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수단'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1.05 박대기 기자와 폭설 뉴스 현장 목격 소감 by 진리 탐구 탐진강 (99)
  2. 2009.12.21 1박2일에 나온 사륜 오토바이 ATV가 뭐야? by 진리 탐구 탐진강 (25)
  3. 2009.04.15 오픈카의 원조 삼발이차의 세바퀴 질주를 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8)


지독한 폭설이었습니다. 어제 눈보라 속에 출근을 했습니다. 아침에 우산을 챙겨가지 않았다면 눈보라에 휩싸여 눈사람이 될 뻔 했습니다. 새해 첫 출근에 폭설을 만나 지각한 직장인들이 속출했습니다. 시무식이 연기된 기업도 많다고 합니다.

퇴근 길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해 일찍 퇴근을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빙판길 도로를 피해 지하철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그야말로 지옥철이었습니다. 출퇴근이 교통대란 속 전쟁이었던 하루였습니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중부지역에 1936년 시작된 우리나라 적설량 계측 이래 사상 최고의 하루 적설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폭설이 낳은 화제, 박대기 기자와 청담동 용자

집에 와서 인터넷을 살펴보니 박대기 기자가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찾아서 읽어보니 KBS의 2년차 신출내기 박대기 기자가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오전 내내 폭설을 그대로 맞고 뉴스를 진행해 잔잔한 감동을 준 모양입니다. 시간대별로 기다리면서 뉴스를 진행한 것이 인상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TV 화면 아래에 나온 아이디가 waiting@kbs.co.kr이었기에 '대기중(waiting 웨이팅)'이어서 또한 네티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박대기 기자는 폭설이 낳은 스타로 눈사람 기자란 별명도 얻었습니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하려는 기자정신이 나타난 사례가 하겠습니다.




이 날 박대기 기자는 새벽 4시경부터 현장에 나와서 방송 대기했다는데 교통경찰은 출근 길에도 거의 보이지 않은 듯 합니다. 한편 박대기 기자에 이어 '청담동 용자'도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용자란 네티즌 용어로 용기있는 자의 의미입니다. 청담동 부근에서 한 젊은이가 스키를 타는 모습의 사진이었습니다. 폭설로 인해 서울 도시 거리에서 스키를 타는 모습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웃음이 절로 나기도 합니다.
(박대기 기자에 대한 시간대별 눈사람 사진과 합성 짤방 사진이 무한 등장해 네티즌에 화제인데 더 보기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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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쌓인 거리에서 직접 본 방송 기자의 뉴스 생방송 현장

사실 저는 지난 연말 서울에 갑작스런 눈이 내렸을 때 박대기 기자 처럼 강추위 속에서 길거리 뉴스 생방송을 하는 어떤 기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당시는 너무 추워서 온 몸을 움추리고 땅바닥만 보고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뭔가 사물이 있어 고개를 들어보니 KBS 생방송 뉴스 차량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뉴스 생방송 장비나 방송 카메라와 충돌할 뻔 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살펴보니, 어떤 기자가 마침 길거리 표정을 뉴스로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도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그 기자는 생방송이기 때문에 다소 얇은 외투만 입고 추위에 떨면서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해야 하는 방송 기자와 카메라맨을 비롯한 제작 현장 사람들이 조금 불쌍해 보였습니다. 또 다른 박대기 기자와 같은 생방송 현장을 목격한 셈이었습니다.



우리가 편하게 TV를 통해 뉴스를 전해듣지만 방송은 실제 현장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생생한 소식을 전해야 하기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기자 이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길거리서 만나서 반갑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김대기 기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방송을 만들기 위해 눈보라치는 계절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추위 속에 뉴스 생방송을 진행하는 현장과 폭설로 자동차 운행이 줄어든 도시의 한적한 모습 

강추위 속 방송 카메라 촬영 현장의 투혼 느꼈다

이 뿐 아니었습니다. 며친 전에는, 어떤 건물 앞에서 열심히 방송용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사람들과도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이 날도 무척 추운 날이었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카메라맨들의 복장이 에스키모 복장을 연상할 정도로 완전 무장했습니다. 우리가 방송이나 영화를 통해 만나는 장면 하나 하나가 그냥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 근성을 지닌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미짚 또는 지미집이라고 불리는 촬영장비를 통해 차가운 강추위 속에 촬영을 하고 있는 장면 

역시나 프로의 세계는 뭔가 다른가 봅니다. 무엇을 촬영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폭설과 한파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진면목을 새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뉴스 등 한 겨울 카메라 촬영 현장은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됐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그 투혼이 아름답게 여겨졌습니다.  



