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09.11.18 자색고구마가 건강에 좋은 음식 1위인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5)
  2. 2009.11.01 무한도전 쌀 '뭥미', 웃음과 감동을 수확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7)
  3. 2009.07.30 군대가는 아들 뒤 아버지의 눈물을 봤다면... by 진리 탐구 탐진강 (40)
  4. 2009.06.25 나랏님도 농사짓던 봉하, '쇼'하는 푸른집 [편견 릴레이] by 진리 탐구 탐진강 (39)
  5. 2009.03.02 구준표 꽃남 '로망'과 워낭 '향수' 이상한 공존? by 진리 탐구 탐진강
  6. 2009.03.01 10살 딸도 감동한 워낭소리, 세대 관통한 소통 by 진리 탐구 탐진강 (12)


우연히 서울 여의도를 지나다보니 대규모 농민 시위가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농민들의 실상을 목도하고니 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요즘 쌀값 폭락 대란으로 시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어제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는 전국 농민 3만명이 '쌀 대란 해결'과 '협동조합 개혁'을 내걸고 생존권 투쟁을 벌였던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도 시골 농촌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계신 터라 더욱 가슴이 아팠습니다. 농촌은 도시민들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농촌을 피폐화시켜 도시화와 공업화를 이룬 고도 성장을 이룬 우리나라지만 이제는 우리 식생활의 근본인 농촌도 함께 잘 살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날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그동안 미뤄왔던 대북 쌀 지원을 재개해야 한다. 정권이 바뀌어도 대북 쌀 지원은 필요하다. 쌀 대란은 농민의 문제만이 아닌, 이 나라 국민 전체의 문제다"라는 이야기에 정부는 귀기울야 할 것 같습니다. 쌀값 폭락으로 시름하는 농민들의 주름을 펴주고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을 돕는 것은 인류애 동포애로서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아프리카도 돕는데 결국 같은 민족 형제들이나 다름없는 남북이 아직도 냉전시대 대결에만 골몰하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전국 농민 3만명이 서울에서 쌀값 폭락 대책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직화냄비 샀더니 자색고구마와 호박고구마가 텔레파시 통했나?

저녁에 집에 도착하니 아내가 짠 하면서 택배 상자를 보여주었습니다. 고구마 농사를 짓고있는 농민이 보낸 이벤트 상품이었습니다. 제가 주말농장의 텃밭을 매년 가꿀 정도로 농사에 관심이 많다보니 뜻밖의 고구마였습니다. 게다가, 고구마는 특별했습니다. 난생 처음 본 자색고구마였습니다. 인심도 후하게도 자색고구마와 함께 호박고구마도 함께 두 박스를 보내왔습니다. 농민을 도와주어도 모자랄 판에 감동의 고구마를 공짜로 받고나니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일등고구마입니다. 호박고구마와 자색고구마를 비교해보니 확연히 색깔부터 달랐습니다. 자색고구마는 바깥 색상 자체부터 자주색을 띄고 있었습니다. 황토밭에서 재배한 무공해 친환경 고구마였습니다. 사실 고구마는 제가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함께 심고 늦가을에 수확해 겨우내 간식으로 먹었던 음식이었습니다. 아이들과 가족들을 위한 겨울철 별미의 간식인 셈입니다. 


  왼쪽 사진이 호박고구마이고 오른쪽이 자색고구마인데 색깔로 쉽게 구분이 가능했다

도시에 살면서 고구마는 잠시 잊혀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말농장 텃밭을 일구면서 다시 찾게 됐습니다. 딸아이들이 고구마를 심자고 했기 때문입니다. 반갑기도 했습니다. 직접 고구마를 재배하기는 했으나 제대로 고구마 맛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고구마도 땅의 지질이나 품종 그리고 재배방법 등이 있나 봅니다. 황토밭에서 자란 자색고구마와 호박고구는 모양부터 먹음직스러웠습니다. 실제 어떤 맛일까 궁금했습니다.


 당일 도착한 친환경 호박고구마와 자색고구마를 씻은 후 직화냄비에 가열하기 시작했다

마침 아내가 자색고구마와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이날 직화냄비를 샀다고 했습니다. 당장 자색고구마와 호박고구마를 씻고 직화냄비에 넣어 군고구마 굽기에 들어갔습니다. 군고구마를 기다리는 동안 자색고구마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습니다.  

 

고구마가 건강에 미치는 효능

1. 고구마는 당지수가 낮은 식품입니다.

2. 고구마는 식이섬유가 풍부하여 변비해소에 좋고, 장을 깨끗이 청소해주는 식품입니다.

3. 몸의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항산화작용을 하는 식품이며, 혈행 개선 등에도 매우 좋아 심혈관질환의 예방에도 큰 효능이 있습니다.


자색 고구마의 특징과 안토시아닌

자색고구마는 다른 말로 감서·단고구마라고도 합니다. 또, 성분이나 나머지 모든것은 그냥 고구마와 다른 것은 없지만, 다만 자색 이라는 색깔 특성상 안토시아닌이 많아 그것으로 인한 효능이 더 있다고 합니다. 한편 고구마는 혈압을 낮춰주기 때문에 심혈관질환에 좋습니다. 탄수화물뿐만 아니라 비타민, 칼륨, 섬유소 등이 풍푸하며 항산화 능력에도 탁월한 식품입니다.
 
