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10.03.22 3월 춘설, 미인 왕소군과 춘래불사춘 의미 by 진리 탐구 탐진강 (48)
  2. 2010.01.16 20년전 군대, 말년 병장 죽이는 낙서 놀이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3. 2010.01.08 사랑의 낚서, 눈 세상에 쓰는 남녀의 심리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44)
  4. 2010.01.05 박대기 기자와 폭설 뉴스 현장 목격 소감 by 진리 탐구 탐진강 (99)
  5. 2009.12.28 2cm 눈에 아수라장 된 서울 나들이 '분통터져', 왜 그랬을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87)
  6. 2009.12.08 남자가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 10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9)
  7. 2009.03.03 강아지가 잡은 멧돼지, 최고의 맛이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
  8. 2009.01.25 폭설 피해 온 동생이 병원 응급실에 간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3)
  9. 2009.01.25 명절 폭설 길에 아가의 분유 물 찾아 삼만리 by 진리 탐구 탐진강 (26)
  10. 2009.01.22 인도네시아인들 생애 처음으로 '눈'을 보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봄이 올 듯 하면서 꽃샘추위가 길어지는 듯 합니다. 이번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기도 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했던가. 봄이 왔건만 봄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정치 사회 세상사를 보면 동토의 왕국처럼 매서운 추위가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하는 것 같습니다. 시절이 하수상하니 봄이 올듯 말듯 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서운 겨울을 이기고 끝내 봄은 오겠지요.

황사가 밀려오다가 다시 눈과 비가 내리고 날씨가 종잡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대자연은 어느새 우리 가까이 봄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말에 주말농장 텃밭에 가보니 파릇파릇한 풀들이 새순을 돋고 겨울을 이기며 대파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지난 초겨울 심어둔 양파는 언 땅을 헤치고 초록의 잎을 밖으로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이제 곧 텃밭을 일굴 수 있는 계절이 다가오니 마음이 따뜻해 집니다. 이제 마지막 겨울을 정리하고 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나 봅니다.

잠시 춘래불사춘에 대해 공부하고 넘어가 봅니다. 춘래불사춘은 중국 한서(漢書에 나오는 고사입니다. 중국 한나라(전한) 시절 절세미인이었던 왕소군이란 궁녀를 공주로 속여 흉노족 왕에게 보낸 일화를 안타까워 했던 시인 동방규가 쓴 한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왕소군은 양귀비, 서시, 초선 등과 함께 중국 4대 미인에 속합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고사와 유래

전한(前漢)의 원조(元祖) 때다. 왕소군(王昭君)에게는 봄은 봄이 아니었다. 기원전 33년, 클레오파트라가 자살하기 3년 전 정략의 도구가 된 궁녀 왕소군은 흉노 왕에게 시집갔다.

왜 그 많은 궁녀 중 하필이면 왕소군이었던가. 거기엔 기막힌 사연이 있었다. 

걸핏하면 쳐내려오는 흉노족을 달래기 위해 한(漢)나라 원제(元帝)는 흉노 왕에게 화친을 위해 공주를 보내야 했다. 원제는 공주 대신 궁녀를 공주로 속여 보내기로 했다. 

누구를 보낼 것인가 생각하다가 원제는 궁녀들의 초상화집을 가져오게 해서 쭉 훑었다. 그 중 가장 못나게 그려진 왕소군을 찍었다. 원제는 궁중화가 모연수(毛延壽)에게 명하여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놓게 했는데 필요할 때마다 그 초상화집을 뒤지곤 했던 것이다. 

궁녀들은 황제의 사랑을 받기 위해 다투어 모연수에게 뇌물을 받치며 제 얼굴을 예쁘게 그려 달라고 졸라댔다. 하지만 왕소군은 모연수를 찾지 않았다. 자신의 미모에 자신만만했기 때문이다. 괘씸하게 여긴 모연수는 왕소군을 가장 못나게 그려 바치고 말았다. 오랑캐땅으로 떠나는 왕소군의 실물을 본 원제는 땅을 치고 후회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昭君怨(소군원) - 동방규(東方虯)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자연히 옷 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이는 허리 몸매 위함이 아니었도다.


昭君怨(소군원) - 이백(李白)

昭君拂玉鞍(소군불옥안)           소군이 옥 안장을 떨치며
上馬涕紅頰(상마체홍협)           말을 타니 붉은 뺨에 눈물이 흘러

今日漢宮人(금일한궁인)           오늘날 한나라 궁녀가
明朝胡地妾(명조호지첩)           내일 아침 오랑캐의 첩이 되는도다. 

이백의 <소군원>은 소군이 한나라 궁을 떠나 흉노의 땅으로 출발하는 때의 비애(悲哀)와 정경(情景)을 묘사하였고, 동방규의 <소군원>은 흉노 땅에 도착한 후 황량한 풍토에서 맞는 상심(傷心)과 망향(望鄕)의 슬픔으로 나날이 수척해 가는 가련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올해는 3월 춘설이 자주 내렸습니다. 영하를 오르내리는 꽃샘추위는 물론 봄같지 않은 날들의 연속 속에 민초들이 움추린 사회를 생각하면서 중국 미인 왕소군의 고사가 전해져오는 춘래불사춘이란 말을 되뇌이는 날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지난 3월 초순의 신촌 부근 모습입니다. 밤에 눈이 많이 내려 주차해준 자동차를 비롯 길거리가 눈으로 덮였습니다. 휴대폰 카메라로 마지막 눈이 될 수도 있어 담아 봤습니다.


왕소군이 중국 역사의 자부심으로 남았던 이유

흔들리는 서울 도심의 네온사인 불빛은 술취한 거리 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돌아갑니다. 다시 왕소군 이야기를 전하자면, 왕소군이 중국을 떠나는 날,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비파로 이별곡을 연주하고 있을 때 하늘을 날던 기러기 떼가 왕소군의 미모에 도취되어 날개짓을 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땅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흉노로 간 왕소군은 그 곳 흉노 여인들에게 길쌈하는 법을 전수했고,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 한나라와 흉노의 전쟁은 없었다고 합니다. 왕소군의 희생으로 중국은 당시 강대국 흉노로부터 평화시대를 얻을 수 있었던 셈입니다.



밤을 지나면 다시 새벽이 옵니다. 날이 새고 동이 트면 태양을 대지를 비추게 될 것입니다. 비록 아직은 눈덮인 동토의 땅이지만 결국은 땅이 녹고 그 위에 새싹이 돋게 됩니다. 눈 속에 새 생명이 움트고 있는 셈입니다.




역사를 소중히 하는 중국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국은 역사를 소중히 하는 것 같습니다. 비록 오랑캐 흉노에게 보내야 했던 역사였지만 중국인들의 자부심의 상징이 바로 왕소군입니다. 당시 흉노에 비해 약소국의 설움이었지만 부끄러운 역사가 아닌 자부심으로 후세들은 왕소군을 추앙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국사도 의무교육에서 제외됐다고 합니다. 대통령의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달라' 독도발언 논란에서도 보듯이 역사의식이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유관순이나 논개의 위대한 역사도 뉴라이트에 의해 폄하되고 훼손되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우리 것과 역사를 소중히 하지 않으면 언제라도 우리는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할 수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 강점기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통해 해방된 조국을 그리면 춘래불사춘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시인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섯지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넘어 아가씨 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 밤 자정이 넘어 나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 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지지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닷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서름이 어울어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로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잡혔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눈꽃이 쌓인 길가의 나무들과 풀들이 상서로운 기운을 불어넣습니다. 이 눈이 녹으면 봄은 오고야 말겠지요. 눈꽃 만큼은 아름다운 자연으로 추억하게 될 듯 합니다.



의자에 쌓인 춘설에 아떤 사람의 흔적도 없습니다. 누군가 앉아야 할 의자입니다. 눈이 녹고 따뜻해지면 의자에도 사람들이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울 것입니다.


주말농장 텃밭에 심는 씨앗은 곧 희망

그렇게 겨울을 이겨내고 봄은 오나 봅니다. 주말농장 텃밭에 심은 양파는 겨우내 동토 속에서도 새순을 돋기 위해 기나긴 밤들을 지새웠나 봅니다. 곧 텃밭 갈이가 시작될 듯 합니다. 초등학생인 두 딸아이는 자신들만의 텃밭을 올해 일구겠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이제는 많이 컸나 봅니다. 올해 텃밭은 작년 보다 2배 크기가 될 듯 합니다. 아이들이 텃밭에 심는 씨앗은 희망입니다.




