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에 해당되는 글 9건

  1. 2010.03.24 시골 1등→서울 40등→1등 공부방법 '집중력' 문제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60)
  2. 2009.11.03 시험 잘보는 비법 vs 공부 잘하는 방법 by 진리 탐구 탐진강 (88)
  3. 2009.06.18 무릎팍도사, 안철수가 존경받는 5가지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68)
  4. 2009.06.06 작약과 수국이 활짝 핀 아파트 산책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2)
  5. 2009.05.14 무릎팍, 허구연이 1박 2일을 비판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6. 2009.05.13 간첩 혐의로 인도 감옥에 수감됐던 친구 탈출기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7. 2009.04.19 성적표 조작한 아들을 신고한 엄마, 그 이유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30)
  8. 2009.03.13 불광동 미륵불서 수행하는 사람 맞습니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5)
  9. 2009.02.22 선생님의 지혜 '묵묵히 상'이 값진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22)


얼마 전, 이웃 블로거이신 따뜻한 카리스마님의 글을 읽고 뜻한 바 있어 블로그 자서전을 써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떤 이야기를 써야할지 아직 감이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이왕 결심했으니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까 합니다.

개인의 일생을 담는 만큼 자서전 이야기가 다른 분들에게는 삶의 궤적이 달라 이해가 안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르다고 틀린 것이 아니라는 넉넉한 마음으로 상대방 입장에서 그 인생의 족적을 이해주는 아량과 배려를 부탁드리며 첫번째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이미 제 블로그의 글들을 읽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첩첩산중 산골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옛날 옛적에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에 나올 만한 초가집에서 살면서 유년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전기도 없고 라디오 TV도 없었습니다. 나무로 가마솥에 밥을 짓고 그 군불로 방을 데워 살았습니다. 이쯤되면 40대 나이의 분들은 대충 이해가 될 것입니다. 옛날 초가집에 살던 선조들 이야기를 검색신공으로 찾아보면 알 듯 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공부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에게 공부하면 어머니의 영향이 가장 큽니다. 어머니는 홀로 저를 낳고 논밭을 일구며 소까지 키우며 20대를 보내셨습니다. 아버지가 병역을 기피해 서울서 수년간 도피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6살까지 '애비없는 자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저를 키우면서도 늘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라 동화책은 언강생심이었습니다. 구술로 어머니가 이야기해준 전래동화가 유년시절 남아있는 공부의 시작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느 날 공책 한권을 구해왔습니다. 그리고 '가나다라' 국문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당시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입학을 위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아마도 7살부터 국어를 공부한 것 같습니다. 그 때 산골마을에서 초등학교 입학 전에 공부를 가르치는 가정은 없었습니다. 산간오지 산골 마을의 당시 부모들은 대부분 초등학교 졸업도 못한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태어나도 노동력의 대상이지 공부를 가르칠 엄두도 못했던 시절이라면 믿으시겠습니까? 그러나 사실입니다.

저도 다른 산골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흘러간 유행가 가사처럼 '진달래 먹고 물장구 치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고사리 손에 낫을 들고 땔감 나무를 베고 소에게 먹일 소꼴을 베야 했습니다. 아이 때부터 혼자 고생하는 어머니를 돕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되면 호롱불 밑에서 어머니에게 한글을 배웠습니다. 한글을 익히며 구구단 산수를 배웠습니다.

저는 9살이 되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왜 9살에 학교를 갔냐구요? 당시 산골마을에서는 모두 9살에 학교에 갔습니다. 큰 비가 내리면 산골 계곡에 순식간에 물이 불어 나이 어린 아이들이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에 늦게 학교를 보냈던 이유입니다. 자동차도 없던 신작로, 늘 한적한 길을 따라 2Km 이상을 까만 고무신 신은 아이들이 걸어서 그렇게 학교에 다녔습니다. 

초등학교 입학한 후 한글을 쓸 줄 아는 학생은 저 밖에 없었습니다. 유치원은 물론 어떤 공부시설도 없었으니 입학하고 처음 '가나다라'를 배웠던 시골 학교였습니다. 전교생 100명도 안되는 시골학교에서 줄곧 1등이었습니다. 한개 학년에 하나의 학급만 있었으니 급장(반장)이었습니다. 그러다 2학년에 되고 2학기에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서울에 사시는 큰아버지가 적극 서울 유학을 권했고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서울에 온 후 시내 종로의 교동초등학교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서울은 역시 달랐습니다. 첫 시험을 치렀는데 반에서 40등 정도였습니다. 당시 한 반이 60명 가량이었으니 하위권 성적이었습니다. 시골에서 올라와 사귄 친구들도 중하위권 친구들이었습니다. 저는 30등과 40등 사이를 계속 오갔습니다. 당시 큰어머니는 종로에서 세탁소를 운영하셨습니다. 세탁소에 딸린 방에서 기거하던 시절이라 공부할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4학년이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집이 당시 서울의 달동네 서대문 홍은동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잠시 버스를 타고 교동초등학교를 다녔으나 갑자기 학군이 생겨 홍은동의 홍제초등학교로 전학을 해야 했습니다. 여전히 큰집은 단칸방 신세였습니다. 친구도 없고 전학을 하니 고향의 어머니 생각만 가득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책을 보는 일이었습니다. 역사 책을 좋아했습니다. 당시 과외가 유행이었지만 과외를 받을 처지가 아닐 정도로 궁핍하고 가난했습니다.

다음 해 5학년이 됐습니다. 어느 날 반에서 가장 예쁜 여자 아이가 생일 파티에 남자 여자 아이들을 초청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초대했습니다. 저와 공부 못하는 아이들은 화가 나서 그 아이의 집에 쳐들어 갔습니다. 문전박대당했고 저희들의 항의로 생일파티는 난장판이 났습니다. 서울에 유학와서 첫번째 커다란 일탈이었습니다. 여자 아이 엄마와 우등생 친구들에게 심한 욕설을 들었습니다.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뭐하는 짓이야"
"거지같은 양아치 **들아, 꺼져!"

그 날 이후 저는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 공부 잘하는 것들아, 한번 해보자' 마음 속으로 다짐했습니다. 학교가 끝나면 곧장 집으로 와서 교과서를 외웠습니다. 큰 소리로 책을 읽었습니다. 5학년 중간고사는 여전히 30등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실망스런 등수였습니다. 그러나 좌절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 동안 공부를 너무 안했기에 기초가 부족했습니다.

그 해 겨울 기말고사에서 드디어 20등대에 처음 진입했습니다. 한번 공부 습관이 생기다보니 재미를 느끼게 시작했습니다. 5학년 기말고사에는 10등대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친구들도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큰아버지 몰래 가정통신문 성적표에 도장을 찍어서 담임에게 제출할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런데 반에서 늘 1등을 하던 여자 아이 K가 3등으로 밀려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가 속으로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크리스마스에 그 아이에게 카드를 쓴 후 책상서랍에 몰래 넣었습니다. 수줍던 시골 소년으로서는 엄청난 용기였습니다.
"OO아, 너무 속상해 하지마. 너는 다음에 1등할 수 있을 거야. 크리스마스 잘 보내."



