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15 탱크의 이동을 보며 스친 군사반란의 기억 by 진리 탐구 탐진강 (32)
  2. 2009.08.13 김대중의 노무현 추모사와 YS MB의 화해(?) by 진리 탐구 탐진강 (60)
  3. 2009.06.06 이정희 의원 VS 서청원 대표, 단식의 차이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5)


얼마 전에 경기도 양평을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줄지어 지나는 탱크들과 장갑차들을 봤습니다. 탱크와 장갑차가 서울로 향하는 모습처럼 느꺼졌습니다. 물론 서울로 향하는 것은 아니고 훈련 중일 것입니다.

탱크나 장갑차를 보면 1980년이 생각나곤 합니다. 전두환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시절입니다. 종로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던 시절이라 광화문 앞을 지나 통학하곤 했습니다. 당시는 청와대 인근에 장갑차들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어린 학생의 눈으로 본 장갑차와 군인들은 무서웠습니다. 일반 시민들에게 커다란 위압감을 주었습니다.

신군부가 1979년 12월 12일 군사반란, 즉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차근차근 군사독재 정권을 현실화했던 시기였습니다. 인권이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도 전두환 신군부를 무력 진압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국의 군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는 김영삼을 가택연금시키고 김대중에게는 사형을 구형했습니다. 민주주의가 군사독재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소위 '땡전 뉴스'를 들어야 했습니다. 방송사의 9시 뉴스는 "전두환 대통령은 ..."으로 시작되는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사람들은 눈과 귀가 있어도 올바른 소식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입이 있어도 군사독재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김대중은 나중에 미국의 도움(?)으로 사형을 면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1980년대는 군사독재의 탄압과 억압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씩 진실을 알게 되면서 사람들은 다시 군사독재와 항거를 시작했습니다. 목숨을 건 민주화 항쟁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많은 사람들이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구금되고 고문당하고 죽음에 이르기도 했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은 결국 다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절대 권력은 노리던 전두환은 권좌에서 물러나고 노태우 김영삼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김영삼은 기존 군사독재 세력과 손잡은 3당 합당으로 대통령의 길을 열었습니다. 김영삼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권력을 원했던 것입니다. 김영삼에 의해 정치에 입문한 노무현은 독재와의 야합을 반대하다 결국 야당의 가시밭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고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어렵게 민주주의가 꽃을 피워가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기존 독재의 유산을 물려받은 당의 인물들과 같은 패였습니다. 그리고 과거 20~30년 전의 행태들이 사람들을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독재의 도시의 망령들이 거리를 배회하고 있습니다. 광화문과 서울 광장은 전경들이 가득합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없습니다. 전경차들을 보면 1980년 광화문을 지키던 장갑차와 군인들이 스쳐지나갑니다.

노무현은 부엉이 바위 위에서 뛰어내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촌로는 그렇게 갔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던 삶은 이승을 떠났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모두가 소중하게 보듬고 가꾸어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김대중이 위독해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생사를 넘나드는 병환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갔습니다. 과거 민주화 세력도 병문안을 했습니다. 김대중에게 사형을 내렸던 전두환도 병문안을 갔습니다. 김대중은 대통령 시절에 전두환을 용서했습니다. 신앙의 힘이었다고 합니다. 용서와 화해란 당한 사람이 해주는 것입니다. 늘 DJ콤플렉스로 살며 김대중을 욕하던 김영삼은 병문안가서 화해했다고 합니다. 혼자 욕하고 혼자 화해한 셈입니다.

