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서'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1.16 20년전 군대, 말년 병장 죽이는 낙서 놀이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2. 2010.01.08 사랑의 낚서, 눈 세상에 쓰는 남녀의 심리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44)
  3. 2009.07.02 자동차에 낙서한 초딩 딸의 1년간 반성은? by 진리 탐구 탐진강 (64)


"천하무적 짱가도 내 앞에선 고철"

태권V가 짱가를 마구 때리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태권V와 짱가의 모습을 실제 그림으로 그려 실감나게 낚서를 한 장면이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덧붙여 '임자 만날 날 있을 걸.'이란 의미심장한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하겠지요? 제가 20년전 군대를 제대할 무렵에 후배나 동료 전우들이 회상록에 그린 낙서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상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군대 회상록을 들추어보다가 전우들의 낙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에서 짱가는 저의 군대시절 별명입니다. 당시 힘좋고 기술좋은 작업반장이었던 저를 전우들은 '짱가'라고 불렀습니다. 짱가는 그 시절 사람들이 좋아했던 로보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런 짱가를 힘으로 눌러주고 싶던 후배 전우가 로보트 태권V 주인공을 그려 우스꽝스런 만화를 그린 것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 (야!)'로 시작되는 노래인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곡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단번에 알 것 같습니다.

                                지난 1970년대 추억의 로보트 3인방, 짱가-태권V-황금박쥐 모습

그런 만화 낙서를 보니 군시절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여름철 폭우가 내려 작전도로가 유실되면 저와 친구인 J는 둘이서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저는 돌쌓는 기술로, J는 엄청난 괴력의 힘으로 돌을 날라 순식간에 도로를 복구했습니다. 강원도 철책에 폭설이 내리면 언제나 제일 앞에 서서 저와 J는 눈을 치웠습니다. 군대 작업의 달인, 환상의 짝꿍 듀엣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하던 선배도 말년 병장이 되면 후배들의 장난감이 되는 이유  

그래서 후배 전우들은 저와 J의 존재가 고맙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했나 봅니다. 그런 것들이 낚서로 표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헤어지는 아쉬움과 친근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낙서를 살펴볼까요?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을 놀리는 낚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말년의 고뇌여~ 가는 날까지 우리들에게 갈굼 당할 걸 생각하니 힘드시겠지."
"짱가씨 결혼할 거니? 짱가 왈 내비둬, 이렇게 살다 껌에 붙어 갈겨."
"짱가씨. 집에서 전화왔어요. 집에 오지 말라고."
"웃기지 마. 나도 때 빼고 광 내면 미스코리아 화장실 청소라도 할 수 있다  뭐라고라~"


군대 회상록 낚서판에 동료 전우들이 말년 병장을 향해 한 마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장면

낙서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후배들이 말년 병장인 저를 갖고 노는 것 같은 구절들이 묻어나 보입니다. 사실 군대에서 제대 앞둔 말년 병장은 후배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한창 때 무시무시한 선배였다 하더라도 말년은 후배들에게 당해주면서 정겨움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전통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남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정과 훈훈한 의리였습니다.

잠깐 퀴즈?
낙서에 나온 것인데 아래 각각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요?

1.창녀가 가장 좋아하는 야채는?

2.남녀 혼성 이부 합창은 순한국말로 하면?
3.브라자를 순한국말로 하면?

당시 군대에서 유치한 문답 놀이 정도 됐었나 봅니다. 지금 살펴보니 그 때는 저런 저질 유치 개그가 유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방위에 대한 당시 이야기도 낙서에 나왔습니다.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방위에 대한 유머(?) 장난이 아닌가 생각되는 낚서였습니다.

방위란?(낙서 버전)
1.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면사무소를 접수한다
2.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예비군을 통제한다
3.전쟁시 도시락을 지참 9시에 출근하여 5시 반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오리지날 버전
방위의 임무. 하나.
전쟁이 발발시 방위는 적진의 동사무소를 점령한다.
방위의 임무. 둘.
방위는 도시락통을 싸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도시락통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망을 교란한다.
방위의 인무. 셋.
방위는 아무리 전쟁이 치열하거나 해도 아침 9시에 근무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넷.
방위는 일부러 적의 포로로 잡혀가 적의 식량을 축낸다.
방위의 임무. 다섯.

전쟁발발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여군들을 몽땅 꼬신다.