그 후 그 여자 아이 K에게 카드를 받았습니다.
"고마워. 너도 크리스마스 잘 보내라. 너 공부 못하는 줄 알았는데 등수 많이 올랐더라. 열심히 해."

사실 예상하지 못한 K의 크리스마스 카드 답장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받아본 여자의 크리스마스 카드였습니다. 당시 카드가 보편화되지 않던 시절이었습니다. K의 카드는 설레게 했습니다. '그래. 더 열심히 공부하는 거야.' 속으로 또 다짐했습니다.

다시 6학년에 올라갔습니다. K는 다행스럽게 같은 반이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중간고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10등 안에 처음 진입했습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 첫 성적표를 들고 낙담하고 좌절하던 기억을 떠올리며 놀랐습니다. 반에서 6등이었습니다. 장족의 발전이었습니다. K는 1등이었습니다. 속으로 내 일 처럼 기뻤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기말고사를 치렀습니다.

미처 상상하지 못한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성적은 제가 1등이었습니다. 도저히 서울 학생들과 경쟁해 1등은 할 수 없다고 아예 포기했던 일이었습니다. 그 다음 날 책상서랍 안쪽에 누군가 보낸 편지가 있었습니다. 짝사랑하던 K였습니다.
"탐진강, 1등 축하해. 너 정말 대단하구나. 나도 기뻐. 곧 중학생이 되는구나. 중학교 가서도 공부 열심히 하자." 

시골 초등학교에서 서울로 유학을 온 후 종로의 교동초등학교와 홍은동 홍제초등학교에 이르는 초등학생 시절이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K와는 그 후 어떻게 됐냐구요? 과연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상위권을 유지했을까요? 아쉽지만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 주세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 공부 잘하는 비결
-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하는 습관을 키워주어야 한다
-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는 것 보다 부모가 먼저 책읽는 모습을 보여주자
- 아이가 공부할 수 있는 주변 환경이 중요하다 (맹모삼천지교)
- 책읽을 때는 소리내어 읽고 연습장에 써보는 연습을 한다
- 목표를 정하고 끈기와 집중력을 갖고 공부한다
-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할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자
- 꾸준히 노력하는 자가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다
- 교과서만 충실히 해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
- 서로 격려하는 선의의 경쟁자를 두고 공부를 해보자


* 앞에서 언급했듯이 좌절과 도전의 자서전 기록입니다. 그냥 어떤 삶의 궤적인지 그대로 이해를 바랍니다.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해 주시는 따뜻한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요즘은 학생들의 중간고사 시즌인 것 같습니다. 대학 수능 시험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시험에 든 계절인 셈입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은 매일 학교에서 공부한 내용을 복습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공부에 취미가 없던 큰 딸도 예전 보다는 열심히 학습 모드로 전환하는 편입니다. 작은 딸은 시험 기간이 되면 먼저 복습에 집중하곤 합니다. 작은 딸에게 자극받은 큰 딸도 공부에 열중하게 됩니다.

얼마 전 아내에게 아이 공부가르치는데 참견하다가 '앞으로 당신이 가르쳐!'라는 핀잔을 들었던 저는 최근 큰 딸의 공부를 거들어주고 있습니다. 모처럼 예전 학창시절을 떠올리며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해보니 만만치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공부가 이해력 위주가 많아 과거 어른들 세대의 단순 암기 공부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예나 지금이나 공부하는 방법이 달라진 것은 없었습니다.

공부가 인생과 행복의 기준은 아닐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람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학생의 근본인 공부를 잘하는 것이 필요조건일 수 있습니다. 사실 공부를 잘하는 데 왕도는 없겠습니다. 수업시간에 충실히 하고 꾸준히 매일 예습 복습을 잘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열심히만 한다고 성적이 오르는 것은 아닌 만큼 나름대로 학창시절에 터득했던 공부하는 방법과 시험보는 비법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학교에서 평소 시험이나 수능에서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자랑은 아니지만 과거 학창시절에 과외나 학원을 가지않고 혼자서 자습을 통해 상위권을 유지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학생들이나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 비법을 정리하는 것임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부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학교 수업시간에 집중하라

학교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핵심적인 내용을 잘 기록하고 집중해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교과서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대체로 성적이 좋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선생님이 가르친 내용이 결국 시험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수업 중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선생님에게 질문을 통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특히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경우 학교 수업만 잘 소화해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학교 수업을 충실히 해야 학원이나 과외 수업에서도 효과가 증대될 수 있습니다.

예습 복습은 매일 반드시 하자

학교 수업을 충실히 하면서 예습 복습만 잘해도 우등생 대열에 들어가는 지름길입니다. 학교 수업에 앞서 미리 예습 공부를 하고, 수업이 끝난 후 집에서 그 날 학습을 다시 복습하는 습관은 공부 잘하는 비법 중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만일 바쁜 일이 있어 예습 복습을 하지 못한 경우라도 당일 수업 전에 단 10분이라도 복습을 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그 날 수업을 알차게 배울 수 있는 비결입니다. 예습 복습을 하면서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어른들에게 질문해 반드시 알고 넘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영어와 수학은 꾸준히 공부하라

우리나라 학생들이 가장 취약할 수 있는 과목이 영어와 수학인 것 같습니다. 매일 꾸준히 공부해두지 않으면 단기간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즘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수업을 하기 때문에 기초를 튼실히 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초등학교에서 기초가 부족하면 중학교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영어와 수학은 성적의 발목을 잡을 공산이 큽니다. 다른 과목은 벼락치기로 공부가 가능하지만 영어와 수학은 벼락치기로 실력을 급신장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영어와 수학은 매일 매일 꾸준하게 공부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영어의 경우 단어나 문장을 외우면서 응용능력을 키우는 것이 좋고, 수학은 원리를 이해하면서 문제 풀이를 많이 해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를 생활화하자

'사람은 독서로부터 만들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사람은 대부분 독서광이었습니다. 우리시대 '존경받는 지성인'으로 불리는 안철수 카이스트 교수의 경우 어릴 때 활자광일 정도로 독서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독서에 빠져 교과서에 다소 소홀히 했던 안철수는 초등학교 성적은 안좋았지만 고등학교 졸업 시에는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독서의 힘이었습니다. 독서와 함께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해주고 사고를 깊게 해주는 좋은 습관입니다. 요즘 전문가의 기본은 글쓰기 실력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를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쓰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해주는 능력이 더 중요해진 시대인 것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동기부여를 하라

저는 어린 시절에 공부가 하기 싫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긋지긋한 가난이 더 싫었습니다. 산골 농촌 마을에서 아이들은 노동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가난을 벗어나는 길은 공부 밖에 없다는 것을 어머니는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서울로 일찍 유학가서 도시 학생들과 공부로 실력을 겨뤄야 했습니다. 목표가 있었기에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 학생 시절 부터 어떤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목표가 없이 무작정 공부한다면 중도에 포기하거나 지칠 수 밖에 없습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목표를 설정해보는 일이 선행되면 더욱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습니다.

