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2.21 1박2일 혹한기 캠프 '예능 아닌 최강 다큐'였다 (강원도 겨울 군대시절 폭설과의 전쟁) by 진리 탐구 탐진강 (84)
  2. 2009.02.22 20년전 군대 위문편지 보낸 선희에게 by 진리 탐구 탐진강 (17)


강원도 인제에서 촬영된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는 마치 겨울 군대 생활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사실 강원도 최전방에서 군생활을 경험한 분들은 기억하겠지만 겨울철은 눈과의 전쟁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쩌다 여행 중 만나는 눈보라는 하나의 추억과 낭만일지 몰라도 군생활 중 매일 내리는 눈은 '하늘의 쓰레기'나 '악마의 비듬'에 불과했습니다.

벌써 20여년이 지났지만 1박2일 혹한기 캠프 장소를 보면서 강원도에서의 겨울철 군생활이 잊혀지지가 않았습니다. 강원도 인제와 원통 그리고 양구에 걸친 최전방 지역은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네'라는 말이 아직도 전해내려오듯이 험난한 산악지형 지역입니다.
 
그래서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 인제 내린천편은 겨울 병영 캠프를 보는 듯 했습니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 속을 뚫고 내려오는 1박2일 멤버들의 모습이 바로 겨울 군인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던 것입니다. 1박2일이 표방한 리얼 야생 로드 버라이어티라는 모토와 군대의 겨울나기는 다를 바가 없어 보였습니다. 

실제 제가 군대 시절에 겨울에 허리까지 차는 폭설이 내려 작전 도로도 막히고 병영 막사가 고립돼 배낭을 메고 매일 수십 킬로미터를 걸어서 산을 넘어 부식(군대 식사 재료)을 추진해야 했던 일도 많았습니다.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1박2일 내용부터 먼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박2일 혹한기 캠프는 감동의 리얼 야생 로드 다큐였다

1박2일 멤버들이 보여준 인제 혹한기 캠프는 예능이 아닌 최강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예능으로 시작했지만 갑자기 내린 폭설로 산속에 고립된 야생 탈출기였습니다. 이승기는 극한 상황에서도 '예능이 아니다. 다큐다'라고 말하면서도 '눈내리는 것은 복이다' '눈으로 세트장을 만들었다면 돈이 엄청날 것이다'라며 긍정적으로 대하는 자세로 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폭설은 아무도 예기치 못한 일이었습니다. 멤버들은 배드민턴 게임과 라면 내기 복불복 게임을 마치고 비닐 막사의 야생에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갑작스럽게 비가 내리는가 싶더니 이내 눈으로 변했습니다. 곧이어 폭설로 변했고 제작진은 긴급히 산속에서 철수하기로 했습니다. 자칫하면 산 속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멤버들은 사륜 산악오토바이를 타고 일단 산정상에 도착한 후 반대편으로 걸어서 하산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사륜 산악오토바이는 인제 내린천 ATV팀이 1박2일을 도와준 것이었습니다. 폭설로 자동차 차량은 이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선발대로 강호동 이승기 MC몽은 산 정상에 도착 후 산 아래 내리막을 걸어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눈 내리는 길, 스노우로드였습니다. 멤버들이 내려오는 도중에 엄청난 눈보라를 만나 한치 앞도 보이지않는 길에서 사투를 벌였습니다.



게다가 눈길이 미끄러워서 멤버들은 계속 넘어지곤 했습니다. 촬영하던 VJ가 넘어지고 미끄러지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히말라야나 북극이 따로 없었습니다. 1박2일 멤버들은 극한 눈보라에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감동을 연출했습니다. 아이리스와 1박2일을 교차편집한 장면을 보니 딱 들어맞았습니다. 2012가 1박2일이란 의미라는 MC몽의 말이 이상해 보이지가 않을 정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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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각본없는 야생 리얼 버라이어티 다큐였습니다. 1시간 30분이 넘는 길을 걷는데 후발대인 이수근 김C 은지원 일행이 폭설이 줄어든 틈을 타 사륜 산악오토바이를 타고 유유히 내려왔습니다. 그 때 해피선데이의 대표 연출자인 이명한PD가 산 아래에서 걸어서 올라와 강호동과 극적인 조우를 했고 함께 감격적인 포옹을 했습니다.

