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1.03.20 리비아 공습 vs 이라크 침공, 카다피 최후일까? 그 교훈은? by 진리 탐구 탐진강 (16)
  2. 2009.11.07 부끄러운 줄 모르는 대한민국 3가지 화두 by 진리 탐구 탐진강 (43)
  3. 2009.11.06 품절녀 고소영 이영애, 다음은 김혜수인가? by 진리 탐구 탐진강 (79)
  4. 2009.09.23 군대 갔다오면 태권도 유단자가 되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5. 2009.08.19 김대중 대통령 장례식, 국장 갖고 흥정말라 by 진리 탐구 탐진강 (82)
  6. 2009.07.08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방귀의 부활? by 진리 탐구 탐진강 (80)


지난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8년만에 서방세계가 아랍세계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미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 5개국 연합군이 리비아 카다피 군사력에 대한 대대적 공습을 실시한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3월 20일 오늘은 2003년 미국이 앞장 선 이라크 침공일과 날짜가 같습니다.

사실 저는 카다피 국가원수가 독재자로 전락해 최후의 결사항전을 선언한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듭니다. 과거 1980년대 초중반 당시,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카다피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한 우리나라 노동자가 '한국인'이라는 잡지에 쓴 내용이었지요. 한국인 노동자는 야간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카다피 국가원수가 한 밤 중에 깜짝 방문해 즐겁게 야식을 했던 장면에 감격해 경험담을 썼었지요.

198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은 리비아와 국교 관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리비아는 북한과 국교 관계를 맺고 정치적으로 유대가 강했던 시절이지요. 그렇지만 카다피는 정치와 경제 분리 원칙을 내세워 한국의 건설회사가 대수로 공사에 참여하게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동아건설이 리비아 대수로 공사에 참여할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리비아의 대수로 공사는 향후 세계 10대 불가사의에 오를 만큼의 대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리비아 국토는 사하라 사막이 대부분일 정도로 척박합니다. 카다피는 1969년 27세 나이의 대위 시절에 무혈혁명으로 당시 부패한 이드리스 왕정국가를 무너뜨리고 국가원수가 됐습니다. 그 후 사막을 옥토화시켜야 리비아 국민들이 향후 생존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대수로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리비아의 석유자원이 고갈되면 후손들이 살아갈 수 없다고 판단해 사막을 농업이 가능한 옥토로 바꾸겠다는 수십년 구상이었지요.

독재 왕정을 무혈쿠데타로 장악한 카다피의 야망과 녹색혁명 대수로 공사

사막의 옥토화는 리비아의 미래였습니다. 그래서 카다피는 국기도 녹색 단색 하나로만 했습니다. 그가 쓴 책 '그린북(Green Book)'은 제3의 사회주의 세상을 꿈꾸는 사상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퍼져나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전두환 독재국가 시절이라도 카다피의 그린북은 금지 서적이었지요. 젊은 카다피는 중동 이슬람 아랍세계의 영웅으로 떠올랐습니다. 반미 제국주의를 내세우며 이슬람 아랍세계의 단결을 외치며 외세로부터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고 역설했지요.

            카다피는 왕정국가를 쿠데타로 장악한 후 사막의 녹색옥토화를 위해 대수로공사를 했다

그러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역사의 진리가 있습니다. 카다피는 42년 장기 독재정권의 독재자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이 김제규의 총탄에 쓰러지지 않았다면 카다피와 다를 바 없겠지요. 박정희도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후 유신독재를 비롯해 부마 민주화 항쟁 등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독재자 길로 접어들었지요. 경제대통령의 이미지로 포장된 그 이면에는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고문하고 노동자를 억압한 독재자의 마각이 숨어 있지요. 그 후 전두환 군사독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어쩌면 카다피 독재자의 모습 뒤에는 박정희 군사독재나 김일정-김정일로 이어지는 북한 세습 독재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지나갑니다. 독재자들은 처음에는 국민을 위한다고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권력과 탐욕에 빠져 독재자인지 모릅니다. 절대 권력이 부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이집트의 무바라크 대통령이 친미 독재자이듯이 카다피는 반미 독재자일 뿐입니다.

군사 독재자들의 최후와 닮은 박정희 유신독재의 몰락 교훈

그래서 저는 카다피의 독재자 최후 말로가 안타깝기도 한 것입니다. 적어도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던 카다피에 대한 모습과 지금의 독재자는 달랐으니까요. 모든 독재자가 결국은 스스로 권력에 탐닉해 몰락해 갑니다. 처음부터 나쁜 리더가 아니었겠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독재자의 길로 접어든 것이겠지요. 특히 군사독재정권은 비극의 역사를 잉태하기 마련입니다. 총칼로 지배하는 것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아마조네스 여성 경호원들과 카다피는 독재자의 몰락을 상징한다

군사독재가 아니더라도 경찰독재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이 주권을 갖고 스스로 권력을 선택하는 자유 민주주의 공화국이 필요한 이유겠지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보면 이라크의 후세인이나 리비아의 카다피 독재자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독재자의 향수에 젖어 사는 사람들도 존재합니다. 권력의 콩고물을 받았거나 한 줌도 안되는 기득권을 갖고 사는 부류의 인간군상들이 있는 셈이지요. 권력과 재력의 힘으로 서민 국민들을 억압하고 통치하는 나라는 권위주의 국가일 뿐입니다.

리비아 공습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보니 서론이 길었습니다. 서양세계는 또 다시 아랍세계에 대한 침략을 하고야 말았습니다. 독재자에게 핍박받고 죽어가는 리비아 국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목적을 설명합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리비아 공습의 명분 이면에는 석유자원이 차지하는 비중도 큽니다. 리비아 민주화 운동과 내전 사태로 세계 석유가격은 천정부지로 올랐습니다. 서양세계는 이라크 침공도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자원의 안정적 확보고 크게 작용한 것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과 리비아 공습은 스스로 지키지 못한 민주주의 교훈

그래서 카다피 국가원수는 연합군의 폭격이 시작된 후 국영 TV를 통해 "리비아의 독립과 단결,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국민이 무기를 들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카다피는 서방세계의 군사행동을 "식민주의 십자군 적"으로 규정하면서 "(서방의) 침략적이고 미친 행동으로 지중해에 있는 각 나라의 이해가 위험에 직면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불행히도 지중해 지역의 해상과 영공에서 군인, 일반 시민 가릴 것 없이 실제 위험에 노출돼, 지중해와 북아프리카 지역이 전쟁터가 되고 있다"고 이슬람 세계의 단결을 내세웠습니다.

