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아니면 돼?"

강호동이 1박2일에서 자주 외치던 말입니다. 1박2일 제작진은 친절하게도(?) 그 말을 방송 자막에 넣기도 했지요. 아무리 복불복 게임이라고 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청소년들이 많이 시청하는 방송에서 적절했는지 의문이 듭니다. 물론 요즘은 강호동도 자제하고 있지만요. 

초근 MC몽이 고의로 생니를 발치해 병역기피 비리 사건을 보면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이 소름끼치게 느껴집니다. 결국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더라도 '나만 걸리지 않으면 괜찮다'는 양심불량의 부도덕성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MC몽은 부정한 수법으로 생니를 뽑고 임플란트 치료도 하지 않은 채 군면제를 받으려 했다는 사실이 탄로나지 않을 것으로 믿었을 테니까요.

게다가 황당한 거짓말 변명을 미니홈피에 올릴 정도로 철면피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요. 재수없게 걸렸다 생각하는 것인가요. 경찰은 병역 브로커에게 250만원을 주고 허위로 디자인학원 수강증명을 발급받는 등 구체적인 병역기피 내역과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병역법 위반과 위계공무방해 혐의로 MC몽을 불구속 입건했고 검찰 수사에 넘겼습니다. 자세한 경찰 수사 내용과 발표 전문은 더 보기에 잘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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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니면 된다'는 천박한 이기주의가 공정한 사회 가로막는 망국적 폐해 


1박2일은 MC몽과 같이 나만 걸리지 않으면 된다는 불순한 생각을 부지불식간에 시청자들에게 오염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올해 2월 방송된 1박2일 시청자투어를 보면 '나만 아니면 돼.'를 참가자들도 함께 외치는 모습이 여과없이 나왔습니다. 어느새 시청자들과 일반 국민들에게도 당연시 되는 말이 된 것이지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에서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이고 교활한 개인주의 발상은 매우 위험합니다.


설령 복불복 게임이라고 하더라도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는 표현은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나 KBS는 국민의 세금인 시청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입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낙하산 사장에 의해 관제방송이란 오명도 있지만요. 그래도 1박2일 나영석PD를 비롯한 일부 제작진은 공정방송을 위해 총파업에도 참여할 정도로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방송을 통해 지속적으로 주입한 것은 문제가 있었던 것이지요.

가까운 예를 들어 볼까요. 우리나라 사회는 언젠가부터 매우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올해 들어 김길태의 성폭행 살인 사건, 부산 도끼 만행 등 끔찍한 흉악범죄가 많았습니다. 지난  6월에 있었던 제2의 조두순 사건이라 불리는 김수철 성폭행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흉악범 김수철에 의해 8살 소녀가 학교 복도에서 480m를 울먹이면서 끌려가는데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발생한 사건입니다. 만약 길거리의 시민들이 경찰에 신속히 신고라도 했다면 미연에 범죄를 막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내 일 아니면 괜찮은 일일까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의에 침묵하는 이기주의 현주소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시민의식이 흉악범들이 활개치게 만드는데 일조한 셈입니다. 경찰이 민생치안에 소홀한 측면도 있겠지만요. 그러나 무엇보다 공동체 사회를 보다 안전하고 건강하게 지키는 원동력은 바로 우리 국민들의 깨어있는 정신입니다.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입니다. 자기 자식만 아니면 괜찮다는 이기적 생각은 곧 자신의 아들 딸이 흉악범의 범죄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국가적 치욕을 가져다 주었는지 사례는 많습니다. 병자호란 때 치욕의 역사 '삼전도 굴욕'을 아시나요? 1637년 조선의 왕 인조가 청 태종에게 세번 머리를 자갈 바닥에 부딪치며 항복을 했던 사건입니다. 삼전도는 지금의 강남 송파구 한강변 근처입니다. 당시 인조는 베옷을 입고 100m에 걸쳐 깔아둔 자갈길을 기어서 무릎이 깨지고 머리는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청 태종에게 치욕의 항복을 해야 했습니다.

삼전도의 굴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청나라는 조선의 군대를 해산시켰고 소현세자 부부와 봉림대군 등 왕자들을 볼모로 끌고 가는 화의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아울러 청나라는 세자와 대군 이외에 판서(현재의 장관)의 아들을 인질로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평상시 판서 관직을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하던 관료들이 모두 판서를 맡지 않는다고 서로 싸웠습니다. 조선의 지배층들은 그들이 증오하던 오랑캐 외세에 의해 나라가 망하는 상황에서도 국가의 안위 보다는 자신의 이익과 가족 만을 챙기기에 급급했던 것입니다. 나라가 망해도 '나만 아니면 된다'는 권력층의 부도덕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입니다.

그런데 삼전도의 굴욕이 과거 치욕의 역사일 뿐일까요? 구한말과 일제 시대,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을 비롯 친일파들의 행각은 어떠했나요. 군사독재 시절에 권력에 기생하며 민주주의를 압살시킨 그들은 누구였나요. 치욕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금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들의 반역과 굴욕의 역사는 여전히 유령처럼 우리 사회에 배회하고 있습니다. 안상수 병역기피나 정치인의 각종  비리도 마찬가지이지요. 나만 아니면 되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천박한 탐욕의 이기주의 처세술이 우리 사회 곳곳에 넘쳐나고 있습니다.


다소 비약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실제 우리 사회가 천민자본주의가 판치면서 물질만능주의와 이기주의가 심각한 것이 현실입니다. '나만 아니면 돼, 나만 잘 살면 돼.'라는 생각으로 사는 부류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1박2일의 '나만 아니면 돼.'라는 표현이 소름끼칠 정도로 무섭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잘 사는 사회를 만들면 안될까요?

사사로운 의리 보다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맞게 멤버교체 포함 특단의 결단 필요해

어제 1박2일은 300회 특집으로 경북 영주편을 방송했습니다. 병역비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멤버 MC몽이 편집돼 일부 풀샷 등에서만 등장했습니다. 나영석PD를 비롯 제작진은 최대한 MC몽 출연장면을 삭제했지만 전개상 필요한 풀샷일 경우 MC몽이 포함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MBC가 신정환이 녹화된 라디오스타에서 고난이도 편집기술을 활용해 신정환을 완전히 모두 삭제하고 방송한 것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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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영석PD에게는 가장 힘든 시절일 것입니다. 공익 근무 후 합류한 김종민은 시청자들의 원성에도 8개월째 묵언수행 중인 가운데 MC몽의 병역비리가 터졌으니까요. 나영석PD는 시청자들의 봇물같은 하차 요구에도 김종민을 지켜주었으나 개선의 기미가 없고, MC몽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 믿었지만 MC몽에게 배신을 당한 입장입니다. 나영석PD는 1박2일을 최고 시청률 예능프로그램으로 만든 주역입니다. 고생한 멤버들을 믿고 의리로 감싸안아 주었습니다. 사람 좋은 나영석PD인 셈이지요.

나영석PD의 요즘 마음을 나타내는 내용이 지난번 방송에 나온 적이 있습니다. "나는 잠이 오지를 않아. 너희들 걱정하느라고. 믿어지지 않으면 오늘 새벽 3시에 나한테 전화해 봐. 전화벨 한번 울리면 받는다."고 나영석PD는 고백했습니다. 이승기는 자다가 깨어 전화를 하자 나영석PD는 즉각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영석PD는 이승기가 쉬라는 말에도 "쉬긴 뭘 쉬어. 나는 계속 마음고생할 거야."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나영석PD의 의리와 현재 MC몽의 병역기피 비리 상황을 보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나영석PD는 시청자들의 정서를 충분히 반영한다고 했지만 사적인 정과 의리에 얽매여 시청자들의 분노를 오판하고 있지 않나 우려스럽습니다. 지금은 MC몽의 병역비리가 밝혀진 상태이고 적어도 병역기피는 확실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공영방송의 책임감을 갖고 시청자들에 대한 공식 사과와 더불어 MC몽의 하차와 퇴출을 확실히 해야 할 상황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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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PD는 몇 달 전부터 MC몽의 병역비리 혐의가 경찰에 의해 구체적으로 나오고 있었지만 예정된 녹화를 진행하며 MC몽의 말을 순진하게 믿어버렸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어제의 MC몽 통편집 방송 사태를 낳았고 시청자들의 비난은 그대로 받아야 했습니다. 냉혹하게 MC몽을 내치지 못하는 나영석PD의 인간적 고뇌는 이해하지만 그것은 사적인 영역이지 공적인 방송PD의 신분에서 일은 냉철한 시각이 필요합니다.

