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복'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1.16 20년전 군대, 말년 병장 죽이는 낙서 놀이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55)
  2. 2009.09.25 철책선이 뚫렸다! 20년전 수색작전 그 후.. by 진리 탐구 탐진강 (38)
  3. 2009.06.26 독사에 물린 선임하사 'DMZ서 구출하라' by 진리 탐구 탐진강 (39)


"천하무적 짱가도 내 앞에선 고철"

태권V가 짱가를 마구 때리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태권V와 짱가의 모습을 실제 그림으로 그려 실감나게 낚서를 한 장면이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덧붙여 '임자 만날 날 있을 걸.'이란 의미심장한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 궁금하겠지요? 제가 20년전 군대를 제대할 무렵에 후배나 동료 전우들이 회상록에 그린 낙서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책상 한 켠에 자리잡고 있는 군대 회상록을 들추어보다가 전우들의 낙서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앞에서 짱가는 저의 군대시절 별명입니다. 당시 힘좋고 기술좋은 작업반장이었던 저를 전우들은 '짱가'라고 불렀습니다. 짱가는 그 시절 사람들이 좋아했던 로보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런 짱가를 힘으로 눌러주고 싶던 후배 전우가 로보트 태권V 주인공을 그려 우스꽝스런 만화를 그린 것입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짜짜짜짜 짜 짱가 엄청난 기운이 (야!)'로 시작되는 노래인 우주소년 짱가의 주제곡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무슨 이야기인지 단번에 알 것 같습니다.

                                지난 1970년대 추억의 로보트 3인방, 짱가-태권V-황금박쥐 모습

그런 만화 낙서를 보니 군시절 추억이 아련하게 떠올랐습니다. 여름철 폭우가 내려 작전도로가 유실되면 저와 친구인 J는 둘이서 거의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처리했습니다. 저는 돌쌓는 기술로, J는 엄청난 괴력의 힘으로 돌을 날라 순식간에 도로를 복구했습니다. 강원도 철책에 폭설이 내리면 언제나 제일 앞에 서서 저와 J는 눈을 치웠습니다. 군대 작업의 달인, 환상의 짝꿍 듀엣이었습니다.
 
무시무시하던 선배도 말년 병장이 되면 후배들의 장난감이 되는 이유  

그래서 후배 전우들은 저와 J의 존재가 고맙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했나 봅니다. 그런 것들이 낚서로 표출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헤어지는 아쉬움과 친근감의 표현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낙서를 살펴볼까요? 제대를 앞둔 말년 병장을 놀리는 낚서도 눈에 띄었습니다.
"말년의 고뇌여~ 가는 날까지 우리들에게 갈굼 당할 걸 생각하니 힘드시겠지."
"짱가씨 결혼할 거니? 짱가 왈 내비둬, 이렇게 살다 껌에 붙어 갈겨."
"짱가씨. 집에서 전화왔어요. 집에 오지 말라고."
"웃기지 마. 나도 때 빼고 광 내면 미스코리아 화장실 청소라도 할 수 있다  뭐라고라~"


군대 회상록 낚서판에 동료 전우들이 말년 병장을 향해 한 마디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장면

낙서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 후배들이 말년 병장인 저를 갖고 노는 것 같은 구절들이 묻어나 보입니다. 사실 군대에서 제대 앞둔 말년 병장은 후배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한창 때 무시무시한 선배였다 하더라도 말년은 후배들에게 당해주면서 정겨움을 나누는 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하나의 전통과 같았습니다. 그것이 남자들의 세계를 지탱하는 하나의 정과 훈훈한 의리였습니다.

잠깐 퀴즈?
낙서에 나온 것인데 아래 각각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요?

1.창녀가 가장 좋아하는 야채는?

2.남녀 혼성 이부 합창은 순한국말로 하면?
3.브라자를 순한국말로 하면?

당시 군대에서 유치한 문답 놀이 정도 됐었나 봅니다. 지금 살펴보니 그 때는 저런 저질 유치 개그가 유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리고 방위에 대한 당시 이야기도 낙서에 나왔습니다. 지금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방위에 대한 유머(?) 장난이 아닌가 생각되는 낚서였습니다.

방위란?(낙서 버전)
1.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면사무소를 접수한다
2.전쟁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예비군을 통제한다
3.전쟁시 도시락을 지참 9시에 출근하여 5시 반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오리지날 버전
방위의 임무. 하나.
전쟁이 발발시 방위는 적진의 동사무소를 점령한다.
방위의 임무. 둘.
방위는 도시락통을 싸들고 산꼭대기에 올라가 도시락통을 흔들어 적의 레이더망을 교란한다.
방위의 인무. 셋.
방위는 아무리 전쟁이 치열하거나 해도 아침 9시에 근무해서 저녁 5시에 퇴근한다.
방위의 임무. 넷.
방위는 일부러 적의 포로로 잡혀가 적의 식량을 축낸다.
방위의 임무. 다섯.

