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정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5.16 신세경 김연아 소녀시대, 난생 첫 투표 연예인 누구? by 진리 탐구 탐진강 (21)
  2. 2009.07.08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방귀의 부활? by 진리 탐구 탐진강 (80)
  3. 2009.05.18 5.18 광주항쟁, 어머니와 친구의 그 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0)


오는 6월 2일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올해 2010년 지방선거는 국민들이 직접선거에 의한 주권을 되찾은지 23년이 되는 해입니다. 과거 전두환 군사독재 시대에는 소위 체육관 선거로 국민들이 투표에 직접 참여가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1987년 5월부터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국적인 민주화 항쟁이 발생해 군사정권은 결국 국민들에 항복했습니다. 당시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6월까지 '독재타도 호헌철폐' 구호를 외치는 전국민적 저항운동이 전개되자 독재정권은 6.29선언을 통해 국민 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1987년 민주화항쟁은 국민들이 직접 투표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역사였습니다. 대통령을 비롯 국회의원은 물론 더 나아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완성이라 할 수 있는 지방선거에 이르기까지 선거 혁명을 이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과 같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운 대학생들의 희생으로 되찾은 민주주의 역사였습니다.

직접선거 투표권은 민주화운동에 의한 20여년전 짧은 역사

우리나라에 직접선거에 의한 지방선거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95년입니다. 지방선거 역사는 15년에 불과한 셈입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국민들이 직접 선거에 참여해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 20여년에 불과한데 소중한 참정권인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는 일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민주국가 시민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최근 치러진 선거에서는 투표율이 50%에 못미치는 저조한 결과를 가져온 바 있습니다. 1987년 민주화항쟁으로 획득한 직접 대통령 선거 당시 89.2% 투표율에 비하면 국민들의 주권참여가 현저히 떨어진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선거의 경우 20대 젊은이의 투표율은 20%대에 불과한 반면 60대 이상 노인층의 투표율은 70% 전후 수준을 보여 계층간 투표 참여에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88만원 세대 투표율 20%대, 주권 포기는 불행 자초하는 일

소위 88만원 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이 스스로 주권을 포기해 불이익을 자초한 셈입니다. 과거 민주화운동을 통해 스스로 미래와 희망을 개척한 젊은이들과 달리 요즘 20대는 보수화되고 투표 참여 보다는 스펙쌓기와 유흥에 더 신경쓰는 경향으로 나타난 참극이나 다름없습니다. 결국 민주주의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직접 선거에 참여해 투표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올해 지방선거에 투표할 수 있는 나이는 어떻게 될까요? 정확히 말하자면 1991년 6월 2일생까지 가능합니다. 만 19세 이상이면 투표권을 갖는 것입니다. 올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곧 민주 시민의 권리이자 책임입니다. 아쉽게도 1991년 6월 3일 이후 출생은 투표권이 없어 1991년생이라도 희비가 엇갈릴 듯 합니다.

올해 지방선거부터 처음 투표에 참여하는 연예인들을 찾아보았습니다. 1990년생과 1991년생을 중심으로 조사해본 것입니다. 어떤 연예인과 스타들이 지방선거 투표권을 갖게 됐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일 듯 합니다.

1990년생 김연아 신세경 박신혜 윤아 승리 등 투표권 첫 기회

우선 1990년생 연예인과 아이돌 스타들입니다.

김연아, 신세경, 고아라, 박신혜, 곽정욱, 소녀시대(윤아, 수영), 주(Joo), 박혜미, 최진영, 연제욱, 민지, 박보영, 승리(빅뱅), FT아일랜드(홍기, 원빈, 종훈), 종현(샤이니), 황찬성(2PM), 강민경(다비치), 양요섭(비스트), 이기광(AJ), 허가윤, 남지현(4minute), 한선화, 전지윤

피겨여왕 김연아가 지방선거 투표권을 갖게 된 것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국가대표 선수답게 국민된 도리로서 주권 행사를 해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지붕뚫고 하이킥'을 통해 청순글래머 스타로 우뚝 선 신세경도 이번에 투표를 할 수 있어 관심사가 될 듯 합니다. 김연아와 신세경은 올해 대학생이 된 첫 해이기도 하여 역할모델로서 투표 참여는 중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녀시대의 윤아와 수영, 원더걸스의 선예, 다비치의 강민경, 포미닛의 남지현 등이 걸그룹을 대표해 첫 투표권 행사가 기대됩니다. 남성 아이돌그룹에서는 빅뱅의 승리, 2PM의 황찬성, FT아일랜드(홍기, 원빈, 종훈), 비스트의 양요섭 등이 난생 처음 주권 참여가 예상됩니다. 그 밖에도 청춘스타들로 박신예, 박보영, 한선화 등이 소중한 투표권을 어떻게 행사하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소녀시대는 서현이 1991년 6월생이지만 몇일 차이로 투표권이 없고 나머지는 모두 갖게 됐다. 소녀시대가 아니라 성인시대인가.