현재 나영석PD는 1박2일 멤버들과의 의리와 시청자들의 MC몽 퇴출 요구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우유부단한 측면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시청자인 국민들의 정서와 시각에서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는 반성문을 써야 합니다. MC몽의 병역비리는 설사 법원에서 무죄판결이 나더라도 병역기피와 고의 발치, 거짓말 등 도덕적 비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영석PD는 사사로운 정과 의리 때문에 대의를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MC몽은 말해야 뭐하겠냐만 스스로 도덕적 법적 책임을 지고 제작진에게 부담주지 말고 자진 퇴진해야 겠지만 이제는 기대할 가치도 없습니다.

이번 MC몽 병역비리 사태는 앞서 언급한 '나만 아니면 돼!'와 같은 맥락에서 시작된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경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부도덕한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하고 결국 불법적인 생니 발치로 군대 면제를 한 사건인 것입니다. 결국 공동체 사회를 좀먹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편법 처세술이 그대로 나타난 점에서 1박2일 제작진은 더욱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일부 학생들로 인해 어떻게 교육할지 한탄하는 한 숨이 왜 생겼을까요. 아이들이 '나만 아니면 돼'라고 말하는 것을 본 부모의 마음은 어떨 것 같나요.

우리 역사에서 보듯이 '나만 아니면 돼'와 같은 망국적 행태는 반드시 제거해야 할 과제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1박2일은 비리를 저질러도 나만 안걸리면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MC몽과 같은 멤버를 감싸안고 복불복을 조장해 온 것도 사실입니다. 나영석PD는 1박2일을 사랑하는 시청자들을 위해서라도 지금이라도 그 동안 잘못된 관행과 방조한 책임에 대한 반성문을 쓰고 멤버교체와 같은 특단의 대책도 마련해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기를 바랍니다.

나영석PD는 공정언론 사수 파업 당시 편집에 대한 강한 비판을 했습니다. 나영석PD를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이번 MC몽 사태 일련의 전개과정을 처리하는 일은 적절치 못한 것 같습니다.

1박2일에 긴급 투입된 외주제작사 PD가 촬영분을 편집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나영석PD는 KBS에 대해서 1박2일의 특색을 무시하고 임시로 투입된 외부 PD가 출연진과 제작진의 창조물과 같은 프로를 편집해 망쳐버렸을 뿐만 아니고 시청자를 우롱하는 행위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영석PD가 스스로 이율배반적인 시청자 기만의 편집을 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방송을 내보내지 말거나 다른 특집 프로로 대체를 하는 결단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참고 글] 나영석PD는 1박2일MC몽 편집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 (Post by 갓쉰동님)
              나영석PD의 편집 교묘한 MC몽 감싸기 (Post by 늙은코난님)

* 참고 : 글 내용 중 인터넷 이미지 일부 인용함
* 읽을 만한 글 : MC몽 사태로 본 지도층 군면제 현황 분석 (Post by 아이엠피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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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저희 경기가 최고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형돈이 무한도전 WM7 레슬링 경기가 끝난 후 한 말입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최선을 다했기에 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무한감동이었습니다.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경기장에 쓰러진 정형돈을 감싸안은 유재석. 유재석은 바닥에 누워있는 정형돈을 안고 한동안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울렁증으로 토하고 얼굴이 창백했던 동생 정형돈에 대한 걱정, 그리고 힘든 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이겨낸 감격이 순간 밀물처럼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형돈과 유재석이 서로 끌어안고 있는 장면에서 순간 눈시울이 젹셔졌습니다. 그리고 방송 화면에는 무한도전 프로레슬링 특집이 끝난 소회를 정리하는 자막이 흘렀습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레슬링 특집, 그것은 꼭 안아주고 싶은 무한도전이었다

 
꼭 안아주고 싶은 1년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고
누구도 지지 않았습니다

쓰러질 만큼 힘들 때
언제든 일으켜 줄
우리는 무한도전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모두가 승자가 되었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 유재석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하하 길 그리고 코치 손스타는 한동안 말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장면을 보고있는 관중들도 시청자들도 감동과 함께 눈물을 적셨습니다.

무대 위에 올라간 무한도전 멤버들이 모두 손을 잡고 인사를 했습니다. 모든 경기가 끝나고 여운이 짙게 남았습니다. 장충체육관에서의 경기가 끝난 후 뒤풀이에서 유재석을 비롯한 모두는 또 한번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이번 방송에 당시 멤버들의 소감이 나왔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경기 후 밝힌 소회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볼까요?

하하 : "저는 심판이어서 별로 한 것은 없지만 정말 사랑한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먼길 와주신 팬 여러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된 채 하하는 겨우 말을 이었던 것입니다. 장내 선수소개, 심판 그리고 선수 등 1인 3역을 열심히 소화해낸 하하의 겸손한 태도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습니다. 부상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아픔을 참고서 경기하는 형들을 가까이서 지켜봤으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요.

정준하 :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저 이제 장가 갈 수 있겠죠? 감사합니다"고 말했다. 

경기 당일 응급실 링거 투혼을 보이며 진짜 레슬링 선수와 같은 면모를 과시한 정준하가 눈물을 참으며 감정에 북받힌 채 말했습니다. 그러자, 관중들은 '쩌리짱'이라고 외치며 정준하의 투혼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습니다.

정형돈 : "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우리 경기가 최고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앞으로도 무한도전 많은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동의 한마디였습니다. 역시나 관중들은 '정형돈'을 연호하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길 : "재석이형 형돈이형 기술을 더 열심히 연습해서 내가 했으면 그 아픔과 고통을 나눴을 텐데, 제가 조금 더 도울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해 경기를 보는 내내 계속 눈물이 났습니다"

유재석 : "기술은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아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우리 경기가 최고의 경기는 아닐지 몰라도 마지막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고 지켜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순간을 잊지 못 할 것입니다" 

손스타 : "서로 괜찮아? 라고 끝없이 격려하고 걱정하고 응원했습니다. 이 모습이 아직도 아련합니다"

길은 형들이 고생하는데 더 잘하지 못한 자책감과 고마움으로, 유재석은 자신의 기술을 받아내주고 고통을 이겨낸 동생들을 위해, 스승인 손스타는 무한도전 멤버들이 서로에게 느꼈던 배려와 감동을 전해주었던 것입니다.


또한, 형들의 마지막 3경기를 가슴을 졸이며 뒤에서 지켜보던 노홍철의 모습도 감동적이었습니다. 방송 화면에서 잘 잡히지 않았지만 경기 내내 눈시울이 적셔지고 인상이 찌그러지며 얼굴이 붉어진 채 형들을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졸이며 형들이 다치지 않고 경기를 잘 할 수 있도록 응원하는 모습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 했습니다. 언제나 밝은 웃음만 봐왔던 터라 노홍철의 진심이 담긴 현장 장면은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노홍철이 "형들이 고통스럽게 경기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고통이 너무 크더라구요"라고 말한 것은 진심의 표현이었습니다.

정준하의 불굴의 부상 링거투혼과 노홍철의 얼굴 붉어진 고통의 응원 눈물 빛났다


그리고 경기 후 무대 위에 서 있던 정형돈의 허리에는 레슬링 챔피언 벨트가 채워져 있었습니다. 사실 이번 레슬링 특집 경기에서 진정한 챔피언은 정형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마지막 경기에 앞서 가벼운 뇌진탕 증세를 보이기도 하고 구토와 어지러움 증상을 보여 고통을 호소한 정형돈이었습니다. 이미 제1경기도 치렀던 정형돈이 다시 제3경기를 치르기에는 악조건이었습니다. 유재석은 기도를 하고 하하는 장내 소개에 앞서 시간을 끌며 정형돈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기를 바랄 정도였습니다.

경기를 지켜봐야 하는 박명수 길 노홍철도 정형돈 걱정에 마음을 졸이며 무사히 끝나기를 몸과 마음으로 응원했습니다. 정형돈과 함께 팀을 이뤄 경기한 정준하는 자신도 링거투혼으로 몸이 좋지 않은 채 경기에 임하면서도 오히려 정형돈을 먼저 생각해 주는 마음이 멋져 보였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가 되어 서로를 격려하며 감동의 레슬링을 선보였던 것입니다. 땀과 눈물 그리고 환희의 무한감동 경기였습니다.