고구마의 종류는 호박고구마, 주황색고구마 등 다양합니다. 그러나 자색고구마가 가장 항산화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안토시아닌 성분으로 인한 효능으로 암 예방에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 체내의 콜레스테롤을 제거하고, 간기능을 개선하여, 간질환의 예방 및 치료 작용을 한다고 합니다.


여러 정보를 찾아보는 동안에 어느새 군고구마가 다 됐다는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자색고구마는 바깥도 그랬지만 속도 자주색이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맛은 어떨까 시식해 봤습니다. 맛은 일반 고구마 보다 사르르 녹는 밤맛이 달랐습니다. 밤고구마의 속살도 색상은 다르지만 갈라진 속살의 모양은 거의 동일했습니다. 다시 자색고구마를 반으로 가르자 먹음직스런 속살이 드러났습니다. 보기만 해도 침이 꿀떡 넘어갈 정도였습니다. 직접 맛보지 않으면 모를 고구마의 참맛이었습니다. 역시 고구마 전문가의 손길과 정성이 담긴 자색고구마는 맛도 달랐습니다.
 
 
고구마가 미국 소비자들이 뽑은 몸에 좋은 음식 1위인 이유는?

자색 고구마가 외국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는지 알아봤습니다. 고구마는 미국의 소비자들이 뽑은 몸에 좋은 음식 1위라고 합니다. 미국의 식품영양단체인 공익을 위한 과학센터(CSPI)에서 최고의 음식 10가지를 선정하면서 첫 손에 고구마를 선택한 것입니다. 고구마에 이어 방울토마토가 2위였습니다. 고구마가 최상의 건강식품인데 자색고구는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그 효능이 기대되는 것입니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고구마위원회의 코델 박사는 '하루에 고구마 하나씩만 먹어도 의사가 필요없다'고 말할 정도입니다.

실제 미국항공우주국(NASA)는 미래 우주시대의 식량자원으로 고구마를 선택했습니다. 고구마가 함유하고 있는 탄수화물 뿐만 아니라 비타민, 칼륨, 섬유소 등이 풍부하고 성인병 예방에도 효능이 탁월하기 때문입니다. 자색고구마가 앞서 언급한 항산화 작용이 뛰어난 안토시아닌이 많아 블루베리 효능과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고구마는 특히 가열을 해도 영양소 파괴가 적고 껍질에 안토시아닌 성분이 많아 껍질 그대로 씻어서 먹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아내와 고구마를 하나 먹는 동안에 딸아이들이 자기 방에서 공부를 끝내고 나왔습니다. 큰 딸과 작은 딸은 고구마가 맛있다고 신난 표정이었습니다. 아래 층에 사시는 장모님께도 드렸더니 무척 고맙게 생각하시며 맛있게 드셨습니다.효도도 하고 일석이조인 셈입니다. 자색고구마를 재배한 농민이 생각나 편지를 읽어봤습니다. 고구마 농사를 짓고있는 29살의 청년 농군이라고 밝히며 시작된 글은 직접 친필로 씌여 있었습니다. 고구마가 친환경 농법이듯이 편지도 친필의 정성이 가득했습니다. '상품으로 드릴 수 있어 기쁘게 생각하며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네요'라는 마음이 팍팍 와닿았습니다.


 올해 주말농장 텃밭에 고구마를 심었는데 줄기 4개가 하나인 특이한 현상이 있었다

생로병사의 비밀 건강식품에 고구마가 슈퍼푸드로 등장한 이유?

고구마의 효능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몇년전 KBS에서 방영한 건강 다큐멘타리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중년을 위한 슈퍼푸드'였습니다. 중년의 건강을 지켜주는 식품으로 고구마, 고등어, 시금치, 브로콜리, 딸기류 등 5가지 식품을 소개했습니다. 특히 슈퍼푸드 고구마는 '젊음의 묘약'으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미국의 나사가 우주시대 건강식품으로 채택한 것은 물론 일본의 오키나와 오기미 마을 장수촌이 고구마를 주식으로 먹는다는 것을 주목하기도 했습니다. 장수촌 노인들은 매일 하루 한끼 이상 고구마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고구마가 항산화 작용으로 건강에 좋다는 것은 노화와 질병을 예방해주기 때문입니다. 즉, 고구마의 항산화 물질은 산소가 산화되면서 몸의 세포를 공격하는 것을 막아주어 세포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고구마가 최고의 항암식품으로도 뽑혔습니다. 일본의 도쿄대 의과학연구소는 고구마가 당근, 가지, 셀러리 등 82개 채소와 비교한 결과 암 발생 억제율이 98.7%로 단연 1위였다고 합니다. 또 고구마에 함유된 식이섬유는 다른 식품보다 흡착력이 강해 발암물직이나 대장암 원인 물질들을 흡착해 체외로 배출해 준다는 것입니다. 고구마의 항암 성분은 자주색 껍질에 함유된 베타카로닌입니다. 그 밖에도 고구마는 혈압을 낮춰주는 효과가 뛰어나며, 식이섬유가 혈액내 콜레스테롤을 제거해주는데 탁월하다고 합니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하던 둘째 딸이 자색고구마를 먹더니 놀랍게도 모델로 나섰다