전쟁발발시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여군들을 몽땅 꼬신다.


남방한계선을 넘어 최전선 철책을 넘나들며 비무장지대를 호령하던 전초 수색대들의 생활은 고단하고 힘들었습니다. 항상 삶과 죽음의 사선을 오가는 비무장지대 수색과 매복은 긴장과 서스펜스나 다름없었습니다. 순간 잘못 길을 가면 지뢰지대이고 잠깐 졸다가는 북한군이 목을 베어갈 준전시상태였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 강추위의 비무장지대에서 매일 밤 13시간 매복 작전

그러다 보니 군기가 가장 센 곳이었습니다. 인간이 다룰 수 있는 모든 개인 화기 무기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태권도 및 특공무술을 비롯한 최강의 무예를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한 겨울 맹추위에 비무장지대 매복은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었습니다. 1박2일에서 박찬호가 강호동을 포함 멤버들이 펼친 혹한기 실전캠프는 사실 '새 발의 피'였습니다.


전우들의 낚서판(좌)과 제가 그린 그림으로 수탉이 알에서 나온 코끼리 새끼를 본 후 암탉의 외도 의심

철책을 통과해 비무장지대 내에 들어선 순간 부터는 철처하게 자신과 전우들을 믿어야 했습니다. 군사분계션까지 도달해 겨울 매복작전을 펼칠 때면 몇 발자국만 가면 바로 북한 땅이었습니다. 아무리 방탄복과 완전군장을 한 상태에서 총탄을 장전하고 있는 최강 DMZ 수색대원도 오로지 혼자가 된 느낌의 순간에는 나약해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료와 말도 못하니 눈빛만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어떤 과자나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심지어 오줌도 눌 수 없어 오줌통을 들고 들어가는 비무장지대 내의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전우와 동료를 신뢰해야만 비무장지대 수색 및 매복 작전은 무사히 완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 매복에 얼마나 긴장했는지 온 몸이 얼어서 새벽 무렵 철수할 시간은 지금도 불현듯 스쳐지나가고곤 합니다. 체감온도 40도 전후의 강추위에 밤새 13시간을 야외에서 뜬 눈으로 이틀에 하루 꼴로 밤을 지새운다는 것이 상상이 가시겠습니까? 잠시 회상에 젖었습니다.

다시 낙서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티파니왈 흔들자고"라는 낙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도 티파니가 있나 본데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추가] 댓글을 보니 1980년말 티파니(Tiffany Renee Darwish)라는 미국 팝가수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써니텐 광고에서 '흔들어 주세요'로 유명해 이 같은 낙서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나갈 때 죽을 때 까지 똥침 놀 거다"
"기분이다. 아줌마, 단무지 하나 더 주세유"
"너 지금 가면 안올거지 그지?"
"뭐 같은 인생 간편히 살자고."
"집에 가서 잠만 자지 말고 여자 구해 장가 갈 궁리나 해라"
"수고했다 뺑이 치느라고"
"엿먹고 조총을 쏴라"

후배들의 낚서 중에는 지금에 와서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낙서를 보니 똥침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오랜 전통을 지닌 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 20년전 군대에서도 유행하던 놀이는 똥침이었던 것 같습니다. 모르는 분을 위해 설명하자면, 위의 낙서 중 '뺑이친다'는 말은 힘들게 고생한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군대에서 자주 사용하는 용어일 것입니다.


제가 직접 그린 DMZ 수색대 마크(좌)와 후배 전우들이 회상록에 넣어준 자신들의 사진 모습

지난 20년전 군대에서 동료 전우들의 낙서를 보면서 20대의 용광로같은 젊은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지금은 편하게 따뜻한 방에서 잠을 자지만 당시는 눈덮힌 야외 들판에서 판초우의 한 장으로 밤새 추위를 이기고 생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최악의 악조건 속에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겨울 이겨냈던 DMZ 비무장지대 수색대원들은 결코 동장군 강추위에도 쓰러질 수 없었습니다.

나 자신과 가족과 친구를 위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완수해야 했습니다. 냉전 이데올로기가 남북한은 물론 지구촌을 배회하던 아픈 역사 현장의 현장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는 남자들만의 의리와 정을 나누고 그 자릴 지켰습니다. 그러한 고통 속에서 싹튼 우정과 동료애는 말년 병장을 사회로 보내야 하는 아쉬움으로 추억의 낚서를 회상록에 남겼던 것입니다. 20년만에 20대 청춘 시절을 회상하며 그 당시의 낚서를 보니 수많은 추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갑니다.

