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춘추'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0.10 선덕여왕과 클레오파트라, 세계의 여왕들 누가 있었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31)
  2. 2009.09.19 누나들의 로망 이승기 vs 유승호 누굴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70)
  3. 2009.09.15 선덕여왕 최종병기 김춘추, 유승호가 떴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77)


대하사극 '선덕여왕'의 인기는 우리들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준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평소 우리가 몰랐던 우리나라 역사 속 인물들과 당시의 문화에 대해 이해하는데 공부가  되는 셈입니다. 특히 학생들에게 TV를 통해 쉽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인 교육 방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드라마 구성이다보니 다소 허구의 사실도 있을 수 있어 정확한 사실은 바로잡는 노력도 필요해 보이기는 합니다.

덕만공주(이요원 분)가 향후 신라의 왕위를 이을 부마를 추천하는 어전회의에서 혼인을 하지않고 스스로 부군(왕자 아닌 후계자)이 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김춘추, 비담 등 인물은 여자가 왕이 되겠다는 것에 황당하고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주로 보였습니다.

"그게 되는 일이야?"(김춘추, 유승호 분)
"동서고금에 여자가 왕이 된 적은 없었지."(비담, 김남길 분)
"이런 일은 고구려·백제에도 없었던 일이야!"(하종, 김정현 분)
"서역(중국 서쪽의 지역)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지. 그런데 그 나라는 곧 망했어!"(염종, 엄효섭 분)
"천하 만민이 어찌 이런 일을 이해할 것인가?"(미생, 정웅인 분)
 
실제로 그 당시에 덕만공주가 여왕에 등극하는 것에 대해 반발이 얼마나 심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실제 여왕에 반기를 들고 칠숙이나 비담이 반란을 일으키는 일도 발생해 반대도 만만치 않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성골인 덕만공주가 여왕이 되는 것이 왕위계승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정통성을 갖고 있어 일부의 반발은 있었을 수 있지만 표면적으로는 절대 권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7세기는 한-중-일 동양 3국의 여왕시대였다

사실 신라의 덕만공주가 여왕에 즉위하기 이전에 일본(왜국)에는 이미 여왕이 등장한 적이 있었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염종이 서역에서만 있었던 것 처럼 묘사되었지만 신라에서 바로 이웃 국가인 일본에 추고여왕(스이코 여왕)이 먼저 탄생했던 것입니다. 덕만이 후계자로 나서기 직전의 일입니다. 일본의 추고여왕은 592년에 즉위하여 628년까지 무려 36년이나 왕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선덕여왕이 즉위한 것은 632년이니 단지 4년전에 추고여왕 시대가 존재한 것입니다. 드라마에서는 일본의 여왕 언급을 일부러 빼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쨌든 신라는 당연히 일본의 여왕 존재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 중국의 당나라도 왕래할 정도였으니 일본의 왜나라와 교류가 있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덕만공주가 여왕이 되겠다는 선언은 이미 일본이나 서역 등의 사례도 있었기에 새삼 천지개벽할 일은 아닐 수 있는 것입니다. 

선덕여왕은 우니라라 뿐만 아니라 세계사적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선덕여왕은 신라 중기 632년부터 647년까지 15년 동안 재임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여왕입니다. 선덕여왕은 권력 찬탈에 의한 것이 아닌 정통 왕위계승 절차에 의한 여왕이기도 합니다. 또한, 다른 권력에 의해 세워진 허수아비도 아닌 자주적 권력을 가진 여왕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 서역의 여왕은 클레오파트라 7세를 의미할 것입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이집트의 허수아비 여왕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선덕여왕과 클레오파트라는 어떻게 달랐나?

여기서 선덕여왕과 클레오파트라를 비교해 볼까요. 선덕여왕은 남자들을 다스렸고 클레오파트라는 남자들의 힘에 의존한 측면에서 약간 차이가 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은 김춘추와 김유신을 비롯한 당대의 영웅들이 자신에게 충성했지만, 클레오파트라는 당시의 시저(카이사르), 안토니우스 등 영웅들과 결혼해 그들의 권력에 기반한 허수아비 신세였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미모가 로마 영웅들을 끌어들이는 외교적 묘책이었던 것입니다.


