 'G20 보안관제서비스' 성공적 완료) 조금만 뉴스 검색을 해봐도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

 

2012년 18대 대선 당시 이글루시큐리티 관련 기사입니다. <기사 링크: 대선 D-2, 선거에 숨겨진 IT 기술은> 제목의 기사를 찾아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18대 대통령 선거가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중략)...선관위 보안관제를 담당이글루시큐리티는 대선 보름 전부터 24시간 비상 근무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이글루시큐리티 관계자는 “다수의 사이버 보안관제 요원들이 국가적 중대사를 안전하게 치르겠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다”며 “디도스 공격뿐 아니라 다른 유형의 공격에 대해서도 사전 모의 훈련과 취약점 점검 등을 통해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이글루시큐리티는 이명박 정권 당시 선관위 보안관제 담당 공로로 표창장도 받았습니다. 해당 기사입니다. <기사 링크: 이글루시큐리티 조창섭 상무, ‘2010 정보보호 유공 장관표창’ 수상>이란 제목 기사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이글루시큐리티 조창섭 상무는 '2007년 제 17대 대통령 선거'·'2008년 18대 총선'·'2010년 전국동시지방선거'뿐 아니라 120여 명의 각국 기업 CEO가 참석한 'G20 비즈니스 서밋' 등 주요 국가의 보안관제서비스 업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공로를 인정받아 이번 표창을 수상하게 되었다."

 

안랩은 허위사실유포 및 명예훼손하는 왜곡비방 글 범죄자에 강력 법적조치해야

 

필자는 강력히 주장합니다. 안랩을 연루시킨 허위사실 유포 글인 만큼 안랩은 허위비방 글에 고소고발 등 강력한 법집행을 해야 합니다. 명백한 허위사실유포죄 및 명예훼손죄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착한 기업을 왜곡음해하고 창업자를 욕되게 하는 허위비방 글에 관용을 베풀어선 안되다고 생각합니다. 창업 이래 원칙을 지키는 회사가 안랩입니다. 사이버 보안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이버 세상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해 명예훼손을 저지르는 악성 범죄자에게 법의 원칙을 지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안철수 의원실도 명백한 허위사실유포 등에 강력한 법적 조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을 필자는 원합니다. 안철수를 지지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잘못된 것에 분노하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합니다. 더욱이 필자는 그러한 사실 여부에 대해 잘 알고 있는데 침묵하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안철수에 대해 인터넷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 비방 글 대부분은 허위사실 유포 글이거나 왜곡 비방 글 뿐입니다. 안철수가 무엇을 그렇게 크게 잘못한 것이 있습니까? 단지 자신의 편이 아니라고 증오와 적개심으로 허위 비방하는 건 온당치 않습니다. 정의와 상식의 세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되레 허위사실 유포 및 비방의 글에 혈안인 범죄자가 되어서야 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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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박사가 안정되고 미래가 보장된 의대 교수,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아무도 가지 않는 미지의 정보보안 소프트웨어 역사의 시작을 내딛던 당시로 돌아가 봅니다.

 

혹자는 결과로 쉽게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라면 안철수 박사와 같은 선택을 당시에 할 수 있었겠습니까?

 

어떤 이는 안철수 박사가 해군 대위 제대 후 당시 단국대에서 복직을 받아주지 않아 백신연구소를 설립한 것처럼 허위 왜곡 비방하는 인간쓰레기 짓을 하기도 합니다. 안철수는 27세라는 당시 최연소 의학박사에다가 단국대 의대 최연소 학과장까지 맡은 전도유망한 청년 의사였습니다. 의사를 하려면 단국대 의대는 물론 어느 대학 의대 교수든 의사든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대학마다 의대 설립이 많았고 의사를 원하는 병원이 많았던 시기입니다. 아무리 안철수 헐뜯기 위해 혈안이라고 하더라도 거두절미 왜곡해 안철수 박사를 허위 비방하는 행태는 유치하고 추악한 행태입니다.

