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10.12.31 강호동-유재석-이경규 대상 수상소감 비교해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64)
  2. 2010.10.08 타블로 눈물...악플러 왓비컴즈 정체, 타진요 집단광기 사기극 끝났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52)
  3. 2010.09.27 남자의 자격 합창단 서두원 눈물, 미니홈피에 감동 남았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52)
  4. 2010.09.04 장진영-김영균 마지막 1년 감동이 나를 울렸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5)
  5. 2010.07.28 지소연 눈물이 김연아 만큼 감동적인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7)
  6. 2010.06.17 정대세 투혼과 영광, 어머니도 함께 울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1)
  7. 2010.06.16 정대세의 눈물, 김연아의 감동이 스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53)
  8. 2010.02.27 피겨여왕 김연아, 세번의 눈물이 감동적인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22)
  9. 2010.01.16 블로거 눈물의 절규가 안타까운 5가지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59)
  10. 2010.01.14 신세경의 피아노 연주와 피아노 치던 CEO 그리고 슬픈 눈물의 추억 by 진리 탐구 탐진강 (61)


예상대로 강호동이 SBS 연예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사실상 방송3사의 연예대상은 KBS에서 이경규가 호명되면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마나 KBS는 이경규와 강호동 누가 대상을 탈 것인가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이경규과 강호동의 수상 변수는 자신들이 아니라 오히려 마약과 병역비리에 연루된 김성민과 MC몽이 언급될 정도였지요.

이경규가 KBS 연예대상 수상이 확정되자 MBC는 유재석, SBS는 강호동이 각각 사이좋게 대상을 수상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기정사실화됐습니다. 그리고 이변은 없었습니다. 유재석과 강호동이 올해 방송예능 프로그램에 펼친 활약상을 복기해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점은 유재석-강호동 쌍두마차 시대가 깨졌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지속돼 온 유재석-강호동 양강체제에 노장투혼 이경규가 합류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이승기, 이수근, 김병만, 박미선 등 새로운 강자들이 세력을 모으며 춘추전국 시대를 도래시키고 있습니다. 그 만큼 시청자 입장에서는 즐거운 일입니다. 소수의 스타MC가 예능을 지배하는 것 보다는 다수의 스타가 등장해 건강한 웃음과 감동을 주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지요. 다양성이 존중받는 시대이니까요.

이경규-유재석-강호동 트로이카 체제 넘어 춘추전국시대 오나?

이경규가 대상 수상자로 발표된 후 다소 긴장감이 떨어졌습니다. 그렇지만 올해 연예대상은 황금분할 3인 3색의 대상 수상소감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어떻게 대상 수상자 3인은 올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수상소감을 밝혔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합니다. 강호동 이경규 유재석의 각각 수상소감이 어떻게 차이가 있고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차례로 비교분석해 보겠습니다.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의 대상 수상은 긴장감은 없었지만 매력과 감동은 남았다

어제(30일) 끝난 2010 S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강호동은 예상은 했더라도 감격적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이경규 유재석이 대상을 수상한 터라 강호동 입장에서는 혹시나 대상을 못받는다면 어쩌나 하는 일말의 불안감도 있었겠지요. 무섭게 성장해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이승기가 버티고 있었으니까요. 그런 강호동의 마음을 알았는지 이승기는 시상식 전부터 자신이 대상을 수상하면 반납하겠다는 폭탄발언을 할 정도였지요.

결국 SBS 간판 예능프로그램인 '강심장'과 '스타킹'에서 맹활약한 강호동의 대상 수상은 당연지사였었습니다. 무엇보다 강호동의 수상소감은 남자답게 박력이 넘쳤고 절도가 있었습니다. 선배에 대한 깍듯한 예의, 동료 라이벌에 대한 존중, 그리고 동료 후배에 대한 존중이 삼위일체가 되었지요. 우선 강호동은 "대한민국 당대 최고 스타들 이자리에 있는데 부족한 제가 가장 마지막에 상을 받는 것 보니까 이 순간 만큼은 호동이가 '스타킹'이 된 것 같습니다"라며 벅찬 감동을 전했습니다.

강호동의 감격 눈물과 카리스마 넘치는 박력의 수상소감

그리고 강호동은 "부족한 저에게 과분한 또 넘치는 사랑을 주셔서 부족한 강호동이 하루하루 '강심장'이 되어 가는 것 같습니다. 이 상은 시청자 여러분들이 주시는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시청자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했지요. 이어 강호동은 역시나 자신을 예능 천하장사로 입문시킨 선배이자 스승 이경규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경규 선배님이 대상 수상 후 '눈 내린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후배들의 길잡이 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시계를 보지 않고 이경규 선배님을 봤습니다. 얼마나 빨리 가느냐보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가 중요한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경규 선배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무소의 뿔처럼 따라가겠습니다."
◀ 강호동 눈물과 예능 카리스마가 대비된다

역시 강호동은 씨름선수 출신답게 선배 이경규에 대해 90도 인사를 하며 예의있는 모습과 더불어 감동적인 소감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강호동은 과거에도 어떤 상을 수상할 때 마다 매번 잊지않고 이경규를 언급하곤 했었지요. 그 다음 강호동은 자신과 대상 경합을 벌인 이승기에 대해서도 소감을 밝혔습니다. "처음에는 '잘생겼다, 성실하다, 잘한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요새는 '무섭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광을 이승기와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어쩌면 강호동이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이승기라는 걸출한 동생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물론 이승기로서도 형님같은 강호동이 있어 보다 빨리 탄탄대로를 걷게 된 셈이니 두 사람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주는 특별한 인연의 관계라고 할 수 있겠지요. 강호동과 이승기는 1박2일과 강심장에서 서로 함께 호흡을 맞추며 찰떡궁합을 보여주고 있지요. 강호동이 이승기를 애교스럽게 무섭다고 했지만 정말 이승기의 성장세는 무서울 정도입니다.

강호동의 수상소감에서 압권은 유재석에 대한 존중이라는 생각입니다. 강호동이 우리나라 예능계를 양분하며 쌍두마차 체제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유재석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서로 경쟁하면서 더욱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테니까요. 강호동은 유재석을 향해 말했습니다. "그 동안 많은 칭찬을 받았는데 가장 큰 찬사가 '유재석의 라이벌'이란 소리였습니다.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재석아, 함께 가자. 대한민국 예능인 여러분 함께 갑시다."

                      씨름 천하장사를 넘어 예능 천하장사로 거듭 태어난 강호동의 카리스마

미리 준비를 해온 수상소감일 수 있지만 상당히 절제되고 감명깊은 발언이었습니다. 강호동은 어느 누구 보다 카리스마 넘치는 진행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올해 객관적인 시청률만으로 보면 강호동이 유재석을 다소 앞선다는 평가가 더 많지요. 1박2일과 무한도전을 동시에 비교하기에는 서로 장단점이 있어 무리가 있지만요. 그래도 강호동은 자신이 출연하는 대다수 프로그램을 반석 위에 올려놓은 일등공신임에도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수상소감 중 살짝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강호동. 강한 남자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사람이지요.

따뜻하고 배려심깊은 유재석, 초심과 은혜 잊지않는 삶의 자세

그렇다면 유재석의 수상소감은 어떠했을까요.
유재석은 대상 수상 직후 감사한 마음에 앞서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득한 수상 소감을 남겼습니다. 유재석은 "너무 감사하고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느 때보다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경규 선배님과 박미선 강호동 등 다른 분들이 영광을 안아야 하는데 또 제가 받아서 죄송스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평소 배려심이 많은 유재석다운 마음이겠지요.

그리고 유재석은 '무한도전'과 '놀러와' 제작진과 시청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특히나 연예대상의 주인공들인 개그맨이 없는 현실에 안타까운 심경도 밝혔지요. 오랜 무명생활 끝에 최고의 자리에 오른 유재석은 개그맨 후배들에 대한 배려도 남다른 편이지요. "'개그야' 등 후배 동료들 이 잔치에 함께 하지 못해 마음이 아프네요. 내년에는 후배들이 많은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생겨 이 자리에서 함께 웃으면 좋겠습니다"

                  강호동은 유재석이 대상을 수상하자 대인배답게 얼싸안고 함께 기뻐해주었다

항상 겸손하고 사려깊은 유재석은 자신을 그 자리에 있게 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잊지않고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 속에 다가서는 진정성이 돋보였지요.

"요즘 들어서 혼자 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 일이 즐겁고 행복합니다. 데뷔 20년이 됐습니다. 지난 10년을 불평불만을 하면서 보내고 10년을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언제까지인지 모르겠지만 많은 분들에게 은혜 갚으면서 살아가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높은 자리에 있게 되면 거만해지고 선민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이 최고의 위치에 있게 된 것을 모두 자기 자신이 잘나서 된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유재석은 달랐습니다. 늘 초심을 돌아보고 주변을 살펴봤습니다. 자기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을 먼저 챙기고 자신을 낮춰 남들을 빛나게 해주는 발군의 MC 능력은 평상시 몸에 밴 배려였지요. 유재석의 배려가 아름다운 수상소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상 수상으로 유재석은 MBC방송연예대상 대상 수상으로 2005년 KBS연예대상부터 시작해 6년째 연속 7회 대상 수상이란 대기록을 달성하게 됐습니다. 올해 유재석은 '무한도전'과 '놀러와'에서 여전히 큰 활약을 펼쳤지만 '런닝맨'에서는 시청률에서 다소 아쉬움도 있었지요. 그럼에도 유재석이 진행하는 '무한도전'은 예능프로그램의 한계를 넘어 뉴욕 타임스퀘어 비빔밥 광고와 나비효과 프로젝트 등 매회 재미와 감동을 선사해 주었지요.

돌아온 노장 투혼 이경규, 후배들의 길잡이로 무소의 뿔처럼 간다

그러면 이경규의 감격스런 수상소감은 어떨까요. '남자의 자격'을 통해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KBS 대상의 기쁨을 누린 이경규였습니다. 과거 MBC에서 여러차례 코미디 및 연예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지만 최근 몇년간은 부진했습니다. 그러나 이경규는 다시 부활했고 대상의 영광을 안았던 것이지요. 이경규는 "너무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쟁쟁한 후배들과 경쟁해서 받게 됐는데 신동엽을 비롯해 강호동, 유재석, 김병만 모두 훌륭한 후배들입니다. 그러나 상은 운이 있어야 타는 것입니다"라며 감사와 더불어 백전노장 개그맨답게 너스레를 떨기도 했지요.

무엇보다 이경규는 선배로서의 책임감이 돋보인 소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새 후배들의 롤모델 역할이 중요한 위치가 되어버린 자신을 채찍질하는 표현이겠지요. 이름을 밝히진 않았지만 불미스럽게 팀에서 하차한 김성민도 살짝 언급하더군요. 몸이 불편하신 부모님에게 상을 바치겠다는 가족애와 후배들을 위해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겠다는 각오는 가슴찡하게 다가왔습니다.

"개인적인 어려움과 함께 팀 자체도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탄 상 중에서 평생 값어치가 있는 상 같습니다. 아내와 딸, 고향에 계신 부모님과 몸이 불편하신 아버님께 보약으로 이 상을 바칩니다. 제 팬들은 '30년 행복했다. 30년 더 부탁한다'고 하는데 전 20년 더 하고 싶습니다. 여기 있는 후배와 난 똑같은 직업을 갖고 있습니다. 눈이 내린 길을 앞서서 한 발짝 한 발짝 걸으며 후배들이 잘 걸어갈 수 있도록 길잡이가 되어 길을 만들어주겠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달려가겠습니다"

국민적 관심사가 된 예능 전성시대, 단순 예능을 넘어 시대정신 담아야

이렇게 방송3사의 연예대상 수상자들은 각각 다르지만 색다른 수상소감 매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간편 정리하며 대선배로서 이경규의 책임감, 유재석의 배려심, 강호동의 카리스마가 압도한 소감이었습니다.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예능에서 개성과 캐릭터와도 닮아 있는 듯 하기도 합니다. 한편으로 이경규가 후배 유재석과 강호동의 축하를 받으며 환한 미소를 보여주는 장면은 선후배의 우정이 물씬 풍겨나는 것 같아 보기 좋더군요. 이경규가 중심을 잡아주고 상호 대비되는 캐릭터의 강호동과 유재석이 함께 하는 영광의 자리는 개그맨과 코미디언들에게 침체된 정통 코미디 프로그램의 현실에서 의기투합된 단합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는 다지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겠지요.

