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해당되는 글 11건

  1. 2010.04.30 사춘기 두 딸에게 왕따된 아내가 남편 찾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2)
  2. 2010.01.23 탈북소녀 최현미와 쓰바사 덴쿠가 준 무한 감동 그리고 여자 복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26)
  3. 2009.12.16 아내가 연말 모임에 다이어트하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5)
  4. 2009.09.03 장진영 남편, 영화같은 결혼과 마지막콘서트 by 진리 탐구 탐진강 (74)
  5. 2009.08.21 장모님이 밥 잘 먹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51)
  6. 2009.07.14 여름 밤의 공포? 묘지로 간 여성의 정체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32)
  7. 2009.05.11 술먹고 다른 잔디밭에 누운 두 남자, 그 후 by 진리 탐구 탐진강 (34)
  8. 2009.04.16 아내에게 거짓말 청혼 "회사에서 잘렸어" by 진리 탐구 탐진강 (97)
  9. 2009.04.12 하늘나라 천국우체국의 감동을 아시나요?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
  10. 2009.03.07 아내를 정신병원에 보낸 40대 남편의 눈물 by 진리 탐구 탐진강 (29)


아내가 두 딸아이와 싸우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아마도 최근 몇 달 사이의 변화인 듯 합니다. 어쩌면 두 딸과 아내의 싸움이라기 보다는 두 딸의 반항심이 예전보다 많아진 이유가 큰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두 딸은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가 문을 꼭 닫아 버립니다. 두 딸아이에게 사춘기가 온 것 같습니다. 두 딸은 예전에는 방 문을 열어놓고 지냈는데 요즘은 문을 닫고 대중 가수들의 노래를 듣거나 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속닥속닥거리기도 합니다.

아내는 두 딸에게 소외감을 느끼나 봅니다. 두 딸이 문을 닫고 나오지 않자 저에게 하소연을 합니다.
"이제 애들이 나를 왕따시키려고 하는 것 같아."
"애들이 사춘기인가?"

"그래, 사춘기인 것 같아. 둘째가 벌써 여드름이 생겼어."
"그러게. 이마에 뭐가 났던데 여드름이었구나. 참 빠르네."

"이제 당신 밖에 없어."
"뭐, 어쩔 수 없지. 애들이 컸다는 증거니까. 언젠가 올 거라 예상한 것인데 빨리 온 것 뿐이지."

그렇습니다. 둘째 딸은 초등학교 4학년 10살인데 이미 여드름이 시작됐습니다. 둘째는 다른 아이들에게 비해 발육 성장이 빠른 것 같습니다. 키가 언니보다 크고 같은 반에서 제일 크다고 합니다. 벌써 초경을 시작하고 지난해부터 브래지어를 할 정도로 가슴 몽우리도 시작된지 오래 됐습니다. 물론 12살인 첫째 딸은 그 보다 먼저 시작됐지만 거의 둘째가 비슷하게 시작된 듯 합니다.

          (지난해 제주도 해안가 산책로에서 당시 9살 둘째 딸과 아내가 산책하는 모습인데 키가 거의 자매처럼 보인다)
 
사실 아빠는 이미 소외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유일한 남자이다 보니 아내와 두 딸은 이전부터 왕따를 시키는 일이 간혹 있었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자기들 끼리만 시장에 간다든지 목욕탕에 가는 식입니다. 특히나 목욕탕의 경우는 성별 차이 때문에 간혹 아들이 있었다면 그런 생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두 딸이 잘 지내더니 지금은 두 딸이 아내 마저 왕따를 시키는 형국인 셈입니다.

두 딸의 변화는 여러가지가 많습니다. 아내의 잔소리에 짜증을 내기도 하고 거울을 보면서 옷치장을 하는 일이 많습니다. 과거에는 아빠에게 아무렇게나 행동하던 아이들이 목욕하다가 급히 화장실 문을 닫는 등 달라진 모습입니다. 두 딸이 자신의 몸의 변화가 생긴 이후 행동에 변화가 많아진 것 같습니다. 이제 두 딸도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알아가면서 이성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 듯 합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이자, 두 딸에게는 아빠인 저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일 때도 있습니다. 아내와 딸이 말싸움을 하는 것을 보면서 뭐라고 말도 못하고 가만히 TV만 보는 척 하기도 합니다. 결국 목소리가 큰 아내가 이기더군요. 나중에 아내에게 조용히 아이들과 싸우지 말라고 하지만 반항심이 커진 아이들에 대한 서운함도 있는 듯 합니다. 아내가 저녁이 되면 와인이나 맥주를 찾는 일이 많아진 이유도 여기 있는 듯 합니다. 아내가 남편이 들어오면 옆에 앉아 하루 이야기를 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사춘기 테스트라는 글이 있어 살펴봤더니 우리 아이들에게도 사춘기가 오고 있는 것이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두 딸은 아주 친하다가도 서로 싸우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대개 아들과 달리 딸들은 서로 싸우는 일이 별로 많지 않다고 하던데 우리 딸들은 매일 싸우다시피 합니다. 그러다가 곧 친해져서 방에서 댄스가요를 들으면서 둘은 함께 춤동작과 노래를 하기도 합니다.

사춘기 테스트

1. 부모님과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

2. 엄마 잔소리를 들으면 짜증이 난다.

3. 거짓말을 한 적이 많다.

4. 눈물이 자주 난다.

5. 거울을 자주 본다.

6. 옷차림에 신경이 쓰인다.

7. 연예인,탤런트 팬 클럽(카페)에 많이 가입을 했다.

8. 친구들과 전화를 자주한다.

9. 일을 결정할때 친구의 말을 잘 따른다.

10. 부모님보단 친구들과 있는 것이 좋다.

11. 친구 사귀기 힘들어진다.

12. 쉽게 화가 난다.

13. 동생과 자주 싸운다.

14. 이성에게 관심이 간다.

15. 내몸에 관해 점점 알고 싶어진다.

16. 우울해진다.

17. 감수성이 예민해졌다.

위 17개 문항을 전부 체크해 본 결과

0-5개 : 사춘기는 아직 아닙니다.

6-9개 : 얼마 있으면 사춘기가 시작됩니다.
10-13개 : 사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14-17개 : 사춘기 진행 중입니다.

론 매번 아내와 딸이 싸우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 비해 집안에서 큰 소리가 나는 일이 많아 졌다는이야기입니다. 어제 저녁에는 둘째가 거실을 거닐고 있어 한 마디 던졌습니다.
"둘째야, 이제는 숙녀같구나."

옆에 있던 아내가 말했습니다.
"덩치만 크면 뭐해. 정신연령은 10살인데..."

"저, 정신연령은 9살인데요. 만 9살. 하하"

둘째가 의미심장한 대답을 했습니다. 다른 또래 아이들에 비해 성숙한 둘째는 언니들과 놀거나 혼자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듯 합니다. 작년에는 2NE1의 'I don`t care'에 심취하더니 요즘은 소녀시대 신곡 '오(Oh!)에 빠진 것 같습니다. 아빠가 MP3에 신곡을 다운로드 구매해 줬더니 그것만 듣고 있습니다. 아빠가 딸들의 방에 오는 것도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사춘기 10대 소녀가 된 두 딸, 그리고 소외감 느끼는 아내, 이미 왕따됐던 아빠인 셈입니다. 그나마 아내가 남편을 찾아 호소를 하니 부부끼리 금슬은 좋아진 편입니다.

