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7.28 지소연 눈물이 김연아 만큼 감동적인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7)
  2. 2009.05.21 인턴에서 국제기구 직원 된 '당찬' 한국여성 by 진리 탐구 탐진강 (33)
  3. 2009.02.07 김연아 우승은 박세리의 감동과 닮았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


"언론, 국민들의 무관심 등 외로운 상황과 고된 훈련 속에서 울면서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이 고마울 뿐입니다."

20세이하 여자대표팀을 월드컵 4강에 진출시킨 최인철 감독이 한 말입니다. 2010 국제축구연맹(FIFA) 20세이하(U-20) 축구대회에서 여자 대표팀이 4강에 오르기까지 눈물의 연속이었던 셈입니다. 그 중심에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인 '지메시' 지소연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지소연의 감동 스토리는 눈물겹습니다. 과거 여자 육상스타 임춘애의 라면먹고 뛰었다는 이야기가 스치기도 합니다.

척박한 토양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개척한 스포츠 영웅들을 보면 모두가 감동적입니다. 세계최고의 피겨여왕에 오른 김연아도 그랬습니다. 김연아가 등장하기 전까지 한국 선수가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김연아는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세계정상에 우뚝 섰고 환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한국 여자 스포츠 역사는 어쩌면 남자들 보다 드라마틱한 것 같습니다. 세계 여자 골프에서 '맨발의 투혼' 박세리 선수가 LPGA 첫 우승으로 새 역사를 쓴 바 있고, 우생순 신화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팀도 그러했습니다. 다른 스포츠 종목도 열악한 환경을 딛고 불굴의 투지와 의지로 승리한 역사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자 축구의 지소연은 어떤 스포츠 스타와 비교해도 더욱 감동적입니다. '눈물젖은 빵'을 먹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정신으로 밝게 웃으며 달려온 '캔디'와 같은 지소연. 외로워도 슬퍼도 눈물흘리지 않으려 늘 애썼던 지소연. 그래서 더 지소연이 예뻐 보입니다. 지소연의 축구는 남자축구 보다 재밌다는 찬사가 나올 정도입니다.

지소연을 중심으로 한 한국 여자축구는 그렇게 매일 새 역사를 써 왔습니다. 우리나라 남자 축구팀이 수십년간 이룬 월드컵의 영광들과 비교하면 여자축구는 정말 대단합니다. 월드컵 본선에 나가지면 매번 조별 예선에서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남자 대표팀과는 달리 여자 축구는 큰 염려도 없이 단숨에 4강에 직행했습니다. 지소연은 현재 6골로 독일의 포프(7골)과 득점왕을 노릴 정도이고 한 경기에서 해트트릭(3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박지성이 월드컵 본선에서 3골을 기록한 것을 보면 지소연이 월드컵에서 기록한 골이 얼마나 우월한지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 비교는 무리일 수도 있습니다만 그 만큼 출중하다는 의미입니다.

지소연과 김연아 뒤에는 어머니가 있었다!

지소연의 감동 스토리에는 항상 어머니가 있습니다. 지소연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남자 아이들과 함께 축구를 할 때 지소연의 어머니 김애리 씨는 딸의 꿈을 그대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여자 아이가 사내 아이들 틈에서 축구 연습을 하는 것은 아버지는 못마땅해 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딸을 믿음으로 끝까지 지켜주었습니다. 지소연은 초등학교 축구팀에 입단해 남자들과 겨뤄 오히려 동년배보다 2~3년 정도 앞설 실력을 갖추고 주전선수 11명에 항상 들어갈 정도였다니 가공할 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 축구선수의 탄생이라 할 만 합니다.

그러나 가정형편을 보면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어머니는 2002년 자궁암 판정을 받고 암투병으로 건강을 잃기 시작하고 아버지는 딸의 선수생활 고집과 아내와의 불화로 결국 이혼을 하게 됩니다. 지소연은 자신에게 헌신적인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 역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현재 고등학생인 남동생은 지소연 자신이 공부시키겠다고 마음먹고 아픈 어머니에게는 '찜질방 달린 집'을 꼭 사줄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어머니는 암투병 후유증과 합병증으로 허리가 매우 안좋다고 합니다.