우리들이 예능프로그램에 심취하는 것은 고단한 현실을 잠시 잊고 웃음과 감동을 느끼는 가운데 다시 심기일전해 현실에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올해는 유난히 다사다난했습니다. 그렇기에 예능은 그 역할이 컸겠지요. 그렇지만 예능프로그램 자체적으로도 우리 사회의 온갖 비리나 부조리가 그대로 투영돼 안타까움도 컸습니다. 신정환의 해외 원정도박, MC몽의 병역비리, 김성민의 마약 투여 등이 대표적 사건들이지요.

이제 예능은 남녀노소 국민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방송의 꽃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방송의 책임감이 큰 셈입니다. 대상 수상소감에서 이경규 유재석 강호동은 선후배간 우정과 코미계의 현실 그리고 가족 및 시청자에 대한 감사 등을 밝혔습니다. 각자 다른 3인 3색의 소감이었지요. 하나 더 주문하자면 예능프로가 국민들에게 주는 책임과 역할이 커진 만큼 사회 전체를 위해 예능 그 이상을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단지 웃고 즐기는 예능의 시대가 아니라 이제는 감동과 사회공헌을 통해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국민예능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웃기기만 하면 그만이 아니라 웃기면서도 감동의 시대정신이 필요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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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부터, 저는 악플러 왓비컴즈와 타블로 안티카페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의 집단 광기로 인한 대국민 사기극을 몇차례 블로그에 쓴 바 있습니다. 그렇지만, 밤새 추적해 쓴 블로그 글이 다음뷰에서 베스트가 되지 못하고 묻혀 못본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최근 내용을 포함해 재차 올립니다. 소설가 이외수 씨가 제 글을 옮겨 인용해 기사화된 부분도 있기는 합니다. 

오늘 서초경찰서 사이버수사대의 조사결과가 발표됐습니다. 역시나 왓비컴즈를 비롯한 악플러들의 집단 광기에 의한 명예훼손과 허위사실로 판명이 났습니다. 타블로가 스탠퍼드 대학을 학사와 석사로 졸업한 것은 명백한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타블로의 학력위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초경찰서는 오늘(8일) 중간 수사결과, 타블로의 졸업증명서·성적증명서와 출입국 기록, 동문 진술 등을 수사한 결과 타블로가 학력을 위조한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으며 실제 스탠퍼드대 학사·석사를 졸업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타블로는 1980년 7월 서울 종로에서 태어나 1988년 8월 캐나다로 이민을 갔으며 1992년 11월13일 캐나다 국적을 취득한 동시에 한국 국적을 자동으로 상실했습니다. 이어 타블로는 1994년 8월22일부터 1998년 5월30일까지 서울국제학교를 다닌 뒤 1998년 9월19일과 2001년 4월2일 각각 스탠퍼드대 학사·석사 입학했고 졸업시점은 2002년 6월 16일입니다.

경찰은 스탠퍼드대 한국동문회 W씨(43)를 비롯해 타블로와 기숙사 생활을 같이 한 미국인 S씨(31) 등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 타블로가 스탠퍼드대에서 학위를 마쳤다는 진술을 확보습니다. 타블로가 스탠퍼드대 학사·석사 과정에 있던 1998년 9월19일부터 2002년 6월16일까지의 출입국 기록도 실제 이 대학을 다녔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경찰은 이 기간동안 총 9회 입국 및 출국을 했고 학기 중에는 미국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또한 강남 소재 외국어학원 강사는 방학기간 중 활동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앞서 타블로는 악플러 22명을 수사 의뢰했고, 이에 맞서 '상진세'(상식이 진리인 세상)는 지난달 7일 중앙지검에 타블로를 학위증명서 위조(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발했으며 경찰은 검찰의 지휘로 수사를 진행해 왔습니다.

가수 타블로 관련 명예췌손 고소 및 학력위조 고발 사건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전문


서초경찰서(서장 총경 하상구)는

○ 2010.5.11 경부터 불상의 네티즌이 인터넷사이트 네이버에 타진요(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 만 30세가 스탠포드 대학 학석사 학력을 위조하여 가수로 활동 중이고 이중국적 소유자로 가족들도 사기꾼이라는 글을 인터넷에 게시하여. 타블로와 가족들이 명예훼손과 모욕죄로 카페 운영자 왓비00(Whatb00)등 회원 22명 고소 및 네이버 카페 상진세(상식이 진리인 세상)에서 타블로가 스탠포드대 학력을 위조했다고 사문서위조죄로 고발한 사건에 대한 중간수사 발표.

○ 2010.08.06 타블로 측에서 타진요 운영자 왓비00 등 회원22명을 서울중앙지방검찰정 고소, 같은 달 8.27. 서초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 이첩하므로 수사 착수

타블로측이 고소한 피고소인(ID왓비00)등 22명에 대한 수사


○ 명예훼손으로 고소된 타진요 카페 운영자 왓비00 등 ID22개에 대해 통신사에 신원확인 의뢰하여 피고소인 20명의 신원을 확인함.

○ 타진요 카페 운영자 왓비00에 대한 수사

-서울서부지검으로부터 지난 4월 타블로가 동일 건으로 고소하여 해외 IP로 확인되어 기소중지한 사건내용을 회신 받아 우리서에서 분석 중, 그 당시 사용한 다음 사이트 ID는 badba0000를 사용하는 한국계 미국시민권자 K모씨(57세,남,가명)로 미국 이민 출국자로 확인됨

-네이버 카페 타진요 운영자 ID Whatbe00에 대해 가입자 인적사항 확인하 바 박00(57세,남,가명)로 확인되며 Whatbe00외에도 badba00001, badba00002 등 3개 ID를 개설하여 사용하고 있고 현재 00구치소에 수감됐으며 동 ID를 개설하거나 사용한 사실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다만 K모씨와는 어렸을 적 친구사이로 이민 출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는 진술 확보.

-K모씨의 또 다른 친구 정00(57세,남 가명)을 참고인 조사하는 과정에서 이메일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친구 정00에게 보낸 이메일 IP와 네이버에 왓비00가 접속하는 IP가 동일하다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왓비00는 00구치소 수감중인 친구 박00명의롤 도용하여 타진요를 운영한 자로 K모씨를 피의자 특정.

-서초서 사이버수사팀에서는 피의자 특정 후 K모씨에게 전화를 하여 범죄사실 고지 및 출석요구 하였으나 정당하게 글을 게시하였다며 출석을 거부하였고 또한 친구 정00에게 자신은 미국시민권자로 주민번호가 없어 정00이 보내준 공소장에 있는 친구 박00의 주민번호로 네이버 ID를 생성 후 타진요를 운영하였다고 시인한 점 등으로 보아 범죄사실이 명백하나,

-해외에 거주하고 미국 시민권자라는 이유로 수사팀의 출석욕에 지속적으로 불응하고 있어 체포영장을 신청하여 국제 인터폴에 수사협조 의뢰하고 국제형사사법 공조법 및 범죄인 인도조약에 의거 국제공조수사를 진행할 예정임

○ 네이버 카페 타진요 운영자 왓비00 외 나머지 피고소인들 가운데 중복 접수된 피고소인을 제외한 19명에 대해서도 인적사항을 모두 확인하였으며 출석요구서 발송 계속 수사 중에 있음

소위 상진세 측이 타블로의 학력위조 고발에 대한 수사


○ 2010.9.7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상진세·(상식이 진리인 세상)측에서 타블로가 스탠포드대학 학위 증명서를 위조하였다고 고발, 서초경찰서 사이버수사팀에서 수사한 바
-1980.07월 서울 종로 출생, 88년 8월 캐나다 이민
(92.11.13 캐나다 국적 취득, 국적법 15조 한국 국적 자동 상실)
-1994.08.22 서울국제학교 입학, 98.05.30 졸업
-1998.09.19 스탠포드대학 입학, 2001.03.23 졸업
-2001.04.04 동대학 석사입학, 2002.03.24이수, 6.16 졸업한 것으로 확인.

○ 서초경찰서 수사과 사이버수사팀에서 스탠포드대학에 다니엘 선웅리 학석사 성적증명서(졸업증명서)발급요청 공문 우편발송 한 바
-2010.09.20 스탠포드대학에서 발송한 타블로 성적증명서를 우편으로 접수
-2010.09.21스탠포드대학에서 서초경찰서 수사과 사이버수사팀 담당 수사관 이메일로 발송한 전자 성적증명서 출력하여 확인.

○ 스탠포드대학 한국동문회 총무 W모씨(남,43세) 및 동대학에서 타블로와 기숙사 생활을 같이 한 미국인 S모씨(남,31세) 등의 참고인 진술 정취

○ 서울국제학교에 타블로의 졸업여부 확인한 바, 다니엘 선웅리(한국명 이선웅)는 서울국제학교 졸업 후 98년 08월 스탠포드 대학에 진학하였다는 확인서를 통보받음

대검찰청 과학 수사과 문서 감정실에 타블로가 제출한 성적증명서와 수사기관에서 회신 받은 성적증명서의 진본여부 의뢰 확인 결과, 각 문서의 문양 및 형식 등에서 일치하는 진본으로 확인됨

○ 출입국 기록확인 수사
스탠포드대학 학 석사기간중(1998.9.19-2002.6.16) 다니엘 선웅 리 국내 출입국 사실에 대해 출입국조회서로 확인한 바 총 9회 방학기간을 이용, 입출국한 사실이 확인됐고 강남소재 외국어 학원에서 영어강사를 한 기간과 학석사 각 학기와 중복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타블로가 학력 위조한 혐의점을 발견치 못함.

◇ 향후 수사 계획
왓비00 체포영장 신청
인터폴 공조수사 협조의뢰
피고소인 19명 입건수사 후 혐의 인정되면 기소의견 송치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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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비컴즈와 타진요를 수사 처벌하라는 청원을 비롯 여러 서명운동이 아고라에 확산 중이다 

경찰 수사에 의해 타블로의 스탠퍼드대 졸업이 확인됐지만 타진요 및 상진세는  미국 FBI에 수사 의뢰를 해야 한다는 황당한 짓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찰도 타블로가 매수한 조작이라고 헛소리를 하며 변호사를 찾는 모양입니다. 타진요와 상진세는 스스로 경찰에 맡겨놓고 이제 다시 말도 안되는 다른 의혹을 다시 제기하며 끝없는 집단광기를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왓비컴즈의 체포영장을 청구한 경찰은 미국 인터폴과 공조해 범죄인 인도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왓비컴즈는 경찰 수사 연락을 받았으나 이에 불응하고 있는데 교도소에 수감 중인 친구 이름으로 명의도용을 통해 여러개 ID(아이디)를 만들어 용의주도하게 악플러 행위를 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22명 악플러 중 아이디가 겹친 자를 제외한 19명을 소환 수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MBC 스페셜 2부도 오늘 밤 방송 예정입니다. 결국 그 동안 인터넷서 암약하며 온갖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악플러 집단에 대한 집단광기가 어떤 역기능을 주는지 조명이 될 것입니다. 결국 지난 6개월 이상을 끌어온 타블로와 악플러 왓비컴즈의 대결이 끝장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최후의 심판, 그 날은 바로 8일 금요일이 될 전망입니다.

끝없이 타블로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 학력 의혹을 제기하던 타진요 왓비컴즈의 실체도 어느정도 이 날 밝혀질 것입니다. 그 동안 왓비컴즈는 베일 속에 숨겨진 인물이었습니다. 타블로 악플러로 유명했지만 아무도 왓비컴즈에 대한 구체적 신상정보를 알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 동안 왓비컴즈는 주도면밀하게 인터넷 익명성에 숨어서 온갖 악플로 여러 연예인들을 비방하고 심지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는 것이 소위 네티즌수사대에 의해 최근 드러난 바 있습니다.

