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 해당되는 글 8건

  1. 2010.01.12 아름다운커피와 가게에서 만난 이웃 천사 3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79)
  2. 2009.07.19 여자친구가 맞선본다 했다, 어떡해야 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70)
  3. 2009.06.28 러브샷 5단계 대학 음주문화에 깜짝 놀랐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56)
  4. 2009.05.18 5.18 광주항쟁, 어머니와 친구의 그 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0)
  5. 2009.05.12 개그맨 노정렬 '반값 등록금' 1인 시위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46)
  6. 2009.02.25 인턴 면접에서 우는 대학생 탈락시켰더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53)
  7. 2009.02.21 졸업입학 선물 추천 베스트10 골라보자 by 진리 탐구 탐진강 (8)
  8. 2009.01.30 흉악범은 마스크써도 되고 시민은 안된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6)


우리들은 다양한 이웃들과 함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속담에 '먼 친척 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만큼 이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의미일 것입니다. 특히나 어려울 때 이웃이 진정한 이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참으로 어렵고 힘든 일도 많습니다.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모든 것이 낯설고 괴로울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군가 낯선 환경과 문화에 익숙하게 도와준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이는 온라인 세상도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 나이 마흔이 넘어 블로그를 한다는 것도 항상 모르는 것 투성이이고 아는 것도 금방 까먹고 헤맬 때가 간혹 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살만한 곳인 이유는 좋은 이웃들과 따뜻한 사람들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사람은 실수나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인간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실수나 오해가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어 진심이 곡해될 수도 있어 보입니다. 더욱이 블로그와 같이 서로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는 더욱 배려심을 갖고 신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블로그를 한지 1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무지나 순간의 착오로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사려깊고 따뜻하게 도움을 주는 이웃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언제나 변치않고 고마운 이웃들입니다.

자신이 안쓰는 재활용 물품으로 이웃을 돕는 '기증천사'

지난 연말에 아름다운가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습니다. 토요일 반나절 정도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물품 기증은 수시로 해오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은 활동천사 자원봉사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다는 즐거움도 있어 쉽게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아름다운가게의 모든 사람은 천사였습니다. 모든 이웃이 기부천사인 셈입니다. 무슨 말인지 감이 오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3가지 천사들에 대해 천천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아름다운가게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볼까요. 아름다운가게는 시민들로부터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기증받아 재생산하여 아름다운가게 매장에서 판매하고 그 수익금으로 주변의 어려운 이웃과 단체를 돕는 비영리 시민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가게를 처음 기획해 만든 분은 나눔천사 박원순 변호사입니다. 지난 2004년 처음 문을 연 아름다운가게는 이제 전국에 매장이 100개가 넘습니다. 생활 속 대중 기부문화인 것입니다. 박원순 변호사는 아름다운재단과 희망제작소도 설립한 분이니 1인 3역 이상을 하시는 듯 합니다.
  

아름다운가게는 대량 물품기증은 배달차량을 운행한다. 오른쪽은 매장오픈 전 기다리는 구매천사들

아름다운가게에는 3가지 천사가있습니다. 먼저 기증천사입니다.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재활용품 물건을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해주는 이웃입니다. 3가지 천사 중 기증천사가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직접 재활용 물건을 들고오는 분도 있고 기업이나 기관에서 직원들이 한꺼번에 모아서 기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은 생활 속 실천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셈입니다.

 
직접 매장에서 재활용품 판매를 위해 자원봉사하는 '활동천사'

작은 나눔이 모여 거대한 강물과 같이 넘실대는 곳이 바로 아름다운가게입니다. 그런 아름다운가게를 지탱해주는 근간은 풀뿌리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기증한 재활용 물품입니다. 기증천사들이 있어 아름다운가게의 생명력이 유지되는 셈입니다. 집안 정리를 할 때 안쓰지만 재사용이 가능한 옷가지나 책들 그리고 각종 물건들은 버리지말고 아름다운가게로 보낸다면 보람있는 기증천사가 될 수 있답니다. 물건이 많을 경우 아름다운 나눔보따리 배달천사 차량도 지원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름다운가게에서 공정무역으로 판매하는 아름다운커피 3가지 종류를 구입해 아내에게 선물했다

그 다음은 활동천사입니다. 직접 아름다운가게 매장에서 재활용품을 판매하는 자원봉사자입니다. 평일이나 토요일에도 아름다운가게에서 활동천사를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평일에는 일반 가정 주부들이 많지만 토요일에는 일반 회사원이나 대학생들이 활동천사로 많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난 어떤 활동천사는 회사에서 실시한 아름다운토요일 행사에 우연히 참여했다가 매주 토요일 마다 아름다운가게에서 활동천사로 몇년째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아름다운가게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판매를 합니다. 따라서 활동천사의 근무시간도 판매시간 동안인데 오전만 하거나 오후만 봉사할 수 있습니다. 저는 토요일 오전부터 오후 2시경까지 활동천사로 판매를 도왔습니다. 판매할 물품을 나르거나 매장에서 구매하는 분들을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다지 힘든 것은 없었지만 오래 서있다보면 다리가 좀 아플 수 있습니다. 거기서 만난 다른 활동천사 아저씨 아줌마들이나 대학생들을 보면 모두가 정말 천사같은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매장에서 여러 물건을 구입해 직접적으로 이웃을 돕는 '구매천사'

다음은 구매천사입니다. 아름다움가게 매장에 직접 나와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이나 상품을 구매하는 분들입니다. 저는 토요일 오전 9시 30분경부터 일찍 나와서 매장 오픈 준비부터 매장 청소, 디스플레이 등을 먼저 도왔습니다. 그런데 매장이 오픈되기 이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매장 입구에 줄지어 대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좋은 물건을 먼저 구입하기 위한 구매천사들입니다. 차가운 겨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거리에 줄 선 구매천사들을 보면 대단합니다.