"소연이 키가 더 자라지 못한 걸 보면 가슴이 미어집니다. 내가 못 먹인 것 때문인 것 같습니다. 해외에 나가면 빵만 먹고 뛴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몸이 나으면 먹을 거리라도 좀 챙겨줄텐데..."

지소연 어머니는 딸의 키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 합니다. 키 161Cm인 지소연은 다른 여자 축구선수들에 비해 작습니다. 외국 선수들에 비하면 매우 작은 키입니다. 그렇지만 지소연은 빠른 몸놀림을 바탕으로 골컨트롤, 패싱력, 슈팅능력, 스피드 등 전반적으로 놀라운 기량을 갖고 잇습니다. 마치 작은 키의 남자 축구스타 메시를 연상시켜 '지메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현재 지소연 가정은 기초생활보장 수급 대상자로 정부가 지원하는 전세임대주택(18평)에 살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반지하 셋방을 전전했으니 그나마 지금은 나은 편입니다. 어머니는 몸이 좋지 않지만 지금도 봉제공장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홀로 아들을 키워고 가정을 책임지는 상황이라 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찜질방 달린 집을 사주겠다는 지소연의 다짐이 싹텄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소연은 이를 악물고 악바리처럼 그라운드를 뜁니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할 동생의 등록금, 그리고 가정의 생계를 떠맡겠다는 것입니다. 대표팀 선수에게 나오는 약간의 돈마저 쓰지않고 절약해 어머니에게 가져다 줄 정도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현대판 효녀 심청이입니다.

남동생 숭연 군은 모 인터뷰에서 "누나가 간식을 좋아해요. 그런데 자기는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는 것도 아까워 벌벌 떨면서도 나에겐 아낌없이 사주는 사람이 바로 우리 누나”라고 말하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누나는 사실상 누나이자 아빠였어요.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누나가 곁에 있다는 이유 하나로 헤쳐나갈 힘을 얻어요”고 밝힌 바 있습니다. 작은 키에 비해 마음은 일찍 커버린 지소연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지소연은 해맑은 미소로 밝습니다. 좌절할 만도 한 결손가정이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습니다. 지소연에게는 세계최고의 여자축구선수 그리고 한국팀을 여자월드컵 우승컵을 안겨주겠다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소연이 과거 중학교 시절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친 적이 있습니다. 다른 여자 축구팀과 패싸움이 벌어졌는데 상대를 병원에 실려갈 정도로 패준 것입니다. 결국 어머니는 없는 살림에 300만원이란 거금을 합의금으로 마련해야 했고 지소연은 그 후 몰라보게 온순해지고 달라졌다고 합니다.

"핸드폰이 없는데요."

이제 겨우 열여섯. '축구소녀' 지소연(위례정산고)은 대부분의 질문에 고개를 떨구며 수줍어 하지만 당당하게 우리나라 최연소 A매치 골기록(15세 293일)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여자축구계의 새희망이다

위 박스에 있는 글은 지난 2007년 1월 호주에서 열린 4개국 초청 친선축구대회에 우승한 후 당시 주장이던 지소연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입니다. 소녀들이 누구나 갖고 있는 휴대폰도 없었고 오직 축구만 했다고 합니다. 기자도 놀랐는지 제목이 휴대폰이 없다는 내용입니다. 지금은 성인 대표선수이니 휴대폰은 있겠지만 노트북은 아직도 없답니다. 다른 선수들은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해외에서도 인터넷을 본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아마도 대기업에서 앞으로 협찬을 많이 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지소연 미니홈피에는 응원글들이 쇄도하고 있고 마니홈피 사진에도 관심이 이어진다.

역경과 시련을 딛고 0.004% 신화를 만들다!