아무튼 두 딸에게도 아내에게도 힘든 시절입니다. 저야 직장에 가면 그만이지만 늘 두 딸과 씨름해야 하는 아내에게는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딸의 사춘기 시작이 아빠인 저나 아내에게 모두 어렵습니다. 두 딸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우리 아빠 엄마도 과거 사춘기 때가 있었으니 그 때를 회상해보고 인내하고 포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겠습니다. 혹시 여러 부모님들은 어떻게 아이들의 사춘기를 극복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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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무한도전에서 탈북소녀 복서 최현미와 일본 여자 복싱 선수 쓰바사 덴쿠에 대한 이야기가 방송됐습니다. 예전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사이에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가장 인기 스포츠 종목은 권투였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향수를 갖고 무한도전에 몰입해 시청했습니다. 무려 9년 권투경력으로 복싱과 인연을 맺고있는 리쌍의 길이 세계챔피언 경기 후 사망한 최요삼 선수를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이번 무한도전은 비인기종목이 된 권투의 활성화를 위해 특별히 마련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최현미는 우리나라 여자 권투 선수 중 유일한 세계 챔피언이었습니다. 최현미는 나이가 만 19세로 세계권투협회(WBA) 여자 페더급 세계챔피언을 차지한 이래 1차 방어전을 성공해 챔피언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인기종목인 복싱은 스폰서도 없고 관중도 없어 항상 어려운 환경 속에서 경기 준비와 챔피언전을 치러야 하는 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최현미가 2차 방어전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려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최현미의 사연은 개그우먼 김미화에 의해 무한도전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최현미가 무한도전에 출연하게 된 배경은?

기존의 뉴스를 찾아보니 김미화가 최현미 선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김미화의 남편이 성균관대 교수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김미화의  남편인 윤승호 교수는 스포츠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데 최현미를 4년 특별 장학생으로 입학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최현미가 쓰바사와 세계챔피언 경기에서 승리한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현미는 북한에서 김철주사범대학체육단에서 인정받은 권투 꿈나무였습니다. 방송에서는 키(170cm)가 커서 길거리 캐스팅됐다고 최현미는 밝혔습니다. 북한의 김철주사범대학체육단으로 뽑히면 대학과 장학금까지 받을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현미의 아버지와 가족은 최현미가 재능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도록 탈북을 결행하여 2004년 남한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최현미의 권투에 입문한 사연과 탈북 이유는?

1990년생인 최현미는 아마추어 선수 시절에 17전 1패의 전적이 자랑하듯 권투 재능이 탁월했습니다. 2007년 프로 전향 후 최현미는 단 2번째 프로 경기만에 중국 선수를 이기고 WBC 챔피언 벨트를 차지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1차 방어전에 이어 2차 방어전을 무한도전이 지원키로 하면서 최현미는 화려한 비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현미의 2차 방어전 상대는 일본의 쓰바사 덴쿠였습니다. 무한도전의 정준하 정형돈이 만난 츠바사 덴쿠 선수도 사진에 비해 실물이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었습니다. 쓰바사 선수는 나이가 25세인데 화면 속에 비친 모습은 앳된 소녀 처럼 보였습니다.

무한도전팀과 만난 쓰바사 덴쿠의 사연도 감동을 주었습니다. 자신의 경기를 지켜보려 했던 아버지가 경기 이틀 전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자신의 소식을 알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츠바사는 경기 후 아버지 소식을 들었지만 이미 아버지는 사망했습니다. 쓰바사는 슬픔과 함께 눈물을 흘렸지만 더욱 강해져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더 꿋꿋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쓰바사의 이야기에 통역하던 사람도 울컥했습니다.

쓰바사 덴쿠와 일본 여자 복서들의 열악한 환경

쓰바사도 열악한 환경 속에서 권투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연습시설은 미니 링 하나 경우 있을 정도로 초라했고 세계 여자 밴텀급 챔피언인 독특한 이름의 쓰나미 선수도 함께 그 곳에서 연습할 정도였습니다. 힘든 권투를 하는 것은 오직 하나의 꿈을 향한 집념이었습니다. 쓰바사는 한번도 딸의 경기를 못보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직장에서 자신을 자랑했다는 말을 나중에 듣고 영전에 챔피언 벨트를 바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성숙하고 긍정적 마인드로 포기할 수 없는 꿈을 향해 쿨하게 나아가는 쓰바사 덴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미 최현미와 쓰바사의 경기는 11월
21일 수원 성균관대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바 있습니다. 결과는 최현미 선수가 3대 0 심판 전원 일치 판정승으로 이겼습니다. 두 선수 모두 최선을 다한 경기였기에 승자와 패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로써 최현미는 4전 3승 1무의 전적으로 챔피언 벨트를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최현미가 2차 방어전 상대인 쓰바사 덴쿠와 경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날 경기에는 최현미를 지원하는 무한도전팀 이외에도 후견인 역할을 하는 김미화, 그리고 프로야구 선수 봉중근도 응원차 나섰습니다. 봉중근은 최현미 승리 후 축하 꽃다발로 격려했다고 합니다. 이 날 최현미의 2차방어전에서 무한도전팀의 활약은 기존에 알려진 소식을 바탕으로 간단히 소개합니다.

무한도전은 경기에 앞서 서울 수원 등지에서 홍보전에 나서 최현미와 쓰바사 경기 당일에 1500여명 관중이 몰리는 대성황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도 무한도전팀은 역할을 분담해 최현미를 응원했습니다. 노홍철은 응원단장, 경기 사회자는 정준하, 경기 현장 중계 캐스터는 유재석-박명수, 링세컨은 길-정형돈이 맡았습니다. 그리고 가수 원투, 케이윌, 바다, 걸그룹 브라운아이드걸스 등이 공연 무대를 갖기도 했습니다.

                        최현미는 외신에서도 한국판 밀리언달러베이비로 소개된 바 있다

한편, 이번 방송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최현미를 후원하기 위해 각자 종이에 후원금을 적어내는 장면도 있었는데 유재석은 2천만원을 쾌척해 훈훈한 마음씨를 보였고 길(1천만원), 정준하(3백만원), 노홍철(200만원), 정형돈(100만원) 등을 즉석에서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박명수는 sorry라는 영어 단어로 구두쇠임을 입증했고(웃기려는 상황극인지 모르지만), 입대를 앞둔 시기였던 전진은 '살려주세요'라는 애교로 참여하지 못하는 심정을 대신했습니다.

한국판 밀리언달러베이비 최현미와 통일의 꽃

최현미는 인생 내내 탈북소녀 복서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닐 것입니다. 최현미는 그래서 통일이 꿈이라고 합니다. 최현미는 외모가 닮아 한국판 밀리언달러베이비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한도전 출연으로 최현미는 전 국민이 관심을 갖는 세계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쓰바사 덴쿠도 용기와 집념을 잃지말고 좋은 결실을 맺길 바랍니다. 최현미가 체급을 올려 2체급 석권하면 쓰바사도 챔피언이 가능할 것 같기도 합니다.

최현미가 세계 여자 권투사에 획을 긋는 자신의 꿈을 계속 이루어가고 앞으로 새터민(탈북자 가족)을 대표해 남한과 북한이 통일을 이루는데 통일의 꽃으로 일익을 담당해 나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특히 봅슬레이의 감동으로 비인기 스포츠 종목을 지원했던 무한도전이 여자 권투를 통해 또 하나의 감동을 선사한 것에 감사하며 지속적인 국민들의 관심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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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퇴근 후 저는 종종 아내와 함께 캔맥주를 마시곤 했습니다. 집에 늘 술과 안주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기 이전 연애 시절부터 호프집을 자주 애용했던 터라 결혼 후에도 함께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주말에 술친구가 되어주는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삶의 윤활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내는 전혀 맥주나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갑작스런 아내의 변화가 궁금해 물었습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전혀 술을 마시지 않네."
"연말 모임에 참석해야 하잖아. 당신 회사에서 부부 모임도 있다면서..."