                미국은 이라크 침공 후 친미국가를 세웠지만 국민들은 더욱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이러한 카다피의 주장은 중세 시대 십자군 전쟁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 이슬람과 아랍세계가 서양 기독교 국가들의 전쟁 침략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명분이겠지요. 그 와중에 러시아는 외교부 성명을 통해 "리비아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군사행동 결정은 유감"이라고 밝히며 리비아 공습을 반대했습니다. 독일과 아프리카연합도 군사개입 반대입장입니다. 베네수엘라 등 일부 남미국가들도 서양의 리비아 침공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리비아 사태는 이제 친미 국가들과 반미 국가들의 대결 양상입니다.

국제 사회에서 영원한 적도 우방도 없습니다. 국가의 이익과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돌변할 수 있는 것이 국제 외교의 현실입니다. 카다피의 최후가 점차 다가오는 듯 합니다. 카다피가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리비아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는 의문입니다. 서양의 의해 이라크가 독재자 후세인을 몰아내고 친미국가를 세웠지만 이라크 국민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한 채 외세 통치 속에 사는 나라는 결국 국민들만 힘들고 어렵게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카다피 최후가 끝은 아닌 셈입니다.

역사가 증명해주듯이 독재자는 결국 몰락한다는 교훈을 낳겠지요. 그렇지만 독재자도 서양의 이익에 따라 지원해주기도 하다가 쓸모없어지면 가차없이 냉정하게 버리는 것이 국제 정치경제 질서입니다. 독재자 카다피의 교훈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입니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 침탈의 역사 경험을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 조국과 민족이 외세의 입김에 좌지우지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유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고 세계 정치경제의 흐름에도 끄덕없는 나라를 스스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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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인간이 야수와 같은 동물과 다른 것은 부끄러움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부끄러움을 상실한 사회라면 이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나 다름없습니다. 힘센 동물이 약한 동물을 잡아먹는 곳인 셈입니다. 요즘의 대한민국 사회와 반역의 현대사를 보면 마치 동물의 왕국을 연상하게 합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비열하고 철저하게 짓밟는 작태가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한 현실에 눈감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도덕은 땅에 떨어졌고 돈이 유령처럼 도시를 배회하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인 양심마저 시궁창에 내팽개쳐 버린 듯 합니다.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사회인 것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도덕 불감증 아니 도덕 파탄의 시대입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지 않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닿습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부끄러운 사건들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비양심과 부도덕이 난무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해줍니다.

박정희의 친일 혈서 행각과 청산하지 못한 반역의 역사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혈서 행각이 만천하에 공개됐습니다. 박정희가 만주국 군관학교에 지원하기 위해 혈서를 썼다는 만주신문 기사 내용이 그것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주신문에 의하면 박정희는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동봉된 편지에는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후 일본 육사 등을 거쳐 군인으로 계속 활동하다 해방 후 국군에서 암약하다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서슬퍼런 군부독재자가 되었습니다. 박정희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민주인사들을 빨갱이라는 색깔을 씌워 고문하고 투옥하고 죽게 했습니다. 반민족 친일파들은 청산되지 않았고 친일파들은 오히려 호의호식하며 지금까지 돈과 권력의 가진 기득권 지배자로 살고 있습니다. 뷰끄러운 우리나라 현대사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박정희(일본명 다까끼 마사오)의 친일 행각과 독재자 시대의 만행에 대해 박근혜와 박지만은 부끄러운 과거를 참회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됩니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감싸고 싶겠지만 먼저 국민들에게 부끄러운 과거에 대한 사죄가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척동자가 보더라도 부끄러운 일에 대해 사과나 반성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어제 법원에서 친일인명사전에서 박정희의 이름을 제외해야 한다며 유족들이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기각됐습니다. 그나마 양심있는 판사가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에 한 줄기 희망의 빛을 생각하게 됩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오는 8일 국민보고대회를 통해 박정희를 포함한 4천 3백여 명의 친일인사들의 명단이 공개할 예정입니다.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지 55년이나 됐지만 아직도 친일파 청산을 못하고 친일명단 마저 이토록 어렵게 밝혀야 하는지 아쉽기만 합니다.

프랑스가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독일에 협조한 반역자들 수만명을 처단한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후세들에게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반역의 역사를 반드시 단죄한다는 선례를 남긴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친일파 4천 3백여명의 명단을 만드는 것 조차 어렵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해도 모자를 판인데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오히려 친일파를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습니다

친일파 반역의 역사에 꼭 등장하는 것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일제에 아부하고 찬양하는 기사를 써왔던 대표적 언론이고 지금도 우리 시대를 주름잡는 메이저 언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박정희 친일 혈서 행각에 대해 조중동은 전혀 기사를 쓰지 않았습니다. 언론이 진실에 눈을 감는 것입니다. 이 또한 부끄러운 일입니다. 진실에 눈 감고 일제나 독재에 편승해 자본을 축적해가는 언론이 과연 진정한 언론인가 의문입니다.