눈 쌓인 아침을 여는 사람들 vs 눈을 즐기는 사람들

폭설이 내리면 고생하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마다 눈을 치우는 경비 아저씨들이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들도 함께 제설작업을 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같은 폭설에는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물론 단독 주택의 경우 자신의 집 앞에 쌓인 눈을 잘 치우는 사람들도 많기는 합니다. 그리고 거리나 주요 건물 주변에는 쌓인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자주 눈이 띄었습니다.



각종 제설작업 도구를 이용해 폭설을 치우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은 훈훈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들이 있어 우리는 조금이라도 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눈 내린 거리나 건물 앞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눈을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길거리에서 눈싸움을 하면서 마치 10대 청소년이나 초등학생 마냥 즐거워하는 젊은이들도 많았습니다. 겨울방학은 맞이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물론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마냥 좋은 것 같습니다. 눈 내린 풍경은 바라보는 눈(?)에 따라 즐거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 쓰레기가 되기도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 속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겨울에도 영하의 날씨를 이기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새벽 시장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아침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그들은 열심히 살고 있는 셈입니다. 무엇인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할 때 새벽 시장에 가서 보면 신선한 삶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아침이 밝아오고 사람들은 눈이 쌓이고 다시 얼어붙은 빙판 길로 쏟아져 나와 저 마다의 삶의 현장으로 나설 것입니다.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 한없이 약한 존재인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비롯한 교통수단이나 인간문명의 이기도 결국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인간 세상은 이기심과 탐욕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론 갑작스런 폭설로 출퇴근 교통지옥이 되었지만 새해 벽두부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새해 첫 출근부터 힘든 시작이었지만 모두 힘차게 헤쳐나갔으면 합니다. 어쩌면 폭설과 한파가 시련이 될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러한 역경은 자연이 인간에게 스스로 한번쯤 돌아보고 살라고 준 선물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추가] 박대기 기자의 폭설스타 소감
오늘 박대기 기자가 KBS 라디오 COOL FM '이혁재 조향기의 화려한 인생'에 전화 인터뷰로 소감을 말했습니다. 박대기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한 네티즌이 남긴 사연을 전하며 "추운 곳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 아팠다고 한 분이 계셨는데, 현장에서 고생하는 선배들이 훨씬 많아 송구스럽다. 나는 그나마 편하게 일한 거고 단지 이름과 이메일 계정 때문에 뜬 것 같다"고 겸손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특히나 솔로인지 확인해달라는 청취자들의 사연에 박기자는 수줍은 말투로 "저는 평생 인기가 없는 사람이라...솔로입니다" 고 대답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후문인데 이번에 인생에서 제대로 인기를 얻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번에 KBS 박대기 기자 말고도 MBC 기자도 눈을 털지않고 방송을 했다고 합니다. 대기만성 박대기 기자가 이름 덕을 톡톡히 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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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1박2일 혹한기 대비 특집에 사륜 산악 오토바이가 등장했습니다. 산 속에서 폭설이 내리자 1박2일 멤버들을 산 등성이를 넘어 안전한 장소로 이동시킨 일등공신입니다. 당시 강원도 인제의 무림천 ATV팀이 1박2일의 강호동을 비롯 멤버들을 태우고 이동시켜 주었습니다. 눈 내린 산길에서 능력을 발휘해 준 것입니다.

이는 영어로 ATV로 불리는 교통수단이었습니다.
ATV는 All-Terrain Vehicle의 약자입니다. ATV는 사륜 오토바이를 포함하여 도로 이외의 산악지형에도 사용할 수 있는 탈것들을 총칭하는 용어입니다. 대개 4개의 바퀴를 가진 모델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사륜 오토바이나 산악 오토바이로 불리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살펴본 결과 최초의 ATV는 일본 혼다에서 1970년에 처음 제작된 이래 다양한 모델이 개발되었습니다 . 실제로 실용적인 모델은 1982년 혼다에서 제작한 ATV가 최초라고 합니다. 보통 자동차나 탈 것이 가지 못하는 지형에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으로 인해 ATV는 북미지역 사냥꾼들이나 산악 주행용으로 자주 이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일반 자동차가 갈 수 없는 산악 주행용으로 처음 개발
 