그렇게 지송연은 온갖 역경과 시련을 딛고 신화를 만든 것입니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있기까지 항상 그 곁에 어머니가 있었듯이 지소연에게도 늘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지소연의 가정형편을 고려하면 김연아는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소연도 김연아도 스스로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최고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지소연이 미국 여자 프로축구리그에 진출해 최고의 선수들과 기량을 겨뤄 이름도 날리고 돈도 많이 벌어 어머니에게 효도할 날도 기대해 봅니다.


아무도 관심을 주지않던 시절에 지소연과 김연아는 척박한 불모지에서 열심히 노력해 최고의 경지에 올랐던 것입니다. 그 과정에는 남모를 눈물과 땀이 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외신들은 한국 여자축구를 '기적의 4강'이라고 합니다. 한국
여자 축구선수 숫자가 1404명 밖에 안됩니다. 독일 축구협회에 등록된 여자 선수는 무료 105만명이나 됩니다. 우리 선수층은 수치만 비교하면 독일에 비해 0.004% 밖에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한국이 4강에 진출했다니 기적이라 할 것입니다.

"남자에 비해 인기가 없다 보니 우리 경기는 (방송사가) 생중계가 아닌 녹화로 보여줍니다. 비인기 종목이라는 설움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이번 대회가 너무 중요합니다." (최인철 감독)

무관심과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 여자 축구는 승리와 기적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이제 녹화가 아닌 생중계를 해줄 것입니다. 언론도 국민들도 이제는 여자축구를 응원할 것입니다. 거기에는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 지소연이 함께 할 것입니다. 김연아의 금메달 감동 보다 더 눈물나는 지소연의 감동 스토리인 이유입니다. 지소연의 독일전이 기대됩니다. 여자 축구가 내친 김에 독일을 꺽고 결승에 진출해 우승하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지소연 미니홈피 대문글 '여자축구 더 많이 사랑해주세요.'처럼 평소에도 더 많은 관심과 응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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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스포츠계에 몸담고 있는 친구에게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인턴에서 출발해 최근 국제스포츠기구의 정직원이 된 '당찬' 의지의 한국인 여성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나라 스포츠계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을 비롯한 국제스포츠기구의 임원들은 상당수 배출했지만, 실제로 국제스포츠무대 현장에서 실질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국제기구 직원은 배출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이 국제스포츠기구의 직원으로 활동하게 된 것은 의미가 큽니다. 국제스포츠 기구의 정직원이 된 주인공은 25세의 한국 여성 최보영 양입니다. 특히, 최보영 양은 지난 1년간의 IPC(국제패럴림픽위원회) 국제기구에서 인턴 과정을 거쳐 정식 직원으로 발탁되었다는 점에서 그녀의 열정과 의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는 곧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 스포츠 전문가의 탄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인 최초 국제스포츠기구 정식 직원 탄생의 의미

사실 최보영 양은 한국 스포츠 외교 전문가로서의 준비를 착실히 해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스포츠 전문가를 꿈꾸며 연세대 사회체육학과에 입학해 국제스포츠에 대한 지식은 물론 외국어 실력도 열심히 다졌습니다. 지난 2007년에는 한국에서 열린 IPC정기총회의 통역 및 의전을 담당하며 국제 스포츠 무대의 실무 경험을 쌓았다고 합니다.
 
2008년 베이징패럴림픽 국제스포츠 무대에 처음 참여한 최보영 양

최보영 양에게 드디어 큰 무대를 노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작년 4월에 체육인재육성재단에서 실시한 '국제스포츠기구 사무국 인턴십 파견 과정' 대상으로 선발되는 행운을 잡은 것입니다. 그녀는 대한장애인체육회로부터 추천을 받아 IPC의 까다로운 인터뷰 및 심사 과정을 거쳐 인턴으로 근무하게 된 것입니다. 그녀는 인턴으로 근무하며 동계스포츠 업무에 참여한데 이어, 중국에서 열린 '베이징패럴림픽 2008'의 IPC 베이징팀의 일원으로 국제스포츠 무대에 본격 진출했습니다.