 

그렇다면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 설립 전 안철수 박사는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1988년 V3 무료 백신 개발 후 안철수 박사는 혼자서 의대 공부와 백신 개발을 동시에 해야 했습니다. 무려 7년 동안을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개발을 계속해 왔습니다. 백신은 아무런 보상이 없는 사회 공헌이었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80년대 민주화 투사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사회와 역사에 기여하는 방법이 오직 짱돌들고 화염병던지는 일만 있습니까? 안철수 박사는 의대 시절에 컴퓨터 무료 백신 개발 배포는 물론 서울 구로동 등 무료 의료 봉사, 산간오지 무의촌 진료 활동 등 의대생으로 여러 사회봉사 활동을 펼쳤습니다. 단지 외눈박이 열등감으로 안철수 박사의 사회공헌을 애써 무시하는 비겁한 짓도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안철수는 혼자서 백신 개발, 테스터, 기술지원, 고객지원 등 일당백의 일을 해야 했습니다. 1994년, 그는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컴퓨터 바이러스와 백신의 불모지인 대한민국에서 당시 참고 자료도 조언해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안철수 박사 혼자 뿐이었습니다. 혼자 부딪히고 혼자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습니다. 혼자 깨지며 뒹굴며 하나하나 터득해가는 방법 밖에 없었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그렇게 홀로 컴퓨터 바이러스와 처절하게 싸우면서 만든 백신으로 인해 그 당시 사용자들은 예루살렘, 미켈란젤로 등 컴퓨터 바이러스가 출몰할 때 마다 무료로 치료할 수 있는 혜택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PC통신에서 V3 업데이트를 기다리는 사용자들이 넘쳤습니다. 안철수는 PC통신에선 영웅이었습니다. V3 백신은 구세주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 안철수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의사도 무료 백신도 둘 다 계속 다할 수는 없었습니다. 의사의사 의대 교수로서 후배 학생까지 받아야 했던 시기였기에 밤에는 무료 백신 개발에 몰두한다는 것은 도리가 아니었습니다.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했습니다.

 

해군 대위 제대 후 의대 교수 발령을 앞둔 시점에 안철수 박사는 전보다 더한 책임을 안고 학생들과 후배 교수들을 챙기며 의학을 연구할 것인지, 아니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연구해 안전한 사이버 환경에 매진하며 사회 공익에 헌신할 것인지 선택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철수는 오래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 길이 얼마나 험난할 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는 배수의 진을 쳤습니다. 안정적인 의사 및 의대 교수직을 버리고 백신 프로그램 개발자의 길을 가겠다는 결심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안철수는 당시 결혼해 딸 아이도 둔 가장이었습니다.  과연 당신이 안철수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안정된 의사를 버리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아무도 하지 않는 백신연구의 길을 갈 수 있었을까요?

 

안철수 선택의 순간, 안정된 의사 대신 혈혈단신 공익 백신연구소 설립...아무도 가지 않는 대한민국 정보보안 소프트웨어 역사의 시작(1) - 탐진강의 리얼스토리 - 안철수 팬클럽 안사모 : 안철수의사2.jpg

 

안철수는 자신의 편안한 삶 보다는 사회가 더 소중했습니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었고 누군가는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가시밭길이라고 선택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안정적인 일을 선택하지, 안철수와 같이 무모한 선택을 하지 않

 

습니다. 그러나 안철수는 안전지대에 머물기 보다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사회에 대한 무한한 공헌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토록 오래 힘들게 공부해 얻었던 의대 교수로서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 놓았습니다.

그러나 안철수가 두려움이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 아내와 딸 아이의 가장으로서 책임감이 두 어깨를 짓눌렀습니다. 당장 돈벌이도 안되는 일에 모든 것을 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수입으로 살아야 했고 가장인 안철수는 돈도 안되는 무료백신 개발 배포, 즉 사회공헌에만 아내가 벌어다 준 돈까지 쏟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안철수는 밀려오는 공포 앞에 그래도 긍정적으로 되는 쪽으로 생각했습니다. 혼잣말로 자신을 다독였습니다.

