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길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여중생이나 여고생 교복을 보면서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과거에는 무심코 지나는 일들이었는 최근에는 남 일 같지가 않습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큰 딸이 여중생이 되면서 아빠로서 학생들의 모습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나 봅니다.

어제 저녁에는 집에 일찍 퇴근해 저녁을 먹고 있었습니다. 여중생인 큰 딸과 초등학교 고학년인 작은 딸이 함께 귀가를 했습니다. 두 딸은 방과 후 같은 영어 학원에 다니는데 모처럼 둘이 같은 시간에 수업이 끝났다는 것. 큰 딸은 교복을 입고 있었는 마른 체형이라서 그런지 교복이 잘 어울리더군요.

그런데 엄마가 큰 딸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너, 또 교복 치마 말아서 입었니?"
"우리 학교 애들, 다들 그래요."

무슨 이야기인가 들어보니 중학교에 갓 입학한 여중생 사이에 교복 치마를 짧게 입는 것이 유행이라는 사실입니다. 교복 치마의 허리 부분을 몇번 말아서 배꼽 위로 끌어올려 입게되면 더 짧아지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큰 딸에게 질문을 하나 던졌습니다.
"그렇다고 치마를 꼭 짧게 입어야 하니?"
"그냥 입으면 치마가 흘러내려서 한번 접어서 입어야 해요. 너무 길면 왕따돼요."

                   위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으로 문근영은 교복이 귀엽고 잘어울리는 모습이다

너무 짧게 입지는 말라고 가볍게 말해 주었습니다. 선생님들도 알지만 그렇게 크게 개의치는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 여중생 1학년들은 그래도 교복 치마가 긴 편에 속하는 것 같더군요. 큰 딸은 교복 치마가 무릎 위를 덮는 정도이니 짧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아내는 연예인들의 하의실종 패션과 같이 다소 민폐를 주는 경우가 문제가 아닌가 하더군요.

연초에 큰 딸의 다리 종아리에 있던 큰 점을 수술했던 적이 있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큰 딸은 교복을 입어야 하는데 걱정을 했었지요. 종아리의 점이 콤플렉스가 될 수 있으니까요. 점이 커서 단순히 레이저로는 안되고 정형수술을 할 정도였지요. 종아리의 점을 수술한 후 큰 딸을 교복을 입고 즐거워 하더군요. 어느새 외모에도 관심을 갖는 나이가 되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중생이 된 딸과 대화를 마친 후 한편으로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너무 교복 치마를 짧게 해서 입고 다니는 것은 학생으로서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었지요. 아내는 요즘 아이들이 교복 치마를 짧게 입는 것은 드라마 영향이 크다고 하더군요. 아이돌 드라마 '드림하이'가 10대 여학생들에게 교복 패션에 영향을 준 것도 크다는 것입니다. 또 여학생들의 교복 치마가 짧아진 이전 드라마로 '꽃보다 남자'도 한 몫 했습니다.

                 연예인들이 드라마에서 과도한 교복 패션을 입어 오히려 악영향을 주기도 한다

실제로 버스정류장에 모여있는 여학생들을 보면 교복인지 미니스커트인지 구분이 안가는 민망 패션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교복 치마를 너무 짧게 입은 여학생들 앞을 지나는 어른들의 표정이 우려에 가득찬 모습도 보게 됩니다. 드라마의 교복 패션이 현실이 된 셈일까요. 무릎 위로 치마가 올라가 허벅지가 드러난 여학생들의 미니스커트 교복 패션은 다소 심하지 않나 싶습니다.

교복 치마를 짫게 하기 위한 여학생들의 노력도 여러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교복 치마를 말아올리는 것은 기본입니다. 평소 자주 만나는 제 친구는 아예 딸의 교복을 세탁소에 맡겨 수선해 주었다고 합니다. 친구의 딸이 교복 치마를 더 짧게 해달라고 성화여서 적정선을 합의해 치마를 좀 더 짧게 수선해 준 것입니다. 사실 10대 시절을 돌이켜보면, 멋을 내고 싶고 남들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여학생들의 경우 치마가 짧아야 다리가 길어보이는 효과가 있으니 유혹이 심하겠지요.

또한 어떤 여학생들은 교복을 두벌 준비해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학교에 갈 때 입는 평범한 교복과 방과 후에 입는 미니스커트 교복입니다. 학교에 따라서 선생님들이 교복 치마 길이에 대해 엄격한 단속을 하자 이에 반발한 여학생들이 별도의 교복을 마련한 것이지요. 학교 수업이 끝나고 학교 교문 밖을 나오면 교복을 갈아있는 식입니다. 선생님들의 고충도 많습니다. 학교 교문 앞에서 매일 단속을 해야 하고, 학생들의 눈속임은 더 심해지고 있어 곤혹스럽겠지요.

                     드라마의 영향과 더불어 교복업체들의 상술은 어린 학생들의 유행을 부추겼다

그렇다고 선생님들이 과도한 교복 치마 착용을 모른 체 할 수도 없습니다. 단속을 해도 딱히 처벌을 하기도 어렵습니다. 교육청에서 일괄 규제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각 학교 재량에 맡겨 두었기 때문에 학교 마다 고민이 많겠지요. 학교 자체 규정이 있다고 해도 일일이 학생들의 복장 검사를 하면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도 있어 선생님들만 곤혹스럽습니다. 요즘 학생 인권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어 학교와 학생 사이에서 방황하는 선생님이 될 정도이지요. 감수성이 예민한 10대 학생들의 반항심만 키울 수도 있고 이래저래 걱정이지요.

그리고 교복 업체들의 상술도 문제입니다. 드라마 '드림하이'가 10대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자 아이돌이 입은 교복을 광고에 삽입해 현혹하기도 했습니다. 드림하이 등장한 아이돌 가수들은 무릎 위 허벅지까지 나오는 교복 치마를 입어 너무 짧은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요. 교복 업체들은 '다리가 길어지는 교복' '몸매가 날씬해 보이는 교복' 등을 광고 문구로 학생들을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교복 제작시 학교별 교복형태는 무시하고, 허리가 잘록하게 들어가고 치마의 폭을 조절할 수 있는 교복을 생산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한국 여학생들의 짧아진 교복 치마 패션이 일본 교복 문화의 영향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일본 여학생들은 오래 전부터 미니스커트 수준의 교복 치마가 유행이었습니다. 다소 저질스럽고 불량한 교복 문화가 일본에서는 일반화된 경향일 정도입니다. 짧은 교복 치마에다가 신발은 뒤축을 꺽어신고 다니고 상의도 가슴과 허리라인에 꽉 끼는 교복을 입더군요. 이런 막나가는 일본 여학생들을 보면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무비판적인 일본 문화 따라하기 모방은 바람직하지 않겠지요.

더보기

               일본은 오래 전부터 짧은 교복 치마에다가 신발을 꺽어신는 민망 패션이 유행했다

적절히 자신의 개성을 살리고 청순한 10대 여학생들 본래의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법입니다. 그렇지만 10대 시기는 사춘기라서 규정에 대한 반항심도 작용하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호기심도 클 것입니다. 치마를 짧게 입고 싶고 화장도 하고 싶은 심리겠지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은 생각에 어른들을 모방하는 것이지요. 어른들 입장에서는 학생다운 모습을 원하지만 그 만큼 서로 생각의 간극이 있는 셈입니다.

일반적인 교복 착용 방법

남학생 : 상의는 흰색 폴라티 를 입고 조끼와 자켓을 입습니다. 목 폴라티가 아니어도 무늬없는 흰색 T일 경우 허용합니다. 하의는 허리띠를 반드시 하고, 흰색 T셔츠는 바지 속에 넣어 단정하게 입어야 합니다.

