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10.01.31 무한도전 소녀 복서편, 각본없는 감동의 록키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47)
  2. 2010.01.26 무한도전 조성규 "유재석, 감동해 울었다" (직접 인터뷰 전문) by 진리 탐구 탐진강 (66)
  3. 2010.01.25 무명 권투선수였던 삼촌과 무한도전 복서 영웅들 by 진리 탐구 탐진강 (34)
  4. 2010.01.24 무한도전 길의 눈물과 감동의 챔프 최요삼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5. 2010.01.23 탈북소녀 최현미와 쓰바사 덴쿠가 준 무한 감동 그리고 여자 복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26)


무한도전이 각본없는 감동의 다큐멘터리를 선보였습니다. 지난 주에 이어 무한도전 여자 권투편은 예능이 단순히 웃음과 재미만 주는 것이 아니라 감동과 교훈을 더불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은 스포츠 경기에서 한일전이 무조건 우리나라 선수만을 응원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무한도전 여자권투 한일전은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고심해야 했습니다. 두 소녀의 집념이 있을 뿐 한일전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누가 이겨도 그 결과가 중요하지 않을 만큼 특이한 경기였습니다. 그것은 집념의 승리일 뿐 최선을 다한 모두가 아름다운 승자였습니다. 한국의 최현미나 일본의 쓰바사 덴쿠나 둘 다 2분 10회전 경기 내내 자신과의 싸움이었고 결국 마지막 최종 라운드까지 링 위에 쓰러지지 않는 집념을 보여주었습니다. 최현미도 승자로서 잘했지만 쓰바사의 집념은 진정한 승자의 모습인 아닌가 싶었습니다.

두 소녀의 집념만이 있을 뿐 한일전은 없었다

무한도전 여자권투편은 승리가 최종 목표가 아닌 것 같았습니다. 마치 록키에서 록키 발보아(실베스터 스탤론)가 헤비급 세계 챔피언과의 경기에서 마지막 15회전을 끝까지 버텨낸 것이 무한 감동을 준 장면과 닮아 있었습니다. 비록 판정패를 했지만 눈이 감길 정도로 눈두덩이가 멍든 록키는 인간으로서 자신과의 집념과 싸움에서 승리했고 그의 연인 '애드리언'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영화 '록키'의 줄거리



1975년 11월, 필라델피아 빈민촌에 사는 청년 록키 발보아는 4회전 복서로 근근히 살아가면서 뒷골목의 주먹 노릇도 하지만, 애완동물 가게의 점원 아가씨 애드리언을 짝사랑하면서 성실하게 살려고 애쓰는 젊은이입니다. 어느 날 그에게 기회가 옵니다. 헤비급 세계 챔피언 아폴로 크리드가 독립기념일의 이벤트로서 무명의 복서에게 도전권을 주려는 계획에서, 그가 도전자로 선발된 것입니다.

망설이던 그에게 연인이 된 애드리언과 그녀의 오빠 폴리의 격려와 동네 체육관의 코치로 과거 세계 챔피언을 키운 바가 있는 노인 미키의 지도로 그는 맹훈련에 돌입합니다. 그의 목표는 단방에 KO로 장식하려는 아폴로의 주먹을 이겨내 15회를 버텨내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결전의 날이 오고, 록키는 방심한 챔피언을 먼저 다운시키는 등 선전 끝에 15회를 견디어 냅니다. 비록 판정패를 했지만, 인간으로서 승리한 그에게 마이크가 집중되고 그는 '애드리언!'을 외칩니다.

록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고 결국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록키는 진정한 승자였습니다


무한도전도 록키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세계 여자 복싱 페더급 챔피언 최현미 선수는 스폰서가 없어 2차 방어전 조차 치르지 못할 상황이었습니다. 최현미는 6개월 이내에 방어전을 못하면 국제규정에 따라 세계챔프 타이틀을 자동 반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개그우먼 김미화의 주선으로 무한도전이 후원에 나서면서 일본의 쓰바사 덴쿠와 2차 방어전이 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한국 사람들이 모두 그렇듯이 한일전은 스포츠에서 가장 빅매치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연히 한국 선수를 응원하게 됩니다. 한일전하면 생각나는 프로레슬링의 박치기왕 김일 선수를 비롯 축구 야구 권투 등이 그러했습니다. 최근 들어서는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대결도 한일전은 양국간 일방적 대결을 연상시킵니다.

그렇지만 최현미와 쓰바사 덴쿠의 한일전 여자권투는 그 동안의 일방적 대결과는 달랐습니다. 세계 챔피언을 지키고자 하는 19세 소녀 최현미나 꿈을 이루고자 하는 소녀 쓰바사 덴쿠나 스스로 집념과의 대결일 뿐이었습니다. 그러한 경기를 지켜보는 관중이나 시청자들도 두 소녀의 집념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 뿐 승리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승패를 떠나 아름다운 도전이었던 감동의 라운드

록키에서 록키가 챔피언을 상대로 최종회까지 버텨냈듯이 쓰바사 덴쿠도 챔피언을 상대로 최선을 다한 집념과 의지로 최종회 10회까지 버텨냈습니다. 비록 판정패했지만 쓰바사 덴쿠는 살아 생전 자신을 응원해준 아버지의 영전에 '아버지'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무한도전 여자권투편은 승패를 떠나 아름다운 도전이었습니다. 두 선수가 경기가 모두 끝난 후 서로 끌어안는 모습은 감동의 여운을 남겼습니다. 모두가 승자였습니다. 무한도전 김태호PD가 승리의 장면을 내보내지 않은 이유였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무한도전 멤버들은 열심히 최선을 다한 쓰바사 선수의 대기실을 찾아가 박수와 함께 '감사하고 너무 멋졌다. 항상 쓰바사 선수를 응원하겠다'면서 뜨거운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쓰바사도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정형돈은 이번에도 눈물을 흘려 과거 봅슬레이 편에서도 우정의 눈물을 쏟아내 감동을 선사했던 장면이 오버랩되어 지나갔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형돈이 눈물이 헤픈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것은 스포츠가 주는 감동과 순순의 눈물이었습니다. 