박정희의 친일 혈서의 기사 내용 해석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

29일 치안부(治安部) 군정사(軍政司) 징모과(徵募課)로 조선 경상북도 문경 서부 공립소학교 훈도(訓導) 박정희군(23)의 열렬한 군관지원 편지가 호적등본, 이력서, 교련검정합격 증명서와 함께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라는 혈서를 넣은 서류로 송부되어 계원(係員)을 감격시켰다. 동봉된 편지에는

'일계(日系) 군관모집요강을 받들어 읽은 소생은 일반적인 조건에 부적합한 것 같습니다. 심히 분수에 넘치고 송구하지만 무리가 있더라도 반드시 국군(만주국군)에 채용시켜 주실 수 없겠습니까. (중략)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확실히 하겠습니다. 목숨을 다해 충성을 다할 각오입니다. (중략)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후략)'


라고 펜으로 쓴 달필로 보이는 동군(同君)의 군관지원 편지는 이것으로 두 번째이지만 군관이 되기에는 군적에 있는 자로 한정되어 있고 군관학교에 들어가기에는 자격 연령 16세 이상 19세이기 때문에 23세로는 나이가 너무 많아 동군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중히 사절하게 되었다.

(만주신문 1939년 3월 31일 7면)
[자료 출처 - 민족문제연구소]

검찰총장이 돈봉투를 돌리고도 자리를 지킬 셈인가?

사회 정의를 생명과도 같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검찰총수인 김준규 검찰 총장이 기자들에게 돈봉투 500만원을 돌리다가 공개돼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김준규 총장은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있었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본의와 달리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입장만 밝힌 체 자리를 지키려 한다는 비난에 직면해 있습니다. 유감이 아니라 부끄럽다고 국민에게 석고대죄하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명예로운 일일 것입니다.

참여연대는 "'촌지 검찰총장'은 총장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김준규 총장이 어떻게 이 나라의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공직사회를 바로잡을 수 있겠느냐"며 자진해 총수에서 물러날 것을 요청했습니다. 검찰총수로서 스스로 기강이 서지 않는 일을 저지르고도 얼굴을 들고 자리에 연연해 하는 모습을 보면 측은지심이 듭니다. 기자들에게 돈봉투를 추첨식으로 돌렸다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바로잡는 일을 하는 검찰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양심과 사회 정의에 입각해 행동하고 잘못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는 검찰총장의 직책상 임무를 수행하는데 현격한 문제가 있는 셈입니다.
 
이미 30년 이상이 지난 중학교 시절, 국사 선생님이 생각납니다. '돈 뒤에 진리가 있다'고 늘 말씀하시던 국사 선생님이었습니다. 실제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당시 촌지가 난무했던 시절이었는데 선생님은 학부모들의 촌지를 모두 거절했습니다. 저는 어떤 학부모가 선생님에게 촌지를 건네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했는데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거절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선생님들이 촌지를 수수하는 것은 당연했던 시대였다는 점에서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여권 실세의 100억원대 비자금 의혹과 권력형 비리의 발호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격입니다. 검찰총장에 돈봉투를 살포하자 권력층 비자금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이자 실세인 공성진 의원이 골프장 대표로부터 거액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곧 검찰에 소환되고, 다른 한나라당 의원 2명은 내사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공성진 의원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미 어느정도 진술 확보가 이루어져 있어 단순한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정치인의 비자금은 과거 권력형 비리의 전형이었습니다. 수년 전의 권력 비리가 다시 활개를 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공성진 의원은 경기 안성시 보개면 동평리 일대 스테이트월셔CC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관련되어 있다고 합니다. 전형적인 정·관계 인사의 불법 로비자금 수수 성격이 강하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골프장 토지 매입비를 부풀리는 방식으로 비자금 101억여원을 조성한 횡령 혐의가 농후한 실정입니다.

검찰이 수사를 한다고 하지만 개운치가 않습니다. 총수가 돈봉투를 돌리다 망신을 당한 직후라서 정치인 수사가 제대로 된다고 하더라도 검찰 수사에 대해 국민들이 얼마나 신뢰할지 미지수입니다. 스스로 사회 정의를 지킬 수 있는 책무를 다하지 못한 총수로 인해 검찰 전체의 신뢰성에 손상이 갈 수 있는 셈입니다. 검찰 총수가 부끄러운 줄 알고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 직원들이 자존심을 지키며 본연의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김준규 총장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먼저 선행되는 것이 바람직해 보입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과거의 권력형 비리가 다시 터진 것에 비애를 느끼게 됩니다. 또한 부끄러운 줄 모르는 권력층의 낯두꺼운 오리발 내밀기가 안타깝기만 합니다. 부정한 돈봉투를 뿌리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과 창피한 줄 모르고 받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활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사회 지도층이란 사람들이라는데 큰 문제가 있습니다. 2009년 대한민국 사회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인면수심, 즉 사람의 탈을 쓴 야수의 정글 세상입니다.

"애국적 국민에게 상주고 민족을 배반한 범죄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주어야 합니다. 민족 배반자들을 처단해야 국민을 단결시킬 수 있습니다."

드골 장군은 나치 독일로부터 프랑스가 해방됐을 때 나치 협력자 숙청을 위한 원칙을 제시한 것입니다. 드골 장군은 영국 런던과 알제리의 망명정부 시절부터 조국을 배반한 나치 협력 프랑스인을 준엄하게 심판할 것을 천명하고 준비했습니다. 2차대전 후 새 사회 건설과정에서 나치 협력자에게 면죄부를 발부해 재등장시키는 과오를 범한다면 결코 국민을 단결시킬 수 없다는 것이 드골의 판단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친일파들의 준동을 보면 드골의 판단이 얼마나 정확하고 역사 인식이 탁월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드골은 민족배반자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애국적 국민을 이념적으로 분열시켜 힘을 약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국민단결의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드골은 미리 내다보았던 것입니다. 드골은 '나치 독일의 점령을 정당화한 투항주의자' '히틀러의 괴뢰정권인 비시정권의 모든 공직자와 지원세력' '나치 독일과 추축국(일본과 이탈리아)의 승리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협력한 프랑스인 등을 나치 협력자로 규정했습니다.

드골은 비시정권의 고관대작을 심판하는 최고재판소를 파리에 설치하고, 일반 나치 협력자를 응징하기 위해 지방 숙청재판소를 각 현소재지마다 세웠으며, 경범죄에 해당하는 협력자들을 추궁하기 위해 시민법정을 창설했습니다. 그리고 나치 독일을 찬양하면서 영국과 미국 연합군을 증오하고 드골의 임시정부 '자유 프랑스'를 테러집단으로 매도한 언론인과 지식인 반역자들을 가장 먼저 파리 숙청재판소의 도마 위에 올렸습니다.

