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6.09 이승기와 첫키스 여자친구, 그때 이랬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39)
  2. 2009.06.03 서울대 교수들 민주주의 요구 시국선언 전문과 1987년 6월 항쟁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
  3. 2009.04.23 면회금지 철책선에 애 엄마가 잠입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5)


요즘 이승기는 노래는 물론 예능이나 드라마에서도 대단한 활약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이승기는 드라마 '찬란한 유산'과 주말 예능프로그램 '1박 2일' 등을 통해 대중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어느정도 운도 따랐겠지만 이승기 스스로 부단한 노력의 결과일 것입니다.

이승기는 지난 2004년 데뷔 이래 꾸준히 발전하는 면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내 여자니까'라는 노래로 가수로서 대성공은 물론 누나들의 로망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언제나 이승기는 소년같은 해맑은 미소와 풋풋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그런데 이승기는 벌써 국제통상을 전공하는 동국대학교 대학원생입니다. 이제는 소년의 이미지와는 다소 차이가 나는 나이가 된 셈입니다.

어느새 이승기도 20대 중반의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이승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가수이자 탤런트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청년인 만큼 이승기는 여자친구나 첫사랑 등에 대한 질문을 받기도 합니다. 대중 스타에 대한 관심을 감안하면 자연스런 현상일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작년 7월경 이승기는 KBS 2TV '해피투게더 시즌3'에 출연해 고등학교 1학년때 여자친구와의 첫키스를 고백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승기는 "여자친구와 함께 집 앞 놀이터에서 얘기를 나누다 여자친구가 너무 예뻐 보여 키스를 하게 됐다. 키스 후 여자친구와 사이가 어색해져버렸다"고 말하며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에서는 사진에 나오는 모습이 이승기의 중학교 3학년 시절이라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커플룩을 입고 있는데 다정해 보입니다. 네티즌들은 "여자친구이다" "여동생이다" 등 여러 이야기가 나돌고 있는 듯 합니다. 과연 이승기와 함께 등장하는 여자 분은 누구일까요?

주로 학원에서 여자친구를 만났다

얼마 전에 이승기와 여자친구의 그 시절을 기억하는 Y씨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언론에서는 공개되지 않았던 몇가지 사실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Y씨에 의하면 이승기는 중학교 3학년경 서울 중계동의 H학원에서 여자친구와 주로 만났다고 합니다. 이승기가 노곡중학교 시절이었습니다. 사진도 그 당시 사진인 것 같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여자친구는 같은 동네의 S양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승기와 S양의 만남은 고등학교 1학년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승기는 상계고등학교에 다녔고 S양은 Y여고에 다녔습니다. S양은 사진보다 실물이 더 예뻤다고 합니다. 외모는 물론 애교도 넘치는 성격이라서 남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은 편이었답니다. 이승기는 당시 '싸이퍼'라는 밴드의 보컬을 하고 있었는데 여자들로부터 인기는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다만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생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공부잘하는 모범생 이승기였다

그러나 이승기와 S양은 헤어졌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모른다고 합니다. 풋풋한 시절의 만남이란 서로 바쁘게 지내다보면 서로 멀어질 수 있을 듯 합니다. 그 때는 이승기가 가수로 데뷔하기 전이었습니다. 이승기는 가수로 데뷔해 바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S양도 당시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합니다. 아직도 S양은 외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의 앳된 이승기의 모습과 방송 드라마 데뷔 이후 이승기의 모습

사진의 주인공은 여자친구였다

이승기는 기획사에 의해 발탁된 이후 점차 인기를 얻어가게 되었습니다. 후문으로는 S양은 라디오에 나온 이승기 노래를 듣고 장난스럽게 '아깝다'고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이승기의 중고등학교 시절의 단면을 어렴풋이 알 수 있는 사연들이었습니다. 이승기와 S양의 사진은 이승기 데뷔 이후 2004년말 인터넷에 공개된 바 있었습니다. 당시 이승기측은 '노코멘트'라고 했지만 이번에 사실로 확인된 것입니다. 청소년 시절에 풋사랑으로 추억될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그런 사진 속의 이승기는 어엿한 대학원생 청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국내 최고의 인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을 펼치고 있습니다. 학창시절의 모범생 이승기는 지금도 대중들에게 모범적인 스타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승기가 남녀노소 모두에게 지속적인 사랑을 받으면서 영원히 기억에 남는 대중 스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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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22년전 군사독재 정권 시절, 1987년의 봄은 교수들을 비롯한 지식인 집단에서 시국선언의 형태로 민주주의 요구가 못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서울대를 비롯해 고려대 연세대 등 전국 교수들이 민주화 요구를 시국선언으로 발표합니다. 이 시국선언문들은 곧바로 각 대학의 대자보로 옮겨졌습니다. 대학생들은 "교수님. 힘네세요" 라고 응원하면서 민주주의의 열망을 반영했습니다.