남방한계선을 넘어 최전선 철책을 넘나들며 비무장지대를 호령하던 전초 수색대들의 생활은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항상 삶과 죽음의 사선을 오가는 비무장지대 수색과 매복은 긴장과 서스펜스나 다름없었습니다. 순간 잘못 길을 가면 지뢰지대이고 잠깐 졸다가는 북한군이 목을 베어갈 준전시상태였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 강추위의 비무장지대에서 매일 밤 13시간 매복 작전

그러다 보니 군기가 가장 센 곳이었습니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개인 화기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태권도 및 특공무술을 비롯한 최강의 무예를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한 겨울 맹추위에 비무장지대 매복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1박2일에서 박찬호가 강호동을 포함 멤버들이 펼친 혹한기 실전캠프는 사실 '새 발의 피'였습니다.


전우들의 낚서판(좌)과 제가 그린 그림으로 수탉이 알에서 나온 코끼리 새끼를 본 후 암탉의 외도 의심

철책을 통과해 비무장지대 내에 들어선 순간 부터는 철처하게 자신과 전우들을 믿어야 했습니다. 군사분계션까지 도달해 겨울 매복작전을 펼칠 때면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북한 땅이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과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 총탄을 장전하고 있는 최강 DMZ 수색대원도 오로지 혼자가 된 느낌의 순간에는 나약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료와 말도 못하니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어떤 과자나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심지어 오줌도 눌 수 없어 오줌통을 들고 들어가는 비무장지대 내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전우와 동료를 신뢰해야만 비무장지대 수색 및 매복 작전은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 매복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 몸이 얼어서 새벽 무렵 철수할 시간은 지금도 불현듯 스쳐지나가고곤 합니다. 체감온도 40도 전후의 강추위에 밤새 13시간을 야외에서 뜬 눈으로 이틀에 하루 꼴로 밤을 지새운다는 것이 상상이 가시겠습니까? 잠시 회상에 젖었습니다.

다시 낙서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티파니왈 흔들자고"라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도 티파니가 있나 본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추가] 댓글을 보니 1980년말 티파니(Tiffany Renee Darwish)라는 미국 팝가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써니텐 광고에서 '흔들어 주세요'로 유명해 이 같은 낙서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갈 때 죽을 때 까지 똥침 놀 거다"
"기분이다. 아줌마, 단무지 하나 더 주세유"
"너 지금 가면 안올거지 그지?"
"뭐 같은 인생 간편히 살자고."
"집에 가서 잠만 자지 말고 여자 구해 장가 갈 궁리나 해라"
"수고했다 뺑이 치느라고"
"엿먹고 조총을 쏴라"

후배들의 낚서 중에는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서를 보니 똥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랜 전통을 지닌 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20년전 군대에서도 유행하던 놀이는 똥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위의 낙서 중 '뺑이친다'는 말은 힘들게 고생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일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그린 DMZ 수색대 마크(좌)와 후배 전우들이 회상록에 넣어준 자신들의 사진 모습

지난 20년전 군대에서 동료 전우들의 낙서를 보면서 20대의 용광로같은 젊은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은 편하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지만 당시는 눈덮힌 야외 들판에서 판초우의 한 장으로 밤새 추위를 이기고 생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겨울 이겨냈던 DMZ 비무장지대 수색대원들은 결코 동장군 강추위에도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남북한은 물론 지구촌을 배회하던 아픈 역사 현장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남자들만의 의리와 정을 나누고 그 자릴 지켰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싹튼 우정과 동료애는 말년 병장을 사회로 보내야 하는 아쉬움으로 추억의 낚서를 회상록에 남겼던 것입니다. 20년만에 20대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그 당시의 낚서를 보니 수많은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 한방 주시는 따뜻한 배려와 센스를 부탁드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온통 눈 세상입니다. 갑작스런 폭설과 한파로 교통대란과 일어나고 크고 작은 사건 사고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눈 세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함박눈과 싸리눈과 같이 눈이 내리는 날,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강아지와 개라고 합니다. 개와 강아지의 눈은 색맹이라서 눈 내리는 풍경이 매우 생소하고 특이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 컬로 색상을 보는 사람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색맹인 개에게는 하늘에서 하얗게 쏟아지는 눈발은 그야말로 장관으로 보일 것입니다.

강아지가 눈내리면 좋아하는 이유는?