악플러 왓비컴즈는 과연 누구인가?

                      타블로와 가족은 악플러 왓비컴즈의 먹잇감이 되면서 철저히 짓밟혀 왔다

이미 MBC 스페셜은 지난 주 1부에서 타블로의 스탠퍼드 대학 졸업이 사실이라고 현지 취재를 통해 종지부를 찍은 바 있습니다. 스탠퍼드 대학 성적증명서(일반적으로 졸업증명서 역할을 병행함)를 직접 검증했고, 영문과 울프교수를 비롯 졸업생, 재학생 등의 증언을 통해 타블로의 스탠퍼드 대학 생활과 졸업을 입증했던 것이지요. 게다가 여권과 성적증명서 이름도 동일하다는 사실도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이지만 왓비컴즈와 타진요는 조작이라고 반발하며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하고 병역문제를 비롯 다른 사안으로 본질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왓비컴즈는 타블로가 졸업 사실을 증명하면 된다고 했지만 말을 바꾼 셈입니다. 사실 왓비컴즈는 타블로에게 스탠퍼드를 가자고 먼저 제안한 바 있었습니다. 그러나 왓비컴즈는 MBC 스페셜 제작진이 동행 취재를 부탁하자 '타블로가 돈으로 자신을 매수하거나 암살할지도 모른다'는 핑계를 대며 스탠퍼드 동행을 거부했습니다.

왓비컴즈는 자신에 반대하면 강퇴를 시키고 타진요 회원들에게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양 과시해 왔다

왓비컴즈는 늘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자신의 말에 대한 약속이나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왓비컴즈는 타진요 카페 회원들에게 결정적 증거가 있다고 자주 밝혔지만, 계속 차일피일 미루면서 아직도 결정적 증거 타령만 하고 있습니다. MBC 스페셜이 방송된 이후에도 자막 실수를 비롯 꼬투리를 잡으면서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왓비컴즈가 스스로 악플러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듯이 악플러의 전형적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왓비컴즈는 그 동안에도 자신은 미국에서 유명한 인물이라며 혼자서도 검찰, 경찰, 언론 등을 상대할 수 있다고 큰 소리를 친 바 있습니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을 보면 인사를 하 것이라는 둥, 이외수를 똥물에 튀겨버린다는 둥, 박근혜에게 이메일을 보낸다는 둥 온갖 황당한 망언을 거듭 해왔습니다. 그런 왓비컴즈의 비겁한 행동과 비열한 만행에 네티즌들은 과대 망상증 환자이거나 정신병자 수준이라며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왓비컴즈 악플러는 어떻게 연예인들을 괴롭혀 왔나?

그도 그럴 것이 네티즌수사대가 밝힌 왓비컴즈의 과거 행적에는 여자 연예인들 관련 기사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악플러 마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바 있습니다. 소녀시대 윤아와 키스를 했다느니, 김태희 팬티를 산다느니, 고소영이 폐경기인데 임신을 어찌 했냐느니, 유재석이 사기꾼이다느니 등등 왓비컴즈의 악플러 행각은 도저히 정상적 인간으로 볼 수가 없는 패륜적 범죄행위였습니다. 어떤 연예인도 악플러 왓비컴즈의 스트레스 해소 먹잇감이었습니다. 이는 명예훼손은 물론 허위사실 유포죄를 넘어선 악질 범죄였습니다. 악플러가 최진실을 비롯 연예인들의 자살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왓비컴즈는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는 57세의 중년 남성 김 모씨라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왓비컴즈는 의대를 나온 2명의 딸을 둔 아버지라고 스스로 밝힌 바 있습니다. 두 딸을 키운 아버지이자 나이도 지긋한 분이 인터넷 익명성에 숨어서 악플러 짓을 수년간 지속해 온 것입니다. 왓비컴즈는 현역으로 해병대 군대생활을 하고 제대한 후 미국으로 이민간 것으로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왓비컴즈의 지금까지 거짓말 행각을 보면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시카고 한인교회 목사에 의하면 왓비컴즈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으며 미국 사회에서 설움과 고통을 인터넷 악플로 해소하는 문제 인물이라고 합니다. 즉, 왓비컴즈가 경제적 사회적 박탈감을 인터넷이라는 익명의 공간을 통해 해소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보잘 것 없을 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타진요' 카페에서는 신이고 대통령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왓비컴즈의 악플에 놀아난 인터넷 언론매체가 논란을 확산시켰다

여기서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나라 인터넷 언론매체 및 기성 언론의 문제입니다. 그 동안 대다수 인터넷 언론매체는 타블로 논란을 확대재생산해 온 주범이라는 것입니다. 언론의 책임감이나 신뢰성은 아예 하수구에 버린 채 왓비컴즈의 허무맹랑한 비방과 음해를 그대로 여과없이 보도 기사로 쏟아내 왔습니다. 언론이 아니라 찌라시도 안되는 셈입니다. 네이버 등 포털도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인터넷매체의 낚시 기사를 메인에 올려 논란을 확대재생산하는데 한 몫 했습니다. 

       왓비컴즈는 타진요 카페를 접수한 후 기사가 뜨면 회원들에게 댓글 무기로 공격하라 명령했다

인터넷 역기능의 악순환이었습니다. 악플러 왓비닷컴의 악플은 인터넷 매체가 논란으로 불을 지피고 포털은 메인에 올려 확산하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급기야 타블로 학력 논란은 악플러들을 대량 양산시켰고 타진요 카페를 본거지로 암약하며 악의 축을 구축했습니다. 타진요 카페 초대 운영자가 군대에 간 틈을 타 왓비컴즈는 카페 운영권을 획득해 회원들을 진두지휘해 공성전을 펼쳤습니다. 왓비컴즈는 회원들에게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달도록 유도하며 타블로 학력 의혹을 끊임없이 부추겼습니다.

악성 악플러는 수사해야 하지만 건전한 비판은 발전의 원동력

그리고 왓지컴즈는 타진요의 활동을 집단지성이라고 사이비교주 주술과 같은 주문으로 이성을 마비시켰습니다. 그것은 집단지성이 아니라 집단 광기였습니다. 한번 타진요 네트워크 내에 빠지면 합리적 사고는 마비되어 갔습니다. 왓비컴즈는 자신의 의견에 어긋나는 글을 올리는 회원에 대해 가차없이 강퇴(강제탈퇴) 조치를 취했습니다. 거의 독재체제 공산당 수준의 운영입니다.

                

스탠퍼드 영문학과 울프 교수는 타블로 학력은 모두 사실이라고 밝혔다


자, 어떤가요? 왓비컴즈가 어떻게 인터넷에 숨어서 악플러 행각을 벌이면서 철저하게 연예인들을 짓밟아 왔는지 아시겠지요. 왓비컴즈는 지속적으로 연예인 기사에 악플을 달면서 추악한 배설을 해오다 타블로가 먹잇감으로 나타나자 집중적인 악플을 퍼부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타진요를 근거로 암약하며 댓글 무기를 회원들에게 전수하며 지금까지 악플 행각을 벌여 왔습니다. 이것이 왓비컴즈의 본 모습일 뿐입니다. 회원들은 철저하게 왓비컴즈에 놀아난 셈입니다. 일부 블로거도 마찬가지로 악플러들의 의혹 제기를 여과없이 전달하는 잘못을 저질러 왔습니다. 먼저 사과 반성문부터 썼으면 합니다. 용기있는 자만이 사과할 수 있습니다.
[참고] "타블로씨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오마이뉴스 사과문)

이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왓비컴즈의 악플러 행각은 경찰 사이버수사대 밝혀졌고 MBC 스페셜에 고스란히 상세히 방송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왓비컴즈로 대표되는 인터넷 범죄가 얼마나 사회에 위험한 일인지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 동안 정치권에서도 댓글 알바를 고용해 악플러 행위를 한 것이 여러차례 드러난 바 있습니다. 인터넷 포털을 중심으로 암약하는 댓글 악플러들에 대한 철저한 구속수사가 이루어져 할 것입니다. 다만, 정권 차원에 이를 악용해 인터넷 순기능과 건전한 비판문화 마저 옥죄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가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타블로는 지난주 MBC 스페셜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못믿는 것이 아니라 안믿는 것'이라고. 악플러들은 인터넷에 숨어서 온갖 악플 만행으로 한 가수의 인생과 단란 가정을 파괴한 죄값을 톡톡히 치러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사회에 고질병인 학력지상주와 콤플렉스의 열등감 문화도 이번 기회에 바람직한 논의가 되어 보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데 기폭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타블로의 눈물이 머리 속에 오버랩되며 가슴아프게 합니다. 누가 타블로의 눈물을 씻어주고 보상해 줄 수 있을까요?


"솔직히 창피해요. 제가 여기에 학생이었을 때의 모습을 보신 분들인데, 8년이 지나 이런 일로 (스탠퍼드를) 찾아와서 이런 상황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스탠퍼드에 와서 여러가지 방식으로 설명해도 결국 믿기 싫은 사람들은 계속 나에 대해 얘기할 거에요. 이 사실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나를 안 믿는 것이잖아요. 생각하고만 있을 때는 괜찮은데 이렇게 말로 하려니까... 솔직히 억울해서 우는 것 아니에요. 눈물이 나는데 절대 누구를 원망하거나 탓해서 우는 것이 아니에요. 무언가를 얻었다가 놓쳤서 겁나서 우는 것도 아니고 너무 (감정이) 벅차서 우는 겁니다. 너무 많은 감정들이 느껴서 우는 거에요.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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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꿈을 이룬 한 남자의 진정한 눈물을 보았습니다. 가슴 한 켠에 항상 남아있던 음악에 대한 열정이었지요. '이종 격투기 파이터' 서두원의 한번 터진 폭풍 눈물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서두원은 예능프로그램 '남자의 자격' 합창단원에 합격해 마침내 거제 전국합창대회에서 완벽한 하모니 속에 노래를 끝낸 후 환희와 감동의 물결이 눈물도 쏟아진 것입니다. 뜨거웠던 여름을 관통해 2개월간 피나는 연습을 했던 그 과정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함께 했던 소중한 추억들 속에 멋지게 합창을 끝낸 벅찬 감격이 주체할 수 없는 눈물로 나타난 것이겠지요.

남격 합창단은 '넬라 판타지아'를 모두가 하나된 목소리의 화음으로 하모니의 기적을 만들었고 '애니메이션 메들리'로 하나된 몸짓과 하나된 하모니의 아름다움을 선사했습니다. 노래가 끝나고 관객들의 폭발하듯 터져나오는 환호성에 합창단은 하나 둘 눈물을 뚝뚝 흘렸습니다. 솔로 소프라노 경쟁을 벌였던 선우도 울고 배다해도 함께 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울보 김성민도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처럼 순수한 남자의 눈물을 보였던 파이터 서두원의 모습

파이터 서두원은 혼자 벽을 쳐다보며 어깨를 들썩거렸습니다. 남자이기에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싫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터져버린 눈물은 왈칵 쏟아졌습니다. 엉엉 대성통곡의 눈물을 흘리는 서두원. 그는 강인한 남자의 모습을 한 파이터이기에 앞서 순수한 남자였습니다. 김성민이 서두원을 얼싸안고 함께 울었습니다. 박칼린 선생님이 서두원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자 울먹이면서 말했습니다.

"진짜 너무나 행복했어요."
"평생 한번도 못해보고 죽을 수도 있었는데 이렇게 합창단을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어요."
"직업이 다르다 보니깐 하고 싶은 것을 억누르고 살았는데 이런 기회가 와서 좋은 형들과 동생들 만나 꿈을 이룰 수 있었어요."


