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해당되는 글 12건

  1. 2011.03.20 리비아 공습 vs 이라크 침공, 카다피 최후일까? 그 교훈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6)
  2. 2009.08.15 광복절 특별사면 받은 매제와 음주운전...사면권 남발 by 진리 탐구 탐진강 (41)
  3. 2009.06.25 나랏님도 농사짓던 봉하, '쇼'하는 푸른집 [편견 릴레이] by 진리 탐구 탐진강 (39)
  4. 2009.05.24 노무현 명연설 동영상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상록수 및 눈물 동영상 포함) by 진리 탐구 탐진강 (24)
  5. 2009.04.29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편지'(1부) by 진리 탐구 탐진강 (48)
  6. 2009.04.18 20년전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찾고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29)
  7. 2009.03.26 WBC 올스타 명단, 한국 야구팀 김태균 등 4명 진정한 1위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8. 2009.03.22 김태균, 커튼콜받고 세계적 타자로 등극 4가지 의미 by 진리 탐구 탐진강 (12)
  9. 2009.02.04 철수 생각, 한국경제 스타가 필요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
  10. 2009.01.29 감원 태풍 속 직장인 생존전략 10가지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8년만에 서방세계가 아랍세계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미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 5개국 연합군이 리비아 카다피 군사력에 대한 대대적 공습을 실시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3월 20일 오늘은 2003년 미국이 앞장 선 이라크 침공일과 날짜가 같습니다.

사실 저는 카다피 국가원수가 독재자로 전락해 최후의 결사항전을 선언한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과거 1980년대 초중반 당시,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카다피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한 우리나라 노동자가 '한국인'이라는 잡지에 쓴 내용이었지요. 한국인 노동자는 야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카다피 국가원수가 한 밤 중에 깜짝 방문해 즐겁게 야식을 했던 장면에 감격해 경험담을 썼었지요.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은 리비아와 국교 관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리비아는 북한과 국교 관계를 맺고 정치적으로 유대가 강했던 시절이지요. 그렇지만 카다피는 정치와 경제 분리 원칙을 내세워 한국의 건설회사가 대수로 공사에 참여하게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동아건설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는 향후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오를 만큼의 대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비아 국토는 사하라 사막이 대부분일 정도로 척박합니다. 카다피는 1969년 27세 나이의 대위 시절에 무혈혁명으로 당시 부패한 이드리스 왕정국가를 무너뜨리고 국가원수가 됐습니다. 그 후 사막을 옥토화시켜야 리비아 국민들이 향후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대수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리비아의 석유자원이 고갈되면 후손들이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해 사막을 농업이 가능한 옥토로 바꾸겠다는 수십년 구상이었지요.

독재 왕정을 무혈쿠데타로 장악한 카다피의 야망과 녹색혁명 대수로 공사

사막의 옥토화는 리비아의 미래였습니다. 그래서 카다피는 국기도 녹색 단색 하나로만 했습니다. 그가 쓴 책 '그린북(Green Book)'은 제3의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는 사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나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전두환 독재국가 시절이라도 카다피의 그린북은 금지 서적이었지요. 젊은 카다피는 중동 이슬람 아랍세계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반미 제국주의를 내세우며 이슬람 아랍세계의 단결을 외치며 외세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지요.

            카다피는 왕정국가를 쿠데타로 장악한 후 사막의 녹색옥토화를 위해 대수로공사를 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의 진리가 있습니다. 카다피는 42년 장기 독재정권의 독재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김제규의 총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카다피와 다를 바 없겠지요. 박정희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유신독재를 비롯해 부마 민주화 항쟁 등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독재자 길로 접어들었지요.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로 포장된 그 이면에는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하고 노동자를 억압한 독재자의 마각이 숨어 있지요. 그 후 전두환 군사독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카다피 독재자의 모습 뒤에는 박정희 군사독재나 김일정-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세습 독재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지나갑니다. 독재자들은 처음에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권력과 탐욕에 빠져 독재자인지 모릅니다. 절대 권력이 부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친미 독재자이듯이 카다피는 반미 독재자일 뿐입니다.

군사 독재자들의 최후와 닮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몰락 교훈

그래서 저는 카다피의 독재자 최후 말로가 안타깝기도 한 것입니다. 적어도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카다피에 대한 모습과 지금의 독재자는 달랐으니까요. 모든 독재자가 결국은 스스로 권력에 탐닉해 몰락해 갑니다. 처음부터 나쁜 리더가 아니었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자의 길로 접어든 것이겠지요. 특히 군사독재정권은 비극의 역사를 잉태하기 마련입니다. 총칼로 지배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아마조네스 여성 경호원들과 카다피는 독재자의 몰락을 상징한다

군사독재가 아니더라도 경찰독재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이 주권을 갖고 스스로 권력을 선택하는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이 필요한 이유겠지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자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독재자의 향수에 젖어 사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권력의 콩고물을 받았거나 한 줌도 안되는 기득권을 갖고 사는 부류의 인간군상들이 있는 셈이지요. 권력과 재력의 힘으로 서민 국민들을 억압하고 통치하는 나라는 권위주의 국가일 뿐입니다.

리비아 공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서론이 길었습니다. 서양세계는 또 다시 아랍세계에 대한 침략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독재자에게 핍박받고 죽어가는 리비아 국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목적을 설명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리비아 공습의 명분 이면에는 석유자원이 차지하는 비중도 큽니다. 리비아 민주화 운동과 내전 사태로 세계 석유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서양세계는 이라크 침공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고 크게 작용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리비아 공습은 스스로 지키지 못한 민주주의 교훈

그래서 카다피 국가원수는 연합군의 폭격이 시작된 후 국영 TV를 통해 "리비아의 독립과 단결,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국민이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카다피는 서방세계의 군사행동을 "식민주의 십자군 적"으로 규정하면서 "(서방의) 침략적이고 미친 행동으로 지중해에 있는 각 나라의 이해가 위험에 직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불행히도 지중해 지역의 해상과 영공에서 군인, 일반 시민 가릴 것 없이 실제 위험에 노출돼,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지역이 전쟁터가 되고 있다"고 이슬람 세계의 단결을 내세웠습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후 친미국가를 세웠지만 국민들은 더욱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카다피의 주장은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이슬람과 아랍세계가 서양 기독교 국가들의 전쟁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명분이겠지요. 그 와중에 러시아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 "리비아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군사행동 결정은 유감"이라고 밝히며 리비아 공습을 반대했습니다. 독일과 아프리카연합도 군사개입 반대입장입니다. 베네수엘라 등 일부 남미국가들도 서양의 리비아 침공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리비아 사태는 이제 친미 국가들과 반미 국가들의 대결 양상입니다.

국제 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습니다. 국가의 이익과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는 것이 국제 외교의 현실입니다. 카다피의 최후가 점차 다가오는 듯 합니다. 카다피가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리비아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는 의문입니다. 서양의 의해 이라크가 독재자 후세인을 몰아내고 친미국가를 세웠지만 이라크 국민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채 외세 통치 속에 사는 나라는 결국 국민들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카다피 최후가 끝은 아닌 셈입니다.