그래서 봄은 희망입니다. 출래불사춘이었지만 왕소군은 중국 역사의 영웅이자 자부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비록 슬픔 역사였지만 지워버리고 싶은 역사마저도 희망으로 만든 후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역사를 놓고보면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만드는 것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오늘 하루가 바로 부끄럽지 않고 자랑스런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들 딸로 살아가는 역사입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이 모여서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의식의 출발입니다.

어제 춘분(春分)도 지나고 바야흐로 완연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릴 듯 합니다. 꽃피는 봄과 희망의 향연을 즐기는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한 주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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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천하무적 짱가도 내 앞에선 고철"

태권V가 짱가를 마구 때리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태권V와 짱가의 모습을 실제 그림으로 그려 실감나게 낚서를 한 장면이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덧붙여 '임자 만날 날 있을 걸.'이란 의미심장한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하겠지요? 제가 20년전 군대를 제대할 무렵에 후배나 동료 전우들이 회상록에 그린 낙서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상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군대 회상록을 들추어보다가 전우들의 낙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에서 짱가는 저의 군대시절 별명입니다. 당시 힘좋고 기술좋은 작업반장이었던 저를 전우들은 '짱가'라고 불렀습니다. 짱가는 그 시절 사람들이 좋아했던 로보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런 짱가를 힘으로 눌러주고 싶던 후배 전우가 로보트 태권V 주인공을 그려 우스꽝스런 만화를 그린 것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 (야!)'로 시작되는 노래인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곡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단번에 알 것 같습니다.

                                지난 1970년대 추억의 로보트 3인방, 짱가-태권V-황금박쥐 모습

그런 만화 낙서를 보니 군시절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여름철 폭우가 내려 작전도로가 유실되면 저와 친구인 J는 둘이서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저는 돌쌓는 기술로, J는 엄청난 괴력의 힘으로 돌을 날라 순식간에 도로를 복구했습니다. 강원도 철책에 폭설이 내리면 언제나 제일 앞에 서서 저와 J는 눈을 치웠습니다. 군대 작업의 달인, 환상의 짝꿍 듀엣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하던 선배도 말년 병장이 되면 후배들의 장난감이 되는 이유  

그래서 후배 전우들은 저와 J의 존재가 고맙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했나 봅니다. 그런 것들이 낚서로 표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헤어지는 아쉬움과 친근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낙서를 살펴볼까요?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을 놀리는 낚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말년의 고뇌여~ 가는 날까지 우리들에게 갈굼 당할 걸 생각하니 힘드시겠지."
"짱가씨 결혼할 거니? 짱가 왈 내비둬, 이렇게 살다 껌에 붙어 갈겨."
"짱가씨. 집에서 전화왔어요. 집에 오지 말라고."
"웃기지 마. 나도 때 빼고 광 내면 미스코리아 화장실 청소라도 할 수 있다  뭐라고라~"


군대 회상록 낚서판에 동료 전우들이 말년 병장을 향해 한 마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장면

낙서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후배들이 말년 병장인 저를 갖고 노는 것 같은 구절들이 묻어나 보입니다. 사실 군대에서 제대 앞둔 말년 병장은 후배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한창 때 무시무시한 선배였다 하더라도 말년은 후배들에게 당해주면서 정겨움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전통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남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정과 훈훈한 의리였습니다.

잠깐 퀴즈?
낙서에 나온 것인데 아래 각각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요?

1.창녀가 가장 좋아하는 야채는?

2.남녀 혼성 이부 합창은 순한국말로 하면?
3.브라자를 순한국말로 하면?

당시 군대에서 유치한 문답 놀이 정도 됐었나 봅니다. 지금 살펴보니 그 때는 저런 저질 유치 개그가 유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방위에 대한 당시 이야기도 낙서에 나왔습니다.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방위에 대한 유머(?) 장난이 아닌가 생각되는 낚서였습니다.

방위란?(낙서 버전)
1.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면사무소를 접수한다
2.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예비군을 통제한다
3.전쟁시 도시락을 지참 9시에 출근하여 5시 반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오리지날 버전
방위의 임무. 하나.
전쟁이 발발시 방위는 적진의 동사무소를 점령한다.
방위의 임무. 둘.
방위는 도시락통을 싸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도시락통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망을 교란한다.
방위의 인무. 셋.
방위는 아무리 전쟁이 치열하거나 해도 아침 9시에 근무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넷.
방위는 일부러 적의 포로로 잡혀가 적의 식량을 축낸다.
방위의 임무. 다섯.

전쟁발발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여군들을 몽땅 꼬신다.


남방한계선을 넘어 최전선 철책을 넘나들며 비무장지대를 호령하던 전초 수색대들의 생활은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항상 삶과 죽음의 사선을 오가는 비무장지대 수색과 매복은 긴장과 서스펜스나 다름없었습니다. 순간 잘못 길을 가면 지뢰지대이고 잠깐 졸다가는 북한군이 목을 베어갈 준전시상태였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 강추위의 비무장지대에서 매일 밤 13시간 매복 작전

그러다 보니 군기가 가장 센 곳이었습니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개인 화기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태권도 및 특공무술을 비롯한 최강의 무예를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한 겨울 맹추위에 비무장지대 매복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1박2일에서 박찬호가 강호동을 포함 멤버들이 펼친 혹한기 실전캠프는 사실 '새 발의 피'였습니다.


전우들의 낚서판(좌)과 제가 그린 그림으로 수탉이 알에서 나온 코끼리 새끼를 본 후 암탉의 외도 의심

철책을 통과해 비무장지대 내에 들어선 순간 부터는 철처하게 자신과 전우들을 믿어야 했습니다. 군사분계션까지 도달해 겨울 매복작전을 펼칠 때면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북한 땅이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과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 총탄을 장전하고 있는 최강 DMZ 수색대원도 오로지 혼자가 된 느낌의 순간에는 나약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료와 말도 못하니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어떤 과자나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심지어 오줌도 눌 수 없어 오줌통을 들고 들어가는 비무장지대 내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전우와 동료를 신뢰해야만 비무장지대 수색 및 매복 작전은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 매복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 몸이 얼어서 새벽 무렵 철수할 시간은 지금도 불현듯 스쳐지나가고곤 합니다. 체감온도 40도 전후의 강추위에 밤새 13시간을 야외에서 뜬 눈으로 이틀에 하루 꼴로 밤을 지새운다는 것이 상상이 가시겠습니까? 잠시 회상에 젖었습니다.

다시 낙서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티파니왈 흔들자고"라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도 티파니가 있나 본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추가] 댓글을 보니 1980년말 티파니(Tiffany Renee Darwish)라는 미국 팝가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써니텐 광고에서 '흔들어 주세요'로 유명해 이 같은 낙서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갈 때 죽을 때 까지 똥침 놀 거다"
"기분이다. 아줌마, 단무지 하나 더 주세유"
"너 지금 가면 안올거지 그지?"
"뭐 같은 인생 간편히 살자고."
"집에 가서 잠만 자지 말고 여자 구해 장가 갈 궁리나 해라"
"수고했다 뺑이 치느라고"
"엿먹고 조총을 쏴라"

후배들의 낚서 중에는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서를 보니 똥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랜 전통을 지닌 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20년전 군대에서도 유행하던 놀이는 똥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위의 낙서 중 '뺑이친다'는 말은 힘들게 고생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일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그린 DMZ 수색대 마크(좌)와 후배 전우들이 회상록에 넣어준 자신들의 사진 모습

지난 20년전 군대에서 동료 전우들의 낙서를 보면서 20대의 용광로같은 젊은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은 편하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지만 당시는 눈덮힌 야외 들판에서 판초우의 한 장으로 밤새 추위를 이기고 생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겨울 이겨냈던 DMZ 비무장지대 수색대원들은 결코 동장군 강추위에도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남북한은 물론 지구촌을 배회하던 아픈 역사 현장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남자들만의 의리와 정을 나누고 그 자릴 지켰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싹튼 우정과 동료애는 말년 병장을 사회로 보내야 하는 아쉬움으로 추억의 낚서를 회상록에 남겼던 것입니다. 20년만에 20대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그 당시의 낚서를 보니 수많은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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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온통 눈 세상입니다. 갑작스런 폭설과 한파로 교통대란과 일어나고 크고 작은 사건 사고도 많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눈 세상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함박눈과 싸리눈과 같이 눈이 내리는 날, 가장 좋아하는 동물은 강아지와 개라고 합니다. 개와 강아지의 눈은 색맹이라서 눈 내리는 풍경이 매우 생소하고 특이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여러 컬로 색상을 보는 사람의 시각과는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색맹인 개에게는 하늘에서 하얗게 쏟아지는 눈발은 그야말로 장관으로 보일 것입니다.