여학생 : 상의는 흰색 블라우스와 리본을 권장하나 흰색 폴라T도 허용합니다. 하의는 흰색 스타킹이나 흰색 쫄바지의 착용만 허용함, 발목까지 닿는 양말이나 검정 스타킹은 허용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중학생 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걱정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유행처럼 번지는 교복 패션을 따라하지 않으면 학생들 사이에서 왕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규칙이나 원칙을 지키면 오히려 왕따로 몰릴 수 있다는 것은 적절치는 않기 때문이지요. 물론 10대 시절에는 또래 집단이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사회가 원칙과 반칙이 넘쳐나는 일들이 많다보니 어린 학생들도 안좋은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가 우려도 됩니다.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학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학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보다 관심이 필요할 것입니다. 무조건적으로 안된다는 강요보다는 왜 그렇게 교복 치마를 짧게 하고 싶은지 대화를 통해 이해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겠지요. 학생들은 공부나 성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교복은 일제 시대 이래 권위주의 시절의 유물일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 개성을 무시하고 모두 같은 복장을 착용하게 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압박일 수 있는 것이지요. 학교와 학부모 그리고 학생을 비롯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라나는 학생들이 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다 따뜻한 관심과 더불어 바람직한 방향의 노력이 필요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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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새벽에 눈을 떴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습니다. 그 전 날, 일찍 잠이 들어 평소 보다 빨리 잠에서 깬 것입니다. 냉장고의 물을 꺼내 마신 후 거실 탁자 위에 컵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런데 탁자 위에 자명종 시계와 그 앞에 쪽지가 있었습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의 메모였습니다. 저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갑자기 감동이 밀려와 눈물이 날 것 같더군요. 두 딸은 아내가 자매들과 해외여행을 간 사이 대신해 아빠의 출근과 아침 밥상을 걱정해준 메모였습니다. 큰 딸은 초등학교 6학년, 작은 딸은 4학년입니다.

식탁 위 알람시계와 메모지의 정체는?

그 메모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아빠! 알람 끄려면 알람 뒤에 있는 on 스위치를 off로 바꾸세요.
그리고 아침 드실거면 저희 깨우세요. 그럼 드릴게요. We ♡ Dad
"


두 딸이 아빠를 위해 알람 시계를 준비해 두고 그 앞에는 아침 식사를 드릴 것이라는 메모도 있었다

역시 딸들은 다르구나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없는 사이에 그 역할을 대신해 아침 잠을 깨워주고 식사까지 챙겨주려는 마음씨가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아빠들이 딸 아이를 선호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그 날은 조용히 출근을 했습니다. 저는 새벽 6시경 일찍 출근을 합니다. 두 딸이 곤히 잠자는 모습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아내는 캄보디아로 해외여행을 떠났습니다. 세 자매가 함께 갔습니다. 그 이유는 큰 언니의 갑작스런 죽음 때문이었습니다. 1년 전, 겨울에 큰 언니가 암과 투병하다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내와 자매들은 큰 언니의 죽음 앞에 슬퍼했습니다.

아내가 밤 12시에 슬프게 눈물 흘린 이유는?

얼마 전, 특별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와 아내가 밤에 TV를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책도 함께 읽고 있었습니다. 저는 TV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침실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조금 후, 이상한 울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계를 보니 밤 12시였습니다. 이상한 울음소리에 오싹했습니다. 울음소리가 통곡처럼 들렸습니다.

제가 여기저기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보니 침실이었습니다. 침실의 불이 꺼져 있었습니다. 불을 켜보니 아내는 이불을 둘러쓰고 울고 있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왜 그래? 내가 뭐 실수했어?"
"아니야. 그냥 혼자 있게 해줘."

"갑자기 우니까 걱정돼 그래. 혹시 내가 TV 돌려서 그런 거야?"
"아니라니까. 오늘은 언니의 기일이야. 언니한테 미안해서 그래. 혼자 있게 좀 해줘."


저녁에 아빠가 퇴근하자 두 딸은 직접 압력밥솥에 밥을 했고, 냉장고의 반찬과 함께 식탁을 차렸다 

아내는 흐느껴 울었습니다. 저는 그냥 거실로 나왔습니다. 그랬습니다. 언니의 기일이 되자 아내는 언니 생각에 눈물이 났던 것입니다. 살아 있을 때 더 잘해주지 못한 것에 대해 회한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아내와 자매를 비롯 가족들은 큰 처형이 모셔진 납골당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세 자매는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지요. 아내는 시계나 휴대폰도 집에 두고 여행을 갔습니다. 그냥 모처럼 속세를 잊고 여행을 다녀오기로 한 것이지요.

아빠를 위해 초등학생 두 딸이 차려준 밥상

아내는 그 동안 제가 입을 셔츠를 여러개 다림질해 두었습니다. 두 딸은 모처럼 엄마가 여행을 다녀오도록 반갑게 이야기해 주었지요. 물론 저도 아내의 마음을 알고 있던 터라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아내가 해외여행을 하는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자매들은 앙코르와트를 비롯 여러 곳을 여행하겠지요. 요즘같이 강추위가 기승을 부릴 때 따뜻한 나라 여행이라서 좋을 듯도 합니다.

그러나, 아내의 빈자리가 커보이기는 했습니다. 저녁에 퇴근하니 두 딸이 아빠를 위해 압력밥솥에 밥을 직접 만들어 밥상을 차렸습니다. 큰 딸은 햄을 구웠는데 조금 타긴 했지만 맛있었습니다. 저는 계란 후라이를 만들었습니다. 찬은 많지 않지만 두 딸과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는 행복했습니다. 이럴 때는 아들 보다 딸이 훨씬 좋지 않나 싶더군요. 큰 딸은 1년 전 겨울에 아빠를 위해 뜨게질로 목도리를 떠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이 딸가진 부모의 기쁨이겠지요. 


큰 딸은 햄을 굽고 반찬을 준비했고 작은 딸은 밥을 만들어 밥상을 차려 아빠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 

아내가 큰 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털고 즐겁게 여행을 하고 돌아왔으면 합니다. 결혼 후 세 자매가 따로 여행은 처음일 것입니다. 아내가 없는 빈자리, 두 딸이 있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도 아내의 빈자리가 허전합니다. 주말 토요일에는 두 딸을 위해 맛있는 외식을 할 예정입니다. 그러면 아내가 돌아오는 일요일이 되겠지요. 그 땐 온 가족이 둘러앉아 그간 이야기 보따리를 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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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큰 딸이 언젠가부터 뜨게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잠깐 하는 줄 알고 스쳐지나쳤습니다. 그러다가 큰 딸이 목도리 뜨게질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큰 딸이 무슨 일인가 궁금해 질문을 던져 봤지요.

"누구에게 선물할 거니?"
"아직 말할 수 없어요."

"혹시 아빠에게 선물하려고?"
"아니에요. 아빠는 엄마가 작년에 선물했잖아요."

"그렇기는 하네. 그럼 누굴까? 남자친구 생겼니?"
"아니라니까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그렇게 큰 딸과 대화는 끝났습니다. 저는 누구에게 선물할 것인지 궁금했지만 참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여러 날이 지났습니다. 그 때서야 큰 딸은 이모에게 선물할 것이라 모두에게 비밀로 했다고 하면서 웃더군요. 이모가 아파트 아랫층에 살고있어 사전에 알려지는 것이 싫었던 것이지요. 이모에게 깜짝 선물을 하고 싶었던 큰 딸의 마음을 생각하니 기특해 보였습니다.

아내와 초등학생 딸이 뜨게질하는 진짜 이유 알고보니



이미 저는 아내에게 지난해 뜨게질 목도리 선물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직접 뜨게질한 것이라 소중하게 다루게 되더군요. 이번에 아내는 자신의 목도리를 만들었더군요. 아내는 작년에 장모님 목도리를 비롯 여러개를 뜨게질로 만들어 선물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목도리는 없었던 것이지요. 작은 딸도 작년에 스스로 자신의 목도리를 뜨게질로 만들었으니 이제는 가족 모두가 뜨게질 목도리가 있는 셈입니다.

