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11.01 무한도전 쌀 '뭥미', 웃음과 감동을 수확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7)
  2. 2009.10.04 신기한 꽈배기 고구마와 고구마 효능 7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34)
  3. 2009.07.30 군대가는 아들 뒤 아버지의 눈물을 봤다면... by 진리 탐구 탐진강 (40)
  4. 2009.05.12 빨래건조대와 골대가 텃밭에 왜 있을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14)
  5. 2009.03.09 벌교 주먹이시던 아버님이 약해지신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9)


또 한번 무한도전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무한도전 벼농사 특집 프로젝트 마지막 3부는 한시도 TV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감동의 도가니탕을 만들었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절친 초호화 스타 게스트들도 빛났습니다. 무한도전의 1년간 연말 결산을 보는 듯 했습니다.

한편으로,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시는 부모님도 생각났습니다. 쌀값 폭락으로 시름하는 농민들도 스쳐지나갔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농촌의 슬픈 현실입니다. 또한 대북 쌀 지원이 끊기면서 나라의 쌀은 창고에 쳐박혀있고 또 다른 세계에서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의 아이러니가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무한도전은 웃음과 감동 속에서도 인간 세상의 희노애락을 이야기했습니다.

혹자는 무한도전을 '무모하지난 끝내 이겨내고 웃음과 감동을 주는 도전이 아름답다'고 평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늘 힘들고 어렵지만 그 도전은 아름답습니다. 무한도전이 왜 다른 예능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벼농사 프로젝트의 유종의 미(米)이자 대미(大米)였습니다.

무한도전의 정(情)과 초호화 스타들의 추수 동참 빛났다

이번 무한도전 벼농사 프로젝트 마지막편은 지난 1년간 가꾼 벼농사를 최종 추수하는 것이 하일라이트였습니다. 유재석 박명수 전진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길 등 무한도전 멤버들은 추수를 도와줄 절친 스타 연예인들을 즉석에서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밥사준다고 하자 두말없이 달려왔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강화도까지 달려와주는 의리와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꽃미남 배우 김범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벼농사를 돕는 모습은 의외의 장면이었습니다. 그가 나타나리라 예상을 못했고 그렇게 오래 머물며 벼를 베는 낫질을 할 것이라 생각을 못했습니다. 걸그룹 카라(구하라, 강지영, 한승연, 정니콜, 박규리)의 등장은 역시 최고의 인기를 실감할 만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논두렁과 논에서 히트곡 '미스터'에 맞춰 카라는 물론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모두 함께 엉덩이춤을 추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김범이 좋아한다고 지목한 구하라와 벼를 베면서 서로 점점 다가가 호감을 드러내는 장면은 청춘남녀의 풋풋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김범은 논에 숨겨둔 콤바인 열쇠를 찾아 추수를 쉽게 끝내는데 결정적 역할도 했습니다. 한편, 김범을 초청했던 쩌리짱 정준하는 대장염으로 화장실을 오가며 촬영에 임하다가 결국 병원을 가야했지만 끝까지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스타들의 동참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쥬얼리(박정아 서인영 하주연 김은정), 가수 이민우와 바다, 힙합그룹 에픽하이(타블로, 미쓰라진, DJ 투컷츠), 개그맨 변기수 등 유명 연예인들이 총출동해 벼농사 추수의 일손을 거들었습니다. 바다의 논두렁 열창무대에 이어 새참시간의 창은 압권이었습니다. 애인 박정아가 나타나자 길(리쌍)은 예상치 못했는지 놀라서 벼에 숨어 수줍어하는 깜짝 만남 모습이나 그녀에 쌀다발 벼를 건네주거나 돌아갈 때 배웅해주는 장면은 영락없이 순수 청년의 이미지였습니다.
 


결혼식 일주일을 앞두고 타블로는 신부 강혜정을 향해 "청첩장 받으러 가는 날 이렇게 일하고 있다. 내가 평생 지켜줄게"라고 영상편지를 보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면서 무한도전은 인연을 소중히 하는 듯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동안 무한도전과 인연과 인맥이 되었던 스타 연예인들이 벼농사 추수의 보람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끝까지 남았던 게스트들이 직접 추수한 벼를 이용해 따뜻한 즉석 쌀밥을 지어먹는 장면도 훈훈했습니다.

