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0.09.04 장진영-김영균 마지막 1년 감동이 나를 울렸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5)
  2. 2010.05.03 장동건-고소영 결혼과 세기의 톱스타 신부들 살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1)
  3. 2009.09.14 애인과 헤어진 직원의 사내커플 결혼 비결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1)
  4. 2009.09.13 무한도전 꼬리잡기, 정형돈 결혼 축포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51)
  5. 2009.09.05 강혜정 임신에 타블로의 솔직한 결혼 발표, 그 의미와 감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23)
  6. 2009.09.03 장진영 남편, 영화같은 결혼과 마지막콘서트 by 진리 탐구 탐진강 (74)
  7. 2009.08.25 남녀가 사랑해도 사주팔자 나쁘면 헤어질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94)
  8. 2009.07.19 여자친구가 맞선본다 했다, 어떡해야 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70)
  9. 2009.07.18 캠퍼스커플 남녀 3각 관계가 위험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42)
  10. 2009.05.01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선교'(최종편) : 술집에서 선교사 활동? by 진리 탐구 탐진강 (47)


너무나 아름답고 슬픈 영화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후 주루룩 한 줄기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 내렸습니다. MBC스페셜 '장진영의 마지막 1년'을 시청한 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쉽게 만났다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사랑과 헤어짐이 너무나 많은 우리네 현실을 돌아보면 장진영과 남편 김영균의 사랑과 이별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MBC스페셜 '장진영의 마지막 1년'편은 2009년 9월 1일, 서른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한 배우 장진영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여배우로서 가장 절정의 순간,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녀를 추억하고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수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만남에서 이별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지금도 장진영의 곁을 지키고 있는 지고지순한 남편 김영균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나, 장진영이 위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김영균은 항상 그녀 곁에서 극진한 간호를 하더군요. 사실 결혼도 안한 사이에 나 몰라라해도 그만일 수 있지만 김영균은 장진영을 향해 더 불타는 사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이나 주위의 반대가 심할 것을 우려해 마련한 2009년 7월 26일 라스베이거스에서 단지 지인 몇명만 초대해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동영상 모습이나 사망하기 몇 일 전인 8월 29일 혼인신고서를 냈던 당시를 회상하는 김영균을 보면서 영원한 사랑의 의미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시한부 장진영을 위한 김영균의 아름답고 슬픈 결혼식

                장진영과 김영균의 영화보다 더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가슴뭉클하게 했다

더보기

* 더 보기를 열면 장진영과 김영균의 결혼식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김영균이 혼인신고를 했다고 말했을 때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장진영의 마음은 얼마나 가슴아프고 슬펐을까요? 김영균의 당시 회상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진영이한테 제가 얘기를 했어요. 혼인신고 했다고 그랬더니 깜짝 놀라요. 놀라면서 울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왜 우냐고, 너 오늘 내 와이프 됐는데 너 기뻐야 되는 거지. 그랬더니 자기가 몸이 이렇게 됐는데 미안하다고..."

장진영의 마지막 1년 주요 내용

2009년 9월 1일, 서른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한 배우 장진영. MBC스페셜 <장진영의 마지막 1년> 편은 배우 장진영의 사망 1주기를 맞아 배우로서 가장 절정의 순간,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녀를 추억하고자 한다. 함께 작품 활동을 했던 김명민, 박해일, 김승우 등 동료 배우들과 가족, 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배우 장진영의 열정과 인간 장진영의 삶을 담아본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장진영의 마지막 1년! 남편 김영균씨와의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아름다운 사랑을 했던 그들의 이야기. 마지막까지 그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그녀가 회복을 위해 떠났던 미국과 멕시코에서의 투병기를 현지 촬영을 통해 소개한다. 또한, 미국에서 그녀를 간호했던 김영균씨 누나의 인터뷰 및 2009년 7월 26일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결혼식 동영상을 최초로 공개한다.

더보기

작년에는 영화배우 장진영이 하늘나라로 떠난 일은 물론 배우 최진실 장자연 등 안타까운 죽음에 이어 사회적으로 사회 저명인사들의 사망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국가적으로 명망있는 사회지도자들의 서거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었는데 국민들의 뇌리에 남는 배우들의 죽음 또한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결국은 우주의 작은 먼저처럼 사라져 갈 인생이기에 늘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의 사람들과 하루를 보다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 사회를 보면 여전히 작은 이익과 욕심을 탐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나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정치인을 비롯 사악한 인간 군상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장진영과 김영균의 영화같은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별 이야기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울림이 크다 하겠습니다. 한편 장진영과 김영균의 이야기는 영화 '국화꽃 향기'와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국화꽃 향기'의 여자 주인공은 장진영이었고 그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삶 자체가 되었습니다. 영화가 현실이 된 슬픈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 더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그녀를 하늘나라도 시샘해 일찍 데려간 것일까요.


영화 '라스트 콘서트' 이야기는?

MBC 스페셜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지만, 2009년 5월 장진영은 김영균과 함께 가수 김건모의 전국투어 전주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마치 영화 '마지막콘서트'처럼 사랑하는 두 남녀는 그렇게 둘 만의 애틋한 사랑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장진영이 이승에서 가본 마지막 콘서트가 되었습니다. 장진영은 김건모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바도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마지막 콘서트였던 셈입니다.

장진영과 김영균의 콘서트 이야기는 이탈리아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감동을 떠올리게 하게 했습니다. 미국의 컨트리 팝가수 존 덴버 주연의 영화 '션샤인'과 더불어 불치병 환자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피아니스트 리처드(리차드 존스 분)가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스텔라(파멜라 빌로레시 분)를 위해 '스텔라에게 바치는 곤첼로'를 작곡하여 파리 교향악단에 초연을 하게 됩니다.



그 음악은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리처드에게 순수한 소녀 스텔라가 보내준 용기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텔라는 갈채로 뒤덮힌 무대의 객석에서 리처드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는 영화입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스텔라를 위한 곤첼로(스텔라를 위한 협주곡)'은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지금도 영화와 음악은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남자친구 김영균과의 가슴 뭉클한 결혼 사연

장진영의 남편 김영균도 고등학교 시절 기타와 드럼을 치던 음악 로맨티스트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콘서트는 김영균이 장진영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 김영균 씨는 제15대 국회 부의장 출신인 김봉호 전 국회의원의 차남으로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공부를 많이 할수록 더 이기심이 많아지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김영균의 순수한 사랑은 물질만능주의 세상에 커다란 파문을 던져주는 듯 합니다.



장진영을 향한 김영균의 그녀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막을 수 없었고 더욱 불타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좋아한 로맨티스트 김영균의 순수한 사랑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했습니다. 2008년 1월, 지인의 소개로 장진영과의 만남을 갖게 된 김영균씨는 그녀를 본 순간 첫 눈에 반했습니다. 장진영 역시 그에게 점점 호감을 느꼈고, 8개월 동안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 왔습니다. 모든 것이 행복하고 웃음만 가득했던 시간들. 그러나 그 해 9월, 거짓말처럼 그녀에게 위암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 이야기이자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는 그 때부터 또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

그러나 슬픈 운명은 장진영을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김영균은 "내가 곧 그녀, 그녀가 곧 나였습니다. 혼자 보내게 된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장진영이) 가는 길에 힘이 되고 싶었고 가슴 속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현실에서 못다한 사랑, 하늘에서나마 아름다운 결혼 생활로 이루고 싶었습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미 죽음을 예견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힘이 되어주고 꿈 속에서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계속 사랑을 하고 싶어 둘 만의 결혼식을 했다는 것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김영균은 작년 장진영의 사망 당시 재산 상속도 장진영 부모에게 위임했고 상주도 장진영 아버지가 맡은 바 있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김 씨 같은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도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여주인공 민희재에게 남편 인하는 라디오에 보낸 사연을 통해 말합니다. 장진영을 향한 남편 김영균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여 또한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나만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삶이 살아 있는 시간은 당신과 함께할 때 입니다"

MBC 스페셜 시청자 게시판에는 눈물과 감동의 게시글들들이 폭주했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끝까지 장진영과 함께 하고 있는 김영균의 한결같은 마음이 하늘나라의 장진영에게 닿아 MBC 스페셜의 감동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보다 더 슬퍼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준 장진영이었습니다. 비록 이승에서 못다한 꿈과 사랑을 하늘나라에서는 이루기를 바랍니다. 김영균도 용기를 잃지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 우리 모두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오늘 하루가 되어야 겠습니다.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해 주시는 따뜻한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 탐진강의 트위터는 @tamjingang 이오니 팔로우를 통해서도 쉽게 글을 구독할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장동건과 고소영의 결혼식은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스타 커플의 결혼이라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 같습니다. 계절의 여왕 5월의 신부를 꿈꾸는 미혼 여자들에게 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조각 미남 장동건과 결혼하며 어떤 신부보다 쾌활한 고소영의 모습은 질투심이 들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것은 자연의 섭리일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은 신성한 것이고 축복해 주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네 인간 세상을 보면 결혼식에서 '검은 머리가 파뿌리되어도 영원히 사랑하며 살겠다'고 맹세한 서약이 헌신짝처럼 내팽겨 쳐지고 헤어지는 경우를 보면 안타깝기도 합니다.

