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0.08.09 내비게이션 믿다 교통사고, 최악 여름휴가 된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51)
  2. 2010.03.31 봄의 향연, 도시 아파트와 텃밭 vs 시골 논밭 풍경 by 진리 탐구 탐진강 (50)
  3. 2010.03.22 3월 춘설, 미인 왕소군과 춘래불사춘 의미 by 진리 탐구 탐진강 (48)
  4. 2010.01.02 겨울 밤에 요강과 낮에 키가 필요했던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46)
  5. 2009.12.23 초등학생 딸이 남자 목도리 뜨개질 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67)
  6. 2009.12.21 1박2일 혹한기 캠프 '예능 아닌 최강 다큐'였다 (강원도 겨울 군대시절 폭설과의 전쟁) by 진리 탐구 탐진강 (84)
  7. 2009.12.08 남자가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 10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9)
  8. 2009.08.19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국장 갖고 흥정말라 by 진리 탐구 탐진강 (82)
  9. 2009.03.19 서울에 온 봄비 전령사, 꽃에 취한 여심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10. 2009.01.14 겨울방학 최고선물 '비닐포대 눈썰매 타기' by 진리 탐구 탐진강 (6)


최악의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을 포함해 시골서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내려가는 고속도로에는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 꼼짝없이 주차장 신세였습니다. 조금 길이 풀린다 싶으면 이내 다시 거북이 걸음이었습니다.

서울서 천안까지 고속도로는 주차장과 같았습니다. 서울에서 천안까지만 무려 7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 후 천안부터는 고속도로로 풀렸습니다. 그런데 추월차선 앞에서 두 대의 자동차가 상대적으로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제 앞에 있는 자동차가 그 앞의 차를 추월해 갔습니다. 저도 앞 차를 따라서 추월해 갔습니다.

그런데 추월당한 첫번째 자동차가 갑자기 제 앞을 다시 추월해 오더니 앞에 급속히 속도를 낮췄습니다. 놀라서 저도 속도를 낮췄습니다. 황당한 일이었습니다. 제 앞에 추월한 두번째 자동차를 제 차로 착각했는지 고속도로에서 행패를 부리는 것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세우고 인마살상용 수색대 시범을 보일까 하다가 아이들이 타고 있어 그냥 참았습니다. 

짜증나는 고속도로 운전은 11시간이 걸려 끝났습니다. 아침 6시 30분에 출발했는데 오후 5시가 넘어 도착했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가끔 운전을 번갈아 해줘 고생을 덜했습니다. 중간에 졸음이 와서 혼났습니다. 아내와 저는 기차를 이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사실 출발 전에 기차 또는 고속버스로 갈까 고민하다가 자가용을 이용한 터라 순간의 선택을 아쉬워 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산골 계곡에서 여름휴가를 보냈습니다. 아이들을 포함한 형제자매와 가족들이 모두 모이니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연례 행사 처럼 매년 휴가 때 마다 온 가족이 일정을 맞춰 모이기 때문에 가족애를 많이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둘째 남동생 가족은 회사 일로 인해 일정을 맞추기가 여의치 않았지만 다행히 막판에 휴가를 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물놀이에 신났고 한우 꽃등심을 장작구이로 먹는 재미에 모두가 즐거웠습니다. 그렇게 휴가를 보낸 저와 형제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출발 전 자동차를 살펴보니 네비게이션이 바닥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폭염에 자동차 유리에 붙여놓았던 네비게이션 거치대의 흡착력이 저하되면서 거치대가 유리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었습니다. 조수석에 앉아있던 가 떨어진 내비게이션을 유리에 다시 붙였습니다. 아침부터 내비게이션이 떨어지다니 불길한 예감이 스쳤습니다.

자동차를 몰고 산굽이를 돌아 큰 도로로 나왔습니다. 돌아가는 국도는 잘 뚫렸습니다. 조금만 더 가면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횡단보도 앞에 잠시 섰습니다. 신호등이 바뀌고 출발을 하는데 갑자기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아내가 놀라는 외마디가 들렸습니다. 조수석을 순간 쳐다봤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다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자동차 정면을 응시했습니다. 앗, 어느새 눈 앞에 다른 자동차가 보였습니다. 급제동 브레이크를 밟았습니다. '쿵' 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멈췄습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면 자동차를 충돌한 것이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떨어지는 것을 본 순간 1~2초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충돌한 차는 택시였습니다. 전적으로 저의 실수라서 할 말이 없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무더운 여름철 고온에 의해 거치대가 떨어져 위험하다

다행히 택시는 범퍼도 그대로 였고 외관상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동차에서 내려서 제 차를 보니 앞 범퍼를 비롯해 한쪽 헤드라이트 그리고 본네트가 일부 손상을 입었습니다. 택시 기사와는 합의를 보고 손해를 배상하기로 했습니다. 택시 기사는 자동차를 몰고 서울에 가서 수리를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사고 현장에 온 견인차 운전사는 정비를 맡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민하는데 아내는 안전하게 정비소에 맡기자고 했습니다.

결국 정비소에 맡기도 고속버스로 귀경을 결정했습니다. 아이들도 있어 안전이 우선인 선택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견적을 받아보니 큰 금액이었습니다. 자동차를 수리하면 집으로 대리운전 기사가 가져다 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됐습니다. 돈으로 따지면 아깝지만, 사람들이 다친 곳 없이 모두 무사하니 다행이라고 아내는 위로를 했습니다.

자동차를 산 지 5년 동안 무사고였는데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낸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 왜 떨어졌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네비게이션이 떨어졌다고 순간 눈을 돌린 운전 부주의도 자책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요즘과 같이 태열 열이 강한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계속되는 기간에는 유리에 붙인 흡착식 내비게이션을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도 얻었습니다. 여름철에 내비게이션이 떨어지는 것은 태양 열에 흡착력이 약해진 이유입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내비게이션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것 같았습니다. 모 신문에 실린 네비게이션으로 인한 기사 한 토막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직장인 배모 씨는 최근 내비게이션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퇴근 길 배씨가 살고 있는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려 모서리를 도는 순간 내비게이션이 떨어지면서 이를 붙잡으려다 앞차와 접촉사고가 났던 것. 배씨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는데 그 짧은 2~3초 사이 그런 사고가 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말했다.

저와 비슷한 사고 유형이었습니다. 배 씨의 경우는 기온이 내려가는 겨울철 내비게이션 거치대가 떨어지면서 이로 인한 교통사고였습니다. 겨울철 거치대가 쉽게 떨어지는 이유는 유리흡착식 거치대는 유리면에 붙이는 흡착판이 차가운 공기로 인해 딱딱해지면 흡착력이 약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이런 상태에서 히터를 틀면 급격한 온도 차이로 흡착판 사이로 공기가 유입돼 더욱 떨어지기 쉽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소비자원이 내비게이션 거치대 10개의 안전성을 테스트한 결과 2년 이상 사용한 4개 제품이 부착력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바 있었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내비게이션 거치대 관련 불만상담도 매년 50여건에 달했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였습니다. 이 중 60% 가량이 거치대가 떨어지거나 액정이 파손된 경우였습니다.
내비게이션과 관련해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지켜야 할 몇가지 주의사항을 소개합니다.