시험 성적 잘나오는 비결이 있을까?

시험 일정이 발표되면 공부 계획을 세워라

학교에서 시험 일정이 발표되면 먼저 시험 공부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시험 과목들을 사전에 공부를 시작해 잘 준비해 둔다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먼저 국어 영어 수학 등 중요 과목은 시험 일정이 발표되면 꾸준히 매일 공부하며 준비해야 합니다. 수학이나 과학은 교과서 공부를 충실히 하면서 문제집을 많이 풀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회를 비롯한 암기 과목은 내용을 이해하면서 공부하면서 연대기 순으로 암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국영수를 꾸준히 준비한다면 암기 과목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공부하는 방법이 좋겠
습니다.

중요 핵심 내용을 표시하고 요약해 두자

교과서나 참고서를 공부하면서 중요한 핵심 내용은 밑줄이나 별표를 해두는 것이 다시 복습할 때 시각적 효과와 함께 시간 절약에 좋습니다. 그리고 학습 노트에 요점을 메모해두면 시험 전 다시 복습할 때 시간을 줄일 수 있습니다. 수학이나 과학은 문제집을 풀어보고 틀린 문제는 별도 표시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틀린 문제는 다시 복습해 보는 것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예상 문제를 함께 만들어보고 서로 문제를 내고 맞추는 게임을 해보는 방법도 있겠습니다.


시험 하루 전 날에는 집중해 공부하자

사실 아무리 매일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시험 전 날에 집중해 복습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루 전 날의 집중력이 곧 시험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을 벼락치기 공부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시험 전 날을 잘 활용해 공부를 합니다. 시험 하루 전 날의 기억력이 다음 날 시험에 영향을 많이 끼치기 때문입니다. 특히 암기 과목의 경우는 시험 전 날에 집중해 소리내어 읽으면서 암기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한 내용도 다시 복습해 봐야 합니다. 국영수나 과학은 이미 공부한 내용 중 틀린 문제나 요약 정리한 노트를 다시 한번 읽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시험 전 당일과 10분전 복습을 꼭 하자

시험 당일에도 복습은 중요합니다. 시험 전 날에 일찍 잠자고 시험 당일에는 일찍 일어나 집에서 복습을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새벽에 공부한 내용은 기억력을 증진시키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시험을 보기 10분 전도 잘 보내야 합니다. 친구들과 떠들고 놀기 보다는 자리에 앉아서 집에서 공부했던 중요한 요점을 기록한 노트를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10분 전 기억은 확실하게 시험에서 효과를 발휘합니다. 노트에 요점 정리한 내용 중에서도 핵심만이라도 다시 한번 집중해 읽어보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한 셈입니다.

시험 중에도 집중력을 잃지말아야 한다

시험을 치르는 시간 중에도 집중력을 유지해야 합니다. 시험 문제지를 받아들면 우선 전체 내용을 한번 훑어 보고 어떻게 시간을 안배해 문제를 풀어갈지 준비를 합니다. 어려운 문제 문항을 만난다고 하더라도 한 문제에 시간을 너무 많이 쏟지 말며 침착성을 잃지말아야 합니다. 주위 사람이나 선생님에 신경쓰지 말고 문제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문제는 끝까지 잘 읽고 답변 문항을 읽어야 합니다. 문제를 모두 풀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남았으면 다시 한번 실수한 것이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시험 문제를 일찍 끝냈다고 먼저 나가지 말고 시험이 종료되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객관식 시험 잘 보는 10가지 비법

- 처음 문제부터 끝 문제로 순서대로 풀어라!
- 한번 적은 답이 확실히 틀리지 않는 이상 고치지 말라!
- 정확히 고를 수 없다면 틀린 것부터 지워나가라!
- 너무 쉽다고 생각되는 문제일수록 다시 한번 더 봐라!
- 정답이 분명하더라도 보기 예문을 끝까지 읽어라!
- 질문이 부정인지 긍정인지를 명확히 확인하라!
- 너무 어려운 문제는 넘어가고 쉬운 문제부터 풀어라!
- 질문의 요지나 핵심단어에 밑줄을 그어 표기해라!
- 문제를 꼼꼼하게 끝까지 탐독해라!
- 답안지에 정답이 밀리지 않고 제대로 표기했는지 다시 한 번 검토해라!

시험 잘보는 비법이나 공부 잘하는 방법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천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공부하는 습관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시험 기간 중에는 가급적 컴퓨터나 TV를 꺼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강요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도 아닙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공부하라고 하기 이전에 먼저 책을 읽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부모는 항상 TV만 보면서 아이에게 공부하고 말한다면 아이가 공부를 하겠습니까? 먼저 부모가 솔선수범해 책읽는 모습을 늘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이는 어른의 거울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안철수 그는 누구인가?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안철수가 출연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감동의 물결이었습니다. 청소년을 둔 부모 그리고 우리 시대 모두가 반드시 봐야 할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어떤 이는 그를 '시대정신'이라고 합니다. 또 어떤 이는 '존경받는 경영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박사이고 석좌교수입니다. 그는 의사였고 CEO였고 프로그래머였습니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고 기업가정신 멘토입니다. 그는 가장 오랜 직업은 학생이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27년을 학생으로 보냈답니다. 보통 사람들은 하나를 하기도 힘든데 말입니다. 안철수가 쓴 <영혼이 있는 승부>를 읽어보면 그의 인생에 흐르는 진면목이 나타나 있습니다.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나는 미리 남보다 시간을 두세 곱절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 그것이야말로 평범한 두뇌를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안철수의 저서 '영혼이 있는 승부' 중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천재이다"

안철수는 평범한 두뇌의 인물이 아닙니다. 하루 밤 사이에 '대한민국 소프트웨어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백신 V3를 개발한 의대생이었습니다. 당시 최고의 프로그래머들도 의대생 안철수가 개발한 V3를 리뷰해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천재였던 셈입니다. 안철수는 천재였지만 남들보다 두세 곱절 노력했습니다.

그 때가 1988년입니다. 게다가, 그는 그 후 매일 4~5시간만 잠을 자면서 의대 공부와 백신 개발을 했습니다. 무려 7년간을 그렇게 생활했다고 합니다. 백신 개발은 순전히 사회 공익을 위해 무료 봉사활동이었습니다. 자신이 생활하는 자체가 사회로부터 받은 혜택이기 때문에 사회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그랬다고 합니다. 당시부터 21년이 지난 지금도 안철수연구소는 무료백신 V3 Lite를 일반에게 무상으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돈을 조금이라도 받았다면 엄청난 금액일텐데 무료로 긴 세월을 배포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명감을 갖고 사회에 봉사하고 공헌하는 지성인이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바이러스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자원 봉사를 한 것입니다. 그는 가장 힘들다는 의대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도 취미였던 프로그래밍 실력을 키웠고 잠을 줄여가며 사회에 공헌을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7년이란 세월을 한결같이 낮에는 의학 공부와 연구를 하고 새벽에는 백신 개발을 한다는 것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흉내조차 못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무릎팍도사>에서 안철수는 군대에 가는 날 새벽에도 백신을 만들고 군의관 집합장소에 갔다고 밝혔습니다. 입대 후 군대 동료들의 가족 이야기를 듣고서야 아내에게 인사도 못하고 왔다는 것을 알았답니다. 캠퍼스 커플로 만난 아내는 든든한 동지이자 영원한 지지자였습니다. 그런 아내에게 미처 입영한다는 말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백신 개발에 몰두했던 것은 사회에 대한 책임감의 사투였습니다.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의 자존심을 지킨 애국자이다"