생로병사의 비밀 방송에서는 국내 연구결과를 직접 보여주며 자색고구마를 지속 섭취하면 혈압을 낮추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밝혔습니다. 실제 고혈압 환자들을 대상으로 자색고구마즙을 매일 마시게 하자 4주후 혈압에 눈에 뜨게 떨어진 것을 확인했습니다. 미국의 코델 박사가 '고구마는 가장 완벽에 가까운 식품'이라는 극찬을 하는 것도 이 같은 놀라운 효능 때문이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자색고구마는 하루에 1~2개 껍질채 고구마를 먹는 것이 건강에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믹서에 갈아서 마시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샐러드와 같은 형태로 드시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저는 갈아먹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찐고구마를 김치와 함께 먹거나 군고구마를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사실 매일 고구마를 먹기는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경기쌀과 자색고구마로 '선홍빛깔 고운 막걸리'를 개발해 일반에 보급키로 했다고 합니다. 술을 좋아하는 저에게는 좋은 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다양한 보라색 자색고구마 식품들이 탄생해 여러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했으면 합니다.

얼마 전에 무한도전에서 벼농사특집을 통해 우리 농촌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을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은 녹록치 않은 것 같습니다. 농촌과 농민에 대한 보다 관심과 배려가 필요해 보입니다. 저와 가족들은 모처럼 흥겨운 고구마 파티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특히 슈퍼푸드 자색고구마를 잘 알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더 자주 자주색 자색고구마를 먹으며 건강도 챙기고 농촌에도 작은 도움을 드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젊음의 묘약, 자색고구마의 참맛을 즐겨보지 않으실래요.
[참고] 자색고구마 일등고구마 농장 보기 [문의홈페이지] www.1goguma.com
* 29살 일등고구마 청년 농군께서 문의가 쇄도하신다며 홈페이지를 이용해 주십사 부탁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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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또 한번 무한도전의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무한도전 벼농사 특집 프로젝트 마지막 3부는 한시도 TV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저절로 웃음이 나오고 감동의 도가니탕을 만들었습니다. 무한도전 멤버들의 절친 초호화 스타 게스트들도 빛났습니다. 무한도전의 1년간 연말 결산을 보는 듯 했습니다.

한편으로, 시골에서 농사짓고 사시는 부모님도 생각났습니다. 쌀값 폭락으로 시름하는 농민들도 스쳐지나갔습니다. 우리 민족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농촌의 슬픈 현실입니다. 또한 대북 쌀 지원이 끊기면서 나라의 쌀은 창고에 쳐박혀있고 또 다른 세계에서는 굶어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세상의 아이러니가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무한도전은 웃음과 감동 속에서도 인간 세상의 희노애락을 이야기했습니다.

혹자는 무한도전을 '무모하지난 끝내 이겨내고 웃음과 감동을 주는 도전이 아름답다'고 평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늘 힘들고 어렵지만 그 도전은 아름답습니다. 무한도전이 왜 다른 예능프로그램과 차별화되는지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던 벼농사 프로젝트의 유종의 미(米)이자 대미(大米)였습니다.

무한도전의 정(情)과 초호화 스타들의 추수 동참 빛났다

이번 무한도전 벼농사 프로젝트 마지막편은 지난 1년간 가꾼 벼농사를 최종 추수하는 것이 하일라이트였습니다. 유재석 박명수 전진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길 등 무한도전 멤버들은 추수를 도와줄 절친 스타 연예인들을 즉석에서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밥사준다고 하자 두말없이 달려왔습니다. 바쁜 일정에도 강화도까지 달려와주는 의리와 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꽃미남 배우 김범이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벼농사를 돕는 모습은 의외의 장면이었습니다. 그가 나타나리라 예상을 못했고 그렇게 오래 머물며 벼를 베는 낫질을 할 것이라 생각을 못했습니다. 걸그룹 카라(구하라, 강지영, 한승연, 정니콜, 박규리)의 등장은 역시 최고의 인기를 실감할 만 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논두렁과 논에서 히트곡 '미스터'에 맞춰 카라는 물론 무한도전 출연자들이 모두 함께 엉덩이춤을 추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김범이 좋아한다고 지목한 구하라와 벼를 베면서 서로 점점 다가가 호감을 드러내는 장면은 청춘남녀의 풋풋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김범은 논에 숨겨둔 콤바인 열쇠를 찾아 추수를 쉽게 끝내는데 결정적 역할도 했습니다. 한편, 김범을 초청했던 쩌리짱 정준하는 대장염으로 화장실을 오가며 촬영에 임하다가 결국 병원을 가야했지만 끝까지 투혼을 발휘했습니다.



스타들의 동참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쥬얼리(박정아 서인영 하주연 김은정), 가수 이민우와 바다, 힙합그룹 에픽하이(타블로, 미쓰라진, DJ 투컷츠), 개그맨 변기수 등 유명 연예인들이 총출동해 벼농사 추수의 일손을 거들었습니다. 바다의 논두렁 열창무대에 이어 새참시간의 창은 압권이었습니다. 애인 박정아가 나타나자 길(리쌍)은 예상치 못했는지 놀라서 벼에 숨어 수줍어하는 깜짝 만남 모습이나 그녀에 쌀다발 벼를 건네주거나 돌아갈 때 배웅해주는 장면은 영락없이 순수 청년의 이미지였습니다.
 


