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선'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3.23 아버지 친구의 딸과 맞선, 결혼해야 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87)
  2. 2009.07.19 여자친구가 맞선본다 했다, 어떡해야 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70)


지금으로부터 16년전 제가 겪은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1994년경입니다. 요즘 결혼은 대부분 연애결혼이 많지만 당시는 상대적으로 중매결혼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혼기가 찬 자식이 있으면 부모님은 맞선을 보라고 성화이곤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에 입사를 했습니다. 대학 때 사귀던 동갑내기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인연이 없었는지 그녀는 맞선 본 남자와 결혼해 버렸습니다. 입사 직전 백수 시절에 일어난 일인지라 저는 붙잡지도 못하고 후미진 선술집에서 쓰디쓴 소주 한 잔에 마음을 달래야 했습니다.

요즘 회사 입사는 당시보다 훨씬 어려운 것 같습니다. 저는 불행 중 다행인지 친구 따라 입사원서 넣았다가 합격을 했습니다. 여자친구와의 이별과 그녀의 결혼 소식을 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사회생활에 적응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 때는 매일 밤마다 코가 비뚫어지도록 술을 마셨고 아침에는 비몽사몽간에 출근하는 반복된 일상이었습니다.

어느 날, 시골에 계신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
"예. 잘 먹고 다녀요. 걱정마세요."

"이번 추석에 꼭 내려와라."
"회사 일이 많아서 못갈 수도 있어요."

"아니다. 바빠도 꼭 오거라. 아버지가 손꼽아 기다리신다."
"아버지가요. 신경도 안쓰시던 분이 무슨 일인가요?"

"너 추석에 선보란다. 군의원 딸이다. 군의원이 아버지 친구인데 선보기로 약속했단다."
"네? 약속이라구요? 저는 선 안봐요."  
(잠깐, 아버지는 산골 농촌마을의 이장이셨습니다. 제가 친구 분 딸과 내심 결혼했으면 바랬습니다.) 


"그럼 못쓴다. 아버지 갑계(동감모임) 친구랑 약조한 것인데 그럴 수 없잖냐. 나도 그 집과 친하단다."
"어머니까지 왜 그러세요."

"군의원도 아주 점잖고 좋은 분이다. 딸도 아주 참하고 예쁘더라. 꼭 추석에 와라."
"싫다니까요. 결혼은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사진>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 줘' 중 한 장면

이렇게 어머니와의 첫번째 전화가 끝났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며칠 후 다시 전화를 해서 저에게 간곡한 부탁을 했습니다. 또 거절을 했습니다. 몇 차례 거절을 하다가 곰곰 생각해보니 부모님께 불효를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사랑하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웠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 저 추석에 내려갈게요. 그런데 거기서 맞선은 안볼 겁니다."
"뭐라고? 맞선을 안본다고? 군의원 부부와 약속한 맞선인데..."

"그러니까요. 시골에서 부모님들과 함께 나와서 맞선보는 것은 싫다고요. 그 여자는 지금 어디 있어요?"
"서울에서 회사다닌다고 하더라."

"잘 됐네요. 제가 추석 끝나고 그 여자랑 서울에서 따로 만날게요. 추석에 시골에 내려갈 거구요."
"그래도 양가에서 맞선보기로 약조한 것인데 어쩌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잘 말씀 좀 해주세요. 맞선을 안보는 게 아니라 둘이 만난다니까요."
"알았다. 아버지에게 이야기해 볼게."

어머니와 기나긴 신경전이 새로운 반전을 맞게 됐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추석에는 꼭 내려왔으면 하는 바람에 부응하면서도 양가 부모가 동석한 맞선 대신 둘만 따로 서울서 만나기로 하는 제안을 한 것입니다. 결국 양가 부모도 제가 수정 제안한 만남을 수용했습니다.

