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01 대왕 지네의 습격과 막내 남동생의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19)
  2. 2009.05.07 자식위해 평생 불구가 되신 어머님 전상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3. 2009.02.15 복순씨와 결혼한 막내 남동생과 개명 고민 by 진리 탐구 탐진강 (8)


여름 휴가를 맞이해 온 가족들이 모처럼 함께 모였습니다. 지난해 가을에 막내 남동생이 결혼함에 따라 3남 1녀가 모두 결혼해 함께 모인 것입니다. 고속도로에서는 갑자기 국지성 집중폭우가 내려 운전에 심각한 장애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고속도로에 그토록 강력한 폭우는 처음이었습니다. 시골로 가는 길은 때론 교통체증으로, 때론 잡중폭우로 힘들었지만 한편으로 나중에 추억이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각각 사는 곳은 다르지만 가족이 함께 모이니 부모님이 가장 흐뭇해 하십니다. 노부부가 살던 산골 마을의 외딴 집은 자식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하면서 시끌벅쩍 하기 시작합니다. 새벽 4시에 출발한 둘째 남동생이 가장 먼저 도착했고 막내 남동생이 저녁에 가장 늦게 도착했습니다. 이렇게 가족들이 모두 모여 모깃불을 피우고 즐겁게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화장실에 들어갔던 누이 여동생이 깜짝 놀라 뛰쳐나왔습니다.
"으악, 지네다. 대왕 지네가 나타났어."



커다란 지네가 화장실 벽을 타고 내려왔던 것입니다. 시골 생활에 익숙한 막내 남동생이 가장 먼저 화장실에 들어갔습니다. 막내 남동생이 화장실을 습격한 대왕 지네와 사투(?)를 벌였습니다.

지네는 남동생이 휘두른 쓰레받기 공격을 몇대 맞았습니다. 그리고 지네는 화장실 바닥에 떨어져 납짝 엎드렸습니다. 그러나 죽은 듯이 보였던 지네는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대왕 지네의 수많은 발들을 살펴보니 조금씩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남동생은 이내 지네의 머리에 마지막 최후의 일격을 가했습니다. 저녁에 가족들의 공간을 습격한 지네는 운명을 달리했습니다.

사실 남동생은 어린 시절부터 개구리, 뱀 등을 잡는 솜씨가 대단했습니다. 남동생에 물었습니다.
"야, 무섭지 않냐? 왜 그렇게 용감하냐?"
"어릴 때 부터 개구리도 잡고 뱀도 많이 잡았잖아."



"왜 그렇게 많이 잡았냐?"

"큰 형도 알다시피 학생 시절에 용돈이 없었잖아. 그런데 뱀이나 개구리를 잡아서 팔면 돈이 됐어."

사실 가난한 산촌 마을에서 여름에는 뱀을 잡고, 겨울에는 식용 개구리를 잡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일입니다.
그러나 10여년 전만 해도 산골에 뱀이나 개구리를 사러오는 장사꾼들이 있었습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매제가 이야기를 거들며 막내 남동생에 말했습니다.
"예전에 시골에 처음 왔을 때 고마웠어."
"아, 개구리..."

그 개구리 사건은 매제가 시골에 결혼 승낙을 받기 위해 처음 왔을 때 일이었습니다. 동네 아이들과 개구리를 잡아서 구워먹던 자리에 매제가 함께 있었습니다. 막내는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개구리를 동네 다른 아이가 먹으려 하자 막내 남동생이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답니다.
"야, 이거 우리 매형 꺼야. 내 놔. 주글라고. @@$$%%"

매제는 처음 시골에 와서 그렇게 막내 남동생의 환대(?)를 받았습니다. 당시 외롭던 매제에게는 천군만마와 같던 초등학생 막내 남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결혼 후에도 매제가 시골에 오면 언제나 함께 물고기도 잡고 시골 정취를 가르쳐주던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누이와 결혼해 당시 막내 남동생과 비슷한 나이의 초등학교 고학년 남자 아이 둘을 두고 있습니다. 막내 남동생에게 남다른 추억을 간직한 매제일 것입니다.

누이 여동생은 뱀이나 개구리와 함께 놀던 막내가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매제와 누이의 결혼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막내였습니다.
그런 막내 남동생이 이번에는 대왕 지네를 잡았습니다. 누이 여동생을 놀라게 한 대왕 지네를 가장 먼저 달려와 제압한 것입니다.

누이와 매제에게는 막내 남동생이 늘 든든한 후원자인 셈입니다. 한 여름밤의 가족 휴가에서 잊지못할 추억 하나를 대왕 지네가 만들어 주었습니다. 거기에는 '누이 좋고 매제 좋은' 막내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막내 남동생의 인해 다시 가족들에게 평화로운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는' 산골 마을의 '골목 대장' 막내 남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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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칠순이 다 되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계십니다. 호랑이같은 아버지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어머니는 청춘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자식들은 대도시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막내 남동생이 가까운 도시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곤 합니다.