"아, 그것 때문에 다이어트하는 거야?"
"얼굴에 볼살도 그렇고 뱃살도 좀 빼야 하거든."

그랬습니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제가 속한 본부의 간부급 대상으로 연말 부부커플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아내는 그 날 이후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식사량도 줄이는 등 다이어트에 돌입한 것이었습니다. 하루 이틀 다이어트 하다가 말겠지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남다른 각오인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다이어트를 계속 해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자 친구들이나 아줌마들 모임에서도 옷맵시에 신경쓰는 이유

어제 저녁에는 아내가 외투를 구입해 자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옷 샀어. 간이 작아서 비싼 밍크는 안샀어."
"그래. 잘 했어.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옷 사라고 했잖아."

"그래도 막상 비싼 옷은 사려니까 겁나더라구. 이 옷은 유행을 크게 타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거든."
"응. 옷이 따뜻해 보이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아내는 밍크코트를 처음에 산다고 했는데 옷을 사러 갔다가 매장에서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밍크는 중요한 행사에만 한 두 번 입는 것이라 실용성이 떨어지고 유행도 타기 때문에 안샀답니다. 대신 크게 유행도 타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다용도로 입을 수 있는 외투를 사게 됐다는 아내의 설명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패션에 민감하던 아내도 이제는 알뜰한 주부로 변한 셈입니다. 이번에는제가 그 동안 옷도 몇번 사준 적이 없어 아내에게 맘껏 원하는 옷을 사라고 했는데 결국 아내는 다소 저렴하면서 실용적인 옷을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이번에 옷을 산 것도 연말 부부파티 모임이나 아내 친구들 모임 등을 위해 준비한 이유도 작용한 듯 합니다. 아내와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여자들은 왜 다이어트에 신경쓰는지 궁금했습니다.
"여자들은 왜 연말 모임에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거야?"
"그거야 여자의 자존심일 수 있지. 그리고 모임에서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이겠지"

"나이에 상관없이 여자들 마음은 비슷한 것 같네"
"아줌마도 부부모임에 가면 옷테가 나는 몸매가 부러운 것 같아. 요즘 아줌마들이 옷맵시가 잘 나면 남편이 잘 나가는 줄 안다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남편이 돈 잘 벌고 잘 나가면 여자가 피부나 몸매 관리할 시간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래서 여자들 모임 같은데 나갈 때도 여자들이 옷맵시에 더 신경쓰는 것 같아." 

연말 파티 문화로의 변화가 만든 아줌마 다이어트 풍속도일까?

여자들은 여자 친구들 동창회나 아줌마들 모임에서도 옷과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초라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면서도 남편을 빛나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남자들이 주로 자신의 지위나 월급으로 자존심을 세운다면 여자는 외모와 옷맵시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듯 했습니다.

따라서, 아내는 회사의 연말 파티에서 남편의 기 살려주는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각오한 셈입니다. 이왕이면 자신의 부부 모임에서 돋보이는 것이 자신과 남편의 자존심을 높여주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여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아줌마가 되어도 외모와 몸매에 늘 신경쓰는 것 같습니다. 꺄름한 얼굴에다가 슬림한 몸매가 돋보이는 의상은 여자들의 로망인가 봅니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남편을 더 돋보이게 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인 듯 합니다.

아침에 아내가 싱글벙글하면서 한 마디 합니다.
"이거 봐. 나, 볼 살이 사라지고 갸름해지지 않았어?"

연말 연시 모임이 예년에 비해 파티 문화로 바뀌면서 달라진 풍속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는 회사에서 부부 동반 모임으로 인해 다이어트하는 아줌마들이 많아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술친구가 사라져 집에서 혼자 외롭게 술을 마시지만 남편을 위한 배려이니 기꺼이 감내하는 요즘 생활입니다. 여러분들 주위에도 모임을 위해 다이어트하는 분들 많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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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배우 장진영이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배우 최진실 장자연 등 죽음에 이어 사회적으로 또 하나의 잔잔한 파장을 주고 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충격적인 사망 소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김수환 노무현 김대중 등 국가적으로 명망있는 사회지도자들의 서거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었는데 국민들의 뇌리에 남는 배우들의 죽음 또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결국은 우주의 작은 먼저처럼 사라져 갈 인생이기에 늘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의 사람들과 하루를 보다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곤 합니다. 

장진영의 사망은 영화같은 사랑과 결혼을 한 남편 김영균 씨가 있어 사람들에게 더욱 안타깝고 가슴 뭉클하게 합니다. 영화 '국화꽃 향기'는 여자 주인공은 장진영 자신의 모습과 닮아있어 또한 현실 속의 슬픈 이야기로 남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 이모부는 국화꽃 향기의 이야기 처럼 이모가 아이를 낳은 직후 사망한 후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고 있어 남의 일 같지가 않게 다가오기도 했습니다.



영화 '라스트 콘서트' 이야기는?

그리고, 장진영은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 김영균과 함께 가수 김건모의 전국투어 전주 콘서트를 지난 5월 마지막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마치 영화 '마지막콘서트'처럼 사랑하는 두 남녀는 그렇게 둘 만의 애틋한 사랑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장진영이 이승에서 가본 마지막 콘서트가 되었습니다. 장진영은 김건모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바도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마지막 콘서트였던 셈입니다.

한편 장진영의 사연은 이탈리아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감동을 떠올리게 하게 했습니다. 미국의 컨트리 팝가수 존 덴버 주연의 영화 '션샤인'과 더불어 불치병 환자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피아니스트 리처드(리차드 존스 분)가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스텔라(파멜라 빌로레시 분)를 위해 '스텔라에게 바치는 곤첼로'를 작곡하여 파리 교향악단에 초연을 하게 됩니다.



그 음악은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리처드에게 순수한 소녀 스텔라가 보내준 용기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텔라는 갈채로 뒤덮힌 무대의 객석에서 리처드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는 영화입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스텔라를 위한 곤첼로(스텔라를 위한 협주곡)'은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지금도 영화와 음악은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남자친구 김영균과의 가슴 뭉클한 결혼 사연

장진영의 남편도 고등학교 시절 기타와 드럼을 치던 음악 로맨티스트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콘서트는 남편 김영균이 장진영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 김영균 씨는 제15대 국회 부의장 출신인 김봉호 전 국회의원의 차남으로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으며, 현재 건설 분야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장진영을 향한 남편 김 씨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식을 줄 모르고 더욱 불타올랐던 것 같습니다. 음악을 좋아한 로맨티스트 김영균의 순수한 사랑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남편 김 씨는 지난해 9월 처음 만난 후 장진영의 생일인 지난 6월 14일에 프러포즈를 한 후 지난 7월 26일 미국 네바다 주 라스베이거스의 한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지난 8월 28일 혼인 신고를 마쳤다고 합니다. 가족이나 친구도 없이 둘만의 결혼식이 마지막 여행이 되었던 셈입니다. 어쩌면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 이야기인 듯 합니다. 한편으로는 눈물겹고 한편으로는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로 다가왔습니다.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