내비게이션 주의사항 5가지



▷거치대는 소모품이므로 2번 이상 유리에서 떨어지면 신제품으로 교체한다

▷내비게이션 밑부분이 자동차의 대시보드에 닿도록 설치해야 한다
▷흡착판 부착 전 차량 앞유리에 묻은 습기나 먼지를 깨끗이 제거한다
▷차량 출발 전 거치대를 가볍게 당겨보며 부착상태가 양호한지를 확인한다
▷흡착판에 입김을 불어 따뜻하게 한 뒤 유리에 밀착한 상태에서 장착버튼을 눌러 단단하게 설치한다

사실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를 해주어 편리하기는 하지만 운전 중 내비게이션에 신경을 쓰다보면 이에 집중한 나머지 운전자들이 각종 도로 상황을 판단하지 못하고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도 늦어져 교통사고를 유발할 위험이 큰 것 같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운전의 편리성을 주지만 운전자들의 시선이 자주 가다보면 사고 위험성도 높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비게이션 사용시 주의사항도 조심해야 겠습니다.

유리 흡착식 내비게이션 거치대의 경우 운전자의 80% 이상이 거치대가 떨어진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무더운 여름철이나 추운 겨울철에는 거치대가 잘 떨어져 내비게이션 액정 파손이나 교통사고 유발 가능성이 큰 만큼 사용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최근에는 네비게이션 배터리가 여름철 고온에 폭발하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내비게이션 상태를 항상 점검하는 습관이 필요한 셈입니다.

아무튼 이번 여름휴가는 내비게이션 믿다가 오히려 교통사고가 발생한 사건으로 최악이었습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셈입니다. 자동차 수리비를 비롯해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습니다. 그나마 가족 모두 건강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겠습니다. 우리가 평소 방심할 수 있는 내비게이션을 자주 점검하고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내비 언니 너무 믿지 말고 조심 운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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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겨울이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의 매서운 강추위가 강타하고 3월 함박눈 폭설과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봄은 끝내 우리 앞에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봄이 왔건만 봄같지 않던 고난의 날들을 이겨내고 봄은 대자연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주말농장 텃밭을 살펴보기 위해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족들과 산책 겸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두 딸아이도 올해는 자신들만의 텃밭을 일구고 싶다고 해서 작년 보다 두 배의 텃밭을 계약하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과연 제대로 텃밭에 채소를 재배하고 관리할지 미지수입니다. 처음에 파종만 하고 나중에 잡초제거 김매기를 비롯한 허드렛일은 아빠 엄마의 몫일 될 공산이 크지만 아이들의 꿈과 소망을 들어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주말농장은 어떻게 지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의 전령사와 만나고 있을까 궁금해 텃밭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러면, 봄의 전령사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비닐 하우스 속에는 시금치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습니다. 전원 식당을 운영하며 주말농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텃밭을 분양해주는 아줌마의 채소입니다.

전원 식당인 멧돼지 전문점의 앞마당에는 잔디밭이 파릇파릇한 새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앞의 사진은 식당 안에 있는 꽃인데 참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텃밭에는 대파와 시금치가 야외에서 그대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텃밭을 갈아줄 농기계가 본격적인 농사 일을 준비하기 위해 텃밭 가운데 서 있기도 합니다.

지나오는 길에 천주교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 텃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단의 아저씨들이 벌써 텃밭의 땅을 파고 거름과 비료를 주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완연한 봄날씨를 보인 날이어서 그런지 야외에는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길가에 있는 고깃집 뒷마당에는 커다란 몸집의 검은색 개가 사납게 노려보며 컹컹대며 짖어댑니다. 살이 포동포동 오른 개인데 개돼지로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요? 마을에 들어서니 아파트 단지의 공원에는 운동기구들이 봄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목련꽃을 피우기 위한 몽우리가 봄의 향연을 먼저 준비하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을 이고있는 나무들과 꽃망울이 싱그럽기만 합니다.

아, 벌써 노란 산수유는 꽃을 활짝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한 셈입니다. 다음 주가 되면 산수유는 노란색 꽃으로 아파트를 아름답게 채색할 듯 싶습니다. 

위 사진은 시골 마을에 1월말에 다녀오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논에는 아직 지난 가을에 추수한 추억을 간진한 채 다시 봄이 되어 모내기를 하는 계절을 기다리면서 을씨년스런 자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밭에는 봄나물이 자라고 있고 봄동이라 불리는 배추가 입맛을 돋구며 속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봄의 향연이 펼쳐질 듯 합니다. 이미 소리없이 다가온 봄날이 향기롭고 싱그러운 자태로 우리들 곁에 와 있습니다. 주말에는 도시락을 싸들고 아이들과 함께 야외로 나가 즐거운 식사를 하는 재미도 멋진 추억이 될 듯 합니다. 겨우내 움추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 들판으로 나가서 땅도 밟아보고 하늘도 바라보는 유유자적의 시간을 보내는 설레임의 나들이를 느껴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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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봄이 올 듯 하면서 꽃샘추위가 길어지는 듯 합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기도 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봄이 왔건만 봄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 사회 세상사를 보면 동토의 왕국처럼 매서운 추위가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 같습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봄이 올듯 말듯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서운 겨울을 이기고 끝내 봄은 오겠지요.

황사가 밀려오다가 다시 눈과 비가 내리고 날씨가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대자연은 어느새 우리 가까이 봄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말에 주말농장 텃밭에 가보니 파릇파릇한 풀들이 새순을 돋고 겨울을 이기며 대파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지난 초겨울 심어둔 양파는 언 땅을 헤치고 초록의 잎을 밖으로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이제 곧 텃밭을 일굴 수 있는 계절이 다가오니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이제 마지막 겨울을 정리하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나 봅니다.

잠시 춘래불사춘에 대해 공부하고 넘어가 봅니다. 춘래불사춘은 중국 한서(漢書에 나오는 고사입니다. 중국 한나라(전한) 시절 절세미인이었던 왕소군이란 궁녀를 공주로 속여 흉노족 왕에게 보낸 일화를 안타까워 했던 시인 동방규가 쓴 한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왕소군은 양귀비, 서시, 초선 등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에 속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고사와 유래

전한(前漢)의 원조(元祖) 때다. 왕소군(王昭君)에게는 봄은 봄이 아니었다. 기원전 33년,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기 3년 전 정략의 도구가 된 궁녀 왕소군은 흉노 왕에게 시집갔다.

왜 그 많은 궁녀 중 하필이면 왕소군이었던가. 거기엔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한(漢)나라 원제(元帝)는 흉노 왕에게 화친을 위해 공주를 보내야 했다. 원제는 공주 대신 궁녀를 공주로 속여 보내기로 했다. 

누구를 보낼 것인가 생각하다가 원제는 궁녀들의 초상화집을 가져오게 해서 쭉 훑었다. 그 중 가장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을 찍었다. 원제는 궁중화가 모연수(毛延壽)에게 명하여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놓게 했는데 필요할 때마다 그 초상화집을 뒤지곤 했던 것이다. 

궁녀들은 황제의 사랑을 받기 위해 다투어 모연수에게 뇌물을 받치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왕소군은 모연수를 찾지 않았다. 자신의 미모에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괘씸하게 여긴 모연수는 왕소군을 가장 못나게 그려 바치고 말았다. 오랑캐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실물을 본 원제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昭君怨(소군원) - 동방규(東方虯)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자연히 옷 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이는 허리 몸매 위함이 아니었도다.