아름다운가게의 물건이나 상품은 아주 싼 편입니다. 도서 책의 경우 500원에서 1000원 사이의 저렴한 가격대가 대부분입니다. 의류도 2천원에서 1만원 사이의 저렴한 가격대가 주류입니다. 전혀 입지않은 새 옷도 그대로 나와있는 경우가 많으니 잘 고르면 정말 땡잡을 수 있습니다. 어떤 아줌마 구매천사는 어디서 장사를 하시는지 장바구니로 몇개를 구매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아름다운커피 3가지 '히말라야의 선물' '안데스의 선물' '킬리만자로의 선물'은 제3세계를 돕는다

그 밖에도 구두, 모자, 악세사리 등 다양한 물건들이 있습니다. 토요일과 같은 시간에 가까운 아름다운가게 매장을 찾아보는 것도 알뜰쇼핑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보물을 만날 지 압니까? 대개 아름다운가게에서 적절한 분류를 통해 물건에 가격표를 붙여놨지만 간혹 터무니없이 싼 가격의 물건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불우이웃도 돕고 필요한 물건을 아주 싸게 구매할 수 있는 찬스인 것입니다.

커피 한 잔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름다운커피'

저는 아름다운가게에서 활동천사를 끝내고 구매천사가 되어 몇가지 물건을 구입했습니다. 무엇보다 의미있는 아름다운커피를 구매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발견하는 스타벅스나 커피빈과 같은 커피는 아프리카나 남미에서 헐값에 구매해 비싸게 팔아 막대한 이익을 착취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것이 공정무역 커피입니다. 제3세계 국가 농민들에게 적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또한 구매자에게는 저렴하게 파는 원두커피가 바로 아름다운커피입니다. 작년 무한도전에서 나온 적 있는 씽크커피(think coffee)가 아름다운커피와 비슷합니다. 아름다운커피 가격대는 5천원서 1만원 사이가 주로 있었습니다. 



'커피 한 잔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커피를 마시는 당신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아름다운커피 설명서를 살펴보니 거기 처음 나오는 카피가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다국적 로고 뒤에 숨겨진 생산자의 눈물을 아시나요?'로 시작되는 문구는 우리가 아무 생각없이 마시는 다국적 기업의 커피가 얼마나 불공정한 거래로 제3세계 생산자를 괴롭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커피는 착한 비즈니스인 공정무역은 물론  친환경 유기농으로 재배한다고 합니다. 더욱이 고산지대에서 자란 프리미엄 커피로 카페인이 적은 최고급 품질을 유지해 건강에더 좋습니다. 아름다운커피의 주산지는 네팔(히말라야의 선물) 우간다(킬리만자로의 선물) 페루(안데스이 선물)에서 재배한 커피를 생두를 직수입해 직접 한국에서 갈아 원두커피를 만들기 때문에 신선한 맛이 일품이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는 아름다운커피를 아내에게 선물했더니 시중에서 먹는 커피보다 맛이 좋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원두커피 애호가라서 맛을 잘아는 편입니다.
[참고]무한도전 '씽크커피'와 스타벅스의 차이는?

아름다운가게에서 반나절의 나눔 바자 행사에 참여했지만 기증천사부터 활동천사 구매천사까지 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가게에는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거기서 만나는 모든 이웃이 천사였습니다. 기증천사이거나 활동천사이거나 구매천사였습니다. 천사들이 돕는 따뜻한 세상은 바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이웃들입니다. 이 세상이 이 같은 천사들이 가득하다면 세상은 정말 행복할 것 같았습니다. 우리 이웃들 모두가 기부천사가 되는 세상에 가보지 않으시겠어요?

아름다운가게와 함께 아름다운 기부천사되는 5가지 방법
1.이사나 집안 방정리를 하여 나온 쓰진않지만 기증 가능한 물품은 기증한다.
2.기증가능한 물건과 기증방법(무료택배, 직접전달 등)은 홈페이지나 1577-1113을 통해 알아본다.
3.아름다운가게엔 옷과 책종류가 많다. 값싸고 질좋은 물건을 이번 기회에 구매해 보자.
4.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활동천사나 구매천사로 함께 참여할 기회를 만들어 본다.
5.아름다운가게는 없는 장소는 매장 기증천사으로 고향에 아름다운가게를 선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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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남자와 여자의 연애나 결혼에 있어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친구의 약 20년전 이야기입니다. A군은 군복무를 제대한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A군은 머리를 식히고 싶었습니다. 잡자기 어디론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역으로 가서 야간 기차를 탔습니다. 좌석은 매진되어 입석표였습니다. 빈좌석에 무작정 앉았습니다. 기차 창밖으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A군이 앉아있던 좌석의 곁을 한 여자가 잠시 주춤하다가 지나갔습니다. A군은 좌석의 주인이 나타난 것은 아닌가 가슴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당돌한 직장 여자와 대학 복학생, 기차에서 만나다

조금 후 지나갔던 한 여자가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창밖을 보고있던 A군에게 여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자리 있어요?"  
"모...르겠는데요."

A군은 앉았던 자리 옆의 책가방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놨습니다. 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몇학년?"
"삼~ 삼학년"

"몇학번?
"팔육 학번"

"나랑 같은 학번이네. 난 B양이야. 우리 친구하자. 넌 이름이 뭐니?"