특히 무한도전이기에 더욱 아름다웠던 경기였습니다. 아버지 생신을 맞아 시골집에 모였던 가족들 모두가  감동과 함께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한일전을 떠나서 소녀들의 집념은 물론 복싱이 거짓없는 스포츠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한일전이 아름답고 감동적일 수 있다는 것과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무한도전이었습니다.
 
우리들이 영화 록키를 보면서 감동을 느낀 것은 주인공 록키 발보아가 승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의 약속을 위해 최선을 다한 집념이었듯이 무한도전이 주는 감동도 두 선수 모두가 마지막 최종 라운드 공이 울릴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었을 것입니다. 무한도전 자막에서도 나왔듯이 누가 이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진정 최선을 다한 두 사람이었기에 '모두가 승자였던 경기'였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혹시 못보신 분들이나 이해를 돕기 위해 2회에 걸쳐 방송된 무한도전 여자권투편을 총정리해 봅니다. 이번 무한도전은 비인기종목이 된 권투의 활성화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최현미가 무한도전에 출연하게 된 배경은?

김미화가 최현미 선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김미화의 남편이 성균관대 교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김미화의  남편인 윤승호 교수는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데 최현미를 4년 특별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최현미는 북한에서 김철주사범대학체육단에서 인정받은 권투 꿈나무였습니다. 방송에서는 키(170cm)가 커서 길거리 캐스팅됐다고 최현미는 밝혔습니다. 북한의 김철주사범대학체육단으로 뽑히면 대학과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현미의 아버지와 가족은 최현미가 재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탈북을 결행하여 2004년 남한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쓰바사 덴쿠가 아버지를 위한 집념의 이유?

1990년생인 최현미는 아마추어 선수 시절에 17전 1패의 전적이 자랑하듯 권투 재능이 탁월했습니다. 2007년 프로 전향 후 최현미는 단 2번째 프로 경기만에 중국 선수를 이기고 WBC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고 1차에 이어 2차 방어전에 나선 것입니다. 최현미의 2차 방어전 상대는 일본의 쓰바사 덴쿠였습니다. 무한도전의 정준하 정형돈이 만난 츠바사 덴쿠 선수도 사진에 비해 실물이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쓰바사 선수는 나이가 25세인데 화면 속에 비친 모습은 앳된 소녀 처럼 보였습니다.

무한도전팀과 만난 쓰바사 덴쿠의 사연도 감동을 주었습니다. 지난 2008년 자신의 경기를 지켜보려 했던 아버지가 경기 이틀 전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자신의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츠바사는 경기 후 아버지 소식을 들었지만 이미 아버지는 사망했습니다. 쓰바사는 슬픔과 함께 눈물을 흘렸지만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꿋꿋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쓰바사의 이야기에 통역하던 사람도 울컥했습니다.

쓰바사 덴쿠와 일본 여자 복서들의 열악한 환경

쓰바사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권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연습시설은 미니 링 하나 경우 있을 정도로 초라했고 세계 여자 밴텀급 챔피언인 독특한 이름의 쓰나미 선수도 함께 그 곳에서 연습할 정도였습니다. 힘든 권투를 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꿈을 향한 집념이었습니다. 쓰바사는 한번도 딸의 경기를 못보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직장에서 자신을 자랑했다는 말을 나중에 듣고 영전에 챔피언 벨트를 바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성숙하고 긍정적 마인드로 포기할 수 없는 꿈을 향해 쿨하게 나아가는 쓰바사 덴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판 밀리언달러베이비 최현미와 통일의 꽃

최현미는 인생 내내 탈북소녀 복서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닐 것입니다. 최현미는 그래서 통일이 꿈이라고 합니다. 최현미는 외모가 닮아 한국판 밀리언달러베이비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한도전 출연으로 최현미는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세계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쓰바사 덴쿠도 용기와 집념을 잃지말고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최현미가 체급을 올려 2체급 석권하면 쓰바사도 챔피언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최현미가 세계 여자 권투사에 획을 긋는 자신의 꿈을 계속 이루어가고 앞으로 새터민(탈북자 가족)을 대표해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이루는데 통일의 꽃으로 일익을 담당해 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봅슬레이도 그러했지만 권투를 비롯한 비인기종목이 한 순간 감동에 지속적인 국민들의 관심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1등과 승자만을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 경종울린 무한도전

김태호PD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직 승자와 1등만을 기억하는 비정한 승부의 세계와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무한도전의 반전이었습니다. 그리고 승부의 날은 밝았습니다. 미처 예상치 못한 국경을 넘는 글로벌 무한도전의 미학이 펼쳐진 것입니다.

누가 이기든 모두가 승자가 되는 경기였습니다. 최현미가 한국에서 유명해지겠지만 일본에서도 무한도전의 소식이 국경을 넘어 전해지면 쓰바사 또한 감동이 전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김태호PD와 무한도전이 만든 글로벌 감동 프로젝트가 탄생한 셈입니다. 그리고 승자와 1등만을 기억하는 고정관념의 사람들에게 승자도 패자도 모두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켜 줄 것입니다. 무한도전이 훈훈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무한 감동을 선사해준 무한도전 제작진에 큰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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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주말 무한도전 권투편을 보고난 후 아직도 감동이 가시지 않습니다. 어떤 프로그램을 보고 연달아 2개 이상의 글을 쓴 적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윤서아빠님이 처음으로 블로그에 무한도전 게시판에 복서 출신 탤런트 조성규 씨가 남긴 글이 소개된 후 계속 머리 속에 궁금증이 맴돌았습니다.