클레오파트라 7세는 기원전 51년부터 30년까지 즉위했습니다. 병약했던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와 결혼하여 이집트를 공동으로 다스리다가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중간에 왕위에서 쫓겨나기도 했지만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도와주어 다시 복위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권력욕은 컸던 모양인지 프톨레마이오스 13세가 죽자 다시 프톨레마이오스 14세와 재혼하여 계속 권력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클레오파트라는 권력 계승과정의 정통성도 부족했고 권력도 로마 영웅들의 힘과 결혼에 의해 유지하는 불완전했습니다. 결국 옥타비아누스와 연합에 실패한 클레오파트라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서역의 여왕인 클레오파트라 이전에도 이집트에는 여왕이 있었습니다. 역사상 세계 최초의 여왕은 이집트의 여왕 하트셉수트입니다. 하트셉수트는 기원전 1503년부터 1482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3400년전 기원전 16세기에 이미 이집트에 여왕이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하트셉수트는 이집트의 파라오(고대 이집트의 왕)가 되었습니다. 하트셉수트도 정통 왕위계승은 아니었고 섭정으로 왕권 권력을 장악해 스스로 파라오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하트셉수트는 남장여자 세계최초의 여왕이었다

특이한 것은 남자만 파라오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남자 옷을 입고 인조수염을 달고 파라오 역할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남장 여자의 왕이었던 셈입니다. 하트셉수트에 왕권의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에 사후 자신의 의붓아들이자 사위인 투트모스 3세에 의해 자신의 업적인 건축물과 벽화들이 파괴당하고 역사 기록에도 지워진 바 있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와 같이 하트셉수트도 정통성 문제로 인해 불행한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은 선덕여왕과 어떻게 다를까요? 동양 최초의 여왕은 앞서 언급한 스이코여왕입니다. 스이코가 여왕으로 즉위하게 된 것은 당시 권력자인 소가씨가 스이코를 옹립했기 때문입니다. 스이코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습니다. 실제 실권은 소가씨와 쇼토쿠태자가 주로 행사했던 것입니다. 스이코가 일본 최초의 여왕이자 동양 최초의 여왕이라는 역사적 의미는 있지만 한계가 분명했던 셈입니다.

한편으로 스이코 여왕의 탄생은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 최초의 여왕을 잉태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덕여왕의 탄생이 스이코 여왕 이후에 있었고 그 다음으로 중국에 측천무후가 탄생하기도 합니다. 모두 7세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7세기는 한국 일본 중국에 여왕의 전성시대라고 할 만 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여자로서 여왕 황제가 된 것은 측천무후가 유일합니다. 당나라의 측천무후는 690년부터 705년까지 재위했습니다. 측천무후는 태종의 후궁이었다가 고종의 총애를 얻어 고종의 황후인 왕씨를 몰아내고 655년에 스스로 고종의 황후가 되었습니다. 측천무후는 고종의 병환을 구실로 권력을 장악한 후 고종이 죽자 아들인 중종과 예종을 마음대로 즉위시키기도 했습니다. 측천무후는 결국 690년에 나라 이름을 주(周)라 칭하고 스스로 황제에 등극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장간지가 난을 일으켜 중종을 복위시키고 당나라를 부흥시키며 측천무후는 병사했습니다. 측천무후도 정통성있는 권력이 아니었기에 역사적으로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중일 동양 3국의 여왕시대는 7세기가 가장 활발했지만 897년 신라의 진성여왕을 마지막으로 쇠퇴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여왕은 선덕여왕에 이어 진덕여왕이 있었고 진성여왕에 이르기까지 신라시대 3명이 전부였습니다. 불교가 융성한 시기에는 여왕의 존재가 있었지만 남성 중심의 유교가 번성하면서 여왕의 등장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신라에는 정통성을 가진 여왕이 여럿 탄생했다는데 의미가 큽니다. 신라는 동양에서 가장 정통성있는 여왕을 탄생시켰고 권력을 장악했으며 신라의 융성시대를 열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예카테리나 대제의 30년 철권통치