또한, 제작진들도 함께 만났습니다. 이들의 만남은 이산가족 상봉과도 같았습니다. 이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됐는데, 산 위에서 내려온 VJ가 '넘어지며 구르면서 촬영했다'고 말하자 산 아래에서 올라온 VJ가 고생했다면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1박2일 제작진과 멤버들의 팀워크가 빛난 장면의 연속이었습니다. 이것은 예능이 아닌 최강 다큐였습니다.

폭설로 고립된 군대 막사 10일간 추억, 생존 전쟁이었다

다시 강원도 양구에서의 겨울 군생활 추억담으로 넘아가 봅니다. 지난 1980년대 중반, 군생활 도중 겨울에 폭설로 당시 저희 소대 막사가 고립된 적이 있었습니다. 산 속에서 땅굴탐지 특수 수색대 임무를 맡아 단독 소대 생활을 했던 터라 고립되면 외부와 단절되고 식사도 할 수 없어 '사느냐 죽느냐'의 생존 자체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하늘이 뻥 뚫린 듯 폭설은 매일 계속 내렸고 도로는 완전히 허리 높이의 눈으로 뒤덮였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제설작업을 해도 50미터를 뚫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비상 식량도 바닥나고 결국 저희 소대는 매일 1개 분대씩 돌아가며 산정상을 넘어 반대편 평지까지 걸어서 부식과 식량을 배낭에 메고 돌아오는 작전을 돌입했습니다. 새벽에 출발해도 밤 12시에 도착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막사와 도로의 눈을 치우는 제설작업에 하루 동일 매달렸습니다.


눈이 멈추기만 바랐지만 무심한 하늘은 하루도 쉼없이 눈발을 흩날렸습니다. 군장을 멘 부식추진조는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었습니다. 매서운 눈보라 속에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산악 눈길을 걷는 것 조차 힘들었습니다. 소대원의 식사와 목숨이 걸린 일이라 한 순간도 쉬지않고 걷고 또 걸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고립된 생활 기간이 무려 10일이나 됐습니다. 가장 오래 고립된 시기였습니다.
 
그 후로도 폭설도 도로가 막혀 단기간 고립되는 일은 자주 있었습니다. 물론 작전도로가 넓어 겨울 내내 제설작업만 계속 했습니다. 강원도 양구 최전방 가칠봉을 비롯한 산악지대는 9월부터 첫 눈이 내리기 시작해 다음해 5월까지 눈이 내릴 정도였습니다. 정말 눈만 보면 지긋지긋했습니다. 
지금은 지나간 추억으로 남았지만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겨울 군생활은 눈이 결코 낭만이 아닌 생존을 위협하는 존재라는 것은 인식하게 해준 경험이었습니다.
 


이 처럼 1박2일 혹한기 대비 캠프는 바로 강원도 최전상 군인들의 겨울병영생활을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강원도 인제편은 1박2일의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 정신과 저력을 보여준 감동의 명작이었습니다. 아울러, 오늘도 나라를 지키는 국방의 의무에 겨울 내내 고생할 최전방 국군 장병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젊은 그들이 있어 오늘 밤도 편안히 잠잘 수 있기 때문입니다. 1박2일이 있어 즐겁고 최전선 군인들이 있어 평안한 하루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무려 40여년 이상을 강원도 산 속 마을에서 살고있는 강원도 노인 아저씨와 강호동이 눈 속에서 마주치자 두 사람이 잠시 나눈 대화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역경과 도전 속에서도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동안 인생을 달관한 산할아버지의 우문현답이 아닌가 싶습니다.
강호동 : 왜 우리는 험한 날씨를 몰고 다니는 걸까요?
아저씨 : 다 복이예요, 복.

(덧붙여, 1박2일 멤버들이 산에서 미끄러지는 TV장면을 보던 아이들은 저기서 비닐 포대 눈썰매를 타면 재밌겠다고 함박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미 비닐 눈썰매를 타본 아이들의 경험은 놀이를 생각한 모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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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군대 복무 기간 동안에 사용했던 '군생활 회상록'을 꺼내 봤습니다. 군생활 회상록은 백두산부대에서 소속 부대 배치 당시에 나누어주었던 일종의 앨범입니다. 지난 1988년에 입대했으니 이제 20년이 지났습니다. 군생활 회상록은 이미 색도 바랬고 글자로 벗겨지는 등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군생활 회상록을 넘기다가 초등학생의 '군군 아저씨에게'로 시작되는 위문 편지를 하나 발견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선희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편지 내용은 남아 있는데 편지봉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희가 보낸 편지에는 자신과 함께 엄마와 남동생의 사진들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약 6 장 정도되는 사진인데 어쩌면 소중한 자신의 가족사진일지도 몰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돌려주고 싶어졌습니다.