블로거의 글은 다시 여러 언론 기자들에 의해 기사화가 되고 인터넷에서 네티즌들에게 회자가 되었습니다. 이미 제 글을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막내 삼촌이 두메산골 농촌에서 태어난 무명 권투선수 출신이라서 더욱 조성규 씨의 진솔한 글은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인터넷에서 조성규 씨에 대한 기존 기사를 읽고 홈페이지를 방문해 인생역정을 보다가 문득 직접 인터뷰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 늦은 시간에 전화를 하는 것이 미안했지만 조성규 씨의 양해를 구하고 직접 인터뷰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제가 조성규 씨와 직접 진행한 전화 인터뷰 전문을 소개합니다.
(그 전에 무한도전 게시판에 실린 조성규 씨의 글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더 보기를 보시면 됩니다.)

더보기


조성규 씨의 홈페이지에는 '내가 링에 다시 서는 이유. 묻지 마세요, 슬프니까'라고 써 있었습니다

Q : 늦은 시간에 인터뷰에 응해줘 감사합니다
. 조성규 님의 글 잘 봤습니다. 왜 글을 쓰게 됐나요?

A : 무한도전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열악한 비인기종목인 권투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했습니다.

사실 지난 11월 최현미와 쓰바사의 경기 현장에 있었습니다. 최현미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스폰서를 못구해 경기를 치르기도 힘든 열악한 현실 때문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최현미를 응원했지만 한편으로 쓰바사 덴쿠가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일본이 선진국이지만 모두 잘사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 선수는 운동할 체육관도 없이 가정집을 개조해 운동하는 열악한 환경이었잖아요. 최현미는 탈북소녀 복서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그나마 좀 나은 조건이니까요.
 
쓰바사 선수의 아버지가 경기 전 돌아가신 것은 지난해 7월 저의 복귀전 시작 1시간 전에 어머니가 운명하신 것과 너무나 닮아서 눈물이 났습니다. 20년만에 권투 복귀전으로 어머니 약값을 마련하려고 했는데 그것은 장례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조성규 씨는 어머니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링 위에 섰고 50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권투계도 어렵지만 연예계는 더 어려운 곳이라고 합니다.)

Q :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습니다. 혹시 지금도 탤런트실에 계세요? 인터넷에 화제던데 보셨나요?
A : 지금까지 탤런트실에 있다가 막 집에 들어 왔습니다. 인터넷에 알려진 것은 알고 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음지에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공감하고 관심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인기종목인 권투도 그렇고 무명의 연기자들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관심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Q : 공감합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따뜻해졌으면 해요. 그런데 요즘 근황은 어떠세요?
A : 작년 7월 25일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계속 힘들었어요. 마음을 추스린 후 KBS 주말드라마 '수상한 삼형제'에 출연했는데 최근 1월초 배역이 갑자기 바뀌었어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조성규 씨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면서 더 할 말이 있는 듯 했지만 머뭇거리며 말을 아끼는 듯 했습니다.)


Q : 화제를 돌려 최수종 씨와는 어떻게 친하게 되셨나요? 
A : 제가 1991년 연예계에 데뷔했습니다. 초기에 알고는 지내다가 1997년 주말 드라마 '사랑하세요'에서 최수종과 둘이서 권투선수로 등장했어요. 최수종이 저에게 밤이나 새벽에 전화해 권투를 가르쳐 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함께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인간적인 것을 알게되고 친해졌습니다. 

나중에 강남 양재천의 조깅코스에 건강복싱교실을 만들어 3개월간 함께 하기도 했어요. 최수종은 말 한마디도 참 따뜻해요. 든든하고 힘이 되는 친구이죠. 제가 작년 7월 권투 복귀전에서도 최수종 씨가 코치를 자청해 주기도 했어요. 정말 힘이 많이 됐어요.

(참고로 조성규 씨는 늦깎이로 탤런트에 입문해 지금 나이는 48세이고 최수종 씨와는 친구 사이입니다.)
 
Q : 최수종 씨가 인간적이 면이 많군요. 다른 기억나는 연예인은 누군가요?
A : 무한도전이 끝난 토요일 저녁에 유재석이 전화를 했습니다. 유재석이 전화로 감동해 울었다고 했어요. 무한도전 찍으면서 형 생각 많이 했다고 했습니다. '형 생각하니 눈물났어' '형 많이 울었지?' 그러더군요.

Q : 유재석 씨와는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군요?

A : 제가 1991년 연예계 데뷔 이후 서로 알게 됐어요. 저도 무명 탤런트였지만 그 당시 유재석도 무명 개그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마음씨가 고맙지요.

유재석이 전화로 작년 7월 경기가 마음에 걸렸는지 '형 시합 가봤어야 했는데 미안했어요.' 그랬습니다.

(유재석 씨가 무명시절을 잊지않고 사려깊은 배려심으로 전화통화를 통해 조성규 씨를 위로하는 장면을 생각하니 감동적이었습니다. 유재석 씨도 1991년 KBS 개그맨으로 데뷔한 바 있어 조성규 씨와 데뷔 연도가 같습니다.) 

Q :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으신가요?
A : 열심히 노력하는 연기자가 되고 싶어요. 그리고 양지가 아닌 음지의 연예인들의 대변인이 되고 싶습니다. 일부 PD는 물질적이지요. 연예기획사 중심으로 움직이는 연예계 풍토와 관계가 있어요. 음지의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극한의 경기인 권투를 하면서도 끈기로 버텼듯이 열심히 노력하면 좋은 기회가 있을 겁니다.
 
Q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 어머니께 너무 죄스럽습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작년 7월 경기가 끝나면 어머니와 동해안 여행이라도 함께 가는 것이 꿈이었어요. 그런데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살아 생전에 맛있는 것도 못사드리고 자식된 도리로 너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조성규 씨의 홈페이지(http://www.chosungkyu.com)에 실린 좌우명과 하고싶은 말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조성규 씨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



좌우명

아마와 프로복서로 활동하면서 성실, 정직, 근성을 배웠다. 그것은 내 인생의 좌우명이다.
지금의 드라마 속 인생에서... '이 한 몸 다해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또한, 운동과 여행을 좋아하기에 재충전을 위해 운동과 드라이브 여행을 즐기는 편이다.
서울근교의 북한강은 내 삶의 낭만과 그리움, 내 삶의 흔적이 가득한 곳이다.
 