昭君怨(소군원) - 이백(李白)

昭君拂玉鞍(소군불옥안)           소군이 옥 안장을 떨치며
上馬涕紅頰(상마체홍협)           말을 타니 붉은 뺨에 눈물이 흘러

今日漢宮人(금일한궁인)           오늘날 한나라 궁녀가
明朝胡地妾(명조호지첩)           내일 아침 오랑캐의 첩이 되는도다. 

이백의 <소군원>은 소군이 한나라 궁을 떠나 흉노의 땅으로 출발하는 때의 비애(悲哀)와 정경(情景)을 묘사하였고, 동방규의 <소군원>은 흉노 땅에 도착한 후 황량한 풍토에서 맞는 상심(傷心)과 망향(望鄕)의 슬픔으로 나날이 수척해 가는 가련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올해는 3월 춘설이 자주 내렸습니다. 영하를 오르내리는 꽃샘추위는 물론 봄같지 않은 날들의 연속 속에 민초들이 움추린 사회를 생각하면서 중국 미인 왕소군의 고사가 전해져오는 춘래불사춘이란 말을 되뇌이는 날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초순의 신촌 부근 모습입니다. 밤에 눈이 많이 내려 주차해준 자동차를 비롯 길거리가 눈으로 덮였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로 마지막 눈이 될 수도 있어 담아 봤습니다.


왕소군이 중국 역사의 자부심으로 남았던 이유

흔들리는 서울 도심의 네온사인 불빛은 술취한 거리 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갑니다. 다시 왕소군 이야기를 전하자면, 왕소군이 중국을 떠나는 날,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비파로 이별곡을 연주하고 있을 때 하늘을 날던 기러기 떼가 왕소군의 미모에 도취되어 날개짓을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흉노로 간 왕소군은 그 곳 흉노 여인들에게 길쌈하는 법을 전수했고,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한나라와 흉노의 전쟁은 없었다고 합니다. 왕소군의 희생으로 중국은 당시 강대국 흉노로부터 평화시대를 얻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



밤을 지나면 다시 새벽이 옵니다. 날이 새고 동이 트면 태양을 대지를 비추게 될 것입니다. 비록 아직은 눈덮인 동토의 땅이지만 결국은 땅이 녹고 그 위에 새싹이 돋게 됩니다. 눈 속에 새 생명이 움트고 있는 셈입니다.




역사를 소중히 하는 중국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국은 역사를 소중히 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오랑캐 흉노에게 보내야 했던 역사였지만 중국인들의 자부심의 상징이 바로 왕소군입니다. 당시 흉노에 비해 약소국의 설움이었지만 부끄러운 역사가 아닌 자부심으로 후세들은 왕소군을 추앙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국사도 의무교육에서 제외됐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달라' 독도발언 논란에서도 보듯이 역사의식이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유관순이나 논개의 위대한 역사도 뉴라이트에 의해 폄하되고 훼손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 것과 역사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우리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강점기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통해 해방된 조국을 그리면 춘래불사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시인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섯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넘어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 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 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지지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닷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서름이 어울어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로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잡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눈꽃이 쌓인 길가의 나무들과 풀들이 상서로운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이 눈이 녹으면 봄은 오고야 말겠지요. 눈꽃 만큼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추억하게 될 듯 합니다.



의자에 쌓인 춘설에 아떤 사람의 흔적도 없습니다. 누군가 앉아야 할 의자입니다. 눈이 녹고 따뜻해지면 의자에도 사람들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울 것입니다.


주말농장 텃밭에 심는 씨앗은 곧 희망

그렇게 겨울을 이겨내고 봄은 오나 봅니다. 주말농장 텃밭에 심은 양파는 겨우내 동토 속에서도 새순을 돋기 위해 기나긴 밤들을 지새웠나 봅니다. 곧 텃밭 갈이가 시작될 듯 합니다. 초등학생인 두 딸아이는 자신들만의 텃밭을 올해 일구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이제는 많이 컸나 봅니다. 올해 텃밭은 작년 보다 2배 크기가 될 듯 합니다. 아이들이 텃밭에 심는 씨앗은 희망입니다.




그래서 봄은 희망입니다. 출래불사춘이었지만 왕소군은 중국 역사의 영웅이자 자부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슬픔 역사였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역사마저도 희망으로 만든 후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를 놓고보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오늘 하루가 바로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 딸로 살아가는 역사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모여서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식의 출발입니다.

어제 춘분(春分)도 지나고 바야흐로 완연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꽃피는 봄과 희망의 향연을 즐기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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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요강과 키를 아시나요? 요즘 사람들은 아마도 잘 모르는 물건들일 것입니다. 한 겨울이 되면 생각나는 옛날 그 시절 추억이 떠오르곤 합니다. 새해를 맞아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더욱 그리워지는 풍경이 있습니다. 겨울 밤에 필수였던 요강과 밤에 이불에 오줌싸면 벌받았던 키가 특히 생각납니다.

요강은 겨울에 방이나 마루에 두고 오줌을 누는 간이 화장실 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지금은 화장실 시절이 잘 되어 있어 요강이 하찮은 존재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40여년전만 해도 해도 우리 선조들은 대부분 초가집에 살았습니다.

초가집은 흙으로 벽을 만들었기에 겨울에 웃풍이 심했습니다. 개량한 집이나 벽돌 가옥에 살았더라도 역시나 웃풍이 심했습니다. 과거 전통 가옥은 화장실이 내부에 없었고 집 밖에 별도로 있었습니다. 따라서, 요강은 한 겨울의 필수 품목이었습니다. 요강은 놋쇠나 양은 또는 사기와 같은 재질을 이용해 작은 단지처럼 만들었습니다.

한 겨울의 간이 화장실, 요강의 소중한 추억

옛날 시골에서 한 밤 중에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야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난감합니다. 특히나 함박눈이 발목 깊이로 내린 밤이라고 상상해 보면 절망적입니다. 일명 푸세식 노천 화장실은 멀리 있고 전기도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어둡고 차가운 겨울 밤에 멀리 바깥에 있는 화장실을 간다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작은 단지에 불과한 요강은 한 겨울 밤에 소중한 존재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여름에 시골 고향집에 갔더니 요강이 마당 구석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조립식 주택을 사용하는지라 현대실 화장실이 내부에 있어 요강이 필요치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요강이 과거 그 시절 추억을 간직한 채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시절, 한 겨울 밤이 저절로 생각났습니다.

이불에 오줌 싸면 키를 쓰고 동네를 돌던 아이들 

그리고 헛간을 둘러보니 한 겨울 추억의 상징인 키가 보였습니다. 굉장히 오래 간만에 보는 물건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겨울 밤에 오줌이 마려우면 마루로 나가 요강에 오줌을 싸야 하는데 그냥 이불에 실례를 하는 경우가 간혹 있었습니다. 그러면 아침에 어머니는 어김없이 키를 머리에 쓰게 한 후 동네 마을을 돌며 소금을 얻어오게 했습니다.