남편 김 씨는 "내가 곧 그녀, 그녀가 곧 나였습니다. 혼자 보내게 된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고인의) 가는 길에 힘이 되고 싶었고 가슴 속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현실에서 못다한 사랑, 하늘에서나마 아름다운 결혼 생활로 이루고 싶었습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이미 죽음을 예견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힘이 되어주고 꿈 속에서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계속 사랑을 하고 싶어 둘 만의 결혼식을 했다는 것에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김 씨는 재산 상속도 장진영 부모에게 위임했고 상주도 장진영 아버지가 맡게 된다고 합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김 씨 같은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도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배우 장진영의 죽음은 지난 2003년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위암으로 죽은 여주인공 민희재와 놀랍게 흡사해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영화 속 남편 인하는 라디오에 보낸 사연을 통해 "내가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나만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삶이 살아 있는 시간은 당신과 함께할 때 입니다"라며 슬퍼했듯이 말입니다. 현재 장진영의 남편 김 씨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합니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끝까지 장진영과 함께 한 남편 김 씨가 용기를 잃지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영화 보다 더 슬퍼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준 장진영이었습니다. 비록 이승에서 못다한 꿈과 사랑을 하늘나라에서는 이루기를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장진영의 입관식에 참석한 남편 김씨의 비통한 모습(좌)과 장진영과의 결혼 커플 반지를 낀 모습(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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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해 인사불성인 놈팽이를 사귄다는 것을 처음 본 부모의 마음이 오죽 하겠습니까. 애지중지 키운 당신의 딸이 놈팽이와 결혼한다면 모든 부모가 반대할 것이 뻔한 일입니다. 여자의 엄마는 장래 딸의 남편이 될 수도 있는 남자의 첫 장면에 충격을 받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당신의 딸이 만취한 남자를 부축해 여관 골목으로 들어가는 모습에 더욱 화가 났습니다.

[참고 : 전편 글]  술취한 남친 부축해 여관행, 엄마에 발각
(처음 보는 분은 전 편 글을 먼저 읽어보시면 빨리 이해가 됩니다.)

대로변 큰 길가의 약국집에 놀러왔다가 우연히 목격한 당신의 딸과 남자친구의 모습을 목격한 이후 여자의 엄마는 딸을 냉랭하게 대했습니다. 그 날 이후 냉전이 계속 됐습니다. 여자는 엄마를 설득할 수도 없었습니다. 엄마의 충격이 너무 커서 어떤 이야기도 듣지 않았습니다.

딸의 엄마는 대로변 약국집에 있다가 우연히 딸과 남자 친구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엄마는 약국집 주인과 절친했습니다. 그런데 두 남녀가 술취해 지나가는 모습을 엄마는 약국집 주인과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약국집 주인도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설마 당신의 딸 만은 그럴 줄 몰랐던 어머니의 마음은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더욱이 가족같이 지내던 약국집 주인과 그 모습을 봤으니 창피할 지경이었습니다.

사실 엄마가 생각하는 딸에 대한 생각은 컸습니다. 여자의 엄마는 몇해 전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홀로 자녀들을 키웠습니다. 그래서 반듯하게 아이들을 키워서 결혼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홀로 된 여자의 어머니는 약국집에서 가끔씩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홀로 된 어머니를 이해해주고 서로 말동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약국집 주인 내외는 그렇게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였던 것입니다.



엄마의 반대는 완강했습니다. 그러다 여자는 약국집 앞을 지나다가 주인과 마주쳤습니다. 약국집 주인 아저씨는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S야, 오랜 만이다. 요즘 안색이 좋지 않다. 힘든 일 있니?"
"아니에요. 회사 일로 바빠서요."

"S야, 남자 친구를 좀 나에게 소개시켜주라. 우리는 가족과도 같은데 한번 보고 싶다"
"예, 아저씨. 생각해 볼게요."

그 후 여자는 남자 친구에게 약국집 아저씨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자 친구는 흔쾌히 만나겠다고 했습니다. 여자는 결국 남자 친구를 약국집 주인 아저씨에게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S의 남자친구를 꼭 보고 싶었는데 반갑네요."
"진작에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송구스럽습니다."

약국집 주인 아저씨와 여자의 남자 친구는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금새 친해졌습니다. 성실하고 듬직해 보이는 남자의 모습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약국집 아저씨도 애주가였습니다. 몇 마디 이야기를 해보니 남자가 평소에는 술취해 실수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약국집 아저씨는 애주가로서 한번의 실수를 충분히 이해해 주었습니다.

그 날 이후 약국집 아저씨는 여자의 어머니를 설득했습니다. 남자가 보는 남자에 대하여 아버지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찌보면 약국집 아저씨가 이웃 사촌으로서 아버지와 같은 역할과 같은 정신적 지주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렇게 여자의 어머니도 마음을 되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번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아직은 잘 모르니 여자의 엄마는 남자 친구를 만나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어머니를 처음 만나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너무 긴장했습니다. 식사 자리에서 말도 없이 식사만 열심히 먹었습니다. 여자 어머니를 똑바로 바라보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처음에 술취한 놈팽이의 모습이었기에 더욱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놈팽이가 경상도 말인줄 몰랐지만 여자의 엄마는 고향이 경상도입니다.)

어른들이 밥 잘 먹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
- 성실해 보이고 건강해 보인다.
- 여자를 고생시키지 않을 것 같다.(깨작깨작 밥 먹는 남자는 여자가 힘들다.)
- 남자는 아내가 해준 밥을 잘 먹어야 믿음직하다.
- 사회 생활을 잘하고 어른들에게도 잘 할 것 같다.
- 마음씨 좋고 가정적일 것 같다.


나중에 들어보니 여자의 어머니는 밥 잘 먹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다고 합니다. 여자의 엄마는 "밥 굶길 남자는 아닌 것 같더라"라고 했다고 합니다. 드디어 여자의 어머니의 마음을 얻은 것입니다. 사실 남자는 긴장도 되고 과거가 부끄러워 밥을 열심히 먹고 있었는데 그런 모습이 점수를 딸 줄 몰랐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다시 찾아온 행복의 시간들에 기뻐했습니다. 이제는 두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남자와 여자에게는 또 다른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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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여름에는 예전의 납량특집 방송 '전설의 고향'이 생각나곤 합니다. 간혹 시골 마을에는 무서운 이야기가 전해져 오기도 합니다. 실제 제가 살던 시골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전해드릴까 합니다. 어머니가 직접 경험했던 이야기입니다. 지난 1960년대 산골 마을에서 벌어졌던 일입니다.

