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릴사위'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5.22 200억 자산 골드미스 공개구혼 사실일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42)
  2. 2009.02.14 13세 아빠를 읽고 조혼의 역사를 찾아보니...세종은 12살에 결혼했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0)


어떤 결혼정보회사가 '200억 자산 골드미스, 그녀의 특별한 공개구혼'이라는 타이틀로 스페셜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200억'이라는 돈과 '공개구혼'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여러 언론에서는 이같은 화제성 사실을 그대로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내용에 대해 정말 사실인지, 과도한 상술은 아닌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우선 공개구혼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봅니다. "사업 성공, 이제는 연애 성공을 꿈꾸는 골드미스! 그녀의 배우자가 될 스페셜 남성을 찾습니다."라는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습니다. 게다가 세부 소개 내용은 굉장히 사실적이고 적극적인 표현을 담고 있습니다.

공개구혼녀는 "49세. 개인사업에 매진해서 200억대 자산을 보유한 성공한 사업가"라고 나이와 직업을 당당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아한 외모와 늘씬한 체구의 여성스러운 느낌을 주는 분. 운동과 여행을 즐기며, 리더십을 갖춘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로서 "대학 대신 사회로 나가 열심히 일했고, 어느덧 혼기를 훌쩍 넘겼습니다. 지금이라도 좋은 사람 을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어 여러분들 앞에 섰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녀가 원하는 이상형의 남성은? "완벽 연하남?"
"동갑부터 10살 연하의 미혼 남성"이어야 한답니다. 연상의 남성은 일단 자격이 없습니다. 또한 "4년재 대학 이상의 학력, 안정된 직장, 서울/경기권 거주자, 활달하고 호방한 성격의 마음 따뜻하고 진실한 남성."이라는 단서도 달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거의 완벽한 수준의 남성 조건인 듯 합니다. 사실상 그녀는 엘리트 남성을 원하는 셈입니다.


특히, 본인이 직접 작성해 보내준 글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결혼정보회사가 '공개구혼'이 사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인증샷과 같은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러한 구체적인 장치를 둔다는 것이 다분히 의도적인 느낌도 드는 뭔가 좀 찜찜해지는 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녀는 "배려심이 많고 포용력이 있는 따뜻하고 진실한 남성. 틀에 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의 소유자로서 저보다 젊은 남성이면 좋겠습니다." 직업은 회사원이나 전문직을 원하고 있는데, 자신의 취미가 운동과 외국 여행이라는 점도 밝히고 있습니다.



과연 200억대 자산가의 공개구혼은 사실일까?

결론적으로 대체적인 주요 내용은 사실일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돈과 일부 사실은 다소 포장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과정상에서 살펴보면 사전에 어느정도 조율이 된 내용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공개구혼 이전에도 이 결혼정보회사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깜짝 이벤트'를 몇차례 실시한 바 있습니다. 지난 2007년 6월경에 1000억 원대 자산을 가진 한 60대 갑부가 소위 '데릴사위' 후보를 공개모집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바 있었습니다.

당시 이 60대 갑부는 ‘연봉 6000만 원 정도의 전문직에 본인 재산만 20여억 원, 외국 석사학위를 갖고 있는 38세 딸’에 대한 결혼상대인 사윗감의 조건을  제법 까다롭게 내세웠습니다. 사위의 조건은 ‘딸에 버금가는 학력을 소지하고 전문직에 종사하며 자립적인 경제적 능력을 갖고 있는, 신체  건강하고 올바른 가정에서 자란 기독교인’이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장남보다는 부모 봉양이나 가계를 이어갈 부담이 덜한 '차남이나 막내'라는 조건도 붙었습니다. 거의 완벽한 남자의 조건인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과 돈의 노예냐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단 몇일만에 약 270명의 엘리트 남성들이 후보로 지원해 조기에 마감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이후 결혼정보회사는 바로 신랑감을 구하지 못했지만, 몇달 후 회원이 아닌 남자를 소개시켜주어 양가 상견례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소식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에도 1997년 9월경 이 회사는 150억대 47세 여성 사업가가 배우자를 찾는다는 이벤트 등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요즘같이 언론이나 사람들 모두가 두 눈을 켜고 지켜보는 세상에, 자칫 잘못하면 사업의 존폐는 물론 형사상 범죄가 될 수 있는 공개 이벤트를 거짓으로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런 이벤트의 당사자들이 제대로 결혼까지 성사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어 의문은 남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남자와 여자의 꿈이 돈과 욕심 앞에 나약해지는 세상이다

돈을 내세운 결혼정보회사의 상술은 아닌가?

이 같은 '데릴사위 공모'의 전례나 이번 골드미스의 공개구혼을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은 듯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륜지대사로 불리는 결혼이 그 숭고한 의미를 잃어버린 채 '돈이나 조건'을 앞세우며 상업적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기 때문입니다.

