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15 탱크의 이동을 보며 스친 군사반란의 기억 by 진리 탐구 탐진강 (32)
  2. 2009.06.21 독재와 정치깡패는 밀월과 배신을 즐겼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4)


얼마 전에 경기도 양평을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줄지어 지나는 탱크들과 장갑차들을 봤습니다. 탱크와 장갑차가 서울로 향하는 모습처럼 느꺼졌습니다. 물론 서울로 향하는 것은 아니고 훈련 중일 것입니다.

탱크나 장갑차를 보면 1980년이 생각나곤 합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시절입니다. 종로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던 시절이라 광화문 앞을 지나 통학하곤 했습니다. 당시는 청와대 인근에 장갑차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의 눈으로 본 장갑차와 군인들은 무서웠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커다란 위압감을 주었습니다.

신군부가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 즉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차근차근 군사독재 정권을 현실화했던 시기였습니다.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도 전두환 신군부를 무력 진압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국의 군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는 김영삼을 가택연금시키고 김대중에게는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민주주의가 군사독재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소위 '땡전 뉴스'를 들어야 했습니다. 방송사의 9시 뉴스는 "전두환 대통령은 ..."으로 시작되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눈과 귀가 있어도 올바른 소식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이 있어도 군사독재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대중은 나중에 미국의 도움(?)으로 사형을 면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1980년대는 군사독재의 탄압과 억압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진실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다시 군사독재와 항거를 시작했습니다. 목숨을 건 민주화 항쟁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많은 사람들이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구금되고 고문당하고 죽음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은 결국 다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은 노리던 전두환은 권좌에서 물러나고 노태우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영삼은 기존 군사독재 세력과 손잡은 3당 합당으로 대통령의 길을 열었습니다. 김영삼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을 원했던 것입니다. 김영삼에 의해 정치에 입문한 노무현은 독재와의 야합을 반대하다 결국 야당의 가시밭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민주주의가 꽃을 피워가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기존 독재의 유산을 물려받은 당의 인물들과 같은 패였습니다. 그리고 과거 20~30년 전의 행태들이 사람들을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독재의 도시의 망령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광화문과 서울 광장은 전경들이 가득합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전경차들을 보면 1980년 광화문을 지키던 장갑차와 군인들이 스쳐지나갑니다.

노무현은 부엉이 바위 위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촌로는 그렇게 갔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삶은 이승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모두가 소중하게 보듬고 가꾸어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대중이 위독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병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갔습니다. 과거 민주화 세력도 병문안을 했습니다. 김대중에게 사형을 내렸던 전두환도 병문안을 갔습니다. 김대중은 대통령 시절에 전두환을 용서했습니다. 신앙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용서와 화해란 당한 사람이 해주는 것입니다. 늘 DJ콤플렉스로 살며 김대중을 욕하던 김영삼은 병문안가서 화해했다고 합니다. 혼자 욕하고 혼자 화해한 셈입니다.

서울로 향하던 탱크와 장갑차를 보니 아련한 1980년 군사독재의 기억이 스쳐갔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당시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광화문이나 서울 광장의 모습은 1980년과 닮아 있습니다. 관변 단체의 공간일 뿐입니다. 과거 1980년에도 군사독재 관변단체는 그렇게 했습니다. 2009년 8월 15일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독립을 했습니다. 해방된지 64주년 광복절입니다. 해방된 나라에 살지만 아직도 일제의 그늘이 느껴지는 음산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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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요즘 시국을 보면 과거 독재시대의 유령들이 배회하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정치 깡패가 등장하면 독재가 절정을 치닫던 시기였습니다. 이승만 독재 치하에서부터 박정희 유신 독재, 그리고 전두환 군사 독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정치 깡패는 독버섯처럼 피어났습니다. 독재와 정치 깡패 조폭은 어쩌면 샴 쌍둥이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 후 미국과 친일파들을 등에 업은 이승만 정권의 독재정치는 가혹했습니다. 국민은 주인이 아니라 노예나 다름없었습니다. 야당은 존재하나 반대하면 엄청난 탄압을 받았습니다. 이승만 독재는 영구집권을 위한 사사오입(반올림) 개헌도 강행했습니다. 법도 정권 마음대로, 경찰도 자기 마음대로였습니다. 사이비 관제 단체나 정치깡패 동원은 필수였고 백주 대낮의 테러는 기본이었습니다.