역사가 증명해주듯이 독재자는 결국 몰락한다는 교훈을 낳겠지요. 그렇지만 독재자도 서양의 이익에 따라 지원해주기도 하다가 쓸모없어지면 가차없이 냉정하게 버리는 것이 국제 정치경제 질서입니다. 독재자 카다피의 교훈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입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 경험을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조국과 민족이 외세의 입김에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세계 정치경제의 흐름에도 끄덕없는 나라를 스스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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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매제가 광명을 되찾았습니다. 매제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정지된 상태였습니다. 운전면허 정지는 영업사원이던 매제의 입장에서 생계가 달린 문제라 늘 고민하곤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광복절 특사는 매제와 가족들에게 반가운 소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얼마 전에 매제와 누이 가족들과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단연 화제는 광복절 특사였습니다. 음주운전 초범이기 때문에 특사 가능성이 크다고 기대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매제와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어쩌다 음주운전을 했어?"
"업무상 거래처를 만났는데 집에서 가까운 곳이라서 그만..."

"집 근처라도 절대 음주운전은 안돼. 자신이나 가족은 물론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잖아."
"다시는 그러지 않을 거예요. 형님"

"그래. 이번 광복절 특사는 가능한가?"
"예. 음주운전은 처음이라 가능할 것 같아요."

"광복절 특사로 나오면 두부 한 모 준비해야 겠네."
"...(일동 웃음)..."



음주운전은 절대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저는 운전을 거의 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녁에 술 약속이 많기도 하지만 자주 술을 즐기는 저에게는 자동차는 귀찮은 존재입니다. 그래서 자가용 자동차도 최근 몇 년전에야 구입할 정도였습니다. 아내가 자신이 운전할 것이니 자가용 구입하자고 졸라서 할 수 없이 구입했던 것입니다. 제가 술 먹고 퇴근할 때 아내가 기사가 될 것이라는 호언장담도 작용했습니다.
 
사실 자가용이 없어도 생활에 큰 불편은 없었습니다. 대중 교통 수단이 잘 발달된 도시에 살다보면 그리 불편하지는 않습니다. 지금도 집에서 자가용 사용은 1주일에 한 두번 정도 밖에 안됩니다. 멀리 아이들과 장거리 여행을 하는 경우나 일가 친척을 방문하는 일에나 겨우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생활 주변에서는 가급적 걸어다니는 편입니다. 그러니 자가용은 거의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너무 편리함을 찾다보면 문명의 이기에 종속이 심화되기에 중용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다시 음주운전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지난 1990년대만 해도 음주운전은 다반사였습니다. 음주운전하다가 교통경찰에 걸려도 자신의 신분을 이용하거나 고위직의 지인을 활용해 빠져나오는 일도 자주 벌어지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교통사고 사망율 1위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대대적인 교통안전 캠페인과 음주운전 단속 등으로 지금은 교통수칙을 잘 지키는 편입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음주운전이나 과속 등 교통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얼마 전에도 지인을 만나보니 음주운전으로 운전면허가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주변에도 음주운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교통안전 캠페인과 더불어 생활화될 수 있도록 함께 더 노력해야 할 듯 합니다. 

음주운전을 해도 광복절 특사로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매제나 친구의 입장에서는 서운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특별 사면권이 남용되는 것도 국가 사회적으로 보면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정부는 광복절 64주년을 맞아 약 153만명을 특별 사면했습니다. 대통령의 특별 사면권이 너무 인기 영합을 위해 남용되는 듯 하기도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출범 1년 6개월도 지나지않아 벌써 3번의 특사로 468만명을 사면해 주었습니다. 지난 참여정부 5년간 437만명을 사면해 준 것과 비교하면 이미 그 규모를 넘어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이명박 정부는 5년 임기동안 1500만명 이상을 사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사면 공화국이라 할 일입니다. 무능했던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사면을 남발해 인기를 얻으려 했던 것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사면권 남용을 하지않겠다고 했고 작년에도 임기 중 추가 사면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짓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법 질서 확립을 내세우는 현 정부의 기조와도 전혀 맞지 않은 일입니다. 대통령의 입맛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형국입니다. 특히나 이번 광복절 특사에서 죄질이 나쁜 음주운전 사범을 대거 사면한 것은 일반인의 법규 위반을 관행화시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음주운전은 도로를 달리는 살인자와 다름없습니다. 과거 음주운전자 사면 이후 음주 사고는 25% 이상 증가하고 사상자는 1만명 이상 늘어났다고 합니다. 음주 사고로 인해 10조원 이상 사회적 비용이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음주운전에 대해서는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인 만큼 일벌백계하는 것이 마땅하고 더욱 단속을 강화해야 할 사안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의 사면권 남용은 문제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지난 2007년 사면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사면법을 개정해 사면위원회를 두고 있지만 전혀 활동을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권력이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은 지난 60년간 4번만 사면을 단행했습니다. 조지 부시 대통령은 8년 재임 기간 중 고작 190명을 사면했습니다. 대통령 마음 대로 사면하는 네로 황제와 같은 국가 체계는 문제가 있습니다. 경찰이나 검찰의 무분별 법집행도 문제가 많지만 사면권을 남발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광복절 특사를 맞아 매제에게는 행운입니다. 음주운전 사범의 굴레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절대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 운전수칙의 준수와 자세가 필요합니다. 매제의 음주운전 문제는 우리나라 운전자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입니다. 음주운전해도 특별사면으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 마저도 없어야 합니다. 도로 위의 인간 살상 흉기인 음주운전 자동차는 사라져야 합니다. 

그나저나 매제에게 두부 한 모를 보내주어야 겠습니다. 광복절 특면사면으로 운전면허시험장이 북적거린다는데 소양교육도 하겠지만 재발방지대책에 더 신경썼으면 합니다. '음주운전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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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나랏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왕국시대의 임금님을 뜻하는 일반 백성들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나랏님은 백성들이 섬겨야 할 군주였습니다. 나랏님은 씨가 달랐습니다. 이씨 조선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왕씨도 있었고 여러 씨가 있었지만 말입니다.

옛날 씨족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이씨 왕족은 자자손손 왕이 되었습니다. 왕국이 무너지고 왜국이 되었습니다. 왜국은 순사들이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나 쌀나라(米國)의 도움으로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그러나 쌀나라의 심복인 이씨가 또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이씨가 백성들을 못살게 굴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나랏님을 내쫓아버렸습니다. 이씨는 나라 밖을 맴돌다 객사했습니다. 그런데 왜국에서 완장찼던 박씨가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박씨도 국민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완장찬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박씨도 자기 밑에서 완장찼던 부하에게 총맞아 죽었습니다.