레슬링 경기 자체도 프로레슬러들의 경기 못지않게 훌륭했습니다. 정형돈은 무척 힘든 상황에서도 수플렉스 미사일 드롭킥을 비롯 자신의 특기인 족발당수를 멋지게 성공시켰습니다. 정형돈은 체력도 바닥나 낙법도 안되는 상황에 손스타의 드라이버 공격의 고통을 참으며 사력을 다해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기는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정형돈이 경기 마지막 장면에 링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유재석이 3단 로프 위에 올라가 화려한 탑로프 프레스 공격 마무리를 준비했습니다. 유재석이 공중에서 날아 정형돈의 배 위에 떨어지고 경기는 끝났습니다. 그리고 유재석은 정형돈을 부둥켜 안고 한 참을 있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정형돈이 수플렉스를 통해 유재석을 넘기는 장면은 거의 프로급 실력이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정형돈을 일으켜 세워 서로 안아 주었습니다. 정형돈은 일어서 있을 힘도 없었습니다. 멤버들 모두는 목에 메여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 편의 감동 스포츠 영화를 보는 듯 했습니다. 1년간 준비한 무한도전의 장기 프로젝트 레슬링 특집이 진한 감동을 남기며 그렇게 끝났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프로였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졸이며 경기를 본 관중들은 물론 시청자들도 무한도전과 함께 했습니다. 그래서 무한도전은 또 하나의 레전드가 되었습니다.

유재석의 정형돈을 위한 3단 로프 공격 배려와 김태호PD가 지산락카페 방송한 이유

육군 병장으로 현역 만기 제대한 정형돈은 그들과 달랐다

그런데 정형돈은 어떻게 고통스런 공격을 이겨냈을까요? 정형돈은 "기술을 받아내는 거니까, 그 땐 상대를 믿는 것 말고 없습니다. 제가 피를 나눈 형제가 있다면 이런 형이 아닐까 싶습니다"고 말했습니다. 마지막 유재석의 공격에 공포스러울 수 있지만 형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무한도전 멤버들 모두가 이렇게 서로를 믿고 경기를 펼쳤기에 레슬링 특집은 성공리에 끝날 수 있었던 셈입니다.

사실 화면에서는 순식간에 지나가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유재석도 힘들어 하는 정형돈을 위해 자신의 희생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3단 로프 위에 올라서 정형돈에게 떨어져 공격할 때 유재석은 다소 불완전하게 떨어지면서 혼자 충격을 거의 받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만약 유재석이 자신의 날아서 떨어지는 자신의 체중 충격을 정형돈에게 고스란히 안겨줄 경우 너무 고통스러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재석은 남 몰래 스스로 고통과 충격을 안고 공중에서 떨어졌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유재석의 배려였습니다.

그리고 김태호PD의 냉철한 프로정신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방송을 레슬링 특집 만으로도 감동모드를 지속하며 끌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김태호PD는 레슬링 특집을 간결하게 끝내버리고 지산락카페에서의 박명수 게릴라 콘서트로 화면을 넘겨 버렸습니다.

당초 시청자들은 이번 방송이 레슬링 감동 장면으로 채우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릴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다른 예능 프로그램이었다면 감동을 쥐어 짜며 편집해 방송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김태호PD는 레슬링 감동모드를 쿨하게 끝내고 박명수 콘서트를 내보냈던 것입니다. 역시 김태호PD는 한 수 위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의리의 남아 정형돈의 형들을 걱정한 봅슬레이 경기 눈물과 레슬링 특집의 감동은 닮았다

한편, 이번 레슬링편은 과거 볼슬레이 특집의 감동과 닮아 있습니다. 당시에도 무한도전 멤버들은 혹독한 연습 과정에서 부상을 당했습니다. 볼슬레이 최종 경기를 직접 치러야 하는 마지막 상황에서 정형돈은 허리부상으로 경기에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정형돈은 자신이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고 유재석 박명수 등이 형들이 볼슬레이를 타야하는 것이 몹시 괴로와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무한도전 봅슬레이가 무사히 결승선을 통과하자 정형돈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형돈은 유재석 정준하 박명수 등을 끌어안고 계속 닭똥같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진정한 남아의 눈물이었기에 이심전심으로 전해져 감동을 주었습니다.

           무한도전 봅슬레이 특집 당시 형들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으로 눈물을 펑펑 흘리던 정형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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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보기를 보면 봅슬레이 특집 당시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정형돈은 봅슬레이에 이어 이번 레슬링 특집에서 연거푸 감동을 준 셈입니다. 어쩌면 정형돈은 지난 봅슬레이에서 허리부상으로 경기에 참여하지 못한 형들에 대한 미안함을 이번 레슬링에서 완전히 만회하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진정성이 있다면 통하는 법입니다. 정형돈이 의리의 남자로 자신의 고통을 이겨내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도 전해지는 이유이겠지요.

확실히 정형돈은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었습니다. 웃기는 것 빼고는 다 잘한다는 정형돈. 앞으로 웃기는 것도 더 잘하는 연예인이 된다면 차세대 예능의 중심으로서 성장할 것입니다. 이번 무한도전 레슬링 경기에 축하공연을 하기 위해 온 가수 싸이의 '연예인' 노래가사가 정형돈을 비롯 멤버들과 오버랩되기도 했습니다. 정형돈의 땀과 눈물이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줄 무한도전의 미래일 것입니다. 
"그대의 연예인이 되어 항상 즐겁게 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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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남길이 군입대를 16시간 앞두고 무릎팍도사에 출연했습니다. 지난 15일 논산 훈련소에 입소하기 하루 전에 전격적으로 출연한 이유는 대중들에게 잊혀질까 두려운 고민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작년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했던 '선덕여왕'에서 비담 역할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 데 이어 최근에는 드라마 '나쁜 남자'로 카리스마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김남길에게는 솔직한 고민일 것입니다. 요즘과 같이 쉽게 잊혀지는 세상에서 2년 가까운 공백은 연예인에게 치명적 시간일 수 있습니다. 김남길은 기존에 '굳세어라 금순아'로 얼굴을 알렸지만 곧 잊혀지고 '연인'으로 주목받았지만 쉽게 잊혀졌던 과거 경험상 현재 국방의 의무가 두려울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김남길은 과거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공익근무요원 군복무를 하게 돼 일반 현역 군대 근무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행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대중들과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현실 감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는 피할 수 없는 통과의례라는 점에서 당당하게 군복무를 마치는 것이 연예인들에게도 한결 홀가분할 것입니다. 연예인에게 군문제는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데 이번 방송은 김남길이 공익일 수 밖에 없었던 사연도 출연이유 중 하나였지요.

입영열차와 훈련소에서 가장 소중했던 시계의 추억


이번 무릎팍도사에서 인상적인 것은 김남길 티파니 열애설 진실이 아니라 고현정이 선물한 명품시계(?)였습니다. 김남길은 고현정의 팬미팅 때 깜짝 방문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고현정 누나가 고맙다며 선물로 시계를 준 것이라 밝혔습니다. 김남길은 물론 참석한 하정우 등 여러 사람에게 선물을 했다고 합니다. 김남길은 고현정이 천정명, 조인성 등에 대해 프러포즈 이야기에 대해 자신도 받았지만 진전된 것이 없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김남길은 방송에서 고현정이 선물한 시계를 팔목에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훈련소 입대시에도 왼팔에 찬 시계가 보였습니다. 그 만큼 소중한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군대 훈련소에 입소하는 김남길에게는 소중한 시계라는 의미입니다. 그다지 겉으론 비싸지 않은 군용 방수시계처럼 보였지만 실제는 메이커 브랜드 명품시계라는데 마음이 심란했던 훈련소 입대 전에 받은 것이라 김남길에게 인상깊은 선물입니다.


미실 고현정은 비담 김남길이 군대가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을까?

방송에서 김남길은 "누나가 부르지 않았지만 근처에서 촬영하다 잠시 왔다"고 했는데, 고현정은 당시 "남길이가 바빠 말을 못했는데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한 후 갑자기 "너 군대는 언제 가니?"라고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극에서 예지력의 소유자 미실 고현정은 비담 김남길이 병무청에서 입대영장을 받은 것을 미리 알았던 것인지 궁금한 대목입니다. 한편 김남길이 무릎팍도사에서 '이등병의 편지' 노래를 부르는 모습에서 살짝 눈가가 붉어지는 장면이 가슴찡하게 느껴졌습니다.