그런데, 또 몇 일이 지났는데 아내와 큰 딸은 뜨게질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얼마나 뜨게질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증이 들었습니다. 금방 그만 둘 줄 알았는데 매일 아내와 큰 딸의 뜨게질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목도리가 아니라 작은 털모자였습니다. 하나도 아니고 여러개를 계속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내와 큰 딸에게 물었습니다.


"요즘 뜨게질 삼매경에 빠진 것 같네. 무슨 일 있어?"
"아,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로 했어."

"웬 아프리카? 더운 나라인데 털모자가 필요해?"
"응. 아프리카 신생아들 중 저체온증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은 것 몰라."

"그렇구나. 큰 딸도 신생아 살리기 동참한 거야?"
"예, 아빠. 저도 아프리카 아이들 돕기로 했어요. 겨울 방학 동안에요."

"그래. 좋은 일 하는구나. 어떻게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를 하기로 했어?"
"학교에서 선생님이 뜨게질하는 것을 보고 좋은 일을 알게 됐어요."



아내와 딸이 뜨게질하는 이유를 알게 된 후 사실 마음 속으로 깜짝 놀랐습니다. 아내도 그렇지만 어느새 큰 딸이 불쌍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되었다니 대견했습니다. 큰 딸은 초등학교 6학년생입니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겠지요. 겨울방학을 이용해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에 참요한 것입니다. 아내와 딸이 천사처럼 보였습니다.

좀 더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궁금해 자초지종을 아내에게 물어봤습니다. 아내는 학교에 도서도우미로 자주 자원봉사를 다니곤 했습니다. 그런데 도서관 선생님이 뜨게질하는 것을 우연히 목격하게 됐답니다. 선생님에게 뜨게질하는 이유를 듣게 되었는데 감명을 받게 된 것이지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기술이나 기능을 기부해 불우이웃돕기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 설레이기 했지요.

아프리카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에 참여하게 된 배경은?

아내는 선생님의 마음씨에 감동받아, 학교에서 돌아온 큰 딸에게 학교 선생님 이야기를 했답니다. 그랬더니 큰 딸은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대부분 뜨게질을 한다고 했습니다. 특히나 6학년 선생님들은 모두 뜨게질을 한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6학년 어느 반은 선생님과 학생들 모두가 뜨게질로 아프리카 어린이 돕기에 나섰다는 이야기도 들려 주었습니다.



아내는 큰 딸에게 제안했습니다.
"우리도 아프리카 어린이 살리기 해볼까?"
"엄마, 좋아요. 저도 뜨게질하고 싶었는데 공부하라고 할까봐 말을 못했어요."

"공부도 열심히 하고 뜨게질도 열심히 하면 되잖아."
"알았어요. 엄마랑 함께 해요."

아내와 큰 딸을 그렇게 의기투합했습니다. 아내와 큰 딸은 하루도 쉬지않고 뜨게질을 했습니다. 사실 뜨게질을 하려면 털실도 사야하고 시간도 기부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태어난지 얼마 안돼 죽어가는 아프리카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아내와 큰 딸은 뜨게질을 열심히 해왔던 것이지요.

저는 소책자가 있어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이 무엇인가 살펴봤습니다. '당신에게 주고싶은 선물'이란 제목으로 캠페인 소개와 모자뜨기 요령 등이 실려 있더군요.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에서 모자캠페인(moja.sc.or.kr)에서 진행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정성껏 떠준 모자는 에티오피아, 말리, 네팔 등의 아기들에게 전해져 생명을 살리게 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이란 저체온증으로 사망하는 영유아를 살리기위해 후원자가 모자를 직접 떠서 아프리카 등 제3세계 국가 해외 현지에 보내주는 캠페인입니다. 매년 전세계 200만명의 아기들이 자신이 태어난 날 사망하고, 400만명의 신생아들이 태어난지 한 달 안에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아기들의 사망원인은 폐렴, 설사병 등과 같이 쉽게 예방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었습니다.

사실 아기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탯줄 자르는 칼, 저렴한 항생제 등과 같이 기본적인 의료기구나 의약품만 있어도 됩니다. 그리고 저체온증을 막아줄 털모자만 있어도 아기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생아 모자 보내기 등으로 아기들의 생명 70%는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생아 살리기 모자뜨기 캠페인은 작은 노력의 시작인 것입니다.

신생아 살리기 캠페인에 참여하는 방법은 아주 쉽습니다. 털모자를 뜰 수 있는 재료가 담긴 키트를 구입하여 모자를 뜨고 세이브더칠드런에 보내주면 전세계 영유아들에게 전달되는 것이지요.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3년간 개인 8만여명, 단체 500여곳이 참여해 20만개 가량의 모자를 라오스, 캄보디아, 앙골라, 말리 등 4개국의 아기들에게 전달돼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선생님의 실천 하나가 나비효과가 되어 학생과 학부모도 동참

이제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말리, 네팔 등에 모자를 보내줄 계획이라고 합니다. 에티오피아는 1000명 중 104명, 말리는 1000명 중 191명, 네팔은 1000명 중 48명의 어린이가 생후 5살 이전에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이번 겨울에 떠준 모자는 3~4월경에 에티오피아, 말리, 네팔의 신생아들에게 전달되는 것이랍니다. 시크릿가든의 현빈이 말한 것을 비유하자면 '한 땀 한 땀 떠서 만든 모자'가 소중한 아이들 생명을 구하는 셈이지요.

그런데 아프리카와 같이 더운 지역에 왜 털모자가 필요할까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말리 등 지역은 평균 기온이 높지만 밤낮 기온차가 매우 심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 저체온증은 폐렴 등 여러 합병증을 유발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 증상입니다. 따라서 아기를 따뜻하게 보온해줄 모자가 필요한 것이지요.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런 모자를 캥거루 케어(Kangaroo Care)라고 부른답니다. 캥거루 케어 털모자는 아기의 체온을 약 2도 정도 높여줘 저체온증을 막아준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털모자 하나가 신생아의 생명을 살리는 것이니 뜨게질 참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합니다. 아내와 큰 딸은 요즘도 매일 일정 시간 이상은 뜨게질을 합니다. 아프리카 등 신생아들의 저체온증을 막아줄 털모자를 뜨고 있는 것이지요. 아내와 딸이 천사같이 보였습니다. 그 보다 앞서 초등학교 선생님들의 아름다운 선행과 솔선수범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선생님들의 모자뜨기 캠페인 참여 덕분에 우리 가족도 저개발국 신생아들의 생명을 살리는 인류공동체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실천하게 됐으니까요. 

선생님들의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이 서로 합심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모색과 실천을 해나간다면 세상은 희망과 행복으로 밝아질 것이라 믿어봅니다. 학부모들이 '내 새끼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다른 아이들을 함께 생각하는 '공동체적 시각'으로 세상의 미래를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아내와 딸이 함께 털모자를 뜨게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좋은 선생님들이 있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여전히 희망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사랑과 실천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선생님들이 있어 세상은 여전히 희망과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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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추석을 앞두고 아내의 성화에 못이기는 척 자발적으로(?)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송편을 만들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송편을 만드는 것이라 저나 두 딸도 한결 마음이 가벼웠습니다. 사실 요즘은 송편을 사먹는 것이 편리하다보니 대부분 가정은 직접 만들어 볼 기회가 적은 것 같습니다.