서양에서도 남성 중심의 기독교가 번창하면서 여왕의 존재는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로마 기독교에서 독립한 영국국교 성공회가 등장하면서 영국에 유럽최초의 여왕인 메리 1세가 1553년에 처음 탄생한 바 있습니다. 헨리8세와 캐서린 왕비의 딸이 메리 1세였습니다. 메리 1세가 죽은 후 헨리 8세와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딸이자 메리 1세의 이복누이인 엘리자베스 1세가 1558년 즉위했습니다. 엘리자자베스 1세는 유럽의 두 번째 여왕으로 정통성있는 왕위 계승을 하여 영국 발전을 이었습니다. 영국은 이후에도 빅토리아 여왕, 여왕 엘리자베스 2세 등이 탄생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여왕이 성공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영국에 이어 러시아 네덜란드 덴마크 등 여타 유럽 국가에서도 여왕들이 탄생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 예카테리나 1세는 1725년 즉위했으나 2년에 불과한 단명의 꼭둑각시 재위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2세는 1762년부터 1796년까지 장기 집권한 여왕이었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 여왕은 남편 표트로 3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철권통치의 예카테리나 2세는 대제라는 칭호를 들을 정도였습니다. 그 후 옐리자베타 여왕이 있었습니다. 그 후 유럽에는 1980년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이 등장했고 1972년 덴마크의 마르그리테 2세가 탄생했습니다. 여왕 칭호를 받고 있지만 실상은 권력이 없는 명예와 상징적 존재에 불과합니다.

선덕여왕은 세계사 역사에서도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스이코 여왕 중국의 여왕 측천무후,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그리고 서양의 여왕을 비교할 때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고 왕정을 안정화시켜 나라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절대 권력을 남용하지도 않았고 정통성도 부여받아 후세의 왕들이 치적을 남길 수 있는 기반도 마련했습니다. 7세기 동양에서 여왕시대를 이끈 대표적 인물이 선덕여왕인 셈입니다.

우리는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과소평가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에 와서 보면 아쉬운 측면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여왕의 역사나 자신의 역사를 과장해 위대한 시대로 묘사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도 우리의 역사에 대해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킬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서양사 위주의 역사에 함몰되어 우리나라의 역사를 과소평가할 이유는 없습니다.

분명 우리나라 역사와 세계 역사에서 선덕여왕의 존재를 재발견한 것은 드라마 선덕여왕의 의미가 큽니다. 이제는 선덕여왕의 재발견이 보다 발전적인 측면에서 재조명하고 세계 역사에서 한국의 여왕이 위대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를 만드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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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유승호가 선덕여왕에 김춘추 역으로 등장하면서 누나들의 반응이 뜨겁습니다. 유승호에 대한 기대와 열광에는 30~40대 여성들도 많다고 합니다. 유승호에게 누나, 이모, 아줌마들의 관심이 상당히 많다는 것입니다. 국민 남동생이란 칭호에 걸맞게 유승호 신드롬이라 할 만 합니다.

이는 현재 최고의 주가를 날리고 있는 이승기와 유사한 측면이 많습니다. 이승기는 '내 여자라니까'라는 노래로 단번에 누나들의 로망으로 떠올랐습니다. 호소력있는 목소리로 꽃미남 이승기가 노래를 하면 누나들은 설레임에 젖어들곤 했습니다. 이승기는 예능프로그램 <1박 2일>과 푀고의 인기 드라마<찬란한 유산>을 통해 더욱 친근감있는 국민 남동생의 면모를 공고히 했습니다.

그런데, 독주하던 이승기에게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바로 유승호입니다. 유승호는 사극 <선덕여왕>에 출연한다는 소식에서부터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최근 유승호가 선덕여왕에 처음 등장하자 누나부대들의 영광적 성원이 이어졌습니다.



이승기가 여전히 누나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가운데 강력한 다크호스로 유승호가 부상한 셈입니다. 사실 유승호는 2002년 <집으로>란 영화에서 가난한 시골마을에 할머니와 함께 사는 10살 어린이 역으로 처음 나온 아역배우 출신입니다. 영화 '집으로'에서 주목받았던 유승호가 17세 미소년으로 다시 나타나 큰 기대감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왜 누나들은 이승기와 유승호에 열광을 보낼까?