박칼린도 서두원의 울먹이는 말에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합창단 지휘자로 카리스마를 잃지않았던 박칼린 캡틴도 서두원의 눈물 고백이 이심전심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옆에서 듣고있던 반주선생님을 비롯 여러 하모니 멤버들도 눈물을 훌쩍거렸습니다. 서두원의 말을 진심이었습니다. 서두원은 자신의 미니홈피에 그 날의 감동을 당시에 고스란히 밝혔습니다. 지난 9월 4일 서두원이 미니홈피에 남긴 글을 옮겨 봅니다.

서두원이 미니홈피에 남긴 감격의 합창 후 소감문

꿈을 꾸고,
꿈을 이뤘습니다.

어쩌면 계속 가슴 속 깊은곳에 담아두었을..

평생을 그렇게 담아두었을 그 꿈을
내 자신을 비롯한 모두 앞에 꺼내보이고

나름 멋지게 이뤄내보였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금 꿈을 꾸고, 이룰 수 있게 해준..
남자의 자격 제작진 분들과 
경규 형님을 비롯한 출연진 분들
박칼린 부대(?) 선생님들 

함께 호흡하고 눈을 맞춰준 사랑하는 우리 하모니 가족들.. 

아마 평생 잊지 못할겁니다. 

당신들이 계셨기에 
전 여태 품어오기만 했던 그 꿈을 꺼내 이룰 수 있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정말..
우리가 이뤄낸 이 하모니가 영원하길 바랍니다!

서두원은 '꿈을 꾸고 꿈을 이뤘습니다'로 시작된 글에서 그 꿈을 이루게 해준 남자의 자격 제작진과 이경규, 그리고 출연진들 모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박칼린 부대(?) 선생님들과 함께 호흡하고 눈을 맞춰준 하모니 가족들을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거듭 고마움을 밝혔습니다. 서두원이 얼마나 진한 감격이었으면 글도 거의 쓰지 않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글로도 표현했을까 싶었습니다.

피도 눈물도 없을 것 같이 삭막한 이종격투기 파이터가 흘리는 눈물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여린 심성의 서두원이 어떻게 파이터를 할 수 있나 싶을 정도였지요. 사실 강한 남자라고 하더라도 내면의 마음은 순수하고 여릴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강한 척 하는 남자가 실상은 내면에 가녀린 심정이 감추어져 있기도 하지요. 파이터와 음악의 절묘한 만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두원이 남자의 자격 합창단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것은 절친 윤형빈이 권유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 당시 서두원이 오디션이 등장하자 이경규는 "그냥 합격입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환희의 발라드곡 '소원'을 부르는 모습은 흡사 격투기 선수 추성훈을 연상하게 했지요. 서두원은 합창단 지원 동기에 대해 "대한민국의 진짜 남자를 대표해 섰습니다. 하고자 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일반인 대표로 나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당찬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룬 것이지요.

사실 서두원은 남자의 자격에 처음 출연한 것은 지난해 송년회 때입니다. TV녹화인지 모르고 윤형빈의 요청에  얼떨결에 얼굴을 내민 적이 있었습니다. 일일찻집에 놀러오라는 말만 듣고 갔던 것이지요. 그 전에도 스친소(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 얼짱 몸짱 특집에 멋모르고 나가 노래를 해 예능감을 뽐내며 레이싱걸과 커플이 되는 행운도 있었지요. 종합격투기를 알리고 싶은 이유가 컸지만요.

                         종합격투기 선수 서두원은 진짜 남자로서 꿈을 향한 도전을 말한다

남격 합창단에 합격한 후 노래를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어 악보도 보지못해 MP3 플레이어에 넣고 일주일 내내 듣고 다니며 음을 완전히 외웠다는 서두원. 그러나 타고난 음악에 대한 재능과 노력으로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지요. 서두원은 현재 종합격투기 네오파이트 웰터급 챔피언입니다. 홀로 운동도 해야 하고 예능에도 출연하는 이중고를 견뎌내야 하는 것은 힘든 일이겠지요. 

서두원의 미니홈피에는 '강한 남자, 서두원'이라고 소개가 되어 있고 대문 글 제목에는 '동심의 절실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서두원이 어린 시절에 동심에서부터 꿈을 꾼 노래에 대한 열정과 이종격투기 선수로서 마음가짐을 대변하는 의미가 담긴 것이겠지요. 서두원은 격투기 선수들은 모두 진짜 남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꿈을 갖고 사는 남자가 진짜 남자라고 항상 말하곤 합니다.

이제 서두원에게는 격투기와 방송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또 다른 도전과 꿈이 남아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목표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심의 꿈을 이룬 남격 합창단의 성공체험과 강한 남자의 눈물을 잊지말고 최선을 다한다면 또 하나의 꿈은 현실이 되겠지요. 동심은 초심과 일맥상통합니다. 항상 초심을 잃지말고 서두원 스스로 말한 진짜 강한 남자가 되길 바랍니다.

남격 합창단의 헤어짐도 감동이었는데 그 내용을 음미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박칼린은 영화를 볼 때만 눈물을 흘린다고 했는데 영화같은 2달을 보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 서두원의 눈물은 박칼린에게는 더욱 진한 감동이었겠지요. 남격 합창단은 처음이자 마지막 무대를 끝내면서 박칼린에게 특별한 감동이벤트를 했습니다. 32명 단원들이 전원 메시지 카드를 손에 들고 찍은 사진으로 감사와 이별의 마음은 전한 것이지요. 우리 국민들에게도 진정한 화합과 사랑의 하모니 리더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선생님 저예요 우리, 두 달 전 우리 처음 만난 날. 기억하시나요? 시끄러운 데다가 말도 지지리 안 듣던 서른세 명의 우리들. '플랫' '조용' '이야기 좀 들어' 하시며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폭풍 카리스마와 넘치는 열정, 노래로 하나 된 우리의 하모니. 시간이 지나도 잊지 못할 거예요. 목요일엔 뭐하죠? 선생님. 보고 싶을 거예요. 벌써 그립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 박칼린 선생님.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캡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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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너무나 아름답고 슬픈 영화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가 끝난 후 주루룩 한 줄기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 내렸습니다. MBC스페셜 '장진영의 마지막 1년'을 시청한 후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쉽게 만났다 쉽게 헤어지는 인스턴트 사랑과 헤어짐이 너무나 많은 우리네 현실을 돌아보면 장진영과 남편 김영균의 사랑과 이별은 큰 감동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MBC스페셜 '장진영의 마지막 1년'편은 2009년 9월 1일, 서른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한 배우 장진영의 사망 1주기를 맞아 여배우로서 가장 절정의 순간,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녀를 추억하고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는데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수작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만남에서 이별의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지금도 장진영의 곁을 지키고 있는 지고지순한 남편 김영균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특히나, 장진영이 위암 말기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일을 포기하면서까지 김영균은 항상 그녀 곁에서 극진한 간호를 하더군요. 사실 결혼도 안한 사이에 나 몰라라해도 그만일 수 있지만 김영균은 장진영을 향해 더 불타는 사랑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이나 주위의 반대가 심할 것을 우려해 마련한 2009년 7월 26일 라스베이거스에서 단지 지인 몇명만 초대해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리는 동영상 모습이나 사망하기 몇 일 전인 8월 29일 혼인신고서를 냈던 당시를 회상하는 김영균을 보면서 영원한 사랑의 의미가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시한부 장진영을 위한 김영균의 아름답고 슬픈 결혼식

                장진영과 김영균의 영화보다 더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가 가슴뭉클하게 했다

더보기

* 더 보기를 열면 장진영과 김영균의 결혼식 사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김영균이 혼인신고를 했다고 말했을 때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장진영의 마음은 얼마나 가슴아프고 슬펐을까요? 김영균의 당시 회상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진영이한테 제가 얘기를 했어요. 혼인신고 했다고 그랬더니 깜짝 놀라요. 놀라면서 울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왜 우냐고, 너 오늘 내 와이프 됐는데 너 기뻐야 되는 거지. 그랬더니 자기가 몸이 이렇게 됐는데 미안하다고..."

장진영의 마지막 1년 주요 내용

2009년 9월 1일, 서른일곱의 짧은 생을 마감한 배우 장진영. MBC스페셜 <장진영의 마지막 1년> 편은 배우 장진영의 사망 1주기를 맞아 배우로서 가장 절정의 순간, 우리 곁을 떠나버린 그녀를 추억하고자 한다. 함께 작품 활동을 했던 김명민, 박해일, 김승우 등 동료 배우들과 가족, 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배우 장진영의 열정과 인간 장진영의 삶을 담아본다.

세상을 떠나기 전 장진영의 마지막 1년! 남편 김영균씨와의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 아름다운 사랑을 했던 그들의 이야기. 마지막까지 그 누구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그녀가 회복을 위해 떠났던 미국과 멕시코에서의 투병기를 현지 촬영을 통해 소개한다. 또한, 미국에서 그녀를 간호했던 김영균씨 누나의 인터뷰 및 2009년 7월 26일 라스베이거스에서의 결혼식 동영상을 최초로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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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는 영화배우 장진영이 하늘나라로 떠난 일은 물론 배우 최진실 장자연 등 안타까운 죽음에 이어 사회적으로 사회 저명인사들의 사망이 유난히 많았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국가적으로 명망있는 사회지도자들의 서거도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었는데 국민들의 뇌리에 남는 배우들의 죽음 또한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결국은 우주의 작은 먼저처럼 사라져 갈 인생이기에 늘 살아있음에 대해 감사하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 속의 사람들과 하루를 보다 의미있고 보람있게 살아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의 우리 사회를 보면 여전히 작은 이익과 욕심을 탐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나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정치인을 비롯 사악한 인간 군상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장진영과 김영균의 영화같은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이별 이야기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 울림이 크다 하겠습니다. 한편 장진영과 김영균의 이야기는 영화 '국화꽃 향기'와 닮아 있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국화꽃 향기'의 여자 주인공은 장진영이었고 그 이야기는 바로 자신의 삶 자체가 되었습니다. 영화가 현실이 된 슬픈 이야기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 더 가슴아프게 했습니다. 어쩌면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의 그녀를 하늘나라도 시샘해 일찍 데려간 것일까요.


영화 '라스트 콘서트' 이야기는?

MBC 스페셜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지만, 2009년 5월 장진영은 김영균과 함께 가수 김건모의 전국투어 전주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갔었다고 합니다. 마치 영화 '마지막콘서트'처럼 사랑하는 두 남녀는 그렇게 둘 만의 애틋한 사랑을 끝까지 간직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장진영이 이승에서 가본 마지막 콘서트가 되었습니다. 장진영은 김건모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바도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마지막 콘서트였던 셈입니다.

장진영과 김영균의 콘서트 이야기는 이탈리아 영화 '라스트 콘서트'의 감동을 떠올리게 하게 했습니다. 미국의 컨트리 팝가수 존 덴버 주연의 영화 '션샤인'과 더불어 불치병 환자와의 아름답고 슬픈 사랑 이야기입니다. 피아니스트 리처드(리차드 존스 분)가 백혈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스텔라(파멜라 빌로레시 분)를 위해 '스텔라에게 바치는 곤첼로'를 작곡하여 파리 교향악단에 초연을 하게 됩니다.



그 음악은 좌절의 나날을 보내던 리처드에게 순수한 소녀 스텔라가 보내준 용기와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스텔라는 갈채로 뒤덮힌 무대의 객석에서 리처드를 자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는 영화입니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스텔라를 위한 곤첼로(스텔라를 위한 협주곡)'은 영화를 본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지금도 영화와 음악은 커다란 울림으로 남아있기도 합니다.

남자친구 김영균과의 가슴 뭉클한 결혼 사연

장진영의 남편 김영균도 고등학교 시절 기타와 드럼을 치던 음악 로맨티스트였다고 합니다. 어쩌면 마지막 콘서트는 김영균이 장진영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 김영균 씨는 제15대 국회 부의장 출신인 김봉호 전 국회의원의 차남으로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공부를 많이 할수록 더 이기심이 많아지는 우리사회의 모습을 생각해보면 김영균의 순수한 사랑은 물질만능주의 세상에 커다란 파문을 던져주는 듯 합니다.