산골 마을에 어떤 부부가 들어와 살았습니다. 그 부부는 마을을 이루고 있는 곳이 아닌 외딴 초가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의 집이 몰려있는 지역의 반대편 냇가 건너 산비탈이었습니다. 산비탈 아래 초가집 주위는 대나무 숲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마을 사람들은 그 부부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게다가 부부가 산다는 것은 알았지만 남편은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부부에 대해 궁금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외딴 집에 사는 아내도 마을 사람들과 마주쳐도 특별한 말이 없이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남편에 대해 궁금해 하면 "외부에 일이 있어 집에 거의 오지 않는다"고 둘러대곤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내가 조용하고 마을 일을 열심히 돕는 편이라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쩌다 밤이 되면 수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냇가 건너편 외딴 집에서는 밤 늦게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부부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수군거렸습니다. 마을 청년들도 외딴 집에 사는 부부에 대해 의심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외딴 집의 아내가 한 밤 중에 집을 나섰습니다. 그 아내가 산 속으로 가는 모습을 목격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산골 마을에서 한 밤 중에 여자 혼자서 인적이 드문 산 속을 다닌다는 것은 의문이었습니다. 당시 산골 마을은 초가집이었습니다. 전기도 없이 호롱불에 불밝히던 시절이었습니다. 산짐승들도 많았습니다. 칠흑같은 한 밤 중에 산 속으로 여자 혼자 다닌다는 것은 거의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마을 청년들은 그 때부터 외딴 집을 집중적으로 감시했습니다. 밤마다 청년들은 당번을 정해 외딴 집에서 벌어지는 일을 살폈습니다. 몇 일이 지난 후 외딴 집의 그 아내가 한 밤 중에 집을 나섰습니다. 마을 청년들이 긴장했습니다. 그 아내는 주변을 살피다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청년들은 주요 길목에 숨어서 그 아내가 어디를 다녀오는지 숨을 죽여가며 미행했습니다. 너무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다보니 청년들은 더 이상 미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거의 새벽이 다 되서야 그 아내는 산에서 외딴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청년들은 잠도 못자고 감시를 했기에 각자 집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습니다. 다시 저녁이 되었습니다. 외딴 집의 아내는 아궁이에 다시 불을 지폈습니다. 청년들은 다시 모여 냇가를 건너 외딴 집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아내는 아궁이의 가마솥에 무엇인가를 끓이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아궁이에 나무로 불을 지피던 시절이었습니다.



청년들은 오랫동안 외딴 집 근처에 숨어서 지켜봤습니다. 아내는 가마솥에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끓였습니다. 마치 뼈나 고기를 고는 듯 했습니다. 그 후, 아내는 무언가를 고와서 만든 국물을 대접에 담아서 방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집 안에서 남편의 인기척이 들렸습니다. 청년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 혼자 사는 듯 했지만 남편은 집 안에서 숨어서 지낸 것 같았습니다. 청년들은 일단 마을로 철수했습니다. 날이 밝으면 외딴 집을 찾아가 가기로 자세히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다음 날 오전, 청년들은 모두 모여 외딴 집으로 몰려갔습니다. 그리고 초가집 방문을 두드렸습니다. 아내가 조용히 나왔습니다. 갑작스럽게 청년들이 들이닥치자 놀란 모습이었습니다. 청년들은 그 집 아내에게 여러가지를 질문했습니다.
청년 : "어젯밤에 가마솥에 무엇을 끓인 것인가요?"
아내 : "......."

청년 : "그저께 밤에 산 속에 올라가는 것을 봤는데 왜 올라가셨나요?"
아내 : "......"

청년 : "말 좀 하세요. 어젯밤에 남편이 방안에 있는 것을 봤는데 어디 있지요?"
아내 : "......"

청년들은 말이 없이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마구 다그쳤습니다. 
청년 : "왜 말을 안하는 겁니까? 가타부타 말을 하세요."
아내 : "저희 남편이 병이 있어요. 그래서...(눈물)"

아내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청년들은 그 아내의 눈물을 보자 다그칠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계속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런데 방문이 열리고 남편을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말을 했습니다.
남편 : "청년들, 왜 그러시오. 내가 이렇게 병이 들어 아내가 고생이 많아요. 나는 이 몰골로 밖에도 못나가고..."
청년 : "....(헉)...."

남편은 심각한 한센병(나병, 문둥병) 환자였습니다. 청년들은 놀랐습니다. 마을에 문둥병 환자는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청년들은 인사도 못하고 도망가듯 그냥 마을로 혼비백산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놀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서 그 부부를 내쫓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마을 이장집에서 임시 회의가 열렸습니다. 원로들도 외딴 집 부부를 내쫓기로 결론이 났습니다.

한센병은 나병(癩病)이라고도 하는 전염병입니다. 하지만, 나병이나 문둥병이라는 말은 한센인들이 싫어하므로, 한센병으로 부르는게 예의라고 합니다.

원인균인 나균에 의하여 피부와 말초신경을 주로 침해하는 만성전염성 면역 질환입니다. 나균은 항생제 투여를 통해 박멸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예전부터 한센병에 대해 이야기가 많은데 구약성서에서는 천벌로 묘사될 정도로 무서운 병이었고 우리나라에서는  문둥이가 욕설이 쓰일 정도였습니다.

일제 시대에 소록도에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시설이 세워졌지만 인권이 박탈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 멸시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오후 늦게 외딴 집으로 다시 갔습니다. 그런데 외딴 집 부부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방문도 열려 있었습니다. 그 사이 외딴 집에 살던 부부는 산 속으로 도주한 것입니다. 워낙 살림살이도 없던 집인지라 옷가지와 간단한 세간살이 물건만 챙겨서 도망가 버린 상태였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아궁이의 가마솥을 찾았습니다. 가마솥은 들고 가지 못했습니다. 가마솥 안에는 밤새 끓였던 고깃국이 있었습니다. 노인들은 그것을 보더니 놀랐습니다. 가마솥 안에는 동물의 뼈가 아니라 사람의 뼈를 곤 것 같다고 했습니다. 청년들은 그 부부를 뒤쫓아 가려고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사실 당시 한센병 환자가 많았는데 산골 마을에 몰래 들어와 사는 부부였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청년들이 밝혀낸 일이지만 그 집의 아내가 밤에 간 곳은 놀랍게도 산 넘어 다른 마을의 공동묘지였습니다. 사실 공동묘지라기 보다는 묘지가 많은 산이었습니다. 그 아내는 사람이 죽어서 묘지에 뭍히면 한 밤 중에 몰래 집을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밤새 그 묘지를 파헤쳤습니다. 그리고 죽은 시체의 일부를 외딴 집으로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 후 아내는 시체의 일부로 곤 국물을 남편에게 먹였다는 무섭고도 안타까운 사연입니다. 즉, 아내는 남편을 낫게 하려고 어두운 한 밤 중에 묘지를 파헤칠 정도의 지극정성을 보였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의 뼈를 곤 국물을 먹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근거없이 허황된 루머가 있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국내에서는 어린 아이가 납치되는 범죄가 발생했던 시절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말도 안되는 일이 산골 마을에서 발생했던 것입니다. 아직도 산골 마을에서는 당시의 외딴 집 터가 남아 있습니다. 그 부부가 도주한 이후 아무도 살지 않습니다. 한편, 한센병은 항생제 투여를 통해 이제 박멸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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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그러운 신록과 꽃들이 아름다운 오월입니다. 아파트의 화단과 잔디밭도 푸르름이 넘실거립니다. 이맘 때가 되면 잊지못할 아파트 주민들과의 사연이 생각나곤 합니다.

아마도 6~7년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아파트 단지에 저희 가족과 친하게 지내는 세 가정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한 가족이 다른 아파트 단지로 이사를 가서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아파트 단지의 세 가족이 친하게 지내게 된 것은 아이들로 인해 맺어진 것입니다. 세 가족의 아이들이 같은 유치원에 다녔고 같은 아파트 단지였기에 아이들과 아내들이 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편들도 유치원 운동회를 기점으로 자연스럽게 식사를 하면서 친하게 되었습니다. 세 가족은 각각 두명씩의 아이들을 두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또한, 각 가족의 아이들은 각각 2년 터울의 동성이라는 공통점도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유치원 운동회가 끝나고 있었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치원 운동회는 보통 토요일에 열렸습니다. 세 가족은 각각 부부와 아이들이 모두 모여 저녁 회식을 했습니다. 모처럼 귀가 걱정이 없는 동네에서 만난 남자들은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마셨습니다. 부인들은 그들 대로 정겨운 수다로 신이 났고, 아이들은 함께 모여 있다는 것 만으로도 모두 신나는 자리였습니다.
 