우리 농촌과 벼농사 쌀의 소중함과 훈훈함이 주는 의미는?

이번 벼농사 프로젝트는 많은 화제를 뿌렸습니다. 2PM의 박재범이 등장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한국인 비하글 논란으로 미국으로 떠났지만 그 전에 무한도전 벼농사 녹화가 있었기에 벼농사 프로젝트 2부 방송에서 박재범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진행형인 박재범 사태는 소속사 대표 박진영의 대처 방식이나 네티즌들과 팬들의 공방 등과 맞물려 혼란스런 상황입니다. 다만 창창한 청년의 아까운 재능이 성급한 오류와 재단으로 끝나지않나 하는 몰인정 사회 분위기가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벼농사 프로젝트는 사실 매우 힘든 프로그램입니다. 무한도전이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3~4월에 논갈기하고 모판 만들고 5월에 모내기하고 6~9월에 김매기 등 벼를 보살피면서 10월에 추수를 하는 과정을 화면에 담는다는 것이 재미와 웃음을 주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큐멘타리 프로라면 모르지만 예능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결국 해냈습니다.
 


어떤 이는 논두렁에서 탈춤을 추고 돼지머리 고사를 지내고 가수들의 콘서트를 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예능을 하라는 것인지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무한도전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1년 동안 벼농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친환경 우렁이 유기농법을 활용해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쌀을 생산했습니다.
 
농촌은 요즘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쌀값폭락으로 농민들의 야적 시위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농촌과 쌀값 대책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한 태도와 푸대접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농가 수입이 25%나 줄어들 것이란 이야기도 들립니다. 나라에는 쌀이 쌓여있지만 대북 쌀 지원도 몇년째 끊기면서 남아도는 쌀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스턴트 식품이 범람하면서 우리나라 주식인 쌀 소비도 줄고 있습니다. 이번 무한도전 벼농사 프로젝트를 계기도 농촌의 소중함과 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정부도 농촌과 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겠습니다.

무한도전의 꾸준한 사회공헌과 새로운 변화의 시작인가?

이번 무한도전 벼농사 추수편 녹화가 있던 날은 박명수의 생일이었습니다. 그의 팬클럽인 데블스에서 특별히 축하떡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박정아가 연인 길을 위해 축하공연과 함께 막걸리를 새참으로 배달해온 장면도 무한도전만의 인간적인 정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전진이 곧 입대한다는 소식은 쓸쓸해 보였습니다. 하하가 입대할 때와 비교해보면 전진은 아주 짧게 화면에 나왔는데 1년 6개월 동안 함께 했던 무한도전 멤버로서 아쉬움도 클 듯 합니다.

전진의 하차에 이어 무한도전은 하하의 복귀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방황하던 길이 무한도전에 안착한 상태에서 하하의 복귀는 프로그램의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한도전은 원년 멤버들이 다시 재결성되는 셈이지만 그 동안 포맷에만 머무를 경우 식상함을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따라서 길의 역할 정립과 무한도전이 그 동안 추구했던 내용의 질적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벼농사 프로젝트는 새로운 실험마당이었습니다. 다음주 식객 미국 프로젝트도 변화의 연장선상인 듯 합니다. 앞으로 무한도전의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무한도전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울림이 큰 것은 역시 사회공헌인 것 같습니다. 단지 웃음만 파는 예능프로그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불우이웃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이번 벼농사 프로젝트를 통해 수확한 쌀의 이름은 '뭥미(米)'로 정해져 시청자들에게 마지막까지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 무한도전 쌀 '뭥미'는 벼농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재범을 비롯 게스트들은 물론 불우이웃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전에도 무한도전은 '듀엣가요제 앨범 판매수익금 전액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벌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한도전은 매년 무한도전 달력 판매 수익금으로 마련된 수 억원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해오고 있기도 합니다. 무한도전이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불우이웃돕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PD가 계속 보여줄 사람사는 세상을 기대하게 되는 벼농사 프로젝트가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무한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웃들에게도 무한한 관심과 배려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한도전의 정신이고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역경에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단 1%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무한도전은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인지도 모릅니다. 따뜻하고 훈훈한 무한도전 세상에 박수를 보냅니다.