원래 키는 팥이나 콩과 같은 밭 곡식의 쭉정이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역할을 하는 도구입니다. 주로 대나무나 고리버들과 같은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대나무나 고리버들을 쪼개서 앞 부분은 넓고 평평하지만 뒷 부분은 좁고 두 손으로 잡을 수 있도록 구부러져 있습니다. 키의 모습은 아래 사진을 참고하면 됩니다. 사용법은 뒷 부분을 잡고 넓은 키 안에 곡식을 털면 알곡과 쭉정이가 분리되게 되는 방식입니다.


대나무로 만든 키의 모습인데 좌측이 뒷 모습이고 우측이 앞의 모양으로 곡식을 터는 도구로 사용된다

사실 어린 아이가 키를 쓰고 동네를 돌면 소금을 얻으러 오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면 옛날 선조들의 교육 방식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매를 들거나 호통을 치기 보다는 스스로 창피한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하고 동네 어른들은 아이에게 소금을 건네주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용기를 주었던 것입니다. 지혜로운 공동체 교육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들이 오줌싸면 키를 쓰고 소금을 얻어오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이들이 밤에 오줌을 싸면 귀가 붙어서 몸이 약하다고 하여 그 잡귀를 물리쳐 달라는 의미로 소금을 얻어 오게 했다고 합니다. 오줌싸는 버릇을 고치기 위한 목적도 있습니다. 즉, 키를 씌워서 오줌을 쌌다는 것을 알리고 한의학적으로 소금이 신장에 좋기 때문이란 이야기도 있습니다. 소금이 귀한 물건의 의미도 있고  소금은 부패를 막아주고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힘이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기원이 담긴 셈입니다. 한편, 키를 쓰는 이유는 키 사이사이에 만들어진 구멍이 눈으로 보이게 해서 귀신을 쫓기 위해서 라고 합니다.
 

겨울에 추억하는 시골 마을의 정겨운 풍경들 

신년에 여동생 집에서 동생들 가족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딸 아이들과 조카들에게 시골가고 싶은지 물어봤습니다. 겨울에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가서 비닐포대 눈썰매를 타고 싶다고 아우성입니다. 어느새 아이들도 시골이 가장 가고 싶은 곳이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냇가에서 물고기나 고동을 잡기도 하고 마음껏 수영을 할 수 있어 좋고, 겨울에는 낮은 산등성이 비탈에서 눈썰매를 마음껏 즐길 수 잇어 좋은 곳입니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갈 수 있는 시골 고향이 있다는 것도 행복인 것 같습니다. 지난 여름의 추억의 사진들입니다. 하루에 3번 정도 오지 산골마을을 운행하는 버스가 깊은 산 속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자동차에 등에가 앉아 있고 나무 토막 위로는 걸어다니는 벌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등에는 주로 소의 등짝에 붙어 피를 빨아먹는 흡혈 곤충입니다. 걸어다니는 벌은 무슨 종류인지 날기를 싫어합니다.



표고버섯 참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져 있습니다. 표고버섯을 수확하면 건조기에 넣어 말립니다. 생버섯은 빨리 상하기 때문에 주로 건조해 버섯을 판매하게 됩니다.



이미 잘라버린 나무토막에서 새 순이 돋고 있는데 오동나무 잎사귀로 보입니다. 오른 쪽 사진은 장독대인데 어린 시절에는 커보였던 것이 어른이 되어 바라보는 장독대는 아주 작아 보입니다.



이끼가 잔뜩 낀 바위의 모습이고 오른 쪽은 산 속에 있는 독버섯입니다. 버섯은 아무 것이나 먹으면 안됩니다. 맑고 깨끗한 지역이라 우림지역 같은 정글도 있고 이끼 식물이나 고사리류 양치식물도 많습니다.



마당에서 옥수수를 쪄먹거나 국을 끓이는 간이 화로(?)입니다. 저녁에 캠프 파이어나 모깃불을 만들어 감자, 고구마, 옥수수 등을 구워먹는 재미도 좋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경운기 드라이브를 준비하는 아버지 모습입니다. 그 옆에는 낫이나 칼을 가는 도구 숫돌이 있습니다. 마당에는 햇볕에 고추를 말리기도 하고, 정미기를 이용해 벼를 쌀로 만들기도 합니다.   



저녁에 모깃불을 피우며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고, 감자 고구마 옥수수와 같은 작물을 구워먹던 아이들입니다. 오늘도 아이들은 꿈을 꿉니다. 두 딸의 잠자는 모습이 똑같이 닮아 있습니다. 아이들이 지난 여름 날을 추억하며 다시 겨울에 시골에 갈 꿈을 꾸며 잠들었습니다.

이번 달 말에 아버지 생신을 맞이해 온 가족들이 시골에 가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신나서 활짝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아이들에게 고향은 맑고 고운 정서를 심어주는 교육의 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의 꿈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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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 와보니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딸이 뜨게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아내에게 물어보니 뜨게질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뜨개질도 배우려고 하는 것이 기특해 딸아이에게 몇 마디 물어봤습니다.
"야, 뜨개질도 배우다니. 우리 딸 대단한데."
"뭐, 이 정도 쯤이야. 헤헤."

"지금 뜨고 있는 작품은 뭐니?"
"목도리."

"그래. 누구 줄 건데?"
"아직 몰라요. 이제 배우는 거잖아요."

"그렇구나. 연습하는 것이구나."
"맞아요. 처음이라 잘 안돼요."

난생 처음 목도리 뜨개질에 도전한 딸아이의 집념

잠깐 그러다 그만 두겠지 생각했는데 큰 딸은 매일 뜨게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뜨개질의 코를 빠뜨려 엄마는 다시 털실을 풀어 다시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몇 일이 지나자 제법 목도리를 많이 짰습니다. 그래서 다시 큰 딸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느새 많이 짰구나. 실력이 쑥쑥 늘었네"
"기본이죠. 헤헤."

"조금 하다가 포기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으니까요."

"그 목도리 참 이쁠 것 같다. 그거 받는 사람은 기분 최고겠는데."
"그럴 까요?"

"그럼, 우리 딸의 첫 작품이잖아."
"아직 부족해요."

"그런데 그것 남자용이니, 여자용이니?"
"남녀공용이요."



아빠 생일 선물로 목도리 극비 준비한 큰 딸의 깜짝 선물

그 후 몇 일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거의 목도리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큰 딸은 매일 뜨게질에 집중한 결과 상당히 빠른 속도로 목도리를 짜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금만 더 짜면 마무리를 지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아내에 의하면 큰 딸이 학교가 끝나면 밖에서 놀지도 않고 집에서 거의 뜨개질만 했다고 합니다. 공부보다 놀기 좋아하는 딸아이였는데.

그리고 어제 저녁에 퇴근해 집에 오니 큰 딸이 싱글벙글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잠시 TV를 보고 있는데 큰 딸이 자기 방에 들어거더니 손에 뭔가를 들고 나왔습니다.

"아빠, 선물이야"
"헉. 깜짝이야. 이게 뭐니?

"하하. 목도리. 사실은 아빠 생일 선물이었어요"
"그럼, 지금까지 아빠 주려고 뜨개질을 배운 거니?"

"그런데 아빠 생일은 몇 일 남지 않았니?"
"아빠 생일에 맞추려고 했는데 너무 일찍 완성해 버렸어요"

그랬습니다. 큰 딸은 아빠 생일과 크리스마스 선물로 남자 목도리 뜨개질을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를 깜짝 놀래주기 위해 열심히 뜨개질을 엄마로부터 전수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딸은 예상보다 뜨개질을 빨리 배우고 혼자서 매일 방과 후 목도리를 짰습니다. 그래서 아빠 생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 미리 선물을 주었던 것입니다.