                   김남길은 교통사고로 무릎인대 파열 등으로 공익으로 판정받게 됐다고 한다

군생활이나 공익근무 생활에서 시계는 가장 자주 만나는 문명의 이기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20여년 전 입대를 앞두고 시계를 절친 친구와 주고 받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군대 훈련소 입소하는 날, 이발소에서 긴 머리를 빡빡머리로 깎을 때 눈물을 보이기 싫어 마음 속으로 삼켰습니다. 그리고 춘천 훈련소 102 보충대 앞에서 헤어질 때 친구와 시계를 서로 바꿔 차고 무사히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올 것을 마지막 인사로 나눴던 기억입니다. 여자친구였으면 더 좋았겠지만 남자 친구였던 것이 옥의 티였습니다.(^^)


당시 친구는 군대에서 시계가 가장 필요한 물건일 것이라 말했습니다. 지금도 군대가는 사람에게 필수품목 1위는 시계일 것입니다. 시계는 훈련소나 군생활에서 기상시간, 훈련시간, 식사시간 등을 매일 매번 확인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게다가 시계는 항상 몸에 붙어 있어 선물한 사람을 매일 잊을 수가 없겠지요. 휴대폰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는 훈련소에서 시계는 친근한 벗이지요. 그런 점에서 고현정이 김남길에게 시계 선물한 감각은 최고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중들과 잊혀지지 않는 시간으로 남기 위한 시계의 의미

김남길은 그렇게 국방의 의무 시작에 앞서 마지막 일정으로 무릎팍도사를 4시간 이상 녹화한 후 다음 날 논산 훈련소에 4주간 기초군사훈련을 받기 위해 작별을 고해야 했습니다. 올해 들어 열대야 현상이 연일 계속 되는 찜통더위 속에서 훈련을 받는다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저도 한 여름에 군대 훈련소에 입소를 했던 군번이라 무더위에 훈련받는 훈병들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지금쯤 김남길은 독사같은 훈련 조교들의 명령 소리에 군기가 바짝 들어 한마디로 뺑이를 치고 있을 듯 합니다.

언제 훈련이 끝날까 그리고 식사시간은 얼마나 남았나 등 인간이 가장 말초적 생리적 현상에 시간을 기다려지는 훈련소의 하루 하루일 것입니다. 그 때 고현정이 선물한 시계는 김남길에게 있어 무엇보다 소중한 물건이 되겠지요. 어쩌면 무릎팍도사에서 김남길은 대중들에게 잊혀지지 않는 시간으로 남기 위한 시계의 의미에 대한 감사의 자리였지도 모를 일입니다. 대중들의 기억 속에 지워지지 않는 시간을 추억을 남겨두고 싶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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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일요일 저녁에 일밤을 시청하다가 장혁의 예능 카리스마에 한바탕 웃음을 지었습니다. 사극 '추노'에서 카리스마를 뽐냈던 배우 장혁이 MBC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 일요일 밤에(일밤)'에서는 '추락한' 깔창 덕분에(?)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사실 장혁을 보면 사극 추노에서의 이미지 때문인지 탄탄한 근육미와 남성미를 자랑하는 과묵한 근육남이나 짐승남을 연상하기 마련인 듯 합니다. 그러나 일밤에 출연한 장혁은 과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수다스럽고 친근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때론 순수해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뭔가 빈 구석을 드러내 주기도 했습니다. 완벽하고 강해보이려 노력하면 할수록 장혁은 허점을 보이면서 카리스마가 무너지곤 했습니다. 어쩌면 장혁의 순수한 매력이나 예능감이 아닌가 생각됐습니다.

무엇보다 큰 웃음을 준 장혁의 깔창 사건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러면, 장혁이 일밤 '단비'에 출연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몇가지 일들을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일요일(11일) 방송된 일밤 '단비'에서는 장혁을 비롯 김수로 장희진 마르코 정형돈 조동혁 김사랑 안영미 김용만 김현철 등이 한파로 인해 유목민들이 큰 피해를 입은 몽골을 찾아 자원봉사에 나서는 장면을 보여주었습니다. 단비 사상 최다 연예인이 참여한 프로젝트라고 합니다.

이 날 방송에서는 가위 바위 보 게임을 통해 점심 당번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김수로의 주도로 김용만이 당번으로 걸리도록 몰래 작전이 세워졌습니다. 김용만은 두 차례를 용케 피했지만 결국 당번으로 걸렸고 보조로 장혁을 선택했습니다. 몽골 초원 위의 점심 메뉴는 스태프를 포함한 40인분의 열무 비빔밥과 라면이었습니다.

               사극 '추노'에서 근육남 장혁이 보여준 카리스마 넘치는 남성미 연기는 압권이었다

점심을 준비하던 장혁은 갑자기 보조가 아니라 주방장 '장셰프'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장혁은 "몸으로 하는거나 요리하는 건 내가 한 수 위"라고 말하며 김용만을 오히려 보조 요리사 '김 조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더 나아가 "군대에서 내가 '공구리'(시멘트 작업)도 많이 하고 창고도 많이 짓고 그랬어요. 그래도 이 분야에서 좀 나름대로 많이 했던 사람이에요"라고 입담을 과시했습니다. '공구리'라는 속어를 사용한 것은 장혁의 바른 이미지를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장혁은 수다쟁이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말문이 트인 장혁은 김용만 대화 내내 웃음을 유발했습니다. 김용만이 작업(공구리)도 잘하니까 요리도 혼자서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하자 장혁은 "혼자서는 못해요. 혼자하는 요리는 둘이 하는 것과 달라요"고 금방 말을 바꿔 김용만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김용만이 과묵한 이미지에 안맞게 이렇게 수다스러워도 되는 것인지 걱정스럽게 묻자 장혁은 "'추노' 끝난지 3개월 됐고 CF도 이미 찍은 상태인데요"라며 솔직담백하게 답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몸으로 확인 가능한 바람 방향 확인을 위해 장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풀을 뜯어 날리거나 기스버너 바람막이 도구를 엉뚱하게 사용하는 장면 등도 웃음을 주었습니다. 요리하는 동안 장혁의 끊임없는 잔소리에 김용만이 투덜대자 장혁은 "군 시절, 8살 아래인 조교가 있었는데 조교라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말을 따랐어요"라고 말해 김용만의 말문을 닫게 해버리기도 했습니다.

육군 병장 장혁의 모습. 과거 군대 비리 문제는 아쉬운 대목이다.

이쯤 되면, 수다스런 장혁은 '추노'의 무자비한 노비사냥꾼 무사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예능감이 충만한 또 다른 장혁의 모습이었습니다. 어쩌면, 장혁 스스로 이미지 변신을 위해 작정하고 나선 듯 했습니다. 김수로 팀 멤버들과의 대적해 연합팀을 만들자는 김용만의 제안에 흔쾌히 나서기 보다는 자신은 강하다고 말하는 모습에서는 순수하고 무모한 자신감도 나타냈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적인 면모와 더불어 열심히 점심을 준비하는 모습은 장혁의 성실성이 빛나 보였습니다. 

장혁의 카리스마 추락은 결정적으로 사막에서 벌어진 게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다른 멤버들이 낙타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장혁은 몽공 조랑말을 숙련된 솜씨로 타면서 여전히 추노의 강한 카리스마를 유지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단비 제작진이 콜라 한 캔을 두고 게임을 통해 한 명이 차지하는 것으로 제안을 했습니다. 결국 사막 달리기로 겨룬 결과가 너무 쉽게 끝나자 정형돈은 사막에서 굴러서 승부를 결정짓는 게임 아이디어를 다시 제안했습니다.

가장 나중에 게임에 나선 장혁은 추노에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 포즈로 사막을 낙법으로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첫번째 시도가 미흡해 두번째 도전에 나선 장혁. 멋진 자세와 낙법에 다른 멤버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멤버들로부터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하늘 높이 장혁의 운동화 한 짝이 벗겨져 날아오른 것이었습니다. 진지하게 장혁의 사막 구르기 장면에서 운동화가 날으면서 카리스마는 온데간데 없어진 것입니다.


일밤 '단비'에서 장혁의 깔창의 굴욕을 보였지만 그것은 신선한 '단비'였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벗겨진 장혁의 운동화에서는 깔창이 밖으로 살짝 튀어나와 있었습니다. 남성미 넘치는 배우 장혁도 키높이 깔창을 착용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순식간에 장혁의 카리스마는 깔창과 함께 날아가 버렸습니다. 장혁은 세번째 사막 구르기 도전에 나섰고 결국 콜라 한 캔을 수중에 넣었지만 추락한 카리스마를 회복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장혁의 살신성인으로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카리스마 추락은 오히려 장혁의 이미지를 단번에 친근감있는 배우로 재탄생하게 했습니다.

장혁의 깔창 굴욕은 그 동안 과묵하고 완벽한 남성미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편안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된 셈입니다. 깔창이 나온 운동화를 찾아 주섬주섬 찾아서 신는 장혁. 오히려 다른 멤버들은 화들짝 놀라 당황해 하였지만 장혁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신발을 신고 사막을 걸어 나섰습니다. 이웃집 친구나 아저씨 또는 형 동생과 같은 친근한 모습이 연상되는 장면이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 특성상 카리스마 넘치는 출연자가 망가지는 모습을 보이면 웃음 포인트가 커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장혁의 몸을 사리지 않는 예능감은 큰 재미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장혁은 그 동안 과묵하면서도 터프하고 남자다운 모습으로 왠지 다가서기 힘들 것 같은 선입견이 강했지만 이제는 수다쟁이 만담가 또는 망가질 줄 아는 친근남으로 대중 속에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듯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 장혁이 꾸미지 않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예능에 임하며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보여준 열정이 시청자들의 마음에 다가왔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혁에게는 비록 굴욕이지만 신선한 '단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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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가 군대에 입대를 했습니다. 팬들과 만남을 뒤로 하고 논산훈련소로 향하는 이준기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를 아끼는 팬들도 이전전심으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한류 스타답게 한국 중국 일본의 팬들이 대거 몰려서 이준기의 입대를 배웅했다고 합니다.