우선 이승기와 유승호는 누나들이 보호해주어야 할 남동생과 같은 이미지입니다. 이승기가 '내 여자라니까'를 부르던 모습은 누나들에게는 자기에 호소하는 목소리로 들렸을 것입니다. 누나로서 감싸주고 보살펴 주어야 할 대상으로 감정이입이 되었던 셈입니다. 이승기는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착하고 앳된 이미지를 여전히 고수하고 있습니다. 예능 버라이어티 <1박 2일>에서도 막내 남동생과 같은 모습을 유지하면서 누나들의 사랑을 받고 있고 <찬란한 유산>에서도 우수에 젖은 표정 연기로 여성들의 관심을 받았습니다.

유승호는 <집으로>에 첫 등장한 아역 배우에서 점차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단순히 귀여운 남동생 꼬마였던 유승호가 <태왕사신기> 등의 아역을 통해 누나들의 관심을 붙잡아 두었습니다. 그러다 유승호가 <선덕여왕>에서 성인 배역으로 돌아오자 기대감이 폭발하는 듯 합니다. 그러한 기대감은 누나들은 물론 이모부대 아줌마 부대까지 폭넓게 형성되고 있습니다.

연상녀 연하남 커플의 일반화 효과일까?
 
누나들이 연하남에 환호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런 현상으로 자리매김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과거에는 연상녀를 사귀는 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거부감이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연상녀 연하남 커플도 떳떳하고 당당하게 교제하는 시대입니다. 연하남이 나이 많은 연상녀에게 느끼는 푸근하고 애틋한 감정을 적극 표현하고 누나들도 거부감없이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쁜 꽃미남의 인기도 한 몫하는 듯 합니다. <꽃보다 남자>에서의 꽃미남 신드롬과 같이 여성들이 선호하는 남자의 패턴이 달라진 셈입니다. 과거 듬직하고 강인한 남성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최근에는 남자도 예쁘고 사랑스런 이미지가 뜨는 것 같습니다. 여성들의 사회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여자가 남자를 리드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남자가 전업 주부로 살림을 하고 여자가 밖에서 돈을 버는 가정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역전되는 현상입니다. 이런 시대적 조류는 이승기와 유승호의 입지를 넓히게 한 계기가 된 듯 합니다.



이승기와 유승호의 대결, 누가 승자가 될까?

이승기의 독주 무대나 다름없었던 누나들의 사랑은 유승호의 등장으로 다소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기존 국민 남동생의 이미지는 이승기에 이어 장근석이 일부 나눠가지는 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승호는 <선덕여왕>에 나오기 이전부터 기대심리가 컸고 첫 방송 출연에는 열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단숨에 이승기를 위협하는 대항마가 된 셈입니다.

이승기와 유승호의 본격적인 누님팬 대결이 어떻게 될지 속단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승기는 나이 어린 팬들부터 아줌마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여성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유승호는 이제 막 각광을 받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탄탄한 팬층을 확보하고 있고 <1박 2일>을 통해 대중성과 친근감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이승기가 아직은 다소 유리해 보입니다. 최근 이승기는 '우리 헤어지자' 라는 4집 신곡으로 인기몰이에 나서 장점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승기는 착하고 공부잘하고 돈잘버는 엄친아로서 아줌마들이 갖고 싶은 아들 스타일이라는 강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유승호가 최근 최고의 시청률을 보이고 있는 <선덕여왕>에서 호감가는 연기력을 펼친다면 무서운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현재 선덕여왕은 모든 연령대로부터 폭넓은 인기를 끌고 있어 유승호가 이승기 만큼의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뜨는 유승호, 지는 이승기의 구도로 대변혁이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유승호가 이승기를 압도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직은 나이가 17세에 불과해 한계가 존재해 청년 유승호로 누나들이 인정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누나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던 절대군주 이승기에게는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난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리고 유승호는 앞으로도 계속 발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승기와 유승호를 두고 누나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해 집니다. 그것은 유승호가 <선덕여왕>에서 어떤 연기를 펼치느냐에 따라 상당히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앞으로 훈남 '이승기와 유승호'의 선의의 대결도 흥미진진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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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요즘 MBC 사극 <선덕여왕>은 장안의 화제입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 참여하려면 선덕여왕은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 아내와 함께 자주 보게 됐습니다. 늦은 저녁 시간에 방송되는 사극 드라마임에도 불구하고 일일시청률이 무려 40%를 넘고 있으니 그 파급력이 대단할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월요일과 화요일은 직장인들의 저녁 술자리도 줄면서 퇴근도 빨라지는 것 같습니다. 하나의 사극이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바꾸고 있는 셈입니다.  

