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여행'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7.18 무한도전 MT, 마지막 경춘선 기차여행 1박2일 비밀은? by 진리 탐구 탐진강 (32)
  2. 2010.04.04 KTX 기차 여행, 시간 보내기 좋은 3가지 방법 by 진리 탐구 탐진강 (25)
  3. 2009.07.19 여자친구가 맞선본다 했다, 어떡해야 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70)


무한도전에 서울에서 춘천가는 기차여행이 나왔습니다. 지난 1980년대 대학생활 MT를 추억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경춘선 기차입니다. 경춘선을 타고 가는 동안 나타나는 대성리역, 강촌역 등 인근 지역은 당시 대학생이 필수코스로 찾는 MT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경춘선 기차가 올해 말이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아시나요?
 
경춘선 복선화 계획에 따라 새로운 기차 노선과 새로운 역이 여행자를 맞이하게 된다고 합니다. 추억의 경춘선 시대는 막을 내리는 셈입니다. 사실 80년대 시절에는 의자가 기차의 벽에 붙어있는 비둘기호 기차가 달렸습니다. 기차 안에서 통기타를 치며 노래도 함께 부르고 쓰디쓴 소주 한 잔을 기울였던 과거의 추억을 간직한 채 경춘선은 마지막 작별의 날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무한도전 '시크릿 바캉스' 특집은 1박2일 MT를 떠나는 기분이 물씬 풍겼습니다. 무더운 여름, 작렬하는 태양을 피해 경춘선을 타고 남한강의 강물을 찾고 싶은 기차여행 이야기를 느끼게 했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을 위해 제작진이 5년만에 처음으로 공식 여름휴가 선물이라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경춘선 기차여행은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독창적 포맷이었습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무한도전 경춘선 기차여행 이야기

특히나 이번 특집은 시크릿이란 단어가 의미하듯이 무한도전 멤버들이 자기 마음대로 떠나는 바탕스였습니다. 출발 당일까지 제작진에게는 비밀에 부친 채 여행지 선택부터 숙식해결까지 모두가 무한도전 멤버들 자기들의 선택이었습니다. 여행 당일 오전에 주사위를 던져 목적지를 정하고 교통수단으로 선택된 기차 역시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정해졌습니다. 여행지로는 박명수의 전남 장흥이 처음 당첨됐는데 아쉽지만 거리상 이유로 다시 주사위를 던져 춘천으로 결정됐습니다.


시크릿 바캉스 여행은 처음 모일 때부터 지각방지 프로젝트로 '일찍와주길 바래'를 실시한 데 이어 무한도전 멤버들은 '형돈이 스타일'의 은갈치 양복을 입고 크로스백을 걸친 채 꺾어 신은 구두차림으로 나타나 웃음과 재미를 선사했습니다. 일명 정형돈 오렌지족 패션스타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정준하를 총무로 선출했고 멤버들은 물론 촬영 스태프들에게까지 회비를 걷어 야심찬 여행을 시도했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이 여의도 KBS 앞에서 7월 1일 처음 집결한 것도 그 날이 1박2일 나영석PD를 비롯 KBS 새노조의 파업이 시작된 날이라는 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무한도전이 1박2일과 KBS 파업을 지지한다는 응원메시지가 아닐까요.

기차여행의 백미, 먹을 것과 놀이 게임이 추억의 시절을 되살렸다

어쨌든, 무한도전 멤버들이 청량리역에서 출발해 춘천으로 가는 경춘선 기차 안에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장면들은 다시 대학시절 MT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멤버들의 게임과 놀이는 과거 단체로 기차여행을 하게 되면 거치는 통과의례였습니다. 지금은 기차에서 떠들썩한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기에 더욱 아련한 추억입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은 기차 한 칸을 통째로 빌렸기에 자유로운 연출이 가능했습니다.

멤버들의 게임은 스태프에게 열차 내 매점 카트의 간식을 쏘는 내기로 즐거움과 긴장감을 높여 주었습니다. 게임에 걸린 기부천사 박명수가 약 12만원 어치의 카트 간식을 졸지에 기부해야 했습니다. 신난 스태프들은 카트의 모든 간식과 상품을 싹쓸이했습니다. 이어 게임에 진 유재석은 무려 22만원 어치의 간식비를 부담해야 했습니다. 화끈하고 쿨하게 내기를 걸었고 그대로 실행한 것입니다.