쌍김씨가 나랏님이 될 찬스가 왔습니다. 그러나 전씨가 박씨의 수법으로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전씨도 완장찬 부하들을 통해 백성들을 박해했습니다. 백성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백성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전씨도 결국 항복했습니다. 쌍김씨 중 한김씨는 전씨 친구와 손잡았습니다. 전씨 친구가 나랏님이 됐습니다. 공화국의 국민들이 뽑은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완장찬 시대가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전씨 친구가 끝나고나자 손잡았던 한김씨가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무능했습니다. 배신의 계절이 지났습니다. 그 후 다른 김씨가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비로소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되었습니다. 잠시 남북에 평화가 왔습니다. 그러나 박씨가 만들어놓은 남남의 국민들이 서로 싸웠습니다. 남남의 국민들을 통합하겠다던 노씨가 나타났습니다. 노씨는 봉하 농민의 아들이었습니다. 노씨가 나타나기 전까지 나랏님은 모두 퇴임 후에도 임금처럼 살았습니다. 그들은 서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씨가 달랐습니다.

노씨는 남남의 국민들을 통합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 임기가 끝났습니다. 노씨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노씨는 봉하 농촌에 가서 살았습니다. 백성들은 이웃이 된 노씨에 감동했습니다. 이씨가 다시 나랏님이 되었습니다. 이씨는 봉하에서 농사짓는 노씨가 싫었습니다. 이씨는 노씨를 괴롭혔습니다. 가족들도 괴롭혔습니다.

노씨는 '삶과 죽음의 길이 자연의 한조각'이라며 부엉이바위에서 승천했습니다. 백성들은 깨달았습니다. 노씨가 진정한 그들과 같은 국민이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백성들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씨는 눈물흘리는 백성들도 싫었습니다. 순사들을 보내 백성들을 혼냈습니다. 그럴수록 백성들은 노씨가 그리웠습니다. 그리고 이씨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면 완장 찬 순사들이 늘어났습니다.

이씨는 노씨처럼 농사짓는 시늉도 했습니다. 백성들이 오가는 골목에서 뻥튀기도 먹었습니다. 오뎅도 먹었습니다. 쇼를 했습니다. 백성들은 쇼가 아니라 감동을 주라고 했습니다. 순사들이 농사짓는 강물을 막아버렸습니다. 백성들에게 말할 권리도 없어졌습니다. 사발통문법이 만들어졌습니다. 백성들은 노씨와 농사짓던 봉하로 갔습니다. 거기는 사람 사는 세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른들을 위한 졸필의 우화였습니다. 나랏님도 두가지가 있습니다. 씨가 있는 나랏님과 씨가 없는 나랏님이 있습니다. 이씨는 씨가 있는 나랏님이었습니다. 노씨는 나랏님이었지만 씨가 없는 백성의 길을 택했었습니다. 그래서 노씨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백성들은 그제서야 노씨가 진정한 서민이었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씨는 노씨 흉내를 냈지만 이제는 백성들도 믿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나랏님은 씨가 달라서 농사를 짓지 않는다? 편견입니다. 나랏님도 농사도 짓고 시장에도 갔습니다. 그런데 어떤 나랏님은 진정성을 알고나서 백성들이 섬겼습니다. 공화국의 국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나랏님이 논두렁에 나타나고 시장 골목에서 오뎅을 먹어도 백성들은 마음 속으로 말했습니다. 푸른집에 쥐가 산다는 흉흉한 소문이 도는 왕국의 백성들이었습니다. "쇼하지 말란 말이야!"

이 글은 전혀 현재와는 무관합니다. 옛날 씨족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런 편견없이 읽어주셔야 합니다. 자신의 성씨가 나왔다고, 또는 안나왔다고 상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편견타파 릴레이]
1. 자신의 직종이나 전공 때문에 주위에서 자주 듣게 되는 이야기를 써주세요. 
2. 다음 주자 3분께 바톤을 넘겨주세요. 
3. 마감기한은 7월 31일까지 입니다.

[바톤이 넘어온 경로]
1. 라라윈님 : 편견타파 릴레이
2. 해피아름드리님 : 편견을 버리세요~ 편견타파 릴레이
3. 검도쉐프님 : [편견타파 릴레이] 편견을 버리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4. 용짱님 : 용짱은 된장남?

[편견릴레이]의 바톤을 넘겨주신 분 : 대한민국 황대장 님
[편견릴레이]의 바톤을 넘겨받을 분
 1. Candy Boy. 님 : 잘 해주실 것 같은 달콤한 남자^^;
 2. Moneya Moneya. 님 : 언제나 열심히 열정넘치는 남자^^;
 3. 강팀장. 님 : 창의적 편견에 도전하는 남자^^:
 (세 분 부탁드립니다. 송구하지만, 블로그 문화에 동참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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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이미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 많은 상념이 들곤 합니다.
바보 노무현이란 별명이 상징하듯이, 비록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닥치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서는 우직하고 당당하게 뚜벅뚜벅 앞만 보고 나아갔던 큰 그릇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고인은 우리 아이들에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행복한 세상을 물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과 민주주의를 위해 기존 절대 권력이나 기득권에 맞서 싸우지만, 국민들 앞에서는 한없이 몸을 낮추고 함께 눈물 흘리던 대통령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 국민들에게 노무현은 너무 과분했는지 모릅니다. 아니 우리 모두는 너무 영악해서 '바보 노무현'의 큰 마음이 들어서기는 버거웠나 봅니다.

역사상 우리나라 대통령 중에 이토록 당당한 대통령이 있었던가?
미국을 비롯 일본 러시아 등 제국주의 열강들에 결코 고개 숙이지 않던 대한민국 대통령이었습니다.

아래 동영상은 2006년 4월결 노무현 대통령의 독도 관련 감동 연설입니다. 진정한 자주 독립 국가의 대한민국 대통령이란 바로 이래야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그냥 우리 땅이 아니라 40년 통환의 역사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역사의 땅입니다.
독도는 일본의 한반도 침탈 과정에서 가장 먼저 병탄되었던 우리 땅입니다.

일본이 러일전쟁 중에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편입하고 점령했던 땅입니다.
러일전쟁은 제국주의 일본이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하기 위해 일으킨 한반도 침략전쟁입니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빌미로 우리땅에 군대를 상륙시켜 한반도를 점령했습니다.
군대를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하고 황실과 정부를 협박하여 한일의정서을 강제로 체결하고,
토지와 한국민을 마음대로 징발하고 군사시설을 마음대로 설치했습니다.

우리 국토 일부에서 일방적으로 군정을 실시하고, 나중에는 재정권과 외교관마저 박탈하여
우리의 주권을 유린했습니다.

일본은 이런 와중에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 망루와 전선을 가설하여 전쟁에 이용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반도에 대한 군사적 점령상태를 계속하면서 국권을 박탈하고 식민지 지배권을 확보하였습니다.

지금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대한 점령지의 권리,
나아가서는 과거 식민지 영토권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국의 완전한 해방과 독립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또한 과거 일본이 저지른 침략전쟁과 학살, 40년간에 걸친 수탈과 고문, 투옥, 강제징용
심지어 위안부까지 동원했던 그 범죄의 역사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것을 용납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국민에게 독도는 완전한 주권회복의 상징입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역사교과서 문제와 더불어 과거 역사에 대한 일본의 인식,
그리고 미래의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일본의 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입니다.