그러나, 장남인 제가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십니다. 어머니가 불편하신 다리로 평생 산골에서 힘든 농사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제게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불행하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절게 된 사연과 혼자서 저를 키운 새색시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까마득한 두메산골입니다. 아직도 온통 산으로 뒤덮인 고향은 비포장도로를 통해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다닐 정도로 산골 오지입니다. 부모님은 산골 외딴집에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 만큼은 시골 집에 동생들 가족들과 일정을 맞춰서 함께 가곤 합니다.

어머니는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이셨고 아버지는 초등 교육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지난 1960년대는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한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시골 마을에 잠시 머물던 시절에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을 '주먹자랑 하지 말라'고 알려진 벌교에서 지냈던 분으로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결혼 후 신혼 시절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기피한 상태였는데 아버지를 체포하기 위해 헌병대에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헌병대를 피하기 위해 초가집의 흙벽을 무너뜨리고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 후 아버님을 몇년 동안을 도시에서 숨어지냈습니다. 당시에는 군대에 간 후 사망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군대 기피가 많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머니는 새색시가 생과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땔감을 구해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 시골집은 초가집이었고 나무 땔감으로 밥을 짓고, 소꼴을 베어 소를 키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기도 가스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녁엔 방에 호롱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임신 중이었습니다. 혼자서도 힘든데 홀몸이 아닌 상태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소까지 키워야 하는 고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겹게 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혼자서 열심히 밭 일을 하다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서둘러 밭에서 일을 끝내고 머리에는 소꼴을 가득 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길가에 뻗은 칡넝쿨에 걸려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넘어지던 중 머리에 인 소꼴에서 낫이 떨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낫은 어머니 앞에 날이 선 상태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예리한 낫의 날에 닿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어머니는 무릎의 힘줄이 끊기는 대형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를 할 병원도 없었습니다. 곁에는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당시 저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무거운 몸이다보니 칡넝쿨에 걸려 균형을 잡지 못한데다 낫을 피하지 못해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임신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것도 몸 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봐 못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그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가 되셨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어머니는 다시 농사를 짓고 혼자서 저를 낳아서 길렀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그렇게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갓 결혼 후 남편도 없이 무려 5년을 그렇게 농사도 짓고 저를 키웠던 것입니다. 저는 아가 시절을 마당이나 밭을 기어다니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마당에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나 닭과 함께 놀고, 밭에서는 지렁이가 친구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도 일을 하고 계시고, 밭에 가서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워낭소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저의 유년 시절은 밤낮으로 어머니 밖에는 없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호롱불 밑에서 제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5살 때 처음 어버님이 고향으로 돌아오셨지만 저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만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오신 후에도 집안 일은 하지않고 한량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싹텄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마음의 화해가 어느정도 되었고,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과거와 달리 농사 일이나 집안 일도 했습니다.

제 나이가 5~6세 정도일 때도 저는 동네 아이들과 산에 올라가 고사리 손으로 나무를 하곤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오직 어머니 일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저의 일을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시절에도 방학 동안 내내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돕는데 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가 어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 때부터 어머니 혼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왜 다리 하나가 불편하게 되셨는지 얘기를 처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어머니가 다리를 절면서 걷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것이 모두 제 탓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보면, 그 젊은 시절에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참고 이겨냈는지 가슴이 아프곤 합니다. 제가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늘 변함없이 생각하는 정신적 지주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벼가 익어가는 여름 날, 논둑을 걸으면서 저에게 하신 말씀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어머님은 소중한 등불과 같았습니다. 제가 방황하거나 잘못 가려하면 언제
나 등대처럼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다리가 잘리는 듯한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디셨습니까. 그리고 홀로 저를 어떻게 키우셨나요.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만 하셨습니다. 특히 홀로 키웠던 저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유년시절의 기억 마저 희미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주 연락도 못드려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해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지금은 자식들도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어머니의 귀중한 가르침과 사랑 덕분입니다. 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언제나 힘을 주시는 어머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뵙겠습니다. 밤낮으로 기온차가 큰 데 건강 조심하세요.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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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막내 남동생이 지난해 10월 결혼을 했습니다. 그 전에 남동생은 상견례를 하기 위해 결혼할 예비 신부와 함께 서울에 온 적이 있었습니다. 상견례 전에도 막내는 시골의 부모님께 여자 친구를 인사시켜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바쁜 일상으로 인해 저는 상견례 이전까지 막내의 여자 친구 이름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상견례 자리에서 알았지만 막내가 결혼할 예비 신부의 이름은 "O 복순"이었습니다. 요즘은 복순이란 이름을 짓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예전에는 상당히 많았습니다. 복순 씨는 이름 때문에 그 동안 학창 시절에 놀림을 받거나 괴로와 했던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개명도 생각했던 모양인데 완고한 아버님으로 인해 거의 포기한 듯 합니다. 막내도 촌스런 이름이라고 소개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복순 씨는 막내 남동생과 결혼했고 우리 집안과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복순 씨는 저에게는 제수씨가 된 셈입니다. 지난 1월 아버님 칠순 행사로 인해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모였는데 막내까지 결혼을 하니 부모님께서는 흐뭇한 모습이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복순 씨의 이름 만큼 가정에 복이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내놓으셨습니다.