이준기는 신체등급 1급 현역 판정을 받아 아주 신체 건강한 남자라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영화 '왕의 남자'에서 여자 보다 예쁜 공길 역으로 열연을 펼쳐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였다는 반응이 앞으로는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울러, 이준기의 입대에 이어 '개인의 취향'에 출연하는 김지석도 이번 달 24일에 군대에 입영할 예정이고 강인도 입대가 임박했다는 소식입니다. 이준기는 입대 소감을 묻자 "저는 맡은바 최선을 다해서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오겠습니다"며 씩씩하게 밝혔다고 합니다. 사실 당연한 군대 입대지만 이준기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최근 비보이 멤버들이 정신병으로 가짜 의사 진단서를 받아 면제 판정을 받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사회적 군대 입영 비리가 많기 때문도 작용한 듯 합니다.


연예인이든 일반 사람들이든 대한민국의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군대 문제는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아니, 군대는 건강한 남자라면 당연히 가야 하는 국가 의무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 곳곳을 살펴보면 군대를 기피하고도 큰 소리 치며 사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자들이 많다보니 어떻게 하면 군대를 가지 않을까 편법과 불법을 저지르는 젊은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군대 미필자 중에는 신체나 정신이 부실하거나 교도소 복역으로 면제가 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대 미필자들을 보면 오히려 육체적으로 더 건장한 경우도 발견되고 어떤 자는 군대를 회피하기 위해 온갖 편법을 자행한 사례도 자주 목도하게 됩니다. 어떤 누구 보다 국가의 법을 준수해야 할 위치에 있다면 더욱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할텐데 어이없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니 돈없고 빽없는 서민들의 아들만 군대에 간다는 세간의 이야기가 회자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천안함 침몰 좌초 사고의 경우를 보더라도 장교는 모두 살고 일반 장병들만 바닷 속에 수장되는 참극이었습니다. 군대를 보내놓고도 아들이 무사히 살아서 제대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애타는 심정이 이해가 될 장면이었습니다. 사고가 난지 1달이 훌쩍 지난 아직도 침몰사고의 원인은 하나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북풍을 선동하는 정치인들을 보면 가증스럽기도 합니다.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해군 이지스함과 최첨단 장비가 동원된 한미 연합 합동훈련 중이던 해안에서 발생한 사고인데 아직까지 사고원인은 모른다면서도 교신일지나 천안함 절단면을 공개하지 않는 것은 정부측의 조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잃고 있습니다. 게다가 어제는 군대 미필자 대통령이 전군 장성급을 모두 불러모아 초유의 회의를 주재했다고 하는데 다소 황당하기만 합니다. 차라리 어떤 원인이 되었든 장병 46명이 사망한 사고의 원인제공자인 국방부장관 해군참모총장 등에 책임은 묻지않고 북한 운운하며 장군들을 훈계하는 대통령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장군들 쪼인트 까기 위한 것인가'라는 조소가 나올 만도 합니다.

                     국기법을 안지킨 대통령의 모습. 행사시 정장은 가슴에 경례를 해야 한다.

천안함 사고 직후 지하 벙커에서 여러 차례의 회의를 한 것은 무슨 이유이고 사고가 한참 지난 후에 새떼를 향해 수십발의 함포 사격을 왜 했는지도 의문입니다. 정말 북한이 저지른 사건이라고 단정지었다면 전쟁 위험의 준전시 상황에서 대통령이 천안함 사고 현장에 방문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네티즌들의 반응을 되새겨 보아야 할 듯 합니다.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국정원장을 비롯한 주요 장관과 리더들이 대다수 군대 미필자라는 사실도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국가안보 관련 책임자들은 군대를 정상적으로 제대한 자들이 맡아서 솔선수범이 되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 말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있듯이 오피니언 리더들은 그 권한에 따른 책임과 의무가 더 막중하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최근 안상수 의원과 봉은사 명진스님 사이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상수야 군대가자'라는 말이 네티즌 사이에서 패러디될 정도로 안상수 의원의 군대 기피 경력은 화려했습니다. 그런데 월남전에 참전한 명진스님을 향해 좌파라고 했으니 안상수 의원은 군대도 안갔으면서 그런 말이 나오는지 어이가 없습니다. 게다가 안상수는 명진스님을 과거에 만났으면서도 만난 적이 없다는 거짓말을 해서 도덕성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이준기의 입대 이야기를 하다보니 우리나라 군대 문제에 대해 포괄적인 담론을 담게 되었습니다. 국가의 의무는 리더들이 더 잘 지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의 주요 요직에 있는 인물들도 국방의 의무를 포함 국가 의무를 지키지 않았는지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고 불법을 저질렀다면 일벌배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연예인이 군대 문제로 사회에서 매장된 사례가 자주 있습니다. 병역 비리가 터지면 부자와 권력자들은 빠져나가고 일반인들만 처벌받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군대 미필자가 큰 소리치는 '더러운' 세상입니다.


군대 현역으로 복무하고 제대한 후 더욱 성숙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가 많습니다. 천정명 공유 양동근 등이 현역 제대 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신체 건강하고 정신이 건전한 젊은이라면 당연히 군대를 마치고 정상적인 연예계 활동을 하는 것이 자신과 팬들을 위해서도 궁극적으로 좋은 일입니다. 당당하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법입니다. 이준기도 이번에 입대한 만큼 군대생활 잘하고 몸건강히 제대해 다시 멋진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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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만 선수가 또 금메달을 획득해 정상에 등극했습니다. 방귀만은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세계 유도 왕중왕전 '수원 월드마스터스 2010' 남자부 73kg급 결승에서 프랑스의 질 본옴므 선수를 허벅다리 비껴되치기 한판승으로 통쾌한 승리와 더불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번 방귀만의 금메달 소식은 남자 73kg급 세계 랭킹 1위인 왕기춘이  예선전에서 충격의 한판패를 설욕한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방귀만은 예선 8강전에서 왕기춘을 밭다리 걸기로 한판승을 거둔 일본의 아와노 야스히로 선수와 4강전에서 만나 우세승을 거둔 바 있습니다.


이어 방귀만은 결승전에서도 본옴므를 1분20초 만에 허리후리기 되치기로 유효를 얻은데 이어 본옴므가 또 다시 허벅다리 후리기를 들어오자 되치기 한판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방귀만이 금메달을 획득한 것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이 큰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무명에 가깝던 선수가 이제는 한국 유도의 간판으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이와 더불어 방귀만 선수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이미지가 사람들의 관심을 유발하는 몇가지 이유가 되는 듯 합니다.
 
만년 2인자에서 화려한 백조로 등극한 대기만성 유도 스타

사실 방귀만은 올해 27세로 유도 선수로는 적지않은  나이입니다. 방귀만은 지금까지 늘 2인자의 자리에 머물러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해 세계무대에서 무려 6번의 금메달을 따내며 그 동안 2인자의 설움을 말끔히 씻어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방귀만은 대기만성의 유도 스타라 할 수 있습니다.


방귀만은 2년전 2008년 3월에 기존 66kg급에서 73kg급으로 체급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방귀만의 남자 73㎏급은 왕기춘 이원희 등 한국 선수가 곧 세계 최고인 체급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왕기춘과 이원희만 기억했고 언제나 방귀만은 2인자 신세였습니다.  

방귀만이 체급을 올린 이유는 66㎏급에서는 체중 조절이 어려워 힘을 쓸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방귀만이 73㎏급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08년 12월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하면서 부터입니다. 방귀만은 크게 늘어난 훈련량을 열심히 소화하면서 몸이 더 단단해졌고 강인한 군인정신으로 무장하게 됐습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방귀만은 특히 작년 말 10월 몽골 월드컵 국제유도대회와 11월 중국 그랑프리 국제유도대회와 12월 KRA 코리아월드컵 국제유도대회까지 매달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제대회를 잇달아 휩쓸었습니다. 방귀만이 작년 한 해 동안 국제대회 금메달 6개를 딴 것은 땀과 눈물의 결과인 셈입니다. 드라마틱한 유도 인생을 걸어 온 방귀만이 특별한 이유입니다.