결혼식 일주일을 앞두고 타블로는 신부 강혜정을 향해 "청첩장 받으러 가는 날 이렇게 일하고 있다. 내가 평생 지켜줄게"라고 영상편지를 보내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장면들을 보면서 무한도전은 인연을 소중히 하는 듯 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동안 무한도전과 인연과 인맥이 되었던 스타 연예인들이 벼농사 추수의 보람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 배려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무한도전 멤버들과 끝까지 남았던 게스트들이 직접 추수한 벼를 이용해 따뜻한 즉석 쌀밥을 지어먹는 장면도 훈훈했습니다.

우리 농촌과 벼농사 쌀의 소중함과 훈훈함이 주는 의미는?

이번 벼농사 프로젝트는 많은 화제를 뿌렸습니다. 2PM의 박재범이 등장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한국인 비하글 논란으로 미국으로 떠났지만 그 전에 무한도전 벼농사 녹화가 있었기에 벼농사 프로젝트 2부 방송에서 박재범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진행형인 박재범 사태는 소속사 대표 박진영의 대처 방식이나 네티즌들과 팬들의 공방 등과 맞물려 혼란스런 상황입니다. 다만 창창한 청년의 아까운 재능이 성급한 오류와 재단으로 끝나지않나 하는 몰인정 사회 분위기가 아쉬움을 자아냈습니다.

벼농사 프로젝트는 사실 매우 힘든 프로그램입니다. 무한도전이기 때문에 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단순히 3~4월에 논갈기하고 모판 만들고 5월에 모내기하고 6~9월에 김매기 등 벼를 보살피면서 10월에 추수를 하는 과정을 화면에 담는다는 것이 재미와 웃음을 주기는 무리가 있습니다. 다큐멘타리 프로라면 모르지만 예능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작업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나 무한도전은 결국 해냈습니다.
 


어떤 이는 논두렁에서 탈춤을 추고 돼지머리 고사를 지내고 가수들의 콘서트를 하는 것에 문제제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예능을 하라는 것인지 대안을 제시하지도 못하면서 말입니다. 무한도전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1년 동안 벼농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친환경 우렁이 유기농법을 활용해 농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쌀을 생산했습니다.
 
농촌은 요즘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쌀값폭락으로 농민들의 야적 시위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농촌과 쌀값 대책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한 태도와 푸대접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농가 수입이 25%나 줄어들 것이란 이야기도 들립니다. 나라에는 쌀이 쌓여있지만 대북 쌀 지원도 몇년째 끊기면서 남아도는 쌀에 대한 대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스턴트 식품이 범람하면서 우리나라 주식인 쌀 소비도 줄고 있습니다. 이번 무한도전 벼농사 프로젝트를 계기도 농촌의 소중함과 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정부도 농촌과 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겠습니다.

무한도전의 꾸준한 사회공헌과 새로운 변화의 시작인가?

이번 무한도전 벼농사 추수편 녹화가 있던 날은 박명수의 생일이었습니다. 그의 팬클럽인 데블스에서 특별히 축하떡을 보내오기도 했습니다. 박정아가 연인 길을 위해 축하공연과 함께 막걸리를 새참으로 배달해온 장면도 무한도전만의 인간적인 정서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전진이 곧 입대한다는 소식은 쓸쓸해 보였습니다. 하하가 입대할 때와 비교해보면 전진은 아주 짧게 화면에 나왔는데 1년 6개월 동안 함께 했던 무한도전 멤버로서 아쉬움도 클 듯 합니다.

전진의 하차에 이어 무한도전은 하하의 복귀가 예상되고 있습니다. 방황하던 길이 무한도전에 안착한 상태에서 하하의 복귀는 프로그램의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무한도전은 원년 멤버들이 다시 재결성되는 셈이지만 그 동안 포맷에만 머무를 경우 식상함을 벗어나기 힘들 것입니다.

따라서 길의 역할 정립과 무한도전이 그 동안 추구했던 내용의 질적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벼농사 프로젝트는 새로운 실험마당이었습니다. 다음주 식객 미국 프로젝트도 변화의 연장선상인 듯 합니다. 앞으로 무한도전의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 주목되는 이유입니다.  

무한도전이 우리 사회에 미치는 울림이 큰 것은 역시 사회공헌인 것 같습니다. 단지 웃음만 파는 예능프로그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불우이웃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따뜻함이 있습니다. 이번 벼농사 프로젝트를 통해 수확한 쌀의 이름은 '뭥미(米)'로 정해져 시청자들에게 마지막까지 미소를 짓게 했습니다. 무한도전 쌀 '뭥미'는 벼농사 프로젝트에 참여한 재범을 비롯 게스트들은 물론 불우이웃들에게 전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이전에도 무한도전은 '듀엣가요제 앨범 판매수익금 전액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다면 벌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무한도전은 매년 무한도전 달력 판매 수익금으로 마련된 수 억원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해오고 있기도 합니다. 무한도전이 일회성이 아니라 꾸준히 불우이웃돕기에 나서고 있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무한도전의 김태호PD가 계속 보여줄 사람사는 세상을 기대하게 되는 벼농사 프로젝트가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무한도전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선사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웃들에게도 무한한 관심과 배려를 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무한도전의 정신이고 존재의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역경에도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단 1%의 가능성에 도전하는 무한도전은 어쩌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희망의 메시지인지도 모릅니다. 따뜻하고 훈훈한 무한도전 세상에 박수를 보냅니다.