강아지가 눈내리면 좋아하는 이유는?

눈이 내리면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팔짝팔짝 뛰면서 좋아하는 것은 그 만큼 생경하고 이채로운 풍경을 즐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들의 눈은 녹색과 검은 회색은 일부 알아보지만 검은 색과 흰색의 흑백사진처럼 세상을 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개들은 근시라서 멀리 있는 사물을 식별하는 능력은 떨어지지만 움직임에는 매우 민감해서 흩날리는 눈송이들이 자극을 준다는 것입니다.

특히 어둡고 캄캄한 밤중에 하얗게 반짝이는 백색의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면 하늘이 불꽃놀이처럼 더욱 자극적인 풍경이라고 합니다. 하얀 눈이 만들어낸 세상은 개들에게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인 셈입니다. 흑백세상이 준 선물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 만큼 순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산 비탈에서 비닐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의 인공 눈썰매장 보다 재밌다

아이들이 산비탈 비닐포대 썰매를 더 좋아하는 이유?

또한 눈이 내리면 어린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눈사람도 만들고 눈싸움도 하고 눈썰매도 탈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만큼 아이들에게는 즐거운 놀이가 함께 하는 세상입니다. 아무리 춥더라도 동네 꼬마 녀석들은 세상사 근심 걱정없이 순수의 동심을 쏟아내며 행복하기만 합니다.



아이들은 인공 눈썰매장과 비탈길의 비닐 포대 썰매 중 어떤 것을 더 좋아할까요? 실제 실험을 해봤는데 아이들은 그냥 산비탈에서 즐기는 비닐 포대 썰매를 더 좋아합니다. 이유는 자유롭게 오래 탈 수 있고 그들만의 세상이고 더 스릴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골 마을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다면 아이들에게는 겨울철에 큭 축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눈 내린 순백의 세상 풍경에는 연인이나 청춘 남녀들에게 사랑과 낭만을 함께 그리고 있다

연인들이 모래사장이나 눈밭에 사랑을 표시하는 이유는?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연인 사이가 되면 함께 모래사장이나 해변을 거닐어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모래성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모래밭에 사랑의 하트 모양을 새겨보기도 합니다. 순수함과 낭만이 있는 풍경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닷물에 휩쓸려간다고 하더라도 둘이 함께 한 순간의 영원은 함께 하고 있어 행복할 것입니다.


저도 아내에 의하면 젊은 시절에 바다 해변의 모래사장에 하트 모양을 그린 적이 있다는데 기억도 가물가물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합니다. 아마도 당시 남들이 해변이나 모래사장에서 그런 장면을 연출하거나 영화와 같은 곳에서 연인들이 보여주는 낭만의 모습이 한번 나도 해볼까 하는 심리로 작용한 듯 합니다.

연인들 두 사람이 함께 만드는 경우의 사랑과 낭만과 표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혼자서 모래사장에 그런 사랑의 그을 그리기도 합니다. 이 경우는 짝사랑 또는 외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간절함일 수 있겠습니다.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지만 앞으로 꼭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염원하는 표시인 셈입니다. 오승희 시인의 모래 위에 새겨진 사랑은 그러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래 위에 새겨진 사랑 


 시인/오승희

모래위에 새겨진 사랑이라서
야멸친 파도 끝에
씻겨질 수밖에 없었나보다

왜 그렇게 지워내려
안간힘을 쓰는지

난 그저 아파할 뿐인데
내 눈물까지 보듬느라
얼마나 버거울까

몇 만 번을 씻겨내도
한사코 젖어드는 사랑인 것을
그대는 아직도 모르나보다
바닷물이 짠 이유를

야멸친 파도로
가슴을 쓸어내는
그대를 모르듯이

눈 쌓인 공원이나 눈밭에 사랑의 하트나 표현을 담은 그림을 자주 보게 됩니다. 연인이 함께 그린 것인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간절한 염원인지 모르겠지만 모래 위에 그린 사랑이나 유사할 것입니다. 시인 이효녕의 시 '눈 위에 쓴 편지'는 아스라한 그리움과 사랑을 애절하게 담고 있습니다.

눈 위에 쓰는 편지

시인/이효녕


눈이 내리는 이 계절
나는 그리운 사람에게
눈 위에 편지를 씁니다

그대는 내 안에 매일 살고
지난 가을 쓸쓸하던 내 가슴 위로
낙엽이 떨어져 이리 저리 뒹굴다가
그리움 눈꽃으로 피어나는 이 계절
기다림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
너무도 행복합니다

차가운 바람에 골짜기가 된 마음
따뜻한 사랑 너무 그리워하며
저미는 내 가슴을 뚫고
하얀 눈벌에 피는 붉은 동백꽃
그대가 내 가슴에 자리 잡고 있어
그리워하는 것도 행복입니다

커피 한 잔을 끓여놓고
창문을 열고 바라보면
그대가 눈길을 걸어오는 듯하여
너무나 보고 싶은 마음에
눈 덮인 우체통 위에 편지 쓰면서
맨 마지막은 사랑한다고
하트 안에 마침표를 찍는 마음
그리움이 눈으로 계속 내립니다


그것은 간절함을 넘어 이제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추억의 한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지나간 겨울 날의 추억이라 하더라도 청춘 남녀와 연인들의 사랑과 낭만은 여전히 깊게 남아있었나 봅니다. 이를 보면 남자에 비해 여자의 감성이 더 큰 것 같습니다. 남자는 단지 순간적인 재미나 즉흥성이 강하다면 여자는 감성과 분위기를 오래 품고 있는 것입니다. 모래와 눈 위에 쓴 사랑과 추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기억의 편린인 셈입니다. 모래 위나 눈 위에 잠시 머물다 사라진 사랑의 표시가 사람들에게는 평생 남아서 영원히 추억하는 페이지인 것입니다. 그것은 가장 순수함과 열정이 가득한 시기의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에 못잊는 것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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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폭설이었습니다. 어제 눈보라 속에 출근을 했습니다. 아침에 우산을 챙겨가지 않았다면 눈보라에 휩싸여 눈사람이 될 뻔 했습니다. 새해 첫 출근에 폭설을 만나 지각한 직장인들이 속출했습니다. 시무식이 연기된 기업도 많다고 합니다.

퇴근 길도 아수라장이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해 일찍 퇴근을 서둘렀습니다. 그러나 빙판길 도로를 피해 지하철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그야말로 지옥철이었습니다. 출퇴근이 교통대란 속 전쟁이었던 하루였습니다. 서울과 인천 경기도 등 중부지역에 1936년 시작된 우리나라 적설량 계측 이래 사상 최고의 하루 적설량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폭설이 낳은 화제, 박대기 기자와 청담동 용자

집에 와서 인터넷을 살펴보니 박대기 기자가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습니다. 호기심에 찾아서 읽어보니 KBS의 2년차 신출내기 박대기 기자가 네티즌들에게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오전 내내 폭설을 그대로 맞고 뉴스를 진행해 잔잔한 감동을 준 모양입니다. 시간대별로 기다리면서 뉴스를 진행한 것이 인상적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TV 화면 아래에 나온 아이디가 waiting@kbs.co.kr이었기에 '대기중(waiting 웨이팅)'이어서 또한 네티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박대기 기자는 폭설이 낳은 스타로 눈사람 기자란 별명도 얻었습니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하려는 기자정신이 나타난 사례가 하겠습니다.




이 날 박대기 기자는 새벽 4시경부터 현장에 나와서 방송 대기했다는데 교통경찰은 출근 길에도 거의 보이지 않은 듯 합니다. 한편 박대기 기자에 이어 '청담동 용자'도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용자란 네티즌 용어로 용기있는 자의 의미입니다. 청담동 부근에서 한 젊은이가 스키를 타는 모습의 사진이었습니다. 폭설로 인해 서울 도시 거리에서 스키를 타는 모습은 황당하기도 하지만 웃음이 절로 나기도 합니다.
(박대기 기자에 대한 시간대별 눈사람 사진과 합성 짤방 사진이 무한 등장해 네티즌에 화제인데 더 보기를 참고하세요)

더보기


 
눈 쌓인 거리에서 직접 본 방송 기자의 뉴스 생방송 현장

사실 저는 지난 연말 서울에 갑작스런 눈이 내렸을 때 박대기 기자 처럼 강추위 속에서 길거리 뉴스 생방송을 하는 어떤 기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당시는 너무 추워서 온 몸을 움추리고 땅바닥만 보고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앞에 뭔가 사물이 있어 고개를 들어보니 KBS 생방송 뉴스 차량이었습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뉴스 생방송 장비나 방송 카메라와 충돌할 뻔 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살펴보니, 어떤 기자가 마침 길거리 표정을 뉴스로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두꺼운 외투를 입고도 추워서 견딜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그 기자는 생방송이기 때문에 다소 얇은 외투만 입고 추위에 떨면서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생생한 현장을 전달해야 하는 방송 기자와 카메라맨을 비롯한 제작 현장 사람들이 조금 불쌍해 보였습니다. 또 다른 박대기 기자와 같은 생방송 현장을 목격한 셈이었습니다.