얼마 전부터 아내는 올해 추석에도 송편을 집에서 만들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저는 살짝 걱정도 했습니다. 송편에 들어가는 콩이나 밤 등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었지요. 실제 아내 사온 콩 가격만도 한 접시에 8천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내가 송편에 대한 관심이 많아 송편 만들기를 강행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저녁, 아내는 쌀을 불려서 갈아만든 쌀가루로 반죽을 준비했습니다. 아빠는 송편을 만들기 적당한 수준으로 반죽 만들기 작업을 했습니다. 반죽은 꽤나 힘이 들거든요. 아빠가 힘든 기색을 보이자 둘째 딸이 나섰습니다. 둘째 딸이 힘이 장사이거든요.(^^) 딸아이들은 아주 신난 표정이었습니다.

드디어 반죽이 완성되고 본격적인 송
편 만들기에 나섰습니다. 딸아이들은 이미 송편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었던 터라 별도 설명이 필요없이 송편 만들기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모양을 예쁘게 만드는데는 어려움이 있어 보였습니다.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잘라서 해야 하는데 너무 크게 해서 왕만두처럼 되기도 했습니다. 송편 속에 들어가는 콩, 밤, 깨 등을 알맞게 넣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넣어 송편이 터지는 경우도 있었지요.


우선 아내가 준비한 쌀가루로 반죽을 만들고 나서, 아빠와 두 딸은 함께 송편 만들기에 나섰다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 화기애애하게 송편을 만들다 보니 아빠와 딸아이 사이에 더욱 가까워진 것 같습니다. 아이들도 아빠와 함께 송편을 만드는 것이나 아빠가 엄마 일을 돕는 모습을 보니 즐거운 표정이었습니다. 추석 명절의 의미는 가족의 정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더불어, 추석 차례상에 정성을 다해 만든 음식을 올릴 수도 있고 친척들이나 이웃들과 나눌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송편을 만들면 좋은 점은 무엇인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추석 명절의 전통의 의미를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바쁜 현대생활을 지내다보면 추석 한가위 명절이 되어도 그 의미를 모르고 연례 행사로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특히나 아이들은 추석 명절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적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이 직접 추석 송편을 만들어보는 것은 추석 전통을 피부로 체험할 수 있어 좋습니다. 산 교육인 셈입니다.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도 직접 송편을 만들며 아빠와 함께 했던 추억은 진정한 추석 명절의 의미를 되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두 딸이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송편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주며 전통을 이어갈 수도 있겠지요.

본격적인 송편을 만들기 위한 반죽 속에 들어갈 콩, 깨, 밤 등이 준비되어 있는 모습이다

온 가족이 모여 송편을 만들며 화목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실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는 추석 음식은 많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추석 송편 만들기는 아이들도 참여할 만들 수 있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온 가족이 함께 모여서 웃음꽃을 피우면 송편을 만들며 멋진 추억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족이 하나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함께 즐기며 동질감을 느낄 때 더 많이 느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송편 만들기는 아이들에게 가족애를 심어줄 수 있는 시간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아빠가 평소 직장생활을 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적었지만 송편을 빚으면서 아버지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아이들의 손재주를 키워주고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송편을 만들어보는 것은 교육적 효과도 큰 것 같습니다. 우리가 먹는 전통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이해도 넓힐 수 있고 추석 명절 음식에 대한 의미를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송편은 손가락을 잘 활용해 만들기 때문에 아이들의 손재주를 키워주고 두뇌 발달에도 도움이 됩니다. 아울러, 아이들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 수 있게 하여 자립심을 키워주는 효과도 큰 것 같습니다. 두 딸이 학교에 가서도 친구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자랑할 수도 있겠지요. 게다가, 아이들 스스로 만드는 기쁨과 먹는 즐거움도 있겠지요.


송편 만드는 방법(간편 순서)

1) 쌀가루를 사와서 반죽을 한다


2) 송편 속(콩, 밤, 깨 등)을 준비한다
  * 밤은 찐 다음 잘게 만들고, 콩은 깐 상태 그대로, 깨는 약간 갈아서 설탕과 섞은 상태로 만든다


3) 반죽을 알맞는 크기로 잘라서 그 안에 각각 송편 속을 넣고 예쁘게 만든다

*사진이 작년 것이라, 송편 만들기에는 작년에 참여한 처제와 아랫 동서의 아들도 포함돼 있네요.

아이들이 제각각 창의력을 발휘해 만들다보니 갖가지 모양들의 송편이 만들어졌습니다. 콩을 반죽 속에 넣지않고 반죽 바깥에 붙여 자동차 모양이나 인형 모습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이 깔깔대며 즐겁게 만드는 것이 좋았던 한 때 였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추석 송편이 완성됐습니다. 자~ 함께 송편을 드셔 보아요. ^^

어떤가요? 알고보면 간단하지 않나요. 여러분들도 올해 추석에는 가족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송편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올해는 추석 명절 연휴기간이 길어 함께 송편 만들기 제 격인 듯 합니다. 시골이라면 가까운 동산에 올라가 소나무 솔잎을 따다가 송편을 얹어놓는 것도 좋겠네요. 은은한 솔향이 송편과 어우러져 좋지요. 모두 행복한 추석 명절 연휴 만드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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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막내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형, 애 낳았어."
"축하한다. 너도 아빠가 됐구나."

"고마워. 딸인데 애가 너무 예뻐."
"잘 키워라. 애 엄마에게 서운하지 않게 잘 보살펴라."

"친정에 한 달 정도 몸조리하러 갈 거야."
"그러냐. 한달 동안 독수공방하겠네."

그 후 막내가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막 탄생한 아이의 사진이었습니다. 막내는 너무 신기한 듯 연신 애 자랑을 하면서 감격스러워 했습니다. 이제 막내도 결혼 후 애까지 낳았으니 가족들끼리 모이면 더욱 화기애애할 듯 합니다.

막내 삼촌부부가 애를 낳았다는 소식에 기뻐한 것은 부모님 뿐만 아니라 저희 두 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희 두 딸을 제외하고 그 동안 동생들이 전부 아들만 낳았던 터라 막내가 딸을 낳았다는 소식에 더욱 좋아했습니다. 두 딸아이는 가족 모임을 하면 자신들이 아이와 놀아주겠다면서 즐겨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막내의 아내, 제수씨가 친정에 한달간 머무른다는 이야기에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막내, 너도 모계사회의 일원이 되는구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사실 저도 장모님이 첫 애를 보살펴 주셨습니다. 지금도 장모님은 저희가 사는 아파트 바로 인근에 살고 계십니다.

어제 지인들과 점심 식사를 하면서 결혼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였습니다. 선배 C는 근처에 처가가 있다고 했습니다. 선배 C는 미혼인 후배 K에게 결혼생활을 편하게 하는 법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내에게 장인장모 식사를 사주라고 말하면 좋아."
"왜 그렇죠?"

"결혼 생활의 지혜인데 아내에게 잘 하는 것도 좋지만 장모님에게 잘하면 자연스럽게 아내도 좋아하게 돼. 지금은 다시 모계사회가 된 것 같아. 아내에게 열번 잘하는 것 보다 장모님에게 한번 잘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야."
"그렇군요. 저는 개콘에 나오는 남보원(남성인권보장위원회) 이야기가 너무 가슴에 와닿아요."

"그렇기는 한데,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잖아. 현명한 방법은 장모님을 잘 모시는 거야. 장인장모를 잘 모시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고마워 한다고. 반찬이 하나라도 달라질 거야. 아내에게 야단칠 때도 왜 장인장모에게 제대로 못하냐고 하면 아무 소리도 못한다니까."
"덕분에 많이 배웠어요. 앞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저도 선배 C이 이야기에 상당 부분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장모님이 가까운 곳에 살고 계셔 도움이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평상시 잘 못하는 편이지만 장모님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만사 제쳐두고 가장 먼저 해결해 주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내는 자연스럽게 남편에게 고마워 했습니다.