"결국 모든 일은 인간이 이뤄낼 수 있는 '하나의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994년 7월, 안철수 박사는 비영리법인 형태의 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설립 계획을 세웠습니다. 자신이 개발한 프로그램 소스와 자료를 모두 무상으로 제공하는 조건으로 대기업과 정부기관을 상대로 설득에 들어갔습니다. V3 백신으로 돈벌겠다는 것이 아니라 안철수 박사는 오로지 사회에 무료 백신을 배포해 유지하는 공익연구소 개념이었습니다.

 

'아니, 공짜라면서 연구소가 왜 필요합니까?"

 

컴퓨터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 개발은 정보보안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가는 길이라 믿었던 안철수 박사와 기존 대기업과 정부기관 기득권 결정권자들의 생각에는 간극이 너무 컸습니다. 너무나 차가운 반응에 안철수는 시작부터 난관이었습니다. 한숨이 절로 나올 만큼 주위 반응은 차갑고 안철수의 꿈은 시작조차 못할 것만 같았습니다.

 

(다음 편에 이어 이야기를 계속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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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컴퓨터 바이러스!?"

1988년 5월,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에 바쁜 어느 날이었다. 세운상가를 지나던 안철수는 영어로 된 컴퓨터 잡지를 본 후 깜짝 놀랐다.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영어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당시 세계최초의 PC용 바이러스로 알려진 브레인 바이러스에 대한 영문 뉴스 기사였다.

 

(브레인은 1986년 파키스탄에서 처음 만들어져 인터넷이 없던 시기로 오래 시간에 걸쳐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플로피 디스크를 타고 조금씩 감염되던 터라 몇년이 걸려 국경을 넘기도 했던 시절이다. 브레인은 대중화된 개인 PC용 바이러스는 세계 처음 등장한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것이 정설이다. 그 전에도 실험실 수준의 컴퓨터 바이러스가 존재했으나 PC로 감염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생물학적 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의대생 안철수에게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단어는 전율을 일으켰다. 너무나 신기하고 탐구심을 자극했다. 곧장 하숙집으로 돌아온 안철수는 당시 (초기버전) IBM컴퓨터를 켰다.

(의대생 안철수는 어린 시절부터 과학에 관심을 많아 라디오를 조립하는 등 취미 수준을 넘었다. 친구가 컴퓨터를 하는 모습을 본 후 컴퓨터로 의학 연구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컴퓨터기계어를 비롯한 프로그래밍을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더누 시기였다.)

 

"내 컴퓨터에 컴퓨터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니!"

 

안철수는 컴퓨터를 켜는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플로피디스크를 통해 브레인 바이러스가 침입해 '브래인'이라는 이름을 띄우고 있었던 것.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는 원형 이외 한국 변형도 나타나 그때마다 백신 개발을 해야 했다>

 

안철수는 엄청난 호기심이 뇌를 자극했다. 브레인과 안철수 두뇌의 대결이 시작됐다. 어릴 적부터 눈에 띄는 전자제품은 다 뜯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안철수의 진가가 드러난 셈이다. 브레인 바이러스가 상대를 잘못 만났는지 모른다.

 

마침 안철수는 기계어 프로그래밍을 혼자 공부해둔 덕분에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대강의 원리를 파악하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브레인 바이러스의 원리를 파악하자 안철수는 바이러스 치료에도 자신감을 얻었다.

 

하루 이틀 사이의 일이었다. 그렇게 안철수는 브레인 퇴치 백신을 처음 개발했다. 의대생이었기에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제의 이름도 그냥 '백신(Vaccine)'이라 짓게 됐다. (나중에 버전이 달라지며 'Vaccine3'가 되었을 때 짧게 V3라 부르게 됐는데 지금의 V3 브랜드의 시초다.)