제가 맞선을 처음에 거절했던 이유는 맞선을 보게 되면 저도 부담되지만 양가 부모도 고향에서 서로 잘 아는 사이인데 나중에 서먹서먹한 사이가 될까 두려웠습니다. 부모님이 아는 집안의 맞선이란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것도 우려가 됐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시에 맞선에 대해 거부감이 심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학 시절 여자친구가 제가 백수시절에 갑자기 집안에서 선보라고 한다고 하더니 맞선본 남자와 곧장 결혼해 버렸던 아픈 맞선에 대한 기억도 작용했습니다. '나는 연애결혼해 복수할란다'는 아주 유치한 발상을 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추석이 되고 고향에 갔습니다. 어머니에게 군의원 딸의 연락처를 넘겨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신신당부를 했습니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배려 존중하는 생활이다 <사진> 영화 한 장면

"우리 고장에서 가장 참한 규수란다. 너랑 결혼하면 집안의 경사일 것 같다."
"어머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너무 부담주지 마세요."

"그래. 니가 알아서 할 일이지만 아까워서 그런다. 좋은 규수라고 읍내에 소문이 자자하다."
"알았어요. 서울에서 만나보고 말씀드릴게요."

그 후 어떻게 됐을까요? 물론 추석에 시골에 다녀온 직후 서울 경복궁에서 군의원 딸을 만났습니다.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나온 여자를 찾는 식으로 만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007데이트인가요? 경복궁 앞에서 만나 경회루를 비롯한 고궁을 거닐었습니다. 첫 만남인데 고궁을 거닐다니 무드가 없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이 만들어준 맞선을 빙자한 소개팅 데이트를 한 셈이 됐습니다. 혹시 부모님이 소개팅 시켜준 분 있나요?

그렇게 경복궁을 거닐다가 근처 찻집을 찾았습니다. 전통 찻집 하나를 골라 들어갔는데 이것은 시골마을의 찻집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냥 시골에서 만날 것을 서울에서도 하필 경복궁에서 데이트를 하고 찻집도 시골 분위기라니. 그리고 그녀에게 말을 꺼냈습니다.

"오늘 어땠어? 추운데 힘들지 않았어."
"아니요. 모처럼 경복궁도 둘러보고 재밌었어요."

"그런데 말이야. 나는 시골 부모님이 (결혼을 전제로 한) 맞선이 싫었어. 동생 만나서 오늘 즐거웠어."
"시골 부모님들이 많이 친하신가 봐요."

"그러게. 그런데 말이야..."
"......(침묵)....."

"우린 따지고 보면 고향 선후배잖아. 처음 만나긴 했지만. 그래서 우리 앞으로도 선배 후배로 지내자."
"예. 알았어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맞선도 애초부터 싫었지만 솔직히 제 스타일도 아니었습니다.(ㅠㅠ) 제 인생의 첫번째 맞선이자 부모님의 소개팅 데이트는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습니다. 부모님 성화에 못이겨 만나긴 했지만 한편으로 그녀에게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맞선녀 퇴짜놓기 만남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 보다 나이가 3살이 적었기에 만난 직후 말을 놨습니다. 그리고 편안하게 제 할 이야기만 다한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반응이 궁금하다구요? 뭐, 어머니에게 한동안 계속 잔소리 들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실망감이 컸습니다. 한동안 소주만 드셨다는 후문. 저는 그 후에도 2년간 여자 친구도 못사귀고 무적의 솔로부대 신세였습니다. 그 사이 군의원 딸은 다른 남자와 만나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어머니는 저만 보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야, 이 눔아. 결혼식에 가보니 사람들 마다 최고로 참한 규수라고 다 그러더라. 아까워 죽겠다."
"어머니. 짚신도 짝이 있잖아요. 곧 저도 좋은 여자 만나겠죠?"

"우리집 장손이자 장남인 너에게 그 규수 만큼 좋은 여자가 또 있겠냐? 맏며느리감으로 최고더라."
"귀에 못이 박히겠어요. 그만 좀 하세요. 알았어요."