당돌한 B양이었습니다. A군은 B양이 당돌하고 신기했습니다. 처음에 무뚝뚝하던 A군은 B양의 나긋나긋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A군과 B군의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둘 다 기차 입석표를 샀는데 좌석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A군과 B양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B양은 기차가 대전역 부근에 도착하자 우표 5개를 핸드백에서 꺼냈습니다.
"난 여기서 이제 내려야 해. 넌 의무적으로 나에게 우표 5개 만큼 편지를 해야 해."
"알았어. 잘 가"



서울의 A군과 대전의 B양은 그 후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A군은 학보가 나오면 편지를 함께 넣어 보냈습니다. B양은 자주 편지를 학교로 보냈습니다. 직장인이었던 B양은 주말에는 A군이 공부하던 대학 도서관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B양은 식사를 사주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A군의 B양의 호의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자신이 B양에게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A군은 4학년이 되었습니다. B양은 서울에 올 때 마다 A군이 공부하던 도서관에 나타났습니다. B양은 A군에게 늘 용기를 주는 말을 했습니다. A군은 B양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 시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A군이 노리던 정부투자기관 입사에 실패했습니다. A군은 입사를 하면 B양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군은 취업에 실패하고 다른 기관에 도전해야 했습니다. A군은 B양에게 미안했습니다. B양은 A군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A군은 대학 졸업 후에도 백수였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던 정부투자기관 시험에 낙방 후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실시된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B양이 대전에 잠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B양은 직장을 그만 두고 유치원을 개업하기로 했는데 개업 준비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던 A군은 B양의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과 부잣집 딸의 슬픈 이야기의 결말은?

그런데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 위해 A군이 가보니 B양과 그녀의 남동생 그리고 친척 동생들이 와 있었습니다. A군은 쑥스러웠지만 열심히 일을 거들었습니다. 저녁에는 B양의 남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B양과 저녁에 데이트를 했습니다. B양은 말을 꺼냈습니다.
"나 내일 선본다."
"그래."

B양이 선본다는 말에 A군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아직 백수인지라 B양을 위해 뭐라 해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B양은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B양과 남동생에게 별도로 아파트를 얻어주었습니다. 그 날 밤 A군은 B양의 남동생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A군은 대전역으로 갔습니다. A군이 떠나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역 앞에서 B양은 다시 말했습니다.
"여기 근처에서 선보기로 되어 있어."
"그렇구나. 좋은 사람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A군과 B양은 역에서 헤어졌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A군은 자신의 초라한 처지가 슬펐습니다. 그래서 B양의 맞선을 단념시키지도 못했습니다. A군은 서울에 올라 와 모 대기업 입사시험을 봤습니다. 대기업은 가기싫었지만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그 후 대기업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려고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군에게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그 우편물은 B양의 결혼식 청첩장이었습니다. A군은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B양은 그 당시 선본 남자와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B양이 선본다고 했을때 붙잡지 못한 자신이 후회되었습니다. 아직 백수인 자신의 입장에서 B양에게는 불행할 수도 있어 B양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직하면 B양을 다시 만날 것이라 다짐했었던 것입니다.

A군은 곧바로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 마지막 날이 B양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결혼식 장소가 수원이었습니다. A군의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A군은 퇴소식 날 고민했습니다. A군의 연수원 버스는 수원역에 내려주었습니다. B양의 결혼식을 곧 앞두고 있었습니다. A군은 결국 B양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운명은 그렇게 A군과 B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A군과 B양은 왜 결혼할 수 없었을까?
남자는 직장을 먼저 구해 여자친구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선보다는 것이 단지 미팅 정도로만 다소 가볍게 잘못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맞선본다는 고백이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해달라는 마지막 요청이었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남자는 자존심 상 초라한 자신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맞선본다고 했을 때 붙잡았어야 했지만 남자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그러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일구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적극적이고 당돌한 모습에 다소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한 남자와의 결혼이 사랑이 먼저일 것이지만 결국 현실 앞에 나약해질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바라보는 맞선의 차이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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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최근 대학생들과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겸한 모임이어서 소주 잔도 오갔습니다. 어떤 분이 소주와 맥주를 맥주잔에 섞은 서민(?) 폭탄주 일종인 '소맥'을 제조했습니다. 그리고 소맥 두 잔을 각각 두명씩에게 돌렸습니다.

폭탄주 한잔씩을 마신 후 모두가 즐거운 대화에 빠졌습니다. 그러다 다시 한번 폭탄주를 제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도 두 사람씩에게 술잔에 건네졌습니다. 대개 술잔을 건배하고 한번에 마시곤 했습니다. 그러던 중 남녀 대학생에게 술잔이 주어졌습니다. 그러자 대학생들이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러브샷, 러브샷, 러브샷"
"2단계, 2단계, 2단계"


어리둥절한 저는 옆에 앉아있던 여대생에게 물어봤습니다.
"2단계가 뭐예요?"
"러브샷 2단계는 서로 목을 감아서 마시는 거예요."

여러 사람들이 러브샷을 외치자 잠시 머뭇거리던 여대생이 말했습니다.
"그냥 러브샷 1단계만 할게요."

이내 남녀 대학생은 러브샷을 했습니다. 여학생이 더 적극적이고 남학생은 수동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러브샷 1단계는 서로 팔을 감고 마시는 방식이었습니다. 보통 일반적으로 러브샷이라고 알려진 것이었습니다. 요즘 대학생들도 러브샷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일반 성인들의 일부 음주 문화가 대학생들에게도 유행이라는 사실에 다소 놀랐습니다.

러브샷은 러브(Love)와 샷(Shot)이 만난 영어이지만 영어권 국가에는 존재하지 않는 콩글리쉬라고 합니다. 곡비즉진(曲臂卽盡 ‘서로 팔을 구부려 잔을 비우라’)이라는 글이 경주 안압지에 써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음주문화인 러브샷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현재의 러브샷은 지난 1980년대 지방의 기관장들이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면서 전국으로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 러브샷도 때와 장소와 사람을 가려가며 해야 한다고 충고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무리한 러브샷 시도로 인해 법원에서 강제 성추행 혐의로 벌금 300만원 판결이 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대학생들이 러브샷 2단계를 외치던 모습을 생각하니 대학가 음주문화가 궁금했습니다. 옆에 앉아있던 여대생에게 다시 물어봤습니다.
"요즘 대학생들도 러브샷을 자주 하나요?"
"가끔 술자리에서 러브샷을 해요."