시골에서 보낸 쌀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며칠 전에 퇴근해보니 시골 농촌에서 부모님이 보낸 햅쌀 쌀가마니가 도착했습니다. 가을에 벼농사를 추수하시면 부모님은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쌀을 보내주십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쌀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올해 내내 퇴약볕 밑에서 일하시며 어렵게 수확한 쌀을 보내주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무한도전에서 추수를 한 이후 햅쌀로 따끈한 밥을 해먹는 장면은 바로 오늘 하루 한끼 식사를 하더라도 우리 농촌과 농부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보라는 메시지일 것입니다. 농촌과 쌀의 소중함을 생각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하는 하루입니다.
      무한도전 쌀 '뭥미'는 '한 톨의 쌀알에는 농부의 88번의 땀이 배어 있습니다'를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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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유년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많았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힘들게 하는 존재라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도 불안했습니다. 일방적인 아버지의 호통이 시작되지 않을까 걱정하곤 했습니다.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은 제가 다섯 살이 되던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혼자서 저를 낳고 키웠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거부했습니다. 당시는 1960년대 시기였습니다. 신혼 시절에 아버지를 잡으러 산골 마을로 군인들이 닥쳤습니다. 아버지는 초가집 벽을 부수고 산속으로 도망갔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혼자서 농사일을 하고 혼자 저를 낳아 길러야 했던 것입니다. 사실 아버지는 주먹 자랑하지 말라는 벌교에서 주먹 대장이었고 돌아온 마을과 읍내에선 호랑이였습니다.

다섯 살 아들이 아버지에게 날린 주먹과 첫 만남

제가 처음 아버지를 본 모습도 불청객으로 느꼈을 듯 합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는 밥상 앞에서 어머니에게 심하게 꾸짖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얼굴에 그만 주먹을 날렸습니다. 아버지는 호랑이같은 눈으로 소리를 버럭 질렀습니다. "이 놈이 어디다가..." 저는 부엌 문으로 나와 마당을 지나 도망갔습니다. 한참 달리다 마당 입구에서 되돌아보니 아버지는 집 앞에서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첫번째 전투였을지 모릅니다.



항상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있으면 싸움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늘 당하기만 했습니다. 바보같이 왜 당하기만 하냐고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 마다 어머니는 자식들 걱정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서울 큰 집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서울 구경 시켜준다는 큰 아버지를 따라 나선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그것이 이별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큰 집에 자식이 없어 제가 서울로 가게 된 것이었습니다. 세상을 비관하던 학창생활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걱정은 힘겹지만 이겨내야 했습니다.

방학 때 마다 혼자서 시골을 찾았습니다. 한 여름날에도 어머니의 농사 일을 도와 논둑을 베고 땔감 나무를 했습니다. 저의 얼굴에는 항상 땀이 범벅이곤 했습니다. 아버지는 당시 농사 일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읍내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 날도 많았습니다. 한량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어머니 혼자 힘든 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집에 땔감이 떨어져도 아버지는 태평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아버지와 멱살을 잡고 싸울 뻔 했습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어 눈물을 흘리며 산으로 도망갔습니다. 산 속에 있는데 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그냥 잘못했다"고 하라 했습니다. 언제나 그랬습니다.

어느새 1980년대 중반 대학에 갔습니다. 암흑과 같던 군사 독재 시절에 치열한 대학시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대학 2년을 마치고 난 뒤었습니다. 군대를 가기 전 까지 어머니 일을 도왔습니다. 농가 부채는 1억원에 달하는 시기였습니다. 당시는 아버지가 어느정도 마음을 잡고 일을 했습니다. 표고버섯 재배였습니다. 산 등성이에서 일해야 하기에 위험했습니다. 겨울에는 참나무를 베고 봄에 버섯종균을 넣은 후 나무를 세워두는 과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힘든 일을 하면 더 화를 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화풀이 대상이 어머니가 되었지만 어머니는 늘 참았습니다. 그것을 지켜보는 저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도 장성한 제가 있어 아버지는 예전보다 심하게 가지는 않았습니다. 여름이 왔습니다. 비가 온 후 버섯이 엄청나게 나왔습니다. 아버지와 저는 지게를 등에 지고 엄청난 버섯을 산길을 타고 집으로 날랐습니다. 어머니는 버섯을 따고 부자는 쉴새없이 버섯을 날랐습니다. 하루종일 지게를 지고 산길을 오가다보니 얼굴에 소금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가장 힘든 노동이었습니다. 어머니는 고된 일로 다리를 절뚝거리는 저를 보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산 위에 떠오른 태양의 햇살은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에 반짝였다

그리고 군대를 가야 하는 날이 왔습니다. 저는 집 앞에 나온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시골 집은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가면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가 있었습니다. 하루에 네 번 정도 버스가 다녔습니다. 버스를 타기 위해 산을 내려가는데 아버지를 계속 제 뒤를 따라왔습니다. 말없이 따라왔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그만 들어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뒤돌아 봤습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뒤로 돌렸습니다. 그 때 저는 보았습니다. 이제 막 산꼭대기에는 아침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태양의 햇살에 아버지의 눈물 한 방울이 순간 반짝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 눈물을 보이기 싫어 고개를 돌렸지만 저는 이미 알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군대가는 아들이 걱정됐습니다. 계속 아들 뒤를 따라오며 잠시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아들에게 보여주기 싫었지만 저는 햇살에 비친 아버지의 눈물 한방울이 빛나는 것을 봤습니다. 난생 처음 본 아버지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렇게 강하신 분이셨던 아버지의 눈물은 충격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군대를 향해 가면서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와 화해를 했습니다.

