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전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18 20년전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찾고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9)
  2. 2009.01.18 북한 땅굴과 남북전쟁 위기감에 대한 단상 by 진리 탐구 탐진강 (2)


얼마 전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이 발생해 몇일간 계속 번졌습니다. 북한측에서 화공작전으로 산불을 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사실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이 일어나면, 맞불을 놔서 꺼지게 하거나 그냥 비가 와서 자연적으로 꺼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이번 산불도 다행히 최근에 비가 와서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비무장지대라는 특수한 환경이 존재합니다. 제가 군대 시절에 비무장지대에 근무했기 때문에 실제로 남북분단의 현실을 누구보다 피부로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은 비무장지대 내에서 남과 북의 병사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을 했지만 어느정도 상황을 묘사한 측면도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는 군인이라도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구역입니다. 특별하게 출입증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전협정상 군인들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무장출입증도 까다로운 심사절차에 의해 승인된 극히 일부의 특수 군인에게만 발급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비무장지대 출입증이 발급된 사람은 여러가지로 선택되고 검증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군대시절 생각이 나서 지난 20년전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찾아봤습니다. 예전 군생활회상록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비무장지대 출입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는 민정경찰대, 수색중대, 전초대, 수색정찰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습니다.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 출입증 앞면과 뒷면 모습]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 상용 출입증'이란 명칭과 함께 '이 출입증은 민간행정 및 구제사업 제관서에 소속된 사람의 사용에 한함'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 출입증 소지자는 비무장지대 남경계선의 통과 및 비무장지대 남반부에서의 이용에 대한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 비무장지대 북쪽 부분을 출입하는데는 유효하지 않다.'고 부연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뒷면에는 영어로 똑같은 내용이 씌여 있었습니다. 이미 20여년이 지난 아주 오래 전 과거이지만 젊은 시절에 목숨을 걸고 비무장지대를 누비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습니다. 


아쉬운 것은 남한의 경우 '군인'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을 위한 인원으로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유엔군사령부, 흔히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합니다. 바로 이같은 허가를 받은 군인을 '민정경찰(DMZ Police)'이라고 표현합니다. 북한은 '민경대'라고 합니다.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정전협정에 기인합니다.

지난 1953년 7월 27일, 미국
과 북한, 중국이 정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6.25 전쟁이 끝나고 남과 북 사이에는 휴전선인 군사분계선(MDL)이 생겼습니다. 당시 남한은 배제된 상태에서 정전협정문에 서명이 된 것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으로 2Km, 북으로 2Km 각각 사이의 땅이 바로 비무장지대입니다. 말 그대로 하면 군사적인 무장을 하면 안되는 지역인 셈입니다. 그리고 남북한은 비무장지대가 끝나는 지점에 철책을 만들어 대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① 어떤 군인이나 민간인도 비무장지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북 각 지역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가 있어야 하며(정전협정 제1조 제8항), ②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를 얻은 인원이 아니면 비무장지대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다(정전협정 제1조 제9항). 또한 ③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의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정전협정 제10항).

궁금증이 생겨서 북한의 비무장지대 출입증은 어떻게 생겼는지 검색을 해보니 하나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정전협정에 따른 문구는 없고 비무장지대 출입증의 소지자 신분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소비자는 북한의 민경대 소속 군인일 것입니다. 영화 JSA에서 남북한 병사는 아마도 이러한 신분증을 각각 소지하고 있었을 듯 합니다. 


     [좌측이 북한의 비무장지대 출입증 모습]

우리나라가 남북분단 국가라는 상징적인 장소가 비무장지대라면 비무장지대 출입증은 젊은 군인들이 온몸으로 분단의 현실을 느끼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는 미확인 지뢰지대들이 도처에 위험이 산재해 있습니다.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선을 넘나드는 곳입니다. 뉴스에서도 여러번 보도된 GP에서 총기사건이 바로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군대 시절에는 어떻게 무시무시한  공포의 비무장지대에서 살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오싹하기만 합니다.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살펴보니, 우리나라 민족의 아픔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것 같아 상념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쟁을 잠시 중단한 개념인 휴전에 의한 정전협정이 아니라 진정으로 남과 북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종전으로 바꿔 평화협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습니다. 언제까지 동족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서로 같은 민족으로서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도 큰 진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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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최근 국정원 관련 모 교수가 북한이 김포까지 땅굴을 파는 등 남침 전쟁이 임박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개인 차원에서 언론사에 배포해 물의를 일으킨 모양이다.

항상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는 것은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 안보가 중요한 나라에 있어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물증과 사실이 아닌 개인적 주장으로 지나친 위기감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미 우리 국민들은 위정자들이 남북 분단의 냉전 이데올로기를 이용해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나 전쟁 위험을 다소 과장해 국내 정치에 악용한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북한의 전쟁 위협 자체를 너무 과소 평가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1990년 양구에서 발견된 제4땅굴의 추억
나는 군대 시절에 강원도 양구에서 발견된 제4땅굴 발견 당시 실제 수색 활동에 참여한 바 있어 북한의 전쟁 위협이 얼마나 집요한지 실감한 바 있다. 양구의 제4땅굴은 이미 안보관광시설로 활용되어 관광객이 자주 찾는 곳 중의 하나이다. 제4땅굴은 북한의 새로운 침투 방법으로 모색되어 굴설된 땅굴로 1978년 제3땅굴이 발견된지 12년만인 1990년 3월 3일에 양구 동북쪽 26㎞ 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군사분계선에서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출처 : 데일리NK 뉴스]

이제는 제4땅굴이 있는 안보 관광지이자 남북 분단의 대치 상황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양구의 해안(亥安) 마을에 한번 가보고 싶다. 해안 마을은 펀치볼(punch bowl)이라고도 불린다. 해안 마을이 위치한 분지 형태가 거대한 화채 그릇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미군이 펀치볼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유래이다. 만일 통일이 된다면 나의 가족과 반드시 가보고 싶은 첫번째 장소가 펀치볼과 비무장지대가 될 듯 싶다.