일본이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고, 그에 근거한 권리를 주장하는 한,
한일 간의 우호관계는 결코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 이들 문제에 집착하는 한, 우리는 한일간의 미래와
동아시아의 평화에 대한 일본의 어떤 수사도 믿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그리고 문화적인 교류도 이 벽을 녹이지는 못할 것입니다.

한일간에는 아직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가 획정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일본이 독도를 자기 영토라고 주장하고 그 위에서 독도기점까지 고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해해저 지명문제는 배타적 경제수역 문제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배타적 수역의 경계가 합의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우리 해역의 해저지명을 부당하게 선점하고 있으니,
이를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따라서 일본이 동해해저 지명문제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리고 배타적 경제수역에 대한 문제도 더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되었고,
결국 독도 문제도 더 이상 조용한 대응으로 관리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습니다.

독도를 분쟁지역화하려는 일본의 의도를 우려하는 견해가 없지는 않으나,
우리에게 독도는 단순히 조그만 섬에 대한 영유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에서 잘못된 역사의 청산과 완전한 주권확립을 상징하는 문제입니다.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대처해 나가야 할 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제 정부는 독도문제에 대한 대응방침을 전면 재검토하겠습니다.

도문제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문제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인식,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 수호의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어 나가겠습니다.

물리적인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하고 단호하게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세계여론과 일본 국민에게 일본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끊임없이 고발해 나갈 것입니다.
일본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때까지,
전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그 밖에도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할 것입니다.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의 역사를 모독하고 한국민의 자존을 저해하는 일본정부의 일련의 행위가
일본국민의 보편적인 인식에 기초하고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일간의 우호관계, 나아가서는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가 결코 옳은 일도,
그리고 일본에게 이로운 일도 아니라는 사실을 일본 국민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정적 대응을 자제하고 냉정하고 대응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일본 국민과 지도자들에게 간곡히 당부합니다.
우리는 더이상 새로운 사과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누차 행한 사과에 부합하는 행동을 요구할 뿐입니다.

잘못된 역사를 미화하거나 정당화하는 행위로
한국의 주권과 국민적 자존심을 모욕하는 행위를 중지해 달라는 것입니다.

한국에 대한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기준에 맞는 행동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진실과 인류사회의 양심 앞에 솔직하고 겸허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일본이 이웃나라에 대해서, 나아가서는 국제사회에 이 기준으로 행동할 때
비로소 일본은 그 경제의 크기에 걸맞은 성숙한 나라,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로 서게 될 것입니다.

국민여러분,
우리는 식민 지배의 아픈 역사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선린우호의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 왔습니다.

양국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통 지향속에
호혜와 평등 평화와 번영이라는 목표를 향해 전진해왔고, 또 큰 관계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양국은 공통의 지향과 목표를 항구적으로 지속하기 위해서 더욱더 노력해야 합니다.
양국관계를 뛰어넘어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나아가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함께 이바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사의 올바른 인식과 청산, 주권의 상호 존중이라는 신뢰가 중요합니다.

일본은 제국주의 침략사의 어두운 과거로부터 과감히 떨쳐 일어서야 합니다.
21세기 동북아 평화와 번영, 나아가 세계 평화를 향한 일본의 결단을 기대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통령 노무현

일본 미국 등 제국주의 열강들 국가원수와 독재자에는 고객 숙이지 않지만 국민 앞에 고개 숙인 노무현 대통령은 그 누구와는 너무 비교가 되고 있다.(사진 : 도아님 참조)

옛날의 영상들을 찾다가 발견한 노무현 대통령 관련 동영상 2개를 소개합니다.

먼저 2002년 12월 대통령선거 당시 노무현이 부른 노래 동영상 '상록수'편입니다.


2002년 12월 대선 당시 동영상 노무현의 '눈물'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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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에 대학 동창 모임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 20여년만의 모임이라 친구들의 근황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미 중년의 나이에 모이니 친구들에 대한 소식이 그리움으로 다가섰습니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사는 친구나 기사 딸린 고급차를 타고다니는 사모님이 된 동창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날의 단연 최고 이야기는 대만 갑부의 외동딸과 결혼한 친구의 사연이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어 그 날 참석은 못했지만 동창 K의 결혼 스토리는 압권입니다. K의 사연은 약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K는 고향이 부산입니다. 부산에서 상경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게 됐습니다. K는 모든 모임을 주도하는 연예인적인 기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K가 대학MT나 모임에서 선보인 노래는 그 날 이후 공식 지정곡이 될 정도였습니다.

K의 대표적인 레파토리는 CM송 메들리였습니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자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콘~~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칩~~~ 농~심~ 크레오파트라~~~ 드세요~ 농~심~ 크레오파트라~   " 1980년대를 풍미하던 CM송의 일부를 메들리로 계속 이어지게 만든 곡들입니다. 80년대의 대학가는 군사독재 타도의 분노가 넘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낭만이 있었습니다. 비록 소주 한잔의 추억 속에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장엄한 서사시의 투쟁가가 있었고 한편으론 낭만의 곡들이 있었습니다. CM송 메들리는 그 중간의 흥겨운 화합의 노래였습니다. 

CM송 풀 메들리 80년대  사례

온 세상에 울리는 말고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영-창

열두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부라보콘------살ㅡ짝-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 콘

손이가요 손이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어른손 아이손 자꾸만 손이가

언제든지 새우깡 어디서나 맛있게

누구든지 즐겨요 노옹심! 새우깡!!

비비 비벼보자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ㅡㅡ (두손으로 비벼도 되잖아!)

ㅡ팔도 비빔면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그리 예쁜가요

----------------아아아아아아아 아카시아 껌
아아아 아아아아----------------아카시아 껌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 칩 (포테이토 칩)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 칩

---------------아아아아아-----------농심농심
농심 크레오파트라---------드세요 농심-------

크레오파트라

쵸코가 외로워 쿠키를 찾네 쵸코친구 쿠키친구

쿠키가 외로워 쵸코를 만나네 오리온 쵸코칩쿠키

오리온 쵸코칩쿠키 쿠키 이이!!!

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바

삐익삐익 꼬였네 들쑥날쑥해

사과맛 딸기맛 롯데 스크류바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오 롯데껌 좋은 사람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손에 담아 드려요 오란씨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 오 오 오 오란씨

으쌰으쌰 어기여차 재미로 먹고 맛으로 먹는

오리온 고래밥 오리온 고래밥

오리온 고래고래고래고래 밥! 헤이!!

대학 1학년을 끝마치고 어느 날, K가 대학을 중퇴하고 해외로 떠났습니다. 독재의 그늘을 벗어나 해외로 망명한 듯한 히피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이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마련해 떠난 도피 자금으로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팔아서 돈을 모아 다른 국가를 방랑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국가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해외 여행을 꿈꾸기 어려웠던 그 당시에는 매우 희귀한 변신의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K는 미국을 떠나 다시 브라질로 갔습니다. 그는 낮에는 중국집에서 일하고 밤에는 중국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러다 K는 중국어학원에서 그녀(이하 S)를 만났습니다. S는 미국에 유학 중인 대만 출신 여대생이었습니다. S가 방학 기간 동안에 브라질에 여행을 왔다가 잠시 중국어학원의 임시 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K는 첫 눈에 S에 반했습니다.