장진영을 향한 김영균의 그녀의 사랑은 죽음 앞에서도 막을 수 없었고 더욱 불타올랐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좋아한 로맨티스트 김영균의 순수한 사랑이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슬프게 했습니다. 2008년 1월, 지인의 소개로 장진영과의 만남을 갖게 된 김영균씨는 그녀를 본 순간 첫 눈에 반했습니다. 장진영 역시 그에게 점점 호감을 느꼈고, 8개월 동안 아름다운 사랑을 키워 왔습니다. 모든 것이 행복하고 웃음만 가득했던 시간들. 그러나 그 해 9월, 거짓말처럼 그녀에게 위암이 찾아왔던 것입니다.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 이야기이자 감동적인 러브스토리는 그 때부터 또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영화 보다 슬픈 순애보와 진정한 사랑의 의미

그러나 슬픈 운명은 장진영을 결국 하늘나라로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김영균은 "내가 곧 그녀, 그녀가 곧 나였습니다. 혼자 보내게 된 아픔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장진영이) 가는 길에 힘이 되고 싶었고 가슴 속 담아두고 싶었습니다. 현실에서 못다한 사랑, 하늘에서나마 아름다운 결혼 생활로 이루고 싶었습니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미 죽음을 예견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에 힘이 되어주고 꿈 속에서 그리고 하늘나라에서 계속 사랑을 하고 싶어 둘 만의 결혼식을 했다는 것에 가슴이 아려옵니다. 김영균은 작년 장진영의 사망 당시 재산 상속도 장진영 부모에게 위임했고 상주도 장진영 아버지가 맡은 바 있습니다. 요즘같은 세상에 김 씨 같은 순수하고 애절한 사랑도 드문 일인 것 같습니다.

영화 '국화꽃 향기'에서 여주인공 민희재에게 남편 인하는 라디오에 보낸 사연을 통해 말합니다. 장진영을 향한 남편 김영균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하여 또한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보고 싶어하고 당신을 그리워했는지. 나만의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 삶이 살아 있는 시간은 당신과 함께할 때 입니다"

MBC 스페셜 시청자 게시판에는 눈물과 감동의 게시글들들이 폭주했다


아름다운 사랑을 위해 끝까지 장진영과 함께 하고 있는 김영균의 한결같은 마음이 하늘나라의 장진영에게 닿아 MBC 스페셜의 감동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보다 더 슬퍼서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순간까지 소중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준 장진영이었습니다. 비록 이승에서 못다한 꿈과 사랑을 하늘나라에서는 이루기를 바랍니다. 김영균도 용기를 잃지말고 살았으면 합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 우리 모두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보는 오늘 하루가 되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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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언론, 국민들의 무관심 등 외로운 상황과 고된 훈련 속에서 울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20세이하 여자대표팀을 월드컵 4강에 진출시킨 최인철 감독이 한 말입니다. 2010 국제축구연맹(FIFA) 20세이하(U-20) 축구대회에서 여자 대표팀이 4강에 오르기까지 눈물의 연속이었던 셈입니다. 그 중심에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인 '지메시' 지소연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지소연의 감동 스토리는 눈물겹습니다. 과거 여자 육상스타 임춘애의 라면먹고 뛰었다는 이야기가 스치기도 합니다.

척박한 토양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개척한 스포츠 영웅들을 보면 모두가 감동적입니다. 세계최고의 피겨여왕에 오른 김연아도 그랬습니다.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선수가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는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세계정상에 우뚝 섰고 환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국 여자 스포츠 역사는 어쩌면 남자들 보다 드라마틱한 것 같습니다. 세계 여자 골프에서 '맨발의 투혼' 박세리 선수가 LPGA 첫 우승으로 새 역사를 쓴 바 있고, 우생순 신화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도 그러했습니다. 다른 스포츠 종목도 열악한 환경을 딛고 불굴의 투지와 의지로 승리한 역사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자 축구의 지소연은 어떤 스포츠 스타와 비교해도 더욱 감동적입니다. '눈물젖은 빵'을 먹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밝게 웃으며 달려온 '캔디'와 같은 지소연. 외로워도 슬퍼도 눈물흘리지 않으려 늘 애썼던 지소연. 그래서 더 지소연이 예뻐 보입니다. 지소연의 축구는 남자축구 보다 재밌다는 찬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지소연을 중심으로 한 한국 여자축구는 그렇게 매일 새 역사를 써 왔습니다. 우리나라 남자 축구팀이 수십년간 이룬 월드컵의 영광들과 비교하면 여자축구는 정말 대단합니다.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면 매번 조별 예선에서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남자 대표팀과는 달리 여자 축구는 큰 염려도 없이 단숨에 4강에 직행했습니다. 지소연은 현재 6골로 독일의 포프(7골)과 득점왕을 노릴 정도이고 한 경기에서 해트트릭(3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박지성이 월드컵 본선에서 3골을 기록한 것을 보면 지소연이 월드컵에서 기록한 골이 얼마나 우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 비교는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 만큼 출중하다는 의미입니다.

지소연과 김연아 뒤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지소연의 감동 스토리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습니다. 지소연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자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할 때 지소연의 어머니 김애리 씨는 딸의 꿈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여자 아이가 사내 아이들 틈에서 축구 연습을 하는 것은 아버지는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믿음으로 끝까지 지켜주었습니다. 지소연은 초등학교 축구팀에 입단해 남자들과 겨뤄 오히려 동년배보다 2~3년 정도 앞설 실력을 갖추고 주전선수 11명에 항상 들어갈 정도였다니 가공할 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 축구선수의 탄생이라 할 만 합니다.

그러나 가정형편을 보면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어머니는 2002년 자궁암 판정을 받고 암투병으로 건강을 잃기 시작하고 아버지는 딸의 선수생활 고집과 아내와의 불화로 결국 이혼을 하게 됩니다. 지소연은 자신에게 헌신적인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 역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고등학생인 남동생은 지소연 자신이 공부시키겠다고 마음먹고 아픈 어머니에게는 '찜질방 달린 집'을 꼭 사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어머니는 암투병 후유증과 합병증으로 허리가 매우 안좋다고 합니다.

"소연이 키가 더 자라지 못한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내가 못 먹인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빵만 먹고 뛴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몸이 나으면 먹을 거리라도 좀 챙겨줄텐데..."

지소연 어머니는 딸의 키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 합니다. 키 161Cm인 지소연은 다른 여자 축구선수들에 비해 작습니다. 외국 선수들에 비하면 매우 작은 키입니다. 그렇지만 지소연은 빠른 몸놀림을 바탕으로 골컨트롤, 패싱력, 슈팅능력, 스피드 등 전반적으로 놀라운 기량을 갖고 잇습니다. 마치 작은 키의 남자 축구스타 메시를 연상시켜 '지메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현재 지소연 가정은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로 정부가 지원하는 전세임대주택(18평)에 살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반지하 셋방을 전전했으니 그나마 지금은 나은 편입니다.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지만 지금도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홀로 아들을 키워고 가정을 책임지는 상황이라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찜질방 달린 집을 사주겠다는 지소연의 다짐이 싹텄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소연은 이를 악물고 악바리처럼 그라운드를 뜁니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할 동생의 등록금, 그리고 가정의 생계를 떠맡겠다는 것입니다. 대표팀 선수에게 나오는 약간의 돈마저 쓰지않고 절약해 어머니에게 가져다 줄 정도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현대판 효녀 심청이입니다.

남동생 숭연 군은 모 인터뷰에서 "누나가 간식을 좋아해요. 그런데 자기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는 것도 아까워 벌벌 떨면서도 나에겐 아낌없이 사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 누나”라고 말하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누나는 사실상 누나이자 아빠였어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누나가 곁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헤쳐나갈 힘을 얻어요”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작은 키에 비해 마음은 일찍 커버린 지소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소연은 해맑은 미소로 밝습니다. 좌절할 만도 한 결손가정이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지소연에게는 세계최고의 여자축구선수 그리고 한국팀을 여자월드컵 우승컵을 안겨주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소연이 과거 중학교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여자 축구팀과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상대를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패준 것입니다. 결국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300만원이란 거금을 합의금으로 마련해야 했고 지소연은 그 후 몰라보게 온순해지고 달라졌다고 합니다.

"핸드폰이 없는데요."

이제 겨우 열여섯. '축구소녀' 지소연(위례정산고)은 대부분의 질문에 고개를 떨구며 수줍어 하지만 당당하게 우리나라 최연소 A매치 골기록(15세 293일)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여자축구계의 새희망이다

위 박스에 있는 글은 지난 2007년 1월 호주에서 열린 4개국 초청 친선축구대회에 우승한 후 당시 주장이던 지소연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입니다. 소녀들이 누구나 갖고 있는 휴대폰도 없었고 오직 축구만 했다고 합니다. 기자도 놀랐는지 제목이 휴대폰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지금은 성인 대표선수이니 휴대폰은 있겠지만 노트북은 아직도 없답니다. 다른 선수들은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해외에서도 인터넷을 본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대기업에서 앞으로 협찬을 많이 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지소연 미니홈피에는 응원글들이 쇄도하고 있고 마니홈피 사진에도 관심이 이어진다.

역경과 시련을 딛고 0.004% 신화를 만들다!

그렇게 지송연은 온갖 역경과 시련을 딛고 신화를 만든 것입니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있기까지 항상 그 곁에 어머니가 있었듯이 지소연에게도 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소연의 가정형편을 고려하면 김연아는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소연도 김연아도 스스로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소연이 미국 여자 프로축구리그에 진출해 최고의 선수들과 기량을 겨뤄 이름도 날리고 돈도 많이 벌어 어머니에게 효도할 날도 기대해 봅니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않던 시절에 지소연과 김연아는 척박한 불모지에서 열심히 노력해 최고의 경지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는 남모를 눈물과 땀이 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외신들은 한국 여자축구를 '기적의 4강'이라고 합니다. 한국
여자 축구선수 숫자가 1404명 밖에 안됩니다. 독일 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선수는 무료 105만명이나 됩니다. 우리 선수층은 수치만 비교하면 독일에 비해 0.004% 밖에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한국이 4강에 진출했다니 기적이라 할 것입니다.

"남자에 비해 인기가 없다 보니 우리 경기는 (방송사가) 생중계가 아닌 녹화로 보여줍니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설움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이번 대회가 너무 중요합니다." (최인철 감독)

무관심과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여자 축구는 승리와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녹화가 아닌 생중계를 해줄 것입니다. 언론도 국민들도 이제는 여자축구를 응원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 지소연이 함께 할 것입니다. 김연아의 금메달 감동 보다 더 눈물나는 지소연의 감동 스토리인 이유입니다. 지소연의 독일전이 기대됩니다. 여자 축구가 내친 김에 독일을 꺽고 결승에 진출해 우승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지소연 미니홈피 대문글 '여자축구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처럼 평소에도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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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없이는 대표선수마저도 될 수 없었다고 생각해요. 월드컵 출장이 결정되고 곧바로 전화를 했어요. 그랬더니 감격으로 서로 말이 안 나와, 대화가 되지 않았어요."

정대세가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이 결정된 후 가장 먼저 기쁨을 알리기 위해 전화 통화를 한 사람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습니다. 정대세에게 있어 어머니는 정신적 지주이자 가장 열성적인 팬이었습니다. 정대세가 세계적인 스트라이커로 성장하기까지 어머니의 희생과 헌신은 절대적이었던 것입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 G조 예선 브라질과의 첫 경기에서 정대세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현지 경기장에서 직접 열렬한 응원을 하던 어머니도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대세의 형인 정이세는 모 인터뷰에서 동생의 눈물은 '한국 국적이면서도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어야 하는 일본의 재일동포3세의 설움과 현실'도 작용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정대세 선수의 인생역정을 통해 일제시대 이후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서글픈 역사를 고스란히 알게 됐습니다. 정대세의 조선인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강제 이주 이후 일본 나고야에서 부당한 차별과 핍박을 견디며 그대로 살게 되었고 한국 국적을 이어받은 아버지는 조선 국적의 그대로 보유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일본은 북한과 국교관계가 아니라 북한 국적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합니다.