        작은 딸이 언니가 만든 남자 목도리를 목에 걸치고 아빠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큰 딸은 연말로 다가온 아빠의 선물을 고민했더랍니다. 아내는 큰 딸에게 겨울이니까 뜨개질로 목도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말했는데 큰 딸은 흔쾌히 뜨게질에 도전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내는 큰 딸의 집중력에 놀랐답니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에만 관심있던 큰 딸이 뜨개질에 그렇게 열심히 할 줄 몰랐다는 겁니다. 공부에도 그다지 흥미를 못느끼던 큰 딸이 뜨게질에는 유난히 관심과 재미를 느꼈던 셈입니다.


 

생애 최고의 선물과 딸아이를 키우는 보람과 행복 

제게는 딸아이가 만든 목도리는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게다가 큰 딸이 아빠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난생 처음 뜨개질을 배우고 정성껏 만든 목도리인 만큼 더욱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이것이 딸내미를 키우는 부모의 보람과 행복이 아닌가 생각됐습니다.

        큰 딸은 뜨개질을 마스터하더니 재미와 흥미를 가졌는디 또 다시 목도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큰 딸이 아주 쉽게 뜨개질을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뜨개질이 그리 쉽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뜨개질을 배우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데 큰 딸은 조금 빠른 편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아빠 생일 선물도 당초 2주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1주일도 안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큰 딸은 또 다른 사람을 주기 위해 또 다시 목도리 뜨개질에 나섰습니다. 그 전 보다 뜨개질 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어쨌든, 저에게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보람있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마냥 어린 아이로만 보였던 딸아이가 아빠를 위해 속깊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 감격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확실히 여자 아이들이 사려깊고 섬세한 것 같습니다. 엄마가 아줌마 모임으로 외출했을 때는 딸아이들이 아빠의 식사를 차려주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퇴근해 돌아오면 추리닝 바지를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런 것들이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소박하면서도 큰 기쁨인가 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와 겨울은 목도리와 함께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듯 합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훈훈한 가족애를 느껴보는 하루였습니다.

뜨게질과 어머니
딸아이의 뜨개질을 보면서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해마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호롱불 밑에 앉아서 밤새 뜨개질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스웨터 옷을 짜주셨습니다. 제 스웨터 옷을 풀어 동생 옷을 짜주시고 다시 작아지면 또 다시 풀어 그 아래 동생옷을 짜주시곤 했습니다. 지난 1960~70년대는 옷이 귀하던 시절이라 뜨개질로 만든 스웨터가 겨울 옷의 대명사였습니다. 딸아이의 뜨개질 목도리를 두르면 아내와 딸아이는 물론 어머니가 더 생각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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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강원도 인제에서 촬영된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는 마치 겨울 군대 생활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사실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경험한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겨울철은 눈과의 전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쩌다 여행 중 만나는 눈보라는 하나의 추억과 낭만일지 몰라도 군생활 중 매일 내리는 눈은 '하늘의 쓰레기'나 '악마의 비듬'에 불과했습니다.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1박2일 혹한기 캠프 장소를 보면서 강원도에서의 겨울철 군생활이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강원도 인제와 원통 그리고 양구에 걸친 최전방 지역은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말이 아직도 전해내려오듯이 험난한 산악지형 지역입니다.
 
그래서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 인제 내린천편은 겨울 병영 캠프를 보는 듯 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 속을 뚫고 내려오는 1박2일 멤버들의 모습이 바로 겨울 군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던 것입니다. 1박2일이 표방한 리얼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라는 모토와 군대의 겨울나기는 다를 바가 없어 보였습니다. 

실제 제가 군대 시절에 겨울에 허리까지 차는 폭설이 내려 작전 도로도 막히고 병영 막사가 고립돼 배낭을 메고 매일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산을 넘어 부식(군대 식사 재료)을 추진해야 했던 일도 많았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1박2일 내용부터 먼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박2일 혹한기 캠프는 감동의 리얼 야생 로드 다큐였다

1박2일 멤버들이 보여준 인제 혹한기 캠프는 예능이 아닌 최강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예능으로 시작했지만 갑자기 내린 폭설로 산속에 고립된 야생 탈출기였습니다. 이승기는 극한 상황에서도 '예능이 아니다. 다큐다'라고 말하면서도 '눈내리는 것은 복이다' '눈으로 세트장을 만들었다면 돈이 엄청날 것이다'라며 긍정적으로 대하는 자세로 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폭설은 아무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멤버들은 배드민턴 게임과 라면 내기 복불복 게임을 마치고 비닐 막사의 야생에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으로 변했습니다. 곧이어 폭설로 변했고 제작진은 긴급히 산속에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자칫하면 산 속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멤버들은 사륜 산악오토바이를 타고 일단 산정상에 도착한 후 반대편으로 걸어서 하산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사륜 산악오토바이는 인제 내린천 ATV팀이 1박2일을 도와준 것이었습니다. 폭설로 자동차 차량은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선발대로 강호동 이승기 MC몽은 산 정상에 도착 후 산 아래 내리막을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눈 내리는 길, 스노우로드였습니다. 멤버들이 내려오는 도중에 엄청난 눈보라를 만나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길에서 사투를 벌였습니다.



게다가 눈길이 미끄러워서 멤버들은 계속 넘어지곤 했습니다. 촬영하던 VJ가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히말라야나 북극이 따로 없었습니다. 1박2일 멤버들은 극한 눈보라에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감동을 연출했습니다. 아이리스와 1박2일을 교차편집한 장면을 보니 딱 들어맞았습니다. 2012가 1박2일이란 의미라는 MC몽의 말이 이상해 보이지가 않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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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각본없는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 다큐였습니다. 1시간 30분이 넘는 길을 걷는데 후발대인 이수근 김C 은지원 일행이 폭설이 줄어든 틈을 타 사륜 산악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내려왔습니다. 그 때 해피선데이의 대표 연출자인 이명한PD가 산 아래에서 걸어서 올라와 강호동과 극적인 조우를 했고 함께 감격적인 포옹을 했습니다.

또한, 제작진들도 함께 만났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이산가족 상봉과도 같았습니다.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산 위에서 내려온 VJ가 '넘어지며 구르면서 촬영했다'고 말하자 산 아래에서 올라온 VJ가 고생했다면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박2일 제작진과 멤버들의 팀워크가 빛난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것은 예능이 아닌 최강 다큐였습니다.

폭설로 고립된 군대 막사 10일간 추억, 생존 전쟁이었다

다시 강원도 양구에서의 겨울 군생활 추억담으로 넘아가 봅니다. 지난 1980년대 중반, 군생활 도중 겨울에 폭설로 당시 저희 소대 막사가 고립된 적이 있었습니다. 산 속에서 땅굴탐지 특수 수색대 임무를 맡아 단독 소대 생활을 했던 터라 고립되면 외부와 단절되고 식사도 할 수 없어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뻥 뚫린 듯 폭설은 매일 계속 내렸고 도로는 완전히 허리 높이의 눈으로 뒤덮였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제설작업을 해도 50미터를 뚫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비상 식량도 바닥나고 결국 저희 소대는 매일 1개 분대씩 돌아가며 산정상을 넘어 반대편 평지까지 걸어서 부식과 식량을 배낭에 메고 돌아오는 작전을 돌입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도 밤 12시에 도착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막사와 도로의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에 하루 동일 매달렸습니다.