하고싶은 말
그동안 '하나 되는 모임'이란 방송인 자선단체를 만들어 자선공연을 기획, 주최하여 왔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강원도 홍천, 춘천, 서울 대학로 등지에서 11차례 공연을 해왔다.
최수종, 김보성, 김민종, 이동준, 이한위, 최진영, 안정훈, 임경옥, 수와 진, 손현희, 전용대 등등
'하되모' 회원들이 공연에서 모인 성금 모두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놓았다.
앞으로...
가야 할 연기자의 길이 더불어 사는 세상 속에 희망과 용기를 주는 디딤돌이기를 바라며
이 세상, 진정한 의리와 가식을 떠난 정직한 모습이 살아숨쉬는 그런 길이기를!

조성규 씨는 늦은 시간이지만 성실하게 인터뷰에 응해주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환경 속에서도 끊임없는 집념과의 투쟁인 복싱선수로서 그 꿈을 향해 불굴의 의지를 잃지않았습니다. 그리고 연예인 탤런트로서도 여전히 꿈을 향한 도전은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조성규 씨의 무한도전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 조성규 씨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과 연예계에 대한 소감은 과거 모 언론에 소개된 글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될 듯 합니다. 조성규가 본 연예계 (링크 참조)

* 조성규 씨는 1976년 아마추어 복서로 시작해 1980년 전국체전서 금메달을 딴 뒤 프로복서로 전향했고 1988년까지 통산 24전 20승(13KO) 1무3패를 기록한 바 있는 한국챔피언 출신 복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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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한 무한도전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사람은 저희 막내 삼촌이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60년대, 산골 농촌마을에서 태어난 삼촌이었습니다. 저와는 두 살 차이 밖에 나지 않았습니다.

만일 큰 아버지 부부에게 자식이 있었다면 막내 삼촌은 나이가 어렸을 것입니다. 제 누나가 세 살 때 죽지않았다면 막내 삼촌이 한 살 나이가 어렸을 것입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저희 할아버지는 첫번째 아내를 사별했습니다. 그리고 재혼을 했습니다. 첫번째 할머니가 낳은 자식이 3남 1녀였고, 두번째 할머니에게서 3남 2녀를 두었습니다. 그래서 6남 3녀, 즉 9남매의 가족이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둘째였습니다.

지난 1950~1960년대에 태어난 세대들이 기억하듯이 당시는 매년 보릿고개를 거쳐야 했습니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먹을 것이 없어 초근목피를 하는 경우도 허다했습니다. 소나무의 하얀 속살 같은 껍질을 먹기도 했고 쑥떡을 만들어 먹기도 했습니다. 보리밥은 기본이었습니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권투 체육관으로 향하던 삼촌

막내 삼촌은 10대 초반에 서울에 올라와 자개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당시 농촌 출신 젊은이들이 그러했듯이 공장에서 일하는 소위 공돌이 공순이들입니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농촌을 피폐화하면서 공장을 짓고 저임금 공장 노동자를 양산해 도시화를 이룬 세대였습니다. 오늘 날, 우리나라의 발전과 대기업 재벌의 성장은 저임금에 착취당한 노동자의 희생에 의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권투 중량급의 영웅이었던 박종팔 선수

삼촌은 밤마다 권투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했습니다. 삼촌이 운동하던 곳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권투선수였던 박종팔이 소속된 극동체육관(극동프로모션)입니다. 박종팔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중량급인 슈퍼미들급 세계챔피언을 차지하며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던 선수였습니다.

삼촌은 박종팔과 같은 선수가 되기 위해 아마추어 권투선수에서 프로 데뷔전까지 했지만 결국 무명으로 권투 인생을 접어야 했습니다. 저는 삼촌이 샌드백을 두드리고 줄넘기를 하고 새도우 복싱을 하는 연습 장면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가끔 삼촌이 연습하던 권투 글러브를 끼고 흉내를 내보기도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선 최고의 인기스포츠는 권투였습니다. 1970년대 한국 선수가 외국 선수와 세계챔피언전을 치르는 날이면 흑백TV 앞에는 모든 국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곤 했던 시절입니다. 우리나라 선수가 외국 선수를 링 위에 눕히고 챔피언이 되는 날이면 하나의 축제무대가 됐습니다. 가난하고 못살던 시대에 권투, 즉 복싱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희망의 선물이었던 셈입니다.

복싱은 우리나라 경제가 발전하면서 점차 인기를 잃어 갔습니다. 헝그리 복서라는 말이 있듯이 복싱은 가난한 농촌 시골 출신들이 서울에 상경해 굶어가며 운동했던 헝그리정신의 상징이었습니다. 가진 것 없는 농군의 자식들에게 주먹 하나로 세계챔피언이 되면 명예와 부를 거머쥘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세계 챔프의 꿈을 향해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서 권투 연습에 매진하는 10대 청소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10대를 보냈던 삼촌도 이제는 40대 중반이 넘었습니다. 지금도 삼촌 집에 가면 그 때의 권투 글러브가 보물처럼 보관돼 있습니다. 저도 글러브를 보면 옛날 생각이 나곤 합니다.

무한도전에 등장한 영웅 복서들은 당시 청소년들의 우상

홍수환이 세계챔피언이 된 후 어머니와 포즈를 취한 모습

그 동안 잊고 지냈던 20~30년전의 추억을 되살려준 것이 무한도전입니다. 19세 탈북소녀 복서 최현미의 모습은 마치 삼촌이 챔피언을 꿈꾸던 과거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매일 새벽 일찍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낮에는 열심히 자개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체육관에서 줄넘기와 스파링, 새도우 복싱 등을 했던 모습입니다. 방송에서도 최현미나 쓰바사 덴쿠의 연습 장면은 그 때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체중감량을 위해 땀복을 입고 뛰어야 하고 먹을 것도 마음대로 먹을 수도 없는 권투 선수의 여러움이 고스란히 보였습니다.