과거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모습과 흡사하기도 했습니다. 기차는 수학여행은 물론 대학시절의 MT(멤버쉽 트레이닝) 여행 그리고 군대에 입대하는 입영열차의 훈련병들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누구나 기차여행의 추억이 있을텐데 사람들 마다 간직한 추억의 페이지를 열어준 셈입니다. 그리고 무한도전 멤버들은 피곤한 길을 속이는 몰래카메라(몰카)를 시도하기 위해 강경역과 강촌역에 단체로 내리기도 했습니다. 박명수의 신발을 숨기거나 잠이 든 사이 몰카가 동원됐는데, 학창시절 친구가 잠이 들면 온갖 장난을 치던 여행 장면이 불현듯 스쳤습니다.

대성리역에 이어 사라지는 경춘선, 80년대 MT의 낭만은 사라지는 것일까?

그러면 다시 젊은 시절 이야기입니다. 대학 MT 1번지로 각광받던 경기도 가평 대성리로 가는 길은 주로 기차가 이용됐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파란만장했던 젊은이들의 추억이 서려있는 대성리역이 헐리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957년부터 52년간 MT가는 대학생들이 통기타와 배낭을 멘 채 셀 수 없이 타고 내리던 역이었습니다. 서울 청량리 시계탑 밑에 모여서 대성리나 강촌으로 MT를 떠나던 대학시절의 기차여행이 이제는 추억담으로만 남게 된 것입니다. 

사실 대학 1학년 새내기 시절, 첫 MT는 설레임 그 자체였습니다. 무한도전 시크릿 바캉스가 그야말로 추억의 MT 현대판으로 다가온 이유입니다. 지금은 청량리역 광장의 시계탑도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지상 9층 대형 민자역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합니다. 당시 대학생들은 콩나물 시루같은 경춘선을 탔고 비록 느리게 달리는 완행열차지만 소중한 젊음의 추억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경춘선은 마석, 대성리, 가평, 강촌, 청평 등 역마다 청춘의 꿈과 사랑이 아로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런 경춘선이 올해 연말 경이면 완전히 사라지게 됩니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평균 시속 47km로 달려가는 경춘선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청량리역에서 춘천까지 겨우 82km 거리를 달리는데 무려 1시간54분이나 걸리는 기차가 이상할지도 모릅니다. 경춘선 기차가 유난히 느린 이유는 선로가 하나인 단선 구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선로를 통해 상행선과 하행선이 오가기 때문에 마주 오는 기차를 기다리는 역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탓입니다.

앞으로 경춘선 단선 철도 대신 복선 전철이 건설되면 2012년경 서울과 춘천의 거리는 40분 정도에 기차가 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이미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서울 강동구에서 춘천 외곽까지 단 40분 만에 자동차로 주파하는 세상이 와 있기도 합니다. 이제는 기차여행의 낭만을 즐기기에는 너무 짧은 거리가 되었습니다. 현대 문명이 발달하면 과거는 당연히 사라질 수 밖에 없지만 경춘선과 함께 소중한 추억과 낭만이 스러져 간다는 것은 씁쓸한 기운도 감돕니다.

젊은이들이 통기타를 치면서 함께 노래를 하고 놀이를 즐기는 대신에 혼자서 게임을 하거나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있는 모습으로 바뀔 것입니다. '광야에서'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님을 위한 행진곡' 등 젊은 시절의 낭만의 시크릿 MT 추억도 그렇게 가슴 속의 레일만 남기고 사라질 것입니다. 무한도전 바캉스 특집은 어쩌면 추억으로 가는 마지막 경춘선 기차여행일지도 모릅니다. 우리들 가슴 속에 남아있는 낭만과 열정의 젊음을 다시 한번 되새겨준 마지막 1박2일 시크릿. 그 비밀을 여러분은 알고 계신가요?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해 주시는 따뜻한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 탐진강의 트위터는 @tamjingang 이오니 팔로우를 통해서도 쉽게 글을 구독할 수 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학창 시절에는 기차를 주로 탔는데 요즘은 KTX를 더 많이 타게 됩니다. 아무래도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겠지요. 가끔 여행을 가거나 출장을 가게 되면 자동차나 고속버스 보다 KTX를 먼저 생각합니다. 아마도 학찰시절 기차여행의 추억이 그립기도 하고 교통체증 없이 제 시간에 도착이 가능한 이유도 작용합니다.