시골에서 보낸 쌀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며칠 전에 퇴근해보니 시골 농촌에서 부모님이 보낸 햅쌀 쌀가마니가 도착했습니다. 가을에 벼농사를 추수하시면 부모님은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쌀을 보내주십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쌀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올해 내내 퇴약볕 밑에서 일하시며 어렵게 수확한 쌀을 보내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무한도전에서 추수를 한 이후 햅쌀로 따끈한 밥을 해먹는 장면은 바로 오늘 하루 한끼 식사를 하더라도 우리 농촌과 농부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보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농촌과 쌀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하는 하루입니다.
      무한도전 쌀 '뭥미'는 '한 톨의 쌀알에는 농부의 88번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를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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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추석명절을 맞아 주말농장 텃밭에 고구마를 캐러 갔습니다. 우리 딸아이들을 비롯 남동생 아이들도 함께 갔습니다. 고구마 캐기는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 편입니다. 자신들이 고구마를 직접 캐서 먹는 재미가 독특하기 때문일 듯 합니다.

지난 늦은 봄에 고구마를 심었는데 여름을 지나 잎과 줄기가 무성해 졌습니다. 고구마 줄기는 무침으로 만들어 먹어도 일품 반찬이 되기도 합니다. 저희 가족은 고구마 줄기를 반찬으로 즐기는 편입니다. 장모님이나 주위 이웃들에게도 고구마 줄기 반찬은 상큼한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고구마를 심을 때는 고랑을 높이 해서 줄기를 심었습니다. 고구마는 보통 줄기를 일정 간격으로 고랑에 차례로 심으면 각각 뿌리가 내려서 다시 줄기와 잎이 자라게 되는 식물입니다. 뿌리가 내리면 거기에 고구마가 생기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고구마는 구황 작물로 재배됐습니다.

고구마는 겨울에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대표적 구황 작품이었던 셈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에 시골에서 고구마를 삶아먹거나 군고구마로 구워먹곤 했습니다. 그냥 껍질을 깎아 생으로 먹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고구마는 시골 아이들의 간식이나 군것질 식품이었습니다. 서울에서는 고구마 맛탕이나 고구마 튀김도 별미였습니다. 이제는 주말농장 텃밭에서 아이들과 고구마를 캐면서 옛추억을 생각하니 감개무량합니다.

고구마 두 개가 마치 꽉 껴앉고 있듯이 꽈배기처럼 꼬여서 길게 자란 것이 독특하다

고구마의 줄기는 아직은 푸릇푸릇 했습니다. 큰 어머니는 고구마 줄기가 아주 좋다면서 모두 수확했습니다. 시골에 살았던 추억이 많아서인지 고구마 줄기는 입맛을 돋구는 반찬인가 봅니다. 요즘 고구마는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가 많습니다.

고구마의 효능 7가지

1. 변비를 치료하고 예방하는데 좋습니다.

고구마의 풍부한 식물성 섬유는 수분함량이 많고 소화가 잘안되기 때문에 대장 운동을 활발하게 만들어 장속에 이로운 세균을 늘려 배설을 촉진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2. 최고의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고구마는 밥보다 칼로리가 적으면서 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 배고픔을 덜 느껴 소식을 할수 있습니다.
여기에 칼륨의 이뇨작용과 비타민 E의 혈행 촉진작용 등이 가세하면 다이어트 효과는 더 높아진다고 합니다.


3. 인체의 비장과 위를 튼튼하게 합니다.

한의학에서 고구마는 비장과 위를 튼튼하게 하고 혈액순환을을 원활하게 하는 효능이 뛰어나다고 하여, 설사나 만성 소화불량증세를 겪는 사람들의 치료에도 두루 쓰였다고 합니다. 고구마는 아마이드라는 성분이 장속에서 이상 발효를 일으켜 방귀 증상이 있을 수 있는데 사과나 동치미와 함께 먹으면 가스가 차는 것을 막을 수가 있다고 합니다. 

3. 콜레스테롤 농도를 정상화시켜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습니다.