[사진] 영화 '러브스토리' (1996년작, 배창호 감독)

K의 중국어는 이제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S에게 뭔가 중국어로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날 부터 K는 중국어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편지를 쓰는 일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밤새도록 중국어로 편지를 썼습니다. 한 숨도 안자고 정성을 다해 한 통의 편지를 쓰고나면 이미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동이 트면 K는 자건거를 타고 S가 머물고 있던 숙소를 향해 달렸습니다. S의 숙소에 편지를 넣어두고 다시 중국집으로 가서 일을 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중국어학원에서 S로부터 중국어 수업을 받았습니다. S는 편지를 받았지만 모른체 눈길도 주지않고 수업만 했습니다. K는 다음 날도 편지를 썼고 새벽이 되면 S의 숙소에 편지를 놓아두고 왔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K의 편지에 S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게다가 새벽 마다 자신의 숙소에 편지를 놓고 도망가듯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K를 본 S는 '한번 만나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한국 남자 K와 대만 여자 S의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둘은 만나는 동안,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눈빛으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만남이 지속되면서 S가 오히려 더 K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S는 사랑하는 K를 위해 브라질에 아예 머물러 버렸습니다. 그러다, S는 비자가 만료되어 브라질을 떠나야 했습니다. 브라질의 공항에서 둘은 약속했습니다.
"다시 돌아 올게. 조금만 기다려."
"언제까지나 그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렇게 둘은 뜨거운 포옹과 함께 브라질 공항에서 이별을 했습니다.

[참고] K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K와 S의 러브스토리는 조금 길기 때문에 여기서 1부는 마치겠습니다. 다음 2부를 기대해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K와 S의 러브스토리는 K를 몇년전 만나서 밤새 전해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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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남북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이 발생해 몇일간 계속 번졌습니다. 북한측에서 화공작전으로 산불을 낸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습니다. 사실 비무장지대에서 산불이 일어나면, 맞불을 놔서 꺼지게 하거나 그냥 비가 와서 자연적으로 꺼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는 도리가 없습니다. 이번 산불도 다행히 최근에 비가 와서 소멸되었을 것입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는 남한과 북한 사이에 비무장지대라는 특수한 환경이 존재합니다. 제가 군대 시절에 비무장지대에 근무했기 때문에 실제로 남북분단의 현실을 누구보다 피부로 많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영화 'JSA(공동경비구역)'은 비무장지대 내에서 남과 북의 병사들이 겪는 에피소드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을 했지만 어느정도 상황을 묘사한 측면도 있습니다.

비무장지대는 군인이라도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구역입니다. 특별하게 출입증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정전협정상 군인들이 함부로 출입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무장출입증도 까다로운 심사절차에 의해 승인된 극히 일부의 특수 군인에게만 발급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비무장지대 출입증이 발급된 사람은 여러가지로 선택되고 검증된(?) 사람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군대시절 생각이 나서 지난 20년전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찾아봤습니다. 예전 군생활회상록에서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비무장지대 출입증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당시는 민정경찰대, 수색중대, 전초대, 수색정찰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던 것 같습니다.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 출입증 앞면과 뒷면 모습]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 상용 출입증'이란 명칭과 함께 '이 출입증은 민간행정 및 구제사업 제관서에 소속된 사람의 사용에 한함'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본 출입증 소지자는 비무장지대 남경계선의 통과 및 비무장지대 남반부에서의 이용에 대한 완전한 자유가 보장된다. 비무장지대 북쪽 부분을 출입하는데는 유효하지 않다.'고 부연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뒷면에는 영어로 똑같은 내용이 씌여 있었습니다. 이미 20여년이 지난 아주 오래 전 과거이지만 젊은 시절에 목숨을 걸고 비무장지대를 누비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습니다. 


아쉬운 것은 남한의 경우 '군인'이 비무장지대를 출입하기 위해서는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을 위한 인원으로서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유엔군사령부, 흔히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만 한다고 합니다. 바로 이같은 허가를 받은 군인을 '민정경찰(DMZ Police)'이라고 표현합니다. 북한은 '민경대'라고 합니다.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정전협정에 기인합니다.

지난 1953년 7월 27일, 미국
과 북한, 중국이 정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6.25 전쟁이 끝나고 남과 북 사이에는 휴전선인 군사분계선(MDL)이 생겼습니다. 당시 남한은 배제된 상태에서 정전협정문에 서명이 된 것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라,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으로 2Km, 북으로 2Km 각각 사이의 땅이 바로 비무장지대입니다. 말 그대로 하면 군사적인 무장을 하면 안되는 지역인 셈입니다. 그리고 남북한은 비무장지대가 끝나는 지점에 철책을 만들어 대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정전협정에 따르면, ① 어떤 군인이나 민간인도 비무장지대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남북 각 지역 사령관의 특정한 허가가 있어야 하며(정전협정 제1조 제8항), ②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의 집행에 관계되는 인원과 군사정전위원회의 특정한 허가를 얻은 인원이 아니면 비무장지대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다(정전협정 제1조 제9항). 또한 ③ 군사분계선 이남 비무장지대의 민사행정 및 구제사업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이 책임진다(정전협정 제10항).

궁금증이 생겨서 북한의 비무장지대 출입증은 어떻게 생겼는지 검색을 해보니 하나가 발견이 되었습니다. 정전협정에 따른 문구는 없고 비무장지대 출입증의 소지자 신분을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마도 소비자는 북한의 민경대 소속 군인일 것입니다. 영화 JSA에서 남북한 병사는 아마도 이러한 신분증을 각각 소지하고 있었을 듯 합니다. 


     [좌측이 북한의 비무장지대 출입증 모습]

우리나라가 남북분단 국가라는 상징적인 장소가 비무장지대라면 비무장지대 출입증은 젊은 군인들이 온몸으로 분단의 현실을 느끼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비무장지대에는 미확인 지뢰지대들이 도처에 위험이 산재해 있습니다. 항상 조심하지 않으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사선을 넘나드는 곳입니다. 뉴스에서도 여러번 보도된 GP에서 총기사건이 바로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군대 시절에는 어떻게 무시무시한  공포의 비무장지대에서 살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오싹하기만 합니다.

비무장지대 출입증을 살펴보니, 우리나라 민족의 아픔을 그대로 나타내주는 것 같아 상념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는 전쟁을 잠시 중단한 개념인 휴전에 의한 정전협정이 아니라 진정으로 남과 북이 전쟁을 종식시키는 종전으로 바꿔 평화협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봤습니다. 언제까지 동족이 서로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살아야 하는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서로 같은 민족으로서 평화롭게 살 수 있다는 것도 큰 진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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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WBC 조직위원회가 발표한 올스타 명단입니다. 대한민국은 전체 12명의 포지션별 명단 중에서 총 4명으로 국가별 1위, 일본은 3명으로 2위입니다. 우리나라가 진정한 1위인 것입니다.