얼마 전, KTX를 타고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KTX 기차에서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이 됐습니다. 항상 새로운 시설을 이용하면 은폐엄호가 가능한 곳을 찾는 버릇이 있습니다. 군대에서 수색대 시절에 생긴 습관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곳에 수색을 나가면 주변의 지형지물을 세심하게 관찰 정찰하는 것이 습관적인 생활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우선 KTX 내부 구조를 한번 둘러 보았습니다.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비롯해 화장실, 승무원이 기차내 방송 위치 등까지 살펴봤습니다. 대부분 장소는 다 아는 시설이었는데 하나 특이한 곳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초고속 인터넷이 가능한 컴퓨터 시설이었습니다.


만일 KTX에서 휴대폰이 밧데리가 다 됐을 때 급속으로 충전할 수 있는 충전기가 있어 편리하다

이제 KTX내 시설에 대한 구조를 파악했으니 시간 때우기 모드로 전환합니다. 우선 시간보내기 첫번째 방법은 준비해간 책이나 잡지 신문 등을 읽는 것입니다.

책이나 신문잡지를 읽는다

가장 손쉬운 방법입니다. 평소 읽지못했던 책을 준비해 독서를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너무 두꺼운 소설책 보다는 쉽게 읽히는 단행본 책이 좋을 듯 합니다. 시집이나 단편 소설 등이 좋겠지요. 더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잡지나 신문 등도 읽을 것 둥 하나입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하는 것은 지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깐 휴식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KTX 간이 매점에서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샀습니다.

맥주 한캔의 여유를 즐긴다

기차에서 마시는 맥주의 맛도 일품입니다.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꽃을 도란도란 피우며 기차 밖 창밖 풍경도 감상하면서 맥주를 즐기는 여유도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습니다.


KTX에서 블로깅하는 색다른 묘미

사실 이번에 KTX에서 시간 보내기 방법으로 주로 사용한 것이 기차내 설치된 PC를 이용한 인터넷입니다. 블로그를 하다보니 잠깐 시간이 나면 블로깅을 하거나 다른 블로거 글을 읽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KTX내 초고속 인터넷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있다는 것을 본 순간 급격히 땡기더군요. 함께 여행한 사람이 잠이 들면 사실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데 기차에서 블로그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블로거에게 아주 유용한 시간입니다.



KTX에서 이용료는 30분에 1000원, 하루 무제한은 2000원이었습니다. 만일 왕복으로 이용하는 사용자에게는 하루 무제한이 아주 유용한 셈입니다. 그리고 노트북PC를 가져갔다면 무선인터넷을 이용해도 됩니다. 저는 노트북 밧데리가 별로 없어 KTX 인터넷을 이용해 블로그를 해봤는데 다소 느긴 감도 있지만 간단하게 사용하기에는 적당한 듯 싶었습니다.



만일 노트북PC가 필요한데 가져가지 않았다면 서울역에서 하루 5000원에 빌릴 수 있다고 합니다. 날로 변화하는 문명의 발전을 활용하는 지혜가 새로운 KTX 문화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실 기차에서 시간 때우기에는 과거 1980년대 대학 학창시절과 같이 기차 안에서 노래와 놀이를 즐기면서 보내던 때가 가장 낭만과 추억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기차에서 그렇게 놀다가는 주변의 눈총을 받아 기차에서 추방당해 내려야 할지 모릅니다. 지금도 완행열차의 추억을 간직한 분들 많겠지요.

KTX 기차 여행을 하시는 블로거 분들은 이미 인터넷을 하실 것 같기는 합니다. 혹시나 모르는 분이 있다면 기차여행의 새로운 묘미, KTX에서 인터넷 즐기기 삼매경도 좋은 방법이라는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주말에 산과 들은 사람들을 오라고 부르는 듯 합니다. 오늘은 저도 아이들을 비롯 가족들과 주말농장 텃밭에 나가 자연의 부름에 순응해야 할 듯 합니다.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해 주시는 따뜻한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남자와 여자의 연애나 결혼에 있어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친구의 약 20년전 이야기입니다. A군은 군복무를 제대한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A군은 머리를 식히고 싶었습니다. 잡자기 어디론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역으로 가서 야간 기차를 탔습니다. 좌석은 매진되어 입석표였습니다. 빈좌석에 무작정 앉았습니다. 기차 창밖으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A군이 앉아있던 좌석의 곁을 한 여자가 잠시 주춤하다가 지나갔습니다. A군은 좌석의 주인이 나타난 것은 아닌가 가슴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당돌한 직장 여자와 대학 복학생, 기차에서 만나다

조금 후 지나갔던 한 여자가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창밖을 보고있던 A군에게 여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자리 있어요?"  
"모...르겠는데요."