우리가 편하게 TV를 통해 뉴스를 전해듣지만 방송은 실제 현장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생생한 소식을 전해야 하기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몸소 느꼈습니다. 기자 이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길거리서 만나서 반갑다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김대기 기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방송을 만들기 위해 눈보라치는 계절과 매서운 추위 속에서 시민들을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강추위 속에 뉴스 생방송을 진행하는 현장과 폭설로 자동차 운행이 줄어든 도시의 한적한 모습 

강추위 속 방송 카메라 촬영 현장의 투혼 느꼈다

이 뿐 아니었습니다. 며친 전에는, 어떤 건물 앞에서 열심히 방송용 카메라로 촬영을 하는 사람들과도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이 날도 무척 추운 날이었습니다. 얼마나 추운지 카메라맨들의 복장이 에스키모 복장을 연상할 정도로 완전 무장했습니다. 우리가 방송이나 영화를 통해 만나는 장면 하나 하나가 그냥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프로 근성을 지닌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미짚 또는 지미집이라고 불리는 촬영장비를 통해 차가운 강추위 속에 촬영을 하고 있는 장면 

역시나 프로의 세계는 뭔가 다른가 봅니다. 무엇을 촬영하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폭설과 한파 속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의 진면목을 새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뉴스 등 한 겨울 카메라 촬영 현장은 비슷한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됐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영상을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그 투혼이 아름답게 여겨졌습니다.  



눈 쌓인 아침을 여는 사람들 vs 눈을 즐기는 사람들

폭설이 내리면 고생하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 마다 눈을 치우는 경비 아저씨들이 있습니다. 아파트 주민들도 함께 제설작업을 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같은 폭설에는 함께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물론 단독 주택의 경우 자신의 집 앞에 쌓인 눈을 잘 치우는 사람들도 많기는 합니다. 그리고 거리나 주요 건물 주변에는 쌓인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자주 눈이 띄었습니다.



각종 제설작업 도구를 이용해 폭설을 치우는 여러 사람들의 모습은 훈훈함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들이 있어 우리는 조금이라도 보다 편안하고 안전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눈 내린 거리나 건물 앞을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눈을 즐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길거리에서 눈싸움을 하면서 마치 10대 청소년이나 초등학생 마냥 즐거워하는 젊은이들도 많았습니다. 겨울방학은 맞이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물론 눈으로 뒤덮인 세상이 마냥 좋은 것 같습니다. 눈 내린 풍경은 바라보는 눈(?)에 따라 즐거움이 되기도 하지만 한편 쓰레기가 되기도 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나 봅니다.



새벽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세상 속 사람들이 많습니다. 한 겨울에도 영하의 날씨를 이기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새벽 시장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아침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도 그들은 열심히 살고 있는 셈입니다. 무엇인가 일이 잘 풀리지 않고 힘들다고 생각할 때 새벽 시장에 가서 보면 신선한 삶의 기운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아침이 밝아오고 사람들은 눈이 쌓이고 다시 얼어붙은 빙판 길로 쏟아져 나와 저 마다의 삶의 현장으로 나설 것입니다. 자연의 엄청난 힘 앞에 한없이 약한 존재인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니다. 자동차나 비행기를 비롯한 교통수단이나 인간문명의 이기도 결국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인간 세상은 이기심과 탐욕이 넘쳐흐르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한편으론 갑작스런 폭설로 출퇴근 교통지옥이 되었지만 새해 벽두부터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군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새해 첫 출근부터 힘든 시작이었지만 모두 힘차게 헤쳐나갔으면 합니다. 어쩌면 폭설과 한파가 시련이 될 수도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러한 역경은 자연이 인간에게 스스로 한번쯤 돌아보고 살라고 준 선물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추가] 박대기 기자의 폭설스타 소감
오늘 박대기 기자가 KBS 라디오 COOL FM '이혁재 조향기의 화려한 인생'에 전화 인터뷰로 소감을 말했습니다. 박대기 기자는 자신의 블로그에 한 네티즌이 남긴 사연을 전하며 "추운 곳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가 떠올라 마음 아팠다고 한 분이 계셨는데, 현장에서 고생하는 선배들이 훨씬 많아 송구스럽다. 나는 그나마 편하게 일한 거고 단지 이름과 이메일 계정 때문에 뜬 것 같다"고 겸손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특히나 솔로인지 확인해달라는 청취자들의 사연에 박기자는 수줍은 말투로 "저는 평생 인기가 없는 사람이라...솔로입니다" 고 대답해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는 후문인데 이번에 인생에서 제대로 인기를 얻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번에 KBS 박대기 기자 말고도 MBC 기자도 눈을 털지않고 방송을 했다고 합니다. 대기만성 박대기 기자가 이름 덕을 톡톡히 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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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서울에 있는 큰아버지 집에 다녀왔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인사도 드릴 겸 점심 식사도 하고 올 심산이었습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내외 두 분은 모처럼 방문에 반갑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더 반갑게 맞이해 준 또 하나의 식구가 있었습니다.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은 애완용 강아지였습니다. 가장 먼저 문 밖까지 달려와 총랑대며 반겨주는 강아지가 귀엽기 그지 없었습니다. 두 딸은 강아지의 재롱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두 딸은 집에 데려가 살면 어떠냐고 졸랐습니다. 아내는 아파트에서 키우는 것도 어렵지만 보살피지도 못하면서 욕심만 부리는 것은 옳지않다며 두 아이를 달랬습니다. 큰아버지도 적적한 두 분의 살이에 강아지의 재롱이 좋으셨는지 아이들에게 양보할 마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큰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십니다. 저는 학창 시절의 상당 부분을 큰 어머니의 보살핌 속에서 지냈습니다. 큰어머니는 세탁소에서 식당에 이르기까지 거의 평생 동안 일을 해오셨습니다. 큰아버지는 한량이셨던 터라 큰어머니가 거의 집안을 지탱한 지주였습니다. 저는 큰어머니가 요리해 준 식사를 늘 맛있게 먹었습니다. 이 날도 뚝배기 된장찌개에 밥 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아내와 두 딸도 큰어머니 음식이 맛있게 먹었습니다.

눈발이 시작된 직후 서울 나들이 중단하고 귀가를 서둘렀지만..

아이들은 식사 후 다시 강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강아지는 생김새도 예쁘지만 어떤 사람이나 잘 따랐기에 귀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 전에 키우던 애완견이 밖에 나갔다가 어떤 사람이 데려가버려 잃어버린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잘 키워야 하는데 사람들을 좋아하는 강아지가 아무나 따라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앞섰습니다.

큰아버지와 잠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는데 큰어머니가 밖에 눈이 많이 온다고 했습니다. 큰아버지는 날씨도 추운데 눈이 쌓이면 자동차 운전이 힘들 것이라며 빨리 가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래서 예정 보다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밖으로 나와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눈발은 거셌습니다. 싸리눈이 영하 날씨에 녹지않고 그대로 쌓였습니다.



큰어머니가 시장에 가신다고 해서 도중 청량리에 내려드렸습니다. 서울 회기동에서 청량리를 거쳐 동대문 방향으로 행하는 벌써 도로가 꽉 막혀 있었습니다. 큰어머니를 내려드려야 했기에 종로를 거쳐 일산 방향으로 향하는 길을 택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고작 1cm 정도의 눈에 서울 도심으로 가는 길은 이미 아수라장이 되어 버린 상태였습니다. 도로가 엉망인데 교통안내나 제설작업하는 교통경찰이나 공무원도 없었습니다.

도저히 서울 도심을 관통해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됐습니다. 그래서 다시 도시 내부 순환 고속도로를 타기로 하고 차를 돌렸습니다. 종암동 방면으로 가는데 거기도 도로 사정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서울 전역이 엉망진창이 된 것 같았습니다. 겨우 내부 순환도로에 진입했습니다.

