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7.17 헤어진 첫사랑을 다시 만나선 안되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73)
  2. 2009.04.29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편지'(1부) by 진리 탐구 탐진강 (48)
  3. 2009.01.14 겨울방학 최고선물 '비닐포대 눈썰매 타기' by 진리 탐구 탐진강 (6)


첫사랑은 풋풋하고 아름답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태어나서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그것이 첫사랑인지 아닌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첫사랑을 어떻게 정의할지도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자기자신에게 의미있는 이성과의 첫기억 또는 애틋한 마음이 남아 있다면 그것이 첫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어떤 이는 풋사랑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저에게 첫사랑 또는 풋사랑의 추억을 더듬어가면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당시 네살이었습니다. 이웃집의 여자 아이 N은 세살이었습니다. 첫사랑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나이가 어립니다. 산골마을에서 바로 옆집에 살았습니다. 부모님이 농사 일을 나가면 저는 N과 하루종일 소꿉놀이를 했습니다. "나는 신랑, N은 신부" 그런 놀이였습니다.

네살 신랑과 세살 신부는 항상 집 앞의 뜰에 나와서 놀았습니다. 소꿉놀이 도구는 자연에 널린 돌과 풀이었습니다. 돌은 밥이 되고 풀은 국과 반찬이었습니다. 세살 신부는 돌과 풀로 밥을 짓고 국을 만들었습니다. 네살 신랑은 나무와 풀을 뜯어왔습니다. 나무는 밥을 지어야 할 용도이고 풀은 나물도 만들고 소에게 먹일 음식이기도 했습니다.



어른들은 소꿉놀이하는 저와 N을 보면 장난스럽게 물었습니다.
"애들아, 너희들 결혼할 거니?"
"네. 결혼할 거예요."

"그래, 나중에 결혼해 잘 살아라. N아 언제 결혼할 거니?"
"....(수줍음)....어른이 되면."

그렇게 저는 N과 늘 함께 놀았습니다.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저는 이웃 마을로 이사를 갔습니다. N과 헤어져야 했습니다. N은 슬퍼했습니다. 저도 슬펐습니다. 헤어짐은 늘 슬픈 일입니다. 그리고 N도 도시로 이사를 갔습니다. 영영 저는 N과 헤어졌습니다. 몇 년 후, 저도 도시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제는 둘은 볼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이 되었습니다. 시골 마을에 방학 때 갔습니다. 어머니가 느닷없이 말씀하셨습니다.
"너, 시골에서 소꿉놀이 친구였던 N 기억하겠냐?"
"N이요." 

"내가 밭일 가면 옆집에서 N과 놀았는데."
"아, 어렴풋이 기억나요. 신랑 신부하면서 놀았던 것 같아요."

"그래, 맞다. 근데 N이 시골에 놀러 왔단다. 만나 볼래? 이쁘게 컸더라."
"음. 세월이 너무 지났네요. 궁금하지만..."



그렇게 네살 그리고 세살 때 소꿉놀이 신랑 신부가 만났습니다. 너무나 세월이 지나 서로는 당시의 모습을 자세히 기억할 수 없었습니다. 서먹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린 시절의 소꿉놀이 부부였지만 너무나 많은 시간들이 지난 후 만남은 어색하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저와 N은 이미 당시의 추억이 아닌 20대의 시절로 만났기에 현실이 어색할 뿐이었던 것입니다. N은 어머니와 예전에 살던 마을에 놀러왔다 저를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와 N의 어머니는 서로 친분이 깊어 소꿉놀이 부부의 만남을 주선했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둘은 각자의 삶의 현실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저는 N과 만나지 말았어야 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저 신비로운 추억만을 간직하며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고이 간직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N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시절의 첫사랑이 가장 아름다운 듯 합니다. 그러나 그 추억을 만나는 순간부터 그 아름다운 첫사랑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립니다.

서울로 초등학교 시절에 전학을 했습니다. 참기름집에 사는 여자 아이와 눈길을 마주치곤 했습니다. 한번은 같은 반이되었습니다. 마을에 살고 있어 서로는 스스럼없이 친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반이 갈리면서 영영 못만났습니다. 그러다 아이러브스쿨이 유행일 때 친구의 권유로 가입했는데 놀랍게도 Y가 저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서로 몇번의 메시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Y는 저를 잘 기억하는데 저는 기억못하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만날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만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아주 어린 시절에 N과의 추억을 간직하지 못했던 이유에서 입니다. 첫사랑이든 풋사랑이든 추억은 소중하게 간질할 때 영원히 아름답습니다. 나이가 들어 동창회를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첫사랑이든 소중한 친구와의 만남이든 사심이 들면 그것은 아름답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당시의 풋풋하고 때묻지 않은 시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추억할 때 아름답습니다. 가슴 속의 첫사랑은 만나는 순간 그 추억은 사라집니다. 첫사랑은 만나지 않고 가슴에 묻어두고 추억할 때 가장 아름답습니다. 당시의 예쁜 추억만을 간직할 때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만나는 순간부터 상상 속의 신기루가 바로 사라집니다.