결혼식장에서 누구나 다음과 같은 결혼서약을 합니다.
"저는 ○○○양(또는 ○○○군)을 아내(또는 남편)로 맞아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또는 아내)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다."

톱스타의 결혼이든 평범한 사람들의 결혼이든 마찬가지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순간입니다. 장동건과 고소영의 결혼은 이미 혼기를 넘긴 나이에 결혼한 만큼 더욱 의미가 클 듯 합니다. 부디 남은 평생을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결혼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더보기


장동건-고소영의 결혼식 이야기를 접하면서 우리나라와 해외의 톱스타 결혼이 궁금해 졌습니다. 특히나, 가장 아름다운 톱스타 여배우의 신부 모습은 어떠했을까 호기심이 발동해 찾아봤습니다.  

먼저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신성일과 엄앵란의 결혼이 연예인 톱스타 커플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연예인 스타들이 결혼 서약이 무색하게 쉽게 헤어지는 세태가 비일비재하지만 신성일 엄앵란 부부는 백발이 성성한 시절까지 결혼생활을 잘 유지해오고 있다는 점에서 귀감이 되기도 합니다. 물론 결혼이라는 것이 살다보면 여러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입니다. 신성일 엄앵란 부부도 숱한 고비가 있었겠지만 슬기롭게 극복하고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의지하며 살고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하겠습니다.

                      ▲ 결혼한지 40년이 훨씬 넘은 신성일-엄앵란 부부가 다시 당시를 재연했다

더보기


그리고 1970~80년대 유지인 장미희와 함께 2대 트로이카로 화려하게 이름을 날렸던 배우 정윤희의 결혼생활도 평온하게 잘 유지해오고 있습니다. 정윤희는 모 건설업체 조규영 회장과 결혼한 뒤 소박하고 평범한 주부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얼마나 오래 가겠냐는 대중들의 시선도 있었으나 딸 하나와 아들 둘을 낳고 주부이자 어머니로서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윤희는 결혼 당시 자신이 직접 신부 화장을 했을 정도로 톱스타답지 않은 검소한 모습이 화제가 되었는데 남편도 근검절약하며 사는 모습이 닮았다고 합니다. 

더보기

해외의 스타들은 어떤 신부의 모습이었을까요? 우아한 아름다움 대명사인 그레이스 켈리는 모나코의 레이니에 공과 결혼을 했습니다.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은 그야말로 세기의 결혼식으로 전세계인들에게 화제가 됐었습니다. 결혼 당시 27세로 헐리우드 영화계에서 가장 명성을 날리던 시기였으나 결혼 후 그레이스 켈리는 영구 은퇴를 했습니다. 사진 속의 성대한 결혼식이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느낌입니다.

더보기

또 하나의 레전드급 배우인 오드리 햅번의 결혼도 당시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동료배우 멜 파러와 결혼식은 스위스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가족 친지들만 모여서 조촐하게 거행했습니다. 20인치 개미허리와 귀여운 모습이 인상적이며, 만인의 천사이자 연인으로 불렸던 오드리 햅번의 결혼은 수많은 남성들에게 충격적이었을 듯 합니다. 당시 사진도 없었으나 나중에 세월이 지난 후 측근에 의해 공개된 것이 유일할 정도였습니다.

더보기

또한 세기의 미녀인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결혼도 세계인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당시 힐튼 호텔 후계자였던 니키 힐튼 주니어와 화려한 결혼식을 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 파트라 역을 맡아서인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결혼생활의 순탄치 않아 이혼의 연속으로 지금까지 무려 8번의 결혼을 했을 정도이고 건강도 좋지 않다고 하니 인생무상입니다.

더보기


비비안 리는 만 19세에 결혼을 한 후 나중에 영화배우에 도전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비비안 리라는 이름도 당시 남편이었던 리 홀만의 이름을 딴 것이라 합니다. 원래 이름도 Vivian 에서 Vivien으로 바꾸고 비비안 리로 활동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옷 브랜드 중에 비비안이란 이름이 있을 정도로 비비안 리는 명성을 날린 배우였습니다. 그런데 비비안은 첫 결혼 이후 이혼이 배우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니 아이러니합니다.

더보기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 역으로 단번에 세계적 스타배우 반열에 오른 올리비아 핫세는 청순미의 상징이었습니다. 과연 그녀의 결혼식 모습은 어떠했나 찾았으나 찾지 못했습니다. 줄리엣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간직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뭇 남성들을 설레게 했던 올리비아 핫세에 대해 남자들이 어떤 마음이었지에 대한 방송 토크쇼 일화가 하나 있어 소개합니다.

엄청난 글래머로 인기가 높았던 올리비아 핫세가 결혼을 하고나서 토크쇼에 출연했다.

사회자는 그녀에게 솔직하게 물었다.

"당신의 그 몸매, 솔직히 말해 엄청난 가슴에 반해 접근하는 남자들이 굉장히 많았을텐데 어떻게 이 남자라는걸 알았나요?"

이 남자와 결혼 해야겠다는 확신을 어디서 얻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대담하게도 사회자에게 손을 뻗어 눈을 가린 뒤 물었다.

"내 눈이 무슨 색이죠?"

사회자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물론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초록색이에요."


그리고 그녀는 덧붙였다.

"남편이 지금 그 질문에 대답했던 유일한 사람이었어요."

돈이나 욕심 보다는 진정한 사랑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일화일 것입니다. 왕년의 세계적 미녀 스타들의 신부 모습을 보니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예나 지금이나 오직 자신만을 사랑해주는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평생 오순도순 행복하게 사는 것이 결혼의 참다운 의미일 수 있습니다.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세태가 결혼서약의 의미를 휴지 조각으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정윤희를 비롯한 많은 배우들이 행복한 결혼을 보여준 사례도 많이 있습니다. 오월의 신부가 된 고소영이 장동건과 해로하면서 오래 잘 살기를 바랍니다. 결혼서약의 진정한 의미를 간직하며 축하해주는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길일 것입니다.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해 주시는 따뜻한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 탐진강의 트위터는 @tamjingang 이오니 팔로우를 통해서도 쉽게 글을 구독할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남녀 사이의 결혼이란 예기치 않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오래 사귀던 애인과 헤어지고 방황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것이 오히려 새로운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얼마 전 회사의 중간간부인 저는 부하직원인 K와 단 둘이서 점심을 같이 했습니다.
나이가 30대 초중반이고 부모님의 상황도 잘 알던 직원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처럼 K의 요즘 근황을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나 : "이제 나이도 그렇고 부모님도 결혼 이야기 많이 하겠는데..."
K  : "그래서 오늘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간혹 이런 경우는 신상에 변화가 있다는 것이라 움찔 했습니다.

나 : "무슨 일인데? 말해 보세요"
K  : "저, 결혼합니다."

사실 깜짝 놀랐습니다. K는 3년 이상 사귄 여자친구와 헤어진지 몇개월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 새롭게 다른 여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나 : "뭐라고? 여자친구 사귄지 얼마 안되잖아. 빠르네."
K  : "그렇게 됐습니다. 새로 사귄 여자친구와 마음이 잘 맞고 잘 이해해줘서..."

나 : "축하해요. 그런데 결혼할 여자친구는 어떻게 만났어?"
K  : "사실은 M이예요."

나 : "M이라고. 사내 커플인 거야. 놀라운데. 어떻게 된 일이지?"
K  : "그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M을 만났어요. 회사에서 자주 봐서 그런지 빨리 친해졌어요."