서울로 향하던 탱크와 장갑차를 보니 아련한 1980년 군사독재의 기억이 스쳐갔습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당시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 남아 있습니다. 광화문이나 서울 광장의 모습은 1980년과 닮아 있습니다. 관변 단체의 공간일 뿐입니다. 과거 1980년에도 군사독재 관변단체는 그렇게 했습니다. 2009년 8월 15일입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로부터 독립을 했습니다. 해방된지 64주년 광복절입니다. 해방된 나라에 살지만 아직도 일제의 그늘이 느껴지는 음산한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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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독한 병환으로 여야 정치인들의 병문안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아무리 극한 대결을 하더라도 인간적인 도리와 예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헛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 악담을 쏟아붇던 정치인들이 갑지기 180도 바뀌어 화해의 손짓을 내미는 것이 개운치 않기도 합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 동안 평생 민주화 동지라고 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해 비수같은 극언을 해왔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혼자서 화해했다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서로 노력해 온 양김씨가 화해를 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김영삼의 화해는 일방적 화해였습니다. '네가 너에게 욕한 것 나는 괜찮아' 식이었습니다. 스스로 반성과 화해를 한 것이라면 김영삼의 공개적 메시지는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민주화 동지라는 사람이 왜 그토록 저주를 퍼부었을까요? 혹자는 김영삼이 김대중에게 갖고 있는 열등감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에 대한 김영삼의 DJ 콜플렉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를 넘는 김영삼의 DJ에 대한 비난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입니다. 만일 그런 이유라면 축하는 못해줄 망정 비난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병문안을 갔습니다. 나라의 대통령이 국가 원로인 김대중을 위해 병문안을 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시 추모사도 못하게 했던 일입니다. 고인의 가족들이 원하던 추모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현 정부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적인 예의도 없는 현 정부의 비정함을 보여준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MB는 이번에 병문안을 하면서 민주화의 상징인 DJ를 치켜세워주었습니다. 환자 앞에서 쾌유를 빌고 덕담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그렇지만 평소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기에 MB의 태도는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평소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을 가져야 그 사람의 진정성을 믿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MB의 행동과 말은 아쉬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DJ의 병환으로 모처럼 여야 정치인들이 일부 해빙의 무드를 열고 있습니다. 특히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로 불리던 DJ와 YS 정치인들이 서로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과거를 다시 되새기며 화해를 하기도 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정성을 기대해 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YS와 MB가 소인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병문안을 하면서 정치인들 모두가 말했던 그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넘실대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쾌유를 빕니다. 아울러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영결식에서 추모사를 못했지만 그 추모사를 대신해 올려봅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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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모 지하철 무가지를 보니 친박연대의 광고가 실려 있었습니다. "잔인한 정치보복, 친박연대만 당했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해 다른 정당을 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라는 제목의 광고였습니다.

친박연대의 광고에서는 '서청원 대표가 2007년 대통령 경선 때 이명박 후보의 도곡동 땅 의혹을 제기한 데 따른 정치보복이다' '촛불재판에 개입한 신영철 대법관이 서청원 대표 상고심의 재판장에 선임된 것은 사법살인 증거이다' '정치검찰과 일부 언론이 합작한 정치살인이다' 등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최근 친박연대는 상당히 억울한 심정으로 감정을 토하는 듯 합니다. 친박연대의 서청원 대표를 비롯한 3명의 의원이 동시에 의원직 박탈은 물론 구속 수감된 상태이니 고통스러운 상황일 것입니다. 그러나 친박연대의 호소에 언론에서는 그다지 귀기울여주지 않는 편입니다. 그래서 친박연대의 광고는 울분과 분노의 감정도 묻어나는 듯 합니다.  

친박연대의 광고 '진인한 정치보복, 친박연대만 당했습니다."

서청원 대표는 옥중에서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고 합니다. 친박연대의 당사에서는 일부 당직자들도 단식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비례대표 공천 대가로 특별당비를 받은 혐의로 수감 중인 서청원 대표는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와 대법원 판결이 "명백한 정치 탄압과 잔인한 정치 보복의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신과 친박연대의 결백을 주장하는 단식인 셈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창당의 근간인 박근혜는 어떤 반응도 보여주지 않고 있습니다. 조문 정국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한 것과 상통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또 다른 단식의 현장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이 4일부터 대한문 앞에서 민주주의 자유 회복과 이명박 대통령의 강압통치 사과를 요구하는 단식농성에 돌입했습니다. 여성 의원이 6월의 폭염 속 길거리에서 단식 농성을 한다는 것은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그 만큼 현재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위태롭다는 반증일 수 있습니다.
 
이정희 의원은 모 언론 인터뷰에서 "들끓는 민심에도 귀를 막고 시민을 범죄자로 대하고 일체의 반성도 사과도 없는 현 정부의 독선에 숨이 막힌다"고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위기, 서민경제의 위기, 남북관계의 위기 등에도 불구하고 MB악법을 들먹이는 작태에 대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정희 의원의 대한문 앞 단식 현장에 민주당 천정배 의원이 방문했다(사진 청지기님)

친박연대 서청원 대표의 단식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의 단식은 이명박 정부의 강압통치에 대한 반대라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다른 점도 많습니다. 서청원 대표가 자신의 결백과 정치보복의 희생양인 점을 호소한 반면 이정희 의원은 민주주의의 기본권과 자유가 압살되고 있는 강압통치 자체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정치적 지향점도 다르고 현실적으로 처한 상황 인식이 다르기 때문으로 이해하는 선에서 세부 분석은 하지 않겠습니다.

단식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의 주장을 알리는 가장 강력한 수단 중 하나일 수 있습니다. 식음을 전폐하고 여러 날 단식을 계속 할 경우 목숨도 위태로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단식은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커다란 분수령을 이룬 사건들도 종종 등장하곤 했습니다. 1980년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무기한 단식을 감행한 김영삼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은 독재 세력과 3당 합당의 야합으로 민주화에 오명을 남겼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단식이 등장하던 시절은 항상 민주주의가 위협받던 시기였습니다. 올해 6월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듯이 민주주의 위기라고 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단식을 해야하는 시대가 다시 반복된다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습니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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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