또 '사랑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결혼을 '로또'처럼 신분상승이나 인생역전의 발판으로 여기는 세태에도 문제점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  공모는 일각에서 결혼정보회사 측의 의도된 이벤트나 고품격 회원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선전하기 위한 일종의 ‘광고’나 과도한 마케팅 상술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실제 모 결혼정보회사에 근무했던 지인은 이번 회사가 다소 심하게 마케팅을 하는 경향이 있다는 증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해당 결혼정보회사가 당사자를 만나서 사전에 마케팅적인 논의를 하는 방식일 수 있다고 합니다. 다른 결혼정보회사에서는 하지 않는 과도한 상술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 한 대목입니다.  이 결혼정보회사는 이 같이 돈을 내세운 공개구혼 이벤트를 여러차례 실시한 바 있어 상술 마케팅이 아니냐는 논란은 가속화될 수도 있을 듯 합니다.


그리고 인간을 상품화한 결혼정보회사의 이야기도 세간에 떠돌고 있습니다. 이들 결혼정보회사들이 회원을 평가하는 잣대로 사용하는 소위 '심사기준표'에는 회원의 직업과 학벌, 외모와 재산 등이 기본적으로 포함돼 있다고 합니다. 남성의 경우 직업(30점) 학벌(20점) 집안배경(20점) 재산(20점) 외모(10점), 여성의 경우 외모(30점) 집안배경(20점) 직업(20점) 학벌(20점) 재산(10점) 식입니다. 놀라운 것은 회원 개인에 대한 신상뿐만 아니라 집안과 부모의 이력까지 평가등급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결혼상품으로 등급 판매되는 듯 하여 씁쓸해집니다.

결혼의 소중함은 사라지고 돈과 조건, 그리고 결혼정보회사의 광고성 이벤트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돈이냐, 사랑이냐'를 주제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신파극이 아니더라도 항상 우리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듯 합니다. 그리고 사랑없는 결혼이 과연 행복할까, 재산이 결혼에서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결혼정보회사의 돈을 부각시킨 마케팅 상술은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등과 같이 여러가지 결혼과 세태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게 되는 이슈인 듯 합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참고] 벨기에 70대 갑부의 '한국 신부' 공개모집 결과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배우자감을 공개모집한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습니다. 지난 2001년 다른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70대 벨기에 갑부의 신부를 공모한 일이었습니다. 연간 수천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벨기에 노인은 "절제된 동양적 신비감을 지닌 한국 여성의 자태에 매료됐다"며 공개구혼을 요청해 온 것이었습니다.

당시 그가 내세운 조건은 '40세 이하의 매력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는 여성이어야 한다. 2세를 출산할 강한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하며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 등 한 가지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남성은 자신이 내세운 까다로운 조건에 걸맞게 '맞선 한 번에 500만 원을 지불하고 3개월 이상 교제시 별도의 사례비를 결혼회사 측에 지급하겠다'는 약속까지 내걸었었다고합니다. 

그런데, 당시 이 남성의 공개구혼에는 실제로 20~40대의 전문직 여성들을 포함, 1000여 명이 지원해 성황을 이뤘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면부지의 70대 외국인 갑부의 신부감을 자처하고 나서는 이들 여성들에게는 ‘결혼을 인생역전이나 신분상승의 기회로 이용하려 한다’는 거센 비난도 뒤따랐습니다. 결국 이 벨기에 갑부의 신부 공모는 적합한 상대를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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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늘 13세 아빠에 대한 뉴스를 읽다가 궁금증이 발동해 우리나라와 세계의 조혼(早婚 : 어린 나이에 결혼) 역사를 찾아보았습니다. 영국의 13세 소년과 15세 소녀가 아이를 낳은 과속스캔들 소식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국가 사람들에게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세계의 역사를 찾아보면 10대 초반에 결혼하는 조혼의 관습은 오랜 역사입니다. 현재도 조혼 풍습을 유지하는 국가가 상당수 존재하기도 합니다.

영국 일간지 '더 선'은 영국의 13세 소년인 '알피에 피턴'과 15세 여자친구 '스테드먼'이 딸 아이를 낳은 사연을 소개했는데, 어린 부부의 딸 양육비는 피턴의 아버지가 부담을 하기로 했으며, 스테드먼의 어머니는 젊은 38세의 나이에 할머니가 됐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은 몇 살에 결혼했을까?

세종(충녕군)은 1397년생인데 1408년에 결혼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나이로 12살입니다. 만으로 11살입니다. 그리고 세종과 결혼해 왕비가 된 소헌왕후는 세종 보다 두 살이 많은 14살이었습니다. 조선 시대 왕실에는 이미 조혼 풍습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명입니다. 조선 왕실에서는 10세 전후의 세자나 왕자가 조혼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조선 세종 때 상소문 중에는 중국 황제가 10세 소녀만 공녀를 요구한다는 내용도 있다고 합니다. 이는 조혼을 통해 공녀로 끌려가는 것을 피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일반 백성들도 대개 15세 전후에 결혼을 했습니다. 춘향이가 16세에 이몽룡과 혼례를 치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조혼은 갑오개혁에 와서야 금지되지만 근대에도 조혼 관습은 계속 유지되어 왔습니다.