나 : "그래, 잘 됐어요. M은 정말 멋진 신붓감이지."
K  : "결혼식 예식장도 정했어요. 곧 청첩장 나오면 드릴게요."

나 : "잘 결정했어. 조금이라도 빨리 결혼하는 것이 남는 거야. 둘이 잘 어울려. 잘 살거야."
K  : "고맙습니다."

저는 K가 결혼한다는 소식에 기뻤습니다. K는 성격도 좋고 회사 일도 잘하는 직원입니다.
그런데 K는 부모님이 사업 실패로 가정형편이 좋지않아 늘 걱정하곤 했습니다.

K는 원래 3년 이상 사귀던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나이가 6살 연하인 여자친구였습니다.
K는 나이어린 여자친구와 자주 말다툼을 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친구는 아무 때나 전화를 해서 K를 곤란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회식 중에도 K에게 전화해 오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K는 자신을 이해못하는 여자친구가 야속했습니다.
언제 결혼할 지에 대한 기약도 없었습니다. 사실 K에게 헤어지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었습니다.
그 여자친구는 남자가 먼저 결혼에 필요한 재산을 먼저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성격이나 생각의 차이를 이유로 K는 오래 사귀었던 여자친구와 헤어졌던 것입니다.

사내커플하고 싶은 연예인으로 선정된 바 있는 태연과 조인성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한동안 상심하던 K는 사내 여직원을 만났습니다.
그녀가 M입니다. M은 사내에서 S라인 몸매를 지닌 미모의 여직원이었습니다.
K는 사내에서 M과 업무상 자주 이야기를 나눴던 터라 쉽게 친해졌습니다.
물론 K는 용기를 내서 M과 이야기를 했고 M은 K를 이미 알고 있어 그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 것은 진리인가 봅니다.

K는 돈을 모아서 결혼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M을 만난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새 여자친구 M은 돈 보다는 사랑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가정형편도 이해를 해주었습니다.
특히 M이 어르신들께 공손히 잘 대하는 모습이 K로서는 무척 예뻤다고 합니다.

사실 M은 사내 직원들이 모두 아는 여사원입니다.
M이 K와 결혼할 것이란 소문이 퍼지자 남자 직원들은 술렁술렁합니다.
그 동안 남자 직원들은 M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어도 제대로 말을 걸지도 못했습니다.
그녀에게 애인이 있을 것이란 지레짐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내커플이라니 쇼킹한 뉴스였을 것입니다.

퇴근 무렵에 CEO가 제 자리로 왔습니다. 사실 M은 CEO 비서였습니다.
C  : "어떻게 된 건가요?"
나 : "놀라셨지요? 두 사람이 인사드린다고 하던데 만나셨군요. 등잔 밑이 어두운 거잖아요."

C  : "근데 이 부서는 또 사내커플인가?"
나 : "전 부서원의 사내커플화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웃음)"

그랬습니다. 저희 부서는 사내 커플로 결혼이 벌써 3번째입니다.
게다가 세 커플 중 두 커플은 다른 특정 부서에 소속된 직원입니다.
그래서 예기치않게 사돈관계 부서와 결혼 기념 연합회식을 해야 할 판 입니다.
살다보면 대개 어려운 일들이 자신의 주변에서 쉽게 이루어지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지나가던 노총각이 저에게 '어떻게 결혼할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노총각에게 답했습니다.
"파랑새는 가까운 곳에 있어요.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 보세요."

가까운 곳에서 결혼 상대를 찾아라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 인연이 있는 것 같습니다.
멀리서 결혼 배우자를 만나기 보다는 주로 가까운 곳에서 만나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로 상대방을 이해해 줄 수 있고 배려와 존중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또 남녀가 서로 만날 시간이 부족한 현대사회에서 가까운 곳에서 찾는 것은 시간과 노력을 줄여줍니다.  

그래서 미혼남녀들은 자신의 주변을 잘 살펴봐야 할 듯 합니다.
다만 간절한 마음으로 용기를 갖고 찾아야 이루어질 확률이 높아질 것 같습니다.

파랑새 이야기


벨기에의 문학자 메어테루 링크가 쓴 희곡 가운데 '파랑새'라고 하는 유명한 희곡이 있습니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전날 밤 나무꾼의 두 어린 남매가 꿈을 꿉니다.
꿈속에서 요술쟁이 할머니가 나타나더니 파랑새를 찾아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두 남매는 행복의 파랑새를 찾아서 멀리 여행길을 떠납니다.
죽음의 나라를 두루 살피고 또 과거의 나라를 빙빙 돌아다니고 미래의 나라도 가보고
행복의 나라를 두루두루 돌아다닙니다.

그러나 행복의 파랑새를 그들은 아무데서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자기 집에 돌아와서야 집 문에 매달린 새장 안에서 비로소 행복의
파랑새를 찾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파랑새는 행복(또는 사랑)을 상징합니다.
행복과 사랑은 우리 옆에 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영화와 소셜네트워크게임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을 연상하게 하는 첩보전 무한도전 '꼬리잡기'가 정형돈 팀의 최종 승리로 막이 내렸습니다. 쫒고 쫒기는 추격전 속에서 긴장감과 박진감이 돋보였고 무한도전 7명 멤버들의 개성과 특징을 엿볼 수 있는 재미가 어우러진 프로였습니다.

어찌보면 '꼬리잡기'는 단순한 게임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꼬리잡기 게임은 학창시절에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추억의 게임이었습니다. 우리가 친숙한 놀이문화 중의 하나였던 셈입니다. 또한 동네 어귀에서 아이들과 즐겨하던 술래잡기 게임도 맥락을 같이 합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남녀가 '나 잡아봐라'하며 놀기도 합니다. 남들이 보기엔 유치한 사랑놀이일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가장 즐거운 시간일 것입니다.
 
무한도전은 이처럼 사람들 모두에게 존재하는 추억의 놀이를 끄집어 냈습니다. 그저 단순할 것 같은 꼬리잡기를 엄청난 기획력을 가미한 하나의 버라이어티로 승화시켰습니다. 광화문에서 여의도공원, 장한평 중고차시장, 반포 한강고수부지 등에 이어 MBC드림센터까지 이어지는 대장정이었습니다. 방송된 분량에 비해 실제 무한도전 멤버들과 제작진이 흘린 땀과 노력은 엄청난 셈입니다.

추억의 꼬리잡기 놀이란?

여러 사람이 각각 앞 사람의 허리를 잡고 줄지어 머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상대편의 꼬리를 잡는 전통놀이입니다. 머리와 꼬리 역할을 하는 사람이 특히 중요합니다. 

청팀  (머리)-(ㅇ)-(ㅇ)-(ㅇ)-(ㅇ)-(ㅇ)-(꼬리)
홍팀  (머리)-(ㅇ)-(ㅇ)-(ㅇ)-(ㅇ)-(ㅇ)-(꼬리)

즉, 각팀의 머리 역할을 하는 사람가  상대팀의 꼬리를 잡으면 이기는 게임입니다. 중간에 앞에 있는 사람의 허리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머리는 뒤 따라오는 사람들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잘 리드하며 상대팀을 쫓아야 하고 꼬리는 상대팀의 머리를 피해 신속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꼬리의 경우는 너무 천천히 움직이면 잡힐 우려가 있고 너무 빠르게 움직이다 보면 앞 사람을 놓쳐 줄이 끊어질 우려가 있어 상대팀과 자기 팀의 움직임을 잘 파악해 움직여야 합니다. 


진정한 승자는 노홍철-정준하 콤비였다
 

사실상 이번 무한도전 '꼬리잡기'는 노홍철을 위한 무대처럼 보였습니다. 전체 게임의 법칙을 훤히 꿰뚫고 빠른 두뇌회전으로 경쟁자들의 흐름을 주도한 것은 노홍철이었습니다. 게다가 정준하는 노홍철에 붙잡힌 이후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했습니다. 육중한 몸을 이끌고 땀을 흠뻑 흘리며 뛰는 정준하였습니다. 노홍철이 상대방의 의도나 흐름을 읽는 지략이 뛰어났다면 정준하는 그야말로 부하로서 충실했던 것입니다.

노홍철은 사기꾼의 이미지가 있어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기도 하지만 이번 무한도전 꼬리잡기에서 보여준 머리회전과 실행력 그리고 깨끗한 매너는 훌륭했습니다. 정준하는 바보 이미지가 있지만 굴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게임의 룰에 가장 충실하게 따른 셈입니다. 그래서 이번 꼬리잡기에서 노홍철과 정준하 콤비는 최고였습니다.