정대세의 불꽃투혼과 영광을 이끈 어머니가 월드컵 현지 응원에 직접 나서고 있다 

정대세를 비롯 형과 누이는 일본과 외교관계가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서 한국 국적을 갖고 있습니다. 즉, 정대세는 다른 북한 선수들과 달리 한국 국적을 가진 재일교포 3세입니다. 정대세는 중국 언론이 보도한 글 속에 불행한 우리나라 근현대사 역사의 아이러니가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일본인이면서 일본인이 아니다. 한국인이지만 북한 국가대표팀을 위해 봉사한다. 북한팀 선수지만 일본에서 생활한다. 이 모든 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를 이해할 수 없게 한다'


독일과 예멘이 과거 분단국가였으나 지금은 통일된 하나의 조국을 갖게 되었지만 유독 우리 민족만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된 채로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는 유일의 분단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정대세는 겉으론 눈물을 흘린 이유를 '최고의 월드컵 무대에서 세계1위의 브라질팀과 경기를 하게 돼 기뻐서'라고 했지만 마음 속에서는 설움과 역경 속에서 재일동포 3세로 살아가며 느꼈던 분단된 조국의 비애와 일본인으로 사는 남북한 사이 경계인의 고뇌가 함께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감수성 풍부한 소년 정대세, 경계인으로 삶과 정체성의 혼란

정대세는 어린 시절부터 정체성의 혼돈을 많이 격어야 했습니다. 가족사 자체가 곧 혼란이었을 것입니다. 정대세는 감수성이 풍부한 소년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눈물이 유난히 많은 것도 그의 정체성과 닮아있는지 모릅니다. 울보이지만 결코 축구 경기에서는 야생마나 인간 불도저와 같은 모습으로 쓰러지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그의 진가를 발휘했습니다.

그런 정대세의 투혼과 영광 뒤에는 항상 어머니 리정금 씨가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린 정대세가 일본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 남게 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상류층이 다니는 유치원에 정대세를 입학시켰습니다. 정규 교육도 일본 학교가 아닌 일명 '우리학교'에 보냈습니다. 학비가 매월 2만엔(20만원) 남짓한 정도로 만만치 않았지만 정대세를 포함한 누이와 형 등 삼남매를 위해 '우리학교' 12년 교육과정에 보내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감수성 풍부한 소년 정대세는 울보였지만 자신의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정대세의 아버지 정길부씨는 건축 관련 일을 하고 있지만 풍족한 생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정대세가 어릴 적부터 좋은 교육을 받도록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피아노, 수영 등을 배우게 하며 다양한 능력을 키우도록 헌신적인 교육을 했습니다. 교육에 온 정성을 기울이는 우리나라 전통의 어머니상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학교는 일본 학교에 비해 절반 정도 크기의 열악한 운동장이지만 정대세는 거기에서 축구도 배웠습니다.

'사회에 큰 사람이 돼라'는 의미, '대세(大世)'라는 이름

정대세의 이름도 큰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회에 큰 사람이 돼라'는 의미로 '대세(大世)'로 부모가 직접 작명했다는 것입니다. 정대세는 이름처럼 세상의 큰 사람이 된 셈입니다. 아들 정대세를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하며 살아 온 어머니의 삶은 진한 감동을 줍니다. 눈물겨운 어머니의 삶이었기에 정대세도 늘 어머니를 이야기합니다. 정대세는 자신을 키워내기 위해 어머니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입버릇처럼 말해왔다고 합니다.

마치 한국계 미국 프로풋볼 선수 하인스워드의 어머니의 감동적인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정대세는 그런 어머니였기에 월드컵 본선이 결정된 순간에 대해 친구로부터 어머니 이야기를 듣고 순간 또 울어버렸습니다. 친구가 전한 이야기는 월드컵 본선행이 결정되자 정대세의 어머니는 울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듣고 저도 울어버렸어요. 그때부터 몇번 울었는지 몰라요. 10분 간격으로 울고 있었어요."

추성훈처럼 유명해지고 싶다는 신세대 재일동포 3세의 꿈

그런데 정대세는 한편으로 신세대다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과거 모 인터뷰에서는 '추성훈처럼 한국에서 유명해지고 싶다'는 바람을 피력한 적도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확실히 정대세는 한국에서도 유명 인사 반열에 올랐다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중국 언론에서는 정대세가 명차 수집을 즐기며 음악듣기를 좋아하고 패션과 헤어스타일에 각별히 신경쓴다고 합니다. 특히나 쇼핑과 스키를 즐기는데 한국 미녀에게 장가가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고 합니다. 

일본 프로축구팀에서 평상시 선수생활을 하지만, 월드컵에서는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면서도 한편으로는 한국에 대한 동경도 함께 갖고 있는 경계인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정대세는 국적의 한계를 뛰어넘어 살아야 하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당당하게 운명과 맞서 싸우는 '아름다운 청년'인 것입니다. 정대세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자신의 매력에 대해 "역시나 축구하는 모습이 아니겠냐"고 했듯이 말입니다.

또한, 정대세의 가슴에는 뜨거운 조국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정대세는 상해에서 열린 월드컵 예선 남북대결 1차전에서 뜨거운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 후 정대세는 서울 상암경기장에서 벌어진 2차전에서 "많은 생각이 떠올랐지만 일본에서 온 내가 북한 대표팀으로 한국에서 뛴다는 의미를 생각하니까 눈물이 나올 뻔 했다"고 당시 심정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정대세에게 조국은 정체성의 혼돈일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조국은 존재합니다.

정대세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일까요? 정대세에게 있어 "조국은 나를 키워준 나라"라는 것입니다. 즉, 정대세는 '자신을 키워준 일본, 한국, 조선은 모두 조국'이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당시 정대세는 "서울에서 묵는 동안 삼엄한 경비와 단절된 남북관계에서 아직도 통일까지는 멀다는 생각에 슬펐습니다. 스포츠로 통일의 한걸음이 되고 싶습니다"는 말이 요즘의 우리들에게 더 울림을 주는지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시절 작문 '나는 장래 반드시 국가대표가 될테야'

정대세는 월드컵에서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로 뛰게 된 것도 운명이었습니다. 어쩌면 어머니의 국적 조선에 영향을 받았을 듯 합니다. 초등학교(소학교) 시절에 이미 정대세가 적은 작문은 '나는 장래 반드시 국가대표가 될테야.'였습니다. 어린 정대세의 꿈은 한결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국 국적이지만 한국을 몰랐던 고등학교 3학년 시절에 평양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그만 들뜬 마음에
"나는 꼭 조국대표가 돼서 여기(평양)로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선언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선택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야 했습니다.

FIFA에서 북한팀 선수로 뛰기 위한 조건으로 여권이 필요했다


그러나 정대세가 조선대학교를 졸업하고 J-리그 프로축구팀에 갈 때 까지도 한국 국적의 정대세가 북한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 길은 쉽지 않았습니다. 한국 국적의 정대세에게 북한과 국교가 없는 일본은 북한 국적을 허용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FIFA에 북한팀에서 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유권해석을 받았습니다. 하나는 다른 나라에서 국가대표로 뛴 경력이 없어야 하고, 여권 비자를 북한에서 발급받는 조건이었습니다. 마침내 정대세가 꿈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국가대표가 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월드컵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박지성을 존경하는 정대세, 꿈의 무대에서 어머니와 눈물

그렇다면 정대세는 박지성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정대세는 월드컵 예선 당시 모 인터뷰에서 "이전부터 저는 박지성 선수를 텔레비전에서 경기를 많이 보면서 팬이 됐어요. 그래서 박지성 선수의 동점골(북한팀이 월드컵 진출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예선전 한국팀과 다른 팀 경기에서 나온 골)에는 정말로 '고맙습니다'하고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월드컵에 출장하면 같은 조에 들어가지는 않겠지만 함께 조별리그를 돌파하고 결승 토너먼트에서 싸우게 되면 그 이상 기쁜 것은 없네요."라며 박지성에 대해 존경과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정대세는 월드컵 본선에서 죽음의 조에서 축구 강호들과 겨루게 됐습니다. 그것은 월드컵 본선 통과 직후 자신의 바람이었습니다. 정대세는 개인적으로는 월드컵에서 득점하고 어필할 수 있도록 하고 싶고 가장 기대하는 것은 '죽음의 조'에 들어가서 브라질 잉글랜드 네덜란드하고 맞서고 발버둥치고 싶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정대세는 브라질 포르투갈 등 최강의 우승후보들과 맞서 불꽃투혼을 불사르고 있습니다. 정대세의 인생이 순탄치 않았지만 결코 물러섬없이 불굴의 투지로 극복해 왔듯이 더 강해진 열정과 도전정신으로 이겨내고 있는 셈입니다.

J리그 가와사키 프로팀에서 정대세는(`ε´) 이모티콘으로 표현되며 큰 활약을 한다

감수성 풍부한 순수의 청년 울보 정대세는 자신을 잡초혼 덩어리라고 말합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투혼의 근간은 바로 잡초같은 자신의 인생과 꿈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재일동포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편견과 차별 속에 살면서도 아들을 위한 살아 온 어머니의 헌신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정대세 어머니 리정금 씨는 브라질전에서 아들의 눈물을 또 지켜보며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경기에 응원나오지 않으면 골을 넣을 수 없다고 울던 아들이가 세계 최고 월드컵 무대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모든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우리 민족의 어머니는 더 위대합니다. 정대세의 어머니도 국적으로 떠나 우리 민족의 어머니인 것입니다. 정대세의 눈물의 의미는 곧 어머니의 눈물입니다. 세상의 큰 인물이 돼라는 의미의 정대세라는 이름이 빛을 발하는 순간입니다. 스포츠를 통한 통일의 꽃을 피울 수 있는 정대세라는 의미도 있다 하겠습니다. 정대세를 불꽃 투혼과 영광으로 이끈 어머니가 있어 월드컵은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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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정대세 '한국팀 아르헨티니전 승리 기적을 응원하겠다'
정대세는 모 인터뷰에서 "축구를 하다보면 결코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상대도 열 번을 싸워 언젠가 한 번은 반드시 이길 수 있는 날이 온다. 바로 그 날이 한국에게는 오늘일지도 모른다. 스위스가 스페인을 이길 거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한국 선수들도 그 기량을 놓고 본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그리스와의 경기를 통해 대단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는가. 나 또한 한국의 선전을 응원하겠다"며 한국팀이 아르헨티나전에서 승리의 확신과 응원을 다짐했습니다.

아울러, "박주영-정대세 투 톱이 서는 팀에서 뛰어보고 싶냐"는 질문에는 "너무, 너무 뛰어보고 싶습니다"고 주저하지 않고 솔직담백하게 답변했습니다. 박지성 정대세 등 남북한 선수들이 함께 뛰는 환상의 드림팀이  나올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기죽지 않고 당당한 정대세, 그를 보면 '피는 물 보다 진하다'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한 민족으로서 정대세에게 정이 가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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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세 선수를 보면 수많은 상념이 스쳐지나갑니다. 하나의 민족이지만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와 조국의 설움을 고스란히 안고 사는 한 인간에 대한 고뇌인지도 모릅니다.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인데도 같은 민족끼리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싸우는 현실이 안타까움을 더해가는 시대. 그러나 그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스포츠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는 정대세가 있었던 셈입니다.

남북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 유지와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조장하는 전쟁과 대결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순수한 스포츠정신과 월드컵정신 앞에서는 허상과도 같습니다.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는 위정자들이 나쁜 것입니다. 인간 본연의 휴머리즘 속에서 오직 축구를 향한 열정의 화신 정대세를 생각해 봅니다.

남아공올림픽 G조 예선 첫 경기에 나선 북한의 정대세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대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대세는 경기장에 들어설 때부터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경기장 그라운드에 일렬로 나란히 섰습니다. 식전 행사가 시작되고 북한의 국가가 연주되었습니다.