언론인들이 첫 번째 심판대상이 돼 거의 모두 사형으로 다스려진 배경은 '도덕성의 상징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언론인에게 면죄부를 주면 곡필을 휘둘러 국가의 도덕성과 윤리를 마비시키는 암적 존재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여전히 친일파 매국노들을 비롯한 반민족 반역자들을 처단하지 못한 역사는 반역 언론을 심판하지 못한 이유도 크다고 하겠습니다.

프랑스는 나치 협력자 200만명을 내사했으며, 이중 99만 여명을 체포해 조사했습니다. 이들에 대한 시민법정 재판 결과 6,763명에게 사형선고, 2,702명에게 종신 강제노동형, 1만 637명에게 유기 강제노동형, 2만2883명에게 징역형, 2,044명에게 금고형이 선고됐습니다. 시민법정은 9만 5천명에게 부역죄형을 내리고, 7만명의 시민권을 박탈했으며 공무원 12만명에게 파면 등 행정처분을 내렸습니다.

프랑스는 드골의 반역자 청산 성공에 힘입어 정치·경제·사회·문화·언론·지식인·대학 등 사회 각 영역에서 나치 협력자를 도려냄으로써 자유와 평등, 사회정의가 넘치는 새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프랑스 사회는 건강한 정신을 지닌 민주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고 반인류범죄법을 도입해 지속적으로 반역자를 응징하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반민특위를 통해 드골식 청산을 시도했지만 친일파와 합작한 이승만과 그 이후 친일파 반민족주의자들과 결탁해 반공 이데올로기로 무장해 민주인사들을 압살한 박정희 독재에 의해 좌절된 바 있습니다. 반민족 친일파들을 청산하지 못한 것은 지금도 좌우 이념 갈등을 비롯한 현대사의 비극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어른들이 떳떳하고 당당하게 모범이 되면서, 어린 아이들에게 양심과 정의를 지키며 살라고 가르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봅니다.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꿨던 노간지 노무현의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는 호통이 그리워지는 시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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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과 고소영의 열애 소식은 깜짝 놀랄 만한 일입니다. 장동건과 고송영은 동갑내기 1972년생으로 이미 2년 동안 연인 사이로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호사가들은 곧 결혼이 임박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직 공식적으로 결혼이 발표된 것은 아닌 만큼 두 사람의 결혼을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고소영과 장동건의 나이가 결혼 적령기를 지난 만 37세라는 점에서 두 사람이 연인 사이라는 것은 결혼 가능성을 높게 볼 수도 있습니다. 실제 두 사람의 결혼이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 연예인 중 최고 미남 미녀 스타 커플 부부의 탄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조각 미남인 장동건과 미녀 스타 고소영의 열애 소식 만으로도 그들을 좋아하던 팬들에게 한편으론 질시의 대상, 다른 한편으론 축복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고소영은 1990년대 심은하 전도연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풍미했던 대표적 스타 여배우입니다. 20대 고소영은 서구적인 미모와 톡톡 튀는 말투의 신세대 이미지로 당시 뭇 남성들을 설레이게 했었습니다. 당시 1992년 데뷔작인 KBS 드라마 '내일은 사랑'은 고소영을 단번에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1993년 MBC 드라마 '엄마의 바다'에서의 철없는 여대생 역할을 비롯해 여러 작품에서 그녀만의 개성넘치는 캐릭터로 더욱 큰 인기를 구가했습니다.

송윤아 이영애의 결혼과 고소영-장동건 커플 등장

고소영은 영화계로도 진출해 1994년 영화 '구미호'를 통해 섹시 스타로도 진가를 발휘했으며 1997년에는 영화 '비트'를 통해 당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그 이후 공백기를 거쳐 2006년 '아파트', 2007년 '언니가 간다'를 통해 화려하게 컴백했으나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는 못했습니다. 과거 인기는 점차 사라지는 추세였고 또한 영화 출연이 뜸해 졌습니다. 그렇지만 고소영은 청담동에 시가 100억원 정도의 빌딩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이기 때문에 영화나 드라마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에 드는 작품이 아니면 출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쨌든 지금 세대는 잘 모를 수도 있지만 고소영은 이 시대의 최고 미녀 여배우로서 남자들을 설레이게 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녀 트로이카 중 전도연 심은하는 일찍 결혼을 했습니다. 최근에는 30대 여배우 스타로 이름을 날리던 송윤아 이영애도 결혼을 했습니다. 따라서 고소영은 30대 후반의 대표적 싱글 톱스타로서 남아 있었습니다.

             고소영이 엘르 11월호에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선보여 결혼임박설에 힘을 실었다


[더 보기 참고] 고소영의 청초한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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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영은 이번에 장동건과 연인이라는 것이 공식 확인됨으로써 연예인 톱스타 커플 대열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연예인 커플로는 하희라-최수종, 신애라-차인표 등과 함께 톱스타 부부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셈입니다. 선남선녀가 결혼에 골인해 금슬좋게 잘 산다면 축하할 일입니다. 고소영과 장동건은 혼기가 지난 남녀라는 점에서 이왕 열애 사실도 알려진 만큼 진지하게 미래를 함께 설계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품절남 장동건도 고소영과의 열애 사실에 대해 심경고백의 글을 공식 팬클럽 홈페이지 아도니스에 밝힌 바 있어 두 사람의 결혼 가능성은 더욱 밝아지고 있습니다. [더 보기 참고] 장동건이 아도니스 홈페이지에 밝힌 심경고백 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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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순한 이미지의 김혜수와 그녀의 과거 모습은?

고소영에 이어 다음 톱스타 여배우는 누가 될 것인가 궁금증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고소영과 함께 30대 노처녀 여배우 톱스타에 김혜수가 남아 있습니다. 김혜수는 1970년생으로 나이가 만 39세입니다. 지금은 30대 여배우이지만 곧 40대에 접어드는 시기입니다. 벌써 결혼 적령기를 넘긴지 오래입니다.