사극 <선덕여왕>이 이번에는 마지막 비밀병기를 선보입니다. 바로 유승호입니다. 김춘추 역할로 등장하는 유승호에 대한 기대감과 관심이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이를 반영하듯이 <선덕여왕> 제작진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김춘추 유승호 대공개' '첫 촬영현장에서 춘추 유승호' '피부미남을 꿈꾸는 춘추' 등의 제목으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더 자극하기도 했습니다.

훈남 유승호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작가들도 극찬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언제 유승호가 등장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던 것입니다. 이제 유승호가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과연 유승호가 <선덕여왕>이 일으킨 바람을 태풍으로 바꿀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유승호의 등장, 작가들은 영리했다

사실 사극은 MBC가 강한 편입니다. '대장금' '이산' '허준' 등 성공적인 작품이 모두 MBC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MBC는 <선덕여왕>에 상당한 공을 들인 것 같습니다. 작가들의 구성능력도 탁월한 감각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선덕여왕>을 보고 있노라면, 매회마다 점점 흥미를 끌게 하는 흥행요소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번 보게되면 다음 편을 안볼 수 없는 중독성과 마력이 있습니다.

작가들은 아주 영리하게 대본을 만들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마의 시청률 50% 돌파를 꿈꾸는 MBC는 최종 비밀병기로 유승호를 아껴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금씩 유승호의 출연 사실을 조금씩 흘리면서 관심을 유도하다가 중요한 시점에 유승호를 투입시키는 제작진의 절묘한 감각과 센스가 돋보입니다. 게다가 유승호가 첫 출연하는 34회 방송분에 시청자가 참여할 수 있는 이벤트까지 기획하는 치밀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승호의 등장에 따라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선덕여왕>다운 이벤트를 만든 것입니다. 유승호가 처음 출연하는 <선덕여왕> 34회의 시청률을 맞히는 퀴즈입니다. TNS 일일시청률 수도권 기준으로 최고 근접자를 당첨자로 뽑는다고 합니다. 시청률을 맞힌 1명에게는 imbc 콘텐츠카드를 선물로 제공합니다. 이벤트에 참여할 분은 시청률퀴즈(링크 클릭)로 가면 됩니다.

유승호도 <선덕여왕> 홈페이지를 통한 촬영 소감에서 "안녕하세요. 김춘추 유승호입니다. 첫 촬영치고 많이 떨렸는데 앞서 출연하신 선배님들이 많이 도와주고, 스태프도 잘해주고, 감독님이 설명을 잘해주셔서 어렵지 않게 잘 하고 있습니다. 사극을 안 한지 오래돼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현장에서 실수하지는 않을까 평소보다 더 많이 연습을 했습니다. 그 만큼 현장에 실수없이 잘 했던 것 같습니다"라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로써 <선덕여왕>은 흥행을 위한 최고의 캐스팅이 완비된 셈입니다.

덕만과 미실의 최후 진검승부, 시작됐다 

김춘추(유승호 분)의 등장은 덕만공주(이요원 분)와 미실(고현정 분)이 진정한 진검승부가 도래했다는 것을 예상하게 합니다. 복잡한 갈등 구조는 덕만과 미실이 최후의 결전을 앞두고 최고조로 달아오르고 있습니다. 그 승부는 누가 영웅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느냐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현재로는 덕만도 미실도 완전한 우위에 있지는 않습니다. 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덕만과 미실의 지략 대결이 궁금해집니다.