특히 군사정권의 고문에 의한 박종철 학생의 죽음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에 의해 그 진실이 폭로되면서 종교계까지 들불처럼 불타올랐습니다. 그리고 이한열 학생이 전경들이 쏜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면서 민주주의 열망은 더욱 가열차게 불타오릅니다. 전국 대학생들은 1987년 6월 10일을 전후해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전국 곳곳에서 전개하고 시민들이 학생들을 지지하면서 결국 군사독재 정권에 6. 29 선언을 통해 항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2009년 6월 오늘, 서울대 교수 124명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우리가 한 눈을 파는 사이 독재의 그늘은 드리워지고, 그렇게 역사는 반복되는가 봅니다.

이한열 열사가 전경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진 후 6월 항쟁의 도화선인 영결식이 열리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의 민주주의 요구 시국선언 전문]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 앞에서 큰 아픔을 겪고 있다. 그러나 전국 각지에 길게 늘어선 조문 행렬은 단지 애도와 추모의 물결만은 아니었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착잡하기 이를 길 없는 심경으로 나라의 앞날을 가슴속 깊이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서로 다른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서 각계각층의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전직 대통령의 국민장을 치러낸 것을 계기로 우리 모두는 새로운 길을 열고 있으며 또 열어야만 한다.

지난 수십 년간 온갖 희생을 치러가며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빠진 현 시국에 대해 우리들은 깊이 염려하고 있다. 작년 '촛불집회'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에게까지 소환장이 남발되었고 온라인상의 활발한 의견교환과 여론수렴이 가로막혔으며, 이미 개정이 예고된 집회 관련 법안들의 독소조항도 시민사회의 강한 비판에 부딪히고 있다.

현 정부가 출범한 이후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또한 훼손되었다. 주요 방송사가 바람직하지 못한 갈등을 겪는가 하면, 국회에서 폭력사태까지 초래한 미디어 관련 법안들은 원만한 민주적 논의절차를 거쳤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야의 동의로 지난 3월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가 국민적 합의 도출을 위해 출범했지만, 여당 측 위원들이 회의 공개나 국민여론 수렴을 반대함으로써 위원회는 표류하고 있다. 국민 다수가 언론법 처리 강행 방침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이런 흐름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언론의 자유를 허물어뜨리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다. 현직 대법관의 '촛불집회' 재판 개입 사건에서 보듯이, 현 정권은 사법부의 권위와 독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으며, 그에 따라 재판의 독립을 수호하려는 전국 법관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민여론에 따라 일단 포기했던 '한반도 대운하'는 '4대강 살리기'로 탈바꿈하여 되살아나고 있으며, 지난 십여 년 동안 대북정책이 거둔 성과도 큰 위험에 처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목숨을 끊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본권 보장을 요구할 때 집회의 강제 해산과 노동자 대량연행과 구속으로 맞서는 일 또한 구시대적 대처임이 분명하다.

문제는 정치노선의 차이나 이념의 대립이 아니라 기본적인 인권 존중과 민주적 원칙의 실천이다. 모든 국민의 삶을 넉넉히 포용하는 열린 정치를 구현하는 정부의 노력이 참으로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 과정 또한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보복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검찰은 국가원수를 지낸 이를 소환조사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3주가 지나도록 사건 처리 방침을 명확히 밝히지 못하고 추가 비리 의혹을 언론에 흘림으로써 전직 대통령과 가족에게 견디기 힘든 인격적 모독을 집요하게 가했다. 이는 엄정한 공직자 비리 수사라고 하기 곤란하며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되돌아보면 지난 1월 용산 철거민 농성에 대한 무모한 진압으로 빚어진 참사는 올해 벌어질 갖가지 퇴행적 사건을 예고했다.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은 아직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있으며, 검찰이 수사기록 중 핵심적인 대목의 공개를 거부함으로써 재판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5월 22일 서울 서부지법 민사12부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이 "세입자의 재산권, 주거권,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침해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한 사실에 주목하면서 현 정부의 근본적인 자기 성찰을 기대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가 전직 대통령에 대한 범국민적 애도 속에 주어진 국민적 화해의 소중한 기회를 잘 살리고 국민의 뜻에 부응하기를 우리는 간절히 희망하며, 다음의 구체적 요구사항을 제시한다.