"그렇군요. 대학생들도 러브샷을 한다니 흥미롭네요."
"러브샷은 5단계까지 있어요."

"5단계요. 처음 들어보는데요. 어떤 것인가요?"
"1단계 2단계는 아실 거구요. 3단계는 여자가 남자 무릎 위에 올라 앉아서 목을 감아서 마시는 거예요."

"(허걱) 그래요."
"4단계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입으로 술을 전달하는 거구요. 5단계는 서로 입으로 술이 왔다 갔다 오가는 거예요."

"정말요? 놀랍군요."
"실제로 4단계 5단계는 거의 안해요."

저를 비롯한 직장인들은 5단계의 설명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실제로는 4단계 5단계의 러브샷은 거의 없다고 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일반인들도 러브샷은 1단계나 2단계 수준 정도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은 더욱 폭탄주와 러브샷 문화를 진화(?)시켜 5단계까지 만들었다니 창의력(?)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1980년대 대학 시절과 비교해 보면 확실히 음주문화는 다른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러브샷이란 단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소주와 막걸리를 주로 마셨던 시절이었습니다. 1990년대 러브샷은 사랑하는 남녀 연인 사이인 경우 친구들이 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일반인들이 분위기를 좋게 하기 위해 남자들끼리 러브샷을 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러브샷 문화가 대학생들에게도 유행인 줄은 몰랐습니다. 서로 좋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데 있어 러브샷이 부정적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너무 과도한 경우는 오히려 눈살을 찌푸려지게 하기도 합니다. 러브샷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조심해야 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올바르고 건전한 음주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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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느덧 30년이 지났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그 날이 다시 오면. 그 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저는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큰집에서 기거하며 일찍이 서울 유학을 했었습니다.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에 총격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이웃 아줌마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은 민주화 인사들을 체포하고 스스로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올랐습니다.

장갑차와 군인들의 서울 입성,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저는 중학교를 가려면 늘 청와대 앞 길을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그 길에는 장갑차가 보였습니다. 완전 무장한 군인들도 보였습니다. 5월도 그랬습니다. 당시는 왜 군인들과 장잡차가 청와대 앞에 그토록 많이 지키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말이 없었습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저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1979년 전두환은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1980년 체육관에서 대통령에 오른다]

오월이 지나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큰집에 전남대에 다니던 친척 형이 올라왔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 형은 도무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큰집의 다락방에 늘 숨어지냈던 것입니다. 언제 닥칠지 모를 군인들의 검거를 피해 다락방에 하루종일 숨어있었습니다. 저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왜 그랬을까? 당시는 광주 지역 대학생이면 모두 잡아갔던 시절이었습니다.

문학소년이었던 착한 친구가 5월이 오자 눈물을 흘렸다

1980년대 중반, 저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전두환 군사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서야 1980년 5월 광주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가에는 소위 '짭새(비밀 경찰)'들이 출몰하던 시기였습니다. 대학생들은 군사 독재에 항거해 독재와 맞서 싸웠습니다. 항상 대학 캠퍼스에는 최루탄이 난무하고 백골단 특수경찰들이 교정에 난입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대학교 입학식 장에 최루탄이 날아들면서 대학 생활을 처음 시작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 5월 그 날의 광주 비디오도 처음 보게 됐습니다. 대학생들이 몰래 숨어서 비디오를 봐야만 했습니다. 언제라도 군사 정권은 대학생들은 강제로 잡아가던 살벌한 철권통치의 시절이었습니다. 군사정권에 항의하는 대학가의 시위는 5월을 맞아 치열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의 5월, 서울의 대학가는 광주출정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 1980년 그 시절에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항상 조용히 책만 읽던 문학소년이었습니다. 문인을 꿈꾸던 착한 친구였습니다. 대학가에 계속 되던 시위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던 친구였습니다. 그런 친구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1980년 당시가 떠올랐던 것입니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 항쟁이 전국적으로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친구는 1980년 5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리고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친구는 광주 시내에서 의료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그 당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했습니다. 어린 중학생의 눈으로 우리나라 군인들에게 의해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부상을 당해 피를 흘리거나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은 큰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몇 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이 오면서 조용하던 친구는 처음으로 시위에 나섰습니다. 전투경찰은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지 못하도록 대학들을 완전 봉쇄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전투경찰들의 포위망을 뚫고 서울 도심으로 진출했습니다. 군사독재의 타도와 민주주의를 목놓아 외쳤습니다. 군사독재에 대항한 전국 대학가 민주화 항쟁의 시작입니다. 
 
산골의 어머니를 찾아온 대학생들 '배가 고파요'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낭만이 아닌 시대적 갈등 속에서 보내고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일을 조금이라도 도와드려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대학생이 된 저에게 처음으로 1980년 어느 날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첩첩산중에서 농사를 짓고 사시는 어머니가 어떻게 1980년 5월을 알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철저하게 5월 광주는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진실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언론도 군사정권에 의해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어머니가 저녁 밥을 짓고 있는데 5~6명의 대학생들이 집에 찾아왔습니다. 허름한 복장에 몰골이 말이 아닌 젊은이들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배가 고픈데 밥 좀 주세요."
"젊은이들은 누구세요?"

"저희는 대학생들입니다. 광주에서 산을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학생들."