 

안철수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는데 아무도 컴퓨터 바이러스 개념을 이해를 못했다. 어떤 친구 컴퓨터에도 브레인 바이러스가 감염된 것을 알고 치료해 주기도 했다.

 

"브레인 바이러스를 분석했어요. 치료방법도 찾았어요."

안철수는 자신이 만든 백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즐겨보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등용문이라 할 수 있는 당시 '마이크로소프트웨어'에 알려줬다. 널리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백신은 그렇게 세상에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 7월호에 브레인 바이러스에 대한 기사가 실리고 8월에는 아예 바이러스 방역센터 운영에 들어갔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브레인 바이러스 퇴치에 나선 것이다. 이후 의대 박사 과정의 안철수의 삶은 낮에는 의대 공부, 밤에는 백신 개발의 나날들이 이어졌다. 잠자는 시간이 아까워 전등을 발명한 에디슨처럼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가며 그렇게 하루 하루를 보냈다.

 

    ▲ 어느 네티즌이 공개한 초등학생 당시 안철수 박사로부터 받은 편지 모습

 

사용자가 바이러스 샘플을 디스켓에 담아 잡지사에 보내면 안철수는 잡지사를 방문해 그것을 찾아왔다. 한달여를 씨름해 백신을 개발하면 그 프로그램을 디스켓에 담아 잡지사로 가져갔다. 의대 박사 학위를 따고 해군 군의관으로 군대를 거치는 동안 무려 7년 동안 아무런 보상이 없는 무료 백신 개발과 치료를 했던 것이다.

 

혼자서 개발, 테스터, 고객지원, 기술지원 등을 다 해내야 했다. 간혹 사용자가 집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한 밤중에 전화로 치료 방법을 물어 밤을 새우기도 했다. 어떤 경우는 30분 넘게 설명을 했는데 "잠깐만요. 이제 컴퓨터 켤테니 다시 설명해 주세요."라고 하는 사용자도 있었다. 이메일은 물론 일반 종이 편지로도 문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그야말로 초인적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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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박사가 안랩(당시 안철수연구소) CEO 시절에 전직원에 주식을 무상 분배한 이야기에 대해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 기업의 사장이 주식을 직원에게 무상으로 나눠준다는 것은 당시도 파격적이었지만 지금도 거의 보기 드문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2000년 당시로 돌아가 볼까요. 과거 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이 지은 책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라는 책에서 발췌한 내용과 제 생각을 보탰습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2000년 10월 13일, 안철수연구소의 전직원이 모인 자리에서 안철수 사장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꺼냈다. 순간, 직원들은 뜻밖의 말에 무슨 의미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더러는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사실 안철수 박사는 샤이인 편이라 '사랑합니다'와 같은 표현을 잘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안철수연구소는 삼성동 삼화빌딩에 입주해 있었는데 100여명을 수용할 공간이 없어서 전직원이 모일 때면 근처 다른 회사의 대회의실을 빌려 쓰곤 했다. 그날도 다른 회사 대회의실을 빌렸다.

 

안철수 사장의 말이 이어졌다.

"지난 5년간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감회가 새롭습니다."


 

그러면서 안철수 사장은 회사의 존재의 이유와 핵심가치, 그리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기업의 사장이 늘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해 전직원 행사에서 이야기한다는 자체가 놀랍지 않은가? (왜 안철수 사장이 함꼐 사는 사회에 대해 늘 말하는지는 다음에 안랩의 창업 당시 이야기를 다시 하기로 한다.)

 

 

그러더니, 안철수 사장은 폭탄발언을 했다.

"저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여러분이 가장 소중합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주식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무상으로 나눠주기로 했습니다."