그리고 방송에서 짧은 인터뷰로 홍수환, 문성길, 황충재, 박종팔, 최요삼 등 챔피언들이 등장했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선수는 역시 박종팔이었습니다. 주로 경량급 중심으로 세계챔피언을 배출하던 한국 복싱계에서 박종팔은 중량급의 신화이자 간판스타였습니다.

미국 원정경기 세계타이틀전 사상 유일한 승리가 박종팔입니다. 현재 25전 1승 24패인데 그 중 승리가 박종팔이 거둔 기록입니다. 박종팔은 통산전적 53전 46승(40KO) 2무 5패의 기록이 말해주듯 이겼다하면 KO승이었습니다. 박종팔은 19연속 KO승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백인철이 26연속 KO승을 하여 연속 KO승 기록 2위로 남아있지만 대단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대를 풍미한 복서 4인방, 박종팔 홍수환 유명우 장정구

무한도전을 보면서 한국의 영웅 복서들이 생각났습니다. 주요 선수를 보면 홍수환 장정구 유명우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작은들소' 유명우는 39전 38승 1패의 기록이 말해주듯 단 1번의 패배밖에 없을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국내 프로복싱 사상 최다 연승기록인 36연승에다가 17차 방어전에 성공하며 약 7년동안 세계챔피언으로 군림한 바 있습니다. 작은 체구에 해맑은 미소 그리고 지독한 연습벌레로 유명했던 선수입니다.

                1980년대를 풍미한 우리나라 세계챔피언 복싱 영웅인 장정구(좌)와 유명우 모습

'짱구' 장정구도 기억에 남는 선수입니다. 42전 38승(17KO) 4패의 기록인데 WBC 라이트플라이급의 최강자로 퍼머 머리를 한 장정구는 기술이나 펀치력은 물론 스피드도 엄청났고 쇼맨십이나 포스도 대단했습니다. 1988년 스스로 챔피언 벨트를 반납할 때까지 15차 방어전에 성공했으며 그를 이길 상대가 없었습니다. 그 당시 장정구와 유명우가 빅매치 시합을 해서 승자를 가린다면 어떨까 생각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우리 국민들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남는 장면은 홍수환의 '4전5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1974년 처음 세계챔피언에 오른 이후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은 당시 최고의 화제였고 1977년 '지옥에서 온 사자'라는 카라스키야 선수와 경기에서 4번 쓰러지고 5번 일어서 마침내 KO로 승리한 장면은 단연 압권이었습니다. 통산 전적은 50전 41승(14KO) 5패 4무였고 한국 권투 사상 2체급 석권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추억의 권투글러브를 간직한 삼촌과 군시절 샌드백

지난 80년대 초반 중학교 시절에 제가 보던 잡지는 펀치라인이었습니다. 전세계 권투선수들에 대한 정보나 경기 소식이 소개됐는데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면서 가슴 설레이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군대에서 수색대의 고된 근무에도 막사 근처에 샌드백을 만들어 매일 밤마다 권투와 태권도에 열중했던 이유도 거기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오래된 추억의 역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강렬한 기억은 남아 있습니다.

막내 삼촌 이야기를 하다보니 권투 선수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삼촌은 오래전 권투를 그만 두었지만 지금도 방송에서 중계되는 권투 경기 만큼은 매번 챙겨보고 있습니다. 가장 소중했던 시절의 추억을 담은 권투 글러브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듯이 권투 경기를 보면서 옛 추억에 잠기나 봅니다.

세상은 변하고 인기 스포츠도 변합니다. 과거 비인기 종목이던 골프가 박세리로 인해 국민들에게 각인되고, 피겨스케이팅이 갑자기 김연아로 인해 국민 스포츠처럼 인식되듯이 말입니다. 어떤 스포츠가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습니다. 각자가 좋아하는 기호식품이 다르듯이 스포츠에도 우열을 가르기는 힘들 것입니다. 막내 삼촌과 제게는 복싱이 가장 소중한 추억 중 하나이듯이.

[참고] 무한도전 게시판에 남긴 탤런트 조성규의 글
무한도전 시청자 게시판에 탤런트 조성규가 글을 남긴 내용을 보면 삼촌이 권투를 하면서 느낀 경험이나 감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어머니 약값을 위해 나이 40대 중반에 링에 설 수 밖에 없는 연예계의 현실은 화려함 속에 가려진 그늘과도 같다고 봅니다. 일부 스타 이외에는 대부분 연예인들이 배고픈 직업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조성규에 대한 인생역정을 모 블로그(조성규가 본 연예게)에서 본 적이 있는데 정말 파란만장합니다. 저희 막내삼촌이 권투를 하던 시절이나 인생과 오버랩될 정도로 가슴이 아픈 사연이었습니다. 조성규의 무한도전 게시판 글은 진심어린 눈물의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보기를 보면 조성규가 남긴 글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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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무한도전이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어제의 감동의 물결이 여전히 뇌리에 가득합니다. 어린 19세 나이의 탈북소녀 출신의 세계챔피언 최현미와 일본 여자 복서 쓰바사 덴쿠의 사연 그리고 링에서 쓰러져 고인이 된 최요삼과 길의 눈물이 눈시울을 적시게 했습니다. 자꾸 생각이 나서 글을 또 쓰게 됩니다.

권투 즉 복싱하면 야만적인 스포츠라고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비록 글러브를 끼었지만 주먹으로 상대방의 얼굴과 머리를 가격하여 눈두덩이가 붓고 얼굴에 피가 튀는 모습은 부정적 인상을 심어주었던 것입니다. 실제 최요삼 김득구 등과 같이 권투 경기 중 심각한 뇌출혈과 뇌손상으로 사망한 사례를 보면 위험한 운동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복싱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스포츠이며 인간의 원초적 삶을 담고 있어 순수한 승부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복싱을 바라보는 시각이 극단적으로 갈리는 셈입니다. 최근 몇년 사이를 보면 더욱 격렬한 이종격투기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을 보면 권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복싱의 침체는 우리나라 뿐만아니라 전세계적 현상이란 점에서 사람들의 관심 변화가 시사하는 바도 있습니다.
 