어머니는 그 대학생들을 통해 5월 광주에서 공수부대 군인들에 의해 자행됐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알게 됐던 것입니다. 대학생들은 당시 무장 군인들의 총칼로부터 살아남기위해 산등성이를 계속 걸어서 산골 마을까지 왔습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산골에 도착한 학생들은 무작정 마을 이장님 집을 찾아 밥 좀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1980년 광주, 공수부대원들이 한 시민을 곤봉으로 내려치고 있다]

어머니는 제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한번도 광주의 5월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생이 되고나서야 처음으로 그 당시의 대학생들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그 당시 대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 1980년 5월이 지나갈 무렵에 큰집의 다락방에 전남대에 다니던 친척 형이 숨어지내야 했는지, 친구는 그 당시 무엇을 목격했고 왜 눈물을 흘리는지 과거의 역사가 하나씩 조각이 맞추어지면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이미 30년이 지난 광주의 그 날 이야기로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치열한 1980년대 중반의 대학 시절을 보냈고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화를 쟁취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과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직장인입니다. 다시 5월 그 날이 오면, 지난 1980년 그 날에 대한 세가지 기억들이 오버랩되어 지나갑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5월 그 날의 역사입니다. 아직도 그 역사는 현재 진행행인지 모를 일입니다.

[참고 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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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등록금이 무려 연간 1천만원 시대에 들어섰습니다. 오늘 대학정보사이트인 대학알리미(www.academyin-fo.go.kr)에 등록된 결과에 따르면 올해 2009학년도 학생 1인당 연간 등록금은 영남대 대구 캠퍼스가 1040만원으로 가장 높았습니다. 그리고 대구가톨릭대 루가캠퍼스, 가톨릭대 성의교정, 명지대 자연캠퍼스 등이 9백만원대의 고액 등록금이었습니다. 

이어 성대 자연과학캠퍼스, 을지대 대전캠퍼스, 이대 본교, 숙대 본교 등이 8백만원대의 등록금으로 10위권의 불명예(?)에 포함되었습니다. 연간 대학 등록금이 1천만원 시대에 이른 것은 사회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학자금 대출 신용불량자 1만명 시대

연간 1천만원의 등록금이라면 4년간 4천만원 이상의 등록금이라는 단순 계산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대학 4년 동안 책값, 식사비 등 부대 비용까지 감안한다면 대학생 한 명을 졸업시키기 위해서는 집안이 휘청거릴 수준의 엄청난 비용이 소요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부익부빈익빈이 심화될 수 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대학 학자금 대출로 인한 신용불량자만 1만명이 넘어섰습니다. 대학등록금이 부족한 서민들은 빈곤의 악순환에 내몰린 셈입니다. 대학 교육에 대한 정부의 등록금 자율화 정책과 부자 사립 대학들의 돈벌이 수단화로 인해 대부분의 대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신음하고 있는 것입니다.

                             ▲ 대학생들이 눈물의 삭발식을 진행하는 장면


개그맨 노정렬 '반값 등록금 요구' 1인 시위 동참

이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청와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1인 시위는 3주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시위는 시민 사회 학생 학부모 등이 연합한 등록금넷(등록금 대책 네트워크)가 주도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그맨 노정렬이 다가오는 15일 청와대 앞 1인 시위에 동참한다고 합니다. 개그맨 노정렬이 1인 시위에 나선다는 것은 의미가 있어 보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에 눈감고 있지 않고 '행동하는 양심'을 보여준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노정렬이 1인 시위에 동참한 것은 등록금넷의 취지에 공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 4월 대학생 일부는 일명 '눈물의 삭발식'을 진행했는데 경찰은 대학생들은 강제 연행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는 정부가 고액 등록금 문제에 대해 해결 의지 보다는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는데 혈안에 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사건이었습니다. 등록금넷은 대학생들의 삭발과 단식, 3보1배 등 눈물겨운 실천을 뒷짐지고 바라만 보고 있을 수 없어 전면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노정렬은 누구?
개그맨 노정렬은 데뷔 직후부터 10여년째 시사 코미디의 부활을 외쳐오고 있는데 현재 CBS 라디오에서 선보이는 국내 유일무이의 정통 시사 코미디쇼 ‘뉴스야 놀자’를 4년째 맡고 있습니다.

1994년 MBC 7기 공채 개그맨으로 데뷔했으며 서울대학교 신문학 학사로서 1994년 제38회 행정고시를 합격한 바 있어 ‘엘리트 개그맨’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노정렬은 한 인터뷰에서 말했습니다.
“정치 풍자가 공중파에서 자꾸 회자돼야 한다. 풍자의 대상이 된다고 해서 욕을 먹는 게 전부가 아니다. 웃음이라는 건 연민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독재자를 욕해도 계속 욕을 하다보면 측은지심도 생기고 감정의 앙금이 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알고 보면, '반값 등록금'은 지난 2006년 한나라당이 지방선거에서 내건 선거 공약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생들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선거에 압승한 한나라당과 현 정부는 반값 등록금 공약에 대해 '모르는 일'로 치부하고 있습니다. 결국 거짓말이었던 셈입니다. 지난해 대학생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등록금넷은 서울시에 '학자금 지원기금 설치 및 운영 조례'를 제정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학자금 이자를 지원해 주는 기금을 마련하기 의한 조례를 제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울시는 아직까지 전혀 반응이 없다고 합니다. 전라북도는 이미 작년 12월 대학생들의 학자금 지원에 대한 조례안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 반값 등록금 허위 공약에 항의하는 시위 장면

정부가 등록금 문제 해결 의지 보여주어야

이제는 정부나 서울시가 등록금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부자들에 대해서는 4년 동안 무려 96조원의 세금을 단행하면서 고액 등록금을 낮추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없다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부자 감세의 일부만 투입해도 대학생들 등록금 문제는 해결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대학생들도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참여가 필요해 보입니다. 대학생들 일부만이 외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외면하면 결국 피해는 스스로에게 가기 때문입니다. 대학생들 모두가 힘을 모아 사회에 호소할 때 사회는 그 목소리에 더욱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청년 인턴제와 같은 대증요법 보다는 대학생들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늦기 전에 적극 나서야 할 것입니다.