 

이 보다 더한 표현이 어디 있겠는가? 사장이 전직원 앞에서 수줍게 떨린 목소리로 주식 무상 분배를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직원들의 그런 사장의 말에 숙연해졌다. 감동이 전율처럼 흘렀다.

 

한 직원의 당시 회상이다.

"떨리던 목소리, 쑥스러워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해요. 자신이 가진 주식을 공짜로 직원들에게 주면서도생색을 내거나 큰 일 한 듯 선언하는 게 아니라 속삭이듯 나지막이 말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어요. 그 일은 제 자신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반성이 되었고 회사에 대한 역사의식이 생기는 계기가 됐습니다."

 

과연 우리나라에 이런 창업자, CEO가 있었나요? 안철수 박사는 늘 한결 같았습니다. 직원들을 먼저 생각하고 CEO도 구성원 중 하나로 역할이 다를 뿐이라고 여겼습니다. 수평적 리더십이지요. 요즘같은 스마트 시대에 걸맞는 리더십이지요.

 

안철수 사장의 무상 주식 배분 소식은 직원들끼리만 알고 대외적으로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 방송사가 이 소식을 입소문을 통해 듣고 취재에 나섰습니다. 안철수 사장은 굳이 자랑하고 싶지 않아 인터뷰를 거절했습니다. 그러자 방송사는 회사로 찾아와 인터뷰를 사정했습니다. 안박사는 술래잡기 하듯이 피했으나 결국 방송사 기자에 붙잡혀 짧게 코멘트를 할 수 밖에 없었지요.

 

 안철수의 수줍은 사랑, 2000년 당시 전직원에 주식 무상분배했던 이유 - 탐진강의 리얼스토리 - 안철수 팬클럽 안사모 : 안철수콘서트.jpg

그런 사람입니다. 안철수 박사는 직원들이 소중했습니다. 그에 대한 보답 차원에서 무상 주식 분배를 한 것입니다. 혹자는 주식 무상 분배가 뭐 대단하냐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안철수 사장 이전에 그런 창업자나 사장이 얼마나 있었나요? 물론 지금도 드문 일이지만요. 아무나 할 수 있는게 아니란 것이지요. 또 주식 무상 분배하고도 안철수 박사는 생색을 내지도 않고 되레 수줍게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주식 무상 분배를 한 것은 두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안철수연구소(현 안랩)를 영혼이 있는 기업의 아름다운 도전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또,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준 것에 대한 보상 차원인 동시에 조직 확대에 따른 핵심가치 공유를 당부하는 안철수식 직원 사랑의 모습이란 것입니다.

 

안철수 박사가 지금껏 우리나라 기업사에 드문 존재라는 것이지요. 미국식 천민 자본주의 기업만 보다가 안철수 박사의 모습을 생각하니 신선하지 않으십니까? 이건 사실 안철수 박사의 진면목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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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박사의 성공비결에 대한 2001년 어떤 잡지사 인터뷰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에 제가 본 사실을 추가한 글입니다.

 

시간을 정복한 사나이, 안철수


안철수 박사의 시간 활용은 가히 초인적일 정도다. 의대 재학 시절 자신의 컴퓨터에 침입한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 백신 개발에 도전한 이후, 그는 '의대 공부와 컴퓨터'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전략을 짠다.


“전공 공부에서 뒤진다는 말을 듣기가 싫어서 남들 공부하는 새벽 3시까지는 의학 공부를 하고 그 이후 3시부터 6시까지 컴퓨터와 씨름했습니다. 7년 동안 하루 3시간씩밖에 안잔 것이죠.”


그 결과 서울대 의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도 따고 백신 개발에도 성공했다. 당시 27세 최연소 박사였다. 일반 사람은 의대 공부하기도 벅찬데 의학박사에 무료 백신 V3 개발을 동시해 해낸 것이다. 신종 바이러스의 지속적인 출몰에 이에 대응한 백신 개발을 무려 7년간 업데이트해야 했다. 1988년 V3 개발, 2005년 당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현 안랩) 창립 때 까지 시기이다.