독특하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으로 인한 관심 유발 효과

방귀만 선수의 이름은 한번만 들어도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름으로 인해 어린 시절부터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을까 생각도 듭니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부모님이 물려 준 이름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듯 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의 위대한 인물을 보면 이름이 보통 사람들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지만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 이름으로 인해 손해를 보거나 사람들의 놀림감이 되어 개명을 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방귀만의 경우 성과 이름이 합쳐졌을 때 어감이 좋지않아 주목을 받는 듯 합니다.
 
노숙자라는 이름도 있습니다. 숙자라는 이름 자체로는 그다지 문제될 것이 없는데 성과 결합하면 부정적인 이미지의 이름으로 변합니다. 방귀만의 경우도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방귀만 선수에 대한 뉴스 댓글에는 이름을 개명하라는 주장이나 이름을 갖고 희화화하는 내용들이 많이 등장합니다.

이름을 개명하는 것은 철저하게 자신의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름을 갖고 놀리거나 희화화하는 것은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방귀만 선수도 이름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기 보다는 그 만큼 친근감이나 관심의 표현으로 이해하며 실력으로 세계 최고의 선수로 자리매김하는데 전력했으면 합니다.

방귀만은 훈남 이미지로 한국 유도의 스타 계보를 잇는다

무엇보다 방귀만은 훈남이라는 사실입니다. 잘 생긴 얼굴과 다부진 몸매는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에게도 훈훈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합니다. 더욱이 항상 최선을 다해 훈련에 임하고 늘 노력하는 모습은 방귀만의 캐릭터를 더욱 빛나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1980년대 한국 유도에서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로서 미남 스타에는 김재엽 하형주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에는 전기영 최민호 등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방귀만이 한국 유도의 훈남 스타 계보를 이어갈 듯 합니다.

스포츠 선수가 실력은 물론 외모까지 훌륭하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방귀만 선수는 출중한 외모까지 갖추고 있어 상대적으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을 더 많이 받는 셈입니다. 만일 다음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다면 방귀만은 우리나라 유도 선수 중 가장 많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특히나 방귀만 선수가 수많은 시련과 역경을 극복하고 한국 유도의 대들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선수들이 도중에 포기하고 사라졌지만 방귀만 선수는 결코 좌절하지 않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늘 2인자로서 국가대표 선수가 되지못하거나 금메달을 따지못해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야 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성실히 운동에 전념한 결과 세계 최고의 선수로 거듭 나게 된 것입니다.

이 처럼 방귀만 선수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여러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방귀만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차기 올림픽을 목표로 최선을 다해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대기만성의 기운을 타고 난 방귀만이기에 지금까지 해온 것 처럼 열심히 한다면 충분히 우리나라에 금메달을 안겨 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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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천하무적 짱가도 내 앞에선 고철"

태권V가 짱가를 마구 때리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태권V와 짱가의 모습을 실제 그림으로 그려 실감나게 낚서를 한 장면이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덧붙여 '임자 만날 날 있을 걸.'이란 의미심장한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하겠지요? 제가 20년전 군대를 제대할 무렵에 후배나 동료 전우들이 회상록에 그린 낙서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상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군대 회상록을 들추어보다가 전우들의 낙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에서 짱가는 저의 군대시절 별명입니다. 당시 힘좋고 기술좋은 작업반장이었던 저를 전우들은 '짱가'라고 불렀습니다. 짱가는 그 시절 사람들이 좋아했던 로보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런 짱가를 힘으로 눌러주고 싶던 후배 전우가 로보트 태권V 주인공을 그려 우스꽝스런 만화를 그린 것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 (야!)'로 시작되는 노래인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곡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단번에 알 것 같습니다.

                                지난 1970년대 추억의 로보트 3인방, 짱가-태권V-황금박쥐 모습

그런 만화 낙서를 보니 군시절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여름철 폭우가 내려 작전도로가 유실되면 저와 친구인 J는 둘이서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저는 돌쌓는 기술로, J는 엄청난 괴력의 힘으로 돌을 날라 순식간에 도로를 복구했습니다. 강원도 철책에 폭설이 내리면 언제나 제일 앞에 서서 저와 J는 눈을 치웠습니다. 군대 작업의 달인, 환상의 짝꿍 듀엣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하던 선배도 말년 병장이 되면 후배들의 장난감이 되는 이유  

그래서 후배 전우들은 저와 J의 존재가 고맙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했나 봅니다. 그런 것들이 낚서로 표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헤어지는 아쉬움과 친근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낙서를 살펴볼까요?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을 놀리는 낚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말년의 고뇌여~ 가는 날까지 우리들에게 갈굼 당할 걸 생각하니 힘드시겠지."
"짱가씨 결혼할 거니? 짱가 왈 내비둬, 이렇게 살다 껌에 붙어 갈겨."
"짱가씨. 집에서 전화왔어요. 집에 오지 말라고."
"웃기지 마. 나도 때 빼고 광 내면 미스코리아 화장실 청소라도 할 수 있다  뭐라고라~"


군대 회상록 낚서판에 동료 전우들이 말년 병장을 향해 한 마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장면

낙서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후배들이 말년 병장인 저를 갖고 노는 것 같은 구절들이 묻어나 보입니다. 사실 군대에서 제대 앞둔 말년 병장은 후배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한창 때 무시무시한 선배였다 하더라도 말년은 후배들에게 당해주면서 정겨움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전통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남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정과 훈훈한 의리였습니다.

잠깐 퀴즈?
낙서에 나온 것인데 아래 각각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요?

1.창녀가 가장 좋아하는 야채는?

2.남녀 혼성 이부 합창은 순한국말로 하면?
3.브라자를 순한국말로 하면?

당시 군대에서 유치한 문답 놀이 정도 됐었나 봅니다. 지금 살펴보니 그 때는 저런 저질 유치 개그가 유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방위에 대한 당시 이야기도 낙서에 나왔습니다.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방위에 대한 유머(?) 장난이 아닌가 생각되는 낚서였습니다.

방위란?(낙서 버전)
1.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면사무소를 접수한다
2.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예비군을 통제한다
3.전쟁시 도시락을 지참 9시에 출근하여 5시 반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오리지날 버전
방위의 임무. 하나.
전쟁이 발발시 방위는 적진의 동사무소를 점령한다.
방위의 임무. 둘.
방위는 도시락통을 싸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도시락통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망을 교란한다.
방위의 인무. 셋.
방위는 아무리 전쟁이 치열하거나 해도 아침 9시에 근무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넷.
방위는 일부러 적의 포로로 잡혀가 적의 식량을 축낸다.
방위의 임무. 다섯.

전쟁발발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여군들을 몽땅 꼬신다.


남방한계선을 넘어 최전선 철책을 넘나들며 비무장지대를 호령하던 전초 수색대들의 생활은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항상 삶과 죽음의 사선을 오가는 비무장지대 수색과 매복은 긴장과 서스펜스나 다름없었습니다. 순간 잘못 길을 가면 지뢰지대이고 잠깐 졸다가는 북한군이 목을 베어갈 준전시상태였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 강추위의 비무장지대에서 매일 밤 13시간 매복 작전

그러다 보니 군기가 가장 센 곳이었습니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개인 화기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태권도 및 특공무술을 비롯한 최강의 무예를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한 겨울 맹추위에 비무장지대 매복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1박2일에서 박찬호가 강호동을 포함 멤버들이 펼친 혹한기 실전캠프는 사실 '새 발의 피'였습니다.


전우들의 낚서판(좌)과 제가 그린 그림으로 수탉이 알에서 나온 코끼리 새끼를 본 후 암탉의 외도 의심

철책을 통과해 비무장지대 내에 들어선 순간 부터는 철처하게 자신과 전우들을 믿어야 했습니다. 군사분계션까지 도달해 겨울 매복작전을 펼칠 때면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북한 땅이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과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 총탄을 장전하고 있는 최강 DMZ 수색대원도 오로지 혼자가 된 느낌의 순간에는 나약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료와 말도 못하니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어떤 과자나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심지어 오줌도 눌 수 없어 오줌통을 들고 들어가는 비무장지대 내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전우와 동료를 신뢰해야만 비무장지대 수색 및 매복 작전은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 매복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 몸이 얼어서 새벽 무렵 철수할 시간은 지금도 불현듯 스쳐지나가고곤 합니다. 체감온도 40도 전후의 강추위에 밤새 13시간을 야외에서 뜬 눈으로 이틀에 하루 꼴로 밤을 지새운다는 것이 상상이 가시겠습니까? 잠시 회상에 젖었습니다.