1970년대 흑백TV 시절 권투의 절정기와 홍수환

사실 복싱은 우리나라 스포츠 역사에 있어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가장 많이 심어준 종목이었습니다. 지금도 가슴을 뛰게 하는 명승부는 홍수환 선수가 1977년 '지옥에서 온 사자'라는 별명으로 무시무시했던 카라스키야를 적지에서 4전 5기 끝에 링에 눕히고 승리한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무려 네 번을 링에 쓰러지고도 다섯 번을 다시 일어서 결국은 카라스키야를 KO시켜 승리하며 세계챔피언이 된 홍수환이었습니다. 특히 홍수환이 당시 TV 생중계로 전해진 소감을 통해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며 천진난만하게 웃던 모습은 국민들을 승리의 환희와 함께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못살던 1970년대와 1980년대 시절에 복싱은 TV 앞에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마법의 스포츠였습니다. 어린 시절에 흑백TV 앞에 온 가족이나 마을 주민들이 옹기종기 함께 모여서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던 광경에 눈에 선합니다.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한국 권투선수들은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효자 종목이었습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권투는 다이어트 운동으로 명맥을 유지하며 서서히 인기 스포츠 종목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세계 챔프의 등용문 프로복싱 신인왕전의 위기

이번 무한도전에서는 과거 국민들로부터 인기 스타였던 여러 권투 선수들의 인터뷰가 나왔습니다. 다시 그들의 모습을 보니 과거의 추억이 회상되면서 반갑기도 했습니다. 홍수환을 비롯해 장정구 문성길 박종팔 황충재 등이 우리나라 유일의 여자 권투 세계챔피언 최현미 선수를 위한 조언을 한 마디씩 해주었습니다. 홍수환은 '아침에 매일 뛰어야 한다'고 말했고 황충재는 '복싱은 거짓없고 깨끗한 스포츠'라고 말했습니다.

최효삼이 아버지처럼 따랐던 스승에게 경기전 보낸 문자메시지가 더욱 슬프게 한다

그런데 요즘 우리나라에서 복싱의 현주소는 암울하기만 합니다. 최근 소식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신인 프로복서의 등용문 역할을 하던 전국프로복싱 신인왕전이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무산 위기에 처했다는 것입니다. 작년까지 35회째를 맞이했던 신인왕전은 장정구 최요삼 박종팔 김태식 백인철 권순천 등 우리나라 권투의 명성을 세계에 과시한 주역들이 탄생한 꿈의 관문이었습니다. 자그만치 13명의 세계챔피언 복서들이 신인왕전에서 배출됐다고 합니다.

그러나 신인왕전은 올해 개최가 불분명합니다. 가장 최근에 열린 신인왕전은 2009년 3월에야 열린 '2008 신인왕전'입니다. 최요삼이 2008년 1월초 경기중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을 찾지못하고 사망한데다 후원사가 나타나지 않아 결국 1년이나 지난 다음에 신인왕전을 열었던 것입니다. 2년만에 신인왕전이 열린 셈입니다.

올해도 현재까지 신인왕전에 대한 스폰서는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권투위원회(KBC)는 제36회 전국신인왕전 주최권 입찰에 아무 곳도 참여하지 않자 1억 3천만원에 달하는 비용 문제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고 합니다. 신인왕전을 개최하기 위해서는 참가 선수 대전료, 수상자 상금, 대관료 등을 지출하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아 KBC 회장이 사비를 털어서라도 개최할 것을 고심 중인 모양입니다. 한편으로 이번 무한도전 방송으로 권투에 대한 관심이 증대돼 스폰서가 극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에 희망을 갖게 됩니다.
 
최요삼 선수 생각에 길이 눈물 흘린 이유는?
 
이번 방송에서 길은 고인이 된 복서 최요삼을 생각하다가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최요삼은 길에게 있어 복싱을 배우다가 만난 친한 형이라고 합니다. 길이 9년이나 복싱을  취미생활로 해왔던 터라 복싱계에 지인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길은 최요삼이 사비를 들여 복싱 시합에 나갈 정도로 어려운 여건이었지만 강한 의지로 챔피언에 오른 인물이라고 회고했습니다. 

최요삼이 챔피언 방어전에서 최종 라운드를 끝내고 링에 쓰러졌지만 열악한 경기장 환경으로 인해 응급치료와 병원 후송이 늦어져 죽음을 맞게 된 것이라고 길은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복싱에 애정이 많은 길에게 최요삼의 사망은 큰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길은 최요삼을 위해 자신이 추모곡 '챔피언'을 작곡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길은 눈물의 심경을 토로하며 "나는 힘들 때 곁에 있어줄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음악을 하는터라..."라고 끝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길이 이야기한 노래 챔피언은 리쌍의 5집 '백아절현'에 수록된 곡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2008년 1월 3일 조금만 더 버텨주길. 오늘만 지나면 괜찮아지길 바랬던 내 소중한 한 사람이 하늘로 떠났을 때 흐르는 눈물은 마치 변명같았지'라는 가사가 당시 최요삼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습니다.