그러나 박명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질체력으로 방송 내내 고전했습니다. 유재석에게 붙잡힌 이후에는 아예 태업 분위기였습니다. 쫒기는 유재석은 다급한데 박명수는 느릿느릿 했습니다. 박명수 보다는 조금 낫지만 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잡은 자가 진리이며 잡힌 자는 복종한다'는 게임의 룰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만일 유재석이 붙잡은 박명수와 길이 최선을 다했다면 최종 결과는 달라졌을 수도 있었습니다.
 
정형돈 결혼 선물이 된 승리, 제작진도 도왔다

정형돈은 9월 13일 오늘 방송작가인 한유라 씨와 결혼합니다. 그래서 정형돈이 최종 승리한 것은 결혼 선물이 된 셈입니다. 실제로 방송 제작진은 정형돈에게 다소 유리한 진행을 보여주지 않았나 생각도 듭니다. 이미 반칙으로 정형돈은 패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꼬리를 무한콜센터에 두고 다닌 것는 반칙패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노홍철이 유재석 마저 붙잡으면서 최종 승자는 노홍철로 될 것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노홍철은 충직한 부하 정준하를 비롯해 유재석 박명수 길 등을 모두 자신의 팀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정형돈은 전진과 단 둘이었습니다. 수적으로 매우 불리한 정형돈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재석과 박명수 길은 노홍철에 붙잡히고도 정형돈을 도왔습니다. 그리고 노홍철은 꼬리를 빼앗겼습니다. 반칙이었습니다. 게임의 룰에 어긋난 행동이었습니다.


 

승부가 애매해지자 제작진은 MBC드림센터 옥상의 헬기착륙장에서 최종 승부를 가렸습니다. 원조 전통놀이 꼬리잡기로 승부를 가리기로 했습니다. 2명 밖에 없던 정형돈은 명작가 제영재PD 코디 등 3명을 제작진 3인을 배정받았습니다. 원칙적으로 2대 5의 경기여야 했지만 정형돈을 특별 혜택을 받은 것입니다. 꼬리잡기를 하던 중 정형돈은 앞 사람을 놓치고 넘어졌고 발목을 다쳤습니다. 어쩄든 정형돈은 손을 놓쳤기에 게임에서 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게임은 정형돈 없이 계속 되었습니다. 중간에 길의 옷이 찢어지고 박명수의 바지 단추가 떨어지면서 경기에서 빠졌습니다. 결국 정형돈 팀은 마지막에 전진이 노홍철의 꼬리를 잡음으로써 최종 승자가 되었습니다. 정형돈은 한우꼬리세트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결혼 축하 선물을 받는 듯 했습니다. 노홍철은 항의도 했을 만 하지만 묵묵히 정형돈의 승리를 축하했습니다. 정형돈이 과거와 달리 경기에서 최선을 다한 것은 높이 살만 합니다. 결국 정형돈은 결혼을 앞두고 좋은 활약 속에서 결혼식 축포를 쏜 결과가 되었습니다.


정형돈은 9월 13일 오늘 오후 2시 서울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센터에서 결혼식이 있습니다. 정형돈은 4살 연하의 방송작가 한유라 씨와 결혼을 합니다. 정형돈과 한유라의 이날 결혼식은 특이하게 주례가 없이 실시된다고 합니다. 
우선 결혼식 1부 사회는 유재석이 보는데 무한도전팀의 끈끈한 의리를 느끼게 합니다. 그리고 2부 사회는 전현무 KBS 아나운서가  맡고 가수 김종국과 바다가 축가를 부른다고 합니다.

혹시나 우결에서 함께 했던 소녀시대 태연이 축가를 하지않나 했지만 계획에 없다는 것에 아쉬워 하는 팬들도 있나 봅니다. 나호열 시인이 정형돈-한유라 예비부부의 행복을 빌며 축시를 낭독하기도 한답니다. 정형돈 한유라 커플은 결혼식 후 하와이로 허니문 신혼여행을 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형돈은 무한도전을 통해 인기도 얻고 이를 발판으로 예쁜 신부도 얻은 셈이 되었으니 잊지못할 프로그램으로 평생 남을 듯 합니다.

무한도전은 김태호PD를 비롯한 유재석 박명수 등에 이어 정형돈도 결혼을 하게 되어 이제는 무한도전 유부남 클럽이 형성된 것 같습니다. 그 만큼 무한도전이 오랜 시간 동안 시청자들에 사랑받았다는 것을 증명해 줍니다. 단기간에 막을 내리는 예능 프로가 많은 요즘에 무한도전이 5년여 동안 오래 사랑받았던 것은 김태호PD 등 제작진의 기획력과 함께 헌신적인 무한도전 멤버들이 있었기 때문일 듯 합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언제나 노력하는 무한도전에 무한한 애정을 쏟아주었던 것도 큰 자산일 것입니다.

정형돈 한유라 커플의 결혼을 축하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타블로-강혜정 커플이 공식적으로 10월 중 결혼할 예정이라고 밝혔했습니다. 지난 2월에 타블로는 강혜정과의 열애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힌 이후 그 동안 방송과 미니홈피 등을 통해 애정을 과시해왔다는 점에서 타블로다운 솔직한 심경 고백 발표라고 생각됩니다.

타블로와 강혜정은 지난해 말부터 연애를 시작하면서 서로의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타블로와 강혜정 커플은 지난 해 연말에 펼쳐진 에픽하이의 연말 콘서트 장에서 처음 만나 호감을 가지고 교제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강혜정이 평소 에픽하이의 음악을 좋아했는데 지인들과 에픽하이 공연장을 찾았고 뒷풀이 장소에 자연스럽게 동행하면서 타블로와 사랑이 싹트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타블로가 강혜정과의 결혼을 내년 상반기 경으로 생각해 온 것으로 예측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결혼을 앞당기게 됐습니다. 이는 강혜정이 임신 5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속도위반인 셈입니다. 타블로는 강혜정이 임신이라는 점도 공식 발표했습니다. 솔직하고 당당하게 열애 사실부터 시작해 임신과 결혼에 이르기까지 밝히는 타블로의 자세는 숨기기에 급급했던 기존 연예인과 차별화되는 것 같습니다. 책임감있고 멋진 남자, 타블로를 느끼게 합니다.

예비 아내 강혜정을 위해 타블로의 당당한 임신 공개 '신선'

그래서 타블로는 네티즌과 팬들로부터 좋은 평가와 함께 축하 메시지가 쇄도하나 봅니다. 힙합그룹 에픽하이 타블로와 배우 강혜정의 결혼 발표 이후 수만명이 에픽하이 홈페이지인 맵더소울닷컴 게시판과 미니홈피를 방문해 축하를 보내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대부분이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이다" "행복하게 잘 살기를 바란다" "타블로가 책임감있고 믿음직스럽다" 등 두 사람의 결혼을 축복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갑작스런 결혼 발표 소식에 놀라면서도 두 사람의 결정에 박수를 보내며 타블로가 강혜정의 평안함을 위해 결혼 발표를 한다는 것에 책임감을 느낄 수 있어 믿음직스럽다는 것입니다.


 

현재 타블로와 강혜정은 양가 인사와 함께 결혼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합니다. 양가 부모와 가족은 물론 친구 그리고 팬들의 축복을 받고 당당하게 결혼하는 타블로와 강혜정 부부 탄생이 얼마 남지 않은 셈입니다. 이미 예비 아빠 엄마인 두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솔직하게 팬들과 네티즌들 그리고 대중들에게 밝히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타블로는 정형돈의 결혼 축하를 위해 전자깡패 노래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제는 자신이 축하를 받아야 할 듯 합니다.

당당하고 책임감있는 타블로의 발표에 결혼 축하 메시지 쇄도

그 동안 타블로와 강혜정은 음악적 취향은 물론 사진 등 여러가지에서 서로 공통적으로 통하는 점이 많았다는 점에서 연애 과정은 물론 결혼 생활도 행복할 것이라고 봅니다. 타블로는 지난 8월 6일 에픽하이의 공식 홈페이지에 마련된 블로그를 통해 속도위반 가능성을 보여준 바도 있습니다. 지난 8월 초 다녀온 일본여행에서 강혜정과 다정히 찍은 사진을 공개한 바 있는데 이것이 예비 허니문 여행이 된 셈입니다.