국가 연주가 울려퍼지자 정대세는 또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양쪽 볼에 흘러내렸습니다. 경기장내 대형 전광판 화면에 정대세의 눈물이 그대로 비추어졌습니다. 수많은 관중들도 순간 멈칫 했습니다. 유독 짧게 자른 빡빡 머리의 남자는 사람들의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한 남자의 눈물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정대세 선수의 앞에 서 있던 남아공 어린이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심전심일까? 정대세의 눈물은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 속에도 그대로 함께 투영돼 눈물을 쏟아내게 했던 것입니다.

정대세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요?

정대세가 눈물은 한 축구 선수의 꿈이었습니다. 월드컵이라는 최고의 축구 무대에 선 남자의 각오이자 의지 그리고 열정과 자부심이 눈물로 승화된 것입니다. 어쩌면 굴곡진 축구 인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눈물이 아닐까 합니다. 재일교포 3세인 정대세는 원래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대세는 조총련계 학교에서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정대세는 2006년 북한 축구 대표팀이 일본에게 패한 것을 지켜본 뒤 북한대표팀에 합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66년 월드컵 8강 신화의 북한 축구팀이 일본에게 무참하게 패배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정대세에게는 한국 국적이라 하더라도 북한도 하나의 조국이었던 것입니다. 정대세 자신이 힘을 보태 또 다시 월드컵의 영광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결국 정대세는 J-리그에서 쌓은 실력과 강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북한을 44년만에 월드컵에 출전시키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북한이 44년만에 다시 월드컵 무대에 등장한 것입니다. 거기엔 정대세란 이름이 함께 있었습니다.

정대세는 브라질과의 첫 경기를 마친 후 말했습니다.
"드디어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해 감격했고 그래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축구를 시작할때 부터 이 날을 상상해 올 정도로 대단한 대회입니다. 그러한 무대에서 브라질이란 세계 최고의 팀하고 경기할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정대세는 축구가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정대세가 꿈꾸었던 것은 월드컵 무대에서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대세는 자신이 선망했던 세계 최강의 팀인 브라질과 처음으로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축구 무대에서 최강의 팀과 경기를 펼치고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대세는 감격스런 일이었습니다. 정대세의 눈물의 기쁨과 환희의 눈물인 셈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 선 선수에게 나타난 불굴의 스포츠정신의 발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대세의 눈물을 보면서 문득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 여자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끝마친 후 흘리던 눈물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 결국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 무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김연아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김연아는 스스로 최선을 다했기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감격과 환희의 눈물이었습니다. 자기 자신과 투쟁에서 승리했고 최선을 다했기에 그것만으로 그 동안 훈련과정의 고통은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의 눈물은 자연스럽게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김연아의 눈물과 정대세의 눈물은 그런 점에서 서로 닮아 있습니다. 최고의 무대를 행해 누구나 꿈을 꾸지만 아무나 그 곳을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김연아와 정대세는 그 꿈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고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김연아와 정대세는 더욱 더 불굴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김연아가 최선을 다해 노력한 과정을 알고 있기에 사람들이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듯이 정대세가 눈물을 흘린 의미 또한 이심전심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정대세가 브라질의 미남 선수 카카와 정다운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정대세는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 영어, 포르투갈어까지 여러 국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브라질 취재 기자들이 정대세를 붙잡자 그냥 멈춰섰고 물 흐르듯이 대화를 나누고 역으로 질문까지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고 합니다. 정대세는 브라질과 G조에 편성되자 마자 자기 소속팀인 일본 프로축구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뛰는 브라질 선수를 통해 포르투갈어를 집중적으로 익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정대세는 축구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공부를 비롯한 여러 면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범적인 선수임에 틀림없습니다. 

정대세의 북한팀은 세계최강 브라질과 맞서 멋진 경기를 펼쳤지만 아쉽게 2대 1로 패했습니다. 정대세는 후반 44분 지윤남에게 헤딩 패스 어시스트를 통해 북한팀의 1골을 만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북한팀이 브라질과도 투지넘치게 경기를 펼친 것을 보고 진정한 스포츠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1차전에 승리했듯이 북한도 승리하기를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브라질은 너무 강한 팀이었습니다. 비록 북한이 졌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정대세는 경기 후 브라질과의 경기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이 곳에서 골을 넣고 승리를 이끌자고 생각했는데 그걸 못해서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16강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은 이기겠습니다"


죽음의 조로 불리는 G조에서 북한의 정대세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됩니다.
정대세의 좌우명은 '승리를 스스로 믿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라고 합니다. 정대세가 믿는 승리와 눈물의 의미가 감동스러운 이유입니다.

[추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인 듯 하여 액션가면님이 댓글로 남긴 글을 공유합니다

<어제는 6.15 남북공동선언 10주년이었지만 남북 전쟁 위기 정국으로 인해 조용히 지나간 듯 합니다. 남북한 축구팀은 5년전 서울 상암축구경기장에서 하나된 조국과 평화통일을 위해 친선경기를 했습니다.>

6.15 선언 10돌을 맞는 어제 6.15공동선언문의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냉대받고 있는 민족적 기념일이 가슴아팠습니다. 4년전 6.15를 기념하기 위해 광주월드컵 경기장에서 남한과 북한의 친선경기가 있었는데, 그때 풍물놀이 한마당처럼 신명나게 남북을 함께 응원했던 기억이 바로 엊그제만 같습니다.

연일 천안함 관련해서 북한을 주적으로 몰아가는 언론과 곧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불안을 조장하는 정부를 보면 정말 통일이 올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정대세선수의 눈물은 그래서 더 가슴아픕니다. 제일교포3세로 힘들게 자랐을 그를 위해 한국이 한 일이 뭐가 있을까요? 그가 민족적 아픔을 고통스럽게 안고 살아가야 했던 그 시간동안 한국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다들 말로는 하지 못하지만 그 눈물을 본 우리들은 모두 북한이 선전하기를 그가 흘린 눈물과 땀이 뜻 깊은 결실을 얻기를 가슴으로 응원할 것입니다.

[참고] 정대세는 박지성 선수를 존경한다고 합니다. 정대세는 2022 월드컵 유치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정대세는 영국 언론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만약 월드컵 경기가 (서울과) 평양에서도 열릴 수 있다면 그건 우리의 원대한 꿈.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남북의 정치적 봉합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스포츠는 남북을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남북 공동 월드컵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된 조국과 평화를 원하는 정대세의 또 하나의 꿈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축구로 하나되는 월드컵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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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의 피겨여왕 대관식은 감동과 눈물의 연속이었습니다. 세계 언론이 하나같이 김연아의 금메달 소식에 최고의 찬사를 보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시를 썼습니다. 이 세상에 언어가 생긴 이래 어떤 미사여구를 쓰더라도 표현할 수 없는 피겨여왕의 자태였기 때문입니다.

소위 강심장으로 알려진 김연아가 무려 세번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심장이 멎는 듯한 순간을 지켜본 국민들도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눈물을 전염되는 것일까? 김연아의 눈물에 그녀를 응원하던 세계인들도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감동은 김연아의 눈물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김연아는 왜 세번의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 감동의 순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부담감을 떨치고 스스로 해냈다는 안도와 환희의 눈물

온 국민의 기대 속에서 올림픽 무대에 선 김연아. 만 19세 소녀의 두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감과 중압감은 엄청났을 것입니다. 어린 나이에 스케이트화를 신고 빙판을 달리고 넘어지기를 얼마나 반복했던가. 오직 올림픽 챔피언, 금메달을 향해 달려왔던 인생이었습니다. 생애 최고의 순간입니다.

                           김연아는 경기 후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김연아는 홀로 외롭게 올림픽 은반 위에 섰습니다. 이 순간 만큼은 오직 자신만을 믿어야 합니다.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온 국민들도 숨을 멈추고 정적의 시간이 흐릅니다. 심장이 멎는 듯한 순간입니다. 이내 김연아는 빙판 위를 날아 오릅니다. 그렇게 4분 7초가 환상의 꿈을 꾸듯이 조지 거슈윈 피아노협주곡 F장조 선율에 따라 지나갔습니다.

자신의 연기를 끝낸 김연아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제 무거운 부담감과 중압감의 짐을 내려놓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김연아 자신이 스스로 해냈다는 안도와 환희의 눈물이기도 했습니다.

김연아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왜 눈물을 흘렸는지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대회에 나가면서 다른 선수들이 우는 모습을 자주 봐왔지만 왜 우는지 궁금했어요. 난 이번에도 울지 않을 줄 알았어요. 아마 해냈다는 생각이 들어 속이 시원해져서 눈물이 저절로 나온 것 같아요. 그리고 아빠가 직접 와서 보신 적이 거의 없었는데, 부모님 앞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서 좋았어요. 평생 꿈꿨던 올림픽에서 잘해내 기쁩니다. 부모님께 감사드립니다."

                      '생애 최고의 순간' 두 손을 높이 들고 환희를 느끼고 있는 김연아 모습

아무리 강심장이란 세간의 평가를 받던 김연아도 천상 마음여린 19세 소녀였습니다. 아빠와 엄마 앞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줘 기쁜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평생 꿈꾸어 왔던 올림픽 무대에서 자신의 연기를 퍼펙트하게 끝낸 것이 스스로 대견했을 것입니다. 그 동안의 고된 훈련과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이제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낸 승리의 순간이 소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더 감동적인 것은 김연아가 눈물 속에서 미소를 잃지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의 미소였습니다.

어머니 잃은 로셰트의 눈물을 함께 나눈 천사 김연아의 눈물

피겨여제 김연아는 또 한번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눈물은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경쟁자인 로셰트 선수를 위한 눈물이었습니다. 로셰트가 눈물을 흘리자 김연아도 조용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로셰트는 여자 피겨 스케이팅 경기가 열리기 이틀 전 외동딸의 모습을 보기 위해 밴쿠버로 왔던 어머니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운명을 달리 한 비운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충격적 소식에 로셰트는 쇼트 프로그램 조추첨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슬픔이 컸습니다. 그리고 로셰트는 눈물을 머금고 빙상장 위에 섰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를 위해 눈물의 질주를 했습니다.

로셰트는 슬픔의 연기를 끝내고 끝내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김연아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습니다. 항상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의 김연아에게 따뜻한 인간미와 아름다운 마음씨가 언제나 함께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경쟁자이지만 로셰트의 아픔을 함께 슬퍼할 줄 아는 김연아. 그녀는 천사와 같았습니다.

로셰트는 동메달이 확정된 후 말했습니다. 모두가 숙연해 졌습니다.
"자부심을 느껴요. 엄마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됐어요. 어머니께 메달을 받치고 싶습니다"

피겨여왕 김연아는 단지 실력만 최고인 것이 아니라 마음도 천사였습니다. 천상천하 연아독존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기쁨과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인간적 매력도 어느 누구 보다 훌륭했습니다. 세계인들 모두가 인간 김연아에게 찬사를 보내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대관식 시상대에서 태극기를 보면서 눈물 흘린 피겨여제 김연아

드디어 피겨여왕의 등극을 알리는 대관식이 열렸습니다. 올림픽 빙상장 시상대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른 김연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과거 라이벌로 남은 일본의 아사다 마오는 눈물을 감췄지만 어두운 얼굴빛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피겨여왕 김연아는 시상식 무대 위에서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이내 태극기가 하늘 높이 올라가고 애국가가 온누리에 퍼졌습니다. 작은 목소리로 애국가를 따라부르던 김연아는 어느새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있었습니다. 김연아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습니다. 태극기가 거의 다 올라갈 무렵, 김연아는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온 국민은 김연아의 눈물에 또 한번 감격의 순간을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에게는 피겨여왕이기에 앞서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이 있었습니다. 단지 금메달 하나가 아니라 김연아에게는 세계최고 무대에서 자랑스런 조국에 영광을 바치고자 했던 셈입니다. 갸냘픈 소녀가 지금껏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역사와 전설을 만들었습니다.

피겨여제 김연아는 그 자리가 자기 자신의 영광만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들의 영광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습니다. 김연아의 눈물이 국민들의 가슴에 강하게 울림을 주는 이유입니다.