저녁식사 자리가 끝나고 남자들은 2차로 맥주를 마시러 갔습니다.(저와 K 아빠와 S아빠로 칭하겠습니다.) 부인들은 한 집으로 함께 가서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저녁 식사부터 과속으로 술을 마셨던 남자들은 이미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습니다. 그나마 덜 취한 K아빠가 이만 자리를 끝내자는 제안으로, 저와 S아빠를 비롯한 세 남자는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오던 중, 아파트 단지의 잔디밭에 잠시 누웠습니다. 아마도 술을 깨고 집에 들어가야 겠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누군가 제 몸을 흔들며, 카랑 카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습니다.
"아니, 여기  누워있으면 어떡해요? 빨리 일어나세요."
"...누구...."(헉)

[사진] Iron & Wine 표지 "Our Endless Numbered Days"


아내가 노려보듯이 누워있는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뿔싸, 잠깐만 잔디밭에 누워있다가 집으로 가려다가 잠이 들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깜짝 놀라서 잔디밭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내는 흐느적거리는 저를 부축해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제가 잔디밭에서 잠이 든 것은 그 당시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집에 와서 저는 아내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동네 창피하게 이게 뭐예요?"
"미안해. 잠시 잔디밭에 누워있다가 술깨고 가려다가..."

그리고, 저는 취기도 있고 아내의 잔소리를 피해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 곤히 잠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내가 누군가와 통화를 길게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둘은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심각하게 나누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는 전화에 대고 마구 웃는 것이었습니다. 전화가 끝난 후 무슨 일인지 궁금했습니다.
 
"무슨 일인데 전화를 하면서 그렇게 크게 웃는 거야?"
"참 한심한 남편들 이야기 했어."(피식 미소를 지었습니다.)

"한심하다니..."
"어제 저녁에 당신이 잔디밭에 누워 있었잖아. 그런데 그 시간에 S아빠도 다른 잔디밭에 누워서 잠들었다는 거야. 그러니 웃음이 안나오겠어."

그렇습니다. 전 날 밤, 저와 S아빠는 아파트 단지 앞에서 헤어졌는데 그 후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아파트 부근 잔디밭에서 누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각 다른 잔디밭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자 저를 찾아나섰고, 비슷한 시각에 S엄마도 남편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전 날 밤, 똑같이 겪었던 황당한 일에 아내와 S엄마는 깔깔대며 웃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저와 S아빠는 가족모임이 있더라도 각각 아내의 눈치를 살펴야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일찍 귀가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오래 지난 일이지만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찔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때 왜 그랬을까?" 혼자 생각하면 씁쓸한 쓴 웃음을 짓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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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올해 4월달이 아내와 결혼한 지, 13주년이 되는 달입니다. 지난 14일이 그 날이었습니다. 그 날은 커플없는 사람들이 자장면 먹는 '블랙데이'라고도 한다던데. 그런데 올해에도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렸습니다.

낮에 휴대폰 문자가 하나 왔습니다.
"우리 허니 결혼기념일 축하해. 행복한 하루 되길 바래. 당신의 여보가."

그제서야 결혼기념일인 것을 알았습니다. 여전히 익숙치 않은 답신 문자를 보냈습니다.
"헉. 오늘이네. 일찍 퇴근해야지."

참으로 무심한 남편입니다. 사실 문자로 이렇게 주고받은 것도 처음인 것 같습니다. 얼마나 남편이 무심했는지, 아내는 올해 이전의 시기에는 결혼기념일이 되기 몇일 전부터 알려주곤 했었습니다. 가정 보다 일에 몰입했던 젊은 날들이었습니다. 올해는 아내가 의외로 문자를 보냈는데 아마도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남편의 문자를 받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올해는 일찍 퇴근해 함께 소박한 외식을 했습니다.

벌써 13년여가 지났지만, 결혼기념일을 생각하니 아내를 거짓말로 속여서 청혼을 했던 옛 추억이 떠오릅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가족의 장손인데다 가진 것 없고 보잘 것 없는 놈과 결혼해준 아내가 정말 고맙습니다. 아내(이하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은 어떠한 예측도 없었습니다. 당시 아리따운 처자였던 그녀와 첫 만남은 우연이었습니다.

당시 그녀의 친구 K와 업무상 알고 지냈는데 K가 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K가 자리를 주선해 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친구인 K가 다른 남자에게 그녀를 소개팅시켜주는 자리에 제가 동석하게 된 것이 우연의 시작이었습니다. K는 소개팅 자리에 뻘쭘하니까 저랑 같이 가자고 해서 동행한 것이 우연의 시작이었습니다.

오직 가진 것이라고는 무모한 자신감 밖에 없었던 저는 넉살도 좋게 남의 소개팅 자리에 참석해 그녀와 다른 남자의 소개팅을 잠시 지켜보면서 그녀에게 더욱 마음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처자의 소개팅 상대 남자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주지않고 혼자서 술만 잔뜩 시켜놓고 엉뚱한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았습니다. 원래 말이 없는 편이었는데 그 자리에서는 어떤 용기로 왜 그랬는지.

처음 본 그녀의 모습에 한 눈에 반했던 겁니다. 그녀와의 기회는 앞으로는 없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녀와 소개팅 자리에 나왔던 남자는 저의 방해공작(?) 때문인지 다른 약속이 있다고 갑자기 일어섰습니다. 그냥 나가버리려는 그 남자에게 제가 "식사 값을 지불하고 가시는 것이 어떻겠는지" 조심스럽게 묻자, 그는 싫은 눈치였지만 다행스럽게도(?) 저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일부 식사값은 내고 나갔습니다. 당시에 그 분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혈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 그녀가 마음에 들어서 그런 일인데 조금은 심하게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 날은 잘 되었다 싶어 아내와 K와 함께 노래방에 가서 실컷 흥겹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해할 수 있어 소개하자면 그녀의 친구 K는 이미 기혼이었으니 들러리일 뿐이었습니다. 당시까지 살아오는 동안 어떤 여자에게도 바래다주지 않았는데 그녀에게는 처음으로 택시를 타고 집에 까지 바래다 주었습니다. 그 날 택시에서 저는 인사불성으로 잠이 들어 오히려 그녀가 저를 걱정하는 처지였으니 지금 생각하면 한심한 놈이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만남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업무상 술자리가 많았던 저는 밤 10시 이후 몰래 빠져나와 그녀의 집 앞에 나타나 데이트를 했습니다. 물론 갈 곳이 없으니 맥주집이 대부분의 데이트 장소였습니다. 그런 만남이 계속 되는 동안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해가 바뀌고 만남은 계속 됐습니다.


그녀와 이제는 결혼을 해야 겠다고 결심을 했지만 어떻게 청혼을 해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아는 선배의 조언을 받아 그녀가 나와의 결혼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마음을 알고 싶었습니다. (사실 사랑하고 있지만 제가 가난한 집안의 장손이라는 책임감이 엄습해오면서 그녀가 고생할 수도 있는데, 원하지 않는 결혼에 매달리게 되면 그녀가 불행할 수도 있어 거절하면 그녀의 행복을 위해 깨끗하게 포기하겠다는 각오도 있었습니다.)
 