IPC는 어떤 국제기구?
IPC(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 위원장 Philp Craven)는 패럴럼픽 및 세계선수권대회 등 국제대회를 주관하고, 국가별 장애인스포츠 활동 등을 관리 감독하는 국제기구입니다. 지난 1989년 설립돼 독일 본에 사무국이 있으며, 총 27개 패럴림픽 종목의 경기연맹 및 162개 회원국 장애인올림픽위원회를 총괄하고 있습니다.
  
비록 인턴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최보영 양은 국제스포츠계에서 지난 1년간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활약으로 IPC를 감동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최근 당당하게 IPC로부터 정식 직원으로 발탁 채용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달 5월부터 IPC의 정식 직원으로 근무하게 된 최보영 양은 한국인으로 최초는 물론 아시아인으로도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녀는 특유의 친화력과 긍정적 사고를 바탕으로 낯선 독일에서의 적응도 어렵지 않게 잘하고 있다고 합니다.


IPC 모임에 참석한 최보영 양과 2008 베이징패럴림픽에서의 최보영 양 모습

우리나라가 국제스포츠기구의 정직원으로 최보영 양을 배출한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국제스포츠 무대에서 우리나라의 스포츠 외교의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도 이제는 스포츠 스타 뿐만 아니라 글로벌 스포츠 인재의 다변화라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우리나라 스포츠계에 있어 여성 파워가 국제기구에서도 위세를 떨치는 시금석이 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경제 불황의 상황 속에서도 우리나라가 국제 무대로의 인턴 성공 사례 및 일자리 창출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이룬 것입니다.

최보양은 어느 인터뷰에서 미래를 꿈꾸는 또 다른 젊은 후배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국제기구에 근무하는 외국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융합하려 노력해야 해요. 어학실력과 실무능력은 당연한 거고요. 거기에 더해 열린 사고와 긍정적인 마인드, 자신감을 갖추세요.”

우리나라 스포츠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최보영 양이 큰 꿈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박세리나 김연아라는 스포츠 스타로 인해 새로운 유망주가 계속 탄생하듯이 최보영이 있어 국제스포츠기구에서도 많은 한국인 전문가들이 배출되기를 기대합니다.

[참고] 국제스포츠기구 인턴이 되려면?
최보영 양이 국제스포츠기구의 정직원이 되는 성공 사례에 따라 체육인재육성재단은 올해에는 더욱 의욕적으로 최대 10명의 인턴을 국제기구에 파견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국제스포츠기구의 인턴으로 선발되면 왕복항공료, 체재비, 의료보험료 등과 함께 생활준비금(US $500), 귀국이전비(US $600) 등 금전적 혜택도 상당합니다. 올해 신청기간은 6. 8(월) ~ 6. 12(금)이며 자세한 사항은 체육인재육성재단(바로가기)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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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김연아 선수가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짜릿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온 가족이 김연아 경기를 지켜보면서 가슴을 조마조마해야 했습니다. 제가 어제부터 1박 2일 회사의 워크숍을 일찍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마침 김연아 경기 시작 전이었습니다. 다행히 맨 마지막 경기가 김연아 선수였기에 TV를 통해 생중계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경기 초반 엉덩방아 찧는 실수를 극복한 감동적 승리
그런데, 경기가 시작되고 순조롭던 김연아는 초반에 트리플 루프를 실패하면서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는 실수를 했습니다. 초반에 큰 실수를 한 김연아가 당황해 경기를 망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김연아는 이후 트리플 악셀과 컴비네이션 스핀으로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완벽하게 마무리하면서 캐나다 현지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결국 김연아 선수는 116.83점을 받아 이틀전 쇼트프로그램(72.24점)과 합산해 189.07점으로 종합 우승을 차지해 '4대륙 피겨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한국 선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아쉽게도 엉덩방아를 찧는 바람에, 꿈의 200점 돌파는 다음 기회를 노려야 할 듯 합니다.

 

 


이번 경기에서 김연아 선수가 다시 일어나 침착하게 경기를 진행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박세리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흡사 박세리 선수가 LPGA 프로골프에서 우승하던 장면을 연상하게 했습니다.