김혜수는 과거 10대부터 영화에 출연하면서 청순한 이미지로 유명 여배우의 길을 걸었습니다. 과거 김혜수의 어린 시절과 학창생활 사진을 보면 싱그럽고 풋풋한 느낌이 물씬 풍깁니다.

옆에 보이는 김혜수의 사진은 중학교 3학생 때 사진인데 발고 청순한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사실 김혜수는 10대 때부터 영화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습니다. 10대 나이에도 성인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혜수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과거 어린 시절 사진을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어릴 때부터 미모가 출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똘망똘망한 눈망울과 귀엽고 예쁜 외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미모를 유지하면서 스캔들로 없이 자기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오랜 기간 사랑받는 톱스타 여배우를 유지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최신 감각의 엣지녀로 불리는 김혜수가 오래 톱스타를 유지하는 것은 끊임없는 공부와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데 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김혜수는 실물이 더 아름다운 여배우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전에 대학 친구들이 직접 봤던 김혜수에 대한 기억이 생각납니다. 오래 전에 학교 선배가 김혜수의 코디였던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 당시 선배 결혼식에 김혜수가 축하객으로 왔는데 참석했던 제 친구들은 빛나는 외모와 몸매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합니다. 화면을 통해 봤던 모습 보다 실물이 훨씬 더 예쁘고 매력적이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실물이 더 아름다운 여배우 김혜수의 25년 톱스타 비결

현재도 아름다움을 잘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 김혜수는 어떤 여배우 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김혜수는 지금도 실물이 더 아름다운 배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김혜수와 고소영은 키가 둘 다 168센티미터인 늘씬한 몸매를 지닌 여배우이기도 합니다. 김혜수는 게다가 글래머러스하기도 하니 솔로 남자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을 것입니다.

                              위탁가정의 영아들을 위한 김혜수의 훈훈한 공익광고 사진

김혜수는 1986년 영화 '깜보'로 데뷔한 이래 무려 25년간 톱스타 여배우로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잘 나가는 스타라도 몇년을 유지하기 힘든 연예계에서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김혜수도 이제는 결혼을 심각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듯 합니다. 30대 솔로 여배우였던 이영애 송윤아에 이어 고소영까지 품절녀로 전환한 상황이라 김혜수는 나이가 40을 바라보면서 더욱 고독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김혜수가 커플을 이룬다면 30대 싱글 톱스타들의 시대는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하겠지요. 그녀의 솔로 탈출은 일부 남성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겠지만 한 여자로서 이제는 가정도 이루고 사랑과 행복 속에서 멋진 결혼 생활을 보여주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싱그럽고 청순한 김혜수의 모습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녀가 팬들에게 준 선물이 더 많기 때문에 그녀가 반려자를 만나 행복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다 하겠습니다.

30대 미녀 톱스타 중 솔로를 유지하고 있는 고소영과 김혜수. 그러나 고소영은 장동건이라는 최고의 미남 톱스타와 연인 소식은 메가톤급이나 다름없습니다. '산소 같은 여자' 이영애가 정모씨와 비밀리에 결혼한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고소영과 장동건의 열애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이제 남은 김혜수가 언제 어떤 소식으로 팬들을 놀라게 할지 궁금해지고 있습니다. 고소영과 장동건이 멋진 사랑을 이루어가길 바랍니다. 아울러, 김혜수도 좋은 배필을 만나 행복한 미래를 일구어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참고] 박정희의 친일 혈서 행각 '또 하나의 충격'
민족문제연구소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주국 군관으로 지원하는 서류와 함께 혈서를 섰다는 내용이 담긴  1939년 3월31일자 ‘민주신문’ 기사의 사본을 공개했는데 박정희의 친일 행각이 충격적입니다.  ‘혈서(血書) 군관지원, 반도의 젊은 훈도(訓導)로부터’라는 제목의 이 기사는 “박 전 대통령이 문경에서 교사로 재직중 만주국의 군관으로 지원하였으나 연령 초과로 일차 탈락하였다”며 “1939년 재차 응모하며 `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라는 혈서와 채용을 호소하는 편지를 지원서류와 함께 제출했다”는 내용입니다. 특히나 편지의 내용에는 일사봉공(一死奉公), 멸사봉공(滅私奉公), 견마(犬馬)의 충성 등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충성 맹세가 나와 있어 더욱 충격적입니다. 지금도 친일파들이 우리나라의 고위층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배하는 세상인데 청산하지 못한 일본 제국주의의 나라 대한민국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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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남자들 중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대부분 태권도에 대한 추억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군대에서 태권도로 인해 많은 추억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아픈 기억이지만 지나면 추억이 되나 봅니다.
 
지난 1980년대 군대는 다소 무지막지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수색중대 백골소대 자대배치를 받자마자 소대장의 특명이 떨어졌습니다.
"앞으로 1주일 후 태권도 승단심사가 있다. 신병들은 모두 통과하도록 한다."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1주일 연습하고 태권도 승단 심사를 통과하라니.' 당시 소대에는 이미 1~2주 전에 자대배치를 받은 신병 고참들이 여러 명 있었습니다. 수색소대는 비무장지대 투입 전 훈련을 앞두고 대거 신병을 뽑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기는 단 1일만 군번이 빨라도 고참 대우를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동기 J는 소대의 막내였습니다.

아침부터 태권도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교관인 병장 고참이 소리쳤습니다.
"사회에서 태권도 해본 사람 있나?"
"네, 일병 J. 해봤습니다."
(참고로, 전초수색중대는 DMZ 출입 특수성을 감안해 처음부터 이병은 건너뛰고 일병부터 시작이었습니다.)

"몇 단인가?"
"2단입니다."

"다른 운동도 잘하는 것 있나?"
"검도가 3단입니다."