저녁에 자주 만나던 그녀의 집 앞에 있는 호프집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이미 선배와 1차에서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그녀를 만난 이후 처음으로 정말 심각한 표정으로 말없이 500 CC 맥주만 들이켰습니다. 그녀의 궁금증이 커져 갈 무렵, 고개를 푹 숙이고 더욱 심각한 표정을 짓고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나, 회사에서 잘렸어. 시골에 내려가려고 해. 우리 시골에서 내려가서 같이 살자."
청천벽력 같은 저의 이야기에 그녀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습니다.

"정말? 거짓말 아니야?"
"응. 정말이야. 시골 가서 같이 살자."
그녀는 제가 이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한 것도 처음이지만 거짓말을 못하는 저를 잘 알고 있었기에 말문을 맏고 한참 동안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녀가 생각하는 동안에도 저는 혼자서 맥주만 마셨습니다. 사실은 '그녀가 어떤 말을 꺼낼까' 속도 타고 목이 타서 맥주를 계속 마신 것이었습니다. 잠깐 기다리는 시간이 마치 천년의 시간 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녀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래. 시골 가서 같이 살자."
갑자기 하늘에서 일곱 색깔 무지개가 나타나고 환희의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행복한 표정을 숨기고 맥주만 계속 마셨습니다. 이제는 속으로 기뻐서 마셨습니다. 마음은 날아갈 것 같고 쾌재는 부르고 싶지만 억지로 참으면서 맥주를 마셨습니다.
 
미안하고 이기적인지 모를 청혼이었지만, 이제는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됐으니, 얼마나 기쁘지 아니한가. 그렇게 몇십분 동안 혼자 만의 기쁨을 만끽한 후 결국 그녀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거짓말 하고는 또한 참지 못하는 성미라서 이실직고했습니다.

"사실은 회사 잘렸다는 말은 거짓말이었어."
깜빡 속은 그녀는 저의 말이 끝나자마자 마구 저의 온 몸을 구타했습니다. 아무런 아픔을 느낄 수 없는 구타를 실컷 행복하게 맞이 했습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그녀는 만나는 동안 저의 인생을 조금씩 알고있었기에 너무 불쌍해 거절할 수 없었고 자신이라도 곁에 있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도회지에 자란 그녀가 시골 생활을 어찌 안다고 그런 무모한 결심을 했는지.)

그리고 우리는 그 날 이후 일사천리로 결혼을 위한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그 후에도 결혼식에 이르기까지는 양가 부모의 반대와 봉착해 우여곡절도 많았습니다. 그렇게 결혼을 해서 예쁜 두 딸아이를 두고 잘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장손의 아내이자 맏며느리로서 집안 어르신들 잘 모시고 아이들 잘 키우는 현모양처입니다. 그리고 모자란 남편을 새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저도 홀로이신 장모님을 먼저 생각하고 잘 모시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아직도 표현에는 항상 서투른 남편이지만, 단지 믿음 하나만으로 부족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준, 착한 그녀에게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 날 당시 이후 스토리는 다음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다음 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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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돌아가신 장인 어른의 기일을 앞두고 충북 제천에 있는 납골당에 다녀왔습니다. 장모님과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함께 3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타고 오전 이른 시간에 출발을 했습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초여름 날씨이고 고속도로가 봄꽃 구경 행락객들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해 다소 힘든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납골당에 모셔진 어르신을 뵈러 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아이들도 힘들지만 잘 참아주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이전에 장인 어른은 이미 돌아가신 터라 생전의 모습을 뵌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결혼 후 장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 벌초하러 가면 낫질에 일가견이 있던 저는 열심히 묘지의 잡초와 잡목들을 제거하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장모님은 당신의 남편을 위해 뻘뻘 땀흘리면서 쉴새없이 낫질을 하는 사위가 듬직하게 느꼈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지난해 장인어른의 묘소가 재개발 지역이 되면서 지금의 납골당으로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지 벌써 15년이 넘었습니다.

장모님의 상념과 눈가에 비친 이슬 방울

지난해 당시는 바쁜 업무로 인해 찾아뵙지 못했기에, 올해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납골당을 찾게 된 것입니다. 장모님은 장인 어른이 돌아가신지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장인 어른을 찾게 되면 여전히 깊은 상념이 드시나 봅니다. 아이들과 사위들도 있어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려 애쓰시지만 어느새 장모님은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가족들이 함께 납골당에 모셔신 장인 어른의 자리에 꽃장식도 새로 하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가족 예배도 드렸습니다.


가족들과 일정을 끝마치고 납골당을 나오다가 특별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천국우체국 우체통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하늘나라로 보내는 글을 쓸 수 있는 공책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는 없지만 그리운 하늘나라의 사람들을 위해 천국우체국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천국우체국으로 가는 우편함 앞에서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결혼하면 장인어른과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을 꿈꾸었는데 비록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의 아내와 딸이 사위와 함께 잘 살고 있으니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켜보시라'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천국우체국 우체통 옆의 벽에는 꽃잎편지라는 시 구절이 붙어 있었습니다.


사실 납골당에 오기 전 까지는 천국우체국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일반에도 천국우체국과 같은 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살펴보니, 전국의 주요 납골당에는 천국우체국과 같은 곳을 마련하고 있고 사이버 공간에도 서울시의 추모의집을 비롯한 여러 하늘나라우체국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람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그리움과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배달되지 않는 하늘나라우체국의 편지이겠지만 그 간절한 마음은 하늘로 닿아 통하지 않을까 기원해 봅니다.

가슴 뭉클한 사연과 애절한 그리움

잠시 둘러 본 하늘나라우체국에는 가슴을 저미는 그리움을 담은 여러 사연들이 가슴뭉클하고 눈시울을 젖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어머니는 거의 매일 딸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었고 너무나 애틋하고 애절한 사연이라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찡하게 했습니다. 
보고싶은 딸아

잘 지내지.
어저께 까지 쌀쌀하더니만 오늘은 덥다는 생각이 든다.
온도차가 심한 요즘 건강한지.
너무 보고싶어 견딜수가 없어.
일하다가도 문득문들 네 생각에 눈물이 난다.
건강해야 돼. 그렇게 힘들어 했으니 하늘나라에서는 건강하게 하고싶은 일 하면서 마음껏 보내.

이별이란게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가슴아플까.
점더 잘해줄걸.많이 사랑해줄걸.이별후에야 후회하는 바보같은 엄마였구나.
먹고싶은것 실컷 사 주지도 못했고 갖고 싶은것 다 해주지도 못헀는데
이렇게 쉽게 이별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니?
너무나 긴 병원생활에 한없이 지쳐서 힘들어하던 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눈물이 흐른다.

그래도 꿋꿋하게 잘 참아내던 우리 딸이었는데 엄마가 잘 지켜줘야 했는데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다음에 만나면 못해준 사랑 듬뿍 주련다.
엄마 용서해. 그리고 웃는모습 꿈속에서라도 보고싶어.
딸~아 딸~아 사랑해.

먼저 아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남편이 띄운 담담한 사연은 얼마나 두 부부의 사랑이 아름답고 깊은지 느껴지는 가슴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내에게

어느덧 4월하고도 중순이 다가오네.
잘 지내고 있지..오랜만에 오네..
시간이 이리도 잘 가는지..잡고만 싶어...
당신이 나를 잘 이해해 주고 ..
너무 고마워 ..나만 그리 생각하는 거 아니지...
알지..난 항상 ..아니. 영원히 두 딸만 바라보며 살 거라는 거..