선희는 아마도 당시 대구의 어떤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편지 내용 중에도 성은 없고 그냥 선희라는 이름만 있었습니다. 편지 내용이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의 단어 구사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선희도 세월이 흘렀으니 서른살이 훨씬 넘었을 나이일 것입니다.

지금은 군인 아저씨들에게 위문 편지를 보내는 일은 없어진 것으로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전에는 초등학생들이 위문편지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제가 20년전 근무하던 곳은 강원도 최전방이라서 학생들 위문편지도 다른 후방 부대들을 거쳐 제일 마지막에 받을 수 있어 일부 초등학생들 편지만 겨우 도착했었습니다. 아예 못받는 경우도 있었으니 편지라도 하나 받으면 감개무량한 시기였습니다.
 
먼저 간단히 당시 선희의 편지 내용 일부를 인용합니다.
저는 고향이 대구이고 대구에서 자라고 있어요. 먼저 우리 반의 여러 이야기를 말씀드릴께요. 저희 반에는 말썽장이들만 모여서 지내고 있어 그런지 언제나 덤벙대고 작은 사고도 가끔씩 일어난 답니다.

저번에는 교실에서 제기로 탁구놀이를 하다가 유리창을 깨는 일이 있었지만, 선생님께서는 장난스러운 아이들을 용서해 주시기도 하셨어요. 그리고, 아저씨가 보내주신 편지를 내 친구가 빼앗아가서 아저씨와 나의 편지내용이 다른 아이들에게 들통날 뻔 하였지만, 내가 간신히 빼앗아 내용이 들통나지 않았어요.

아저씨, 휴전선을 지키실 때 북한 공산군과 마주보기도 하시죠. 그 때의 기분이 어떠세요. 저는 아저씨가 어떤 분인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그리고 더 친해지고 싶어요.


선희는 연필로 글씨를 또박또박 예쁘게 쓰는 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여학생 다운 착한 심성과 함께 문장 실력이 우수한 편이었습니다. 같은 반 남자 아이들에게 편지를 빼앗겨 간신히 되찾았다는 내용은 미소를 머금게 합니다. (당시 편지 보낸 시기는 1989년 10월이었습니다.)

당시 군대시절에 저는 위문편지를 상병 때 한 번 이외에는 받지를 못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처음이자 마지막 위문편지가 선희가 보낸 셈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위문편지를 보내곤 했는데 (남학생이어서 그런지) 군인에게 답장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었던 것이 어린 마음에 속상한 일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래서 제가 군인일 때는 선희에게 정성껏 답장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선희는 당시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엄마와 남동생 셋이서 살고 있었나 봅니다. 선희가 보낸 사진 중에 아빠는 없고 가족 셋이 찍은 사진이 있었고 산소에 남동생과 함께 앉아있는 사진이 있습니다. 아마도 당시 선희는 아빠도 없이 자라다보니 일찍 감수성이 예민한 아이였던 듯 합니다. 가족사진을 여러장 편지와 함께 보내주는 바람에 당황스러웠던 기억입니다.


당시에 갑자기 땅굴 수색 등 작전과 맞물려 혼란스러워지면서 어쩌다가 사진을 돌려주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강원도 중동부전선에는 9월에 첫 눈이 내리고 다음해 5월까지 지긋지긋하게 눈이 내릴 정도였던 기억입니다. 그 기간동안에 제4땅굴 수색 작전이 있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이라고 선희에게 가족 사진을 돌려주고 싶은데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서 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군대에서는 볼 수 없는 추억이겠지만 군생활 회상록에 남겨진 '선희의 국군 아저씨 위문편지'가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선희에게 가족사진이라도 돌려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후 보내지 못했지만, 선희가 보고싶어했던 당시 군인 아저씨들 사진입니다. 늦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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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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