내 야 수  : 김태균 (대한민국) 이범호 (대한민국) 지미 롤린스 (미국) 호세 로페스 (베네수엘라)

외 야 수  : 아오키 노리치카 (일본) 프레드릭 세페다 (쿠바) 요에니스 세스페데스 (쿠바)

포     수  : 이반 로드리게스 (푸에르토 리코)

지명타자 : 김현수 (대한민국)

투    수  : 봉중근 (대한민국) 마쓰자카 다이스케 (일본) 이와쿠마 히사시(일본)


국가별 올스타 숫자입니다. 우리나라가 4명으로1위입니다.

대한민국 : 4명(김태균 이범호 김현수 봉중근)

일본 : 3명

쿠바 : 2명

푸에르토 리코 : 1명

미국 : 1명

베네수엘라 : 1명


WBC 조직위원회는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한 16개국 중에서 이번 대회 각 포지션별로 두각을 드러낸 선수들로 구성된 ‘올 토너먼트 팀’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각국 기자단의 투표로 만들어진 이 명단은 투수 3명을 포함, 총 12명으로 이뤄졌으며, 한국은 김태균 이범호 봉중근 김현수 등 16개국 중 최다인 4명을 배출했던 것입니다.

김태균은 이번 대회에서 타율 0.345(29타수 10안타) 3홈런 11타점을 기록해 1루수에 당당히 만장일치로 이름을 올렸고, 타율 0.400(20타수 8안타) 3홈런 7타점으로 맹타를 휘두른 이범호는 3루수에 뽑혔으며, 김현수는 타율 0.393(28타수 11안타) 7타점을 기록해 ‘올 토너먼트 팀’ 지명타자에 선정됐습니다. 그리고 봉중근은 일본팀을 상대로 2승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이 0.51에 불과했습니다. 만일 투혼상이 있었다면 단연 이용규 선수입니다. 김태균은 김만장이란 별명도 얻을 듯 합니다.


한국, 세계 야구 랭킹 2위로 상승

이번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은 세계 랭킹 2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국제야구연맹(IBAF)이 WBC가 끝난 지 하루 만에 발표한 세계 야구 랭킹에서, 1월 발표 순위 779.82점으로 3위였던 한국은 WBC 준우승으로 160점을 더 얻어 939.82점을 획득, 미국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선 것입니다. 1위는 여전히 쿠바이고 일본은 3위로 올라섰습니다. 세계 랭킹에서는 한국이 일본 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나라가 일본에 WBC 결승전에서는 아깝게 졌지만 진정한 승자는 한국입니다. 올스타 투표 결과나 세계랭킹 순위는 결국 한국이 우세한 결과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야구와 국가 대표팀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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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태균이 홈런을 친 뒤 덕아웃에서 음료수컵을 들고 있는 장면이 TV화면에 비추어졌습니다. 김태군의 투런 홈런 뒤 잠시 경기가 중단된 상태였습니다. 다저스타디움 좌측 외야 상단 대형 화면에 덕아웃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던 김태균의 얼굴이 잡혔던 것입니다.

다저스타디움을 찾은 한국인 관중의 함성이 커졌습니다. '김태균 김태균'을 연호하는 관중들의 함성은 외국인들도 합세해 더욱 커져 다저스타디움이 떠나갈 듯 했습니다. 김태균도 대형 화면에 나오는 본인 얼굴을 확인하더니 수줍게 '씨익' 미소를 던져주었습니다. 현장에 있던 관중들은 물론 TV 중계를 시청하던 국민들에게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된 것입니다.


오늘 경기의 백미는 김태균의 커튼콜 장면이었습니다. 다저스타디움의 관중들은 투수교체 타이밍 시간이라 잠깐 경기가 중단된 상황이니 김태균에게 다시 한번 얼굴을 보여달라고 함성을 연호한 것입니다.

LA 다저스타디움에 감동의 커튼콜 물결치다 

김태균은 음료수컵을 입에 물고 덕아웃 밖으로 잠시 걸어 나와서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습니다. 미국 현지의 교포 관중 뿐만 아니라 미국 관중도 김태균에게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미국 프로야구의 상징적 경기장인 다저스타디움에서 김태균의 커튼콜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광경이었습니다. 관중들로부터 경기 중에 최고의 찬사를 받은 김태균도 연신 웃음을 보였습니다.


TV 시청을 함께 하던 아내도 감격스런 모습이라며 환호를 보냈습니다. 이번 베네수엘라와의 경기는 초반부터 압도적인 스코어로 앞서나갔기 때문에 긴장감없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김태균의 커튼콜 장면은 하나의 보너스 선물과 같은 재미와 감동을 준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커튼콜(curtain call)이란?
연극이나 음악회 등에서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뒤, 관객들이 찬사의 표현으로 환성과 박수를 계속 보냄으로써 무대 뒤로 퇴장한 출연자를 무대 앞으로 다시 나오게 불러내는 일을 말합니다. 프로 야구에서도 연극이나 음악회와 같이 관중들의 함성과 연호에 따라서 선수가 덕아웃에서 경기장으로 나와서 다시 인사를 하는 경우 커튼콜이라 부릅니다.

결국 한국은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WBC 4강전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 초반에 터진 추신수, 김태균의 홈런포와 선발 투수 윤석민의 눈부신 역투에 힘입어 10-2 대승을 거뒀습니다. 추신수의 3점 홈런은 1회부터 압도하는 청신호였고 김태균의 2점 홈런은 승부에 쐐기를 박는 축포였습니다. 초반부터 큰 점수 차이로 앞서 나갔고 베네수엘라는 메이저리거 출신들로만 이루어진 최강의 전력이라는 평가가 무색하게 어이없는 실책을 남발하며 맥없이 무너졌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빅뱅의 노래 '원더풀'이 흘러나왔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김태균에 대한 4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태균, 국민타자 이승엽의 자리를 차지하다

김태균은 이번 WBC 세계 야구대회를 기점으로 국민타자의 반열에 오르게 됐습니다. 그 동안 이승엽이 국민타자로서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김태균 시대라고 할 만 합니다. 이승엽의 공백으로 국민 타자의 기근이었는데 김태균이라는 선수의 발견은 앞으로 우리나라 대표팀에는 큰 수확입니다. 김태균은 승부의 고비 마다 홈런포를 작렬시켜 4번 타자의 몫을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현재 WBC 대회에서 홈런 3개로 공동 선두입니다. 앞으로 결승전에서 홈런을 추가한다면 단독 1위를 차지할 수도 있습니다. 타점에서는 이미 11점으로 이승엽의 WBC 기록을 제치고 김태균이 가장 많습니다.

한국팀, 세계 야구 무대에 강팀 이미지를 쌓다

한국팀의 김태균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세계 야구 무대에서 장타를 날리는 팀컬러로 거듭 나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한국 야구는 단타 위주의 팀으로 여겨졌습니다. 기동성과 단타 위주의 야구였기 때문에 세계 야구계는 한국팀을 '스몰볼'이라며 다소 낮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 야구는 김태균이라는 홈런 타자를 보유한 장타 위주의 강팀으로 포지셔닝된 것입니다.  미국이나 일본의 반응도 과거와 달리 한국 야구에 깜짝 놀랐다는 것입니다.