타블로는 소속사를 통해 결혼 발표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타블로는 강혜정과의 결혼 소식과 임신이 꿈만 같다며 두가기 소식을 동시에 전했습니다. 타블로는 강혜정과의 첫 만남부터 첫 눈에 반했고 그것이 운명임을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 타블로의 세심하고 자상한 마음을 읽게되는 대목입니다. 예비 아내이자 엄마를 향한 타블로의 책임있고 따뜻한 사랑을 듬뿍 느끼게 됩니다.

타블로와 강혜정은 내년 중순 쯤에 아이를 낳게 될 것이라 합니다. 내년 5~6월경이면 아빠 엄마가 되는 셈입니다. 타블로는 아이가 엄마를 닮아야 한다며 애교있고 위트있는 메시지도 전했습니다. 타블로도 밝혔듯이 세상 그 어느 부부들과 다를 것 없이,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를 지켜주며 열심히 살겠다고 했으니 정말 잘 살기를 바랍니다. 두 분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타블로의 결혼 발표 전문]

결혼 예정임을 알려드립니다!

꿈만 같은 두 소식을 동시에 전하게 됐네요. 첫 눈에 반해 저의 운명임을 알게 된 혜정이와 올해 가을에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둘, 내년 중순쯤 이쁜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될 겁니다!

내년에 결혼 할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최근에 알게된 반가운 소식에 결혼식을 좀 더 일찍 하고 싶어 준비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올해 초 저와 제 동료들이 독립 회사를 만든 후 수많은 어려움들을 겪었어요. 때론 일 때문에, 때론 개인적인 문제들로. 그럴 때마다 혜정이가 매순간 저의 버팀목이 되어줬어요. 본인도 일이 많았기에 쉽지 않았을텐데, 밤새 일하는 저와 제 동료 모두를 매일 매일 챙겨줬고 저의 꿈을 자신의 꿈으로 삼아 늘 위로해주고 응원해줬어요. 매사에 저를 아껴주고 배려해주는 그녀의 마음 덕분에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 저에겐 세상 그 무엇보다 제가 사랑하는 사람의 평온함이 우선입니다. 혜정이가 조금이라도 더 마음 편히 저와 함께 할 미래를 준비할 수 있길 바라며 이 소식을 전하는 겁니다.

행여나 언론의 지나친 관심이 혜정이에게 스테레스를 주게 될까봐 걱정도 되지만, 너무나도 행복한 소식인 만큼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많은 이들의 축복이 그녀에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부디 많이 축복해주세요!

아이가 엄마를 닮아야하는데... 꼭 그러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 그 어느 부부들과 다를 것 없이, 서로를 아낌없이 사랑하고 힘든 일이 있어도 서로를 지켜주며 열심히 살겁니다! 많은 축복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타블로는 이 날 오후 3시에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모두들 축하해줘서 고맙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편+아빠가 되겠다”고 영어로 감사의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타블로는 3일전인 9월 2일에도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고 밝혀 궁금증을 자아냈는데 이 날 강혜정과의 결혼 발표가 된 셈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영화배우 장진영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배우 최진실 장자연 등 죽음에 이어 사회적으로 또 하나의 잔잔한 파장을 주고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충격적인 사망 소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수환 노무현 김대중 등 국가적으로 명망있는 사회지도자들의 서거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었는데 국민들의 뇌리에 남는 배우들의 죽음 또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결국은 우주의 작은 먼저처럼 사라져 갈 인생이기에 늘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의 사람들과 하루를 보다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장진영의 사망은 영화같은 사랑과 결혼을 한 남편 김영균 씨가 있어 사람들에게 더욱 안타깝고 가슴 뭉클하게 합니다. 영화 '국화꽃 향기'는 여자 주인공은 장진영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어 또한 현실 속의 슬픈 이야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 이모부는 국화꽃 향기의 이야기 처럼 이모가 아이를 낳은 직후 사망한 후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있어 남의 일 같지가 않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영화 '라스트 콘서트' 이야기는?

그리고, 장진영은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 김영균과 함께 가수 김건모의 전국투어 전주 콘서트를 지난 5월 마지막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마치 영화 '마지막콘서트'처럼 사랑하는 두 남녀는 그렇게 둘 만의 애틋한 사랑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장진영이 이승에서 가본 마지막 콘서트가 되었습니다. 장진영은 김건모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바도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마지막 콘서트였던 셈입니다.

한편 장진영의 사연은 이탈리아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감동을 떠올리게 하게 했습니다. 미국의 컨트리 팝가수 존 덴버 주연의 영화 '션샤인'과 더불어 불치병 환자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피아니스트 리처드(리차드 존스 분)가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스텔라(파멜라 빌로레시 분)를 위해 '스텔라에게 바치는 곤첼로'를 작곡하여 파리 교향악단에 초연을 하게 됩니다.



그 음악은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리처드에게 순수한 소녀 스텔라가 보내준 용기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텔라는 갈채로 뒤덮힌 무대의 객석에서 리처드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는 영화입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스텔라를 위한 곤첼로(스텔라를 위한 협주곡)'은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지금도 영화와 음악은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남자친구 김영균과의 가슴 뭉클한 결혼 사연

장진영의 남편도 고등학교 시절 기타와 드럼을 치던 음악 로맨티스트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콘서트는 남편 김영균이 장진영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 김영균 씨는 제15대 국회 부의장 출신인 김봉호 전 국회의원의 차남으로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건설 분야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진영을 향한 남편 김 씨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식을 줄 모르고 더욱 불타올랐던 것 같습니다. 음악을 좋아한 로맨티스트 김영균의 순수한 사랑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 김 씨는 지난해 9월 처음 만난 후 장진영의 생일인 지난 6월 14일에 프러포즈를 한 후 지난 7월 26일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지난 8월 28일 혼인 신고를 마쳤다고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도 없이 둘만의 결혼식이 마지막 여행이 되었던 셈입니다. 어쩌면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 이야기인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눈물겹고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

남편 김 씨는 "내가 곧 그녀, 그녀가 곧 나였습니다. 혼자 보내게 된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고인의) 가는 길에 힘이 되고 싶었고 가슴 속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현실에서 못다한 사랑, 하늘에서나마 아름다운 결혼 생활로 이루고 싶었습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미 죽음을 예견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힘이 되어주고 꿈 속에서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계속 사랑을 하고 싶어 둘 만의 결혼식을 했다는 것에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김 씨는 재산 상속도 장진영 부모에게 위임했고 상주도 장진영 아버지가 맡게 된다고 합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김 씨 같은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도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배우 장진영의 죽음은 지난 2003년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위암으로 죽은 여주인공 민희재와 놀랍게 흡사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 속 남편 인하는 라디오에 보낸 사연을 통해 "내가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나만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삶이 살아 있는 시간은 당신과 함께할 때 입니다"라며 슬퍼했듯이 말입니다. 현재 장진영의 남편 김 씨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끝까지 장진영과 함께 한 남편 김 씨가 용기를 잃지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영화 보다 더 슬퍼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준 장진영이었습니다. 비록 이승에서 못다한 꿈과 사랑을 하늘나라에서는 이루기를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진영의 입관식에 참석한 남편 김씨의 비통한 모습(좌)과 장진영과의 결혼 커플 반지를 낀 모습(우)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남자 K와 여자 S는 다시 행복한 시간을 되찾았습니다. 그 동안 극구 반대하시던 여자의 어머니가 이제는 두 사람이 사귀는 것을 인정했으니 걸림돌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부모는 걱정하지 말라고 큰 소리 쳤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전편을 못본 분은 아래 두 편을 보시면 됩니다.)
[1편] 술취한 남친 부축해 여관행, 엄마에 발각
[2편] 장모님이 밥 잘 먹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

(이 내용은 1990년대 중반에 있었던 실화를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남자는 시골에 살고 계신 자신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어머니, 저 이번에 내려갈게요."
"아들아, 웬 일이냐? 갑자기 내려온다니."

"예. 결혼할 여자 소개시켜 드릴려구요. 함께 내려 갈게요."
"그래. 어서 오너라. 여자 사귄다고 하더니 잘 됐구나."

남자가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어머니가 이야기를 계속 했습니다.
"얘야. 그런데 여자 나이가 몇 살이냐?"
"그건...예...(머뭇)... 저랑 동갑, 동갑이예요."