1.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의 최고 책임자다. 이 대통령이 스스로 나서서 국민 각계각층과 소통하고 연대하는 정치를 선언해야 한다. 더불어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다른 정당과 시민사회단체를 진심으로 국정의 동반자로서 받아들여야 한다.

1. 현 정부는 민주사회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 '집회와 결사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

1. 현 정부는 전직 대통령 관련 검찰 수사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하며, 정적이나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검찰 수사에 대한 근본적 반성과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1. 현 정부는 용산 참사의 피해자에 대해 국민적 화합에 걸맞은 해결책을 제시하고, 경제 위기 하에서 더 큰 어려움에 처한 비정규직 노동자 등 소외계층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기본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현 집권층이 우리 국민 모두의 가슴에서 타오르고 있는 민주적 요구에 대해 진지하고 성의있게 대응함으로써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국민적 화합과 연대를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의 큰 길로 나아가는 전환점으로 삼을 것을 간곡히 바란다.

2009. 6. 3.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하는 서울대학교 교수 일동

서명자 명단 (2009년 6월 3일)
강우성 강진호 계승혁 고철환 구명철 구인회 권태억 김길중 김도균 김빛내리 김상종 김세균 김영민 김용익 김월회 김유용 김인걸 김장주 김재법 김종욱 김종일 김진수 김춘수 김현균 김혜란 김효명 남동신 류재명 모경환 문중양 민은경 박경숙 박동열 박명규 박배균 박태균 박현섭 박흥식 박희병 방민호 배은경 배철현 백도명 변현태 봉준수 성노현 손영주 송석윤 신광현 신종호 심봉섭 안광석 안삼환 양동휴 양현아 오명석 오석배 오순희 오용록 우희종 유용태 윤순진 윤여창 윤여탁 윤제용 이강재 이건수 이경우 이병민 이성중 이성헌 이애주 이인호 이일하 이창숙 이철범 이현숙 이형목 임호준 임홍배 장덕진 장승일 전종익 전태원 정근식 정용욱 정원규 정향진 조국 조영남 조현설 조형택 조흥식 최갑수 최권행 최무영 최영찬 최윤영 한상진 한숭희 한영혜 한인섭 한정숙 허원기 홍기선 홍성욱 홍승권 홍재성 홍진호 황상익

김명환(인문대) 김민수(미대) 김정욱(환경대학원) 김현진(인문대) 이건우(인문대) 이근(국제대학원) 이동수(환경대학원) 이상훈(사회대) 이용환(농생대) 이준호(자연대) 장진성(인문대) 전경수(사회대) 최병선(사회대) 최진영(사회대) 이상 124명

가나다 순 정리 (동명이인은 마지막에 나열하고 단과대 표시)

1987년 명동성당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면서 끝까지 굴복하지 않고 시위 중인 대학생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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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군대 시절에 아이 엄마와 군인 아저씨의 특별한 면회의 사연을 이야기 할까 합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부대는 철책선 부근에서 별도로 막사 생활을 하는 수색소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GOP 철책선에  근무하는 군인들과는 달리 최전방 DMZ 수색소대는 소대 단위로 별동대 처럼 은밀한 곳에 1개 소대가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 작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의(20여 년 전의) 군대에서는 최전방 철책선이나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면회나 외출 외박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GOP 철책선의 군인들은 6개월 단위로 후방 부대와 임무 교대를 하게되면 면회나 외박 등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DMZ 수색소대는 1년 365일을 비무장지대나 철책선 근처에서만 훈련과 작전을 하는 임무인지라 면회 외박은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오직 휴가만이 유일하게 민간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휴가는 수색소대원들 모두가 단체로 휴가를 갔습니다.