[네티즌 사이에 김만세 별명으로 불리는 김태균 모습]


친근한 4번 타자 이미지로 국민들의 사랑받다

김태균은 이번 커튼콜에서도 보여주었던 친근한 매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대형 화면에 자신이 비추어지자 미소를 보여주는 모습이나 관중들 앞에 나와서 인사하는 매너 장면은 그의 스타성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김태균은 이미 인터넷 상에서도 네티즌들에게 김태균 별명이란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정감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 대표팀 4번 타자 홈런왕이고 거구의 몸이라서 근엄하고 딱딱한 이미지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경기 중에는 강한 승부 근성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귀엽고 친근한 모습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이번 커튼콜 장면에서 김태균 선수의 인사를 빗대 '김인사'라는 별명으로 부르기 지작했습니다.


[김박사 별명을 준 김태균 어린시절 사진]


한국 프로야구의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다

우리나라가 세계 야구대회가 열리기 전에는 약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김태균을 비롯한 여러 신진 선수들이 많이 발굴됨으로써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적은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한국 프로야구가 재도약하는데 기폭제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한국 국가 대표팀과 한결 가볍게 세계 무대에서 강팀들과 어깨를 나란히 겨룰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김태균이 있습니다.


오늘 경기를 보면서 김태균의 재발견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순히 국가대표 4번 타자를 넘어서 세계인들이 인정한 세계적인 4번 타자의 면모를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커튼콜을 받는 김태균의 모습에서 관중 그리고 시청자들과 함께 하는 '아름다운' 감동의 모습은 야구의 묘미를 배가시켜주는 감동의 물결이었습니다. 과거 보다 야구에 대해 다소 무관심했던 팬들도 앞으로는 더욱 더 관심과 성원을 보낼 수 있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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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젊은 청년들이 미래에 대한 도전 정신이 없다면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도 없을 것입니다. 실패를 두려워않고 도전하는 중소벤처 기업, 그리고 스타 기업을 만드는 벤처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방송을  보고 난 후 하나의 울림이었습니다.

오늘 저녁 KBS에서 방송한 '시사기획 쌈-한국경제에 새로운 스타가 필요합니다'를 시청했습니다. 특이하게도 방송 프로그램 부제가 '철수 생각'이라고 되어 있어 흥미를 끌었습니다. 현재 KAIST 석좌교수인 안철수 박사가 진단한 '우리나라에서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는 이유'와 '왜 젊은이들에게 도전하는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상당히 공감이 갔습니다. 우리나라는 10여년전에 미국의 유명한 경영학자인 피터 드러커가 선정한 세계에서 기업가정신 1위인 국가였는데 요즘은 도전하는 기업가정신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안철수 박사는 한국의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는 이유를 크게 네 가지 측면에서 설명했습니다.
첫째, 사업기회가 줄어서? 아니다. 새로운 기회나 틈새를 찾아서 사업을 하는 것이다.
둘째, 성공확률이 낮아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벤처는 성공확률이 낮아서 기업가 정신이 쇠퇴하고 있다.
셋째, 보상이 적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보상이 적어도 스스로 좋아하고 의미있고 재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
넷째, 위험도가 높아서? 그렇다. 우리나라는 위험도가 너무 높다.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나 눈먼 돈이 좀비이코노미를 만든다.


특히, 방송에서 미국 실리콘밸리의 벤처 문화가 놀라웠습니다. 나이가 70세가 되는 래리 로버트라는 사람은 인터넷의 초창기 기술에 참여한 것으로 유명한 분이었는데, 무려 4000억원을 투자받았으나 벤처사업에 실패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또 엄청난 투자를 받아 사업에 도전하고 있다고 합니다. 실패도 경험이라면서 좋은 아이디어와 기술이 있으면 다시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합니다. 만일 우리나라였으면 실패하면 대표이사 연대보증 문제로 개인이 완전 파산하거나 금융사범으로 감옥에 가고 아예 재기를 못할 것입니다.

세계최초 전기자동차 테슬라모터스의 양산 모험 
실리콘벨리의 테슬라자동차가 만든 세계최초의 전기자동차 양산도 신기했습니다. 2인승 스포츠카인데 1주일에 15대 생산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1대에 1억원이 넘는데 무려 1000대 이상 주문이 밀려있다고 합니다. 전기자동차는 3시간 동안 5~6천원 정도면 충전이 가능하고 390킬로미터를 운행할 수 있다고 합니다. 비용은 적게 들지만 충전시간이 많이 걸려 불편할 수 있어 보이는데 미국인들은 미래를 위해 전기자동차를 구매하는 투자를 한다는 것입니다. 테슬라자동차는 5인승도 정부자금을 지원받아 만든다고 합니다. 실리콘밸리는 불황 속이지만 희망을 만드는 것입니다. 벤처라는 미래에 투자하는 실리콘밸리가 부럽기도 합니다. (미국도 불황이라 정부 투자는 아직 미지수이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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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전기자동차 http://biso.tistory.com]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은 암담합니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공장 사례가 나왔는데 삼성이 하청업체들에게 원가절감 10% 이상을 요구하자 집단 대항하다 찍혀 납품 거래 중단으로 도산한 업체들의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갑인 대기업이 을인 중소업체들을 쥐어짜는 구조라서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대기업 중심 경제 구조의 문제입니다.

태양전지 분야 희망을 쏘는 네오세미테크
그러나 국내 기업 중 태양전지 웨이퍼를 생산하는 네오세미테크는 사례는 희망처럼 보였습니다. 한해에 매출이 5배나 늘어 1000억원이고 올해 500명의 직원을 채용한다고 합니다. 미래 태양에너지 분야라서 전망도 밝다고 합니다. 그런데 타이완 정부는 태양에너지 분야를 전략산업으로 선정해 국가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는데 반해 지원책이 미비한 우리나라와 비교가 되었습니다. 차세대 항공기 엔진 분야에 진출 중인 부경이란  국내기업은 지원이 안되어 차기 제품을 만드는 것을 포기할 상황이라고 합니다.

중학교 3학년 최연소 CEO의 벤처 사업 구상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중학교 3학년(15세)오규석 사장이었습니다. 중학생으로 정보올림피아드 금상을 받고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은 CEO(대표이사)이고 미국의 학생은 CTO(최고기술책임자)였는데 인터넷 전화와 채팅을 통해 블로그 관련 사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도 하나의 희망의 싹의 발견일 수도 있습니다.

아래 박스는 방송과는 관계없이 찾아본 내용인데. 안철수 박사가 어떤 대학 강연에서 학생들과 이야기 한 일화라고 합니다. 워런 버핏의 성공 이유는?

안철수 : 워런 버핏은 어떤 사람이기에 성공했을까요?
학생들 : .......?

안철수 : 느려 빠지고, 남을 잘 믿고, 착한 사람이라면 기업가로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학생들 : 아니요.