역사 속에서 자주적 국가 안보의 중요성 실감
과거 우리 민족이 당했던 치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자주적인 국가 안보는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지금 순간에도 우리가 편안하게 잠을 자고 자유를 향유할 수 있는 것도 24시간 365일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국가 안보의 중요성을 새삼 실감한다. 20대 초반, 혈기 왕성한 젊은 나이에 군대를 다녀온 우리나라 남성들에게 있어 그 시절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이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렇지만, 현재 발견된 4개의 북한 땅굴 이외에 추가로 발견된 땅굴은 없다. 제1땅굴은 1974년 11월 고랑포에서 발견됐고, 제2땅굴은 1975년 3월 강원도 철원에서 발견됐으며 제3땅굴은 1978년 10월 경기도 문산에서 발견된 바 있다. 그리고 1990년 3월 강원도 양구에서 제4땅굴이 발견된 이후 북한 땅굴은 더 이상 발견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1970년대에 여러개의 땅굴을 팠으나 그들이 판 땅굴이 계속 발견되자 땅굴 공사를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지하에서 땅굴을 파는 일은 북한군에 가장 힘든 노가다 작업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지하에서 땅굴 공사 작업은 어떤 식으로든 지하에서의 공사 소리나 지하수의 변화 등에 의해 쉽게 노출될 수 있어 효율성이 무척 떨어지는 일이다.


북한 땅굴 위협은 과거 우리가 그 실체를 몰랐을 때에는 매우 위협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에서 보면 북한 땅굴은 지난 1990년 제4땅굴 발견이후 거의 20년 가깝게 발견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가공할 위협 수준은 아닌 듯 하다. 우리나라의 국방 수준이 높아져 북한이 땅굴을 굴착하면 곧바로 탐지할 수 있는 첨단 장비가 있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땅굴이 가동할 경우 즉각 타격해 용도 폐기할 수 있는 첨단 무기들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도한 정치적 위기감 조성은 경계해야
일반 국민들은 북한의 땅굴에 대해 막연히 위기감을 느끼거나 불안해 할 수 있다. 어느정도 국가 안보에 대해 긴장감을 갖는 것은 좋으나 실제와 달리 너무 과도한 위기감으로 스트레스까지 받을 필요는 없어 보인다. 아울러, 정치적으로 국민들에게 국가 안보를 빙자한 실제 이상의 불안감 조성은 정치권에서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국가 안보는 정치적으로 악용할 대상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역사 앞에서 가져야 할 민족적 시대적인 소명이기 때문이다.

가볍게 시작한 글이 주제가 땅굴과 안보에 대한 얘기다보니 너무 딱해진 것 같다. 정리하면, 국가 안보는 자자손손 우리 민족이 살아가야 할 존재의 의미 차원에서 중요하지만 한편으로 실제 새로 발견된 땅굴도 없이 과장된 사실과 가능성이라는 미명 하에 너무 과장해 정치적 악용이나 위기감 조성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국가 안보는 외부에 요란스럽기 보다는 냉철하고 착실하게 만일의 위협에 대해 철통같은 준비가 중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강원도 양구에 위치한 제4땅굴의 관광 안내에 대한 내용을 첨부한다. 땅굴 중 유일하게 내부에 관람용 전동차를 운행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과 양구를 함께 여행한다면 하나의 선택이 될 듯 하다. 아마도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는 마음이라면 실제 전쟁의 위협에 살고있는 우리의 현실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http://www.gwhsed.go.kr/cyberschool/gangwondo/yanggugo/dongmul/danggul.htm

관광지명 : 제4땅굴

위 치 :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현3리

개 요

  • 제4땅굴은 1990년 3월 3일 발견되었으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부 관람용 전동차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 땅굴광장에는 50여대를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과 기념비, 군장비 및 안보교육관을 보실 수 있습니다.
  • 안보교육관에는 280여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영화관과 전시관을 비롯하여 북한의 관광지를 필름에 담은 3-D입체영상기가 휴게실에 비치되어 있어 북한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됨으로서 국내안보교육장의 활용되고있다.

규 모

    높  이 : 약 1.7m  
    폭     : 약 1.7m  
    깊  이 : 지하 145m  
    총길이 : 2,052m

관람방법

    통일부 양구북한관에서 출입신청(당일 신청 출입가능)  
    매주 화요일은 관람불가

교 통

    동서울,상봉동터미널에서 양구까지 버스운행, 양구에서 해안까지 4회 운행  
    서울-춘천-양구-해안

관 람 료 : 청소비(대인 1,000원, 소인 500원)  
                ※ 단체(30인이상):30%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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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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