최요삼은 뇌출혈인 원인인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뇌사 상태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요절했습니다. 최요삼 이전에도 김득구 선수가 원정 경기 중 상대방의 가격에 충격을 받아 뇌손상으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김득구 사망 사건은 당시 큰 충격을 주었으며 최요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최요삼은 사망한 후 본인의 평소 유지에 따라 장기 기증이 이루어져 6명의 생명을 살리는데 기여를 한 바 있습니다. 최요삼이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고 하늘나라로 떠난 셈입니다. 최요삼은 24전 23승 1패의 전적이 말해주듯 뛰어난 실력의 복서였고 한국 복싱사에 길이 남을 족적이 되었던 것입니다.
(더 보기는 김득구 사망 사건에 대해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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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최현미 선수를 위해 1천만원을 흔쾌히 후원한 것도 복싱에 대한 애정의 소산인 것 같았습니다. 이번 방송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권투를 하고있는 최현미를 돕고자 성의껏 종이에 후원금을 적기로 했는데 길은 마음따뜻한 유재석의 2천만원 후원금에 이어 두번째로 많은 금액을 썼습니다. 다른 멤버들이 1백만원에서 3백만원 사이인 점을 감안하면 길의 후원금은 엄청난 액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현미와 쓰바사 덴쿠는 감동의 주인공이었다

최현미는 탈북자인 새터민이었습니다. 최현미는
북한에서 감독의 눈에 띄여 길거리에서 캐스팅돼 권투선수의 길을 걸었다고 합니다. 최현미는 아버지가 준비한 계획에 따라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탈북해 아마추어 권투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탈북 직후 4개월간 방에 갇혀지냈던 시기가 힘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007년 프로복싱으로 전향 후 2번째 경기만에 중국 선수를 이기고 세계챔피언이 됐지만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그 눈물의 감격의 눈물일 수도 있지만 열악한 국내 권투 여건에 대한 눈물일 수도 있어 보였습니다. 최현미 선수는 '속상해요'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흥행도 안되고 후원도 없는 복싱의 현실을 대변했습니다. 최현미는 세계챔프이지만 2차 방어전 상대를 비롯한 준비가 필요했지만 1억원에 달하는 비용 문제로 쉽게 경기를 치르기도 힘들었습니다.

그 후 다행스럽게 무한도전의 도움으로 2차 방어전 선수가 정해졌는데 일본 선수 쓰바사 덴쿠였습니다. 과거 한일전 권투가 양국간 국가 대항전 성격이었듯이 좋은 환경에서 연습과 준비가 예상되는 일본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대반전이 전개됐습니다.

정형돈과 정준하가 사전 정보 탐색차 찾아간 일본의 쓰바사 선수는 최현미 보다 오히려 더 열악한 환경에서 권투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경기 모습을 끝내 보지못하고 운명을 달리 한 아버지를 위해 세계챔피언 벨트를 영전에 바치겠다는 쓰바사의 사연은 기구했습니다. 생계 유지라면 아르바이트를 하는 편이 낫다는 쓰바사는 오직 한가지 꿈을 향해 집념을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성숙한 쓰바사의 마음가짐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상대가 이기면 상대의 집념이 더 강했던 것이라고 말하며 좋은 시합을 위해 서로 열심히 준비해 대전하자는 쓰바사의 결연한 마음은 또 하나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승자와 패자로 갈리는 경기지만 승패와 관계없이 한국과 일본의 두 주인공이 탄생한 셈이었습니다. 무조건 한국 선수만을 응원해야 하는 한일전이 아름다운 승부로 대반전을 한 것입니다.

1등과 승자만을 기억하는 세태에 경종울린 무한도전

김태호PD의 천재성이 다시 한번 빛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직 승자와 1등만을 기억하는 비정한 승부의 세계와 요즘 세태에 경종을 울리는 무한도전의 반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쓰바사 덴쿠의 사연을 본 후로는 누구를 응원해야 할지 갑자기 멍해졌습니다. 물론 최현미를 응원하겠지만 쓰바사의 인생역정을 생각하면 어느 누가 승리해도 아름다운 감동의 승부로 남을 듯 했습니다.

                      최현미와 쓰바사 덴쿠는 모두 무한도전이 만든 감동의 승자들이었다

한국과 일본 선수가 운명적 만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선수는 경기를 앞두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체중감량과 스파링 연습을 소화해 내야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나 다름없어 보였습니다. 최현미의 경우 다른 여자 선수가 없어 전직 챔피언 출신의 남자 복서 이용훈이 스파링 상대 겸 코치가 되어 훈련을 도와주어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은 목마름과 탈진 직전의 상황을 철저히 혼자 이겨내야 했고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과 정신력이 관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승부의 날은 밝았습니다. 이미 녹화된 방송인지라 최현미는 지난해 11월에 쓰바사와의 2차방어전을 치른 상태입니다. 미처 예상치 못한 국경을 넘는 글로벌 무한도전의 미학이 펼쳐진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 무한도전은 운명적 대결을 보여줄 것입니다. 김미화의 남편이 스포츠과학과 교수로 있는 성균관대 체육관이 그 장소입니다. 이 날은 두 선수와 무한도전팀 그리고 관중들도 감동의 물결을 이룰 것이라 생각됩니다.

누가 이기든 모두가 승자가 되는 경기입니다. 최현미가 한국에서 유명해지겠지만 일본에서도 무한도전의 소식이 국경을 넘어 전해지면 쓰바사 또한 감동이 전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김태호PD와 무한도전이 만든 글로벌 프로젝트가 탄생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승자와 1등만을 기억하는 고정관념의 사람들에게 승자도 패자도 모두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켜 줄 것입니다. 무한도전이 훈훈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무한도전이 방송된 직후 다음 아고라 청원 게시판에는 최현미 선수를 후원하자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그 감동을 국민과 함께 실천으로 옮기자는 각오인 셈입니다. 아울러, 탈북자 복서라는 별명 대신에 여자복싱 세계챔피언 최현미라는 타이틀로 부르자는 제안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WBA 여자복싱 페더급 세계챔피언 최현미 선수 후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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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무한도전에서 탈북소녀 복서 최현미와 일본 여자 복싱 선수 쓰바사 덴쿠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됐습니다. 예전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 스포츠 종목은 권투였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향수를 갖고 무한도전에 몰입해 시청했습니다. 무려 9년 권투경력으로 복싱과 인연을 맺고있는 리쌍의 길이 세계챔피언 경기 후 사망한 최요삼 선수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번 무한도전은 비인기종목이 된 권투의 활성화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최현미는 우리나라 여자 권투 선수 중 유일한 세계 챔피언이었습니다. 최현미는 나이가 만 19세로 세계권투협회(WBA) 여자 페더급 세계챔피언을 차지한 이래 1차 방어전을 성공해 챔피언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인기종목인 복싱은 스폰서도 없고 관중도 없어 항상 어려운 환경 속에서 경기 준비와 챔피언전을 치러야 하는 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최현미가 2차 방어전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려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최현미의 사연은 개그우먼 김미화에 의해 무한도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최현미가 무한도전에 출연하게 된 배경은?