안철수가 1995년 안철수연구소라는 국내 최초의 보안 소프트웨어회사를 세운 것은 사회 봉사를 넘어 애국심의 발로였습니다. 외국 보안회사들이 호시탐탐 한국 시장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장기적으로 외국 보안회사가 한국을 장악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을 비싼 가격에 백신을 사야 하고 사이버 안보의 핵심인 정보보안을 외국의 용병들에 맡겨야 하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 의사는 많지만 백신 개발자는 안철수 뿐이었습니다. 그는 결단을 해야 했습니다. 그는 최연소 박사를 취득한 이래 이미 모 의과대학의 학과장일 정도로 잘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안정적인 의사를 그만 두고 당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고 전망없던 백신회사를 설립한 것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백신 소프트웨어 기업은 돈이 되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대기업도 공공기관도 안철수가 백신 보안회사를 공익기업으로 세운다고 하자 외면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당장 돈이 되지않더라도 사회에 기여하는 공익적 기업을 만드는 것이 미래에 닥칠 위험을 생각하면 훨씬 더 가치가 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철수는 회사 설립 후 미국 유학과 경영을 동시에 해야 했고 IMF마저 터졌을 때 과로로 인해 간염으로 생사의 기로에 서기도 했습니다. 거의 목숨을 건 사투가 바로 안철수의 인생 내내 있었던 셈입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그의 도전은 카이스트 석좌교수로서 사회에 기업가정신을 불어넣고 후학들을 양성하는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안철수는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영원한 소년으로 사는 시대정신 영웅이다

"원칙과 소신을 지킨 아름다운 경영자였다"

창업 당시 안철수는 어렵사리 보안회사를 차렸지만 직원들 월급을 주는 것도 벅찬 일이었습니다. 의사였던 아내의 월급을 직원 월급으로 마련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안철수는 <무릎팍도사>에서 "직원들 월급 3개월치만이라도 있으면 원이 없겠다"고 소원했다고 합니다.

그런 가운데 회사 경영을 책임지는 CEO의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미국에서 낮에는 기술경영학을 공

부하고 밤에는 CEO로서 한국과 이메일로 회사 일을 챙기는 일을 병행했습니다. 그 때는 이틀에 한번씩 밤을 샐 정도였다고 합니다. 2년간을 그렇게 생활했던 시기였다고 합니다.

미국 대기업이 1997년 당시 1천만불에 안철수연구소와 V3를 팔라고 했답니다. 사실 그 때는 엄청난 금액입니다. 그러나 안철수는 단번에 'No'라고 했습니다. 돈 보다 가치가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기업가는 기업을 팔고 요트타고 다닐 수 있으니 편안한 삶을 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안철수는 거절했습니다. 자신은 편할 수 있지만 직원들이 정리해고되고 자국에 백신이 없는 나라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사람과 세상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성인군자이다"

안철수는 CEO 시절에 직원들에게 반말을 전혀 안하고 존댓말을 했다고 합니다. CEO도 직원들과 수평적인 관계로 인식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CEO 중에 안철수같은 분은 거의 보기 드문 일인 듯 합니다. 2005년 안철수는 가장 최고의 매출과 이익을 냈을 때 CEO를 그만 두고 다시 학생으로 공부하러 미국 와튼스쿨로 떠났습니다. 직원들과 헤어질 때 우는 직원도 있고 편지를 써서 코팅을 해서 보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CEO가 직원들에게 존경받는다는 것은 우리나라 기업문화에서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아내에게도 존댓말을 한다고 합니다. 또한 군대에서 장교였는데 부하들에게도 반말을 할 수 없어 고민했다고 합니다. 안철수가 존댓말을 하는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습니다. 어머니는 고등학교 시절에도 아들에게 존댓말을 썼다고 합니다. 부모의 행동과 영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안철수의 아내도 의사였다가 미국의 법대 공부를 나이 40에 도전해 로스쿨을 졸업하고 미국 변호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부모와 딸이 도서관에 함께 공부를 했답니다. 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가족인 듯 합니다.

안철수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책읽는 모습을 바란다면 부모가 먼저 책을 읽으라고 합니다. 부모는 전혀 책도 읽지 않으면서 아이들에게 '공부해라'라고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모가 만드는 환경과 솔선수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는 대목입니다. 안철수는 '걸어다니는 도덕교과서' 또는 '우리 시대의 성인군자'인 듯 합니다. 겸손한 인격에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는 돈을 향해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철수는 돈이 아닌 소중한 가치를 추구했습니다. 그가 노력한 가치는 자연스럽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철수는 어느 누구 보다 마음 부자입니다. 그는 돈을 선택하지 않았지만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안철수가 존경받는 이유입니다.

<무릎팍도사>에서 안철수가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 '많이 배우고 똑똑한 사람이 사회에서 오히려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지체높은 분들의 행태를 보면 일반 국민들을 크게 속이고 커다란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 안철수의 메시지는 울림이 있습니다. 오피니언 리더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높은 사회적 지위 만큼 도덕적 의무)'가 필요할 것입니다.

안철수가 무한한 도전정신으로 살아온 길을 생각하면서 '외유내강'이란 사자성어가 스쳐지나갔습니다. 특히 안철수는 '요새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이 없다. 안정지향적이다.'라고 말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란 지적이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그는 젊은이들이 도전정신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조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의견이었습니다. 실제 우리 사회가 도전정신 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이나 황금만능주의를 지상과제로 젊은이들을 내몰고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울러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다'라는 안철수 어록이 젊은이들에게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킬 듯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 그가 있음으로 해서 그래도 우리나라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아직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는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무릎팍도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등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나 스스로를 반성하며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유익하고 교훈적이며 감동적인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나는 우주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든 없든,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세에 대한 믿음만으로 현실과 치열하게 만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또 영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쾌락에 탐닉하는 것도 너무나 허무한 노릇이다. 다만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더 의미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영혼이 있는 승부 중에서>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아이들과 아파트 단지를 산책해보니 아름다운 꽃들이 따사로운 햇살을 머금고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세상사에 바쁘게 살다보면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이름모를 꽃들도 있었습니다.

청초하면서도 예쁜 꽃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아파트 단지 후미진 곳에도 마치 연꽃 같은 모양의 꽃이 피었습니다. 무슨 꽃일까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작은 딸이 반가운 듯이 말했습니다.
"저기 작약 꽃이 피었어요"
"어떻게 꽃 이름을 알고 있니?"

"엄마가 가르쳐 줬어요."
"아, 그렇구나. 꽃이 참 예쁘구나."