다시 낙서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티파니왈 흔들자고"라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도 티파니가 있나 본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추가] 댓글을 보니 1980년말 티파니(Tiffany Renee Darwish)라는 미국 팝가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써니텐 광고에서 '흔들어 주세요'로 유명해 이 같은 낙서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갈 때 죽을 때 까지 똥침 놀 거다"
"기분이다. 아줌마, 단무지 하나 더 주세유"
"너 지금 가면 안올거지 그지?"
"뭐 같은 인생 간편히 살자고."
"집에 가서 잠만 자지 말고 여자 구해 장가 갈 궁리나 해라"
"수고했다 뺑이 치느라고"
"엿먹고 조총을 쏴라"

후배들의 낚서 중에는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서를 보니 똥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랜 전통을 지닌 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20년전 군대에서도 유행하던 놀이는 똥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위의 낙서 중 '뺑이친다'는 말은 힘들게 고생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일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그린 DMZ 수색대 마크(좌)와 후배 전우들이 회상록에 넣어준 자신들의 사진 모습

지난 20년전 군대에서 동료 전우들의 낙서를 보면서 20대의 용광로같은 젊은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은 편하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지만 당시는 눈덮힌 야외 들판에서 판초우의 한 장으로 밤새 추위를 이기고 생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겨울 이겨냈던 DMZ 비무장지대 수색대원들은 결코 동장군 강추위에도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남북한은 물론 지구촌을 배회하던 아픈 역사 현장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남자들만의 의리와 정을 나누고 그 자릴 지켰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싹튼 우정과 동료애는 말년 병장을 사회로 보내야 하는 아쉬움으로 추억의 낚서를 회상록에 남겼던 것입니다. 20년만에 20대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그 당시의 낚서를 보니 수많은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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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열심히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데 휴대폰 문자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대강 살펴보니 '민방위...'라고 시작돼 스팸인 것 같아서 바로 휴대폰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 다시 문자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내용을 살펴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뭔가요? 민방위대원에게 보내는 내용인 것입니다. 순간 '이상하네, 내가 아직도 민방위대원인가?' 곰곰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는 민방위대원이 아니었습니다. 제 나이가 우리나라 기준으로 45세이니 이미 민방위대원 편성에서 제외된지 한참 지난 상태였습니다. 현행 민방위대 편성 복무 연령은 만 40세이기 때문입니다.

민방위대원 편성 연령은 만 40세 까지   

이건 분명히 잘못 보낸 문자메시지였을 것입니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실 남자가 군대 다녀와서 예비군을 지나 민방위가 되면 청춘도 끝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민방위 마저 편성 해제되면 그 때는 해방감도 들지만 한편 기분이 우울하기도 합니다.

여자가 폐경기가 될 때 느끼는 감정같이 남자로서 역할을 못한다는 자책감도 조금 느끼게 됩니다. 대한민국 남자로서 군대는 국방의 의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거치는 통과의례이지만 한편 민방위가 끝나면 시원섭섭함과 허전함도 드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유심히 쳐다보게 됐습니다.

"민방위대원 제설작업 4시간 참여시 2010년도 교육면제 - 신청문의 각동 주민센터"


혹시 아직도 민방위대원으로 편성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면 과거 민방위 훈련이나 소집에 빠진 적이 없었는지 돌이켜 보기도 했습니다. 민방위 소집 훈련은 받지 않은지 벌써 4년이 넘었습니다. 민방위 졸업한지 4년여 만에 다시 재소집을 받은 셈이 되었습니다.

혹시나 군대 시절 작업의 귀재였던 저를 알아보고 복귀를 명한 것은 아니겠지요? 그냥 모른 체 하고 문자 메시지 보낸 곳으로 전화를 해볼까 장난스런 생각하다가 그만 두었습니다. 잘못 보낸 문자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문자 이야기를 하니 '다시 민방위대 재입대 입소를 축하한다'고 놀리며 한바탕 폭소가 터졌습니다.

'민방위대 재입대 축하' 한바탕 폭소 

나중에 뉴스를 찾아보니 고양시가 민방위대원을 동원해 이면도로와 인도 등에 쌓여있는 눈을 치우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대책이라고 합니다. 직장민방위대와 지역민방위대에 문자를 발송해 폭설에 따른 제설작업 자율 참여자를 문자로 모집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자율 동원 참여자에게는 올해 받아야 할 4시간 짜리 민방위 교육을 면제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문자 메시지가 폭설 이후 도로나 인도에 여전히 쌓여있는 눈을 제거해 시민들의 불편을 줄이겠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라 긍정적 측면도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저와 같이 이미 민방위가 끝난 사람에게도 잘못된 문자를 보내는 것은 한 남자를 두 번 죽이는 일입니다.(^^) 제대로 확인도 하지않고 무차별 문자를 보낸 것은 아닌가 의문이 듭니다. 조금 황당한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미 잊고 지냈던 민방위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혼자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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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제 생일이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의 생일을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했습니다. 사실 저는 결혼하기 전 까지는 생일 파티 문화가 거의 없이 지냈습니다. 그래서 생일 파티가 어색하기만 합니다. 생일 파티라는 것을 모르고 지냈던 세월이 많아서 쑥스럽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생일 파티라는 것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행복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부모나 가족들로부터 생일 파티를 갖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자랐던 시절은 그다지 생일 파티 문화가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중산층 이상은 나름대로 생일 파티를 가졌을 것입니다.

저는 가난한 시골 마을이어서 그런지 어린 시절에 생일이라고 해서 별도의 생일 파티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아침에 끓여주는 미역국이 생일 파티의 거의 전부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나 미역국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생일 기념일을 축하하는 대표적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미역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는 미역국 만으로도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지난 40여년간 생일 문화도 많이 변한 것 같습니다.

생일의 상징 미역국...60~70년대 생일 파티의 전부였다

지난 60년대는 우리나라는 정말 가난했습니다. 아프리카 가봉 보다 못사는 국가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는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도시로 돈벌러 가고 없는 상황에서 혼자서 저를 낳으셨습니다. 병원도 없던 산골 농촌이었습니다. 예전에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을 대문이나 마당 앞 입구에 매달았습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태어나면 고추 숯 등이 담긴 금줄을 매달아 탄생을 알리고 잡귀를 물리쳤다

그리고 아이의 생일이 되면 어김없이 미역국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는 보릿고개라고 하여 쌀밥이나 보리밥도 먹기 힘들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미역국은 귀한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생일이 기다려지는 것은 모처럼 미역국에 따뜻한 밥 한 사발을 먹을 수 있기 기회였기 때문이었는지 모릅니다. 미역국에는 당시 닭고기가 들어갔는데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찬스였습니다.

어린 시절에 미역국 이외 생일 파티는 모르고 자랐습니다. 시골에 구멍 가게도 없었고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모여 생일 파티를 하는 경우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도시에 와보니 가끔 생일 기념 행사를 하는 경우를 간혹 보게 됐습니다. 어쩌다 생일 파티를 하는 친구를 보면 익숙치 않은 광경이었습니다. 생일이라고 해서 선물을 주고받는 경우도 드물었습니다.

자장면, 학창시절 최고의 생일 파티였다
미역국은 생일의 상징이자 기본 전통이고 자장면은 80년대 학창 시절 최고의 생일 파티였다

지난 70년대는 자장면을 먹는 아이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당시는 자장면 한 그릇을 사먹는 집은 부자처럼 느껴졌습니다. 어쩌다 생일이 되면 자장면이라도 먹을 수 있을까 기대하곤 했었습니다. 그러나 자장면을 먹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서울에 일찍 공부하러 왔는데 도시 아이들이 생일 파티를 한다면 더욱 부럽기만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같은 반 여자 아이가 생일 파티를 한다며 친구 몇명을 초대해 자장면을 먹는다는 것을 알고는 좌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초대받지 못한 친구들은 생일 파티 현장을 급습(?)했다가 거기서 난장판이 벌어졌던 일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웃지못할 사연입니다. 아무튼 그 당시는 집에서 친구들과 과자라도 나눠먹으며 조용히 생일 모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초코 파이 케익, 80년대를 풍미했다

지난 1980년대는 생일파티하면 초코파이였습니다. 케익을 준비할 수 없는 청소년들이나 대학생들에게 초코파이는 저렴한 가격에 케익을 대신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군대에서도 초코파이는 동료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대표 상품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오예스도 케익 대용품이였습니다. 그 당시는 케익도 어느정도 보편화되기 시작했지만 케익을 사서 파티를 할 만큼의 수준은 되지 않았습니다. 


초코파이는 케익 대신 생일 파티 대용품이었다. 오른쪽은 가수 이정이 파이를 먹고 있는 모습이다

초코파이 몇개를 사서 두 층으로 쌓고 촛불을 켜면 얼추 케익 대신 생일 파티 자세가 갖춰 졌습니다. 당시는 초코파이로 만든 파티로도 행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1980년대 대학생들도 가난해서 특별히 생일 파티를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잔디밭에 모여 소주나 막걸리를 새우깡 안주삼아 마셨던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케익 시대, 생일 파티 문화가 열렸다

요즘은 생일하면 케익을 빼놓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가정은 물론 직장에서도 케익은 기본이 되었습니다. 이는 청소년이나 대학생들도 거의 대부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만 해도 햄버거집이나 고깃집에 친구들을 초청해 생일 파티를 하고 생일 선물을 주고받는 모습은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30~40년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인 셈입니다.   