고구마는 칼륨 성분이 특히 많은데, 칼륨은 몸 속에 남아 있는 나트륨을 소변과 함께 배출시키는 작용을 해 가벼운 고혈압 등의 성인병을 예방하고 뇌졸중을 막는 효과도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경증 고혈압에는 고구마를 삶아서 껍질을 벗겨 식힌 후 우유와 함께 믹서로 갈아 볶은 소금으로 약간 간하여 먹으면 좋다고 합니다.

4. 노란 고구마는 암을 예방 효과도 있습니다.

고구마 껍질의 보라색과 붉은색 색소에 들어있는 안토시아닌은 세포의 노화를 막고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특히 속이 노란 고구마일수록 항암 효과가 높다고 하는데, 고구마의 섬류질은 배변을 도와 만성 변비로 인한 대장암 등의 질환을 예방해준다고 합니다.

5. 생고구마는 아이들의 허약체질을 개선해 줍니다.

고구마는 비타민 B군과 미네랄, 카로틴 등이 많이 들어 있어 영양가가 높습니다. 특히 허약체질인 아이를 비롯한 사람이 생고구마를 갈아먹으면 건강에 좋습니다. 그렇지만 소화기능이 너무 약한 위무력증이나 위하수 등이 있는 사람은 생고구마를 먹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6. 고구마에 함유된 비타민E가 노화를 막아 줍니다.

고구마에는 비타민E가 풍부해 다양한 호르몬의 생성을 촉진하는 건 물론이고 핏 속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떨어뜨림으로써 노화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7. 피부미용에도 효과가 있습니다.

고구마를 한개 먹으면 하루에 필요한 비타민C가 충족될 정도로 고구마에는 비타민 C 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비타민C는 열에 약해 조리를 하면 손실되는데 고구마에 함유된 비타민C는 가열해도 50~70%까지는 그대로 남는다고 합니다. 또한 고구마에 풍부하게 들어있는 식물성 섬유는 변비를 해소해주기 때문에 피부도 매끄럽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고구마 줄기의 달인 물은 기미 방지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아이들도 신났습니다. 남동생은 남자 아이만 둘이 있습니다. 낚시를 좋아하는 남동생은 가끔씩 아이들을 데리고 낚시를 가는 모양입니다. 남동생의 큰 아이는 지렁이를 낚시에 직접 꿰어서 낚시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렁이를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밭에는 지렁이도 많이 발견됐습니다. 남동생의 아이들은 지렁이를 낚시용 미끼로 사용해야 한다며 지렁이 잡기에도 바빴습니다.



고구마는 아직 캐기에는 다소 이른 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만 캐고 나머지는 다음에 캐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고구마를 캐다보니 특이하게 생긴 고구마도 나왔습니다. 일명 꽈배기 고구마입니다. 고구마 두 개가 마치 꽈배기 처럼 얽혀서 꼬여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고구마를 봤지만 꽈배기 처럼 꼬여서 붙여있는 고구마를 처음 봤습니다. 두 개의 긴 고구마가 서로 껴앉고 있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꽈배기 처럼 생긴 고구마가 신기하지 않나요?
고구마와 고구마 줄기를 일부 수확해 집으로 왔습니다. 이미 집에는 작은 아버지 내외 가족들도 와 있었습니다. 고구마와 줄기를 보더니 신기해 했습니다. 모두 함께 모여 고구마 줄기를 다듬기 시작했습니다. 큰 어머니가 거의 대부분의 고구마 줄기를 따왔기 때문에 줄기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래도 함께 가족들이 모여서 줄기를 다듬어서인지 빠른 시간내 모두 끝낼 수 있었습니다.