어떤 조사에 의하면 맞벌이 부부의 경우 자녀 양육을 처가 또는 친정에 맡기는 비율이 친가나 시댁 보다 훨씬 많다고 합니다. 친정 부모님에 대해서는 경제적 부담도 적고 심리적으로 굉장히 가깝기 때문에 육아 문제같은 것을 많이 의존하는 경향이 높은 이유라는 것입니다. 육아에 대한 외할머니 역할이 커지면서 가족 문화도 외가 위주로 바뀌고 있는 셈입니다.
 
남자의 입장에서도 아내가 마음이 편하면 아이나 가정에도 도움이 되고 자신도 편하기 때문에 처가와 가깝게 지내게 되는 듯 합니다. 대체로 장모는 사위에게 음식 하나라도 더 해주려 하는 마음이 강한 편입니다. 장모의 사위 사랑이 곧 가정의 평화라고 해야 할까요? 아내도 대개 친정 엄마와 터놓고 이야기를 하는 사이이다 보니 장모를 잘 모시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우리사회는 물론 전세계가 신모계사회로 점차 변하고 있습니다.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든지, '딸이 왕 재산'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 부부들도 딸을 선호하고 딸 키우기 열풍이 불고 있다고도 합니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이 '아들은 사춘기가 되면 남남으로 변하고, 군대 가면 손님으로 변하고, 장가가면 사돈이 된다'는 우스개 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성들은 여권신장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과 배려를 해야 할 것이고, 여성들은 남성들을 구시대 가부장제의 유물 같은 대상자에서 협력대상자로 이해의 폭을 넓혀가야 할 것입니다. 여성의 책무 또한 무거워진 셈입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 함께 손잡고 행복을 가꾸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막내 남동생도 앞으로 장인장모와 더욱 가까워질 듯 합니다. 소위 신모계사회는 아이의 육아를 처가에서 맡게 되면서부터 변하게 된 풍속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곧 결혼 후 남자와 여자 모두가 행복해지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장모에게는 아이의 육아가 고통스런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이 돌보는 일이 가장 힘든 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지요. 외손주 양육에 사생활을 빼앗기는 장모의 반란도 있다고 하니까요. 

사실 부모님 입장에서는 서운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현실은 점점 장모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모계사회가 형성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막내 남동생도 가족 모임에 나타나면 장모 이야기가 하나의 주제가 되겠지요. 아들이 부모를 모시는 시대는 가고, 딸이 부모를 모시는 새로운 시대에 접어든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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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지난 주말에 지나가는 말을 건넸습니다.

"아이들 운동회가 화요일에 있어. 큰 딸은 마지막이네."
"앗, 큰 애가 6학년이니까 마지막 운동회구나."

순간 잠시 상념에 빠졌습니다. 큰 딸아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도록 운동회에 거의 참석을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운동회가 열린다는 날도 회사에 일이 있어 참석이 힘들 것 같아 잠자코 있었습니다. 그 동안 회사 업무 핑계로 초등학교 운동회는 무관심하게 보냈던 것이 약간 후회도 됐습니다.

대개 유치원 운동회는 토요일에 열렸던 터라 대부분 참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운동회 참석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운동회는 평일에 열려 회사 업무가 있다보니 참석을 늘 못했습니다. 다음 번에 참석하면 되지 않나 하면서 매년 넘기다보니 벌써 큰 딸이 6학년이 된 것이었습니다.
           ▲ 초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앞으로 나란히'란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는 모습이 귀엽다

큰 딸은 지난 4월에 경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아빠 엄마와 처음으로 2박 3일을 떨어져 지냈던 것입니다. 처음으로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수학여행이라 큰 딸이 아빠 엄마 생각을 했을까 혼자서도 잘 지낼까 고민했는데 큰 딸은 씩씩하고 밝은 웃음으로 화답했습니다.

"아이들과 재밌게 놀았어요. 놀다보니 생각이 안났어요."

겉으론 이제 다 컸구나 생각하면서도 속으로는 이제 큰 아이도 부모 보다는 친구가 더 좋은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조금 아쉽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아이들이 크면 부모 품을 떠날 때가 있기 마련인데 이제는 그런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에서 큰 아이의 마지막 운동회를 생각하다가 결심했습니다. '큰 딸아이에게도 다시는 오지 않을 운동회'로서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회사에서 점심 약속과 회의 등을 연기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대체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어제 4일은 연차 휴가를 냈습니다.

더보기


요즘 초등학교 운동회는 보통 2년에 한번씩 열리고 그 사이에는 학예회 예술제 행사를 했습니다. 올해는 가을 대운동회 대신에 학예회가 열리는 해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제는 어린이날 기념으로 학교에서 소운동회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 동안 아내는 남편이 회사 일로 인해 운동회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이해해주면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설명해주었기에 가정에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마다 가슴 아픈 일이 많았습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일찍 유학와서 큰집에서 공부하던 시기라서 운동회에는 늘 혼자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부모가 맛있는 점심 메뉴도 싸왔지만 저는 외톨이였습니다. 큰어머니가 도시락을 싸주기는 했지만 장사를 하던 큰어머니인지라 운동회에 직접 참석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운동회에 못가는 부모와 참석하는 아빠의 시대 변화

저의 운동회 기억을 더듬어보면서 이번 운동회에는 큰 딸을 위해서 꼭 참석하겠다고 마음먹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회사의 상사도 자신의 아이들에게 못해줬던 일을 회상하며 회사 일은 생각하지 말고 운동회에 꼭 참석하라고 성원해 주었습니다. 제가 어쩌면 구세대와 신세대의 중간에 '낀세대'이어서 그런지 과거 선배들의 인생을 닮았으면서 요즘 젊은 후배들의 변화도 항상 느끼게 됩니다. 과거 선배들은 가정 보다는 회사 일에 매진했지만 지금 후배들은 가정 일을 잘 챙기는 편입니다.   

어제 아침에 아이들이 먼저 학교에 갔습니다. 엄마가 두 딸에게 아빠가 운동회에 참석할 것이라고 했더니 작은 딸의 대답이 걸작이었답니다.
"아빠가 오시면 달리기가 잘 안될 것 같아요."

아빠가 운동회에 못가다보니 아이들에게 아빠의 존재가 응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방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더 자주 아이들과 놀아주고 함께 해주지 못한 것 같아 반성도 됐습니다.

 ▲ 앞으로 초등학생이 될 꼬마 여자 아이(좌)가 오빠 언니들이 운동회를 하는 동안 혼자서 놀고 있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조용히 가서 이름을 부르자 큰 딸이 밝게 웃음을 던지며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작은 딸은 조금 쑥스러운 표정이었지만 속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큰 딸은 쾌활한 편이고 작은 딸은 조금 내숭이 있는 편이라 차이가 있습니다.

오랫만에 만국기가 걸린 운동장을 보니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앞으로 나란히' '열중 쉬어'하는 모습이 귀여웠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은 발육이 좋아서 거의 어른 키와 몸집을 갖고 있는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 줄다리기, 계주 달리기, OX퀴즈 등 다양한 운동회 프로그램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옛 추억을 더듬게 되었습니다.

어린이 운동회에는 왜 청군 백군만 있을까?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둘로 나눌 때 청색과 홍색을 사용했습니다. 씨름의 샅바가 청색과 홍색인 것이나 전통혼례의 경우 청실홍실이 그런 사례입니다. 태극기가 가운데 원이 청색과 홍색의 조화인 이유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청일점 홍일점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색과 홍색으로 구분하는 전통 유래인 것입니다.