1991년생 6월 2일까지 가능...구하라 김동범 정진운 등

그렇다면 1991년생 중에서 이번 지방선거에 투표할 수 있는 연예인은 누가 있을까요? 아무래도 6월 2일 이전 출생이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인해 많지는 않습니다. 우선 걸그룹 카라의 구하라가 1월생이라 투표권을 갖게 됐습니다. 제이알도 3월생으로 투표가 가능합니다. 김동범(1월), 정진운(5월), 나혜미(2월) 등도 투표권 행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에이제이는 간발의 차이로 투표권을 갖지 못했습니다. 에이제이는 안타깝게도 6월 4일생으로 단 이틀 차이로 투표권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서현도 6월 28일로 투표권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재진, 민호, 강민희, 가현, 허스키, 빛나 등은 생일이 하반기에 있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없습니다. 생일에 따라 지방선거 투표권의 희비가 갈리게 된 셈입니다.

이외에 정인선, 민, 김유리, 오승윤, 여민주, 박훈정, 한선구, 김태양, 김기범, 케빈, 미르, 나나, 최은정, 혜영, CL, 조현영, 손동운, 오성윤 등이 1991년생인데 구체적인 생일을 몰라 투표권 여부가 어떨까 궁금하기만 합니다.

주요 걸그룹 및 아이돌그룹 생년(나이)

소녀시대
태연(1989년생), 제시카(1989년생), 써니(1989년생), 윤아(1990년생), 수영(1990년생)
효연(1989년생), 유리(1989년생), 서현(1991년생), 티파니(1989년생)

2PM
닉쿤(1988년생), 택연(1988년생), 준호(1990년생), 찬성(1990년생), 우영(1989년생), 준수(1988년생)

2AM 
조권(1989년생), 슬옹(1987년생), 정진운(1991년생), 이창민(1986년생)

빅뱅
권지용(1988년생), 최승현(1987년생), 이승현(1990년생), 동영배(1988년생), 강대성(1989년생) 

원더걸스
소희(1992년생), 예은(1989년생), 선예(1989년생), 유빈(1988년생), 혜림(1992년생)

자신의 손으로 직접 투표에 참여해 주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국민의 의사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중한 투표권을 포기하는 일을 자신 뿐만 아니라 20대 젊은이들 스스로의 권리와 역할을 잃게 할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과거 1980년대 5월과 6월 대학생들이 민주주의 쟁취의 상징인 직접 선거 투표권을 쟁취했듯이 지금의 젊은이들도 직접 투표에 참여해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고 스스로의 미래와 희망을 개척할 수 있는 교두보를 열어가는 적극적 자세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에 처음 참여하는 연예인 스타들의 솔선수범이 기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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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자유당 시절, 낚시를 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모 장관이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권위가 얼마나 하늘을 찔렀는지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사건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각하의 권위는 방귀라는 생리현상에도 아양과 아첨이 난무했던 셈입니다. 

실제로 독재자 이승만 대통령의 권위로 인해 주변에는 아첨꾼들이 들끓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 대통령에게 아부하는 것을 빗대 '사바사바'라는 일본어가 회자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부의 표현으로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사바사바'가 통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 유래를 알면 권위주의 시절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각하'라는 경칭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독재정권 시절부터였습니다. 각하의 사전적 의미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풀이됩니다. 대통령이나 대주교 등에 대해 사용될 수 있는 경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 군사정권에 들어서 각하라는 호칭이 대통령 자신에만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즉, 각하는 권위주의 독재정권과 절대권력의 상징어가 된 것입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제목으로 한 네티즌이 모 카페에 올린 사진

박정희 사망 이후에도 각하는 전두환 군사독재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각하라는 단어가 독재의 상징에서 사라진 것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부터 였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권위주의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인터넷 발달과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대통령의 권위도 일반 국민과 수평적으로 변화를 한 셈입니다. 대통령 스스로의 인식과 변화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권위주의 독재 시절를 연상할 정도의 일들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최원병 중앙회장이 지난 5월 20일 모내기 행사를 나가 주민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돌발영상'에 소개됐습니다.(☞바로 보기) 이 대통령은 장관, 농협중앙회장, 주민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반말'로 일관한 것이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최원병 농협회장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농협회장은 어디 갔나?" "어 이번에 한번 제대로 해가지고, 농민들 잘 살게 해줘야지"라고 반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최 회장은 "예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라며 잔뜩 긴장해 극존칭을 썼습니다. 대통령과 농협 중앙회장의 대화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을 답습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네티즌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대통령의 반말이 경우에 따라 친근감을 표현일지 모르지만 다소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반말은 불쾌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적인 신분은 더욱 언행에 주의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서민행보를 한다며 이문동 재래시장을 방문한 데서도 서민들에게 반말을 해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농촌체험의 새참 시간에도 주민에게 막걸리를 건네주며 "가만있어…아줌마도 한 잔 해"라고 반말을 했습니다. 그 후 이 대통령은 "중앙회장 어디 갔어? 어, 저기 앉아" "아주 제대로 해봐. 나는 확실하게 믿고 있어. 최고다. 잘하고 있어"라며 어깨를 토닥거렸습니다.