안철수 : 워런 버핏은 느리기에 장기투자를 했고, 남을 잘 믿기에 아랫사람을 신뢰했으며, 착하기에 기부에 앞장섰습니다. (그것이 버핏의 성공 이유입니다. 고정관념을 버려야 겠습니다.)

20대 젊은이들이 도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방송을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나라가 몇년동안 새로운 미래 경제의 동력이 상실된 것이었습니다. 20대 젊은이들은 새로운 도전보다는 현재의 안정과 전망만 쫓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불투명한 현실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이나 벤처들이 새로운 도전을 통해 희망의 싹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기업가정신을 불러일으켜 할 정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답답했습니다. 아직도 과거의 제조 대기업 정책에 올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커졌습니다. 

미래에 도전해 성공하는 스타 벤처 기업이 많아야 '좋은 롤모델이 될 수 있고 사회적인 도전정신의 붐을 조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경기 불황의 시대이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향해 미래 스타의 싹을 키우는 문화가 조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추가] 안철수 박사가 쓴 책 중에서 '영혼이 있는 승부' 중에 가장 감명깊은 구절이 생각납니다.
나는 우주에 절대적인 존재가 있든 없든,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가 있다면 아무런 보상이 없더라도 그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세에 대한 믿음만으로 현실과 치열하게 만나지 않는 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다. 또 영원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살아있는 동안에 쾌락에 탐닉하는 것도 너무나 허무한 노릇이다. 다만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더 의미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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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요즘 직장인들은 언제 감원이나 해고가 될지도 모르는 불안에 떨고 있다. 이같은 감원 태풍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유럽 등 지구촌 전체가 동시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IMF(국제통화기금)는 올해 경제성장율이 0.5%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 불황인 셈이다.

우리나라도 올해 2~3% 마이너스 성장, 구조조정 한파 예상
심지어, IMF는 우리나라는 경제가 2~3% 마이너스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야말로, 직장인들에게는 공포스런 예측이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에게도 대량 감원과 실직 사태가 도미노 처럼 발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렵고 힘든 고난의 시기에 직장인들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미국 포천지 직장인 처신법 10가지 공개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최근호에서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직장인 처신법 10가지"를 공개했다고 한다. 미국은 현재 감원과 해고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그 동안 초우량기업으로 알려졌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도 감원과 구조조정을 통해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포천지가 공개한 직장인 처신요령 10가지는 아래 내용과 같다.

직장인 처신요령 10가지

1. 신뢰를 얻으라
2. 스스로 많은 일을 하라
3.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라
4. 재택근무는 삼가라
5. 상사와 자주 대화하라
6. 상사의 고통을 공감하라
7. 불만 토로를 자제하라
8. 정장을 자주 입으라
9. 고자세를 버려라
10. 정보를 가까이 하라

[삽화 인용 : 문화일보]

위 10가지 중에서 '재택근무를 삼가라'는 우리나라 직장 현실과는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나머지 대부분은 우리나라 직장문화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직장인 생존법이 있는지 찾아봤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11월 경제위기로 인해 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이후 평생직장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됐다. 그 이후 45세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란 말이 유행어로 둔갑했다. 

우리나라 '사오정시대 생존전략 10가지 소개
계명대 경영정보학과 김영문 교수가 제시한 `사오정시대 개인의 생존전략 10가지`를 소개해 본다. 경영정보학과 교수가 만든 것이라 그런지 소호(SOHO)나 사이버 공간의 개인 사무실, 인터넷과 컴퓨터 활용 등이 많이 등장하는 것이 이채롭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블로그를 갖고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도 하나의 생존전략일 듯 하다.

사오정시대 개인 생존전략 10가지

1. 시간을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2.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확장시켜야 한다.
3. 늘 관심있는 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해야 한다.
4. 사이버 공간에 자신만의 사무실을 개설해야 한다.
5. 소호(SOHO)와 투잡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6. 건강과 체력을 관리해야 한다.
7. 교육훈련을 통해 지속적으로 자기개발을 해야 한다.
8.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지적재산으로 등록해야 한다.
9. 관련분야 자격증이 있는지를 알아보고, 필요한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10. 컴퓨터와 인터넷을 효과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일본 사람들은 어떨까 찾아봤다. 일본 최대의 광고회사인 '덴쯔(電通)의 정신 10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전반적으로 대부분이 우리가 어디선가 들어봄직한 정신이지만 '마찰을 두려워 마라. 마찰은 진보의 어머니, 적극성의 비료다. 그렇지 않으면 비굴하고 미련한 사람이 된다.'가 독특하다. 평상시라면 모르지만 불황의 시기에는 잘못하다가는 해고 1순위가 되지 않을까? 덴쯔의 정신 10가지가 그래도 가장 현실적으로 기업에서 원하는 직장인상인 것 같다.

일본 덴쯔의 정신 10가지
1. 일은 스스로 창조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2. 일이란 남보다 앞서가는 것이지 수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3. 큰일을 해야 한다.작은 일은 자신을 작게 만든다
4. 어려운 일을 목표로 해라. 그리고 그것을 이룩함으로써 진보한다.
5. 일을 시작했으면 목적을 완수할 때까지 죽어도 놓아서는 안 된다.
6. 주위 사람들을 이끌어라. 이끄는 것과 이끌려가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7. 계획을 세워라. 장기 계획을 세우면 인내와 지혜, 그리고 올바른 노력과 희망이 생긴다.
8. 자신감을 가져라. 자신감이 없으면 일에 대한 박력도 끈기도 그리고 깊이도 없다.
9. 머리는 항상 깨어 있어 사방을 주시하고 한 치의 틈도 있어서는 안 된다. 서비스란 원래 그런 것이다.
10. 마찰을 두려워 마라. 마찰은 진보의 어머니, 적극성의 비료다. 그렇지 않으면 비굴하고 미련한 사람이 된다.
 

고용불안시대 '직장인 생존전략 10가지'
덧붙여, 올해 여성동아 1월호 실린 '고용불안시대 직장인 생존전략 10가지'를 소개한다. 전체적으로 주요한 내용을 담은 듯 하다. 다만, 경력개발 컨설팅은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생존전략을 쓴 분의 이해가 들어간 듯하다.
1.상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
2.1년에 한번씩 이력서를 쓴다.(스스로 자신의 장단점을 파악해 본다)
3.상사나 선배 앞에서 티나게 일한다.
4.인맥지도를 만든다.
5.공생관계를 넓힌다.
6.자신만의 차별성을 개발한다.
7.꾸준히 건강을 관리한다.
8.긍정적 마인드를 키운다.
9.가족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들인다.(힘든 일이 있으면 가족과 상의한다.)
10.경력개발 컨설팅을 활용한다.

우리나라와 미국, 일본 등의 직장인 생존전략을 살펴보니 어느나라나 불황기에는 살아남는 것이 관건이다. 그리고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도 크게 보면 비슷하다. 직장인들이 어떻게 기업 내에서 처신해야 할지 살펴보는 계기가 되고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감원과 해고의 한파 속에서 오늘도 열심히 직장생활하시는 직장인 여러분 힘냅시다. (저도 곧 사오정인데 남의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ㅠㅠ) 여러분들도 공감이 가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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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