그러나, 단체 휴가를 다녀온 후로 길게는 9개월을 비무장지대나 철책선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외롭고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면회가 안되는 줄 모르고 아들을 만나러 왔다가 그냥 울고돌아간 어머니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저희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저는 통신보안 군대 전화로 연대본부에 오신 어머니와 짧은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어머니는 하염없이 우셨습니다. 저는 통화한 뒤 몰래 막사 뒤에 숨어서 소리없이 눈물을 삼켰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부터 입니다. 철책선 밖에서 수색 훈련이나 작전을 수행하던 시절, 어느 날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산 속이라 날이 일찍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소대장이 K상병과 조용히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K상병은 저보다 고참이었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에 온 늦깎이 군인이었습니다. 소대장은 K상병에게 무슨 사연을 듣고난 후 상당히 당황한 모습으로 잠시 번뇌에 싸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 소대장은 결단을 했는지 긴밀하게 K상병에게 지시를 했습니다.

[이준익 감독 영화 '님은 먼 곳에' 2008년작]
(베트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면회하기 위해 위문공연단으로 자원한 아내를 소재로 한 영화)

그 날 밤에 K상병은 막사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K상병은 저녁에 조용히 막사를 빠져나가 산등성이를 타고 마을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사연인즉, K상병은 군대 입대하기 전에 이미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K상병 부부는 아이도 하나를 낳았습니다. 사랑스런 아내와 간난 아이를 두고 군대에 입대한 K상병은 항상 아내와 아이에 대한 그리움에 괴로와 했습니다.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는 너무나 남편이 보고싶어 아이를 안고 강원도 최전방으로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이미 편지를 통해 비밀리에 만날 작전 계획까지 마련해 두었습니다. 몇날 몇시에 수색소대 막사로부터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만나는 계획이었습니다. 거의 첩보작전에 가까운 감행이었습니다. 아내는 무사히 아이를 데리고 마을로 잠입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K상병은 막상 D데이가 왔을 때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내와 편지를 주고 받을 때는 몰래 하룻밤을 잠깐 마을에 다녀오면 아무도 모를 것이란 생각이었지만 막상 D데이가 되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만일 소대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막사를 빠져나갔다가 발각될 경우 탈영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K상병은 사실대로 이실직고하고 소대장의 선처를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소대장은 원칙대로 한다면 절대 K상병을 마을로 보낼 수 없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소대장은 K상병에게 도로를 통해 마을로 가지말고 산등성이 수색로를 타고 마을에 몰래 다녀올 수 있도록 지시를 한 것이었습니다. K상병도 모험이었지만 소대장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결단이었습니다.

K상병이 마을로 내려간 길은 일반 군인들은 모르는 수색소대원들 만의 비밀 개척로였습니다. 소대 회식을 할 경우 마을에 몰래 내려가 소주를 추진해 오던 길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K상병은 몰래 마을에 내려가 그토록 보고싶던 아내와 아가를 만나 애틋한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소대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사무치고 보고싶었으면 K상병과 아내는 이토록 무모할 수 있는 만남을 추진했을까.

당시 K상병이 몰래 마을로 내려가 아내와 아가를 만난 사연은 우리 소대원 이외에는 전혀 모르는 야사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소대장의 나이 보다 K상병이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보통 소대장을 소위나 중위가 맡게되는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온 K상병 정도면 한두 살 이상이 더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군대는 나이와 상관없이 계급에 의한 위계질서가 중요합니다. 소대장이 면회 불가 원칙을 고수했다면 K상병은 아내와 아이를 눈 앞에 두고 만나지 못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대장은 나름대로 자신의 군생활 명운이 걸린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K상병의 사연도 인간적으로 고려해 배려심을 갖고 현명한 판단을 해주었기때문 입니다.

군대에는 수많은 사연의 군인들이 많습니다. 보고싶은 여자친구가 변심한 것을 알고 탈영하는 군인이 있는 것도 그 젊음의 끊는 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탈영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K상병과 같이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늦깎이로 입대해 고생하고 제대하는 경우는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보는 광경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K상병 처럼 결혼 후 입대한 경우는 최전방 보다는 후방부대에서 근무하도록 배려해주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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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