과거 30년전 모 방송사의 일요일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명랑운동회가 청팀 백팀으로 나누어 경기를 했던 것도 작용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대개 방송사의 연예인 대결 프로그램이 청백전으로 열렸던 것을 기억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청백전이 일본에서 유래된 것이란 설도 유력합니다. 일본에서는 홍백전이라고 하여 홍팀과 백팀으로 나누어 경기를 하는 일이 전통적이라 합니다. 그러나 일제시대 홍백전이 우리나라에 전해졌는데 해방 이후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면서 빨간색에 대해 빨갱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조되면서 홍색 대신에 청색이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결국 수십년간 굳어진 청군 백군의 운동회는 일제시대 오욕의 역사는 물론 냉전이데올로기와 남북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셈입니다. 사실 아직도 흑백논리로 좌파 운운하는 분열주의자들이 활개치는 현실을 보면 여전히 우리는 60년대 독재시대에 사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운동회가 청군 백군이라는 이념에 머물지 말고 다양한 컬러의 색상을 활용하거나 동물이나 꽃이름의 팀과 같이 다차원의 창의적 생각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가령 우화에 나오는 동물이름에 착안해 토끼팀 거북이팀이나 우리나라 꽃을 상징하는 무궁화팀 진달래팀과 같이 말이지요. 

           ▲ 어린이 운동회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선거운동 명함을 돌리는 열혈 운동원(?)도 있다

모처럼 초등학생들의 운동회를 보면서 상쾌하고 즐거웠습니다. 그렇지만 운동회를 보는 동안 밝고 싱그러운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이 마음 한 켠에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소운동회 규모로 열려 예상 보다 빨리 끝나서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큰 딸의 마지막 운동회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녁에는 두 딸아이와 함께 아파트 근처에 있는 일명 대패 벌집 삼겹살집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두 딸은 연신 싱글벙글이었습니다. 큰 딸은 달리기에서 4등을 하고도 즐거운 표정이었고 둘째는 신발이 벗겨져 2등했다며 아쉬운 소감을 말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이기적인 이익만을 위해 거짓과 위선이 판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 암담하기도 했습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잃지않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위해서 어른들이 더 노력해야 할 일이 많다는 생각을 한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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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겨울이 언제 끝나나 싶을 정도의 매서운 강추위가 강타하고 3월 함박눈 폭설과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더니 봄은 끝내 우리 앞에 화려한 자태를 드러냈습니다.

봄이 왔건만 봄같지 않던 고난의 날들을 이겨내고 봄은 대자연의 향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일요일, 주말농장 텃밭을 살펴보기 위해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가족들과 산책 겸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두 딸아이도 올해는 자신들만의 텃밭을 일구고 싶다고 해서 작년 보다 두 배의 텃밭을 계약하고 왔습니다. 아이들이 과연 제대로 텃밭에 채소를 재배하고 관리할지 미지수입니다. 처음에 파종만 하고 나중에 잡초제거 김매기를 비롯한 허드렛일은 아빠 엄마의 몫일 될 공산이 크지만 아이들의 꿈과 소망을 들어주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주말농장은 어떻게 지난 겨울을 이겨내고 봄의 전령사와 만나고 있을까 궁금해 텃밭을 둘러 보았습니다. 그러면, 봄의 전령사들을 만나러 가볼까요.

비닐 하우스 속에는 시금치가 탐스럽게 자라고 있습니다. 전원 식당을 운영하며 주말농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텃밭을 분양해주는 아줌마의 채소입니다.

전원 식당인 멧돼지 전문점의 앞마당에는 잔디밭이 파릇파릇한 새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앞의 사진은 식당 안에 있는 꽃인데 참 아름답기 그지 없습니다.

텃밭에는 대파와 시금치가 야외에서 그대로 잘 자라고 있습니다. 텃밭을 갈아줄 농기계가 본격적인 농사 일을 준비하기 위해 텃밭 가운데 서 있기도 합니다.

지나오는 길에 천주교서울대교구에서 운영하는 주말농장 텃밭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단의 아저씨들이 벌써 텃밭의 땅을 파고 거름과 비료를 주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완연한 봄날씨를 보인 날이어서 그런지 야외에는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길가에 있는 고깃집 뒷마당에는 커다란 몸집의 검은색 개가 사납게 노려보며 컹컹대며 짖어댑니다. 살이 포동포동 오른 개인데 개돼지로 보이는 것은 웬일일까요? 마을에 들어서니 아파트 단지의 공원에는 운동기구들이 봄의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파트 단지에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목련꽃을 피우기 위한 몽우리가 봄의 향연을 먼저 준비하고 있습니다. 푸른 하늘을 이고있는 나무들과 꽃망울이 싱그럽기만 합니다.

아, 벌써 노란 산수유는 꽃을 활짝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한 셈입니다. 다음 주가 되면 산수유는 노란색 꽃으로 아파트를 아름답게 채색할 듯 싶습니다. 

위 사진은 시골 마을에 1월말에 다녀오면서 찍은 사진입니다. 논에는 아직 지난 가을에 추수한 추억을 간진한 채 다시 봄이 되어 모내기를 하는 계절을 기다리면서 을씨년스런 자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밭에는 봄나물이 자라고 있고 봄동이라 불리는 배추가 입맛을 돋구며 속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떤가요? 봄의 향연이 펼쳐질 듯 합니다. 이미 소리없이 다가온 봄날이 향기롭고 싱그러운 자태로 우리들 곁에 와 있습니다. 주말에는 도시락을 싸들고 아이들과 함께 야외로 나가 즐거운 식사를 하는 재미도 멋진 추억이 될 듯 합니다. 겨우내 움추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 들판으로 나가서 땅도 밟아보고 하늘도 바라보는 유유자적의 시간을 보내는 설레임의 나들이를 느껴보지 않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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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모태범 선수의 금메달에 온 가족이 박수를 쳤습니다. 오늘은 설날 명절 연휴에 하루 더 휴가인 관계로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을 시청할 수 있었습니다. 500미터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를 그다지 기대는 하지 않은 상태로 편안하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태범 선수가 무서운 신예 막내의 진수를 보여주었습니다. 1차 시도에서 모태범은 34.92초로 단번에 1위로 질주했습니다. 나중에 나온 리카 포우탈라 선수가 34.86초로 1위로 올라서기까지는 적어도 모태범이 1차전을 주도했습니다. 노장 이규혁과 이강석도 선전을 펼쳤습니다.

이제 금메달은 2차 시도에 달려 있었습니다. 1차에서 점수가 좋은 모태범은 마지막 경기의 바로 직전 경기로 달렸습니다. 모태범은 2차 경기도 엄청난 스피드로 결승선을 골인했습니다. 2차 시기에서는 더욱 기록을 단축해 34.90초였습니다. 1차와 2차 경기 합계 69.82초로 단독 1위로 올라가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금메달이 거의 확정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아직 1차전 1위였던 포우탈라 선수의 마지막 경기를 봐야 한다고 기다렸습니다. 예상 대로 포우탈라는 1차에 비해 스피드가 떨어졌습니다. 결국 모태범은 우리나라 동계 올림픽 사상 최초의 스피드 스케이팅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저와 아내 큰 딸을 포함한 가족은 동시에 "야, 금메달이다"를 외쳤습니다.

지금껏 등장힌 꿀벅지 중 가장 아름답고 멋진 골드 꿀벅지

                             황금 꿀벅지 모태범의 금빛 질주의 모습이 든든하고 환상적이다

그런데 초등학생 4학년에 올라가는 둘째 딸은 모태범의 금메달 확정에 대한 환호성이 달랐습니다.
"와우~ 황금 꿀벅지다"

순간 우리 가족들은 웃음보가 터졌습니다.
"황금 꿀벅지가 뭐냐?"
"금메달이니까 황금 골드 꿀벅지잖아요."

"그렇기 그렇구나."
"아, 그리고 생일이니까 생일빵 황금 꿀벅지네요."