"미래를 이끌어 갈 대학생들이 돈이 없어서 공부하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은 기회 균등, 사회 평등이 보장되는 사회의 기본입니다."

[참고 글] 대학등록금, 이자만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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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에서 대학생 인턴(연수생) 면접을 봤습니다. 매년 상반기 하반기 두차례에 걸쳐 대학생 3, 4학년을 대상으로 인턴을 뽑고 있습니다. 최악의 불경기와 취업난을 반영하듯이 이번에는 인턴 경쟁이 치열해 서류전형에서도 30대 1이 넘었습니다. 각각 부서 마다 경쟁률 편차는 있기는 하지만 올해가 가장 치열한 것 같습니다. 

먼저 대학생 지원자들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읽어보니 정성껏 작성한 흔적이 뚜렷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최종면접은 4명을 보기로 했습니다. 서류에서 탈락시키는 것 보다는 서류 작성을 위해 노력한 대학생들을 위해 면접의 기회를 주는 것도 앞으로 사회 진출에 있어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심한 준비를 해서인지 남학생들 보다는 여학생들이 월등하게 서류 준비가 우수해 4명은 전부 여학생이었습니다.

면접을 위해 팀원들이 제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질문지를 별도 작성했습니다. 면접은 개별 면접 보다는 4명을 동시에 실시하는 단체 면접 방식으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면접 예정시간인데 도착하지 못한 지원자가 있었습니다. 길을 찾지 못해 회사 주변을 헤매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 A학생을 위해 20분을 기다려 주었습니다.

마침내 면접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사회 생활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들이라서 모두가 긴장을 많이 했습니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준비된 물도 마시게 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잡아주기도 했습니다. 각자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했는지 답변은 대체로 잘 하는 편이었습니다.

순조롭게 면접이 진행되던 중 어떤 질문을 받은 A학생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음이 그치지 않고 너무 소리를 내서 울어서 잠시동안 진정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었습니다. 일단 조금 진정이 되었을때 더 시간 준비를 위해 답변을 다른 지원자부터 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일부 학생도 답변 중 울지는 않았지만 울먹이는 목소리로 답변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진은 면접자와 전혀 관계없음. 사진주인공은 구혜선]


그리하여, 다른 3명의 답변이 끝나고 제일 처음에 울음보를 터뜨린 A학생의 답변 시간이 되었습니다. 해당 질문은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는 동안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였고 어떻게 잘 극복할 수 있었습니까?" 였습니다.

그 학생의 답변은 '서양의 모 국가에서 유학생활을 했는데 동양인이라고 놀림과 왕따를 당해 그 당시 힘들었는데 열심히 공부해 극복했다.'는 취지였고 '그 때 서럽던 유학 시절이 생각나서 울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으로 혼자서 이국 땅에서 힘든 시기였을 것이라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리고 면접은 전문성을 살펴볼 수 있는 몇가지 질문이 이어졌고 마지막 질문으로 '이번 면접에서 꼭 하고 싶었으나 얘기하지 못한 것을 1분내 말할 수 있도록' 별도로 시간을 주었습니다. 면접자 4명 중에서 마지막 질문까지 2명이 전문적 지식과 인성이 가장 우수해 경합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최종 면접이 끝나고 평가를 해보니 면접관들이 전부 공통적으로 한 명의 학생을 선택했습니다. 대체로 2명이 경합이었는데 한 학생(S)에게 표가 쏠린 몇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면접에서 의연함을 잃지않고 침착하게 또박또박 답변을 잘한 것이었습니다. 둘째, 마지막 질문 답변에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 1분의 시간을 잘 활용해 답변을 한 것이었습니다. 셋째, 어린시절부터 늘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웃음을 잃지않고 긍정적 사고로 도전해 극복해 살아온 당찬 태도였습니다.

특히, 합격한 그 S학생은 초등학교때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 동생과 어렵게 살아왔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면서 어려운 시기들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울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울던 A학생은 탁락했습니다. 어려운 시기와 극복에 대한 질문시 울던 A학생을 S학생일까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이미 자기소개서를 통해 대략 면접자 학생들을 파악하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리고 울던 A학생이 면접에 20분 늦게 도착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종 경합을 벌이다 탈락한 학생은 마지막 질문에서 너무 짧게 답변을 끝내 마이너스 평가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면접에 늦게 도착하고 답변시 울다가 탈락한 그 A학생이 인사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의 탈락은 알겠는데 다른 탈락한 학생은 이유가 뭔지 항의를 했다고 합니다. A학생과 같은 대학의 다른 지원자가 함께 면접을 본 것인데 그 학생 마저 탈락한 것이 자신으로 인한 것인지 또는 자신이 보기에 그 학생이 제일 잘했다는 평가였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실 어이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탈락한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제가 그 학생들의 20년 이상 차이 나는 대학 동문 선배에 해당합니다.ㅠㅠ 후배들아, 미안하지만 평가는 공정하게 실력에 의해 판가름난다는 것을 이해주기 바란다.)

면접에서 침착함을 잃지않고 어떤 상황에도 결코 울지 않는 태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긴장되는 면접 과정에서 과거 어려운 시기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울음이 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할 수 있다면 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면접에서는 마지막 1분까지도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요즘 대학들도 기업체 인턴 합격자의 숫자도 매우 중요해 경쟁이 치열하다고도 합니다. 모든 지원자들이 합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면접에서 합격하는 학생도 있고 탈락하는 학생도 있기 마련입니다. 너무 치열한 경쟁이다보니 학생들은 물론 기업체 면접관이나 인사담장자도 매우 힘든 시기입니다. 비록 힘든 불경기와 취업난이지만 어려운 시기를 잘 극복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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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추천하는 졸업입학 선물 베스트10

얼마 후면 졸업 입학 시즌입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학창시절에 받는 졸업 입학 선물은 소중한 추억입니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시작해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이르는 교육과정을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유치원도 거의 필수과정이 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이미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을 거쳐 직장생활을 하고 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졸업 입학 시즌이 되면 아이들에게 무슨 선물을 사줄까 생각하고, 일가 친척들 중에 졸업 입학하는 아이들을 챙기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의 졸업 입학 선물은 무엇으로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일텐데 나름대로 베스트10을 선정해 봅니다. 개인적 의견이니 모든 것을 대변하지 못하지만 고민의 시간을 줄이는데 조금이나마 참고를 하시면 될 듯 합니다.