눈이 멈추기만 바랐지만 무심한 하늘은 하루도 쉼없이 눈발을 흩날렸습니다. 군장을 멘 부식추진조는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매서운 눈보라 속에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산악 눈길을 걷는 것 조차 힘들었습니다. 소대원의 식사와 목숨이 걸린 일이라 한 순간도 쉬지않고 걷고 또 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립된 생활 기간이 무려 10일이나 됐습니다. 가장 오래 고립된 시기였습니다.
 
그 후로도 폭설도 도로가 막혀 단기간 고립되는 일은 자주 있었습니다. 물론 작전도로가 넓어 겨울 내내 제설작업만 계속 했습니다. 강원도 양구 최전방 가칠봉을 비롯한 산악지대는 9월부터 첫 눈이 내리기 시작해 다음해 5월까지 눈이 내릴 정도였습니다. 정말 눈만 보면 지긋지긋했습니다. 
지금은 지나간 추억으로 남았지만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겨울 군생활은 눈이 결코 낭만이 아닌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은 인식하게 해준 경험이었습니다.
 


이 처럼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는 바로 강원도 최전상 군인들의 겨울병영생활을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강원도 인제편은 1박2일의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 정신과 저력을 보여준 감동의 명작이었습니다. 아울러, 오늘도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에 겨울 내내 고생할 최전방 국군 장병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젊은 그들이 있어 오늘 밤도 편안히 잠잘 수 있기 때문입니다. 1박2일이 있어 즐겁고 최전선 군인들이 있어 평안한 하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려 40여년 이상을 강원도 산 속 마을에서 살고있는 강원도 노인 아저씨와 강호동이 눈 속에서 마주치자 두 사람이 잠시 나눈 대화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역경과 도전 속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안 인생을 달관한 산할아버지의 우문현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호동 : 왜 우리는 험한 날씨를 몰고 다니는 걸까요?
아저씨 : 다 복이예요, 복.

(덧붙여, 1박2일 멤버들이 산에서 미끄러지는 TV장면을 보던 아이들은 저기서 비닐 포대 눈썰매를 타면 재밌겠다고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미 비닐 눈썰매를 타본 아이들의 경험은 놀이를 생각한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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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늘 서울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매서운 추위와 눈이 내리는 계절이면 군대 생활이 생각나곤 합니다. 군인들에게는 가장 힘든 계절이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최전방 비무장지대에서 민정경찰 수색대 군생활을 했던 터라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한겨울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특히나 겨울에 무슨 눈이 계속 내리는지.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첫눈 오는 것을 기다리겠지만 군인들에게는 눈 내리는 것은 고통스런 제설작업을 떠올리며 악마의 비듬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강원도 최전방에는 지금도 많은 눈이 내린 곳이 많은가 봅니다. 한 겨울에 위문편지 하나라도 받아보고 싶었던 소박한 소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 80년대 중반 당시 저희 부대 군인들은 제대하면 강원도 양구를 향해 오줌도 싸지않겠다는 다짐은 당시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시절을 보냈는지 상징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까마득한 추억 속의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듯이 도전과 역경을 인내하며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희로애락과 책임감을 터득한 세월이 아니었나 반추해 봅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에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라는 굴레는 넘어야 한 산이기에 이왕이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군대를 다녀오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군대가 갖고 있는 일부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군대가 주는 장점 몇가지를 소개합니다.


1. 부모와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어머니 아버지의 품을 떠나 별도의 고립된 공간에서 스스로 자립심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곳이 군대입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화초처럼 자랐지만 이제는 독립된 주체로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더욱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신병 교육대 시절에 엄청나게 고통스런 훈련을 끝내고 '어버이 은혜'를 부를 때면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났던 때를 생각해보면 부모님과 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 온 몸으로 느겼던 것 같습니다.

2. 팀워크의 조직 경쟁력을 체득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잘될 수 있도록 하는 팀워크는 중요합니다. 군대는 팀워크를 통해 만들어지는 조직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직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체득할 수 있는 공간이 군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몰개성화나 획일적 인간을 만드는 것은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사회나 조직을 이루어 모든 생활의 터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팀워크 능력은 무엇보다 필요한 능력입니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조직 경쟁력의 원천인 팀워크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군대가 주는 강점 중 하나일 것입니다.


3. 음식이나 반찬 투정을 안하게 된다
군대에 가면 맛이 없어도 그냥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신병 시절에는 그것도 모자라 먹을 것에 대한 욕구가 큰 편입니다. 그래서 휴가나오면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과 반찬이 얼머나 맛있는지 알게 됩니다. 아니 어머니의 밥상이 늘 그리운 시절이 군대있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군대가 가면 반찬 투정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과 반찬에도 투정하던 사람도 군대에 다녀오면 짬밥이 아닌 사제 음식의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반찬 투정하는 남자를 싫어하지만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반찬 투정은 거의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군대에도 사제 음식 반입이 많아 여전히 반찬 투정을 못고치는 남자도 일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4. 몸도 마음도 튼튼한 태권도 유단자가 된다
우리나라 군대는 대부분 태권도를 기본적으로 훈련합니다. 태권도 승단 심사를 하기 때문에 병장 제대할 때까지는 대다수 유단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군대에서 일부 유단자가 아닌 체로 제대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수많은 작업과 훈련으로 다져진 체력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특히나 군데스리가로 통칭되는 군대 축구는 군인들의 체력 강화 필수 코스였을테니까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군대를 가면 남자들이 더 남자답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태권도 유단자인 우리나라 남자들이 태권도 폼만 잡아도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체력은 국력입니다. 

5. 여자가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남자들만의 공간에서 지내다보니 군대가면 여자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군대에 있다가 휴가나오면 모든 여자가 다 예쁘게 보일 것입니다. 여자 친구가 더 예쁘게 보이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바로 군대있을 때입니다. 가끔은 현재 만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군대에 간다는 남자도 있다고도 하지만 군대가면 다시 그리워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비무장지대에 근무해서 휴가 이외에는 전혀 실제 여자 구경을 못했던 군대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군인들은 휴가 나올 때면 치마만 둘러도 아줌마도 할머니도 신기한 듯이 놀라던 때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껴지는 군대인 셈입니다. 그런데 TV 속의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등 걸그룹의 미모를 많이 봐서 눈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군대 시절을 보며 더 책임감을 갖고 여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변화가 있는 시기일 것입니다.