그 때 방송 생중계에서는 모태범 선수가 오늘이 스물 한 살 생일이라고 나오고 있었습니다. 한국 시각은 16일이지만 캐나다 시각으로 15일 저녁이라 모태범은 15일이 생일이었던 것입니다. 모태범은 생일 날에 생애 최고의 날을 맞이한 셈입니다. 동계올리픽 무대에서 생일빵 축하는 물론 금메달까지 땄으니 말입니다. 생일에다 금메달까지 땄으니 모태범의 오늘 하루는 기쁨이 백배 천배는 될 듯 합니다.

                               질주하는 황금 꿀벅지 모태범의 모습 (사진 출처 : gettyimageKorea)

작은 딸이 외친 "생일빵 황금 꿀벅지"라는 말이 더욱 실감이 갔습니다. 아이들은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들의 엄청나게 굵은 허벅지를 보고 유이의 꿀벅지를 연상했던 모양입니다. 걸그룹 애프터스쿨 멤버인 유이의 꿀벅지는 다소 선정적 느낌도 들었지만 모태범의 황금 꿀벅지는 아름다운 스포츠 정신과 그 동안 금메달을 따기 위해 땀흘린 노력의 결과로 보여 훈훈하게 느져졌습니다. 우리나라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중 이상화 선수가 꿀벅지라는 별명이 있다고도 합니다. 아무튼 남자든 여자든 강한 허벅지를 미덕인 스피드스케이팅에서 둘째 딸 말 마따나 지금껏 등장한 꿀벅지 중 가장 아름답고 멋진 꿀벅지는 바로 모태범의 골드 꿀벅지인 셈입니다.

금메달 선수를 비추지않은 방송 중계 카메라는 문제 많아

한편으로 오늘 SBS 방송 중계를 보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습니다. 자체 방송 촬영 생중계가 아닌 다른 방송 송출을 받은 것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모태범의 금메달 확정 발표에도 불구하고 방송 카메라는 일본 선수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은메달과 동메달을 일본의 나가시마와 가토조지가 획득한 것은 아시아 국가로서 축하할 일입니다. 그런데 그냥 누워있는 선수를 비춰주면서 카메라 화면이 흔들리고 금메달 선수는 보여주지도 않는 방송 중계를 보면서 답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사실 모태범 선수에 대해 우리나라 동계올림픽 국가대표팀은 당초 500미터에서는 거의 기대하지 않고 1000미터 스피드 스케이팅에 더 기대를 걸었다고 합니다. 선배인 이규혁과 이강석과 같은 선수가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버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태범은 1000미터에서 더 기대를 걸었다고 하니 이미 500미터에서 금메달을 딴 만큼 주종목인 1000미터에서도 금메달이 기대됩니다.

모태범의 주종목 1000미터 경기가 더 기대되는 이유

사실 모태범은 올림픽 이전까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세계주니어 선수권대회의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에 나간 적이 있지만 3위 정도는 기록한 바 있으나 1위를 차지한 적이 없었고 시니어 대회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000미터에서는 스피드 스케이팅 월드컵 대회에서 상위권에 들어가며 종합환산점수로 세계랭킹 2위까지 올라간 상태입니다. 

따라서 모태범은 앞으로 18일 열리는 스피드스케이팅 1000미터 경기에서도 금메달 소식이 들려올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그리고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500미터에도 모태범은 출전할 예정이고 27일에는 남자단체 추발 경기도 열린다니 기대가 됩니다. 모태범 선수의 생일과 금메달 획득을 축하드립니다. 아니, 모태범 선수의 생일빵 황금 꿀벅지 등극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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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해 집에 와보니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딸이 뜨게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아내에게 물어보니 뜨게질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가르쳐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뜨개질도 배우려고 하는 것이 기특해 딸아이에게 몇 마디 물어봤습니다.
"야, 뜨개질도 배우다니. 우리 딸 대단한데."
"뭐, 이 정도 쯤이야. 헤헤."

"지금 뜨고 있는 작품은 뭐니?"
"목도리."

"그래. 누구 줄 건데?"
"아직 몰라요. 이제 배우는 거잖아요."

"그렇구나. 연습하는 것이구나."
"맞아요. 처음이라 잘 안돼요."

난생 처음 목도리 뜨개질에 도전한 딸아이의 집념

잠깐 그러다 그만 두겠지 생각했는데 큰 딸은 매일 뜨게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뜨개질의 코를 빠뜨려 엄마는 다시 털실을 풀어 다시 시작하도록 했습니다. 몇 일이 지나자 제법 목도리를 많이 짰습니다. 그래서 다시 큰 딸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어느새 많이 짰구나. 실력이 쑥쑥 늘었네"
"기본이죠. 헤헤."

"조금 하다가 포기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으니까요."

"그 목도리 참 이쁠 것 같다. 그거 받는 사람은 기분 최고겠는데."
"그럴 까요?"

"그럼, 우리 딸의 첫 작품이잖아."
"아직 부족해요."

"그런데 그것 남자용이니, 여자용이니?"
"남녀공용이요."



아빠 생일 선물로 목도리 극비 준비한 큰 딸의 깜짝 선물

그 후 몇 일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거의 목도리가 완성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큰 딸은 매일 뜨게질에 집중한 결과 상당히 빠른 속도로 목도리를 짜고 있었던 것입니다. 조금만 더 짜면 마무리를 지어야 할 정도였습니다. 아내에 의하면 큰 딸이 학교가 끝나면 밖에서 놀지도 않고 집에서 거의 뜨개질만 했다고 합니다. 공부보다 놀기 좋아하는 딸아이였는데.

그리고 어제 저녁에 퇴근해 집에 오니 큰 딸이 싱글벙글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잠시 TV를 보고 있는데 큰 딸이 자기 방에 들어거더니 손에 뭔가를 들고 나왔습니다.

"아빠, 선물이야"
"헉. 깜짝이야. 이게 뭐니?

"하하. 목도리. 사실은 아빠 생일 선물이었어요"
"그럼, 지금까지 아빠 주려고 뜨개질을 배운 거니?"

"그런데 아빠 생일은 몇 일 남지 않았니?"
"아빠 생일에 맞추려고 했는데 너무 일찍 완성해 버렸어요"

그랬습니다. 큰 딸은 아빠 생일과 크리스마스 선물로 남자 목도리 뜨개질을 배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빠를 깜짝 놀래주기 위해 열심히 뜨개질을 엄마로부터 전수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딸은 예상보다 뜨개질을 빨리 배우고 혼자서 매일 방과 후 목도리를 짰습니다. 그래서 아빠 생일이 너무 많이 남아 있어 미리 선물을 주었던 것입니다.

        작은 딸이 언니가 만든 남자 목도리를 목에 걸치고 아빠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큰 딸은 연말로 다가온 아빠의 선물을 고민했더랍니다. 아내는 큰 딸에게 겨울이니까 뜨개질로 목도리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말했는데 큰 딸은 흔쾌히 뜨게질에 도전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아내는 큰 딸의 집중력에 놀랐답니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 것에만 관심있던 큰 딸이 뜨개질에 그렇게 열심히 할 줄 몰랐다는 겁니다. 공부에도 그다지 흥미를 못느끼던 큰 딸이 뜨게질에는 유난히 관심과 재미를 느꼈던 셈입니다.


 

생애 최고의 선물과 딸아이를 키우는 보람과 행복 

제게는 딸아이가 만든 목도리는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게다가 큰 딸이 아빠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난생 처음 뜨개질을 배우고 정성껏 만든 목도리인 만큼 더욱 소중한 선물이었습니다. 이것이 딸내미를 키우는 부모의 보람과 행복이 아닌가 생각됐습니다.

        큰 딸은 뜨개질을 마스터하더니 재미와 흥미를 가졌는디 또 다시 목도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큰 딸이 아주 쉽게 뜨개질을 배우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뜨개질이 그리 쉽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보통 아이들은 뜨개질을 배우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데 큰 딸은 조금 빠른 편이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아빠 생일 선물도 당초 2주 정도 걸릴 것으로 생각했는데 1주일도 안돼 완성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큰 딸은 또 다른 사람을 주기 위해 또 다시 목도리 뜨개질에 나섰습니다. 그 전 보다 뜨개질 속도는 더욱 빨라졌습니다.