1. 가족여행
대개 졸업 입학 선물을 생각할 때 전자제품이나 학용품 등과 같은 물질적인 것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러나, 저는 물질적인 것도 좋지만 그동안 서로 잊고 지냈던 가족의 의미도 살리고 서로 이야기도 해볼 수 있는 가족여행을 먼저 추천하고 싶습니다. 제가 몇년전 아내를 비롯 아이들과 함께 중국으로 가족여행을 함께 다녀온 적이 있는데 아내와 아이들 모두에게 소중한 추억이 되었나 봅니다. 지금도 아이들은 중국에서의 경험이 시야를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끔씩 가족여행에서 함께 한 시간들이 끈끈한 가족애를 지탱해주는 것 같습니다. 국내이든 해외이든 분수에 맞게 선택하면 좋을 듯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상의해 여행 장소를 선정해보면 아이들에게 더욱 의미있는 여행으로 남을 듯 합니다.


2. 디지털카메라
인터넷이 발달하고 블로그나 카페 활동을 하는 것이 일상화된 학생들을 고려하면 디지털카메라도 하나의 선택일 수 있을 듯 합니다. 사진 찍는 것에 취미가 있는 아이들이라면 가장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비싼 고급 디지털카메라 보다는 보급형 수준의 적절한 가격대를 고르는 지혜가 필요하겠습니다.



3. 책 (가족 필독서 선정)
TV나 인터넷 생활이 증가하면서 책을 읽는 학생들이 줄고 있고 책을 선물하는 것에 대해 선호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듯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책이 좋은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들이 읽어야 할 <가족 필독서>를 선정해 함께 읽는 방법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부모가 아이들과 함께 가족 필독서 목록을 만들고 서점에 가서 책을 고릅니다. 그리고 부모와 아이들이 다 함께 필독서를 읽는다면 서로 대화도 나누고 지식도 쌓고 좋을 것입니다. 책을 읽는 습관은 미래에 큰 자산으로 남을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4. 노트북PC
새로 대학생이 되는 입학 선물이라면 노트북PC가 선호하는 선물입니다. 노트북은 강의 리포트 작성이나 자료 축적 등 학업 활용도가 높고 이동성이 용이해 인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 노트북PC 이외에도 터치스크린 방식의 타블렛 PC나 휴대가 편리한 넷북도 있으니 적절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넷북은 노트북 보다 저렴하고 1kg 내외로 가벼운데다 기본적인 워드 작성은 물론 인터넷이나 동영상 감상에도 무리가 없어 선호도가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5. 옷 (의류)
새로운 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옷과 의류도 중요한 선물 품목 중 하나입니다. 특히나 멋을 내기 시작하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에게도 옷은 날개나 다름없습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의식주라고 할 때 먼저 의(衣)를 내세울 정도로 옷은 중요하기도 합니다. 다만 가격이 너무 비싼 옷 보다는 저렴하면서도 활동성이 높은 옷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합니다.

[사진 : 레이디경향]

6. MP3 플레이어
노래 듣기를 좋아하는 학생들에게 MP3도 선물로 여전히 인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요 쇼핑몰에서는 삼성 옙, 아이리버, 코원 iAUDIO, 아이팟 등의 인기 MP3를 최고 20% 수준으로 저렴하게 판매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브랜드, 용량, 가격대, 기능별로 상품을 다양하게 분류해 손쉽게 비교가 가능합니다.

[사진 : 뉴시스]

7. 악기
가족이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다면 좋은 가족 문화를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고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학생 시절부터 악기를 하나 이상 다룰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방법도 좋습니다. 물론 악기를 다루는데 관심을 갖는 것이 먼저 필요할 듯 합니다. 그것은 부모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노력부터 시작일 듯 합니다.


8. 운동화 및 구두
한창 왕성한 활동성이 있는 학생들 나이에는 운동화도 선택 중 하나입니다. 운동화는 여러개 있더라도 언제라도 바꿔가면서 싣을 수도 있어 학생들에게 유용할 수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는 구두나 하이힐을 대신할 수도 있습니다.
 
9. 휴대폰
휴대폰도 요즘 학생들이 선호하는 선물에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다만 가격이 비싼 품목 보다는 디자인이 좋고 튼튼하며 기본 기능에 충실한 휴대폰이 적합할 듯 합니다. 휴대폰은 학생들에게 사용 습관을 잘 가이드해서 너무 과도한 사용을 자제하도록 하는 것도 필요해 보입니다.

10. 기타 선물
마지막으로는 나머지 생각나는 선물들입니다. 학생들에게 필요한 필기구나 학용품, 가방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상과 의자가 오래 되었다면 학습 집중력을 키우고 체형에 적합한 책상과 의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전자사전이나 게임기 등도 선호하는 핵상에게는 대상 품목입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많이 하는 학생들에게 안전한 환경을 위한 정품 백신 소프트웨어도 필요한 품목입니다. 여학생들에게는 화장품도 멋을 위해 필요할 수 있습니다.