이승만 독재정권은 김구 선생을 비롯한 독립투사들을 좌파로 몰아 암살했습니다. 이승만 독재 시절에 사사오입 국회테러사건, 고대생 습격사건 등을 자행한 이성순(시라소니)의 서북청년단이 대표적 극우 정치깡패 조폭입니다. 이성순은 이승만 정권에 배신당하고 정치깡패 생활을 후회하며 "주먹으로 흥한 자, 주먹으로 망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정재 정치깡패가 이승만 독재와 밀월하던 시기였습니다.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 군부독재는 쓸모없어진 정치깡패를 거리에 세웠다

이승만은 결국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들의 4.19 의거로 쫓겨나 나중에 해외에서 객사했습니다. 이승만 독재가 끝나고 민주주의는 짧았습니다. 박정희는 총칼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군부독재를 감행했습니다. 독재에 항거하면 가차없이 고문과 살인이 자행됐습니다. 박정희는 쓸모없어진 정치깡패 이정재를 거리에 세웠습니다. 정당성없는 폭력 독재정권이 정당성 확보 명분으로 깡패를 죽여버리는 고전적 수법이었습니다.

박정희 군부독재는 권력기관이나 정치깡패를 동원한 무시무시한 폭력을 자행했습니다. 당시 정권에 불만을 갖는 사람들은 모조리 범법자로 몰아 감옥으로 끌려가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습니다. 독재는 군사작전하듯이 모든 정치 경제 사회를 몰아갔습니다. 노동자들의 삶은 최악이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죽어갔습니다. 전태일 열사의 죽음은 노동자의 생존권이라도 보장받고 싶은 마지막 선택이었습니다.

박정희도 유신체제로 영구집권을 노리다 총맞아 죽었습니다. 그러나 독재는 참으로 질겼습니다. 이어 전두환 군부독재가 등장했습니다.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대한 공수부대의 학살은 잔인한 피의 잔치였습니다. 국민들은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를 통해서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광주를 피로 짓밟은 전두환과 군부는 국가보안법, 사회안전법 등을 만들어 반대 세력을 악독하게 제거했습니다.

전두환 군부독재는 용팔이 깡패들을 동원해 야당 창당을 방해했다

정당성없는 전두환 군부독재도 삼청교육대를 만들어 공포정치에 나섰습니다. 전두환 독재에 반대하면 보안사에 끌려가 악랄한 고문을 당했습니다. 민주주의 기본인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철저하게 파괴되었습니다. 야당의 창당은 용팔이와 같은 정치깡패들에게 유린당했습니다. 법은 없고 군사적 폭력과 정치 깡패 폭력이 난무했습니다. 국민들은 숨죽여 살았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군부독재도 1987년 6월 민주화항쟁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지독한 독재시대가 막을 내리는 듯 했습니다. 그 동안 민주화 정부가 들어서기도 했습니다. 김영삼은 노태우를 비롯한 군부독재 세력과 야합을 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정치 깡패와 독재의 망령을 되살아나지 못하게 하는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청산하지 못한 조직 폭력의 역사는 여전히 살아있습니다. 정치 깡패는 또 다른 모습으로 시대를 거슬러 출몰하는 듯 합니다.

MBC 방송국에 난입한 극우단체가 가스통을 차에 매달고 위협했다

우리나라는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수많은 독립 투사들이 길거리에서 목이 매달린 채 죽임을 당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독재에 맞서 싸웠던 독립투사들은 처참하게 학살당했습니다. 해방 이후에도 독립투사들은 비주류였습니다. 그들은 좌파로 몰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암살을 당했습니다. 독립투사 후손들의 삶은 빈곤했습니다. 그러나 일제에 아부하던 친일파들은 그대로 이승만 독재와 결탁해 호의회식하며 살았습니다. 그 역사는 지금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박정희 독재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국시로 삼아 민주화 반대세력을 좌파 빨갱이로 몰아 처형했습니다. 중세시대 마녀사냥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한번도 청산하지 못한 비극의 역사였습니다. 굴종과 반역의 역사였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폭력이 정당화되는 역사였습니다. 그러나 비극의 역사는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지난 60년대와 현재 2009년의 역사는 어쩌면 닮아있는지 모릅니다.  

일제는 길거리에 독립투사들을 목매달아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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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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