일본 혼다가 ATV를 개발한 것은 처음에 산악 지형을 위한 실용적 모델이었으나 점차 발전되면서 스포츠용으로도 개발되기 시작했습니다. ATV가 스포츠 레저용으로도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당초 일본 혼다가 설계와 엔진을 특허내 독점을 했으나 나중에 스즈키가 4륜 ATV 개발을 주도했습니다. 이후 가와사키와 야마하 등 여러 회사가 ATV를 출시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ATV가 등장했습니다. 원래 3륜 ATV도 잇었으나 안전 문제로 인해 4륜 ATV가 일반화되었습니다. 삼륜방식은 가벼운 무게와 앞바퀴가 하나인 영향으로 코너를 돌 때나 경사로에서 ATV가 뒤집힐 수 있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ATV 모델들은 스포츠용과 실용으로 나뉘어 제작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스포츠용은 작고 가벼우며 이륜구동을 사용하여 빠른 가속이 가능하고 최고 속도는 시속 120km정도라고 합니다. 실용 모델은 스포츠용보다 크며 사륜구동을 사용하고 최고속도는 시속 104km정도입니다. 특히 실용 모델은 선반이나 작은 화물칸을 이용하여 짐을 나를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편,바퀴가 6개 또는 8개인 AATV(amphibious all terrain vehicle)도 있는데 육지 이외 습지대도 이동 가능하다고 합니다.

일반 주행은 ATV 등록제 의무화 법제도 규칙 지켜야

우리나라에 ATV는 처음에는 농업용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으나 비포장 산악지형도 달릴 수 있다는 이점으로 레저용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일반 오토바이를 대신하는 교통수단으로 이용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따라, 우리나라는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해 2007년 자동차관리법을 개정해 일정 조건을 갖추면 ATV 체험장이나 농로 등 정해진 장소를 벗어나 도로를 달릴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ATV가 불법 운행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오토바이로 분류되는 ATV는 가장 하위 차로를 이용해야 하고 시속 50킬로미터 이상 질주하면 안됩니다. ATV 운행을 하기 위해서는 관할 주소지의 시군이나 구청에 등록하고 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무적 무보험으로 불법 운행을 하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실 ATV 등록제 시행에 들어갔지만 30만원 이상의 비용 부담을 이유로 등록하지 않은 사용자가 많아 무면허 불법주행이 문제가 되는 셈입니다.

이 처럼 ATV가 보편화되면서 경주, 양평, 강촌, 제주, 안면도, 평창, 인제 등 전국 여러 지역에는 ATV를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생겼습니다. 스포츠 레저로 ATV를 이용하는 사람들도 전국 주요 장소에서 이용이 가능합니다. 일반적으로 ATV의 이용 가격은 해당 업소가 식사와 함께 패키지 형태로 제공하기도 하는데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습니다.

1시간 1인당 25,000원
단체 4인 이상 2시간 1인당 50,000원
1식 제공= 닭도리탕, 송어회, 황태국 중 택일.

단체 4인 이상 2시간30분(당일투어)

1인당 75,000원
1식 제공+바베큐 제공.
단체 4인 이상 3시간
(1박 투어)
1인당 80,000원
2식 제공+숙박제공

이 밖에도 ATV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와 내용은 검색을 통해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농촌이나 산촌 마을에서 ATV는 이동 교통 수단으로 유용한 실용적 탈 것이 될 것입니다. 아울러, 레저 문화가 발달하면서 산악 자전거에 이어 산악 레포츠인 ATV도 대중화되는 추세인 듯 합니다. ATV에 대해 알고나니 시골마을과 같은 곳에서는 상당히 실용적인 교통수단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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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에 자유로를 드라이브하고 있는데 낯선 오픈카 한 대가 앞질러 갔습니다. 어린 시절에 목격하던 앞바퀴 하나, 뒷바퀴 두개의 삼발이차였습니다. 한마디로 '세바퀴'인 셈입니다. 겉 모습은 보잘 것 없는 삼발이차가 시속 70킬로를 넘는 속도로 달렸습니다.

삼발이차를 다시 따라잡았더니 어떤 남자 분이 헬맷도 쓰지않고 다소 위험한 세바퀴 질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직접 고급 오토바이의 엔진으로 개조한 차인지 모르겠지만, 네발 자동차 사이를 당당하고 유유히 달리는 삼발이차는 옛 추억을 되살리게 했습니다. 삼발이차는 삼륜차인데 과거에는 일명 '딸딸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시골에서는 차가 귀하던 지난 1970년대 시절에는 비포장 신작로에 삼발이 트럭 한 대라도 흙먼지를 날리며 지나가면 손을 흔들어 히치하이킹하고 했습니다. 지나가는 자동차를 공짜로 얻어타는 히치하이킹(hitchhiking)은 시골 아이들의 재미 중의 하나였습니다. 당시 마음씨 좋은 운전사들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아이들을 태워주는 것을 당연시 했습니다.