+ 필기구 가방 등 필수 학용품류
+ 학습집중력 높이는 책상과 의자 
+ 전자사전, 게임기 등 선호 품목
+ PC 안전을 위한 백신 소프트웨어
+ 여학생들을 위한 화장품 세트


지금까지 졸업 입학 시즌을 맞아 어떤 선물을 준비할까 고민할 때 고려해 볼 수 있는 품목들을 정리해 봤습니다. 고가의 선물 보다는 진정으로 학생들의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성이 더 중요할 듯 합니다. 그리고 가정의 분수에 맞지않게 무리하기 보다는 현실에 맞고 학생들이 꼭 필요한 선물을 고르는 지혜도 필요해 보입니다. 저도 아이들의 졸업 입학 선물을 고민하는 입장에서 정리한 것이니 다른 분들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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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생각해보는 뉴스 분석이다. 군포 여대생 살해범인 강모씨의 얼굴이 경찰에 의해 공개되지 않고 있다.(강모씨는 여대생 이외에 또 한명의 40대 주부를 살해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고, 그 동안 미궁 속에 빠져있던 인근에서 발생한 여성 5명 살인사건 등 7명의 부녀자를 살해한 살인마이다.) 
[뉴스 참고]군포 여대생 살해범, 실종 부녀자 7명 살해 자백

지난 27일 현장 검증에서도 경찰은 모자와 마스크로 강모씨 얼굴을 철저하게 가렸다. 시민들과 유족들은 "인면수심의 흉악범 얼굴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으나 경찰은 거절했다.
우리나라 경찰은 흉악범 마저도 인권을 보호하고 초상권을 침해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란다.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언론에서 범죄자들의 얼굴을 공개하고 있다.


참으로 가증스런 경찰의 모습이다. 경찰은 강력 범죄자인 흉악범의 얼굴과 인권을 친절하게도 보호한다. 그러나, 경찰은 시민들에게는 오히려 가혹한 형벌을 가하고 있다. 소위 집회시위법, 일명 '마스크법(복면금지법)'이다. 길거리에서 마스크만 쓰고 있어도 경찰이 임의적으로 잡아갈 수 있다.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집회의 가능성 만으로도 마음대로 체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래 박스에 있는 글은 언론에 소개된 마스크법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다.
회사원 박모씨는 자신이 가입해 있는 시민단체로부터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번주 토요일 오후 6시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대운하 반대’의 촛불을 밝힙시다.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동안 단체 활동에 뜸했던 박씨는 이번 행사에는 참가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중학생인 딸이 집회에 같이 가겠다고 했다. “아직 감기가 다 낫지 않았잖아. 게다가 날씨가 추워”라며 말렸지만 딸은 고집을 부렸다. 박씨는 딸에게 옷을 두툼하게 입고, 마스크를 쓰라고 한 뒤 함께 지하철을 타고 시청 앞으로 갔다. 이미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단체에서 준비해 준 촛불을 들고 무리 속에 섰다. 2시간 남짓 진행된 집회가 끝나자 거리행진이 시작됐다.

인도를 걸어가던 부녀에게 경찰이 다가왔다. 경찰은 이들에게 “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을 어겼으니 긴급 체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씨가 “그게 무슨 소리냐”며 나섰다.
경찰은 “집회·시위의 참가자가 신원 확인을 곤란하게 하는 복면 도구를 착용해서는 안되는데, 마스크를 썼으니 현행법 위반입니다”(집시법 제14조 4항 등)라고 설명했다. 경찰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고도 했다.

이튿날 박씨는 자신이 속한 시민단체 간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간사의 긴 한숨소리가 전해졌다. “우리 단체가 촛불집회를 주동했다고 10억원이 넘는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왔어요. 상인들이 불법 시위로 경제적 피해를 봤다네요”라는 간사의 말 때문이다. 집단행위로 다수인에게 피해가 발생하면 피해자가 손해배상청구를 할 수 있는 ‘불법집단행위에 관한 집단소송법’을 얘기하는 것이었다. 박씨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되겠죠”라고 인사하며 전화를 끊었지만,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MB 정부와 한나라당은 2월 국회에서 집시법 개정안을 상정할 계획이라 한다. 막장 판타지가 SF 영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2009년 현재 대한민국에 현존하고 있는 셈이다. 스탈린 독재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현재 우리나라에 진행되고 있다. 헌법에 보장된 집회와 결사의 자유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지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인지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을 아이들에게 이제는 말하기가 힘들 것 같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경찰이 자의적으로 시민들의 얼굴을 촬영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흉악범 얼굴은 마스크를 씌워서 사진 촬영도 못하게 하는 경찰이다. 그런데 시민들은 사진 찍겠다고 통보만 하고 바로 얼굴을 촬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이 헌법 보다 위에 군림하는 모양이다.

흉악범은 사진 촬영을 못하게 모자와 마스크까지 친절하게 씌우면서 시민들의 얼굴은 마음대로 찍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얘기가 우리의 현실이다. 살인마 흉악범은 초상권을 보호하고 시민은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경찰은 교통에 방해된다는 통보만으로도 모든 집회를 불허할 수도 있다. 또, 방송사도 장악하려는 시도인 방송 악법도 국회에 상정한단다.


그야말로 공포의 경찰국가로 가고 있다. 전두환 군사독재 시대에도 마스크를 쓰고 침묵시위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민선으로 선출된 현재 정부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시위도 경찰이 자의적으로 체포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우리나라가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되었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살인마 흉악범의 인권 보다도 못한 시민 사회에 살고 있다는 것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서글프다. 시민들의 눈과 귀를 막고 소통은 언제 할 것인가? 이제 나이가 불혹이 넘었는데 지난 20대 젊은 대학생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은 왜 일까? 아직은 젊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겠다. 나약한 소시민으로 순응하면서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은 가슴 속에 묻어두고 살아야 겠다. 다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할 뿐이다.

참고 링크 : 마스크법이란 (강풀 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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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