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2.02 60일간 소국 국화꽃 탄생과 일생 관찰기(국화의 매력 5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2. 2009.12.01 장례식에 흰 국화를 쓰는 이유와 유래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80)


어제는 장례식장에서 하루종일 있었습니다. 국화꽃으로 장식된 근조화환이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조문객을 맞이할 때마다 서글프게 우는 처형의 남편인 동서가 애처롭기만 했습니다.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고 모두가 자신의 탓이라고 한탄'하는 큰 동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때때로,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면서 통곡하는 남자의 눈물과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올해 늦가을부터 국화꽃을 유난히 많이 보게 됐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늦가을 빌딩 앞에 소국화가 심어지기 시작했고 저는 휴대폰에 그 국화꽃이 변화하는 모습의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거의 매일 소국을 보면서 국화의 변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최근 돌아가신 큰 처형을 위한 마지막 선물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고통없이 편히 쉴 수 있기를 기원하는 헌화로 바치고자 합니다. 휴대폰 사진첩에 저장돼있는 국화꽃을 찾아봤습니다. 그다지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좋지않아 다소 화질이 떨어집니다. 작은 국화꽃을 무리지어 꽃피우는 소국의 탄생과 일생이라 할 수 있는 그 슬픈 향연 속으로 떠나가 봅니다.

9월 15일경, 화단에 작은 국화인 소국이 심어졌습니다.
어느정도 화원에서 길러진 소국이었는지 벌써 꽃망울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노란색과 희색을 띤 꽃몽우리가 꽃의 탄생을 시작하는 셈입니다.


소국은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화단에는 밝고 화사한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9월 20일경, 소국이 하나 둘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작고 노란 꽃이 눈부신 햇살에 빛나고 있었습니다. 아직은 꽃잎이 벌어지지 않아 사진 상으로 마치 노란 점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꽃망울들의 군락 속에서 눈에 띄는 꽃이 있습니다. 노란색 잎을 벌리며 소국 한송이가 군계일학처럼 그 자태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이 하나 둘 터뜨려지기 시작합니다. 9월의 가을 햇살은 국화꽃을 피우는데 적당한 일조량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9월 25일경, 드디어 노란 소국이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노란색 꽃을 활짝 드러내며 밝은 미소를 짓는 것 같습니다. 노란색 국화는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화사하고 청순한 느낌입니다. 아직은 꽃망울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꽃망울이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국화는 동양에서 상고절이라는 한자어로 설명되기도 합니다. 동양화에서는 사군자의 하나로 순결과 절개의 상징으로 국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국화는 왜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 불렸을까?

우리들은 대개 국화하면 늦가을에 피는 대표적 꽃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많이 가을에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국화는 주로 서리가 내리는 계절에 피어나 차가운 서리에도 굴하지 않고 외롭게 늦가을을 지켜내기 때문에 오상고절이란 별칭을 얻었습니다. 오상고절(傲霜孤節)은 업신여길 오(傲), 서리 상(霜), 외로울 고(孤), 마디 절(節)이란 한자를 쓰는데, 그 의미는 서리를 업신여기며 홀로 절개를 지킨다는 뜻이 됩니다.

사실 국화가 가을에만 피는 것은 아닙니다. 국화꽃이 피는 시기와 꽃의 크기 및 생김새 등에 따라 여러 가지 국화의 종류가 있습니다.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서는 5~7월에 피는 하국(夏菊), 8월에 피는 8월국, 9~11월에 피는 추국(秋菊) 및 11월 하순부터 12월에 걸쳐 피는 한국(寒菊)으로 나뉘게 됩니다.

그리고 꽃의 크기에 따라서는 꽃의 지름이 18센티미터(㎝)가 넘는 대국(大菊), 지름이 9~18㎝ 정도인 중국(中菊), 지름이 9㎝가 채 안 되는 소국(小菊)으로 나뉘게 됩니다. 이번 포스팅에서 소국이 주제이니 사진과 글을 참고하면 될 듯 합니다. 또한 국화꽃의 생김새나 색상에 따라서 여러가지 이름들을 갖고 있습니다. 국화는 우라나라 사람들에게 그 만큼 친근한 존재인 셈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꽃망울을 터트린 국화가 화사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9월 28일경, 여전히 꽃망울은 끊임없이 생기고 꽃잎은 활짝 펴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꽃망울이 꽃잎에 비해 더 많습니다. 그 동안 노란색 국화만 사진을 찍었는데 옆에서 보니 바라색 소국도 활짝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노란색에 비해 개화가 더 빠른  것 같습니다. 보라색은 첫사랑의 추억을 생각하게 합니다.