이래야 내가 굳게 맘을 먹을거 같아..핑계라도 좋아..
아니 절대 핑계가 아니라는거 알아줬으면 해..
실수하지 않는 실수를 그래도 맘 단단히 먹고 ..
잘지켜가며 살께.. 미안한 맘은 평생 간직하고 살께..
미안함을 더 이상 안하게끔 할께..

울 딸들 잘키울께...중3이 된 큰 애도 ..열심히 하는거같아..
막내역시도..한차례 혼나고 아빠맘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너무 불쌍하지만 ..강하게 키우려면 ..어쩔수없잔아..
이제 5년생인대..자신이 알아서 ..해야지..물론..뒷바침은 잘 할께..

처형네나 처제..처가집 아버님 어머님..처남..
요즘은 통 연락을 못하고 사네..
내가 먼저 해야지...아무래도 ..
당신보내고...우리랑 연락 자주하면 많이 생각날까 ..그런 걱정도 들어..
서로 그런것 같아..하지만..알잖아..당신과약속..
평생 아버님 어머님으로 모시며..살 거라고...가까이..많이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울 하늘 아래 사는 동안.. 그렇게 살거야...
항상 우리가족들...잘 될 수 있게...도와줘...
아버님 한테도 가봐야하는데.. 나같은 아들도 없을 거야...죄송할 뿐이야..
당신한테도 담주에 갈께...
잘 지내고...
또 올께..

사랑해...나 죽는 그 날까지..
당신밖에 없다...
잘자....미안하구.

하늘나라에 있는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여러 편지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한 사연들을 읽다보면, 우리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진지하고 숙연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 하나의 사연들이 감동으로 밀려와 눈물이 자꾸 흐를 듯 하여 애써 참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행복과 사랑의 우리 인생



장모님이 납골당에서 하신 말씀이 뇌리에 남아 맴돌곤 합니다. 자식들이 미리 준비한 장인 어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젊은 사진을 준비했어? 그러면 나는 늙어보이잖아." 장모님은 첫 사랑과 결혼하신 후 시집살이도 심하게 하셨고 일찍 장인 어른을 떠나보내시고 홀로 자식들을 키우시면서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면 당신의 남편에 대한 원망도 있을 법한데, 장인 어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히 그 당시 젊은 시절의 마음 그대로 남아계신 것 같았습니다.
 
하늘나라로 보내는 애절한 사연을 담은 천국우체국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영원한 이별과 그리움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애절한지 모릅니다. 서로 미워하고 노여워하고 살기 보다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하루 하루를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복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서로 사랑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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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지인을 만나 40대 후반 부부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인에 의하면 40대 후반부터 부부 문제가 많다고 합니다. 주위에 보면, 40대 후반부터 다수의 가정이 우울증으로 인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편이 우울증 걸린 아내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기도 한답니다.


지인으로부터 들었던 A씨 친구 부부의 실제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인의 친구 A씨는 단란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가족을 위해 항상 직장 생활에 성실한 보통의 남편입니다. A씨는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잦은 야근과 늦은 귀가도 아이들과 가정을 위한 것이라 A씨는 생각했습니다. A씨 부부는 슬하에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A씨 아내는 결혼 후 직장을 그만 두고 가정에 충실한 전업 주부였습니다. 아내는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에 온갖 정성을 쏟았습니다. 아이들에 대한 공부와 살림은 늘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A씨의 아내는 남편을 잘 내조하고 아이들 잘 키우는 현모양처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남편은 열심히 일하고 아내는 가정에 충실한 가정에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20여년간 A씨 부부는 단란한 가정을 일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느새 중고등학교를 거쳐 모두 대학에 진학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A씨 부부가 원했던 대학에 들어갔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도 귀가가 늘 늦었습니다. A씨는 여전히 직장 일에 충실했고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해서 들어와서는 아내에 잔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마다 A씨는 자식들이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한 것을 아내 책임으로 돌리곤 했다고 합니다. 아내는 억울하고 슬펐습니다. 오직 남편과 아이들만을 위해 살았는데 자신은 가족들로부터 외면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잠깐] 그리스 로마 신화 중 악녀 메데이아 이야기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메데이아는 자신의 친아들 둘을 살해한 희대의 악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흑해 연안 소도시의 왕녀였던 메데이아는 남편 이아손에게 버림받자 남편의 새 아내가 될 글라우케를 죽이는데 이어 자신의 자식들을 죽여버립니다. 이아손에게 가장 끔찍한 고통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가 남편이 가장 아끼는 자식들을 복수의 대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실제 우리 주변의 생활 속에서도 남편의 무관심으로 인해 고통받는 아내가 자식들을 살해한 사건들이 종종 발생합니다.


그 때부터, 아내에게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항상 안절부절 못하고 감정 기복이 심해졌습니다. 사전에 아무 통보도 없이, 몇일 동안을 집을 비우고 가출한 일도 있었습니다. 가정 살림도 신경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집에 있어도 혼자서 창 밖을 응시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웃음도 사라졌습니다. 아내는 돌출행동도 많아졌습니다. 가정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남편 A씨는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찾았습니다. 아내는 심각한 우울증이었습니다. 의사는 가정을 위해서는 아내를 당장 병원에 입원시키라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A씨는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A씨는 몇일동안 고민했지만 아내의 우울증이 더욱 심각해지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아내가 자살 충동까지 느끼는 것을 목격하고는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정신병원에 아내를 강제 입원시켰습니다. 우선 아내의 치료가 중요했습니다.

A씨는 정신병원에 아내를 입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어쩌다 자신의 가정과 아내가 이런 고통 속에 빠지게 됐는지 자책감이 밀려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습니다.

A씨는 직장 일을 끝마치면 아내가 치료를 받고 있는 정신병원을 찾곤 했습니다. 아내는 치료받는 동안 점차 우울증이 호전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3개월 만에 아내는 퇴원을 했습니다. A씨도 그 사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지난 20여년간 아내에게 모든 집안 일과 자식들 교육을 맡기고 가정에 등한시했던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아내와의 대화도 많아졌습니다. 함께 쇼핑도 하고 외식도 했습니다. 아내가 해달라고 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고 있다고 합니다. 강북에 살고 있었는데 아내가 강남으로 이사가자고 하자 그냥 이사도 갔습니다. A씨 부부는 다시 행복한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지인은 A씨 부부의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 많다고 합니다. 40대 후반 부부들 중에 흔히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아내의 우울증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나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최근 자식들을 목졸라 살해한 주부나 생모를 살해한 여인도 그 원인은 우울증이었다고 합니다.

보통 우리나라에서 40대 후반 나이가 되면 아이들이 부모 품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내는 빈 자리를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그 빈자리를 남편이 채워주지 않으면 아내는 공허함에 빠지고 우울증으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아내가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헌신해 온 가정일수록 아이들이 장성하면 아내의 우울증을 조심해야 합니다.

저도 40대 중반이다보니 A씨 부부의 이야기가 남의 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우울증은 결국 남편 책임이 클 것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는 아내와 영화도 자주 보고 취미생활도 같이 가져보고 대화도 많이 해야 겠습니다. 부부가 함께 아이들 교육도 챙기면서 아내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강요하지도 말아야 겠습니다. 아내에게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려하며 살아야 겠습니다.
 
[추가] 댓글을 보니 슈퍼맨을 원하는 사회문제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남자들, 특히 아버지들에게는 가족생계 부양을 비롯해 과도한 책임감이 자리잡고 있기도 합니다. 40대 후반 부부들 중에 아내가 우울증으로 힘든 경우도 있지만 남편이 반대로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부부 문제에 있어 남편과 아내가 함께 서로 대화와 배려가 필요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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