그리고 이 대통령에게 '잘할 것'이라고 격려를 받은 최 회장이 정작 농협중앙회의 비정규직 250명 해고 방침을 놓고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답변할 때는 '자신은 권리가 없다', '끗발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최 회장은 잘 모르는 일이고 전무가 권한이 있는 것이라는 어이없는 표현으로 원성을 샀습니다. 전무가 다 하면 되는 일을 회장은 왜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로 대변되는 권위주의 시절을 연상하게 할 사건은 이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화제가 된 바 있었습니다.  2007년 6월 당시, 2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탤런트 이덕화 씨가 "각하, 힘내십시오"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었습니다. 권위주의 상징인 각하의 등장으로 국민들은 거부감을 나타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후보는 현재 대통령이 되었고 세상은 권위주의가 한층 넘실거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난 1960년대의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권위주의 상징이 30여년이 지난 2009년에도 부활의 나래를 펴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일반 국민들의 도배글이 쇄도했습니다. 국민들의 울분을 조롱으로 담은 글이라고 합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과학적이고 부도덕한 리플놀이 릴레이]

이번 포스팅은 sprinter님의 '과학적이고 부도덕한 리플놀이'(링크) 라는 릴레이 포스팅의 일환입니다. 즉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크리트(http://crete.pe.kr/16933)님으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았습니다.
간단 규칙:
- “A는 좋다, **하기까지는. B(A의 반대)는 좋다, ##하기까지는”
이라는 무척 긍정적(…)이고 역설적인 접근방식으로 내가 아는 세상의 진리를 설파합니다. 갯수는 제한 없습니다.

- 글이 완성되면 2명 이상의 블로거에게 바톤을 넘깁니다.
- http://sprinter77.egloos.com/tb/2423191 으로 트랙백을 보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바톤을 보내준 사람에게도 트랙백 보내기 바랍니다.

- 마감은 7월 15일까지. (inspired by 이누이트님의 독서릴레이)

이런 규칙에 근거해서, 저는 아래의 4가지 느낀 점을 골랐습니다.

[과학적이고 부도덕한 리플 놀이]
방귀는 사람에게 좋다. 각하가 등장하기 전 까지는.
각하는 고귀한 사람이다. 독재자가 각하로 불리기 전 까지는.

방귀도 권위가 있다. 쌍바위골의 아우성이 시원할 때 까지는.
쌍바위골은 신난다. 독가스에 질식되기 전 까지는.

반말은 즐겁다. 상대방이 불쾌하다고 하기 전 까지는.
불쾌한 반말은 권위주의의 특권이다. 상대방에게 맞아 쌍코피가 터지기 전 까지는.

각하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사진찍는 쇼가 끝날 때 까지는.
사진 찍는 각하는 좋다. 콧구멍 후벼파는 사진을 네티즌이 퍼나르기 전 까지는.

이번 릴레이는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릴레이 바톤을 넘겨받을 블로거 분들을 추천합니다.

White Rain 님
악랄가츠 님

부디 청을 거절치 마시고 긍정과 부정의 역설적인 접근법을 통해 두 분께서 평소 느끼셨던 세상 모습을 나눠주시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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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느덧 30년이 지났습니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그 날이 다시 오면. 그 날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이었습니다. 갓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저는 중학교에 입학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 큰집에서 기거하며 일찍이 서울 유학을 했었습니다.

서울의 한복판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79년 10월 26일에 총격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이웃 아줌마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은 민주화 인사들을 체포하고 스스로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올랐습니다.

장갑차와 군인들의 서울 입성,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저는 중학교를 가려면 늘 청와대 앞 길을 지나갔습니다. 어느 날, 그 길에는 장갑차가 보였습니다. 완전 무장한 군인들도 보였습니다. 5월도 그랬습니다. 당시는 왜 군인들과 장잡차가 청와대 앞에 그토록 많이 지키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사람들은 말이 없었습니다.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중학교 1학년인 저는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습니다.

[1979년 전두환은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고 1980년 체육관에서 대통령에 오른다]

오월이 지나가고 있을 무렵이었습니다. 큰집에 전남대에 다니던 친척 형이 올라왔습니다. 그 후부터는 그 형은 도무지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큰집의 다락방에 늘 숨어지냈던 것입니다. 언제 닥칠지 모를 군인들의 검거를 피해 다락방에 하루종일 숨어있었습니다. 저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왜 그랬을까? 당시는 광주 지역 대학생이면 모두 잡아갔던 시절이었습니다.