독립영화 '워낭소리'는 어쩌면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단한 삶과 닮아 있습니다. 부모님 세대는 자신의 삶 보다는 자식들을 위해 늘 헌신했습니다. 아버지는 늘 표현에 인색했고 어머니는 항상 자식을 사랑으로 감싸주셨습니다. 첨단 문명이나 도시 사회에서 보면 워낭소리의 노부부의 삶은 한편으로 답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부부의 삶에는 가족이 있고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슬프고 괴롭고 힘들더라도 안식과 위안이 되는 곳입니다. 우리에게 언제나 희망과 용기를 주는 것은 바로 부모님입니다. 이제 아버지도 기력이 약해지고 어머니도 몸이 아프시곤 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되어보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휴가에도 자식들과 손주들 기다릴 부모님을 찾아뵈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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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왕국시대의 임금님을 뜻하는 일반 백성들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나랏님은 백성들이 섬겨야 할 군주였습니다. 나랏님은 씨가 달랐습니다. 이씨 조선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왕씨도 있었고 여러 씨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옛날 씨족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이씨 왕족은 자자손손 왕이 되었습니다. 왕국이 무너지고 왜국이 되었습니다. 왜국은 순사들이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쌀나라(米國)의 도움으로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쌀나라의 심복인 이씨가 또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이씨가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나랏님을 내쫓아버렸습니다. 이씨는 나라 밖을 맴돌다 객사했습니다. 그런데 왜국에서 완장찼던 박씨가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박씨도 국민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완장찬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씨도 자기 밑에서 완장찼던 부하에게 총맞아 죽었습니다.

쌍김씨가 나랏님이 될 찬스가 왔습니다. 그러나 전씨가 박씨의 수법으로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전씨도 완장찬 부하들을 통해 백성들을 박해했습니다. 백성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전씨도 결국 항복했습니다. 쌍김씨 중 한김씨는 전씨 친구와 손잡았습니다. 전씨 친구가 나랏님이 됐습니다. 공화국의 국민들이 뽑은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완장찬 시대가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전씨 친구가 끝나고나자 손잡았던 한김씨가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능했습니다. 배신의 계절이 지났습니다. 그 후 다른 김씨가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비로소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잠시 남북에 평화가 왔습니다. 그러나 박씨가 만들어놓은 남남의 국민들이 서로 싸웠습니다. 남남의 국민들을 통합하겠다던 노씨가 나타났습니다. 노씨는 봉하 농민의 아들이었습니다. 노씨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랏님은 모두 퇴임 후에도 임금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은 서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씨가 달랐습니다.

노씨는 남남의 국민들을 통합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가 끝났습니다. 노씨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씨는 봉하 농촌에 가서 살았습니다. 백성들은 이웃이 된 노씨에 감동했습니다. 이씨가 다시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이씨는 봉하에서 농사짓는 노씨가 싫었습니다. 이씨는 노씨를 괴롭혔습니다. 가족들도 괴롭혔습니다.

노씨는 '삶과 죽음의 길이 자연의 한조각'이라며 부엉이바위에서 승천했습니다. 백성들은 깨달았습니다. 노씨가 진정한 그들과 같은 국민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백성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씨는 눈물흘리는 백성들도 싫었습니다. 순사들을 보내 백성들을 혼냈습니다. 그럴수록 백성들은 노씨가 그리웠습니다. 그리고 이씨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면 완장 찬 순사들이 늘어났습니다.

이씨는 노씨처럼 농사짓는 시늉도 했습니다. 백성들이 오가는 골목에서 뻥튀기도 먹었습니다. 오뎅도 먹었습니다. 쇼를 했습니다. 백성들은 쇼가 아니라 감동을 주라고 했습니다. 순사들이 농사짓는 강물을 막아버렸습니다. 백성들에게 말할 권리도 없어졌습니다. 사발통문법이 만들어졌습니다. 백성들은 노씨와 농사짓던 봉하로 갔습니다. 거기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른들을 위한 졸필의 우화였습니다. 나랏님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씨가 있는 나랏님과 씨가 없는 나랏님이 있습니다. 이씨는 씨가 있는 나랏님이었습니다. 노씨는 나랏님이었지만 씨가 없는 백성의 길을 택했었습니다. 그래서 노씨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백성들은 그제서야 노씨가 진정한 서민이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씨는 노씨 흉내를 냈지만 이제는 백성들도 믿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랏님은 씨가 달라서 농사를 짓지 않는다? 편견입니다. 나랏님도 농사도 짓고 시장에도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랏님은 진정성을 알고나서 백성들이 섬겼습니다. 공화국의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랏님이 논두렁에 나타나고 시장 골목에서 오뎅을 먹어도 백성들은 마음 속으로 말했습니다. 푸른집에 쥐가 산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왕국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쇼하지 말란 말이야!"

이 글은 전혀 현재와는 무관합니다. 옛날 씨족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런 편견없이 읽어주셔야 합니다. 자신의 성씨가 나왔다고, 또는 안나왔다고 상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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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신의 직종이나 전공 때문에 주위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를 써주세요. 
2. 다음 주자 3분께 바톤을 넘겨주세요. 
3. 마감기한은 7월 31일까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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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분 부탁드립니다. 송구하지만, 블로그 문화에 동참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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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준표 꽃남 '로망'과 워낭소리 '향수' 이상한 공존 사회?