6. 노동과 한달 월급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지난 1980년대 군대에서는 일반 사병의 월급이 보통 1만원 이내였습니다. 지금은 사병 월급도 10만원이 넘는다는 합니다. 사실 한달 동안 땀흘려 일하며 한달 1만원이든, 10만이든 월급의 받는 경우는 군대 시절에 제대로 알게 되는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군대시절 한달 월급이 6~7천원 정도였고 비무장지대 근무라 위험수당이 추가돼 1만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1만원으로도 한달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덜 쓰고 아껴 쓰면 가능했습니다. 기본적인 식사와 의류는 제공되기 때문에 특별하게 돈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 일부 군인의 경우 가족들에게 돈 부쳐달라고 해서 오히려 민폐끼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흥청망청 돈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동과 월급의 소중함을 통해 알뜰한 경제적 관념을 강하게 갖게 되던 군대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7. 가정을 이룰 기초 생활력을 기를 수 있다
군대에 가면 스스로 관물대 정리를 하고 막사를 청소하는 것부터 배우게 됩니다. 자신의 물건과 주변은 최소한 스스로 잘 정리정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족과 함께 지내던 학창시절에 어머니가 해주었을지라도 군대에서는 누가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옷도 스스로 다리미로 다려서 입기도 합니다. 군화도 스스로 닦아야 합니다. 담요도 털고 빨기도 합니다. 스스로 생활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궁하며 라면도 직접 끓여 먹습니다. 군대에 가면 라면이 더 맛있습니다. 라면 조리법도 얼마나 많은가요. 아무튼 군대에 가면 최소한 스스로 생존할 요리와 청소 등 생활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8. 자유와 평화가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군대란 개인의 자유가 통제되는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가장 최전선인 전방에서도 비무장지대 안에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눈 앞에서 북한 군인들을 매일 봤습니다.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상황에서 남과 북의 군인들 모두 자유가 없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전 상황의 비무장지대는 준전시상태나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전쟁이 재개될 수 있는 곳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가 더욱 필요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군대는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줍니다. 물론 일부 직업 군인들의 경우 흑백논리와 양분법으로 냉전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2년 또는 3년의 군대생활을 통해 자유와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군대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악랄가츠님이 쓴 군대이야기란 책입니다. 여자들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재치있고 재미있고 발랄한 터치로 쓴 이야기인데 요즘 군대는 예전보다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9. 책임감과 목표를 갖춘 삶의 주체가 된다
군대를 다녀오면 책임감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군대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이를 반드시 정해진 시간 안에 완수해야 합니다. 목표의식이 없이 살아가던 젊은 시절에 군대는 목표와 책임완수는 몸에 베인 습관으로 만들어 줍니다. 물론 하루동일 삽질해 땅을 파고 다시 묻는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요. 적어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명확한 목표를 만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책임있게 일하는 자세는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은 엄마에 보호 속에 살아서 마마보이가 많기도 하지만 군대에 가면 마마보이가 아닌 스스로 해결하는 주체로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일본이나 다른 나라 남자들에 비해 책임감이 강한 것은 이같은 군대가 영향을 준 측면도 클 것입니다.

10. 당당한 남자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솔직히 우리나라 남자로 태어나면 군대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태어나 부모에 의지만 하다가 혼자가 가족과 떨어져 군대 생활한다는 것이 두렵고 힘든 도전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를 마쳐야 합니다. 간혹 군대에 가지않기 위해 탈법과 편법을 저지르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군대를 기피했다가 사회적으로 매장된 연예인도 있고 대통령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 고위 장관, 그리고 국회의원들 중에서 군대를 안간 사례도 많은 것이 현실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늘 그들에게 주홍글씨처럼 군대 문제는 따라다니게 됩니다. 군대를 다녀오면 하루를 살더라도 보다 당당하게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조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소한 나 스스로와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남자의 자신감은 군대가 주는 선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육군 병장으로 송승헌이 제대했고 오늘 공유가 군대 2년을 마치고 만기 전역했다

최근 가수 김종욱이 당당하게 군대 현역으로 입대하며 '군대가는 날'이란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한류스타 공유(공지철)가 2년의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만기 전역했습니. 김태우을 비롯 떳떳하게 정상적인 군생활을 마치고 연예인 활동을 활발히 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특히나 수색대에서 복무했던 김태우는 편한 곳 보다는 몸을 사리지않는 모습이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군방의 의무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가기에 이왕이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군대를 다녀오면 좋은 이유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군대의 부정적 측면도 많지만 이는 모두가 알고 있기에 언급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자로서 태어난 이상 군대를 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비겁하게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기피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그런 경우라면 더욱 문제가 큽니다. 진정 바람직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층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모범을 보여할 것입니다. 군대는 특히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합니다. 한국 남자들이라면 꼭 거쳐야하는 군대가 더욱 보람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를 해봤습니다. 아울러, 남자들만 군대에 가야하는 역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방의 의무에 대한 개선도 논의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욱 추워지고 눈 내리는 겨울에 오늘도 국방의 의무를 다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모두 고생이 많습니다.

[참고] 군대 기피 비리 의혹 연예인-국회의원-사회지도층 명단 
* 사진 참조 : 뉴시스

* 이 글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 알려드립니다. 이 글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의 취지는 국방의 의무이기에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군대에 가야하지만 이왕이면 당당하게 군대를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며, 특히 국회의원과 부자를 비롯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군대는 두번 다시는 가고 싶은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장 비열하고 부도덕한 인간들은 바로 국방의 의무를 비롯한 자신의 의무나 책임도 다하지않고 소위 어깨에 힘주고 호의호식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질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매서운 겨울 추위 속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에 대해 위로를 보내는 내용입니다. 글의 일부 보다는 전체의 맥락과 속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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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도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CNN 등 세계 주요 언론들도 긴급 헤드라인 뉴스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추모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제 사회의 추모 분위기는 오히려 우리나라 못지 않은 열기입니다. 이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는 물론 세계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세계인들의 존경과 예의의 표현일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상식과 예의범절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슬픔을 나누고 애도를 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인터넷에는 고인의 죽음 앞에서도 악플을 다는 인면수심의 패륜아들도 간혹 있습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는 인간말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장례식을 국장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측에서 난색을 표명했다는 일부 기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국장을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부측은 국장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한 셈입니다. 다른 기사에서는 유족의 뜻에 따라 국장을 치르되 6일장으로 절충하자는 정부측 검토안도 나온다고 합니다. 고인의 장례식을 두고 정부측이 흥정을 하는 형국입니다. 참으로 비열하고 몰염치한 정부의 태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 '최대한 예우'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과연 이 대통령의 말이 진심일지 지켜봐야 겠습니다. 이번에도 빈 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도 이명박 대통령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최대한 예우'를 지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지시는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장례식 추모사를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현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파괴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또 서울광장을 봉쇄하며 시민들을 무차별 폭력과 연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분향소가 마련되고 추모객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과 추모 기간 동안 이명박 정부는 졸지에 비정한 패륜 정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정부가 패륜을 저지르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정부의 예산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일부 극우보수단체 할아버지들은 시민분향소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에게는 가혹한 폭력진압으로 악명높던 경찰은 극우보수 할아버지들의 망나니짓에는 눈을 감고 모른 체 했습니다. 이는 곧 현 정부와 대통령을 패륜 집단으로 욕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경찰의 패륜적 만행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시민들의 추모를 방해하거나 시민분향소 설치를 강제로 막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대한 예우를 지시하는데 경찰은 최대한 패륜을 저지른 셈입니다. 만일 이 대통령이 진심으로 지시한 것이라면 경찰 수뇌부는 파면 조치 등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망자 앞에서 예의를 지키고 슬픔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의 도리입니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추모객들을 방해하고 폭압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짓일 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당연히 국장으로 치러야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적 지도자로서 충분히 국장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지역 민주주의 역사의 상징이자 신화입니다. 우리나라가 최대의 경제위기인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이었고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도 인권과 평화의 상징이자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루는 것이 타당합니다. 