시속 6km 거북이 운행...교통 안내 및 기상 예보 부정확 혼란

그러나 내부 순환도로의 사정은 더 열악한 듯 싶었습니다. 순환도로에 진입하면 막힘없이 빨리 갈 것이란 예상은 보기좋게 어긋났습니다. 갑작스런 눈이 내리자 도로는 눈으로 덮이고 자동차들은 엄금엄금 기듯이 가야 했습니다. 기상 상황에 대해 뉴스에서도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기상청에서 적절한 일기 예보를 못해 혼란이 가중됐고 서울시도 신속한 준비와 대처에 미흡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고작 시속 6km로 자동차를 달렸습니다. 달리는 것이 아니라 걷는 속도 보다 못했습니다. 순환 고속도로가 아니라 거북이 도로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빠져서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었습니다. 무려 2시간 정도를 순환 도로에서 거의 꼼짝없이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연희동 방향 진입로로 빠져 수색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시속 20~30km는 달릴 수 있었습니다. 큰 딸은 6km로 기어가다 30km로 달리다니 과속하는 것이라며 뼈있는 농담을 던졌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집까지 오는데 3시간이나 걸렸습니다. 평소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였습니다. 만일 계속 순환도로로 갔다면 1시간이 더 걸려 4시간은 걸릴 상황이었으니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날은 처가 가족들과 모여서 두루치기를 함께 먹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이미 처가에는 처남을 비롯 처제 등 가족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제 남편이 동서가 안보였습니다. 그 이유를 알고보니 분당에서 자가용 자동차로 오다가 길이 막혀 되돌아 갔다고 했습니다. 처제와 아들은 버스로 출발했으나 밖에서 일을 보고 오던 동서는 눈 길에 도저히 올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미 고생을 했던 터라 되돌아 갈 생각을 하면 차라리 안오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2cm 눈에 도시 마비 대혼란 발생...기상청과 서울시의 뒷북 대응

어제 27일 서울과 경기 일부의 교통 대란 대혼란은 완전히 당국의 안이한 대처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상청에서 사전에 정확한 예보가 없었고 서울시의 대응도 뒤늦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 날 눈은 약 2.6cm에 불과했다는데 이 처럼 혼돈이 발생한 것은 이미 교통이 마비되고 아수라장이 된 다음에야 부랴부랴 대처에 나선 서울시와 기상청의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기상청은 당초 서울 경기 지역에 오후나 밤 한 때 산발적으로 눈이 내릴 수도 있다고 예보를 했으나 눈이 확률은 60% 정도라고 했습니다. 당시가 눈이 오기 바로 직전이었는데 그 상황도 예측하지 못한 셈입니다. 눈의 적설량도 1cm로 예상했으나 그 보다 많은 2.6cm 정도였습니다. 기상청이 안일한 엉터리 예보로 눈에 의한 피해 가능성을 사전에 알려주지 못한 것입니다. 

눈이 온 후라도 날씨가 춥고 눈이 얼어붙어 도로가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신속히 경보를 내렸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서울시는 뒤늦게 허둥지둥 댔지만 이미 도로 교통이 마비된 이후였습니다. 연휴를 맞아 여행에서 돌아오던 시민들은 도로에 막혀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서울 도심과 전역은 물론 고속도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에 진입했습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겨우 2cm 정도의 눈에 수도 서울과 경기 지역의 도로가 아수라장이 된 것은 안타깝습니다. 당국의 늑장대응으로 휴일 마지막 날에 고생했을 시민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어제의 대혼란은 기상 문제 보다는 당국의 안일하고 소홀한 대응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정부 당국과 서울시 그리고 기상청 등은 보다 책임있는 자세를 견지해 주었으면 합니다.

[참고] 대설로 인한 차량이 고립 시 행동요령

1. 출발 전 기상 정보와 목적지까지 우회도로를 미리 파악하고 월동 장비와 연료, 식음료 등을
사전에 준비한다.

2. 고립 및 정체 시에는 될 수 있으면 차량 안에서 대기하면서 라디오 및 휴대전화기 재난문자방송
등을 통하여 교통 상황과 행동 요령을 파악한 후 행동한다.

3. 부득이 차량에서 이탈할 때는 연락처와 열쇠를 꽂아 두고 대피한다.

4. 인근에 가옥이나 휴게소 등이 있으면 응급환자 및 노인, 어린이 승객을 우선 대피시킨다.

5. 담요나 두꺼운 옷 등을 걸쳐 체온을 유지하고 가볍게 몸을 움직인다.

6. 차량 히터 작동 시에는 환기를 위하여 창문을 자주 열거나 조금 열어둔다.

7. 수시로 차량 주변의 눈을 치워 배기관(머풀러)이 막히지 않도록 하고, 차량 출발이 쉽도록 한다.

8. 잠은 될 수 있으면 피하고, 동승자가 있는 경우 교대로 자되 한 사람은 항상 주위 상황을 살핀다.

9. 제설 작업 차량이나 구급차의 진입을 위하여 갓길에 주정차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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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서울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매서운 추위와 눈이 내리는 계절이면 군대 생활이 생각나곤 합니다. 군인들에게는 가장 힘든 계절이 겨울이기 때문입니다. 강원도 최전방 비무장지대에서 민정경찰 수색대 군생활을 했던 터라 체감온도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한겨울은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특히나 겨울에 무슨 눈이 계속 내리는지. 일반 사람들은 대부분 첫눈 오는 것을 기다리겠지만 군인들에게는 눈 내리는 것은 고통스런 제설작업을 떠올리며 악마의 비듬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도 강원도 최전방에는 지금도 많은 눈이 내린 곳이 많은가 봅니다. 한 겨울에 위문편지 하나라도 받아보고 싶었던 소박한 소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지난 80년대 중반 당시 저희 부대 군인들은 제대하면 강원도 양구를 향해 오줌도 싸지않겠다는 다짐은 당시 그들이 얼마나 힘겨운 시절을 보냈는지 상징해 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까마득한 추억 속의 페이지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듯이 도전과 역경을 인내하며 이겨내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희로애락과 책임감을 터득한 세월이 아니었나 반추해 봅니다. 어차피 우리나라에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라는 굴레는 넘어야 한 산이기에 이왕이면 떳떳하고 당당하게 군대를 다녀오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군대가 갖고 있는 일부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래도 군대가 주는 장점 몇가지를 소개합니다.


1. 부모와 가족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어머니 아버지의 품을 떠나 별도의 고립된 공간에서 스스로 자립심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곳이 군대입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화초처럼 자랐지만 이제는 독립된 주체로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는 동안 더욱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군대에서 신병 교육대 시절에 엄청나게 고통스런 훈련을 끝내고 '어버이 은혜'를 부를 때면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났던 때를 생각해보면 부모님과 가족이란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 온 몸으로 느겼던 것 같습니다.

2. 팀워크의 조직 경쟁력을 체득한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잘될 수 있도록 하는 팀워크는 중요합니다. 군대는 팀워크를 통해 만들어지는 조직입니다. 그런 점에서 조직과 팀워크의 중요성을 체득할 수 있는 공간이 군대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몰개성화나 획일적 인간을 만드는 것은 문제점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사회나 조직을 이루어 모든 생활의 터전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팀워크 능력은 무엇보다 필요한 능력입니다.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조직 경쟁력의 원천인 팀워크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군대가 주는 강점 중 하나일 것입니다.


3. 음식이나 반찬 투정을 안하게 된다
군대에 가면 맛이 없어도 그냥 먹을 수 밖에 없습니다. 신병 시절에는 그것도 모자라 먹을 것에 대한 욕구가 큰 편입니다. 그래서 휴가나오면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과 반찬이 얼머나 맛있는지 알게 됩니다. 아니 어머니의 밥상이 늘 그리운 시절이 군대있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군대가 가면 반찬 투정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음식과 반찬에도 투정하던 사람도 군대에 다녀오면 짬밥이 아닌 사제 음식의 고마움을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자들이 반찬 투정하는 남자를 싫어하지만 군대 다녀온 남자라면 반찬 투정은 거의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군대에도 사제 음식 반입이 많아 여전히 반찬 투정을 못고치는 남자도 일부 있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4. 몸도 마음도 튼튼한 태권도 유단자가 된다
우리나라 군대는 대부분 태권도를 기본적으로 훈련합니다. 태권도 승단 심사를 하기 때문에 병장 제대할 때까지는 대다수 유단자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군대에서 일부 유단자가 아닌 체로 제대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군대에서 수많은 작업과 훈련으로 다져진 체력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봅니다. 특히나 군데스리가로 통칭되는 군대 축구는 군인들의 체력 강화 필수 코스였을테니까요.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군대를 가면 남자들이 더 남자답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해외에서 태권도 유단자인 우리나라 남자들이 태권도 폼만 잡아도 두려워한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체력은 국력입니다. 