현재의 대한민국을 보면 혼란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정치사회를 보면, 이미 흘러간 이데올로기의 유령이 백주대낮에 활보합니다. 불황은 고단하고 팍팍한 삶을 짓누릅니다. 치열한 탐욕과 경쟁의 시대는 현실도피를 부릅니다. 


막장 판타지 드라마 오명을 듣는 '꽃보다 남자'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또 한편에선 옛날 신파극을 연상케하는 독립영화 '워낭소리'가 폭발적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상호 존립하기 어려울 듯한 두가지 상반된 이념이 어울리지 않게 이상한 공존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정치는 불신의 골이 깊어졌고 경제는 어렵고 살기 힘드니까 사람들은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판타지의 세계 속으로 빠져듭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향수에 젖어 들어갑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꽃보다 남자(꽃남)'와 '워낭소리'라는 양극단의 문화는 일찍이 존재하지 않았던 문화코드입니다. 우리네 인생들은 이룰 수 없는 환상과 돌아갈 수 없는 과거이지만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잊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꽃보다 남자'와 '워낭소리'라는 양립할 수 없을 듯한 두 문화코드를 비교해 보겠습니다.

꽃미남 10대 구준표와 79세 최원균 할아버지, 극단의 주인공 

'백마탄 왕자님'과 흡사한 꽃미남 구준표와 가난한 79세 촌로인 최원균 할아버지. 꽃남과 워낭소리의 주인공만 보아도 극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재벌 부잣집 아들은 환상을 쫒는 '로망'이 되고, 가난한 촌로는 과거의 '향수'가 됩니다.

구준표는 10대 고교생인데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다니고, 최원균 할아버지는 초라한 소달구지를 타고 다닙니다. 스타벅스의 여성들과 소녀 시청자들은 구준표와 금잔디의 키스와 초호화 해외관광지의 애정행각 이야기에 빠져있고, 중장년층 관람객들은 불쌍한 늙은 소와 촌로의 삶에 가슴 찡한 감동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와 영화에서 이토록 극단의 주인공이 동시에 각광을 받은 적은 처음일 듯 합니다.


고교생의 호화로운  도시 소비 생활과 시골 촌로들의 척박한 노동 생산

10대 고교생들은 부자 부모를 배경으로 호화로운 도시의 물질문명을 만끽합니다. 척박한 시골 농촌 마을의 촌로들은 끊임없이 일을 하며 생산적 노동을 합니다. 

꽃남들은 경쟁과 암투 속에서 연애를 하고 소비를 즐기고, 촌로들은 헌신적인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생산을 합니다. 한편의 사람들은 고급 스포츠카를 몰고 해외의 호화 리조트를 다니며 안하무인으로 살 수 있는 '무례한 구준표'를 통해 욕망을 대리 실현합니다. 꽃남들은 명품 브랜드로 치장된 소비를 상징하고 한 여자 금잔디를 소유하기 위한 경쟁의 구도입니다.

다른 한편의 사람들은 촌로들과 늙은 소의 이야기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인생과 노동의 신성함을 재발견하고 느림의 미학에 감동합니다. 우리의 조상들에 그렇게 살아왔던 것과 같이 촌로들의 삶 속에서 부모와 가족을 발견하고 헌신적 사랑과 존재의 의미를 느낍니다. 그것은 가난했지만 따뜻했던 옛 시절과 푸근한 고향의 정서를 자극하는 향수입니다.


제작비 70억원 24부작 드라마와 제작비 2억원 78분 독립영화의 재해석

꽃남은 70억원을 들여 만든 24부작 드라마 대작입니다. 이미 흥행이 검증된 일본 만화 원작을 토대로 엄청난 물량을 쏟았습니다. 그러나 워낭소리는 3년간 제작비 2억원으로 겨우 가까스로 완성해 초라하게 개봉된 78분 독립영화입니다. 방송국에서 퇴짜맞고 영화관에 상영조차 어려웠던 영화입니다.

꽃남이 메이저 방송사의 대대적 광고 공세와 주류 언론사들의 펌프질에 힘입어 쉽게 인기 가도를 달렸지만, 워낭소리는 소규모 영화관의 전단지로 시작해 관람객의 입소문을 타고 블로거들의 소개가 이어지면서 작은 바람이 커다란 광풍이 된 사례입니다.



그러나, 워낭소리는 이미 관객 200만명을 돌파하고 고공행진하고 있습니다. 반면 꽃남은 막장드라마의 오명을 듣지만 시청률 33%라는 최고 드라마의 반열에 오릅니다. 앞으로가 문제입니다. 꽃남은 회를 거듭할수록 점차 동력을 잃어갈 것입니다. 그렇지만 워낭소리는 300만을 향해 더 나아가 400만의 고지를 넘어 독립영화 사상 최고의 기록을 갈아치울 것입니다.

꽃남은 드라마가 끝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환상이지만, 워낭소리는 비록 작지만 멀리 메아리치는 현실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워낭소리가 몰고 올 사회적인 자산과 문화의 재발견이 우리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살찌울 토양이 될 것입니다.