A군은 앉았던 자리 옆의 책가방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놨습니다. 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몇학년?"
"삼~ 삼학년"

"몇학번?
"팔육 학번"

"나랑 같은 학번이네. 난 B양이야. 우리 친구하자. 넌 이름이 뭐니?"

당돌한 B양이었습니다. A군은 B양이 당돌하고 신기했습니다. 처음에 무뚝뚝하던 A군은 B양의 나긋나긋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A군과 B군의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둘 다 기차 입석표를 샀는데 좌석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A군과 B양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B양은 기차가 대전역 부근에 도착하자 우표 5개를 핸드백에서 꺼냈습니다.
"난 여기서 이제 내려야 해. 넌 의무적으로 나에게 우표 5개 만큼 편지를 해야 해."
"알았어. 잘 가"



서울의 A군과 대전의 B양은 그 후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A군은 학보가 나오면 편지를 함께 넣어 보냈습니다. B양은 자주 편지를 학교로 보냈습니다. 직장인이었던 B양은 주말에는 A군이 공부하던 대학 도서관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B양은 식사를 사주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A군의 B양의 호의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자신이 B양에게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A군은 4학년이 되었습니다. B양은 서울에 올 때 마다 A군이 공부하던 도서관에 나타났습니다. B양은 A군에게 늘 용기를 주는 말을 했습니다. A군은 B양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 시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A군이 노리던 정부투자기관 입사에 실패했습니다. A군은 입사를 하면 B양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군은 취업에 실패하고 다른 기관에 도전해야 했습니다. A군은 B양에게 미안했습니다. B양은 A군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A군은 대학 졸업 후에도 백수였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던 정부투자기관 시험에 낙방 후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실시된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B양이 대전에 잠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B양은 직장을 그만 두고 유치원을 개업하기로 했는데 개업 준비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던 A군은 B양의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과 부잣집 딸의 슬픈 이야기의 결말은?

그런데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 위해 A군이 가보니 B양과 그녀의 남동생 그리고 친척 동생들이 와 있었습니다. A군은 쑥스러웠지만 열심히 일을 거들었습니다. 저녁에는 B양의 남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B양과 저녁에 데이트를 했습니다. B양은 말을 꺼냈습니다.
"나 내일 선본다."
"그래."

B양이 선본다는 말에 A군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아직 백수인지라 B양을 위해 뭐라 해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B양은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B양과 남동생에게 별도로 아파트를 얻어주었습니다. 그 날 밤 A군은 B양의 남동생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A군은 대전역으로 갔습니다. A군이 떠나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역 앞에서 B양은 다시 말했습니다.
"여기 근처에서 선보기로 되어 있어."
"그렇구나. 좋은 사람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A군과 B양은 역에서 헤어졌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A군은 자신의 초라한 처지가 슬펐습니다. 그래서 B양의 맞선을 단념시키지도 못했습니다. A군은 서울에 올라 와 모 대기업 입사시험을 봤습니다. 대기업은 가기싫었지만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그 후 대기업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려고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군에게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그 우편물은 B양의 결혼식 청첩장이었습니다. A군은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B양은 그 당시 선본 남자와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B양이 선본다고 했을때 붙잡지 못한 자신이 후회되었습니다. 아직 백수인 자신의 입장에서 B양에게는 불행할 수도 있어 B양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직하면 B양을 다시 만날 것이라 다짐했었던 것입니다.

A군은 곧바로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 마지막 날이 B양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결혼식 장소가 수원이었습니다. A군의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A군은 퇴소식 날 고민했습니다. A군의 연수원 버스는 수원역에 내려주었습니다. B양의 결혼식을 곧 앞두고 있었습니다. A군은 결국 B양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운명은 그렇게 A군과 B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A군과 B양은 왜 결혼할 수 없었을까?
남자는 직장을 먼저 구해 여자친구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선보다는 것이 단지 미팅 정도로만 다소 가볍게 잘못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맞선본다는 고백이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해달라는 마지막 요청이었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남자는 자존심 상 초라한 자신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맞선본다고 했을 때 붙잡았어야 했지만 남자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그러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일구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적극적이고 당돌한 모습에 다소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한 남자와의 결혼이 사랑이 먼저일 것이지만 결국 현실 앞에 나약해질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바라보는 맞선의 차이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