기존의 뉴스를 찾아보니 김미화가 최현미 선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김미화의 남편이 성균관대 교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김미화의  남편인 윤승호 교수는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데 최현미를 4년 특별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최현미가 쓰바사와 세계챔피언 경기에서 승리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미는 북한에서 김철주사범대학체육단에서 인정받은 권투 꿈나무였습니다. 방송에서는 키(170cm)가 커서 길거리 캐스팅됐다고 최현미는 밝혔습니다. 북한의 김철주사범대학체육단으로 뽑히면 대학과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현미의 아버지와 가족은 최현미가 재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탈북을 결행하여 2004년 남한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최현미의 권투에 입문한 사연과 탈북 이유는?

1990년생인 최현미는 아마추어 선수 시절에 17전 1패의 전적이 자랑하듯 권투 재능이 탁월했습니다. 2007년 프로 전향 후 최현미는 단 2번째 프로 경기만에 중국 선수를 이기고 WBC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차 방어전에 이어 2차 방어전을 무한도전이 지원키로 하면서 최현미는 화려한 비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현미의 2차 방어전 상대는 일본의 쓰바사 덴쿠였습니다. 무한도전의 정준하 정형돈이 만난 츠바사 덴쿠 선수도 사진에 비해 실물이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쓰바사 선수는 나이가 25세인데 화면 속에 비친 모습은 앳된 소녀 처럼 보였습니다.

무한도전팀과 만난 쓰바사 덴쿠의 사연도 감동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경기를 지켜보려 했던 아버지가 경기 이틀 전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자신의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츠바사는 경기 후 아버지 소식을 들었지만 이미 아버지는 사망했습니다. 쓰바사는 슬픔과 함께 눈물을 흘렸지만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꿋꿋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쓰바사의 이야기에 통역하던 사람도 울컥했습니다.

쓰바사 덴쿠와 일본 여자 복서들의 열악한 환경

쓰바사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권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연습시설은 미니 링 하나 경우 있을 정도로 초라했고 세계 여자 밴텀급 챔피언인 독특한 이름의 쓰나미 선수도 함께 그 곳에서 연습할 정도였습니다. 힘든 권투를 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꿈을 향한 집념이었습니다. 쓰바사는 한번도 딸의 경기를 못보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직장에서 자신을 자랑했다는 말을 나중에 듣고 영전에 챔피언 벨트를 바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성숙하고 긍정적 마인드로 포기할 수 없는 꿈을 향해 쿨하게 나아가는 쓰바사 덴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미 최현미와 쓰바사의 경기는 11월
21일 수원 성균관대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바 있습니다. 결과는 최현미 선수가 3대 0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으로 이겼습니다. 두 선수 모두 최선을 다한 경기였기에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로써 최현미는 4전 3승 1무의 전적으로 챔피언 벨트를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최현미가 2차 방어전 상대인 쓰바사 덴쿠와 경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날 경기에는 최현미를 지원하는 무한도전팀 이외에도 후견인 역할을 하는 김미화, 그리고 프로야구 선수 봉중근도 응원차 나섰습니다. 봉중근은 최현미 승리 후 축하 꽃다발로 격려했다고 합니다. 이 날 최현미의 2차방어전에서 무한도전팀의 활약은 기존에 알려진 소식을 바탕으로 간단히 소개합니다.

무한도전은 경기에 앞서 서울 수원 등지에서 홍보전에 나서 최현미와 쓰바사 경기 당일에 1500여명 관중이 몰리는 대성황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도 무한도전팀은 역할을 분담해 최현미를 응원했습니다. 노홍철은 응원단장, 경기 사회자는 정준하, 경기 현장 중계 캐스터는 유재석-박명수, 링세컨은 길-정형돈이 맡았습니다. 그리고 가수 원투, 케이윌, 바다,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 등이 공연 무대를 갖기도 했습니다.

                        최현미는 외신에서도 한국판 밀리언달러베이비로 소개된 바 있다

한편, 이번 방송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최현미를 후원하기 위해 각자 종이에 후원금을 적어내는 장면도 있었는데 유재석은 2천만원을 쾌척해 훈훈한 마음씨를 보였고 길(1천만원), 정준하(3백만원), 노홍철(200만원), 정형돈(100만원) 등을 즉석에서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박명수는 sorry라는 영어 단어로 구두쇠임을 입증했고(웃기려는 상황극인지 모르지만), 입대를 앞둔 시기였던 전진은 '살려주세요'라는 애교로 참여하지 못하는 심정을 대신했습니다.

한국판 밀리언달러베이비 최현미와 통일의 꽃

최현미는 인생 내내 탈북소녀 복서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닐 것입니다. 최현미는 그래서 통일이 꿈이라고 합니다. 최현미는 외모가 닮아 한국판 밀리언달러베이비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한도전 출연으로 최현미는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세계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쓰바사 덴쿠도 용기와 집념을 잃지말고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최현미가 체급을 올려 2체급 석권하면 쓰바사도 챔피언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최현미가 세계 여자 권투사에 획을 긋는 자신의 꿈을 계속 이루어가고 앞으로 새터민(탈북자 가족)을 대표해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이루는데 통일의 꽃으로 일익을 담당해 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특히 봅슬레이의 감동으로 비인기 스포츠 종목을 지원했던 무한도전이 여자 권투를 통해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한 것에 감사하며 지속적인 국민들의 관심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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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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