1998년 7월 US오픈 프로 골프대회 연장전에서 박세리는 연못에 골프공을 빠뜨리는 큰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박세리는 바지를 걷어올리며 양발을 벗고 맨발로 워터 해저드에서 위기를 탈출하는 감동적인 '맨발의 투혼'을 연출했습니다.

이 장면은 IMF 경제위기에 시름하던 국민들에게 위기 극복의 상징적인 장면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당시 정부가 국민에게 경제 위기를 이겨내자는 TV 홍보 광익광고를 내보내면서 이 장면을 활용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2009년 2월 김연아가 경제불황 속의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비록 우리나라가 경제위기를 비롯해 어려운 상황이지만 꿈과 희망을 잃지않게 해주는 한줄기 빛이 바로 김연아 선수의 투혼인 것입니다. 만일 김연아 선수가 엉덩방아를 찧고 당황해 경기 내용을 망쳤다면 우승은 못했을 것입니다.


김연아 선수와 박세리 선수는 위기의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고 불굴의 투지를 발휘해 결국 최고의 정상에 섰다는 것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개 위기의 순간에 포기하거나 움추려들기 십상인데 두 선수는 위기에서 더욱 투혼을 발휘한 것입니다.

박세리와 김연아 선수의 닮은 점 세가지
그리고, 김연아와 박세리는 우리나라가 경제위기 상황에서 스포츠 선수로서 위기 극복의 메시지를 주는 상징적 장면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또 닮았습니다. 박세리 선수를 시발점으로 우리나라는 수많은 프로 골프선수들을 양성하며 골프 강국으로 올라섰습니다. 소위 '박세리 키즈'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합니다. 김연아 선수 우승으로 스케이트를 배우며 꿈을 키워가는 선수들이 많아진 것도 비슷한 양상입니다.


박세리 선수가 당시 위기에서 탈출하는 장면이 '상록수'라는 음악과 함께 울려퍼지는 IMF 위기극복의 영상은 마치 김연아 선수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교향모음곡 '세헤라자데'에 맞추어 자신있는 연기를 펼치고 있는 장면과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박세리 선수의 우승에 모두가 함께 감동의 눈물을 흘렸듯이, 김연아 선수의 우승에 기쁨의 눈물과 환희를 느끼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또한, 김연아와 박세리는 우리나라 선수들이 아무도 우승하지 못한 매개척 분야에서 우승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두 선수는 도전정신으로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의 결과 세계최고의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지극정성으로 애쓴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김연아와 박세리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개척자 정신을 일깨운 역사인 것입니다.

여자 운동선수 브랜드파워 박세리 제치고 김연아가 1위 등극
현재 세계적인 '피겨요정' 김연아는 프로골퍼 박세리를 제치고 여자 운동선수 가운데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고 합니다. 처음 설문조사가 실시된 2003년 이후 4년간 부동의 1위였던 박세리를 제친 것입니다. 김연아가 빼어난 국제대회 성적과 귀여운 외모 덕분에 '국민여동생'으로 발돋움하면서 대중적 인기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와 소비자에 대한 영향력이 제일 커진 것입니다. 최근 광고 CF에서 최고의 대접을 받는 이유가 브랜드파워가 아닐까 합니다.

김연아와 박세리는 우리나라의 경제와 사회가 어려울 때 마다 희망의 촛불 처럼 나타나는 '잔다르크'와 같은 존재입니다. 지금도 우리나라는 IMF 보다 더욱 심각한 마이너스 성장의 굴레에 빠져 있습니다. 김연아 선수의 불굴의 투지와 같이 우리나라 사람들 모두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용기를 가졌으면 합니다. (다만, 자기들의 정치적 이득만을 챙기는 위정자들은 제외합니다.)

경제불황은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이지만 결국 사람만이 희망인 것 같습니다. 아직 어린 18세의 김연아가 위기 속에서도 우승의 희망을 향해 불굴의 투지를 보여준 것 처럼 모두 모두 서로 격려하면서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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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