김연아가 대한민국 국민들을 울고 웃게 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감동과 눈물의 여운이 가득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행복한 시간들입니다. 김연아가 세번의 눈물을 흘리는 각각의 장면은 무엇보다 감동적이었습니다. 우리는 김연아의 눈물을 통해 감정이입이 되었고 또한 눈시울을 적시며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김연아의 눈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감동과 행복의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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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블로그 세상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지난 5년간 블로그를 운영해오신 파워블로거 미디어몽구님이 대한민국 블로그 어워드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을 밝히다가 눈물의 절규를 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미디어몽구님은 수상수감을 하려다 그 간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라 그만 감정이 북받쳐 올라 왔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시사블로거 너무 힘들어요."라는 짧은 말을 던지고 눈물을 왈칵 흘리고 말았습니다. 어쩌면 짧은 한마디 말이지만 그 속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있는 감동의 수상소감이 되었습니다.
[참고 글] 시사블로거 몽구는 왜 눈물을 흘렸나

저는 미디어몽구님을 모르지만 블로거의 한 사람으로서 깊은 위로와 함께 스스로 반성을 하게 됐습니다. 비록 시사블로거는 아닐지라도 무엇인가 잘못된 것을 지적하지 못하고 바람직한 방향도 제시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항상 현장을 뛰어다녀야 하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인 시사블로거들의 현실을 외면한 것은 아닌가 싶어 마음이 우울했습니다. 그리고 시사블로거들의 글에 추천 한방이나 댓글 하나라도 작은 보탬을 드리지 못한 것도 반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사실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미네르바 사건을 비롯하여 네티즌과 블로거에 대한 전방위적인 탄압이 자행되어 왔습니다. 거기에는 검찰과 경찰을 비롯한 정부 산하 각종 사정기관의 공권력이 동원되기도 했습니다. 진정 민주주의 국가라면 개인이 자유롭게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피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정부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장이나 의견을 귀담아 듣고 개선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현실을 보면 현 정부는 국민의 의견에는 귀를 막고 오히려 탄압을 하려는 권위주의적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소통은 없는 불통공화국이란 말이 새삼스럽지 않습니다.
 

아울러, 인터넷 세상을 악용하는 포털 네이버의 천민자본주의 행태입니다. 국내최대 포털인 네이버는 애초부터 독점적 지위를 악용해 네티즌을 가두리 양식장처럼 가둬두고 트래픽을 이용한 돈벌이 장사에만 혈안이 되어 왔습니다. 사회적 책임이나 바람직한 인터넷 문화를 통한 국민적 의식 발전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였습니다. 과거 '네이버는 평정됐다'고 말한 한나라당 의원의 말이 네이버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네이버에 검색어를 보면 온통 연예인 이름이나 그들의 가십만 가득합니다. 물론 다음이나 다른 포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네이버가 가진 책임의 무게를 생각하면 네이버가 코묻은 아이들 돈만 빼먹고 돈벌이에만 주력하면서 사회적 역할에는 미온적인 퇴폐적 천민 자본주의는 비판받아 마땅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음이 다음뷰나 아고라와 같은 소통과 토론의 장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입니다. 그렇지만 다음은 블로거뉴스를 다음뷰로 개선하면서 다소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당초 첫 카테고리에 포진했던 시사 소식을 뒷쪽으로 재배치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현 정부 비판 글이 많은 시사 소식을 노출이 잘 안되는 곳으로 배치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음뷰는 연예 소식의 블로그가 완전 점령해 버렸습니다. 다음 첫 페이지 다음뷰 메인 화면은 연예인이나 연예가 소식이나 감상평이 계속 노출되면서 시사 소식은 찬밥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입니다. 연예 소식도 좋습니다. 그렇지만 시사 소식도 공평하게 노출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한 대목입니다. 권력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다음의 입장도 이해하지만 최소한 공정한 노출은 필요합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 대중들의 현실도피 의식인 것 같습니다. 지난 촛불시위 이후 시민들은 대의 보다는 팍팍한 현실에 매달려 살아야 했습니다. 권위주의 시대에는 숨죽여 살아야 한다는 일제 순사 시대 이후 몸에 밴 굴욕의 피가 우리 국민들에게 흐르는지 모릅니다. 저 또한 어린 시절부터 울음을 그치게 하는 할머니의 방법은 "울면 순사가 잡아간다"였습니다. 순사는 무서운 존재로 각인돼 있었습니다. 2010년의 현실도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습니다. 경찰이란 이름으로 변했지만 정부에 비판하면 순사의 역사와 궤적을 같이 하는 경찰이 잡아갈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권위주의 시대 학습효과인 셈입니다.

완장을 찬 사람들이 활보하고 다니면서 사람들을 겁박하기도 합니다. 이 또한 순사와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시민들을 위축시키고 아예 정치나 시사에 무관심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막장 드라마에 심취하고 연예인 신변잡기에서 위안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습니다. 그것은 전두환 군사독재시대의 3S정책을 떠올리게 합니다. 국민들을 우민화 시켰던 3S(Screen, Sex, Sports) 정책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3S 정책에 하나 더 인터넷(Internet)이 포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대중 우민화 3S+I 정책인 셈입니다. 포털의 메인 화면에는 온통 연예인 소식이 낚시질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이버 메인을 보면 뉴스캐스트로 변했지만 언론사들이 트래픽 장사하느라고 연예인의 소식이나 노골적 음란 소식을 낚시 제목으로 달아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시대적 사명과 역할을 다하기 위해 자존심을 지키던 기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습니다. 언론사 사주의 노예가 되어 봉급쟁이로 전락한 소시민 기자들이 안타깝습니다. 

모든 일련의 일들이 미디어몽구님의 눈물과 절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아직도 깨어있는 시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하나 블로그 세상이 다소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지만 그 바탕에는 깨어있는 의식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를 비롯한 여러 블로거들이 시사 블로거들에게도 더 관심과 애정을 주어야 겠습니다. 시사블로거들도 다소 소통에 인색한 점은 없는지 그리고 보다 친근하게 다가설 방안은 없는지 되돌아보고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 발전해 가야 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블로그 생태계가 아닌가 싶습니다. 사람이 편식하지 않아야 몸 전체가 건강하듯이 블로그 세상도 편식하지 않고 골고루 발전하는 건강한 생태계의 길을 모색했으면 합니다. 블로그 세상이 서로 따뜻한 정이 흐르고 다양한 생각의 블로거들이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합쳐 노력했으면 합니다.
 
바람직한 인터넷과 블로그 문화를 위한 5가지 제언

- 대중 우민화의 근원인 포털의 검색어를 폐지하자
- 다음 첫 페이지 다음뷰 메인에 시사를 포함 공평하게 노출시키자
- 시사 블로거 글에도 관심과 애정을 갖고 추천이나 댓글을 달아주자
- 블로그 생태계 발전을 위한 블로거들의 아이디어를 모아 실천해보자
- 인터넷 생태계의 포식자 네이버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문제 제기와 변화를 촉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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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대개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 오면 TV에서 흘러나오는 장면은 '지붕뚫고 하이킥'입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이 가장 좋아하는 프로가 '지붕뚫고 하이킥'이기 때문입니다. 중간부터 방송을 시청하게 돼 전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이번에는 신세경이 윤시윤(준혁 역)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해주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연주하는 장면을 보던 둘째 딸과 아내가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 
"눈물 흘리면서 어떻게 피아노를 치지?"
"왜 눈물 흘리며 피아노를 못치겠어. 칠 수도 있지."

사실 둘째 딸은 피아노 연주를 좋아하고 잘 치는 편입니다. 아마도 눈물 흘리며 피아노 치는 신세경의 모습이 신기해 보였거나 윤시윤과의 풋풋한 사랑(?)이 재밌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신세경이 친 피아노 연주곡은 알고보니 '리버 플로우스 인유(River Flows In You)'라는 곡이었습니다.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던 이루마의 연주곡이었습니다. 피아노곡을 한글로 풀이하면 '강은 당신 안에 흐른다'는 뜻 정도가 될 듯 합니다. 사람 마다 사랑이든 추억이든 여러가지 상념이 들게 하는 곡이었습니다. 약간 슬픈 사랑 곡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피아노 치던 CEO가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신세경이 윤시윤을 위해 갑자기 피아노 연주를 한 이유?
 
사실 신세경이 피아노를 연주한 이유는 윤시윤의 생일 기념으로 함께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지키지 못했고 생일선물로 산 컵 마저 깨져버려 미안한 마음에서 였습니다. 그 전에 신세경은 최다니엘(지훈)의 병원에 들렀다가 최다니엘이 동료들에게 자신을 '가정부'라고 말하던 모습을 우연히 엿듣고 놀라 급히 자리를 옮기다 최다니엘이 준 빨간 목도리를 잃어버린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신세경이 오지않아 병원에 들렀던 윤시윤도 우연히 신세경이 최다니엘을 향한 슬픈 짝사랑을 보게 됐습니다. 윤시윤도 신세경을 짝사랑하는 마음이 슬픈 눈빛으로 변했습니다. 

신세경은 윤시윤과 서로 아무 말없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피아노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신세경은 윤시윤에게 이렇게 말하며 눈물의 피아노 연주를 합니다.
"생일 축하한다. 지금 해줄 수 있는 게 이것 밖에 없어." 

저는 신세경의 피아노 연주를 보면서 한 분이 생각났습니다. 예전 제가 모시던 사장님이었습니다. 직원들과 함께 불우이웃돕기 바자회 행사를 하던 때 였습니다. 대표이사 CEO인 사장님은 바자회 행사를 자원한 직원들과 열심히 물건을 팔며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이 지긋한 50대 나이의 사장님이 피아노 연주한 까닭?

그런데 그 행사 매장에는 피아노 한 대가 있었습니다. 사장님은 갑자기 피아노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손님들과 직원들을 향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여기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여러 분들을 위해 피아노 연주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다정다감하면서도 열정을 가진 사장님이었습니다. 한 밤 중에도 직원이 전화해 고민이 있다고 하면 술자리를 찾아 소주 한잔을 기울일 수 있는 분이었습니다. 그런 사장님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을 처음 보게 됐던 것입니다. 50대 지긋한 나이의 사장님이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란 감동적이었습니다. 제가 난생 처음 본 피아노 치는 사장님이었습니다.
   
                       피아노 연주하는 신세경의 모습을 지켜보는 윤시윤이 애처롭게 보인다

직원들은 사장님과 그 후에도 즐겁거나 괴롭던 일도 함께 이야기 나누며 편하게 소주 한잔을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한편으론 큰 형과 같고 다른 한편으론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느껴졌던 CEO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장님을 직원들은 너무나 좋아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난생 처음 목놓아 펑펑 눈물흘렸던 추억
 
그런데 사장님에게 불행이 닥쳤습니다. 안타깝게도 사장님이 갑자기 몸쓸 병에 걸린 것입니다. 게다가 희귀한 종류의 암이었습니다. 어떤 역경도 이겨내고 살아오셨던 사장님이었지만 희귀종 암은 이기지못하고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매일 장례식장을 지키고 사장님이 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눈물은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장님이 돌아가신지 한 달 정도 지난 때 였습니다. 회사 직원들과 함께 소주 한잔을 기울이는데 갑자기 눈물이 조금씩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엉엉 소리까지 났습니다. 소리를 내어 펑펑 눈물을 흘리는 저를 아무도 말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아마도 그 때서야 사장님이 돌아가신 것이 실감이 났나 봅니다. 함께 소주를 기울이던 사장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태어나 누군가를 위해 그렇게 펑펑 눈물 흘린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은 소주를 마셔도 사장님 생각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 만큼 익숙해진 일상이 되었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그런데 피아노 치는 장면은 여전히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신세경이 피아노 치며 눈물 흘리는 모습은 불현듯 사장님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피아노 치는 모습은 곧 사장님의 모습으로 생각나게 하고 신세경의 눈물은 바로 제가 흘린 눈물로 오버랩되어 스쳐 지나갔습니다. 얼마 후면 그 분의 기일입니다.
'피아노 치던 CEO, 사장님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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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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