“회사를 설립한 후에 유학을 가서는 회사 경영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이틀에 한 번밖에 못잤어요.”

 

안철수연구소 창업 후 안철수 박사는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낮에는 공부, 밤에는 회사 일을 해야 했다. 2007년 한국으로 귀국할 때 그는 쓰러졌다. 오랜 피로가 쌓여 급성 간염이 발생한 것. 거의 6개월간 병마와 싸워야 했다. 초인적인 안철수 박사도 사람이었던 셈이다. 2년간 이틀에 한번 밤을 새울 정도였으니 오죽 했겠는가?

 


안철수 박사는 결코 자투리 시간도 놓치는 법이 없다.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도 그에게는 소중한 재산이다. 2001년 당시 안철수연구소는 수서에 사무실이 있었다. 빌딩의 엘리베이터가 워낙 느려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당시 안철수 사장은 잠시 기다리는 시간에도 책을 읽었다.


“우리 회사 건물 엘리베이터는 10분 이상 기다려야 탈 수 있거든요. 그 시간에만 책을 읽어도 한 달에 두 권은 읽어요.”

 

사실 필자도 안철수 박사의 방식으로 책을 읽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 타고 이동하는 시간과 엘리베이터 기다리는 시간 등을 활용했습니다. 블로그를 열심히 할 때는 하루 4시간만 자면서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가 봅니다. 중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지하철은 잠자는 시간이 됐습니다. 시간을 정복하기는 정말 초인적이어야 하는가 봅니다. 그런 점에서 안철수 박사는 기네스북에 기록될 정도입니다. 안철수 박사의 열정과 도전정신이 만든 성공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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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월 11일. 무슨 날일까요? 빼빼로데이라구요? 아닙니다. 11월 11일은 '가래떡데이' 날입니다. 또한 우리나라 정부가 지정한 공식 기념일, 농업인의 날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빼빼로데이를 떠올립니다. 우리의 선조들과 농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날이 상술이 짙은 빼빼로데이에 자리를 빼앗긴 듯 하여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그런데 11월 11일을 '가래떡데이'로 시작한 사람이 놀랍게도 안철수 박사라는 것을 아시나요? 가래떡데이 유래는 농촌이나 쌀과 전혀 관련이 없는 안랩(안철수연구소)에서 2003년 11월 11일, 처음 '가래떡데이' 행사를 시작하면서 전국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안랩은 지금까지 매년 11월 11일에 가래떡데이 행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한편 농림부도 지난 2006년부터 가래떡데이를 공식 지정해 국가 차원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가래떡데이를 처음 시작했던 당시로 돌아가 볼까요. 2003년 당시 안랩의 한 직원이 11월 11일을 상업성짙은 빼빼로데이 대신에 우리 농촌과 농민을 생각할 수 있는 '가래떡데이'로 하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11월 11일의 숫자가 긴 막대 모습의 전통 흰떡인 가래떡을 4개 세워놓은 모양과 비슷한 데서 착안했기 때문이었지요. 당시 안철수 박사는 안랩의 창업자이자 대표이사  CEO 사장이었던 시절입니다. 안철수 박사도 좋은 취지에 공감해 그 해 11월 11일 '가래떡데이' 행사를 안랩 전직원과 함께 실시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안철수가 '가래떡데이'를 매년 전직원 행사로 선택한 이유

안랩이 우리나라 사이버 세상을 지키는 토종보안업체이듯이 '가래떡데이'는 어쩌면 필연적 만남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IT 보안업체가 가래떡데이를 실시한다는 데 놀랍기도 하면서 신기하다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IT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통하면 IT 기술을 떠나 가래떡데이의 사례와 같이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가래떡데이 유래> 안철수 박사가 2003년 가래떡데이 처음 실시 당시 분위기는?