그러면 딸아이는 신나서 조잘조잘 이야기를 합니다. 예전에는 아빠와 함께 놀지않던 아이들이 요즘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시간을 자주 갖다보니 아이들이 아빠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나 봅니다. 길거리를 다닐 때 따로 다니던 아이들이 아빠의 손을 잡기도 하고 팔짱을 끼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입니다.

아파트 단지의 후미진 곳에 수줍은 듯이 청초하고 아름다운 작약 꽃이 활짝 피어 있다

아이들이 이제는 아빠에게 무엇인가 가르쳐주는 일도 많아 졌습니다. 저녁에 퇴근하면 피아노를 치는 딸아이를 보곤 합니다. 언젠가 들어봤던 노래인데 제목을 몰라 물어보면 어떤 곡인지 딸아이가 알려줍니다. 어떤 때는 딸아이들이 아빠에게 "퀴즈 하나 낼께요."하면서 불쑥 질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아는 질문이 나오면 좋겠지만 모르는 질문이 나오면 살짝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한편으론 이제 아이들이 많이 컸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입니다. 아이들이 어떻게 아빠를 대하는 지는 '아빠하기 나름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늦은 귀가에다가 잠자는 아이들을 귀찮게 했던 시절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빠의 귀가가 빨라지고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노는 시간이 많아지다보니 아이들도 아빠에게 장난치는 일도 잦아졌습니다.


아파트 단지를 돌아가다 보면 하얀 꽃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습니다. 언젠가 아내가 무슨 꽃이라고 이야기해 줬는데 벌써 까먹어버렸습니다. 딸아이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저건 무슨 꽃인지 알고있니?"
"저 꽃은 수국이예요."

아이들이 기억력이 좋은 것인지, 아빠가 알콜성 치매로 인한 기억력 감퇴인지 잠시 상념에 들었습니다. 얼마 전에 아내가 수국이라고 알려주었건만 아이들은 기억하는데 저는 이미 잊어버린 것입니다.


아파트 주변에도 다종다양한 꽃들이 많이 피었습니다. 과거에는 그냥 꽃이 피었구나 하고 지나쳤지만 이제는 저 꽃은 이름이 뭘까 하면서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조금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자연을 바라보면 나무들과 꽃들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는 것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란 시에서 노래했듯이 '내가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의미'를 찾게 되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아파트 단지를 산책하면 더 세심하게 자연과 사물을 관찰하게 됩니다. 아이들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아빠 이게 뭐예요?"하고 질문을 하곤 합니다. 아는 것도 있지만 모르는 것도 있어 한번 더 생각해보고 공부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도 주말을 맞아 아이들과 아파트 주변을 산책해야 겠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우연히 '무릎팍도사'의 허구연 편을 보게 됐습니다. 허구연은 프로야구 해설가로 유명합니다. 그의 인생역정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이번 무릎팍도사에 나온 허구연의 진솔한 이야기가 될 듯 합니다. 고교 야구가 지금의 프로야구 이상의 인기를 누리던 시대를 알고있는 세대라면 그 찬란한 야구의 추억을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무릎팍도사는 재미와 함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대한민국 4번 타자, 허구연의 좌절

1976년 7월 30일. 무더운 여름의 한 낮, 대전야구장에선 한국의 실업야구 선발팀과 일본 올스타팀과의 친선경기 3차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막강한 일본 투수진을 상대로 1, 2차전에서 한국팀의 유일한 득점이 된 솔로홈런을 연거푸 터뜨린 허구연은 부상과 쌓인 피로로 경기출전이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1, 2차전의 영웅 허구연을 감독은 어쩔 수 없이 경기에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허구연의 불행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습다. 일본의 공격 1사 1, 2루 상황. 일본 타자가 친 공은 유격수 앞으로 맥없이 굴러갔습니다. 공을 잡은 한국팀 유격수가 안전하게 3루로 던지는 것이 누구나 아는 야구의 정석이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이닝을 빨리 끝내고 싶은 욕심이 생긴 유격수는 공을 2루에 서있던 허구연에게 던졌습니다.

당연히 공이 3루에 갈 줄 알았던 허구연의 포구 동작은 한 발을 들고 어정쩡할 수 밖에 없었고, 2루로 달리는 일본팀 주자는 갑자기 날아든 공에 놀라 다리를 치켜들어 허구연을 향해 슬라이딩을 감행했습니다.


‘뻑~’
그 순간 대전야구장은 정적에 휩싸였습니다. 허구연의 다리는 일본 주자에 의해 반동강이 났습니다. 2루수 허구연은 부러진 다리를 부둥켜 안고 고통에 몸부림쳤습니다.

무릎팍도사에 나온 허구연이 야구 선수를 그만 두게 된 사연을 자료를 찾아 재구성해 본 것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한 허구연은 부산의 야구 명문 경남중고등학교 시절을 거쳐 실업팀에 이르기 까지 4번 타자를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늘상 대한민국 홈런왕이었습니다. 너무나 야구를 사랑한 허구연이 갑작스런 사고로 야구 선수를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던 불운은 한편으로 새로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셈입니다. 야구해설가로서 다시한번 꽃을 피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야구인' 허구연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번 '무릎팍도사'에 나온 허구연을 보면서, 나름대로 크게 세가지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야구를 진정으로 사랑한 허구연 "야구계의 강마에"
허구연은 예능프로그램 '1박 2일'을 강도높게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1박 2일팀이 지난해 9월 19일 롯데 대 두산전이 열린 부산 사직구장에서 방송분량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중계를 맡았던 야구해설위원 허구연은 시합을 방해한다면서 강도 높게 1박 2일팀을 비판했던 것입니다.

허구연은 1박 2일팀에서 절차와 원칙을 지키지 않았던 점을 지적했습니다. 허구연은 "프로야구는 클리닝타임이 3분 정도인데 매우 중요하다"며 "그 당시 '1박 2일' 공연은 10분을 넘게 해 당황했다"고 했습니다. MBC ESPN에게 중계권이 있던 부분을 사전 절차없이 타방송이 들어온 것도 문제라고 했습니다. 사실 팬들 입장에서 보면, 당시 1박 2일팀은 야구팬들이 앉아야 할 응원석 일부를 갑자기 촬영을 위해 독점한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야구는 규칙과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과학적 운동입니다. 그런 점에서 1박 2일팀의 반칙과 편법을 비판하는 것은 허구연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허구연은 어느덧 나이가 60에 가까운 야구계의 원로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야구와 후배들을 위해 쓴소리를 내뱉을 수 있는 것은 허구연의 올곧은 야구 인생과 닮아 있습니다.


이처럼 허구연은 야구를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야구인입니다. 그 만큼 야구를 사랑하기에 강마에처럼 독설을 내뱉기도 합니다. 그래서 허구연을 '야구계의 강마에'라는 별칭이 붙여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게다가, 때로는 개그맨을 능가할 정도의 빛나는 유행어와 어록을 만들어 낼 정도로 입담을 자랑하기도 합니다.
 