"그렇구나. 너도 알다시피 내가 사주팔자를 볼 줄 알잖아. 너는 4살 아래가 딱 좋던데. 연상은 안되고..." 
"아, 예. 동갑은 좋을 거예요. 하하."

"내가 사주팔자 결혼 궁합을 다시 봐야 겠다."
"그러세요. 그럼 다음 주말에 여자와 함께 내려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남자는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한 후 불안해 졌습니다. 어머니는 오래 전에 독학으로 사주팔자 보는 법을 공부해 시골 마을에서 꽤 알려진 분이었습니다. 전문적으로 사주팔자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마을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봐주곤 했습니다.

어느 대학교 앞에서 남자는 여자는 만났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여자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S야, 다음 주말에 함께 시골 부모님께 가는 것 알지?"
"응, 그래. 그런데 내 나이 부모님이 알고 있어?"

"어머니에게 동갑이라고 했어. 그냥 동갑으로 하면 돼."
"그래도 그렇지. 언젠가 어머니가 사주를 볼 줄 아신다고 했잖아. 괜찮을까?"

"괜찮다니까. 넌 동안이잖아. 얼마 전 우리 친구들과 만났을 때 4살 적다고 했는데 진짜로 전부 속았잖아."
"그렇지만 부모님에게 이렇게 속이면서 결혼하려고 하니 마음에 걸려. 너무 속상해."

(사실 1990년대 초반에만 해도 연상의 여자와의 결혼이 흔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대학교 앞으로 지나 걸었습니다. 여자는 막상 결혼을 결심하고 남자의 부모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간다고 하자 자신감이 없어졌습니다. 여자는 우울해 졌습니다.남자의 어머니가 사주팔자를 본다면 연상의 여자는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여자는 남자에게 다시 말문을 열었습니다.
"K야, 정말 괜찮을까? 사주가 안좋으면 어머니가 분명 반대할 것 같아서 그래."
"왜 그래. 나만 믿어. 괜찮아. 우리 둘이 결혼하는 거잖아. 신경쓰지 마."

"그래도 부모님도 중요하잖아. 반대하는 결혼을 한다면 나도 불행하잖아. (흑흑)"
"왜 울어. 괜찮다는데. 뚝 그쳐. 그러면 우리 여기서 사주 보자."

"안좋게 나오면 어떡해? 너무 불안해."
"그럼 어쩌라고. 좋게 나올 거야. 그렇게 불안하면 사주 봐서 좋게 나오면 되잖아."


남자와 여자는 그렇게 근처의 보살집(?)에 사주를 보러 갔습니다. 그야말로 용하다고 소문난 집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사주를 보는 남자와 여자였습니다. 미신이라며 한 번도 거들떠 보지않던 사주를 보게 될 줄 몰랐습니다. 보살은 쌀을 이용해 점궤를 봤습니다. 마침내 보살이 입을 열었습니다.
"두 사람 사주 궁합이 좋아. 두 사람이 결혼하면 잘 살아. 그리고 두 사람이 같이 사업을 해도 더 좋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드디어 환하게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보살집에서 나온 남자는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거 봐. 사주가 좋을 거라고 했잖아."
"정말 다행이다. 대개 불안했어. 나쁘게 나올까봐."

"나도 그랬어. 이제 시골에 가는 일만 남았네."
"그래. 부모님이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주말이 찾아왔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시골에 갔습니다. 어머니는 반갑게 맞이 했고 아버지는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계셨습니다. 여자를 부모님께 소개시켜 드리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행히 나이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아 안도의 한 숨을 쉬었습니다. 시골 집에서 하루 밤을 묵고 다시 서울로 왔습니다. 서울로 오면서 남자는 여자에게 "거봐, 아무렇지도 않잖아."하면서 그 간 걱정을 씻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몇 달 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갔습니다. 두 사람은 그 동안 결혼에 이르기까지 있었던 여러 사건과 걱정들을 모두 잊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신혼여행 후 부모님께 인사드리기 위해 다시 시골에 들렀습니다. 어머니가 아들과 단 둘이 있을 때 조용히 말을 꺼냈습니다.
"아들아. 신부가 너 보다 2살이 많은 것 알고 있어."
"(헉)... 동갑이라고 했잖아..."

"나는 다 알아. 뭘 그걸 숨기고 그러냐. 이제 결혼했으면 됐지. 안 그러냐?"
"헉. 그런데 어머니가 어떻게 그걸 알고 있지. 아무에게도 말안했는데..."

"그건, 너랑 S가 처음 인사하러 왔을 때 떨어져있는 신분증을 우연히 봤어. 그 날 피곤했는지 핸드백을 거실에 두고 자러 갔더라. 그런데 핸드백에서 주민증록증이 빠져나와 있었던 거야."
"이럴 수가... 그런데 어머니는 연상이면 사주 궁합이 안좋다고 했잖아요." 

"사주가 사랑보다 소중하겠니. 아들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지."
"역시 우리 어머니. 고마워요. 그런 줄도 모르고 몰래 사주봤는데..."

그랬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결혼 전부터 며느리가 나이가 더 많은 연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을 위해. 그리고 남자의 어머니는 며느리와 늘 다정다감하게 대했습니다. 며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오히려 찰떡궁합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딸 둘을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습니다.

바로 여자는 지금의 제 아내입니다.

(사주팔자를 맹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둘이 얼마나 사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남자와 여자의 연애나 결혼에 있어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친구의 약 20년전 이야기입니다. A군은 군복무를 제대한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A군은 머리를 식히고 싶었습니다. 잡자기 어디론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역으로 가서 야간 기차를 탔습니다. 좌석은 매진되어 입석표였습니다. 빈좌석에 무작정 앉았습니다. 기차 창밖으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A군이 앉아있던 좌석의 곁을 한 여자가 잠시 주춤하다가 지나갔습니다. A군은 좌석의 주인이 나타난 것은 아닌가 가슴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당돌한 직장 여자와 대학 복학생, 기차에서 만나다

조금 후 지나갔던 한 여자가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창밖을 보고있던 A군에게 여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자리 있어요?"  
"모...르겠는데요."

A군은 앉았던 자리 옆의 책가방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놨습니다. 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몇학년?"
"삼~ 삼학년"

"몇학번?
"팔육 학번"

"나랑 같은 학번이네. 난 B양이야. 우리 친구하자. 넌 이름이 뭐니?"

당돌한 B양이었습니다. A군은 B양이 당돌하고 신기했습니다. 처음에 무뚝뚝하던 A군은 B양의 나긋나긋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A군과 B군의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둘 다 기차 입석표를 샀는데 좌석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A군과 B양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B양은 기차가 대전역 부근에 도착하자 우표 5개를 핸드백에서 꺼냈습니다.
"난 여기서 이제 내려야 해. 넌 의무적으로 나에게 우표 5개 만큼 편지를 해야 해."
"알았어. 잘 가"



서울의 A군과 대전의 B양은 그 후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A군은 학보가 나오면 편지를 함께 넣어 보냈습니다. B양은 자주 편지를 학교로 보냈습니다. 직장인이었던 B양은 주말에는 A군이 공부하던 대학 도서관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B양은 식사를 사주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A군의 B양의 호의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자신이 B양에게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A군은 4학년이 되었습니다. B양은 서울에 올 때 마다 A군이 공부하던 도서관에 나타났습니다. B양은 A군에게 늘 용기를 주는 말을 했습니다. A군은 B양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 시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A군이 노리던 정부투자기관 입사에 실패했습니다. A군은 입사를 하면 B양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군은 취업에 실패하고 다른 기관에 도전해야 했습니다. A군은 B양에게 미안했습니다. B양은 A군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A군은 대학 졸업 후에도 백수였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던 정부투자기관 시험에 낙방 후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실시된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B양이 대전에 잠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B양은 직장을 그만 두고 유치원을 개업하기로 했는데 개업 준비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던 A군은 B양의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과 부잣집 딸의 슬픈 이야기의 결말은?

그런데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 위해 A군이 가보니 B양과 그녀의 남동생 그리고 친척 동생들이 와 있었습니다. A군은 쑥스러웠지만 열심히 일을 거들었습니다. 저녁에는 B양의 남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B양과 저녁에 데이트를 했습니다. B양은 말을 꺼냈습니다.
"나 내일 선본다."
"그래."