당시 분위기를 담은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다음은 2003년 당시 매일경제에 보도됐던 내용입니다. 


빼빼로요? 가래떡데이입니다
◆2030 리포트 / YOUNG & COOL◆ 

"가래떡데이를 아세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는 들어봤어도 가래떡데이는 처음 들어보신다고? 그럴 만도 하다. 바이러스 백신업체 안철수연구소(www.ahnlab.comㆍ대표 안철수)만 의 '데이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가래떡데이는 '11월11일' 빼빼로데이를 우리식으로 바꿔 놓은 것. 


다소 '상업성'이 풍기는 날을 전통의 우리 것을 느껴보는 날로 개조했다.


이날 300여 명 안연구소 직원들은 모두 가래떡을 달콤한 조청에 찍어먹는 행운 을 누렸다. 행사를 위해 특별 주문된 가래떡은 무려 50㎏. 조청도 20㎏이 동원 됐다.


안철수 사장은 회사 곳곳을 편하게 돌아다니며 즉석 '가래떡 회의'를 열었다.



안연구소는 이처럼 특별한 날을 자기식으로 톡톡 튀게 개조하는 '데이 이벤트' 로 친목을 도모한다.


◆닭 대신 아이스크림=복날 이벤트도 눈길을 끈다. 초복 때는 아예 닭 대신 아이스크림 파티를 열었다. 조선시대 '빙표(氷票)' 문화를 현대적으로 개량한 것. 궁중에서는 벼슬아치에게 빙표를 주고 장빙고(얼음창고)에서 얼음을 타 가 게 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칠월칠석은 '이쁜이떡 데이?'=이 밖에도 기발한 데이 이벤트가 많다. 대표 적인 게 칠월칠석 '이쁜이떡 데이'. 일반화된 발렌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처럼 아예 이쁜이 떡을 주고받는 날로 만들어버린 것.


연말 동지 때는 '팥죽'파티가 준비된다. '팥죽데이'는 그대로 전통을 따른 것. 전 직원에게 팥죽 한 그릇씩이 배달될 예정이다.


비정기적이긴 하지만 독감 예방접종데이도 업계에서는 화젯거리다. 의사 출신 안철수 사장이 만든 세계적인 '온라인 바이러스' 치료전문 회사가 '진짜' 백신 을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사장은 "즐겁고 신명나는 직장문화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기업 생산성 도 높아진다"며 "직원들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 고 말했다.


▲2002년 경제정의기업상 수상 당시 안철수 사장의 모습


2003년 당시 약 300여 명 안랩 전 직원들은 가래떡을 달콤한 조청에 찍어먹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누렸습니다. 가래떡데이 행사를 위해 특별 주문된 가래떡은 무려 50㎏이었습니다. 조청도 20㎏이 지방 특산지에서 공수할 정도로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그 당시 안철수 사장도 회사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즉석 가래떡 회의를 열기도 했지요. 출출해지는 오후 4시30분 팀별로 모여 가래떡을 조청에 찍어 먹으며 덕담을 나누는 시간이지요. 철수 박사는 즐겁고 신명나는 기업문화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기업 생산성도 높아진다고 여겼고, 사장도 직원들이 역할이 다른 동료로 여길 수 있는 구성원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직원들을 배려하는 수평적 리더십이지요. 


안철수의 수평적 리더십과 창의적 조직문화가 세상을 바꾸다


안랩에서 가래떡데이가 처음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안철수 박사의 수평적 리더십이 큰 역할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가래떡데이와 같은 창의적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자율적이고 유연한 기업문화가 바탕이 되었겠지요. IT 보안업체이지만 우리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이 가래떡데이 행사로 나타난 셈입니다. 결국 안철수 박사의 리더십이 가래떡데이를 탄생할 수 있게 했고 이제는 정부 차원에서 실시하는 행사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안랩은 2003년 이래 지금껏 10년째 가래떡데이 행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 안랩은 10번째 가래떡데이를 맞아 소셜 네트워크 상에서도 '가래떡데이'의 좋은 의미를 나누는 "함께 나누는 가래떡데이 이벤트"를 진행해 일반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안랩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http://facebook.com/AhnlabOfficial)와 트위터 (http://twitter.com/AhnLab_man)를 통해 이벤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추첨을 통해 우리 농산물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는 떡케잌을 증정합니다. 우리 것을 소중히 하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모이면 좋겠습니다. 