고구마와 줄기는 가족들이 조금씩 나눠 가졌습니다. 고구마 캐기를 통해 온 가족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아직 남은 고구마가 있으니 다음에는 이번에 참여하지 못한 여동생 가족들을 초청해 함께 캐야 겠습니다. 추석 명절은 보름달 만큼 넉넉하고 풍성하고 훈훈했습니다. 거기에는 고구마가 있었던 것도 한 몫 했습니다. 고구마는 추억과 사랑의 작물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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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유년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도 불안했습니다. 일방적인 아버지의 호통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제가 다섯 살이 되던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혼자서 저를 낳고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거부했습니다. 당시는 1960년대 시기였습니다. 신혼 시절에 아버지를 잡으러 산골 마을로 군인들이 닥쳤습니다. 아버지는 초가집 벽을 부수고 산속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혼자서 농사일을 하고 혼자 저를 낳아 길러야 했던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벌교에서 주먹 대장이었고 돌아온 마을과 읍내에선 호랑이였습니다.

다섯 살 아들이 아버지에게 날린 주먹과 첫 만남

제가 처음 아버지를 본 모습도 불청객으로 느꼈을 듯 합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는 밥상 앞에서 어머니에게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얼굴에 그만 주먹을 날렸습니다. 아버지는 호랑이같은 눈으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이 놈이 어디다가..." 저는 부엌 문으로 나와 마당을 지나 도망갔습니다. 한참 달리다 마당 입구에서 되돌아보니 아버지는 집 앞에서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첫번째 전투였을지 모릅니다.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있으면 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늘 당하기만 했습니다. 바보같이 왜 당하기만 하냐고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마다 어머니는 자식들 걱정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서울 큰 집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서울 구경 시켜준다는 큰 아버지를 따라 나선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큰 집에 자식이 없어 제가 서울로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비관하던 학창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걱정은 힘겹지만 이겨내야 했습니다.

방학 때 마다 혼자서 시골을 찾았습니다. 한 여름날에도 어머니의 농사 일을 도와 논둑을 베고 땔감 나무를 했습니다. 저의 얼굴에는 항상 땀이 범벅이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농사 일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읍내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날도 많았습니다. 한량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머니 혼자 힘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집에 땔감이 떨어져도 아버지는 태평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와 멱살을 잡고 싸울 뻔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산으로 도망갔습니다. 산 속에 있는데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하라 했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어느새 1980년대 중반 대학에 갔습니다. 암흑과 같던 군사 독재 시절에 치열한 대학시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난 뒤었습니다. 군대를 가기 전 까지 어머니 일을 도왔습니다. 농가 부채는 1억원에 달하는 시기였습니다. 당시는 아버지가 어느정도 마음을 잡고 일을 했습니다. 표고버섯 재배였습니다. 산 등성이에서 일해야 하기에 위험했습니다. 겨울에는 참나무를 베고 봄에 버섯종균을 넣은 후 나무를 세워두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힘든 일을 하면 더 화를 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화풀이 대상이 어머니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늘 참았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장성한 제가 있어 아버지는 예전보다 심하게 가지는 않았습니다. 여름이 왔습니다. 비가 온 후 버섯이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지게를 등에 지고 엄청난 버섯을 산길을 타고 집으로 날랐습니다. 어머니는 버섯을 따고 부자는 쉴새없이 버섯을 날랐습니다. 하루종일 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가다보니 얼굴에 소금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가장 힘든 노동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된 일로 다리를 절뚝거리는 저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산 위에 떠오른 태양의 햇살은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에 반짝였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저는 집 앞에 나온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시골 집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가면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네 번 정도 버스가 다녔습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산을 내려가는데 아버지를 계속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말없이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그만 들어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 봤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그 때 저는 보았습니다. 이제 막 산꼭대기에는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태양의 햇살에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이 순간 반짝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렸지만 저는 이미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군대가는 아들이 걱정됐습니다. 계속 아들 뒤를 따라오며 잠시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아들에게 보여주기 싫었지만 저는 햇살에 비친 아버지의 눈물 한방울이 빛나는 것을 봤습니다. 난생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렇게 강하신 분이셨던 아버지의 눈물은 충격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군대를 향해 가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화해를 했습니다.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어쩌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단한 삶과 닮아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자신의 삶 보다는 자식들을 위해 늘 헌신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표현에 인색했고 어머니는 항상 자식을 사랑으로 감싸주셨습니다. 첨단 문명이나 도시 사회에서 보면 워낭소리의 노부부의 삶은 한편으로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부부의 삶에는 가족이 있고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슬프고 괴롭고 힘들더라도 안식과 위안이 되는 곳입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이제 아버지도 기력이 약해지고 어머니도 몸이 아프시곤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보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휴가에도 자식들과 손주들 기다릴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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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농장에 가면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장면들을 볼 때가 있습니다. 몇 주 전에 주말농장에 갔는데 축구 골대와 비슷하게 생긴 형태의 구조물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에 가서 살펴보니 나무로 엮어서 만든 구조물에 그물을 연결해 두어 마치 골대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사실 나무로 만든 구조물은 나중에 오이와 같은 덩굴 식물이 나무와 그물을 타고 올라가도록 미리 설치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주말농장 텃밭에 설치되어 있는 것들이 다양했습니다. 가장 많은 것 중의 하나가 집안에서 사용하는 빨래 건조대였습니다. 사용하다 수명이 거의 다한 건조대를 텃밭에 옮겨다 오이가 타고 올라갈 수 있도록 해둔 것입니다.