분향소를 찾은 권양숙 여사가 오열하며 이희호 여사에게 위로를 하고 있다.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을 갖고 흥정하는 모양새는 보기좋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대한 예우하라고 한지 얼마 안돼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막고 정부측은 장례식 국장 문제로 대통령 얼굴에 먹칠을 해버렸습니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을 갖기를 바랍니다. 고인 앞에서 속좁고 비열한 패륜 정부로 비추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통령 말 그대로 최대한 예우를 갖춘 예의있는 정부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정부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국민들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길입니다. 말로는 국가의 브랜드를 높이자고 하면서 스스로 깎아먹는 정부가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에 대한 전례 문제를 갖고 헛소리를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이없는 일입니다.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자는 국장으로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김 전 대통령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고 현저한 업적을 남긴 분입니다. 국장은 당연히 유족의 뜻에 따라 정부가 최대한 예우를 갖춰야 합니다.

기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경우에는 9일장 형식의 국장으로 한 바 있습니다. 독재자였던 박정희 대통령도 국장으로 거행했던 것입니다. 전례가 없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정부측은 관례에 따라 현직 대통령 사망은 국장으로 하고 전직은 안된다는 어이없는 주장도 한다고 합니다. 정부가 고인 앞에서 말장난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적법한 법률에 따라 정부는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예우를 충실히 하면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9일장의 국장으로 거행하면 됩니다. 정부는 국장 장례식을 갖고 6일장으로 하자고 흥정하거나 관례 운운하며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슬픈 2009년입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별과 같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땅에서 못 이룬 꿈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을 믿어봅니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집니다. 슬픔이 응어리지면 한이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제대로 된 국장으로 치르면서 국민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슬픔을 보살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서운 동토의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인동초 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과 닮았다.

[참고 글] 김대중의 노무현 추모사와 YS MB의 화해(?)

[참고] 국장과 국민장의 차이

구분

국장

국민장

대상

1. 대통령직에 있었던 사람

2. 국가,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사람

기간

9일 이내

7일 이내

조기

장례기간 관공서 계속 게양

영결식 당일 관공서 게양

휴무

영결식 당일 관공서 휴무

없음

경비

전액 국고 지원

일부 보조 원칙
(전액 지원도 가능)

절차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과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를 거쳐 결정


[추가 속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6일장 형식의 국장으로 결정됐습니다.
정부는 19일 오후 8시경 김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 결정과 관련 임시국무회의를 개최해 이같은 장례 일정을 확정한 했습니다. 장의 명칭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며, 영결식은 오는 23일 오후 2시 빈소가 차려진 국회 광장에서 거행될 예정입니다.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입니다. 따라서 국장기간 내내 조기가 게양되며 장의 비용은 전액 국고에서 지원됩니다.

결국 정부는 9일 국장이 아닌 6일 국장으로 흥정을 한 셈입니다. 최대한 예우를 하려거든 처음부터 9일 국장으로 했다면 현 정부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통크게 하지 못하고 흥정하듯이 6일장으로 한 것은 현 정부가 고인 앞에서 치졸하고도 옹졸하다는 비판을 듣게 될 전망입니다. 정부가 앞장 서 최대한 예우인 9일장 국장을 선도했다면 좋았을 터인데 안타깝고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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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전에 봄비가 조금 내렸습니다. 어느새 서울에도 봄이 왔습니다. 꽃도 활짝 피었습니다.
봄꽃에 취한 여심들은 공원을 거닐고 있습니다.
(사진은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하얀 꽃이 활짝 피고, 봄의 향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겨우내 움추린 사람들이 공원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봄꽃은 여심을 더 자극하나 봅니다.


까치 한 마리가 길가에 나와 잠시 햇살을 받고 있습니다. 도망 갈 생각도 없나 봅니다.


노란 꽃도 활짝 피었습니다. 도시 속에도 자연은 숨을 쉬고 있습니다.

빌딩 콘크리트 숲 사이로 하얀 꽃들이 본격적인 향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울과 수도권에도 봄이 가득합니다. 가끔 밖으로 나가 봄이 오는 소리, 그리고 꽃이 피어나는 자태를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비록 하루가 힘든 일상일지라도 자연은 언제나 우리 인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싱그러운 봄의 기운이 넉넉한 마음을 갖게 하는 오후입니다. 직장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자리를 박차고 잠시 주변의 자연을 찾아보세요.

봄...

숫검정칠 혹은 오징어탈 분장하고
청사초롱 앞세우며 신명나게
들어서는 함진애비처럼
네가 오는 4월은 온 동네가 떠들썩하다

오늘을 위해 손톱 끝에 꽃물들이고
첫눈 오기만을 새하얗게
기다린 새악시처럼
골목 안으로 들어선 네 모습은 눈이 부시다

대문을 열어젖히듯 4월은 그렇게 남한강과 북한강이
마침내 만나 몸을 섞는 양수리
그러니, 생명으로 풍성할 밖에

너를 맞은 집집마다 꽃 잔치, 춤 마당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네가 오는 4월은 온 동네가 아이들 놀이터요 시장통이다
-(시 / 리울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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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에 산촌 마을 고향에 다녀왔다. 아버님 칠순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한 자리였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두 딸들은 시골에 눈이 내린다는 소식으로 들떠 있었다. 두 딸에게 가장 신나는 일은 시골에서 비닐 비료 포대로 만든 눈썰매를 타는 일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는 일 보다 눈 쌓인 산비탈에서 비닐 눈썰매를 타는 일이 겨울방학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싫지 않은 눈치다. 비록 시골에 오는 손주들의 목표가 당신들을 위해서는 첫번째는 아니더라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시골에 가는 것을 손꼽아 가다리는 손주들이 대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딸은 시골에 가는 일이 언제나 즐겁다. 여름에는 마음껏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고, 겨울에는 산비탈에서 눈썰매를 신나게 탈 수 있는 천연의 놀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고향집은 산골 외딴 집이다. 그래서 냇가의 물은 전혀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고, 산과 들은 모두가 우리들 만의 자연 놀이터이다.


우리 두 딸을 포함해 아이들만 여섯명이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이지만 인공으로 잘 만든 눈썰매장에서 타는 플라스틱 눈썰매 보다는 시골 산비탈에서 타는 비밀포대 눈썰매가 100배 재밌다고 한다. 아이들은 산비탈에서 눈썰매를 타는 것은 스릴이 있단다. 그리고 줄도 서지 않아도 되고 원하는 만큼 실컷 눈썰매를 즐길 수 있어 좋단다. (참고로, 비닐포대 눈썰매는 다 쓴 비료포대 속에다 짚을 가득 넣으면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어른들은 폭설로 인해 어떻게 다시 서울로 돌아가나 걱정이지만 아이들은 계속 눈이 내려 눈썰매를 탈 수 있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 갈 수 있는 방학을 기다리는 손주들. 산골 외딴 집이라 컴퓨터도 없고 과자 가게도 없다. 그러나 산골은 도시의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다. 개학하면 두 딸은 자랑할 것이 참 많을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제 부모가 된 나와 동생들이 칠순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효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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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