"그래서 그런데 내가 맞선 볼 여자를 하나 더 염두해 두고 있단다. 한번 만나보자."
"뭐라구요? 또 맞선이요? 어머니. 제가 졌어요. 잘못했어요. 다음 추석에 결혼할 여자 데려올게요."

그리고 저는 그 해 추석에는 여자를 데리고 시골에 갔습니다. 어떻게 된 일이냐구요? 더 이상 안되겠다 싶어서 그 때부터 솔로부대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간절하면 꿈이 이루어진다고 했습니다. 그 동안 아무 생각없이 흥청망청 친구들과 술만 마시러 다니던 제가 어머니의 맞선 이야기에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떠보니 여자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 마음에 드는 여자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마음에 든 여자 앞에서는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숙맥이던 제가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마음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여자가 바로 지금의 아내입니다.(^^) 물론 부모님도 지금껏 맏며느리가 최고라고 하십니다. 고맙습니다.
솔로부대 탈출의 교훈 핵심 포인트
- 간절하면 꿈이 이루어진다. 결혼도 스스로 간절해야 한다.
-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만고의 진리이다. (그런가?)
- 결혼은 남자하기 나름이다. 자신감을 갖고 내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올인하라.
-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물질이 아니라 결혼에 대해 준비된 책임감이다.
- 내가 배려하면 상대방도 배려한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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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남자와 여자의 연애나 결혼에 있어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친구의 약 20년전 이야기입니다. A군은 군복무를 제대한 후 대학 3학년에 복학해 열심히 공부에 전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날, 추적추적 비가 내렸습니다. 대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A군은 머리를 식히고 싶었습니다. 잡자기 어디론가 혼자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서울역으로 가서 야간 기차를 탔습니다. 좌석은 매진되어 입석표였습니다. 빈좌석에 무작정 앉았습니다. 기차 창밖으로는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A군이 앉아있던 좌석의 곁을 한 여자가 잠시 주춤하다가 지나갔습니다. A군은 좌석의 주인이 나타난 것은 아닌가 가슴이 조마조마 했습니다.

당돌한 직장 여자와 대학 복학생, 기차에서 만나다

조금 후 지나갔던 한 여자가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창밖을 보고있던 A군에게 여자가 말했습니다.
"여기 자리 있어요?"  
"모...르겠는데요."

A군은 앉았던 자리 옆의 책가방을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놨습니다. 자리에 앉은 여자가 말을 걸었습니다.
"몇학년?"
"삼~ 삼학년"

"몇학번?
"팔육 학번"

"나랑 같은 학번이네. 난 B양이야. 우리 친구하자. 넌 이름이 뭐니?"

당돌한 B양이었습니다. A군은 B양이 당돌하고 신기했습니다. 처음에 무뚝뚝하던 A군은 B양의 나긋나긋한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A군과 B군의 만남이 시작됐습니다. 둘 다 기차 입석표를 샀는데 좌석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고 A군과 B양은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B양은 기차가 대전역 부근에 도착하자 우표 5개를 핸드백에서 꺼냈습니다.
"난 여기서 이제 내려야 해. 넌 의무적으로 나에게 우표 5개 만큼 편지를 해야 해."
"알았어. 잘 가"



서울의 A군과 대전의 B양은 그 후 편지를 주고받았습니다.(핸드폰도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A군은 학보가 나오면 편지를 함께 넣어 보냈습니다. B양은 자주 편지를 학교로 보냈습니다. 직장인이었던 B양은 주말에는 A군이 공부하던 대학 도서관이 나타나곤 했습니다. B양은 식사를 사주고 다시 대전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A군의 B양의 호의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가난한 자신이 B양에게 해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A군은 4학년이 되었습니다. B양은 서울에 올 때 마다 A군이 공부하던 도서관에 나타났습니다. B양은 A군에게 늘 용기를 주는 말을 했습니다. A군은 B양의 마음이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취업 시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A군이 노리던 정부투자기관 입사에 실패했습니다. A군은 입사를 하면 B양을 위해 뭔가 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A군은 취업에 실패하고 다른 기관에 도전해야 했습니다. A군은 B양에게 미안했습니다. B양은 A군에게 실망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A군은 대학 졸업 후에도 백수였습니다. 경쟁이 치열하던 정부투자기관 시험에 낙방 후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여름에 실시된 시험을 봤습니다. 시험이 끝나자 B양이 대전에 잠시 와달라고 했습니다. B양은 직장을 그만 두고 유치원을 개업하기로 했는데 개업 준비를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던 A군은 B양의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로 했습니다.