애국심으로 40년 이상 한국 야구를 지킨 열정
허구연은 지난 1968년 한국 고교야구 선발팀으로 일본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허구연은 일본에 도착해 너무 놀랐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비해 이토록 경제적인 차이가 나는 줄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못사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귤도 없었고, 건물에 자동문도 없고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을 정도로 못살던 시기던 것입니다.

당시 고등학생이던 허구연은 "열심히 노력해서 20년내 일본을 잡자"라고 다짐했습니다. 허구연은 그 때부터 우리나라를 일본을 이기기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스포츠의 위대함은 바로 이같은 일들과 비교됙 때문일 것입니다.

세계 야구대회나 올림픽과 같은 경기에서 국가대표간의 대항전에서 누구보다도 한국팀의 선전에 열정적인 해설을 하는 광경은 그의 애국심과 닮아 있습니다. 못살던 학생 시절부터 우리나라가 일본을 비롯한 야구 강국들을 이기는 날을 위해 그 꿈을 계속 간직해 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꿈은 이제는 후배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요즘 국가대표 야구 후배들은 자신감있게 말합니다. "미국 일본 야구, 별거 아니예요."

(대학시절 허구연의 홈런 후 장면)


공부하는 야구인, 허구연의 위대한 도전
허구연은 고려대학교 학사, 그리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석사라는 보기드문 케이스입니다. 허구연은 초등학교 때 전교에서 상위권이었습니다. 항상 책을 읽고 공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학생 때부터 공부하는 습관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시 운동선수들의 여건이 현재와 다른 상황이었겠지만, 허구연은 야구나 축구와 같은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도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허구연이 프로야구 해설가로서도 해박한 지식과 경험으로 명성을 날릴 수 있었던 것도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에 있었습니다. 포볼이란 용어 대신 '베이스 온 볼스'라는 정확한 명칭을 소개한 것이 대표적 사례 중의 하나입니다.

최고의 선수는 공부를 했더라도 잘했을 것이라고 허구연은 말합니다. 운동에 최선의 열정과 노력을 할 수 있었던 만큼 공부나 다른 분야를 했었다면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자세가 되어 있다는 의미일 듯 합니다. 항상 책을 읽고 공부하는 허구연의 모습은 후배 체육인이나 야구인들에게도 모범이 될 것 같습니다. 허구연이 선수로서 갑작스런 사고로 선수 인생은 그만 두었지만 끊임없는 공부가 최고의 해설가로서 평생의 야구 꿈을 이루게 해주었으니 말입니다.

허구연은 항상 공부하고 국민들에게 야구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후배 야구인들을 진정 사랑하는 원로로서 영원한 대한민국 명예 4번타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7급 공무원'이란 영화를 보고난 후 친구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인도의 외국인 감옥에 수감됐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친구(이하 C)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이미 17년여 전의 일인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인도 현지에서 기막힌 일을 당했던 C는 당시 엄청난 충격과 함께 죽음의 공포를 느겼다고 합니다.
 
친구 C의 사연은 1990년초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C는 인도어를 공부한 친구였습니다. 이왕 공부한 인도어를 현지에서 직접 경험해 볼 겸 인도로 배낭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당시에 해외 배낭 여행은 드문 경우였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쉽지는 않지만 당시 인도를 혼자 여행한다는 것은 보통 배짱으로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C는 언어도 가능하고 한국에서 사전에 많은 준비를 한 후 여행에 나섰습니다. C는 인도에서 주로 기차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어느 날, C는 기차에서 만난 인도 현지인들과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기차 앞 자리에 앉아있던 인도인들이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인도 여행 중에 만난 친절한 현지인들이었기에 즐거운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다, C는 인도인이 건네 준 음식을 받게 되었습니다. C가 잠시 머뭇거리자 인도인은 웃으면서 빨리 먹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C는 호의를 거부할 수 없어 음식을 한 입 먹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C가 눈을 떴습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습니다. 아마도 인도인이 준 음식에 강력한 수면제가 들어 있었나 봅니다. C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의 배낭과 외투 등 주요한 물건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권이나 여행 경비도 모두 없어졌습니다. 순간 C는 너무 당황스러웠고 놀랐습니다. 기차 안을 여기저기 살펴봐도 앞에 있었던 인도인들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벌떡 일어나 기차의 모든 칸들을 살펴봤지만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도 힘들었습니다.

[사진]인도의 기차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소년. 창살이 마치 감옥을 연상시킨다

C는 다음 기차역에 내려 인도 경찰서를 찾아갔습니다. 자신이 기차 안에서 겪었던 일들을 인도 경찰에게 설명을 했습니다. 인도 경찰은 대충 듣더니 약간의 차비를 주며 한국 대사관에 가서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C는 무성의한 인도 경찰이 야속하기만 했습니다. C는 버스를 타고 한국 대사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렇지만 C는 수면제 후유증에다가 너무 당황해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습니다. C가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일단의 인도인들이 자전거를 타고 C를 뒤쫒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이것은 C의 환상이었을 수 있습니다.) C는 다시 당황이 되었습니다. 버스 안의 인도인들도 모두 C를 노려보는 것 같았습니다. 버스가 불빛이 환한 대형 건물 부근에 도착했습니다.

C는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버스를 뒤쫒는 인도인들도 무섭고 버스 안의 사람들도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C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대형 건물을 향해 달렸습니다. 자신을 뒤쫒는 인도인들로부터 도망가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대형 건물은 저녁인데 조명 불빛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대형 건물에 도착했습니다. 건물은 담벼락이 있었습니다. C는 계속 자신을 뒤쫓아오는 인도인들을 피하기 위해 대형 건물의 담장을 넘어 갔습니다. 너무 다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단의 인도 군인들이 C 앞에 나타났습니다.
"손들어! 움직이면 쏜다."
"(깜짝 놀라 손을 들고) 왜 그러세요. 여기가 어디죠?"

"누구냐? 여기가 어딘가 모르는가?"
"...모르겠는데요...저를 쫓아오는 무리들이 있어서 담을 넘었는데요."

C는 인도 군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놀랍게도, C가 담장을 넘은 곳은 인도 국방성 건물이 있는 장소였습니다. C는 인도 군인들의 심문을 받았습니다. 인도 군인들은 C를 인도의 군사 기밀을 빼내기 위해 잠입한 간첩 즉 스파이라고 단정지었습니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감히 인도의 국방성 건물에 담을 넘어 침투할 수 있는 자는 스파이 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았습니다. 북한 스파이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C는 이후 인도의 외국인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참고] 인도 영화 '조다 악바르'

C는 정말 억울하고 무섭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인도 감옥은 시설도 매우 열악했습니다. 여기서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C에게 엄습해 왔습니다. 인도의 감옥에서 하루 하루가 지나가는 것이 죽음이 다가오듯이 공포였습니다. C가 아무리 감옥 관계자에게 한국 대사관에 연락을 해보라고 해도 전혀 듣지 않았습니다. 인도 감옥 관계자들은 이미 스파이로 낙인찍혀 수감된 C의 어떤 말도 듣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거의 한 달이 지났습니다. C는 거의 자포자기 상태였습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가족들이 생각났습니다. C는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다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외국인 감옥에 수감된 범죄자 중 영국인이 한 명 있었습니다. 영국인 수감자는 C에게 작은 메모지 하나와 펜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 동안 자신의 억울함을 여러차례 호소하던 C를 위해 영국인 수감자가 교묘하게 준비한 메모지와 펜이었습니다.
"여기에 한국 대사관으로 보낼 너의 사연을 써봐라."
"이러다 걸리면 사형당하지 않을까? 무서운데..."

