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8.18 김대중-노무현 서거, 민주주의는 죽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35)
  2. 2009.08.13 김대중의 노무현 추모사와 YS MB의 화해(?) by 진리 탐구 탐진강 (60)


민주주의는 죽었습니다. 야만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87일 만입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김대중-노무현의 서거는 민주주의의 죽음과 다를 바 없습니다. 현 정부 직전의 두 전직 대통령이 나란히 운명을 달리하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추모 열기는 다시 김대중을 추모하는 국민들의 마음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대해 '나의 반쪽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자신의 반쪽을 잃고 그렇게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 동안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두 전직 대통령이 이룬 민주화 시대를 제거하고자 했던 현 정부의 뜻 대로 이루어진 셈입니다. 비정하고 비열한 야만의 시대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의 소중한 가치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가치, 민주주의 가치, 평화의 가치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물질 만능주의가 사람 보다 우선시되고 있습니다. 반역과 반목과 대결을 부추기는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하나라도 더 갖기 위해 가난한 자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사회적 약자들은 사지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얼마 전 8. 15 광복절이 지나갔습니다. 광복 64주년, 우리나라는 무엇이 변했습니까. 일제 36주년, 그 오욕과 반역의 역사는 광복 후 64년 동안 여전히 계속 되고 있습니다. 독립투사들과 후손들은 아직도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친일파 반역자들의 지금도 권력과 자본의 핵심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고 있습니다. 청산하지 못한 반역의 역사는 어렵게 꽃피운 민주주의 마저도 질식사시켰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루지 못한 광복이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이루고자 했던 민주주의였습니다. 그러나 뿌리깊은 반역과 배신의 역사는 어둠 속에서도 스멀스멀 살아남아 민주주의를 목졸라 살해했습니다. 비록 주어진 광복과 민주주의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가 지켜나가고 키워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매정하게도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우리는 그 소중함을 모르고 야만의 시대에 그 민주주의를 빼앗겨 버렸습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해 납치 살해 위협 후 생환(좌)과 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한 사형 선고 후 장면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누군가 야만의 일제 시대에 노래했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야만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야만에 기생해 부역하는 사람들이 완장차고 거리의 사람들의 입을 막고 눈과 귀를 멀게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2009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평생 5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결국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2009년은 그에게서 반쪽을 빼앗았고 남은 반쪽 마저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영원히 살아갈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반역과 오욕의 역사 속에서 다시는 눈물 흘리지 않는 곳으로 갔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없이도 편안히 영면할 수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그 곳으로 갔습니다.

친일파들과 독재자들은 살고 독립투사들과 민주화 주역들은 죽었습니다. 비굴하게 살아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야만의 시대는 현대사의 질곡입니다. 양심을 저버리고 불의와 부도덕과 타협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을 가르치는 야만의 역사입니다. 정직과 원칙을 지키면 손해보고 반칙과 편법으로 살라고 강요하는 사회입니다. 김구 선생도 야만의 역사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평생 독립된 하나의 조국에 살고자 했던 김구 선생은 독재자의 하수인에게 암살당했습니다. 그 비극의 역사는 2009년에도 남아 있습니다.

김대중은 민주주의와 원칙의 양심을 지켰습니다. 김대중은 독재정권으로부터 숱한 투옥과 고문, 납치와 망명, 연금을 당하는 동안 늘 죽음의 위험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1971년 대통령 후보 지원유세 때는 정적에 의해 교통사고로 가장한 죽음의 위기를 당했고, 1973년 유신독재 때는 일본 도쿄에서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부원들에게 납치당해 바다에 수장되기 직전 극적으로 생환했습니다. 1980년 5.17쿠데타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신군부세력의 군사재판정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당했습니다. 또 독재자들은 전도의 보도인 '빨갱이'라는 누명을 그에게 씌웠습니다. 김대중이 독재와 타협하고 살았다면 김대중은 부귀영화를 누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의와 야만의 역사와 타협할 수 없었습니다. 양심을 저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 불의에 항거해 '행동하는 양심'으로 살게 했던 것은 바로 신앙의 힘이었습니다.