5. 여자가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회와 격리되어 있는 남자들만의 공간에서 지내다보니 군대가면 여자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군대에 있다가 휴가나오면 모든 여자가 다 예쁘게 보일 것입니다. 여자 친구가 더 예쁘게 보이고 소중하게 느껴지는 시기가 바로 군대있을 때입니다. 가끔은 현재 만나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기 위해 군대에 간다는 남자도 있다고도 하지만 군대가면 다시 그리워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비무장지대에 근무해서 휴가 이외에는 전혀 실제 여자 구경을 못했던 군대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군인들은 휴가 나올 때면 치마만 둘러도 아줌마도 할머니도 신기한 듯이 놀라던 때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여자가 아름답고 소중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껴지는 군대인 셈입니다. 그런데 TV 속의 소녀시대나 원더걸스 등 걸그룹의 미모를 많이 봐서 눈이 높아진다는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군대 시절을 보며 더 책임감을 갖고 여자와 세상을 바라보는 생각의 변화가 있는 시기일 것입니다.

6. 노동과 한달 월급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지난 1980년대 군대에서는 일반 사병의 월급이 보통 1만원 이내였습니다. 지금은 사병 월급도 10만원이 넘는다는 합니다. 사실 한달 동안 땀흘려 일하며 한달 1만원이든, 10만이든 월급의 받는 경우는 군대 시절에 제대로 알게 되는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제가 군대시절 한달 월급이 6~7천원 정도였고 비무장지대 근무라 위험수당이 추가돼 1만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1만원으로도 한달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덜 쓰고 아껴 쓰면 가능했습니다. 기본적인 식사와 의류는 제공되기 때문에 특별하게 돈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 일부 군인의 경우 가족들에게 돈 부쳐달라고 해서 오히려 민폐끼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흥청망청 돈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동과 월급의 소중함을 통해 알뜰한 경제적 관념을 강하게 갖게 되던 군대 시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7. 가정을 이룰 기초 생활력을 기를 수 있다
군대에 가면 스스로 관물대 정리를 하고 막사를 청소하는 것부터 배우게 됩니다. 자신의 물건과 주변은 최소한 스스로 잘 정리정돈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가족과 함께 지내던 학창시절에 어머니가 해주었을지라도 군대에서는 누가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옷도 스스로 다리미로 다려서 입기도 합니다. 군화도 스스로 닦아야 합니다. 담요도 털고 빨기도 합니다. 스스로 생활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먹을 것이 궁하며 라면도 직접 끓여 먹습니다. 군대에 가면 라면이 더 맛있습니다. 라면 조리법도 얼마나 많은가요. 아무튼 군대에 가면 최소한 스스로 생존할 요리와 청소 등 생활을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8. 자유와 평화가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군대란 개인의 자유가 통제되는 곳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가장 최전선인 전방에서도 비무장지대 안에서 군대 생활을 했습니다. 눈 앞에서 북한 군인들을 매일 봤습니다. 남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대치한 상황에서 남과 북의 군인들 모두 자유가 없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휴전 상황의 비무장지대는 준전시상태나 다름없는 곳이었습니다. 종전이 아니라 휴전이라는 것은 언제라도 전쟁이 재개될 수 있는 곳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평화가 더욱 필요한 곳이기도 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군대는 개인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해줍니다. 물론 일부 직업 군인들의 경우 흑백논리와 양분법으로 냉전 이데올로기에 젖어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2년 또는 3년의 군대생활을 통해 자유와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군대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 악랄가츠님이 쓴 군대이야기란 책입니다. 여자들도 편안하게 볼 수 있도록 재치있고 재미있고 발랄한 터치로 쓴 이야기인데 요즘 군대는 예전보다 부드러워진 것 같습니다.

9. 책임감과 목표를 갖춘 삶의 주체가 된다
군대를 다녀오면 책임감이 강해진다고 합니다. 군대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이를 반드시 정해진 시간 안에 완수해야 합니다. 목표의식이 없이 살아가던 젊은 시절에 군대는 목표와 책임완수는 몸에 베인 습관으로 만들어 줍니다. 물론 하루동일 삽질해 땅을 파고 다시 묻는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요. 적어도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명확한 목표를 만들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책임있게 일하는 자세는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은 엄마에 보호 속에 살아서 마마보이가 많기도 하지만 군대에 가면 마마보이가 아닌 스스로 해결하는 주체로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일본이나 다른 나라 남자들에 비해 책임감이 강한 것은 이같은 군대가 영향을 준 측면도 클 것입니다.

10. 당당한 남자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솔직히 우리나라 남자로 태어나면 군대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태어나 부모에 의지만 하다가 혼자가 가족과 떨어져 군대 생활한다는 것이 두렵고 힘든 도전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국방의 의무를 마쳐야 합니다. 간혹 군대에 가지않기 위해 탈법과 편법을 저지르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군대를 기피했다가 사회적으로 매장된 연예인도 있고 대통령을 못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국가 고위 장관, 그리고 국회의원들 중에서 군대를 안간 사례도 많은 것이 현실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늘 그들에게 주홍글씨처럼 군대 문제는 따라다니게 됩니다. 군대를 다녀오면 하루를 살더라도 보다 당당하게 떳떳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과 조국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소한 나 스스로와 가족을 지킬 수 있는 남자의 자신감은 군대가 주는 선물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육군 병장으로 송승헌이 제대했고 오늘 공유가 군대 2년을 마치고 만기 전역했다

최근 가수 김종욱이 당당하게 군대 현역으로 입대하며 '군대가는 날'이란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한류스타 공유(공지철)가 2년의 군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만기 전역했습니. 김태우을 비롯 떳떳하게 정상적인 군생활을 마치고 연예인 활동을 활발히 하는 모습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특히나 수색대에서 복무했던 김태우는 편한 곳 보다는 몸을 사리지않는 모습이라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서두에 언급했지만 우리나라는 군방의 의무라는 굴레를 안고 살아가기에 이왕이면 당당하고 떳떳하게 군대를 다녀오면 좋은 이유를 이야기한 것입니다. 군대의 부정적 측면도 많지만 이는 모두가 알고 있기에 언급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자로서 태어난 이상 군대를 가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비겁하게 편법과 탈법을 저지르며 기피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히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그런 경우라면 더욱 문제가 큽니다. 진정 바람직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지도층이 먼저 솔선수범하고 모범을 보여할 것입니다. 군대는 특히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합니다. 한국 남자들이라면 꼭 거쳐야하는 군대가 더욱 보람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군대를 가야하는 이유를 해봤습니다. 아울러, 남자들만 군대에 가야하는 역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방의 의무에 대한 개선도 논의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더욱 추워지고 눈 내리는 겨울에 오늘도 국방의 의무를 다해 나라를 지키는 군인들 모두 고생이 많습니다.

[참고] 군대 기피 비리 의혹 연예인-국회의원-사회지도층 명단 
* 사진 참조 : 뉴시스

* 이 글에 대해 오해하시는 분들이 있어 알려드립니다. 이 글을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글의 취지는 국방의 의무이기에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난 이상 군대에 가야하지만 이왕이면 당당하게 군대를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며, 특히 국회의원과 부자를 비롯한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을 비판하는 글입니다. 군대는 두번 다시는 가고 싶은 곳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장 비열하고 부도덕한 인간들은 바로 국방의 의무를 비롯한 자신의 의무나 책임도 다하지않고 소위 어깨에 힘주고 호의호식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질타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매서운 겨울 추위 속에서 고생하는 군인들에 대해 위로를 보내는 내용입니다. 글의 일부 보다는 전체의 맥락과 속 뜻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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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내린 함박 눈이 탐스럽게 쌓여있는 초겨울 아침. 어머니는 그 날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에 잠에서 깨셨습니다.

일찍부터 마당을 둘러봤지만 여전히 어미 개 '백구'와 그가 낳은 강아지 4마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강아지들이 어미 개도 살리고 멧돼지도 잡은 실제 고향마을의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오늘은 3월 3일, 소위 '삼겹살 먹는 날(삼겹살데이)'이라고도 합니다. 요즘 데이 이벤트가 많이 상업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도하지 않다면 순수한 의미에서 한번쯤 우리 주변의 삼겹살집을 한번쯤 방문해 모처럼 외식하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주말에 멧돼지 고기집을 가서 가족들과 외식을 했습니다. 그 집은 과수원에 있는 고기집으로 마당도 넓고 실제로 멧돼지도 키웁니다. 날씨가 풀리는 계절에는 잔디밭에서 과수원의 풍경을 즐기면서 멧돼지 고기를 구워먹는 것도 좋습니다. 주말 멧돼지 고기집에서는 돼지갈비만 먹었습니다. 그 집에 사육하는 멧돼지만 보면 강아지가 잡은 멧돼지가 생각나곤 합니다.