한편, 11월 11일은 가래떡데이 이전부터 농업인의 날이었습니다. 왜 농업인의 날이 되었을까요? 농업인의 날이 11월 11일인 이유는 한자 11(十一)을 합치면 흙 토(土)가 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흙이 세 번 겹치는 11월 11일 11시(토월 토일 토시)에는 '흙을 벗삼아 흙과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농사 철학이 담겨있습니다. 원래 농업인의 날은 원홍기 전 축협 대표 등의 주도로 1964년부터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원홍기 대표가 살던 강원도 원주시 지역을 중심으로 벌어지던 행사가 1996년에는 정부 지정 공식 기념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래떡의 유래와 의미는?   

가래떡은 멥쌀가루를 반죽해 쪄서 길쭉하게 뽑아낸 떡으로‘가래’라는 이름의 유래는 두 가지 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는 '가래'라는 단어에 ‘떡이나 엿 따위를 둥글고 길게 늘여 만든 토막’이라는 뜻이 있는데 가래떡의 모양이 이와 같아서 가래떡이라 한다는 설과 농기구 '가래'에서 유래했다는 것입니다.

농기구 '가래'는 삽날 양쪽에 긴 줄을 매달아 한 사람은 삽자루를 잡고, 양쪽 두 사람은 긴 줄을 당기면서 흙을 파거나 고르는 기구입니다. 여기서 줄을 ‘가래줄’  이라고 하고, 떡을 가래줄 모양처럼 길게 손으로 비벼서 만들었다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습니다.


설날에 가래떡을 썰어 떡국을 끓여먹는 것은 길게 늘어진 가래떡처럼 가족들이 오래살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또한 떡국에는 순백의 떡과 국물로 지난해 묵은 때를 씻어버리라는 의미가 있고 가래떡의 둥근모양이 동전을 닮았다고 하여 재복을 바라는 마음도 담겨있습니다. 

안철수 후보가 11일 농민을 비롯 일반인과 함께 가래떡 회의를 갖는다면?

올해 11월 11일 가래떡데이는 일요일입니다. 바로 내일입니다. 특정 업체의 상술이 짙은 빼빼로데이 대신에 우리 농촌과 농산물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가래떡데이'로 11월 11일의 의미를 찾았으면 합니다. 일요일인 만큼 가족과 함께 떡볶이 파티를 즐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저희 집은 주말에 아이들과 떡볶이를 함께 즐기는 시간을 자주 갖곤 합니다. 11월 11일에 떡볶이나 가래떡은 소중한 이웃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느낄 수 있어 더욱 좋겠지요. 

안철수 박사가 가래떡데이 창시자이자 유래였다는 사실에 올해 11월 11일은 더욱 의미가 크기도 합니다. 10년전 벤처업체 사장이었던 안철수 박사는 올해 대통령선거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입니다. 가래떡데이 유래 하나만 보더라도 안철수 박사는 오래 전부터 항상 사회를 먼저 생각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랩의 창업도 사회에 공헌하는 공익연구소 개념이었으니 안철수 박사의 사회에 대한 헌신과 열정은 살아온 길에 계속 이어져 있습니다. 내일 11월 11일 가래떡데이, 안철수 박사가 농민을 비롯한 일반 국민들과 가래떡을 함께 먹으면서 신명나는 세상을 향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안랩의 가래떡데이 행사 장면을 보도한 몇년전 영상 뉴스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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