사극 <선덕여왕> 소개 포스터를 보면 '사람을 얻는 자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된다'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덕만과 미실이 김춘추와 비담(김남길 분)을 두고 쟁탈전이 치열하게 전개될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김춘추와 비담을 얻는다면 그가 천하를 얻고, 시대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입니다. 누가 어떻게 사람을 얻게 되는지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김춘추와 비담이 태풍의 핵이다

<선덕여왕>이 시청률 50% 돌파를 향해 나아가는데 있어 태풍의 핵은 김춘추와 비담이 될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은 극 중에서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가장 자극하고 있습니다. 연기자 유승호와 김남길은 갈등이 깊어지고 복잡해질 수록 그들은 주가가 더욱 급등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덕만이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대강의 결과를 예측할 수는 있습니다. 역사 속의 김춘추는 덕만 편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그리 단순하게 전개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미 복선을 통해 김춘추는 덕만과의 갈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김춘추의 어머니인 천명공주의 죽음은 덕만과 관련이 있습니다. 미실이 이를 적극 악용할 개연성이 큽니다.

김춘추 역의 유승호 등장은 덕만과 미실의 대결 구도에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비담도 마찬가지로 큰 변화의 축에 있습니다. 비담은 자신이 진지왕과 미실 사이에 태어난 왕자 형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왕위계승 후보인 셈입니다. 김춘추가 천명공주의 아들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왕위계승 후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김춘추와 비담은 왕위계승 후보 1순위로서 치열한 갈등구조의 핵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덕만은 어떻게 금녀의 벽을 넘어 최초의 여왕 탄생 구도를 만들어 갈지도 주목됩니다.

한편으로 실제 역사에서는 덕만공주가 천명공주의 언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어 드라마는 드라마로 이해하고 봐야 할 듯 합니다. 극적 효과를 고려해 극중 인물이 역사와 다르게 변화를 준 부분들이 상당히 존재합니다. 아무튼 <선덕여왕>은 복잡다난한 극적 전개가 예상되면서 흥미진진해지고 있습니다.

화랑 최고수 풍월주의 최종 승자는?

또한 흥미를 끄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 <선덕여왕>에서는 화랑의 최고수인 풍월주를 뽑는 비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이미 지혜 테스트를 통과한 화랑들 32명이 최종 무술실력 대결을 통해 최강자가 가려지게 됐습니다. 덕만과 미실의 남자들이 최후의 결전을 펼치는 셈입니다.


우선 32강전으로 펼쳐지는 비재는 토너먼트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최종 4강에는 유신랑과 보종랑 알천랑 그리고 와일드카드로 비담이 올라옵니다. 사실 비담은 스승인 문노를 뿌리치고 최고 화랑을 뽑는 무술 비재 대결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비담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본격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

연기자들도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힘들었다는 결투는 시청자들에게 또 하나의 재미를 선사할 것으로 보입니다. 비담과 유신랑을 비롯해 4명 모두 만만치 않은 무술실력을 갖추고 있어 승부는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번 무술비재의 최후의 승자는 과연 누가 될 것인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최종 비밀병기 유승호의 등장으로 긴장과 갈등이 최고조로 올라간 <선덕여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드라마도 최후의 결전과 결투가 전개되듯이 MBC 제작진도 최후의 카드를 던졌습니다. 유승호 카드가 마의 시청률 50%를 넘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시청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역사 속의 김춘추는?

김춘추는 백제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의 토대를 마련한 신라 제29대 무열왕입니다. 김춘추는 진지왕의 손자로 이찬 용춘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천명공주로 진평왕의 둘째 딸입니다. 김춘추는 선덕여왕과 진덕여왕을 보필하여 이찬의 관직에 이르렀습니다.

선덕여왕 11년(서기 642년) 대야성이 백제에게 함락되면서 사위와 딸이 죽자 김춘추는 백제에 원한을 갚기 위해 고구려와 당나라를 상대로 친선동맹 외교활동을 펼쳤습니다. 고구려와는 외교협상이 결렬되고 위기에 처했으나 탈출해 당나라 당태종과 협상에서 군사동맹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김춘추는 진덕여왕이 사망(654년)하자 진골 신분으로 군신들의 추대를 받아 제29대 왕이 됐습니다. 그 후 친당정책을 강화했고 660년 당나라에서 13만명의 군사 지원을 했습니다. 김춘추는 5만명의 친위대를 이끌고 나당연합군을 형성해 백제를 함락시켰습니다. 고구려 정복은 그 다음 문무왕이 완성해 삼국통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최초의 삼국통일이지만 외세를 끌어들여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를 당나라에 넘겼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역사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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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