[과수원집 멧돼지 우리 사진]


그러면, 다시 강아지와 멧돼지 이야기의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어머니는 이미 이틀이나 지났는데 마당에 어미 개 '백구'와 강아지들이 보이지 않자 덜컥 겁이 났습니다. 혹시라도 백구와 강아지들이 산 속에서 얼어죽은 것이 아닐까, 아니면 개 도둑놈이 모조리 잡아가서 팔아넘긴 것은 아닐까 노심초사하셨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식사를 준비한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넌즈시 부탁을 했습니다.
"백구와 강아지들이 이틀째 집에 오지 않는데 뭔가 사고가 생긴 것 같아요. 어제 강아지들이 눈이 오자 좋아하더니 눈이 덮인 산으로 올라갑디다. 식사 후 산등성이로 한번 갔다 왔으면 좋겠구만."

아버지는 얼굴을 한번 찡그립니다. 하지만 어제부터 걱정하던 어머니의 모습을 계속 지켜봤던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겨울 잠바를 챙겨입고 밖으로 나섰습니다. 겨울 산이지만 가시덤불도 많아 낫도 들고 산으로 올랐습니다.

산등성이를 타고 한참을 아버지는 걸었습니다. 작은 산을 몇개를 넘었습니다. 개 발자국을 찾으면서 능선을 타고 거의 1시간을 걸었습니다. 산능선을 타고 걷는 길은 바람도 많이 불고 눈까지 발목을 잡아 걷기도 힘이 듭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가도 백구와 강아지들을 찾기는 틀렸다고 판단하고 그만 돌아가려 했습니다.


[사진 로이터 : 눈밭의 강아지]


그런데 멀리서 강아지들이 낑낑 거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서려는 발길을 멈추고 다시 강아지들의 소리가 들린 곳을 향했습니다. 조금을 걷자 산비탈, 커다란 참나무 아래 강아지들이 옹기종기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앉아있는 것입니다.

강아지들이 어미 개 백구의 곁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다가서자 강아지들이 팔짝팔짝 좋아합니다. 백구는 올가미에 걸려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다행히도 백구는 살아있었습니다. 백구는 영리했습니다. 올가미에 걸리자 백구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백구는 움직일수록 올가미가 자신의 목을 조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강아지들도 어미를 두고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눈이 내린 날 백구와 강아지들은 산등성이를 넘어가면서 신나게 놀았던 것입니다. 그러다 백구가 사냥꾼이 참나무에 매둔 올가미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백구 곁에서 강아지 4남매는 이틀을 보냈던 것입니다. 아버지는 모든 상황을 알아채고 백구를 올가미에서 풀어주었습니다.

백구와 강아지들은 신나서 깡충깡충 뛰었습니다. 그러다가 강아지들이 산쪽을 향해 멍멍 하며 짖습니다. 백구도 큰 소리로 짖습니다. 아버지는 강아지들이 짖는 방향을 쳐다봤습니다. 그런데 산비탈 위쪽의 참나무 밑에 커다란 멧돼지 한마리가 올가미에 걸려 죽어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멧돼지를 만져봤습니다. 아직 온기가 조금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죽은지 얼마 안된 듯 했습니다.


[사진 백억선 : 동아국제사진전 공모작]


아버지는 커다랗고 무거운 멧돼지를 산에서 끌고 겨우겨우 평지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멧돼지를 집까지 이동한 다음에 경찰서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산에서 올가미에 걸린 멧돼지를 한 마리 잡았는데 어떻게 해야하나 해서 전화했다마시...불법 사냥꾼들이 많은 갑서.."

"우선은 멧돼지는 반씩 나눠서 반은 이장님이 알아서 처리하고, 반은 경찰에서 처리하는 걸로 합시다. 그리고 불법 올가미와 사냥꾼은 경찰에서 수사하는 것으로 아시고..."

아버지는 시골 이장님이셨습니다. 시골 마을은 몇가구도 살지않는 산골 오지였습니다. 작은 산골 마을에 모처럼 멧돼지 굽는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영리한 백구와 강아지들 덕분에 아버지는 인심좋은 이장님이 되셨습니다. 강아지들이 어미 개를 살리고 멧돼지도 잡은데 이어 아버지를 마을의 멋진 이장님으로 만든 셈입니다.


제가 어떻게 그 사실들을 소상히 잘 아느냐구요?

그 때 제가 대학생이었는데 어머니께서 시골에 한번 내려오라고 해서 당시에 내려갔습니다. 알고보니,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에게 멧돼지 고기를 나눠드리고, 멧돼지 고기 일부는 자식을 위해 남겨두셨습니다. 당시 먹은 멧돼지 고기는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최고의 맛이었습니다. 야생 멧돼지 고기는 초겨울에 먹는 맛이 최고의 일품이라고 합니다. 가을철에 영양분을 많이 공급해 겨울을 나기 때문이랍니다.

이제는 백구와 강아지들은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나 강아지들이 어미 개 백구를 살리고 멧돼지를 잡은 전설같은 일화는 시골 마을에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산골마을에는 가을에 멧돼지가 밭에 내려와 농사를 망치기도 하고 겨울에 마을로 내려오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2년마다 한번씩 특정기간 동안 멧돼지 사냥을 허가해 주기도 합니다.

(멧사냥 카페 : 사냥견의 멧돼지 사냥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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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우리집에는 설 명절을 맞아 차례를 지내기 위해 가족 친지들이 모두 모인다. 남동생 가족도 오늘 오후 눈보라를 헤치고 우리 집에 왔다. 오산에서 일산까지 오는 길이었는데 수원 쪽 길이 통제되어 돌아서 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오산에도 눈이 많이 내려 운전하는데 힘들었던 모양이다.

설날을 앞둔 대가족의 평화로운 모임의 시작
매제 가족들도 그 뒤에 도착했다. 나와 아내는 추가로 몇가지 나물 등을 사러 할인점에 다녀왔다.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전을 붙이는데 돕고 있었다. 특히나, 큰 딸이 전을 만드는데 열심히 도왔다.

[아이들이 전을 만들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

남자들은 차례상에 올라 갈 밤을 갔다. 남동생이 먼저 칼을 잡고 밤까는 실력을 발휘했다. 나도 합류해 밤을 까고 모양좋게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아이들도 어른들이 까주는 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밤을 까던 남동생이 칼에 의해 손가락을 베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남동생이 손가락을 감싸면서 "손가락을 베였다"고 아픔을 호소했다. 놀란 여동생이 "칼 조심하라고 조금 전에 말했잖아."하면서 걱정을 한다. 제수씨도 "어떡해"하며 놀란다. 남동생은 밤을 잘먹는 둘째 아들을 위해 밤을 먹기 좋게 잘라주려다 손가락을 베인 것이다.

아내가 소독약과 연고로 우선 응급처치를 했다. 그런데 피가 계속 많이 나온다. 손가락도 하나가 아니라 두개가 베였다. 칼에 상당히 깊숙히 상처를 입은 것이다. 작은 상처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남동생이 "병원에 가서 꿰매야 겠다"고 말한다. 이 정도의 남동생 얘기라면 상처가 상당히 깊은 것이다.

매제가 급히 남동생을 태우고 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다. 명절이라 응급실은 많은 환자들로 붐벼서 몇시간만에 돌아왔다. 손가락은 꿰맸고 파상풍 주사도 4방이나 맞았다고 한다. 그 사이 작은 어머니들도 도착해 있었다. 아내는 칼을 잘 들게 하려고 아침부터 갈아두었다며 미안해 한다.
[남동생이 밤을 까다가 손가락을 베인 문제의 시간]

남동생은 입이 까다로운 아들이 밤을 잘 먹자 아들을 위해 밤을 작게 잘라주다가 손가락을 크게 다친 것이다. 자식 사랑도 좋지만 조금만 조심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면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제수씨는 손가락 다친 것도 걱정이지만 병원비 8만원이 나왔다는 것에 놀라는 눈치이다.

차례 상을 위해 밤을 까는 것은 대개 남자들 몫이다.(이미 까놓은 밤을 사는 경우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내를 도와서 밤을 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밤을 깔 때는 칼날을 늘 조심해야 한다. 