제 동기 J는 곧바로 열외가 됐습니다. 그리고 태권도 조교가 됐습니다. 저는 엄청 부러운 눈길로 J를 바라봤습니다. 소대 단위 생활이니 뭔가 잘하면 특별히 열외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저 같은 경우 바둑을 좀 두었기에 고참이나 외부에서 장교 방문시 담당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 날부터 지옥 훈련이 시작됐습니다.
'인정 사정 볼 것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바로 다리찢기부터 시작했습니다. 조교 1명이 다리를 벌리고 교관이 위에서 어깨를 눌러버렸습니다. 여기저기서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하루종일 다리찍기만 계속 했습니다. 생살이 찢어지는 아픔이 계속 됐습니다.

동기 J는 저를 보면서 안타까운 눈빛만 보냈습니다. 그래도 J가 있어 든든했습니다. 한 마디라도 서로 위로가 될 수 있는 말을 주고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8월말의 태양 햇살은 낮에는 엄청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강원도 산악지대라 밤에는 매우 추워졌습니다.

저녁에 계곡의 냇가로 씻으러 갔습니다. 하루종일 퇴약볕에 굴러서 온 몸이 땀과 흙에 쩔어있었습니다. 신병 고참들이 옷을 벗었습니다. 그런데 허벅지 뒷부분이 모두 시퍼랬습니다. 몽둥이로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거의 발목 뒤에서 엉덩이 부근까지 파랗게 피멍이 든 모습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태권도때문이었습니다. 저희 보다 일찍 온 신병 고참들은 그 전부터 태권도 훈련을 받았던 겁니다. 그런데 강제로 다리를 찢다보니 실핏줄이 다 터져버렸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다리가 피멍으로 얼룩졌던 것입니다. 정말 온 몸이 오싹한 모습이었습니다. 눈으로 그 광경을 보면 아찔합니다. 그 다음날 저도 그렇게 피멍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일 일주일 간의 연습이 계속 됐습니다. 다리찢기에서 시작된 태권도 훈련은 발차기를 비롯 품세와 대련 등 전과정을 마스터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승단 심사의 날이 됐습니다. 중대장은 최전방이다보니 태권도 승단 심사는 1년에 1번 기회가 올까말까 할 정도라고 했습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 수색중대에서 20명 정도가 승단 심사를 봤던 것 같습니다. 짧은 훈련으로 과연 승단이 가능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절반 정도는 승단에 성공했습니다. 저는 보기좋게 탈락했습니다. 1주일 훈련으로 승단한다는 것도 기적을 꿈꾸는 일이었습니다. 얼차려 엄청 받았습니다. 탈락도 서러운데 얼차려까지. J는 그 날 저에게 많은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저는 그러나 그 날이 한이 되었습니다. 태권도 최고수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날 이후 매일 남몰래 태권도 훈련을 했습니다. 새벽이나 저녁에 혼자서 나무를 세워두고 발차기 연습을 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거의 거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서 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년이 지났습니다. 언제나 태권도 수련은 빠짐없이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중대본부에 특별 휴가를 받아 하루 묵게 되었습니다. 중대장이 갑자기 전원 소집했습니다. 휴가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태권도 심사가 갑자기 있으니 모두 다음 날 심사에 참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태권도는 부대의 전투력측정에 포함되는 항목이라고 했습니다. 모두 합격하라는 특명이었습니다. 저는 얼떨결에 태권도 심사를 보게 됐습니다.

그런데 태권도 대련은 자신있는데 품세는 문제였습니다. 혼자서 품세는 연습할 수 없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왔습니다. 발차기는 자신있게 했습니다. 다행히 품세는 여러 사람이 함께 했는데 자리가 뒷줄이었습니다. 반 박자 늦게 앞 사람을 따라서 했습니다. 반 박자 동작은 늦었지만 힘있고 화려한 절도와 기술은 자신있게 보여주었습니다. 사실 특공무술도 마스터한 상태라 기술은 저를 비롯한 수색중대 요원들이 모두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마지막은 대련이었습니다. 가장 자신있는 종목입니다. 그 동안 산 속에서 혼자 갈고닦은 발차기가 있었기에, 저는 뒤돌려차기, 이단옆차기 등 공중을 붕붕 날아다녔습니다. 저와 대련상대인 K병장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탐진강, 살살해. 누구 죽일 일 있냐."
"그럼, 한번씩 공격과 수비를 번갈아 가면서 합시다."

결과는 합격입니다. 그 동안 한을 갖고 연습했는데 아주 쉽게 승단한 것입니다.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여러 상념이 감돕니다. 대한민국 군대에 다녀오면 유단자가 많은 것은 다 이유가 있나 봅니다.