B양이 선본다는 말에 A군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아직 백수인지라 B양을 위해 뭐라 해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B양은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B양과 남동생에게 별도로 아파트를 얻어주었습니다. 그 날 밤 A군은 B양의 남동생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A군은 대전역으로 갔습니다. A군이 떠나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역 앞에서 B양은 다시 말했습니다.
"여기 근처에서 선보기로 되어 있어."
"그렇구나. 좋은 사람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A군과 B양은 역에서 헤어졌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A군은 자신의 초라한 처지가 슬펐습니다. 그래서 B양의 맞선을 단념시키지도 못했습니다. A군은 서울에 올라 와 모 대기업 입사시험을 봤습니다. 대기업은 가기싫었지만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그 후 대기업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려고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군에게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그 우편물은 B양의 결혼식 청첩장이었습니다. A군은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B양은 그 당시 선본 남자와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B양이 선본다고 했을때 붙잡지 못한 자신이 후회되었습니다. 아직 백수인 자신의 입장에서 B양에게는 불행할 수도 있어 B양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직하면 B양을 다시 만날 것이라 다짐했었던 것입니다.

A군은 곧바로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 마지막 날이 B양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결혼식 장소가 수원이었습니다. A군의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A군은 퇴소식 날 고민했습니다. A군의 연수원 버스는 수원역에 내려주었습니다. B양의 결혼식을 곧 앞두고 있었습니다. A군은 결국 B양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운명은 그렇게 A군과 B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A군과 B양은 왜 결혼할 수 없었을까?
남자는 직장을 먼저 구해 여자친구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선보다는 것이 단지 미팅 정도로만 다소 가볍게 잘못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맞선본다는 고백이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해달라는 마지막 요청이었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남자는 자존심 상 초라한 자신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맞선본다고 했을 때 붙잡았어야 했지만 남자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그러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일구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적극적이고 당돌한 모습에 다소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한 남자와의 결혼이 사랑이 먼저일 것이지만 결국 현실 앞에 나약해질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바라보는 맞선의 차이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대학 동창생들과 만났습니다. 그 동안 대학 시절의 같은 과 친구들의 안부를 묻고 즐거운 한 때를 보냈습니다. 자리에는 참석은 못했어도 조금씩 소식을 모아보면 친구들의 근황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식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캠퍼스커플이 되어 무려 4년 동안 마치 잉꼬부부처럼 붙어다녔던 동창들이었습니다.

그들 두 사람의 소식을 모를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었습니다. 남학생 L과 여학생 H는 우연히 캠퍼스커플이 되었습니다. 대학교 입학 후 신입생들끼리 함께 종로에 있는 디스코텍을 갔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디스코텍을 나오는데 H가 핸드백이 없어 당황하고 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본 L은 기사도를 발휘해 끝까지 H의 곁에 남아 결국 핸드백을 찾아주었습니다. L과 H는 곧바로 친해졌고 캠퍼스커플이 되었습니다.

L과 H는 그 날 이후 항상 함께 캠퍼스를 배회했습니다. 도서관에도 함께 가고, 수업 시간에도 늘상 짝꿍이었습니다. 그런데 컴퍼스커플은 과모임에는 거의 나타나지는 않았습니다. 대학 같은 과 동창임에도 불구하고 모임에 잘 나타나지 않는 L과 H는 이방인처럼 되어 갔습니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항쟁이 치열하던 캠퍼스에서 L과 H의 애정 행각은 학생들에게 사치로 비추어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남학생들은 1학년 혹은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습니다. L은 H와 헤어지는 것이 싫어 학군단인 학군장교(ROTC)에 지원했습니다. 학군장교가 되면 대학 4년 동안 H와 계속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군장교는 대학교 4학년까지 대학에서 공부와 훈련을 함께 병행하는 방식이라 대학 졸업시까지는 캠퍼스커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대학 4학년이 되었고 여름 방학이 되었습니다. L은 슬퍼하는 H를 뒤로 하고 학군장교 훈련을 받으러 군대에 갔습니다.

L은 H와 대학 4년 동안 캠퍼스커플로 지내는 동안 지극정성이었습니다. L은 대학생활을 오직 H만을 위해 보낸 것이라 다름없었습니다. 그래서 L은 남학생들과 친해질 기회도 없었습니다. H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여학생들과 어울릴 시간이 없어 그들과 멀어졌습니다. L과 H는 대학 4년동안 어쩌면 다른 학생들에게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L이 대학 4학년 시절 학군장교 훈련을 받으로 입대한 이후 H는 복학생 선배인 K와 급속도로 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H는 L이 잠시라도 훈련받으로 간 시간마저도 외로웠습니다. 대학 4년 동안 항상 같이 다녔던 L이 없어진 빈자리는 너무 컸습니다. 대학 동안 만난 사람은 L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복학생 K와 이야기하면 듬직하고 위안이 되었습니다.

복학생 K는 같은 과 선배였습니다. K는 우리 학번의 남학생들과도 친했습니다. 선배 K는 남녀 후배들에게도 친근하게 대했습니다. 그래서 선배 K가 H와 만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러웠습니다. 선배 K는 후배들과 술자리나 모임에도 적극 참여하는 편이었습니다. K가 H와 함께 모임에 참석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모두에게 다정한 선배였던 K인지라 우리 남학생들도 둘의 관계가 깊은 사이라는 것을 의심하지는 못했습니다.

ROTC 학군단이란?
대학생 중에서 선발하여 대학생활과 병행해 2년간의 군사훈련을 거쳐 졸업과 동시에 학사장교로 임관하는 제도입니다. 지난 1961년 학도군사훈련단으로 창설되었고 1971년 학생군사교육단(학군단)으로 명칭을 바꿨습니다. 미군의 제도를 모방해 만든 것입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장학금·월수당 등의 특혜부여와 학생들의 규율생활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여 ROTC 지원율은 높은 편입니다. 한국은 군초급장교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하여 ROTC 제도를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습니다. 학군단 입단 자격은 대학 3학년부터 부여되며, 교육과정은 교내 교육과 병영훈련으로 구분하여 실시되고 있습니다.


L이 4학년 여름방학에 학군장교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으나 H는 예전과 같지 않았습니다. L은 H가 조금 달라졌지만 선배인 K와 관계를 알지 못했습니다. 4년 동안 사귄 H가 자신에게서 멀어질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학 4년 생활이 끝나갔습니다. 이제 L은 학사장교로 입대하게 되었습니다. H를 위해 대학 4년을 몰빵(?)한 L. 그러나 시간은 지나고 L은 군대에 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L이 ROTC 학군장교로 군대에 가는데 여자친구 H는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무덤덤하게 잘 다녀오라는 식이었습니다. L은 이상했지만 휴가 때 만날 것을 기대하며 입대했습니다. 그것이 L에게는 마지막이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H는 이미 선배 K에게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L이 입대한 이후 H는 선배 K와 노골적으로 커플이 되었습니다. H를 아는 우리 과 친구들은 H의 비정한 애정행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 동안 친근했던 선배 K에 대해서도 비난의 목소리가 컸습니다. 그럴수록 선배 K와 H는 더 급격하게 가까워졌습니다. 주위의 시선이 따가워질 수록 선배 K와 여학생 H는 둘 만이 의지가 되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도 K와 H의 관계는 더욱 깊어갔습니다. 그리고 선배 K는 H와 결혼을 했습니다. 설마 했던 우리 과 친구들은 놀랐습니다. K와 H는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K가 대기업 미국 지사에 발령이 나서 신혼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것입니다. 갑자기 대학 4년 동안 일편단심 H만을 사랑했던 L이 불쌍해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소식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는 H도 잃었고 대학 동창들도 잃었습니다.
 
동창생이던 남학생 L과 여학생 H, 그리고 복학생 선배 K의 삼각관계는 이렇게 결말을 맺었습니다. 결국 H를 사이에 두고 동창생 L과 복학생 K의 대결(?)은 K의 승리가 된 셈입니다. L은 군대가는 것 마저 늦추어가면서 H에게 헌신을 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복학생 선배에게 H를 빼앗긴 것입니다. 당시 학군장교로 군대에 갔던 L의 상심은 컸을 것입니다. 그러나 L은 친구들도 없었습니다.