어쨌든, 저에게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가장 보람있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마냥 어린 아이로만 보였던 딸아이가 아빠를 위해 속깊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 감격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확실히 여자 아이들이 사려깊고 섬세한 것 같습니다. 엄마가 아줌마 모임으로 외출했을 때는 딸아이들이 아빠의 식사를 차려주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퇴근해 돌아오면 추리닝 바지를 챙겨주기도 했습니다. 아마 이런 것들이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의 소박하면서도 큰 기쁨인가 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와 겨울은 목도리와 함께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듯 합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두고 훈훈한 가족애를 느껴보는 하루였습니다.

뜨게질과 어머니
딸아이의 뜨개질을 보면서 문득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제가 어렸을 적 해마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호롱불 밑에 앉아서 밤새 뜨개질을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식들의 스웨터 옷을 짜주셨습니다. 제 스웨터 옷을 풀어 동생 옷을 짜주시고 다시 작아지면 또 다시 풀어 그 아래 동생옷을 짜주시곤 했습니다. 지난 1960~70년대는 옷이 귀하던 시절이라 뜨개질로 만든 스웨터가 겨울 옷의 대명사였습니다. 딸아이의 뜨개질 목도리를 두르면 아내와 딸아이는 물론 어머니가 더 생각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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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새벽에 작은 딸이 열이 갑자기 올라가 아내는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신종 플루가 아닌가 체온계를 재보니 열이 38도를 넘었습니다. 오전 일찍 가까운 거점병원을 가봐야 겠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어떤 부모라도 걱정이 많을 것입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아이들은 부모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딸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마음은 좀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할 일들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에 작은 딸이 초경 증세가 있어 소아과 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인데 너무 빠른 것 같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의사의 진단으로는 아직 초경은 아니고 1년 후에 초경이 시작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의사는 아이가 성장이 빠른 편이고 정상적이라고 했습니다. 둘째 딸이 학급에서 여자 아이 중 키가 가장 큰 편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에게 비해 생리를 일찍 시작하면 성장판이 일찍 닫혀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을까 걱정이 살짝 됩니다.

남자들이 많은 집안에서 자란 제가 딸 둘을 가진 아빠가 되고보니 딸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모르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내는 반대로 딸 많은 가정에서 자라서 서로 보완이 되기는 합니다. 딸아이를 키우는 아빠 엄마의 고민과 교육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봤습니다. 저희 부부의 사례이니 일반적 방식과는 차이가 있을 수도 있고 이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중성적 이름을 짓고 남녀 구분없이 키운다

저희 딸들의 이름은 둘 다 중성적 이름입니다. 남자든 여자든 사용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부모나 가정 마다 딸아이 이름에 대한 생각이나 작명 원칙이 다를 수 있으니 이것이 옳다 그르다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딸아이라서 꼭 여성적인 이름을 반드시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저희 부부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이들은 공주과는 아닌 것 같습니다. 유치원 때는 남자 아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놀았습니다. 동네 놀이터에서도 큰 딸이아 작은 딸이 노는 모습은 남자 아이와 다를 바 없이 활동적이었습니다. 소꿉놀이같은 것도 좋아하지 않고 약간은 터프하기도 했습니다. 아빠로서 아이들과 놀 때 씨름이나 권투, 태권도 등을 주로 해왔던 것도 작용한 듯 합니다.



아이들에게 여자라서 여성스러워야 한다고 말한 적도 없었습니다. 남녀 구분없이 똑같이 키우려고 했습니다. 아내도 마찬가지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하나의 인격체로서 동일하게 잣대로 생각했습니다. 막연히 동화 속 백마 탄 왕자님에 대한 환상이 아닌 스스로 개척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바람입니다. 사실 저도 남성 위주 가부장적 가정에서 살아왔지만 근엄한 아빠로서 달라지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딸아이들과 아빠가 함께 설거지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등 부엌 일이나 가정 일을 하면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듯 합니다.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독립적 자립심을 갖도록 해준다

남성 위주 사회에 살다보니 아빠 엄마에게도 어느정도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성별 고정관념을 없이 딸들이 하고 싶은 것은 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아이가 태권도를 하고 싶으면 태권도장을 보냈습니다. 아빠와 권투 게임을 하고 싶다면 그렇게 놀아주었습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이든 해보라고 했습니다.

큰 딸은 방송사 PD가 되고 싶다고 하고 작은 딸은 매번 꿈이 바뀝니다. 작은 딸은 선생님, 과학자, 연예인 등 꿈이 다양합니다. 아직 어린 나이인 만큼 커가면서 자신이 되고 싶은 미래는 정해질 것이니 급하지는 않습니다.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싶은 표현을 하고 스스로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이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심을 키워주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부모의 곁을 떠날텐데 스스로 험난한 사회에서 자신이 꿈꾸던 일들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말농장 텃밭에서 아이들이 함께 일하기도 합니다. 매년 여름방학이 되면 딸들은 시골 농촌의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 가서 농사일을 거들기도 합니다. 용돈도 집안 일을 돕거나 심부름을 했을 때 스스로 노력한 댓가를 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스스로 예습 복습 공부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먼저 생각한다

사실 아이들 공부에 대해서는 어떤 부모나 똑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면 금상첨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부모의 욕심대로 공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큰 아이를 키울 때 공부는 전혀 개의치않고 자유방임으로 마음껏 놀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보니 성적이 좋지않았습니다.

그다지 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없던 아내가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저도 공부는 기본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가능한 책읽는 부모가 되기 위해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조금씩 큰 아이 성적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조금 더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보완은 필요합니다. 작은 딸은 처음부터 예습 복습을 스스로 하는 습관이 생겨 잘하는 편입니다.


어릴 때는 마음껏 자연과 함께 뛰놀고 사람 됨됨이나 인성 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먼저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아이들은 남들을 돕고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사회성은 좋은 듯 합니다. 요즘 저는 가끔씩 딸아이들과 가까운 산에 김밥을 싸서 소풍 등산을 가기도 합니다. 작은 동산을 두개 넘으면 산 속에 예쁜 놀이터가 있는데 아이들을 목표가 있어 즐겁고 오고가는 사람들과도 반갑게 인사하면서 사회성도 좋아지고 기초체력 단련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딸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사회에 대한 몇가지 생각

딸아이를 키우다보면 사회적 현상들에 대해 걱정을 하기도 합니다. 뉴스에서 성폭행 흉악범죄이나 가정 폭력과 같은 나오면 딸아이 가진 부모로서 분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평소 권투 태권도 특공무술 등으로 단련된 젊은 시절의 호신술을 딸들에게 전수시켜 주기도 합니다. 사실 딸아이들이 아빠에게 배운 호신술을 남자 아이를 때리는데 함부로 사용할까 우려도 되기는 합니다. 여자와 남자 모두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먼저 중요하다는 관점을 견지하고 바르게 컸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생이다보니 외모에 조금씩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사회가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외모 보다는 내면이나 생각의 품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옷입는 패션 감각이나 기본적인 가꾸기는 필요하겠지만 단순히 외모가 예쁜 것이 아니라 예쁘고 아름다운 생각을 갖고 임하는 태도에 더 칭찬을 하도록 해야 겠습니다.

여전히 사회는 딸아이들에게 장애물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반대로 아들 키우는 입장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남녀차별없이 모든 인격체들이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현재를 살아가는 어른들의 역할이 중요할 것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 마음껏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사회를 물려주는데 작은 생활 속 실천이 필요합니다. 내 자식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내 아이 중심주의나 부모 이기주의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성을 갖춘 아이들이 많아져야 보다 건강한 사회에서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 더 행복한 미래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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