10월 5일경, 이제는 꽃망울 보다 활짝 피어난 국화가 더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소국의 꽃망울은 잘 안보이고 활짝 핀 꽃잎이 더 많이 보여서 화단이 화사한 모습으로 변모했습니다. 화단 주변에 사람들이 모이고 눈길을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국화는 매력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아마도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과 닮은 듯 하기도 합니다. 혼자가 아니라 옹기종기 함께 모여살면서 어려운 역경을 극복해가면서 살아가는 인생과 같다는 느낌입니다.

국화의 매력 5가지

첫째로 순수함입니다.
국화는 아주 화려하지 않습니다. 장미와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순수한 천연의 아름다움을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거부감이 들지 않습니다. 늘 가깝게 두고 보고싶은 꽃입니다. 그래서 동양의 사람들은 관상용으로 국화를 길렀는지 모릅니다. 동양화에서 국화를 사군자로 칭송할 만큼 순수한 아름다움이 크다 하겠습니다. 화장을 덕지덕지한 인공미인이 아닌 자연미인과 같은 것입니다.

둘째로 은은한 향기입니다.
국화는 아주 진한 향기가 아닌 은은한 향기를 갖고 있습니다. 너무 진한 향기는 당장은 사람의 코끝을 자극하지만 오래 향기를 맡기는 곤란합니다. 길거리에서 엔젤트럼펫 꽃향기를 맡게되면, 지나다가 흠칫 놀랄 만큼 향이 진한 것을 느끼게 되는데 너무 진한 향기는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여자가 진한 향기의 향수를 하고 지나가면 처음엔 눈길이 가다가도 코끝의 자극 때문에 불쾌한 느낌이 드는 것도 이같은 이유일 듯 합니다. 

셋째로 친근감입니다.
국화는 우리 사람들과 늘 곁에 있는 듯한 친근한 매력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꽃이 있지만 국화만큼 친근한 꽃도 없습니다. 국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익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입맛에 맞는 한식 밥상을 찾듯이 국화는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동양적 아름다움이 간직한 국화인 셈입니다.

넷째로 인내심입니다.
국화는 차갑고 모진 서릿발을 이겨내고 피어납니다. 국화는 혼자가 아닌 여러 군락의 꽃이 함께 피어납니다. 국화가 함께 역경을 이겨내고 꽃을 활짝 피우게 됩니다. 다 함께 환상의 꽃밭을 만들어 줍니다. 추운 날에 함께 있으면 추위를 이길 수 있듯이 말입니다. 인내력도 함께 격려하며 나눌 때 커질 수 있습니다. 국화는 굳건한 기상과 절개로 피어난 인내심의 상징입니다.

다섯째로, 희생정신입니다.
국화는 자신을 희생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영혼을 달래주는 국화인 셈입니다. 우리가 장례식에서 헌화하는 꽃이 국화입니다. 오래 인간의 역사에서 꽃은 늘 함께 했습니다. 그러나 국화만큼 우리네 인생의 마지막과 함께 한 꽃은 드뭅니다. 스스로를 희생해 하늘나라로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국화를 늘 아끼고 사랑하는지 모릅니다.

<10월 10일경, 소국이 이제는 군락을 이루며 아름드리 피어나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0월 20일경, 꿀벌도 국화 꽃향기에 취해 날아듭니다.
노란색 꽃송이의 한 가운데 꿀벌 한 마리가 앉아 있습니다. 얼마 남지않은 계절의 끝자락에서 열심히 꿀을 모으고 있습니다. 국화는 벌들에게 겨울을 준비하는 양식인 것입니다. 거의 꽃망울은 보이지않고 화사한 꽃들의 군락이 향연을 펼치는 듯 합니다.


10월 25일경, 국화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달리고 있습니다.
국화꽃이 저 마다 아름다움을 뽑내면서 화단에는 온통 노랜색 보라색이 덮어버렸습니다. 파란색 줄기의 잎은 잘 보이지 않을 정보입니다. 그런데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아침 저녁으로 일교차가 심합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추위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보라색 소국은 꽃잎의 색상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11월 6일경, 갑작스런 초겨울 추위에 꽃들이 움추렸습니다.
한파가 닥친 국화는 주말을 지나며 급격히 생기를 잃은 모습입니다. 꽃잎도 색깔이 달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노란 빛깔이나 보라 색상이 흰색을 조금씩 띄기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여전히 국화꽃의 면모를 잃지는 않았지만 절정을 지난 듯 합니다. 강추위가 없었다면 더 오래 간직한 국화꽃의 향연이었을 것 같습니다.


11월 15일경, 소국은 이미 꽃잎이 하얗게 바랬습니다.
노란색은 옅은 노란색으로 변했고, 보라색 소국은 이미 꽃잎이 시들었습니다. 국화의 일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몇일 동안을 지켜보는 사이에 화단의 소국은 사라졌습니다. 빌딩 관리인이 소국 대신에 다른 식물로 교체를 한 것입니다. 아쉬운 소국과의 이별이었습니다. 