       초등학생 두 딸이 준비한 'I LOVE YOU'라는 촛불이 케익에 반사되어 환상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리고 지난 연말에 저는 가족들이 준비한 케익과 함께 깜짝 생일파티를 가졌습니다. 케익에는 'I LOVE YOU'라는 초 모양이 밝혀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고른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큰 딸이 아빠 생일이라며 직접 뜨개질로 털목도리를 짜서 선물했고 작은 딸은 마시마로 실내화를 선물한 바 있습니다. 겨울이라 따뜻하게 보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사실 결혼 직후에는 아내가 챙겨주는 생일이 영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 동안 거의 생일파티라는 것을 해본 적 없는 입장에서 서구식 케익 문화가 낯설었습니다.
 
지금도 생일 때 마다 준비된 케익 조각을 먹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한 조각만 먹고 자리를 피하기도 합니다. 그 만큼 생일 파티에 익숙치 않은 편입니다. 그렇지만 예전보다는 점차 나아지고 있습니다. 가난한 시절에 학교에 다녔던 세대와 풍요로운 요즘 세대와는 생일 파티 문화에서도 세월 만큼 차이를 느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이것이 가정을 일구면서 가족의 작은 행복인가 봅니다. 지난 40년간 생일 파티 모습만 살펴봐도 우리의 삶과 시대의 변천사를 이해할 수 있는 셈입니다. 생일에 관한 여러분들의 추억은 어떠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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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인제에서 촬영된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는 마치 겨울 군대 생활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사실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경험한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겨울철은 눈과의 전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쩌다 여행 중 만나는 눈보라는 하나의 추억과 낭만일지 몰라도 군생활 중 매일 내리는 눈은 '하늘의 쓰레기'나 '악마의 비듬'에 불과했습니다.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1박2일 혹한기 캠프 장소를 보면서 강원도에서의 겨울철 군생활이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강원도 인제와 원통 그리고 양구에 걸친 최전방 지역은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말이 아직도 전해내려오듯이 험난한 산악지형 지역입니다.
 
그래서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 인제 내린천편은 겨울 병영 캠프를 보는 듯 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 속을 뚫고 내려오는 1박2일 멤버들의 모습이 바로 겨울 군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던 것입니다. 1박2일이 표방한 리얼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라는 모토와 군대의 겨울나기는 다를 바가 없어 보였습니다. 

실제 제가 군대 시절에 겨울에 허리까지 차는 폭설이 내려 작전 도로도 막히고 병영 막사가 고립돼 배낭을 메고 매일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산을 넘어 부식(군대 식사 재료)을 추진해야 했던 일도 많았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1박2일 내용부터 먼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박2일 혹한기 캠프는 감동의 리얼 야생 로드 다큐였다

1박2일 멤버들이 보여준 인제 혹한기 캠프는 예능이 아닌 최강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예능으로 시작했지만 갑자기 내린 폭설로 산속에 고립된 야생 탈출기였습니다. 이승기는 극한 상황에서도 '예능이 아니다. 다큐다'라고 말하면서도 '눈내리는 것은 복이다' '눈으로 세트장을 만들었다면 돈이 엄청날 것이다'라며 긍정적으로 대하는 자세로 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폭설은 아무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멤버들은 배드민턴 게임과 라면 내기 복불복 게임을 마치고 비닐 막사의 야생에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으로 변했습니다. 곧이어 폭설로 변했고 제작진은 긴급히 산속에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자칫하면 산 속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멤버들은 사륜 산악오토바이를 타고 일단 산정상에 도착한 후 반대편으로 걸어서 하산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사륜 산악오토바이는 인제 내린천 ATV팀이 1박2일을 도와준 것이었습니다. 폭설로 자동차 차량은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선발대로 강호동 이승기 MC몽은 산 정상에 도착 후 산 아래 내리막을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눈 내리는 길, 스노우로드였습니다. 멤버들이 내려오는 도중에 엄청난 눈보라를 만나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길에서 사투를 벌였습니다.



게다가 눈길이 미끄러워서 멤버들은 계속 넘어지곤 했습니다. 촬영하던 VJ가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히말라야나 북극이 따로 없었습니다. 1박2일 멤버들은 극한 눈보라에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감동을 연출했습니다. 아이리스와 1박2일을 교차편집한 장면을 보니 딱 들어맞았습니다. 2012가 1박2일이란 의미라는 MC몽의 말이 이상해 보이지가 않을 정도였습니다.


더보기


그야말로 각본없는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 다큐였습니다. 1시간 30분이 넘는 길을 걷는데 후발대인 이수근 김C 은지원 일행이 폭설이 줄어든 틈을 타 사륜 산악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내려왔습니다. 그 때 해피선데이의 대표 연출자인 이명한PD가 산 아래에서 걸어서 올라와 강호동과 극적인 조우를 했고 함께 감격적인 포옹을 했습니다.

또한, 제작진들도 함께 만났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이산가족 상봉과도 같았습니다.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산 위에서 내려온 VJ가 '넘어지며 구르면서 촬영했다'고 말하자 산 아래에서 올라온 VJ가 고생했다면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박2일 제작진과 멤버들의 팀워크가 빛난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것은 예능이 아닌 최강 다큐였습니다.

폭설로 고립된 군대 막사 10일간 추억, 생존 전쟁이었다

다시 강원도 양구에서의 겨울 군생활 추억담으로 넘아가 봅니다. 지난 1980년대 중반, 군생활 도중 겨울에 폭설로 당시 저희 소대 막사가 고립된 적이 있었습니다. 산 속에서 땅굴탐지 특수 수색대 임무를 맡아 단독 소대 생활을 했던 터라 고립되면 외부와 단절되고 식사도 할 수 없어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뻥 뚫린 듯 폭설은 매일 계속 내렸고 도로는 완전히 허리 높이의 눈으로 뒤덮였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제설작업을 해도 50미터를 뚫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비상 식량도 바닥나고 결국 저희 소대는 매일 1개 분대씩 돌아가며 산정상을 넘어 반대편 평지까지 걸어서 부식과 식량을 배낭에 메고 돌아오는 작전을 돌입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도 밤 12시에 도착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막사와 도로의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에 하루 동일 매달렸습니다.


눈이 멈추기만 바랐지만 무심한 하늘은 하루도 쉼없이 눈발을 흩날렸습니다. 군장을 멘 부식추진조는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매서운 눈보라 속에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산악 눈길을 걷는 것 조차 힘들었습니다. 소대원의 식사와 목숨이 걸린 일이라 한 순간도 쉬지않고 걷고 또 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립된 생활 기간이 무려 10일이나 됐습니다. 가장 오래 고립된 시기였습니다.
 
그 후로도 폭설도 도로가 막혀 단기간 고립되는 일은 자주 있었습니다. 물론 작전도로가 넓어 겨울 내내 제설작업만 계속 했습니다. 강원도 양구 최전방 가칠봉을 비롯한 산악지대는 9월부터 첫 눈이 내리기 시작해 다음해 5월까지 눈이 내릴 정도였습니다. 정말 눈만 보면 지긋지긋했습니다. 
지금은 지나간 추억으로 남았지만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겨울 군생활은 눈이 결코 낭만이 아닌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은 인식하게 해준 경험이었습니다.
 


이 처럼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는 바로 강원도 최전상 군인들의 겨울병영생활을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강원도 인제편은 1박2일의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 정신과 저력을 보여준 감동의 명작이었습니다. 아울러, 오늘도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에 겨울 내내 고생할 최전방 국군 장병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젊은 그들이 있어 오늘 밤도 편안히 잠잘 수 있기 때문입니다. 1박2일이 있어 즐겁고 최전선 군인들이 있어 평안한 하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려 40여년 이상을 강원도 산 속 마을에서 살고있는 강원도 노인 아저씨와 강호동이 눈 속에서 마주치자 두 사람이 잠시 나눈 대화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역경과 도전 속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안 인생을 달관한 산할아버지의 우문현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호동 : 왜 우리는 험한 날씨를 몰고 다니는 걸까요?
아저씨 : 다 복이예요, 복.

(덧붙여, 1박2일 멤버들이 산에서 미끄러지는 TV장면을 보던 아이들은 저기서 비닐 포대 눈썰매를 타면 재밌겠다고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미 비닐 눈썰매를 타본 아이들의 경험은 놀이를 생각한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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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