텃밭에 설치한 나무 골대 모습의 구조물이나 빨래 건조대는 일종의 생활의 지혜인 셈입니다. 주말농장에 오시는 분들을 보면 참으로 부지런한 편입니다. 아침에 갔는데 이미 그 전에 텃밭에 물을 주고 다녀간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버려지는 나무나 물건들을 재활용하는데 일가견이 있는 분들도 많습니다.

나무로 만든 구조물에다가 그물을 두른 구조물인데 마치 축구나 핸드볼 골대 모양과 흡사합니다.

아직은 구조물 밑에 오이나 토마토 등을 심지 않은 상태의 사진인데 지금은 심어두었을 것입니다.

빨래 건조대가 농장의 텃밭에 서 있습니다. 곧 농작물이 자라면 모습이 달라질 것입니다.

텃밭에 무슨 목적으로 나무와 쇠파이프가 박혀 있는지 궁금할 것입니다. 나중에 고추나 토마토 등을 심어서 묶어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져 있는 것입니다.

텃밭 가장 자리에도 나무 각목과 쇠파이프 등이 박혀 있습니다. 여기에도 오이나 토마토 가지 등을 심을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이번 주말에 가보니 빨래 건조대 밑에는 오이 모종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옆에는 고추 모종이 줄지어 심어져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참고] 오이 지지대를 제대로 세워준 상태의 전문 오이 농사 모습(사진 : 곧은터 사람들)


주말농장에서 빨래 건조대는 농작물을 제대로 자라게 하기 위해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아주 중요한 물건인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빨래를 걸어서 말리는 도구가 텃밭에서는 오이나 토마토 등을 보호하는 역할로 바뀐 셈입니다.
 
그런데 저는 고민입니다. 오이도 심고 토마토 가지 고추 등도 심었는데 이러한 작물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지지대가 하나도 없습니다. 집에 있는 빨래 건조대를 텃밭에 가져다 둘까도 생각했지만 아직은 빨래를 걸고 말리는 용도로 더 사용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빨리 생활의 지혜를 강구해봐야 겠습니다.

[참고] 옥상이나 베란다에 텃밭 만들기


(1)대형 깡통을 구해 깡통 바닥에 구멍을 뚫어 배수가 되도록 한 후 (2)깡통 속에 흙과 퇴비를 넣고 (3)지지대를 박은 후 (4)모종을 구입해 심고 물을 주면 됩니다. (사진 : 페퍼로즈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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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저녁에 '딩동'하고 초인종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골에서 부모님께서 찹쌀 한 가마와 옥수수 종자를 택배로 보내셨던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었더니 "주말농장하려고 어머님께 옥수수 종자를 부탁드렸는데 함께 보내셨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버님은 1950년대 청소년 시절을 벌교에서 생활하셨습니다. 큰 아버님이 벌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셨고 아버님은 함께 기거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벌교는  고등학교가 있던 거의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따라서, 인근 농촌 마을이나 멀리 떨어진 산골에서도 벌교로 학교를 보내야 했습니다. 큰 아버님과 아버님은 시골에서 벌교로 유학을 간 셈입니다.