가난한 대학생과 부잣집 딸의 슬픈 이야기의 결말은?

그런데 유치원 개업 준비를 돕기 위해 A군이 가보니 B양과 그녀의 남동생 그리고 친척 동생들이 와 있었습니다. A군은 쑥스러웠지만 열심히 일을 거들었습니다. 저녁에는 B양의 남동생과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B양과 저녁에 데이트를 했습니다. B양은 말을 꺼냈습니다.
"나 내일 선본다."
"그래."

B양이 선본다는 말에 A군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자신은 아직 백수인지라 B양을 위해 뭐라 해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B양은 부잣집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B양과 남동생에게 별도로 아파트를 얻어주었습니다. 그 날 밤 A군은 B양의 남동생의 방에서 함께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A군은 대전역으로 갔습니다. A군이 떠나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역 앞에서 B양은 다시 말했습니다.
"여기 근처에서 선보기로 되어 있어."
"그렇구나. 좋은 사람 나왔으면 좋겠다."

그렇게 A군과 B양은 역에서 헤어졌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A군은 자신의 초라한 처지가 슬펐습니다. 그래서 B양의 맞선을 단념시키지도 못했습니다. A군은 서울에 올라 와 모 대기업 입사시험을 봤습니다. 대기업은 가기싫었지만 마음을 바꿔 먹었습니다. 그 후 대기업 합격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그녀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주려고 편지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A군에게 우편물이 하나 도착했습니다. 그 우편물은 B양의 결혼식 청첩장이었습니다. A군은 쓰러질 것 같았습니다. B양은 그 당시 선본 남자와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B양이 선본다고 했을때 붙잡지 못한 자신이 후회되었습니다. 아직 백수인 자신의 입장에서 B양에게는 불행할 수도 있어 B양의 앞길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취직하면 B양을 다시 만날 것이라 다짐했었던 것입니다.

A군은 곧바로 대기업 신입사원 교육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신입사원 연수 마지막 날이 B양의 결혼식 날이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결혼식 장소가 수원이었습니다. A군의 신입사원 연수원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A군은 퇴소식 날 고민했습니다. A군의 연수원 버스는 수원역에 내려주었습니다. B양의 결혼식을 곧 앞두고 있었습니다. A군은 결국 B양의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운명은 그렇게 A군과 B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A군과 B양은 왜 결혼할 수 없었을까?
남자는 직장을 먼저 구해 여자친구를 위해 무엇인가 해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선보다는 것이 단지 미팅 정도로만 다소 가볍게 잘못 생각했습니다.
여자는 맞선본다는 고백이 자신에게 프로포즈를 해달라는 마지막 요청이었을 수 있습니다.
여자는 자신이 돈을 벌 수도 있었지만 남자는 자존심 상 초라한 자신을 보여줄 수 없었습니다.
남자는 여자가 맞선본다고 했을 때 붙잡았어야 했지만 남자는 여자의 행복을 위해 그러지 못했습니다.
남자는 자신의 힘으로 가정을 일구어야 한다는 책임감과 자존심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의 적극적이고 당돌한 모습에 다소 부담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여자는 한 남자와의 결혼이 사랑이 먼저일 것이지만 결국 현실 앞에 나약해질 수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바라보는 맞선의 차이는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의 차이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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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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