이렇게 소국과의 짧은 만남은 이별을 고했습니다. 국화를 가끔 지나면서 보거나 꽃집에서 살펴보면 항상 화사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꽃망울에서 피어나는 모습, 그리고 절정의 시기에 군락의 화사함을 자세히 관찰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 후 국화가 시들고 생을 마감하는 모습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어쩌면 국화의 일생은 우리 인간의 일생과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네 사람들은 태어나서 결국 한 줌의 별먼지처럼 사라지게 됩니다. 꽃망울로 피어난 국화꽃과 같이 사람들도 아름다운 청춘을 지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 이별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한떨기 국화꽃처럼 살다간 큰 처형을 생각하니 국화의 일생이 더 가슴에 사무치게 와닿습니다. 하필이면 국화꽃이 지고나서 큰 처형은 지병이 더욱 악화됐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국화꽃의 탄생과 일생을 관찰한 60일간의 기록도 그렇게 마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함께 있어 행복했습니다. 국화꽃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다만 사라질 뿐입니다. 또 다시 태어날 탄생의 그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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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산골 농촌 마을에서 자란 어린 시절에 간혹 꽃상여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아이에게 꽃상여와 상여소리는 신기한 대상이었습니다. 꽃상여를 따라가며 구경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죽은 이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의식이라는 것을 나중에 어른들을 통해 알게 됐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아마도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 때까지도 고인을 떠나보내는 장례식 의식은 꽃상여가 맡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유학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습니다.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의 도움으로 유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는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던 표고버섯 재배였습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저는 방학 때 마다 시골에 돌아가 일손을 거들었습니다.

한 겨울에 산 비탈에서 표고버섯 재배를 위한 참나무를 베고 종균을 넣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산으로 부모님과 일을 하러 가는데 고향 친구의 아버지가 나와계셨습니다. 건강이 좋지않은 분이었습니다. 지나가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지게에 나무를 지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집 앞을 지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슬프게 울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당시 저는 난생 처음으로 상여를 메고 장례식에 참여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마지막 의식에 최소한의 도리였습니다. 그 때가 1980년대 초반경이었습니다.

유년시절 꽃상여의 기억과 허망한 인간의 삼과 죽음

어제 저녁에 큰 처형이 입원한 암센터에 갔습니다. 말기암이었던 큰 처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실을 찾았습니다. 큰 처형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처가 식구들을 슬픔 속에서 쾌유를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함께 기도하며 곁에 서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직감적으로 큰 처형이 운명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통한 죽음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서글펐습니다. 

고통 속에서 돌아가신 고인이 하늘나라에서는 아무 고통 없이 편안히 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인생에서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번뇌가 뇌리를 감싸고 돕니다.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허망한 사람의 일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유년 시절의 꽃상여의 기억은 이제 흰 국화꽃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고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국화꽃을 바치고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례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이 흰 국화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자리에는 흰 국화가 놓여 있습니다. 왜 우리는 흰 국화를 고인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헌화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몇십년 전만 해도 꽃상여를 메고 향을 피웠습니다.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전통이 서구문화로 급속히 대체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과 100여년전 구한말 개화기에 처음 전해진 문화인 셈입니다.

하얀 소복과 꽃상여가 검은색 상복과 흰 국화로 바뀐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전통이 간소화한 서구 문화에 자리를 내준 셈입니다. 국화는 고결, 엄숙의 의미가 있고 검정색은 죽음을 뜻합니다. 경건하고 엄숙한 장례식에 국화가 갖는 의미는 각별한 것입니다.
 
고결함과 엄숙함의 국화꽃을 바치는 인간의 역사

그런데 국화가 인간의 장례에 사용되는 관습은 매우 오래된 역사입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영에 이미 국화가 장례식에 사용된 흔적이 있습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이 그 지역입니다. 샤니달 유적에서 출토된 네안데르탈인 시신 주변에는 여덟 류의 꽃이 담겨진 화분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20만년전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인 네안데르탈인이 이미 꽃으로 치장하고 헌화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운 장례 관습은 오랜 세월을 흘러왔습니다. 한반도에서도 약 4만년전 구석기 시대에 국화가 장례에 사용된 흔적이 나타납니다. 지난
1979년 충북 청원군 두루봉에서 구석기 동굴인 '홍수굴'이 발견되었는데 다섯 살배기 어린 아이 유골도 함께 출토됐는데 유골 위에 고운 흙이 뿌려져 있었고 그 흙 속에서 국화꽃 가루가 나왔다고 합니다. 고인의 안락한 사후 세계를 위한 관습일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죽음 앞에서 국화꽃을 헌화하는 것이 고귀한 행위였던 셈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우주 속의 별먼지로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슬프지만 고인을 생각한다면 그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고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흰 국화꽃을 바치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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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