버스도 없던 시골 산골마을에서 약 10리(4Km) 정도의 거리는 걸어다니던 아이들에게 지나가는 트럭의 뒷 칸에 올라 타 오픈카처럼 달리는 기분은 짜릿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까만 고무신을 신고 어깨에 책보를 매고 학교를 다니던 시절의 풍경은 정겹기만 했습니다.
 


[세바퀴의 삼발이차가 네발 자동차 사이에서 도로를 질주하고 있는 모습]

당시에는 양말은 거의 못신고 다니다보니 뛰다가 고무신이 미끄러지고 벗겨져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고무신을 아끼기 위해 벗어서 들고 맨발로 걸어다니기도 했습니다. 운동화를 신는 것이 꿈인 시절이었습니다. 트럭 아저씨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아무런 사례도 없이 태워주는 넉넉한 마음이 넘치는, 가난 속에서도 인정미가 넘쳤던 시절이었습니다. 아직도 일부 시골 마을의 도로에서는 어르신들이나 아이들을 태워주는 경겨운 풍경은 남아 있습니다. 

까만 고무신과 신작로의 트럭은 가난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입니다. 요즘의 도회지 아이들도 시골에 가서 경운기 뒷칸에 타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지난해 여름에 시골에 갔을 때 아이들이 경운기를 탄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늘상 타는 자동차이기 때문인지 할아버지가 태워주는 경운기가 더 재미있다고 합니다.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은 덜커덩 거리며 달리는 경운기가 제 맛인가 봅니다. 

[1970년대 삼발이차에 탄 사람들과 현대의 경운기 타는 아이들]

삼발이차의 원조는 기아자동차입니다.
 일본에서 '삼화제작소'라는 기업의 경영을 이끌었던 '김철호' 옹은 해방 직전 귀국하여 1944년 12월 '경성정공'을 설립한 후 1952년 3월 한국 최초의 국산 자전거 '3000리호(삼천리 레스포 자전거의 모체)'를 생산했던 것입니다. 1959년 일본의 '혼다'와 '동양공업(마쓰다의 전신)'과 제휴하여 1961년 모터싸이클 '혼다 C-100'(대림 혼다의 모체)를 생산했습니다.

그 후 1962년 1월  일명 '딸딸이'라 불리는 3륜 화물차 'K-360'을 생산하면서 1962년 10월 상호를 '기아산업'으로 변경했던 것입니다.
당시 삼륜차는 2기통 577cc 엔진을 장착하였고, 그 후 몇가지 개량형 모델이 나오며 1974년까지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삼발이차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은 삼발이차는 안정성이 부족해 코너에서 넘어지기 쉽고 속도를 내는데 한계가 있었던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아직도 삼발이차는 중국을 비롯한 저개발 국가들에서는 우리의 1970~1980년대와 같은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수도인 북경에서도 가끔 삼발이 화물차를 볼 수가 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삼발이차가 현대에 맞게 세련된 형태로 새로 나오기도 합니다. 삼발이차도 과거와 현재가 공준하는 세계인 셈입니다.
 

[중국 북경의 삼발이차 모습과 Panther Motors ScootCoupe의 삼륜차]
[삼륜차 형태로 만든 스위스의 전기 자동차]

삼발이차를 보고나서 어쩌다보니, 옛 추억을 거슬러 올라갔다가 우리나라 삼륜차의 유래와 중국의 삼륜차, 그리고 새로 개발되는 현대 컨셉의 삼륜차에 이르기까지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삼발이차는 지금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사라져가는 추억의 풍경이지만 예전에는 시골 사람들이나 도시의 서민들에게는 애환이 담긴 소중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요즘은 대부분 집집마다 자동차를 보유하고 있고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 교통수단들이 발달되어 있어 불편함을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과거의 어려운 시절에도 불굴의 투지와 도전정신으로 열심히 경제발전에 매진한 결과 우리가 보다 나은 환경을 갖게 된 것임을 잊지말아야 겠습니다. 최근의 경제불황에 시름이 깊지만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잘될 것이라는 믿음을 잃지말고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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