눈이 내리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는 것은 그 만큼 생경하고 이채로운 풍경을 즐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들의 눈은 녹색과 검은 회색은 일부 알아보지만 검은 색과 흰색의 흑백사진처럼 세상을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들은 근시라서 멀리 있는 사물을 식별하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움직임에는 매우 민감해서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자극을 준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둡고 캄캄한 밤중에 하얗게 반짝이는 백색의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하늘이 불꽃놀이처럼 더욱 자극적인 풍경이라고 합니다. 하얀 눈이 만들어낸 세상은 개들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인 셈입니다. 흑백세상이 준 선물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 만큼 순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산 비탈에서 비닐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인공 눈썰매장 보다 재밌다

아이들이 산비탈 비닐포대 썰매를 더 좋아하는 이유?

또한 눈이 내리면 어린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눈썰매도 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만큼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가 함께 하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춥더라도 동네 꼬마 녀석들은 세상사 근심 걱정없이 순수의 동심을 쏟아내며 행복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은 인공 눈썰매장과 비탈길의 비닐 포대 썰매 중 어떤 것을 더 좋아할까요? 실제 실험을 해봤는데 아이들은 그냥 산비탈에서 즐기는 비닐 포대 썰매를 더 좋아합니다. 이유는 자유롭게 오래 탈 수 있고 그들만의 세상이고 더 스릴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다면 아이들에게는 겨울철에 큭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눈 내린 순백의 세상 풍경에는 연인이나 청춘 남녀들에게 사랑과 낭만을 함께 그리고 있다

연인들이 모래사장이나 눈밭에 사랑을 표시하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되면 함께 모래사장이나 해변을 거닐어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모래성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모래밭에 사랑의 하트 모양을 새겨보기도 합니다. 순수함과 낭만이 있는 풍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닷물에 휩쓸려간다고 하더라도 둘이 함께 한 순간의 영원은 함께 하고 있어 행복할 것입니다.


저도 아내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바다 해변의 모래사장에 하트 모양을 그린 적이 있다는데 기억도 가물가물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도 당시 남들이 해변이나 모래사장에서 그런 장면을 연출하거나 영화와 같은 곳에서 연인들이 보여주는 낭만의 모습이 한번 나도 해볼까 하는 심리로 작용한 듯 합니다.

연인들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경우의 사랑과 낭만과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모래사장에 그런 사랑의 그을 그리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짝사랑 또는 외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간절함일 수 있겠습니다.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지만 앞으로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염원하는 표시인 셈입니다. 오승희 시인의 모래 위에 새겨진 사랑은 그러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래 위에 새겨진 사랑 


 시인/오승희

모래위에 새겨진 사랑이라서
야멸친 파도 끝에
씻겨질 수밖에 없었나보다

왜 그렇게 지워내려
안간힘을 쓰는지

난 그저 아파할 뿐인데
내 눈물까지 보듬느라
얼마나 버거울까

몇 만 번을 씻겨내도
한사코 젖어드는 사랑인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르나보다
바닷물이 짠 이유를

야멸친 파도로
가슴을 쓸어내는
그대를 모르듯이

눈 쌓인 공원이나 눈밭에 사랑의 하트나 표현을 담은 그림을 자주 보게 됩니다. 연인이 함께 그린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간절한 염원인지 모르겠지만 모래 위에 그린 사랑이나 유사할 것입니다. 시인 이효녕의 시 '눈 위에 쓴 편지'는 아스라한 그리움과 사랑을 애절하게 담고 있습니다.

눈 위에 쓰는 편지

시인/이효녕


눈이 내리는 이 계절
나는 그리운 사람에게
눈 위에 편지를 씁니다

그대는 내 안에 매일 살고
지난 가을 쓸쓸하던 내 가슴 위로
낙엽이 떨어져 이리 저리 뒹굴다가
그리움 눈꽃으로 피어나는 이 계절
기다림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
너무도 행복합니다

차가운 바람에 골짜기가 된 마음
따뜻한 사랑 너무 그리워하며
저미는 내 가슴을 뚫고
하얀 눈벌에 피는 붉은 동백꽃
그대가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어
그리워하는 것도 행복입니다

커피 한 잔을 끓여놓고
창문을 열고 바라보면
그대가 눈길을 걸어오는 듯하여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에
눈 덮인 우체통 위에 편지 쓰면서
맨 마지막은 사랑한다고
하트 안에 마침표를 찍는 마음
그리움이 눈으로 계속 내립니다