지금은 군대에서 태권도가 예전 만큼 필수적인 승단 심사 항목이 아닌 곳도 있다고는 합니다.
그런데, 과거 80년대는 태권도가 전투력측정의 평가대상이라서 군부대마다 가산점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부대장은 부대원들의 태권도 승단 결과에 신경을 많이 썼던 것입니다. 그 유래는 군대에 전투력 증강의 필수훈련으로 태권도가 채택된 것은 박정희 군사쿠데타 정권 집권 초기 시절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승단하지 못하면 병장 진급에 불이익이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남자들이, 특히 군대에 갔다오면 태권도 유단자가 많은 이유입니다. 사실 군화만 신어도 태권도 1단이라는 이야기도 있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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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도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습니다. CNN 등 세계 주요 언론들도 긴급 헤드라인 뉴스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긴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추모의 소식을 전하고 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국제 사회의 추모 분위기는 오히려 우리나라 못지 않은 열기입니다. 이는 세계 민주주의 역사는 물론 세계 평화와 인권의 상징인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세계인들의 존경과 예의의 표현일 것입니다. 사람으로서 상식과 예의범절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슬픔을 나누고 애도를 표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인터넷에는 고인의 죽음 앞에서도 악플을 다는 인면수심의 패륜아들도 간혹 있습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짐승보다 못한 짓을 하는 인간말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에 따른 장례식을 국장으로 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측에서 난색을 표명했다는 일부 기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국장을 원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부측은 국장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한 셈입니다. 다른 기사에서는 유족의 뜻에 따라 국장을 치르되 6일장으로 절충하자는 정부측 검토안도 나온다고 합니다. 고인의 장례식을 두고 정부측이 흥정을 하는 형국입니다. 참으로 비열하고 몰염치한 정부의 태도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서거 이후 '최대한 예우'를 지시했다고 합니다. 과연 이 대통령의 말이 진심일지 지켜봐야 겠습니다. 이번에도 빈 말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도 이명박 대통령은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최대한 예우'를 지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지시는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유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장례식 추모사를 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현 정부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파괴 약탈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또 서울광장을 봉쇄하며 시민들을 무차별 폭력과 연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후 분향소가 마련되고 추모객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과 추모 기간 동안 이명박 정부는 졸지에 비정한 패륜 정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나라에서 모범이 되어야 할 정부가 패륜을 저지르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것입니다. 정부의 예산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일부 극우보수단체 할아버지들은 시민분향소를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시민들에게는 가혹한 폭력진압으로 악명높던 경찰은 극우보수 할아버지들의 망나니짓에는 눈을 감고 모른 체 했습니다. 이는 곧 현 정부와 대통령을 패륜 집단으로 욕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경찰의 패륜적 만행이 다시 재연되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이 시민들의 추모를 방해하거나 시민분향소 설치를 강제로 막았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최대한 예우를 지시하는데 경찰은 최대한 패륜을 저지른 셈입니다. 만일 이 대통령이 진심으로 지시한 것이라면 경찰 수뇌부는 파면 조치 등 강력한 처벌을 해야 할 것입니다. 최소한 망자 앞에서 예의를 지키고 슬픔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민중의 지팡이인 경찰의 도리입니다.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추모객들을 방해하고 폭압하는 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의 짓일 뿐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당연히 국장으로 치러야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적 지도자로서 충분히 국장의 자격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지역 민주주의 역사의 상징이자 신화입니다. 우리나라가 최대의 경제위기인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이었고 평화적 여야 정권교체를 이룬 최초의 인물이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국제사회에서도 인권과 평화의 상징이자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기도 합니다. 따라서, 김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루는 것이 타당합니다. 

분향소를 찾은 권양숙 여사가 오열하며 이희호 여사에게 위로를 하고 있다.


정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을 갖고 흥정하는 모양새는 보기좋지 않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대한 예우하라고 한지 얼마 안돼 경찰은 시민분향소를 막고 정부측은 장례식 국장 문제로 대통령 얼굴에 먹칠을 해버렸습니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이 일관성을 갖기를 바랍니다. 고인 앞에서 속좁고 비열한 패륜 정부로 비추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통령 말 그대로 최대한 예우를 갖춘 예의있는 정부가 되어야 합니다. 인간의 도리를 다하는 정부여야 합니다. 그것은 곧 국민들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길입니다. 말로는 국가의 브랜드를 높이자고 하면서 스스로 깎아먹는 정부가 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에 대한 전례 문제를 갖고 헛소리를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어이없는 일입니다. 국장.국민장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국가 또는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김으로써 국민의 추앙을 받는 자는 국장으로 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김 전 대통령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고 있고 현저한 업적을 남긴 분입니다. 국장은 당연히 유족의 뜻에 따라 정부가 최대한 예우를 갖춰야 합니다.

기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장례식 경우에는 9일장 형식의 국장으로 한 바 있습니다. 독재자였던 박정희 대통령도 국장으로 거행했던 것입니다. 전례가 없던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정부측은 관례에 따라 현직 대통령 사망은 국장으로 하고 전직은 안된다는 어이없는 주장도 한다고 합니다. 정부가 고인 앞에서 말장난하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적법한 법률에 따라 정부는 위대한 지도자에 대한 예우를 충실히 하면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9일장의 국장으로 거행하면 됩니다. 정부는 국장 장례식을 갖고 6일장으로 하자고 흥정하거나 관례 운운하며 비겁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슬픈 2009년입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별과 같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김수환 추기경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땅에서 못 이룬 꿈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힘을 주실 것을 믿어봅니다. 슬픔은 나눌수록 작아집니다. 슬픔이 응어리지면 한이 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은 제대로 된 국장으로 치르면서 국민들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슬픔을 보살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매서운 동토의 겨울을 이기고 피어나는 인동초 꽃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과 닮았다.

[참고 글] 김대중의 노무현 추모사와 YS MB의 화해(?)

[참고] 국장과 국민장의 차이

구분

국장

국민장

대상

1. 대통령직에 있었던 사람

2. 국가, 사회에 현저한 공훈을 남겨 국민의 추앙을 받은 사람

기간

9일 이내

7일 이내

조기

장례기간 관공서 계속 게양

영결식 당일 관공서 게양

휴무

영결식 당일 관공서 휴무

없음

경비

전액 국고 지원

일부 보조 원칙
(전액 지원도 가능)

절차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과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재가를 거쳐 결정


[추가 속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는 6일장 형식의 국장으로 결정됐습니다.
정부는 19일 오후 8시경 김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 결정과 관련 임시국무회의를 개최해 이같은 장례 일정을 확정한 했습니다. 장의 명칭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이며, 영결식은 오는 23일 오후 2시 빈소가 차려진 국회 광장에서 거행될 예정입니다. 장지는 국립서울현충원 국가원수 묘역입니다. 따라서 국장기간 내내 조기가 게양되며 장의 비용은 전액 국고에서 지원됩니다.

결국 정부는 9일 국장이 아닌 6일 국장으로 흥정을 한 셈입니다. 최대한 예우를 하려거든 처음부터 9일 국장으로 했다면 현 정부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통크게 하지 못하고 흥정하듯이 6일장으로 한 것은 현 정부가 고인 앞에서 치졸하고도 옹졸하다는 비판을 듣게 될 전망입니다. 정부가 앞장 서 최대한 예우인 9일장 국장을 선도했다면 좋았을 터인데 안타깝고도 아쉬운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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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자유당 시절, 낚시를 하던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옆에 있던 모 장관이 했던 말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권위가 얼마나 하늘을 찔렀는지 상징적으로 나타내주는 사건으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각하의 권위는 방귀라는 생리현상에도 아양과 아첨이 난무했던 셈입니다. 