 * 글이 유익하셨다면 아래 손가락 모양을 클릭해 추천 한방 주시는 따뜻한 배려와 센스를 부탁드립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살고 있는 철책선 GOP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의 철책이 사라진다면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자연생태공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비무장지대가 평화를 상징하는 생태공원으로 세계인들이 찾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비무장지대에는 고라니, 멧돼지, 담비, 열목어, 구렁이 등 수많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금강초롱을 비롯한 엄청나게 많은 식물들이 태초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직접 오갔던 비무장지대 현장에는 아름다운 계곡과 폭포 등 절경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평화통일이 되어 천혜의 자연공원 비무장지대가 일반에게 공개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지나간 20여 년전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근무했던 수색소대는 철책 부근의 후미진 산 속에서 별동대처럼 단독 소대단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훈련과 땅굴 탐지를 하던 시기입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고 내부반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소대장의 긴급 비상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철책선이 뚫렸다. 적들이 침투한 것 같다. 소대원 전원 수색 준비!"

우리 소대원들은 긴장감어린 눈빛으로 전원 막사 앞에 완전 군장으로 신속하게 집결했습니다. 위장복에 방탄조끼를 걸쳐입고 각각 자신의 임무를 부여받고 나타난 소대원들은 3개 수색분대로 새로 편제됐습니다. 저는 당시 M16 소총에 망원경을 장착한 저격수였습니다. 수색분대는 분대장, 저격수, M203 유탄발사기 사수, M60 기관총 사수 및 부사수, 무전병 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수색작전에 앞서 투입전 제식동작이 시작됐습니다.
"앞에 총! 노리쇠 후퇴 전진!"
"탄창 장착!"
"탄알 일발 장전!"
"작전 개시! 투입!"

각 분대는 철책선이 뚫렸다는 지역의 후방으로 신속히 이동했습니다. 그 때 당시, 소대장은 우리 사단 바로 옆의 00사단 GOP 철책선 일부가 뚫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북한군이 철책을 뚫고 침투했다는 상부의 추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소대는 인근 00사단과 가까운 곳에 있어 수색에 추가로 나섰습니다.

수색 매복 중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과 동료 전우들 뿐이었다


실제 북한군과 마주칠 지도 모를 위험한 작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늘상 비무장지대에서 수색과 매복 작전을 수행했던 터라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비무장지대에서 수색과 매복은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무서운 긴장감을 다스리고 언제 닥칠지도 모를 위험에 대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자신과 동료 전우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팀워크가 중요했습니다.

어두운 산 속의 오솔길을 지나 각각 분대는 주요 지점에 매복을 서기로 했습니다. 일단 작전에 들어가면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눈빛과 손짓으로 모든 작전이 수행됐습니다. 실제 비무장지대에서의 매복은 밤새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눈만 뜨고 전방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아무 것도 절대 먹어선 안되고 심지어 오줌도 별도 오줌통에 소리없이 싸서 마개를 닫아야 했습니다. 어떤 소리나 냄새 등은 자신을 적들에게 노출할 수 있어 금물이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늘 전쟁상태 상황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매복에 들어간 지 2시간 여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대장으로 철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설명은 없었습니다. 밤새 작전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던 소대원들은 한편으로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면서도 아쉬운 듯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 날 밤이 지났습니다. 소대장은 끝내 수색 매복 작전이 왜 중단됐는지 이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상부에서 이유를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오전과 오후에는 땅굴 탐지 수색조가 각각 주요 땅굴탐지 작전지역에 투입됐습니다. 매일 수색로를 따라서 시추공에 대한 특이사항을 조사하는 임무였습니다. 오후 수색조는 주로 산악지대 쪽을 방향을 잡았습니다. 멀리 북한 쪽에서 대남방송이 들렸습니다. 항상 매일 있었던 방송이라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들었습니다. 중동부전선이라 남과 북의 철책이 가까운 곳은 직선거리 600미터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내용이 특이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00사단 00연대 00부대 소속 000입니다. 어제 저녁에 북으로 넘어왔습니다. (계속)"
이럴 수가. 그렇습니다. 어제 저녁에 철책이 뚫린 것은 북한군의 소행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옆 사단의 어떤 남한 병사가 철책을 뚫고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철책을 수류탄을 던져 뚫고 북으로 넘어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당시 북으로 간 병사는 모 대학에 재학 중 최전방서 근무하다가 어떤 이유인지 불만을 품고 북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 부근은 남과 북의 철책이 가까운 곳이라 거리상으로 몇 백 미터만 가면 서로 닿는 곳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북한으로 월북하자마자 대남방송을 통해 직접 자신의 신분을 설명하는 그 병사였습니다. 물론 북한측에서 요청을 강요했을 수 있습니다. 남북 대치의 철책에서 벌어진 아주 희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미 20년이 넘는 옛날 일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 당시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당시는 소대원끼리 어쩌면 황당한 일에 쓴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철책의 분위기나 모습도 과거와 다를 것 같습니다. 철책을 뚫고 넘나드는 일도 없을 듯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는 사건인 것 같습니다. 남북 분단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비극인지도 모릅니다. 빨리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되어 동족끼리 서로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하는 일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군대 시절 이야기입니다. 지난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난 일입니다. 한 여름날이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군사령관이 방문한다는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GP(Guard Post)를 방문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군사령관이 방문하면 GP나 수색중대는 한바탕 난리가 납니다. 의전이나 경계 근무 등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드디어 군사령관이 DMZ(비무장지대)내 방문의 날이 왔습니다. GP 경계 뿐만 아니라 DMZ에는 수색과 도로 경계조가 투입되었습니다. 저는 수색분대로 투입됐습니다. 그리고 수색분대는 K선임하사가 분대장이었습니다. 차량경계조는 중대장이 직접 지휘했습니다. 거의 수색중대 수준의 DMZ 작전인 셈입니다.