그것은 간절함을 넘어 이제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추억의 한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지나간 겨울 날의 추억이라 하더라도 청춘 남녀와 연인들의 사랑과 낭만은 여전히 깊게 남아있었나 봅니다. 이를 보면 남자에 비해 여자의 감성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남자는 단지 순간적인 재미나 즉흥성이 강하다면 여자는 감성과 분위기를 오래 품고 있는 것입니다. 모래와 눈 위에 쓴 사랑과 추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편린인 셈입니다. 모래 위나 눈 위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사랑의 표시가 사람들에게는 평생 남아서 영원히 추억하는 페이지인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함과 열정이 가득한 시기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에 못잊는 것일 듯 합니다.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 한방 주시는 따뜻한 배려와 센스를 부탁드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간혹 글을 보면 주차해 둔 자동차가 긁혀있어 분노한 분들을 보게 됩니다. 자동차 운전자들이라면 누구라도 황당한 일일 것입니다. 저는 그런 글이나 이야기를 듣게 되면 남의 일이라 생각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초의 일입니다. 아내가 한 숨을 쉬면서 둘째 딸아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딸아이가 다른 사람의 자동차에 낙서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장에서 자동차 주인에게 붙잡혀 왔는데 15만원을 변상해 주었답니다. 그리고 그 변상한 돈은 딸아이가 그 동안 저금해 돈으로 대신했습니다. 딸아이가 스스로 저금한 돈이 약 15만원 정도 있었다고 합니다. 딸아이도 자신의 잘못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아내는 생각하고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한 셈입니다.

아내가 작은 딸아이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어보니 "그냥 다른 아이들이 자동차에 낙서하는 걸 보니 재밌을 것 같아서."였다는 것입니다. 아내는 어이가 없었습니다. 딸아이가 자동차에 낚서한 사연은 이렇습니다.

딸아이는 학교 수업을 끝내고 아이들과 귀가하는 길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낙서하는 모습을 처음 봤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과 헤어져 혼자서 집으로 오는 길이었습니다. 딸아이는 호기심에 돌을 하나 주워 길가의 자동차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동차는 모 기업체의 A/S 차량이었습니다.
 

당시 자동차 주인은 차를 정차해두고 잠시 차 안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차가 긁히는 소리를 들은 주인은 현장에서 딸아이를 붙잡았습니다. 자동차에는 초딩 아이답게(?) '메롱'하는 그림을 그려놨다고 합니다. 차 주인은 아이를 다그쳐 아파트 경비원에게 데려왔습니다. 아내는 경비원의 연락을 받고 내려갔는데 딸아이는 무서운 마음에 울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거듭 사과를 하고 차 주인이 요구한 변상금을 곧바로 해주었습니다. 그 후 아내는 딸아이가 그 동안 꼬박꼬박 저금한 15만원을 잘못에 대한 책임을 물어 압수해 버렸습니다. 둘째 딸은 당시 1주일 용돈이 1천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는 큰 돈을 받으면 저금을 하곤 했습니다. 둘째는 자신의 평생(?) 재산을 한순간의 실수로 날린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둘째는 그 후 다시 저금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최근 둘째 아이가 얼마나 저금을 했는지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사이 15만원 가량을 저금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지난 1년여 동안 용돈이나 세뱃돈을 받아서 한 푼 두 푼을 저금을 했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은 것입니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던 둘째는 아무 것도 모르고 호기심에 자동차에 낙서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교육적 차원에서 둘째에게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딸아이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롭게 저금을 하기 시작했고 1년여 만에 다시 15만원을 모은 것입니다.

비록 둘째 아이가 큰 실수를 했지만 자신의 잘못을 알게 되고 깨우치게 됐습니다. 그리고 무일푼에서 다시 저금을 해서 자신의 재산을 만회한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아이의 잘못에 대해 현명하게 대처했고 둘째도 엄마에게 원망하지 않고 자숙하는 태도가 대견했습니다. 마침내 둘째는 지난해 실수로 변상했던 재산을 1년여만에 모으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아마도 둘째는 앞으로도 평생을 살면서 잊지않을 실수로 기억되겠지만 한편으로는 실수를 반성하고 극복해가는데 있어 소중한 자산이 될 듯 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