[병원 응급실에서 칼에 베인 손가락을 꿰맨 후 사진]

'눈 피해 온 남동생 피 본 날' 밤 까는 방법
칼에 너무 강한 힘을 주지말고 신경을 써서 다루어야 한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밤까는 일에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처음 밤을 까거나 익숙치 않은 사람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초보자는 너무 잘 드는 칼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눈 피해 온 남동생이 피 본 날'이라고 아내가 놀린다. 오늘도 지나가면 추억이 될 것이다. 남동생은 손가락 수술로 저녁에 소주 한잔을 못해 아쉬워했다. 병원 응급실에 다녀온 남동생에게는 올해 설날이 지금은 잊고 싶겠지만 나중에 아들에게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준 셈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형의 바람이다.

[참고] 생방송 화제집중에 소개된 밤까는 법에 대해 소개해 본다. (남동생이 걱정돼 찾아본 내용이다.)

[생방송 화제집중에 소개된 밤 까는 법]

겉밤은 딱딱한 밤 꼭지 부분을 먼저 탁탁~ 쳐주고, 돌리고~ 돌리고~ 옆을 까주면 OK!
속밤은 평평한 부분을 먼저 슥슥슥 벗겨주고,
과일 깎듯 돌돌돌~ 돌리면서 까주면 모양도 굿~~~ 속밤 까기 완료!!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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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 명절인데 눈이 엄청나게 많이 와서 귀성전쟁을 치러야 할 사람들이 걱정스럽다. 설상가상으로 대설 주의보까지 내려 귀성길이 더욱 우려된다. 지금은 우리집에서 직접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귀성 전쟁을 치르지 않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제발 눈이 그만 내리고, 이번 귀성길에는 교통이 원활해졌으면 좋겠다.

문득 2001년 설날에 겪은 폭설로 인해 벌어졌던 '눈물 겨운' 귀성 길이 생각난다. 아빠가 딸 아가의 분유를 먹이기 위해 눈보라 속을 헤매던 이야기다. 당시 둘째 딸이 태어난지 몇개월이 안된 상태였다. 머나먼 남쪽 지역에 있는 고향에서 설 명절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이미 출발하기 전날부터 엄청난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귀성길은 남동생과 매제의 가족들과 함께 2대의 자동차로 서울까지 함께 이동해야 했다. 비행기는 폭설로 운항이 중단됐고 기차는 완전 매진이었기 때문이다.

고속도로 마저 꽁꽁 얼어붙어 있는데 폭설은 계속 내렸다. 자동차 속도가 사람 걷는 속도 보다 느렸다. 아예 자동차가 움직이지 않는 시간이 더 많았다. 몇시간이 지나도 몇 킬로를 나가지 못했다.

어느새 저녁이 왔다. 그런데, 아가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물이 떨어졌다. 아가는 배고프다고 계속 울었다. 자동차는 고속도로에서 전혀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가의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매제가 운전하는 자동차에서 나와서 눈보다 속을 걷기로 했다.  1~2킬로만 빨리 걸으면 자동차 보다 먼저 고속도로 휴게소에 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는 분유를 타기 위해서는 '보리차 끊인 물'을 구해오라고 했다. 한참을 걸어서 휴게소에 도착았다. 휴게소는 자동차들로 꽉차 난장판이었다. 휴게소의 가게 마다 들러 보리차 물이 있는지 수소문했다. 그러나 어떤 가게도 보리차가 없었다. 거의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아줌마들이 있는 가게에 들어가 "아가에게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보리차물을 좀 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여기서도 보리차는 없다고 했다.(나중에 생각해보니 당시 난장판이 된 휴게소에서 보리차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데, 한 아줌마가 남자가 물 구하러 다니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보리차를 끓여 줄테니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보리차가 거의 끟여질 무렵 매제가 운전하는 자동차도 휴게소 부근에 도착했다. 그렇게 딸 아가에게 분유를 먹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날 밤을 고속도로에서 뜬 눈으로 세웠다. 다음 날, 오전도 고속도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지 무려 하루 하고도 반나절이 지난 오후 2시였다. 회사에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이었다. 그래도 늦었지만 오후 3시경 출근했다.

당시 아가였던 둘째 딸은 올해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간다. 아빠가 딸의 분유를 먹이기 위해 눈보라 속에 보리차 물을 찾아 고생했던 그 시절을 둘째 딸은 알기나 할까? 지금은 지나간 추억으로 이야기하지만 그 당시는 정말 애타는 심정이었다. 이번 설날에는 둘째 딸에게 그 때 '분유 물 찾아 아빠의 삼만리' 이야기를 해주어야 겠다. 그러면 딸은 아빠에게 뭐라고 말할까?
[어제 눈이 내린 놀이터에서 둘째 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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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서울 방문을 했다. 이번에 인도네시아인들에 대해서 몇가지 사실을 알게 됐다. 인도네시아의 대부분 사람들은 종교로 이슬람교를 믿는다. 인구가 2억 3천만명이 넘기 때문에 단일 국가로는 최다 이슬람 국가인 셈이다. 인도네시아는 인구 규모로 중국, 인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많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한국에서 무엇을 가장 보고 싶어 할까? 그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것은 '눈'이었다. 인도네시아는 고온다습한 열대성 기후라서 평생 눈을 구경할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은 눈에 대해 무척 신기해 한다.

인도네시아 방문객들은 제3땅굴을 구경갔는데 거기서 생애 처음으로 눈을 구경하게 됐다. 마냥 즐거운 모습을 사진을 찍었다. 땅굴도 처음 보는 모습이라서 인상깊은 표정이었다. (군대 시절, 군인들에게 눈을 치우는 일은 엄청난 고역이었다. 그런데 군인들 앞에서 눈을 보며 즐거워하는 인도네시아인들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들은 내가 군대 시절에 제4땅굴을 발견했다고 하자 놀라는 눈치였다. 지금은 땅굴이 관광지이지만 발견 당시는 엄청난 훈련과 고통이 있었다. (갑자기 제4땅굴 입구 앞에 세워진 충견묘가 생각난다. 땅굴 수색 중 지뢰 사고로 세퍼드가 죽었다.)


다음 날, 또 서울랜드 눈썰매장으로 갔다. 서울에 구경할 곳이 많았지만 그들은 하루 더 눈이 있는 곳을 선택한 것이다. 인도네시아인들은 나이가 50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아이들 처럼 눈썰매에 흠뻑 취한 모습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겨울 마다 눈을 구경하기에 눈의 소중함을 모른다. 항상 주위에 있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소중함을 모른다. 인도네시아인들이 눈을 보면 좋아하는 모습은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 하나 하나가 소중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경험이었다.
 
[참고]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 우리나라의 홍삼과 화장품을 선물했다. 남자는 홍삼을 부인은 화장품을 선호한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남자들이 의외로 부인을 잘 챙기는 모양이다. 부인에게 선물은 여행 후 꼭 가져간다고 한다.

인도네시아 기후
연평균기온이 25-28 ℃ ( 자카르타 32-33 ℃ ) 인 인도네시아의 기후는 크게 건기와 우기로 나뉩니다 . 대략 건기는 통상 6 월에서 9 월까지 , 우기는 12 월에서 3 월까지라고 보면 됩니다 .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이상기후현상은 인도네시아도 예외는 아니어서 건기임에도 불구하고 비가 내리기도 하고 ,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기도 합니다 .
 
참고로 인도네시아의 우기는 우리나라의 장마와는 다소 차이가 있어서 하루 중 일정 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많은 양의 소나기가 내리며 그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리쬐는 햇빛에 금방 땅이 마르고 습하지 않은 맑은 날씨를 보입니다.
 
따라서 인도네시아인들은 우기임에도 불구하고 우산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데요. 소나기가 하루 종일 이어지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만 비를 잠깐 피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엄청난 양의 소나기를 맞을 수 있기 때문에 그 점은 꼭 유의하셔야 합니다 . 
인도네시아의 건기는 우리나라의 끈적끈적하고 습한 여름무더위와는 달리 건조하며 그늘에선 선선한 바람이 불어서 별로 덥다고 느끼지 못할 정도로 쾌적한 날씨를 느낄 수 있습니다 .
 
일반적으로 인도네시아 하면 무조건 덥다고 느끼고 여름옷만 준비해가는 경우도 있는데요 , 인도네시아 전 지역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고산지대 같은 경우 우리나라의 겨울 못지않게 춥기 때문에 여행지역에 맞춰서 두꺼운 옷을 준비해 가시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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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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