<꽃보다 남자> 대 <워낭소리> 주요 특징 비교
 구분  꽃 보다 남자  워낭소리
 주인공 고급 스포츠카 타는 부잣집 아들들 
10대 구준표 외 꽃남들과 금잔디
가난한 농촌 촌로 부부와 늙은 소
최원균 부부와 소
 주요 시청자층과 관객층 10대~30대 여성층 중장년층
 흥행 성과 약 33% 시청률 200만 관객 돌파 신기록 진행중
 제작비용 및 방영시간  약 70억원, 24부작 약 2억원, 78분
 장르 판타지 드라마 휴먼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
 촬영 공간 도시, 학교  농촌, 들판 
 주요 의미 백마탄 왕자의 환상 고향과 아버지의 향수 
 주요 키워드와 정서 연애, 경쟁, 소비, 과시, 환상, 부자, 방탕 헌신, 복고, 가족, 향수, 가난, 노동, 생산
 주요 마케팅 메이저 방송사와 주류 언론들  소규모 전단지와 블로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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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보고싶던 영화 워낭소리를 봤습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딸과 장모님, 그리고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게 됐습니다. 모처럼 이번 영화를 장모님을 포함한 가족이 모두 볼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습니다. 그다지 영화를 즐기지는 않는 저에게도 이전부터 워낭소리는 반드시 봐야겠다는 의지가 충만했었습니다.  

독립영화라서 상영관이 많지않았지만,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집에서 가까운 프리머스에서 워낭소리를 상영해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와 단 둘이서 볼까 생각했지만 이왕이면 장모님과 두 딸도 같이 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온 가족이 세대를 뛰어넘어 감동받은 영화였습니다. 3대에 걸쳐 감동을 전해준 소통의 영화였던 셈입니다. 우선 장모님은 영화를 관람한 후 저에게 "고마워"라며 고마움을 표시하셨습니다. 장모님 세대에는 그 만큼 공감대가 컸던 것 같습니다. 영화관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장모님을 내내 무엇인가 상념에 젖은 모습이셨습니다. 그 만큼 울림이 컸다는 것입니다. 장모님이 좋아하시니 저도 행복한 마음입니다.

가장 놀란 것은 둘째 딸이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10살이고 새 학기가 되면 초등학교 3학년이 되는 아이입니다. 둘째 딸은 영화가 끝난 후 "엄마 감동했어. 소가 죽을 때 눈물났어."라며 워낭소리 영화에 몰입이 되어 있었습니다. 집에서부터 워낭이 무엇인지 묻고, 영화관에서도 영화소개 전단지를 보면서 궁금증을 보여주던 딸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물질만이 아닌 삶의 소중한 가치를 심어준 듯 하여 내심 기뻤습니다.

아마도 아이 때부터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찾아뵙고 놀았던 기억들이 워낭소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방학 때 마다 시골에 가는 것을 손꼽아 기다리던 두 딸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산과 들, 그리고 냇가 등 자연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컴퓨터와 가게가 없지만 아이들은 더 소중한 추억들이 가득했던 것입니다.

아내도 영화를 보는 동안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대화 하나 하나에 반응하고 소의 눈물에도 슬픔을 나타냈습니다. 도시에서 자란 아내지만 저와 결혼 후 농촌과 시골에 대해 많은 부분을 알고 있던 터라 감흥이 컸던 모양입니다. 둘째 딸이 소의 다리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아내에 물었는데 정확히 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내는 소 키우는 것을 보지는 못했지만 이미 소똥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워낭소리는 곧 저와 부모님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소를 키웠고 논과 밭을 경작했습니다. 나무 장작을 태워 밥을 하고 소죽도 끊였습니다. 어린 시절에 하는 일이 소꼴을 베고 나무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영화 속의 최원균 할아버지의 절룩거리는 다리는 저희 어머님의 다리였습니다. 워낭소리에서 다리를 절룩거리는 최원균 할아버지 부분에서 저는 눈물을 삼켰습니다. 어머니는 저를 임신했을 때 소꼴을 베고 머리에 이고오다 넘어졌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낫이 떨어졌는데 날이 선 낫에 무릎을 다치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도시에 돈벌고 가고 어머니 혼자였습니다. 혼자서 논밭을 일구고 소를 키우고 온갖 일을 다하셨던 것입니다. 평생 다리 하나를 불구의 몸으로 살아오신 어머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지금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험준한 산에서 표고버섯 재배를 하십니다. 나이드신 노인들이 산에서 일하는 것이 너무 위험하고 힘든 일입니다. 이제 좀 산 일은 하지 마시라고 신신당부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최원균 할아버지의 고집은 저희 아버지와 닮았습니다. 워낭소리에서 할머니의 "에이고" 하는 한숨과 푸념은 곧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워낭소리의 여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장모님과 부모님 세대, 그리고 우리 부부 세대,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 세대가 함께 세대간 벽을 넘어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 물질문명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하더라도 더욱 고귀하고 소중한 것은 사람사는 공동체입니다. 오늘 세대를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한 것은 앞으로 계속 우리 가족에게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워낭소리는 보실 분들은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워낭소리 영화의 마지막 자막은 세대를 관통하는 소통을 의미하는 듯 합니다. 현재 우리 시대를 돌아보면 온통 소통은 없고 탐욕만이 가득한데 소중한 것은 가족이고 가족간의 소통과 사랑입니다.

‘유년의 우리를 키우기 위해 헌신했던 이 땅의 모든 소와 아버지들에게 이 작품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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