김대중은 불의와 독재 앞에 언제나 당당했고 평생 민주주의를 위해 바쳤다

김대중은 늘 공부하는 지성인이었습니다. 김대중은 1983년 미국 망명시절에 받은 미국 에모리대 명예법학박사를 시작으로 7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2년에는 러시아 외교아카데미로부터 정식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김대중은 지식인으로서 수십권의 책도 썼습니다. 1980년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고 가족에게 보낸 '옥중서신'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악독한 독재를 피해 미국 망명 시절에는, 하버드대학에서 펴낸 '대중경제론'  '3단계통일론'을 썼습니다. 그 후에도 많은 책을 출간했습니다. 기존 대통령 중 가장 학습과 탐구를 많이 한 지성인었습니다.

김대중은 독재의 잔당들과 야합하지 않았습니다. 김영삼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독재정권의 하수인들과 3당 합당이라는 역사의 반역의 저질렀습니다. 김대중은 노무현과 함께 반민주 반역의 세력들에게 양심을 팔지 않았습니다. 지켜야 할 가치를 지켰습니다. 김영삼은 권력을 위해 야합을 했지만 김대중은 오직 민주주의를 위해 가시밭길을 갔습니다.

김대중은 결국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정통 민주주의 정권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를 했습니다. 그리고 2000년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세계적 권의 노벨위원회는 '김대중은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치열하게 살아왓고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했습니다. 김대중은 서거하기 직전까지도 민주주의와 서민경제 그리고 남북관계의 3대 위기를 걱정한 지도자였습니다. 자신의 개인적 삶 보다는 민주주의와 서민 그리고 평화를 위한 소중한 가치를 늘 생각했던 것입니다. 

김대중이 평생 자신의 죽음 앞에서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한반도 평화라는 민족의 사명과 과제는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살아남은 자들, 그리고 행동하는 양심들에게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부활할 민주주의를 위해 오늘 국화꽃을 영전에 바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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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독한 병환으로 여야 정치인들의 병문안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아무리 극한 대결을 하더라도 인간적인 도리와 예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헛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 악담을 쏟아붇던 정치인들이 갑지기 180도 바뀌어 화해의 손짓을 내미는 것이 개운치 않기도 합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 동안 평생 민주화 동지라고 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향해 비수같은 극언을 해왔습니다. 그러더니 이제는 혼자서 화해했다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서로 노력해 온 양김씨가 화해를 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김영삼의 화해는 일방적 화해였습니다. '네가 너에게 욕한 것 나는 괜찮아' 식이었습니다. 스스로 반성과 화해를 한 것이라면 김영삼의 공개적 메시지는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민주화 동지라는 사람이 왜 그토록 저주를 퍼부었을까요? 혹자는 김영삼이 김대중에게 갖고 있는 열등감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김대중에 대한 김영삼의 DJ 콜플렉스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를 넘는 김영삼의 DJ에 대한 비난으로 나타났다는 분석입니다. 만일 그런 이유라면 축하는 못해줄 망정 비난으로 일관하는 태도는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병문안을 갔습니다. 나라의 대통령이 국가 원로인 김대중을 위해 병문안을 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시 추모사도 못하게 했던 일입니다. 고인의 가족들이 원하던 추모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현 정부가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죽음 앞에서 인간적인 예의도 없는 현 정부의 비정함을 보여준 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MB는 이번에 병문안을 하면서 민주화의 상징인 DJ를 치켜세워주었습니다. 환자 앞에서 쾌유를 빌고 덕담을 하는 것은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그렇지만 평소와는 정반대의 모습이었기에 MB의 태도는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듯 합니다. 우리는 평소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을 가져야 그 사람의 진정성을 믿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MB의 행동과 말은 아쉬울 수 있는 것 같습니다.



DJ의 병환으로 모처럼 여야 정치인들이 일부 해빙의 무드를 열고 있습니다. 특히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로 불리던 DJ와 YS 정치인들이 서로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과거를 다시 되새기며 화해를 하기도 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진정성을 기대해 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YS와 MB가 소인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병문안을 하면서 정치인들 모두가 말했던 그 민주주의가 진정으로 넘실대는 나라가 되었으면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쾌유를 빕니다. 아울러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무현 영결식에서 추모사를 못했지만 그 추모사를 대신해 올려봅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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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