문학소년이었던 착한 친구가 5월이 오자 눈물을 흘렸다

1980년대 중반, 저는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전두환 군사 정권 시절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서야 1980년 5월 광주를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대학가에는 소위 '짭새(비밀 경찰)'들이 출몰하던 시기였습니다. 대학생들은 군사 독재에 항거해 독재와 맞서 싸웠습니다. 항상 대학 캠퍼스에는 최루탄이 난무하고 백골단 특수경찰들이 교정에 난입하는 일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대학교 입학식 장에 최루탄이 날아들면서 대학 생활을 처음 시작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1980년 5월 그 날의 광주 비디오도 처음 보게 됐습니다. 대학생들이 몰래 숨어서 비디오를 봐야만 했습니다. 언제라도 군사 정권은 대학생들은 강제로 잡아가던 살벌한 철권통치의 시절이었습니다. 군사정권에 항의하는 대학가의 시위는 5월을 맞아 치열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중반의 5월, 서울의 대학가는 광주출정가가 울려 퍼졌습니다. 당시 1980년 그 시절에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녔던 친구가 있었습니다. 친구는 몇몇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항상 조용히 책만 읽던 문학소년이었습니다. 문인을 꿈꾸던 착한 친구였습니다. 대학가에 계속 되던 시위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던 친구였습니다. 그런 친구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1980년 당시가 떠올랐던 것입니다.

[1980년대 중반 민주화 항쟁이 전국적으로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친구는 1980년 5월,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그리고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친구는 광주 시내에서 의료봉사를 했다고 합니다. 친구는 그 당시 죽어가는 사람들을 목격했습니다. 어린 중학생의 눈으로 우리나라 군인들에게 의해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부상을 당해 피를 흘리거나 죽어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은 큰 충격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몇 년이 지나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5월이 오면서 조용하던 친구는 처음으로 시위에 나섰습니다. 전투경찰은 대학생들이 거리로 나서지 못하도록 대학들을 완전 봉쇄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전투경찰들의 포위망을 뚫고 서울 도심으로 진출했습니다. 군사독재의 타도와 민주주의를 목놓아 외쳤습니다. 군사독재에 대항한 전국 대학가 민주화 항쟁의 시작입니다. 
 
산골의 어머니를 찾아온 대학생들 '배가 고파요'

대학교 1학년 여름 방학이 되었습니다. 대학을 낭만이 아닌 시대적 갈등 속에서 보내고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시골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니의 일을 조금이라도 도와드려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대학생이 된 저에게 처음으로 1980년 어느 날의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첩첩산중에서 농사를 짓고 사시는 어머니가 어떻게 1980년 5월을 알고 계신지 궁금했습니다. 철저하게 5월 광주는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진실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모든 언론도 군사정권에 의해 통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어머니가 저녁 밥을 짓고 있는데 5~6명의 대학생들이 집에 찾아왔습니다. 허름한 복장에 몰골이 말이 아닌 젊은이들었습니다. 그 젊은이들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배가 고픈데 밥 좀 주세요."
"젊은이들은 누구세요?"

"저희는 대학생들입니다. 광주에서 산을 타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요? 학생들."

어머니는 그 대학생들을 통해 5월 광주에서 공수부대 군인들에 의해 자행됐던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알게 됐던 것입니다. 대학생들은 당시 무장 군인들의 총칼로부터 살아남기위해 산등성이를 계속 걸어서 산골 마을까지 왔습니다.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산골에 도착한 학생들은 무작정 마을 이장님 집을 찾아 밥 좀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1980년 광주, 공수부대원들이 한 시민을 곤봉으로 내려치고 있다]

어머니는 제가 대학생이 될 때까지 한번도 광주의 5월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대학생이 되고나서야 처음으로 그 당시의 대학생들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어머니의 그 당시 대학생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왜 1980년 5월이 지나갈 무렵에 큰집의 다락방에 전남대에 다니던 친척 형이 숨어지내야 했는지, 친구는 그 당시 무엇을 목격했고 왜 눈물을 흘리는지 과거의 역사가 하나씩 조각이 맞추어지면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이미 30년이 지난 광주의 그 날 이야기로 제 가슴 속에 남아 있습니다. 치열한 1980년대 중반의 대학 시절을 보냈고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민주화를 쟁취한 세대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과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가정의 가장이자 직장인입니다. 다시 5월 그 날이 오면, 지난 1980년 그 날에 대한 세가지 기억들이 오버랩되어 지나갑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5월 그 날의 역사입니다. 아직도 그 역사는 현재 진행행인지 모를 일입니다.

[참고 글]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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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