수색분대가 철책선을 통과해 DMZ에 먼저 투입됐습니다. 사전에 DMZ 수색로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요충지에 근거지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여름날의 더위는 강렬했습니다. 한참 수색 중인데 길가에 독사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상당히 큰 까치 살모사였습니다. 까치 살모사는 독성이 강해 매우 위험합니다. 당시 저는 병장이었고 저격수였습니다. 선임하사에게 아주 작은 소리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잡을~까요?"
"그래 잡자."

선임하사는 보기 드문 까치 살모사라서 탐이 났던 것 같습니다. 제가 K-1 개머리판으로 살모사의 머리를 눌러 제압하고 살모사를 잡았습니다. 산 채로 생포한 것입니다. 그러자 선임하사가 까치 살모사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색분대는 까치 살모사를 생포한 후 매복 요충지로 이동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군사령관이 도로를 무사히 지나 GP에 이르는 도로를 경계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선임하사는 지루했습니다. 사실 이런 수색 경험이 많은 선임하사였습니다. 몇개월 후면 전역을 고려하던 선임하사였습니다.

얼마를 기다리자 군사령관이 DMZ의 작전 도로를 지나갔습니다. GP에서 나오기까지 상당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선임하사는 살모사를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었습니다. 선임하사가 독사를 다룬 경험이 많아서 걱정은 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만큼은 불안해 나즈막히 말했습니다.
"선임하사님, 조심하세요"
"괜찮아."



얼마 시간이 지났습니다. 선임하사는 살모사를 왼손으로 잡았다가 오른손으로 잡았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모사를 좌우 손으로 옮기던 중 선임하사가 순간 살모사를 놓쳤습니다. 그러자 살모사가 선임하사의 손을 곧바로 물었습니다. 중요한 작전 중에 선임하사가 맹독성 살모사에 물린 것입니다. 당장 수색을 중단하고 돌아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일단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독사에 물린 손의 팔꿈치 부분은 단단히 묶고 물린 곳의 피를 빨아냈습니다. 

그리고 무전병을 통해 긴급히 도로경계 수색분대 차량을 수배했습니다. 군사령관이 GP를 빠져나가면 도로 차량경계조 차량으로 군병원에 호송할 계획이었습니다. 군사령관이 마침내 GP를 나와 DMZ을 벗어나 철책 밖으로 통과했습니다. 곧바로 차량경계조에 선임하사를 태우고 DMZ을 빠져나갔습니다.

이미 선임하사의 손은 엄청나가 부어있었고 선임하사는 맹독에 의해 거의 인사불성 상태가 되어갔습니다. 차량경계조는 강원도 산골에서 멀리 군통합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필사적으로 군트럭 모양의 차량경계 수색조가 병원에 도착한 것입니다. 선임하사를 긴급히 호송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수많은 군인들과 사람들이 몰려와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모습으로 쳐다 봤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쳐다보는 겁니까?"
"...(조용)..."

질문에 오히려 더 놀라는 듯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눈길을 피했습니다. 우리들끼리 쳐다봤습니다. 아뿔싸. 우리 수색분대는 수색 중 복장과 완전무장 상태로 그대로 병원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 분대는 전쟁상태의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탄복에 총알 장전된 각종 개인화기, 기관총이 장착된 도로경계차량, 수류탄과 대검을 매단 수색복장 등은 일반 군인들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희는 장전된 개인화기와 무장을 해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DMZ을 지나 철책의 통문을 통과하면 장전된 총알 등 무장을 해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시의 군병원까지 완전무장 상태로 왔으니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DMZ 작전 중이었습니다. DMZ에서만 있다보니 여긴 처음이라..."

다행히 선임하사는 치료를 잘 끝내고 무사히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소대원들이 한 마디씩 했습니다.
"말년에는 구르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하시더니...앞으로 낙엽 조심하십시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