오늘 뉴스를 보면 전국적으로 개명 열풍이라고 합니다. 뉴스에도 복순이 등장해 읽게 되었습니다.
대법원은 1999년 3만 656건에 불과하던 개명 신청이 지난해 14만 6천 840건으로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2005년 7만여 건에 불과하던 개명 신청자는 2006년 50% 넘게 늘어 10만 명을 돌파했으며, 2007년 12만여 명, 2008년 14만여 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또 80대 이상의 신청자들은 청자, 점순, 복순, 후남, 엽분이 등 흔치 않은 이름들도 있는 반면, 은혜, 미현과 같은 시대와 전혀 동떨어지지 않은 이름들도 있다.    [CBS 뉴스 중 일부 발췌]


개명에 대해서는 2005년 11월 '범죄은폐 등 남용 의도가 없다면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해야 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온 이후 개명 신청은 눈에 띄게 늘었다고 합니다. 즉, 성명권은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내용을 이뤄 자기결정권의 대상이 되는 것이므로 본인의 주관적 의사나 필요성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제 고향 친구들이나 또래들 중에는 요즘 사람들에게 촌스런 이름이라고 평가하는 이름이 많습니다. 순자, 기순, 점순, 점우, 향미, 춘자, 정숙, 창구 등등. 당시는 그러한 이름들이 흔하게 접할 수 있던 시기라고 크게 촌스럽거나 거추장스런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제 여동생도 이름의 끝자에 'O숙'이 들어가 학창 시절에 많이 고민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자신의 이름에 대해 100% 만족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듯 합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유행하는 이름이 있을 정도이니 언제나 만족하는 이름은 드물 것이라 생각합니다. 

조상 대대로 족보를 중시하고 돌림자는 사용해야 하는 한자 문화권에서 이름이 주는 의미는 상당합니다. 그래서 돌림자는 가족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가족의 역사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돌림자로 인해 이름에 불만을 갖게 되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 때 개명은 상당히 가족에서 진통을 겪게 됩니다.

이름이 촌스럽거나 특이해서 개명을 고민하는 분들이 많은데 단순히 촌스럽다는 이유 만으로 개명을 서두르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한글 이름 열풍인 적도 있습니다. '박차고 나온 놈이 탐이나' 'O초롱초롱 빛나리" 등이 그 예인데 어릴 때는 귀여운 이름이지만 나이가 들면 유아틱한 이름 때문에 개명을 고심한다고 합니다.

[MBC '내 이름은 김삼순' 드랍마 장면 중에서]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끈 적이 있습니다. 이름이 촌스럽지만 한편으로 시청자들을 쉽게 흡인해주고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장점도 많습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촌스런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절한 금자씨" "맨발의 기봉이" "흡혈형사 나도열" 등등. 정감있고 오래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기 때문일 듯 합니다.

사회적으로 생활하는데 크게 지장이 가지 않는다면 굳이 가족과 부모님이 물려준 이름을 개명까지 하는 것은 심사숙고해 봐야 할 것입니다. 이름도 어차피 유행이 있고 나중에 어떻게 변할지 모를 일입니다. 유명인 중에는 특이하거나 촌스럽다고 판단되는 이름이 많습니다.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하겠지만 너무 이름에 연연하기 보다는 자신의 이름에 자신감을 갖고 매진한다면 오히려 이름으로 인해 더 좋은 결실을 맺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 복순 씨는 막내 남동생과 결혼해 소중한 우리 가족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들도 이름 만큼이나 복스럽고 친근하고 사랑스런 이름의 복순 씨를 환영합니다. 막내 내외가 보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합니다. 더 이상 이름에 고민할 필요없이 좋은 이름을 잘 살려 발전하면 금상첨화일 듯 합니다.

[참고] 사회적인 생활에 큰 불편을 겪어 반드시 개명을 해야만 하는 경우는 다음을 참고하세요.

개명절차

  ① 개명 허가 신청서 1부
      법원에 비치되어 있으나, 해당 양식에 따라 워드로 작성해도 됩니다.
  ② 호적등본 1부
  ③ 주민등록 등본 1매(발급일 6개월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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