실제로 독재자 이승만 대통령의 권위로 인해 주변에는 아첨꾼들이 들끓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이 대통령에게 아부하는 것을 빗대 '사바사바'라는 일본어가 회자되었습니다. 지금도 아부의 표현으로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 여전히 '사바사바'가 통용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 유래를 알면 권위주의 시절이 얼마나 황당했는지 이해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각하'라는 경칭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승만 독재정권 시절부터였습니다. 각하의 사전적 의미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 대한 경칭'으로 풀이됩니다. 대통령이나 대주교 등에 대해 사용될 수 있는 경칭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 군사정권에 들어서 각하라는 호칭이 대통령 자신에만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즉, 각하는 권위주의 독재정권과 절대권력의 상징어가 된 것입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제목으로 한 네티즌이 모 카페에 올린 사진

박정희 사망 이후에도 각하는 전두환 군사독재에도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각하라는 단어가 독재의 상징에서 사라진 것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부터 였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권위주의가 거의 사라졌습니다. 인터넷 발달과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대통령의 권위도 일반 국민과 수평적으로 변화를 한 셈입니다. 대통령 스스로의 인식과 변화가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권위주의 독재 시절를 연상할 정도의 일들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최원병 중앙회장이 지난 5월 20일 모내기 행사를 나가 주민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돌발영상'에 소개됐습니다.(☞바로 보기) 이 대통령은 장관, 농협중앙회장, 주민을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반말'로 일관한 것이 네티즌들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최원병 농협회장이었습니다.

이 대통령이 "농협회장은 어디 갔나?" "어 이번에 한번 제대로 해가지고, 농민들 잘 살게 해줘야지"라고 반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최 회장은 "예 알겠습니다 명심하겠습니다"라며 잔뜩 긴장해 극존칭을 썼습니다. 대통령과 농협 중앙회장의 대화는 과거 권위주의 시절을 답습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는 네티즌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 대통령의 반말이 경우에 따라 친근감을 표현일지 모르지만 다소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반말은 불쾌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적인 신분은 더욱 언행에 주의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 대통령은 최근 서민행보를 한다며 이문동 재래시장을 방문한 데서도 서민들에게 반말을 해 빈축을 사기도 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농촌체험의 새참 시간에도 주민에게 막걸리를 건네주며 "가만있어…아줌마도 한 잔 해"라고 반말을 했습니다. 그 후 이 대통령은 "중앙회장 어디 갔어? 어, 저기 앉아" "아주 제대로 해봐. 나는 확실하게 믿고 있어. 최고다. 잘하고 있어"라며 어깨를 토닥거렸습니다.

그리고 이 대통령에게 '잘할 것'이라고 격려를 받은 최 회장이 정작 농협중앙회의 비정규직 250명 해고 방침을 놓고는 민주당 국회의원들에게 답변할 때는 '자신은 권리가 없다', '끗발이 없다'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최 회장은 잘 모르는 일이고 전무가 권한이 있는 것이라는 어이없는 표현으로 원성을 샀습니다. 전무가 다 하면 되는 일을 회장은 왜 있는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로 대변되는 권위주의 시절을 연상하게 할 사건은 이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화제가 된 바 있었습니다.  2007년 6월 당시, 2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탤런트 이덕화 씨가 "각하, 힘내십시오"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었습니다. 권위주의 상징인 각하의 등장으로 국민들은 거부감을 나타낸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후보는 현재 대통령이 되었고 세상은 권위주의가 한층 넘실거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지난 1960년대의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는 권위주의 상징이 30여년이 지난 2009년에도 부활의 나래를 펴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일반 국민들의 도배글이 쇄도했습니다. 국민들의 울분을 조롱으로 담은 글이라고 합니다.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

[과학적이고 부도덕한 리플놀이 릴레이]

이번 포스팅은 sprinter님의 '과학적이고 부도덕한 리플놀이'(링크) 라는 릴레이 포스팅의 일환입니다. 즉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크리트(http://crete.pe.kr/16933)님으로부터 바톤을 넘겨받았습니다.
간단 규칙:
- “A는 좋다, **하기까지는. B(A의 반대)는 좋다, ##하기까지는”
이라는 무척 긍정적(…)이고 역설적인 접근방식으로 내가 아는 세상의 진리를 설파합니다. 갯수는 제한 없습니다.

- 글이 완성되면 2명 이상의 블로거에게 바톤을 넘깁니다.
- http://sprinter77.egloos.com/tb/2423191 으로 트랙백을 보냅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바톤을 보내준 사람에게도 트랙백 보내기 바랍니다.

- 마감은 7월 15일까지. (inspired by 이누이트님의 독서릴레이)

이런 규칙에 근거해서, 저는 아래의 4가지 느낀 점을 골랐습니다.

[과학적이고 부도덕한 리플 놀이]
방귀는 사람에게 좋다. 각하가 등장하기 전 까지는.
각하는 고귀한 사람이다. 독재자가 각하로 불리기 전 까지는.

방귀도 권위가 있다. 쌍바위골의 아우성이 시원할 때 까지는.
쌍바위골은 신난다. 독가스에 질식되기 전 까지는.

반말은 즐겁다. 상대방이 불쾌하다고 하기 전 까지는.
불쾌한 반말은 권위주의의 특권이다. 상대방에게 맞아 쌍코피가 터지기 전 까지는.

각하는 막걸리를 좋아한다. 사진찍는 쇼가 끝날 때 까지는.
사진 찍는 각하는 좋다. 콧구멍 후벼파는 사진을 네티즌이 퍼나르기 전 까지는.

이번 릴레이는 쉽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제 릴레이 바톤을 넘겨받을 블로거 분들을 추천합니다.

White Rain 님
악랄가츠 님

부디 청을 거절치 마시고 긍정과 부정의 역설적인 접근법을 통해 두 분께서 평소 느끼셨던 세상 모습을 나눠주시기를 희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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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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