[세종대왕 영정]

소헌왕후 (昭憲王后)
1395(태조 4)∼1446(세종 28). 조선 제4대왕 세종의 비. 성은 심씨(沈氏). 본관은 청송(靑松).
문하시중 덕부(德符)의 손녀이고, 영의정 온(溫)의 딸이며, 어머니는 영돈녕부사 안천보(安天保)의 딸이다. 1408년(태종 8) 충녕군(忠寧君) 도와 가례(嘉禮)를 올려 빈(嬪)이 되고, 경숙옹주(敬淑翁主)에 봉해졌다.

간디는 13세 동갑 소녀와 결혼했다

[마하트마 간디 사진]


20세기 인도의 위대한 민족주의자이며 비폭력주의 창시자인 간디는 13세 때 같은 나이의 소녀와 결혼한 기록이 나옵니다. 간디는 결혼 이후 1년 휴학 후 중고등학교 생활을 거쳐 나중에 봄베이의 대학입학시험에 간신히 합격합니다. 간디는 종교적 신념이 강한 지도자적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사실 힌두교도가 대부분인 인도는 조혼 관습이 지금도 만연하고 있습니다.

네팔도 힌두교도가 많은데 지금도 조혼이 일반화되어 있습니다. 힌두교는 기원전 200년 전부터 조혼이 관례화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혼의 이유는 결혼도 못하고 죽으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믿음에서 사춘기 이전에 결혼이 의무화되면서 더욱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네팔에서는 10대 후반 학생 중 50% 이상이 기혼자라고 합니다. 심지어 시골에서는 지금도 6살 조혼의 전통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마리 앙뚜와네트는 루이16세와 14살에 결혼
[루이 16세와 앙투와네트]
유럽도 마찬가지로 조혼이 유행했는데 프랑스의 루이16세 황태자와 결혼한 오스트리아의 공주인 마리 앙투와네트 왕비도 당시 14세의 나이였습니다. 1789년 절대 왕정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폭발해 프랑스 혁명이 발발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앙투와네트의 인생은 정략결혼부터 운명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데릴사위 제도나 민며느리 제도는 조혼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알려주는 사실입니다. 고려시대에도 송나라와 원나라가 공녀를 요구해 조혼이 유행했습니다. 원나라가 요구한 공녀의 나이는 13세에서 16세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려시대에는 10 전후의 신부가 많았습니다.

조선시대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는 노골적으로 공녀를 요구했고 조혼이 일상화되었습니다. 공녀로 갔다고 돌아오면 오랑캐에게 몸을 버렸다면서 고향에 돌아오는 것은 받아주지 않아 환향녀(還鄕女; 화냥년의 원조)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의순공주가 청나라 공녀(조공)로 끌려가던 중 '오랑캐에 욕을 당하느니 죽겠다'며 압록강에 투신 자살한 후 생겼다는 의정부 소재 정주당과 쪽두리산소(의순공주가 투신한 후 시신은 못찾고 쪽두리만 남아서 붙여진 이름의 산소)의 이야기가 있기도 합니다.

조혼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역사에 있어 일반적인 현상 중 하나였습니다. 17세기 유태인들에게는 10세 미만의 신랑과 그 보다 나이 어린 신부가 많았다고 합니다. 고증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는 목수 요셉과 14세에 결혼했다고 전해집니다. 유럽의 관습에 영향을 미친 로마법도 결혼 하한 연령이 12세 였다고 합니다.

9살 예멘 소녀의 이혼 사건과 어린 신부 매매 문제

현재도 조혼으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영국 BBC가 보도한 '이혼 투쟁을 벌이고 있는 예멘의 어린 신부들' 소식입니다. 가난한 생계 문제로 인해 돈을 받고 9살 딸을 결혼시켰으나 결국 이혼에 이른 사건이었습니다. 예멘의 법률은 여성의 결혼을 15살 이상으로 정하고 있지만, 가난한 집안에서 신랑에게 돈을 받고 어린 나이의 소녀를 결혼시키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조혼은 역사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종교적 관습 때문인 경우고 있고, 외세의 침략에 의해 딸들을 보호하기 위한 이유도 있습니다. 가난한 생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조혼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왕실 보호나 권력 장악을 위한 정략 결혼도 있습니다.

현재의 시각에서 다른 나라와 우리 역사의 조혼을 단순하게 평가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당시의 상황은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였고 가족의 생존을 위한 상황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지구촌 곳곳에는 어린 나이에 원하지 않는 조혼을 통해 고통받는 어린 소녀들이 많다고 하니 안타깝습니다. 인류의 인권 문제라는 차원에서 국제기구나 국제사회가 이들에 관심을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섰으면 합니다.

[영화 과속스캔들 장면]


조혼으로 인한 문제는 '과속스캔들'이라는 영화와 같이 단순히 흥미가 아니라 가족과 아이들의 장래 문제 더 나아가 사회 전체의 문제입니다. 조혼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과거와 현재의 문제 그리고 우리나라와 세계의 역사와 현황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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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