L의 입장에서는 여자친구 H도 잃었고 동창생들도 모두 잃었고 선후배들도 잃었습니다. 꿈많던 대학생활도 잃은 셈입니다. 물론 H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지만 H는 남편이 된 K를 얻었습니다. 선배 K는 아내인 H를 얻었습니다. K가 잃은 것은 거의 없었기에 최대 수혜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동창들에게는 결코 유쾌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같은 과에서 벌어진 남녀 캠퍼스커플의 삼각관계는 그렇게 결말을 맺었고 그 후 우리들은 L과 H, 그리고 K를 만날 수 없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몇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커플이라고 하더라도 동창들과 어울려 지내면 더 좋겠습니다.
여자를 사이에 두고 대학 선배와 삼각관계에 휘말리면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겠습니다.
커플에게 몰빵하지 말고 주변의 친구들이나 선후배들과 친하게 지내야 헤어져도 피해가 적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친구 K가 대만 갑부의 외동딸을 만나서 소설같은 사랑을 하게 된 사연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가 나간 이후 매일 많은 분들이 다음 편을 기대해 주셨습니다. 이번 최종편은 브라질에서 대만을 거쳐 한국까지 오게 된 이야기입니다. 1부와 2부를 못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편지'(1부)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골라'(2부) : 성당에서 둘 만의 결혼식

대만행 비행기를 탄 K와 S는 꼭 축복받은 결혼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대만에서  재력가인 S의 아버지는 외동딸이 사랑을 택해 브라질로 몰래 떠나버린 후 상심해 있었습니다. 이제는 분노 보다는 자신이 반대하는 한국 남자 K를 위해 몰래 야반도주하듯이 브라질로 도망쳐버린 딸에 대한 배신감이 컸습니다.
 
K와 S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만에 도착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장인어른과의 만남은 K에게 배수의 진을 친 심정이었습니다. 드디어 K는 S의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K는 무릎을 끓고 S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 누구 보다도 따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

S의 아버지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되어버린 딸의 사랑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K는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다시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보잘 것 없지만 따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S의 아버지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습니다.
"브라질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나?"
"옷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자네가 브라질에서 옷장사로 최고가 된 후 다시 나를 찾아오게. 그러면 인정해 주겠네."
"예,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K는 장인어른의 제안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자신도 있었습니다. S의 아버지는 자수성가로 갑부가 된 분이었습니다. 순순히 K를 인정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지만 S가 고생을 통해 뭔가 깨닫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K와 S는 대만을 떠나 다시 브라질로 돌아왔습니다. K는 대만으로 떠날 때 보다 더 비장한 마음으로 브라질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K는 브라질로 돌아오자 마자 더 열심히 "골라 골라"를 외치며 장사에 몰두했습니다. 잠자는 시간 마저 줄여가면서 옷장사에 올인했습니다. 점점 K의 옷가게는 번창해 갔습니다. 당시 브라질의 한인 사회에서도 K의 옷장사로의 성공이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한인들 중에 옷장사를 하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K로부터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K는 마음이 넉넉한 친구라서 브라질의 한인들에게 비법 전수는 물론 한인들의 여러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를 못했습니다.

브라질에서 K의 옷장사는 성공적인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K의 "골라 골라" 다국어 메들리는 성공의 보증수표와 같았습니다. K는 사업이 번창해 갈수록 조금만 더 고생하면 S의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S도 사업의 번창에 따라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일요일에는 둘 만의 결혼식을 거행한 신부님의 성당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영화 'Love Story' 한 장면]

그러나, 불행은 예기치 않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잘 나가던 K의 의류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한 순간에 망하게 된 것입니다. K와 S가 그토록 희망을 꿈꾸던 의류 사업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습니다. K가 너무 한인들을 믿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K의 옷장사가 성공을 거두자 K에게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접근한 한인들이 사기를 친 것이었습니다. K는 한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자금들을 쉽게 빌려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 한인들이 돈을 빌려간 후 만기가 되어도 갚지않고 도피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K의 의류 사업은 한꺼번에 밀려오는 자금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도가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K와 S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실패한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대만에 갈 수가 없게 되거나, 다시 처음부터 사업을 일으키려면 수많은 세월이 필요할 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좌절과 포기를 모르던 K도 자신감을 잃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패배감일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희망이 사라진 S는 더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K와 S는 늘 믿음과 용기를 주던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신부님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K와 S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잠시나마 K와 S는 신부님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용기를 얻어 성당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전화가 왔습니다. S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만에 계신 S의 아버지였습니다.
"요즘 몸은 건강하니?"
"네. 아버지."

"왜 목소리가 힘이 없니?"
"아니예요. 아버지가 웬 일로 전화를 주셨어요?"

"사랑하는 내 딸아. 힘들면 힘들다고 왜 말을 못하니?"
"......"
S는 눈물이 날 것 같아 도저히 전화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Love Story / Taylor Swift]

"K를 바꿔주라. 딸아."
"네, 접니다. 어르신."

"브라질 생활 정리하고 대만으로 돌아오게."
"네. 아닙니다."

"자네의 브라질 생활을 다 알고 있다네. 의류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알고 있고 사업이 부도난 것도 다 알아."
"네. 어떻게..."

"브라질서 사업하는 지인들로부터 소식을 수시로 듣고 있었어. 자네의 사업 수완과 성공을 이미 듣고 있었어. 자네가 최근에 사업이 부도난 것은 자네의 잘못은 아니잖아. 너무 사람 믿지 말게. 그만 내 딸과 함께 대만으로 돌아오게. 자네가 이겼네."
"장인어른...."

K와 S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K와 S는 브라질 생활을 접고 대만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K는 다시 재기해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장인어른은 두 사람의 사랑과 결혼을 인정한 상태이니 고집을 피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S가  브라질 생활을 힘들어하고 대만의 고향 생각을 많이 해 더 이상 브라질에 머물기는 힘든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S의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두 사람의 브라질 생활을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S의 아버지는 브라질의 지인들을 통해 사랑하는 딸이 잘 지내는지 늘 궁금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K의 사람 됨됨이와 사업 수완을 멀리서 지켜봤던 대만의 장인어른은 K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갑작스런 부도로 인해 S가 상심하고 괴로와 하는 모습을 더 이상 못본체 할 수 없었습니다.

대만에 도착한 K와 S는 거기서 새로운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장인어른의 사업에 참여하기 보다는 선교사의 길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장인어른도 같은 종교라서 적극 후원했습니다. S의 아버지는 당분간 두 사람이 홀가분하게 그 동안의 고생을 잊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기도 했습니다. K는 대만의 오지를 돌며 선교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K와 S가 심적으로 안정을 찾고 행복한 시간을 다시 보내게 된 셈이었습니다.

몇년의 세월이 지난 후, K는 한국과의 무역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부산과 대만을 오가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부산에 머무르는 기간도 많았습니다. 무역사업도 했지만 주말을 이용해 K는 선교사 일도 병행했습니다. K는 무엇이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였습니다. 한국 남자 K와 대만 갑부의 딸 S는 브라질서 시작해 대만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사랑과 행복을 함께 했던 것입니다.


[영화 'Love Story' 한 장면]

저는 K가 몇년전 한국에 도착했을 때 대학 1학년때 친구들과 함께 캠퍼스 앞의 주점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K가 대학을 중퇴하고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지 15년여가 지난 후 처음이었습니다. 그와 밤새도록 그 동안의 해외에서의 삶과 S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생활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K는 술을 한잔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 주당이던 K가 아니었습니다. 선교활동하면서 술은 완전히 끊었다는 것입니다. K에게 물었습니다.
"야. 그런데 너 어디서 선교를 하냐?"
"주로 술집에서..."


"장난하냐? 술집에서 선교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는 남들이 다 하는 곳 보다는 비록 힘들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서 선교활동을 한단다."

"그런데 술을 한잔도 하지 않고 어떻게 선교가 가능하냐?"
"지금까지 한 잔도 안했잖아. 물 한잔으로 이렇게 있잖아."

저와 친구들은 도저히 K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밤새도록 대학교 앞으로 주점을 돌며 K를 시험했습니다. 새벽 5시가 되었건만 K는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술 한잔도 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물이나 콜라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친구들이 이미 지치고 졸려서 몸을 가눌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K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래도 못믿겠냐?"
"K야. 우리들이 졌다. 이제 집에 가자."

친구 K의 러브스토리 3부작 최종편은 여기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어떤 분은 요즘같은 현실에 어찌 K와 S의 순수한 사랑이 가능한지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K와 S의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표현상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K는 정말 지독한 녀석입니다. 다시 만나면 부산 도착 후 선교 이야기를 들어봐야 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갖고 K와 S의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는 러브스토리를 읽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5월의 연휴를 보내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