아버님은 당시 벌교에서 주먹을 좀 쓰셨다고 합니다. 과거부터 벌교하면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곳입니다. 벌교에서는 젊은 청년들은 물론 청소년들 사이에도 결투(?)가 많았나 봅니다. 아버님은 외지에 유학가서 남들에게 구박받지 않고 강한 남자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항상 체력 단련을 했다고 합니다.
 
시골 고향 집에 오면, 나무로 직접 만든 평행봉에서 항상 운동을 하셨습니다. 이소령이 혼자서 무예를 익히는 수련과도 흡사할 것입니다. 벌교에서 당시 청년이던 큰 아버님과 아버님은 함께 다니면서 주먹으로 벌교 지역을 평정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아버님은 힘과 체력이 좋아서 5일장이 열리면 씨름대회에 나가서 1등도 여러번 했다고 합니다. 어머님께 전해들은 이야기라서 정확한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다시 산골 고향으로 돌아오신 아버님은 잠시 고향집에 놀러왔던 어머님을 만나 결혼하셨습니다. 외조부모께서 반대하신 결혼이었지만 거의 막무가내로 결혼식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아버님의 기개(?)는 어떤 사람들도 막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 외조부모님은 집안의 평안을 위해 결혼에 승락했다고도 합니다.


[영화 워낭소리 : 촌로 부부의 모습은 부모님을 연상케 한다.]


아버님은 결혼 후에도 시골 마을에서 호랑이로 불리셨습니다. 아버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기에 당신의 뜻대로 가정과 마을을 호령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량으로 생활했던 것입니다. 간혹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지게에 나무를 지고오시면 산딸기를 칡잎에 싸오곤 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따온 것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땐 저는 아버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늘상 어머님께 호통치던 모습에 대한 반발심만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희는 매년 여름이 가족들이 모두 시골에 모여 휴가를 보냅니다. 작년 여름에 자식들이 휴가를 시골에 모였는데 아버님은 어머님을 힘들게 하셨습니다. 그 후 자식들은 어머님 편으로 전부 합세해 아버님이 고립된 적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장성했고 결혼까지 한 상황에서 아버님의 처사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와 버렸으니 당시 아버님의 상실감이 컸을 것입니다. 어버님은 아버님 걱정에 다시 시골에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칠순이 되신 아버님을 위해 형제자매 가족들이 함께 고향에 모였습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앙금도 모두 풀고 다시 가족들이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힘이 없어보이시는 아버님을 보니 송구스런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다시 돌아가는 자식들에게 곡식들을 자동차에 실어주시면서, 어머님은 올해 여름에도 시골에 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아직도 아버님은 칠순 나이에 시골 마을 이장을 맡고 계십니다. 젊은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찹쌀 한 가마와 옥수수 종자를 받았습니다. 아내가 부탁드린 것은 옥수수 종자 뿐인데 찹쌀 한 가마도 보내신 것입니다. 사실 찹쌀 한 가마는 아버님이 보내라고 하신 것일 듯 합니다. 아버님은 언제나 그러셨습니다. 어머님에게 옥수수만 보내지 말고 참쌀 한 가마도 함께 보내라고 하셨을 분입니다. 자식들과 어머님 앞에서는 늘 근엄한 모습이었지만 돌아서면 한없이 자식들을 사랑하신 분이셨습니다. 말씀으로 표현을 못하는 산골 마을의 전형적인 아버님이셨습니다.
 
아버님이 보내주신 찹쌀 한 가마를 보면서 아버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젊은 청년시절의 기개를 항상 잃지안고 호령하시던 아버님이 이제는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예전에 비해 아버님이 어머님께 조금은 부드러워 지신 것 같아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약해지신 아버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벌교에서 주먹을 자랑하던 열혈 남아였던 아버님이 이제는 마을에서도 예전과 같은 호랑이 모습은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아버님의 자존심은 예전부터 '쌀'이었습니다. 아무리 한량이라고 하시더라도, 논농사는 반드시 당신이 책임을 다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 항상 가장 품질좋은 쌀 농사를 짓곤 했습니다. (지금은 표고버섯 재배를 비롯해 여러가지 일들도 하십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쌀을 보내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오늘 아버님이 보낸 '찹쌀'은 그 이상의 마음이 담긴 선물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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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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