"걱정마라. 나는 여기 교도소만 여러번 수감돼 봐서 여기 사정을 훤히 알고 있어."
"알았어. 잘 부탁해."

C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영국인 수감자에게 메모지를 써서 주었습니다. 어차피 인도 감옥에서 스파이 혐의로 죽는 것 보다는 탈출을 시도해 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인도 감옥에서 쓴 메모지는 다행히 한국 대사관에 도착을 했습니다. 한국 대사관에 도착한 C의 메모지를 본 직원들은 "도대체 C가 누구야."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봤다고 합니다. 인도의 외국인 감옥에 간첩 혐의로 수감된 C가 한국인인지 북한인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선뜻 나서기가 어려웠을 수 있습니다.(이러한 이야기들은 친구 C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입니다.)
 
한국 대사관에 전달된 C에 관한 첩보는 당시 안기부(현 국정원)으로 전달됐습니다. 한국의 안기부에서 C가 누군지 조사와 회의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C의 친구가 우연히 참석했습니다.
"아니, C는 제 친구인데요. 이 친구는 인도어를 공부하고 있는데 언제 인도에 갔지."
"당장 한국 대사관을 통해 C를 석방시킬 수 있도록 합시다."

이렇게 C는 인도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국정원 친구의 신속한 도움이 없었다면 C는 어떻게 되었을까 소름이 돋기만 합니다. 그 당시가 1990년 초반이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얼마나 열악한 상황인지 짐작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C의 사연은 매우 긴 이야기인데 짧게 압축했습니다. 지금도 친구 C를 만나면 가끔 인도 감옥에 수감됐던 이야기를 웃으면서 하곤 합니다. 당시의 C는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평생 잊지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잘 알고 지내던 K씨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남자들의 경우는 아이들을 비롯해 가족 이야기는 그다지 잘 하는 편은 아닙니다. 그 날은 아이들의 학교 공부에 대해서도 잠시 대화를 나누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K씨로부터 중학생이 성적표를 조작해 발생한 에피소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K씨는 두 명의 아들을 두고 있는데 중학교에 들어간 둘째가 공부에 흥미가 없었다고 합니다. K씨의 둘째는 중학교에 입학한 후 처음 시험에서 좋지않은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둘째는 성적표를 보여주지 않았으나 첫째로부터 성적표의 존재를 알게 된 터였습니다. K씨는 성적표가 없었던 초등학교 시절에는 둘째의 성적을 몰랐기 때문에 이토록 성적이 좋지 않은 줄 처음으로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운동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둘째가 성적이 좋을 리 만무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생각 보다 결과는 나빴습니다.

그러나 K씨는 그렇다고 해서 아이의 성적에 크게 연연해 하지는 않았습니다. K씨는 아들들과 함께 즐기는 것을 행복으로 여길 정도로 늘 편하게 해주었습니다. K씨의 아내도 둘째에게 성적에 대해 과도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둘째 아들은 부모님이 어려서부터 자신에게 자율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째는 그 전보다 책상에서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스스로 깨닫고 공부하는 아들을 지켜보는 K씨는 흐뭇했습니다.

그런데 사건은 그 다음 시험에 발생했습니다. 둘째가 성적표를 K씨에게 보여주었는데 놀랍게도 지난 시험에 비해 성적이 크게 향상된 것이었습니다. 거의 바닥에 가깝던 성적이 우수한 성적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일취월장이었습니다. 그 동안 노력한 둘째에게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둘째의 성적표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까이서 둘째를 지켜본 엄마의 직감으로 둘째의 성적이 너무 잘 나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둘째가 예전보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은 늘었지만 공부를 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K씨의 아내는 성적표의 진실을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K씨의 아내는 둘째와 주변 아이들을 통해 탐문한 결과 성적표가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결국 확인했습니다. 그것도 자신의 둘째 아들 뿐만 아니라 학교의 많은 아이들이 조작한 성적표를 부모님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낸 것입니다. 성적표를 조작할 수 있는 컴퓨터 실력을 갖춘 학생들이 다른 여러명의 학생들의 성적표를 조작해주는 방식으로 벌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엄마로서 아들이 성적표를 조작을 한 것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자신을 늘 믿어주는 부모에게 뭔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성적표 조작이라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습니다. 둘째에게는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이런 일이 벌어져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둘째에게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을 다짐받았습니다.

K씨의 아내는 단지 자신의 아들만이 아니라 여러 학생들이 연루된 성적표 조작 사건을 그냥 모른 체 해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해 빠졌습니다. K씨의 아내는 학교 전체를 위해서나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 이 사실을 학교에 공식적으로 알려주기로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성적표를 조작해 부모에게 보여준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을 인지한 학교에서도 곧바로 성적표 조작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성적표 조작을 할 수 없도록 지폐에서 사용되는 홀로그램과 같은 방식을 사용하여 성적표를 발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휴대폰 문자 서비스를 통해 시험 후 성적표가 나오면 부모에게 직접 알려주기 시작했습니다.

 K씨의 아내와 같이 아들의 성적표 조작 문제를 단지 자신의 아들의 문제로만 덮어두지 않고, 학교에 공식적으로 알리고 시정할 수 있도록 하는 엄마는 거의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엄마의 제보를 받고 학교측에서도 신속히 문제해결을 위한 다양한 조치를 취한 것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학교측에서 전향적인 자세로 개선을 했기 때문에 지금은 전혀 학생들의 성적표 조작은 발생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한 아이의 엄마가 적극 나선 성적표 조작 사건은 학생들은 물론 학교 학부모 모두에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결말을 맺게 되었다고 합니다. K씨는 성적만이 행복만이 아니라는 마음으로 둘째가 건강한 몸과 건전한 가치관을 갖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고 함께 하는 시간들이 즐겁다고 합니다. 자신의 아이만이 아니라 보다 많는 아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생각하면서 사는 K씨 부부가 멋지게 느껴졌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퇴근 길에 '불광동 미륵불서 나왔다'며 접근하는 두 명의 남자를 만났습니다. 최근에 잠이 부족해 버스만 타면 잠을 자는데 이 날도 어김없이 버스에서 잠을 자다가 집 근처에서 깨어났습니다. 아직 잠이 덜 깬 모습으로 집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찌뿌둥한 얼굴로 터벅터벅 길을 걷는데, 갑자기 나타난 두 명의 남자는 "아버님, 근심이 많으십니다."하면서 말을 걸어 왔습니다. "누구세요?"라고 묻자 "미륵불에서 수행하는 사람입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두 명의 젊은 남자와 선문답(?) 수준의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뭐 하시는 분들인데요?”

“미륵불에서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보통은 머리를 깎고 수행을 하지만 저희는 머리를 깎지 않고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미륵불이 어디 있나요?”

“불광동에 있습니다.”


“불광동이요? 구체적으로 불광동 어디인가요? 주소는 어떻게 되죠?”

“불광동 근처요.”


그러면서, 한 남자는 화제를 돌리려고 하였습니다.


“아버님, 마음이 선하신데 근심이 많으십니다.”

“그래서요?”

(내가 왜 아버님인지 나이가 많아 보이나 봅니다.ㅠ)

“아버님 팔자 좀 펴드려고 그럽니다.”

“왜 자꾸 말을 돌리세요? 그럼 미륵불의 주지스님은 누구세요?”


다시 그 남자는 다른 말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아버님이 의심이 많으십니다. 저희는 수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주역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버님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그건 알겠으니, 주지스님이 누군지 말씀해 주세요.”


그래도 그 남자는 질문에 답변을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습니다.


(이미지 : 스포츠조선)


“밖이 추운데 좋은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하실까요?”

“누가 돈은 내나요?”


“아버님이 수행하는 사람들에게 사주시면 되지요.”

“저는 그럴 시간도 마음도 없습니다. 주지스님도 안알려주시니. 그럼 본인 이름이라도 알려주시겠어요?”


“제가 아버님의 팔자 좀 펴드리려고 그러는데 자꾸 의심이 많으시네요.”

“제 팔자는 좋은데요.”


그러자, 갑자기 “@@” 뭔가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내더니 두 남자는 빠른 걸음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미륵불 이야기를 했더니, 길거리에서 “복이 많으시겠어요.”라고 말하며 접근하는 여자들도 가끔씩 있다고 합니다. 아내는 “그래요. 저 복 많아요.”하면서 그냥 피해버린답니다. 어쩌면 부창부수같이 부부가 답변이 비슷합니다. 아내에 의하면 괜히 따라나섰다가 그들의 꼬임에 빠져 돈과 재산을 잃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조상 문제 운운하면서 돈을 갈취한다고 합니다. 미륵이란 것도 다 사실이 아닐 것이란 것입니다. 실제 불광동 미륵불 찾아보니 없었습니다.


대개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 등과 같이 말하면서 접근하는 사람들도 유사한 경우라고 합니다. 경제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나약한 마음이나 어려운 상황을 악용해 피해를 주는 사례가 발생하나 봅니다. 길거리에서 이런 분들 만나면 그냥 모른체 하고 지난가는 것이 더 좋을 듯 합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이런 분들 조심해야 겠습니다.


[추가 글]
오늘은 길에서 두 명의 여자가 다가와 "공덕이 많으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조금 관심을 보이자 "마음이 좋으셔서 잃는 것이 많습니다."라고 합니다. 그 여자들은 강원도 절에서 미륵 선사 공부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찻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길거리에서 절에서 나왔다고 속이는 것입니다. 요즘 경제가 안좋다보니 이런 사기를 치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만 이렇게 사기치는 도인들이 많이 나타나는 걸까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이 겨울방학이 끝난 후 학교에서 시험을 봤던 모양입니다. 회사에 퇴근 후 돌아온 아빠에게 작은 딸 아이가 옷 갈아입으라고 츄리닝 바지를 가져다 줍니다. 대개 큰 딸이 아빠의 츄리닝을 먼저 가져다주곤 했는데 큰 딸은 자기 방의 책상에서 뭔가 공부를 하는지 내다보지도 않습니다.

작은 딸은 아빠 주위를 맴돌더니 이야기를 꺼냅니다. 
"아빠, 학교에서 최우수상 받았어요."  
"응, 그래, 참 잘했다."

바지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지폐를 꺼내 특별 용돈을 작은 딸에게 주었습니다.
작은 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방으로 갑니다.

아내가 살짝 눈치를 줍니다.
"큰 딸도 용돈을 주지, 그래."
"무슨 상이라도 받았어?"

그러자,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던 큰 딸이 작은 딸에게 무언가 말을 합니다. 열린 방문 사이로 두 딸의 대화가 들립니다.
"나도 상 받았잖아."
"언니, 그건 다 받는 거잖아."

두 딸의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래도 상은 상이잖아."
"묵묵히 상."

거실에서 두 딸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나는 말했습니다.
"큰 딸도 상 받았구나. 아빠에게 상 좀 보여줄래."

큰 딸이 보여준 상은 '묵묵히 상'이었습니다.
"그렇구나. 참 훌륭한 상이다. 잘 했다. 특별 용돈을 줄게."

큰 딸도 그제서야 얼굴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큰 딸의 학급 담임 선생님이 자신의 반 아이들에게 모두 상을 주었던 것입니다. 같은 반 아이 중에는 공부 잘해서 상을 받는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더 많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그런 아이들 모두에게 각자의 장점을 적어 상을 주었던 것입니다.

[묵묵히 상의 문구 내용]

'위 어린이는 학교생활에 있어 나서지 않으면서 자신의 역할에 묵묵히 수행하는 태도가 예쁘기에 상장을 주어 칭찬합니다'
선생님이 상장에 쓰신 문구입니다. 아내에 의하면 큰 딸이 학교에서 묵묵히 다른 아이들을 잘 돕는 점을 칭찬한 것이라 합니다.

우리 부모들은 보통 공부 잘 하시는 아이들에게 관심을 더 갖는 것도 인지상정입니다. 큰 딸의 담임 선생님은 사려깊고 지혜로운 마음 씀씀이로 모든 학생들을 감싸 주었습니다. 저도 반성을 하였습니다. 만일 작은 딸의 '최우수상'만 칭찬하고 말았다면 큰 딸이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모든 학생들을 사랑으로 가르치는 담임 선생입니다.

어찌보면, 작은 정성일 수 있지만 담임 선생님은 자신의 반 학생들 40여명에게 일일이 각자의 장점을 찾아 상을 하나씩 준비했던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었다면 이런 실천을 하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아내 얘기를 들어보면, 평소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칭찬 스티커로 칭찬하기도 하고, 그 날 마다 학생들이 각자 자신 생활 중에서 반성할 수 있는 사항에 대해 도표를 만들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세심히 관찰하고 도와주는 역할도 잘 해주었다고 합니다.

[묵묵히 상과 최우수상]

작은 딸이 받은 '최우수상' 보다 큰 딸이 받은 '묵묵히 상'이 더 값지고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자식이 모두 소중하듯이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은 소중합니다. 자상하게 아이들의 장점을 살려 상을 주고 기를 죽지않게 배려해 준 선생님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은 부모나 선생님이나 매 한가지 역할입니다.

단순히 성적만으로 아이를 칭찬하려 했던 제가 부끄러워집니다. 학교 선생님이 얼마나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으로 보살피느냐에 따라 아이들의 미래도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도 한 가지 깨달음을 주신 선생님입니다. 앞으로 아이들의 장점을 찾아 칭찬을 자주 해주어야 겠습니다.

"담임 선생님, 고맙습니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참고]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1989년작)
강우석 감독의 대표적 영화 중 하나인데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예나 지금이나 성적 순위와 입시 지옥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의 현실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