첫사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하는 사랑입니다.
첫사랑은 아름답지만 추억으로 간직할 사랑입니다.
첫사랑은 영원토록 소중하고 순수한 사랑입니다.
그래서,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행복한 사랑입니다.
헤어진 첫사랑과 만나지 않아야 하는 이유는 그 행복한 추억 속 사랑을 잃어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에 대학 동창 모임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 20여년만의 모임이라 친구들의 근황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미 중년의 나이에 모이니 친구들에 대한 소식이 그리움으로 다가섰습니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사는 친구나 기사 딸린 고급차를 타고다니는 사모님이 된 동창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날의 단연 최고 이야기는 대만 갑부의 외동딸과 결혼한 친구의 사연이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어 그 날 참석은 못했지만 동창 K의 결혼 스토리는 압권입니다. K의 사연은 약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K는 고향이 부산입니다. 부산에서 상경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게 됐습니다. K는 모든 모임을 주도하는 연예인적인 기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K가 대학MT나 모임에서 선보인 노래는 그 날 이후 공식 지정곡이 될 정도였습니다.

K의 대표적인 레파토리는 CM송 메들리였습니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자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콘~~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칩~~~ 농~심~ 크레오파트라~~~ 드세요~ 농~심~ 크레오파트라~   " 1980년대를 풍미하던 CM송의 일부를 메들리로 계속 이어지게 만든 곡들입니다. 80년대의 대학가는 군사독재 타도의 분노가 넘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낭만이 있었습니다. 비록 소주 한잔의 추억 속에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장엄한 서사시의 투쟁가가 있었고 한편으론 낭만의 곡들이 있었습니다. CM송 메들리는 그 중간의 흥겨운 화합의 노래였습니다. 

CM송 풀 메들리 80년대  사례

온 세상에 울리는 말고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영-창

열두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부라보콘------살ㅡ짝-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 콘

손이가요 손이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어른손 아이손 자꾸만 손이가

언제든지 새우깡 어디서나 맛있게

누구든지 즐겨요 노옹심! 새우깡!!

비비 비벼보자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ㅡㅡ (두손으로 비벼도 되잖아!)

ㅡ팔도 비빔면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그리 예쁜가요

----------------아아아아아아아 아카시아 껌
아아아 아아아아----------------아카시아 껌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 칩 (포테이토 칩)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 칩

---------------아아아아아-----------농심농심
농심 크레오파트라---------드세요 농심-------

크레오파트라

쵸코가 외로워 쿠키를 찾네 쵸코친구 쿠키친구

쿠키가 외로워 쵸코를 만나네 오리온 쵸코칩쿠키

오리온 쵸코칩쿠키 쿠키 이이!!!

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바

삐익삐익 꼬였네 들쑥날쑥해

사과맛 딸기맛 롯데 스크류바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오 롯데껌 좋은 사람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손에 담아 드려요 오란씨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 오 오 오 오란씨

으쌰으쌰 어기여차 재미로 먹고 맛으로 먹는

오리온 고래밥 오리온 고래밥

오리온 고래고래고래고래 밥! 헤이!!

대학 1학년을 끝마치고 어느 날, K가 대학을 중퇴하고 해외로 떠났습니다. 독재의 그늘을 벗어나 해외로 망명한 듯한 히피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이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마련해 떠난 도피 자금으로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팔아서 돈을 모아 다른 국가를 방랑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국가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해외 여행을 꿈꾸기 어려웠던 그 당시에는 매우 희귀한 변신의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K는 미국을 떠나 다시 브라질로 갔습니다. 그는 낮에는 중국집에서 일하고 밤에는 중국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러다 K는 중국어학원에서 그녀(이하 S)를 만났습니다. S는 미국에 유학 중인 대만 출신 여대생이었습니다. S가 방학 기간 동안에 브라질에 여행을 왔다가 잠시 중국어학원의 임시 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K는 첫 눈에 S에 반했습니다.


[사진] 영화 '러브스토리' (1996년작, 배창호 감독)

K의 중국어는 이제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S에게 뭔가 중국어로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날 부터 K는 중국어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편지를 쓰는 일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밤새도록 중국어로 편지를 썼습니다. 한 숨도 안자고 정성을 다해 한 통의 편지를 쓰고나면 이미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동이 트면 K는 자건거를 타고 S가 머물고 있던 숙소를 향해 달렸습니다. S의 숙소에 편지를 넣어두고 다시 중국집으로 가서 일을 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중국어학원에서 S로부터 중국어 수업을 받았습니다. S는 편지를 받았지만 모른체 눈길도 주지않고 수업만 했습니다. K는 다음 날도 편지를 썼고 새벽이 되면 S의 숙소에 편지를 놓아두고 왔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K의 편지에 S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게다가 새벽 마다 자신의 숙소에 편지를 놓고 도망가듯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K를 본 S는 '한번 만나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한국 남자 K와 대만 여자 S의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둘은 만나는 동안,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눈빛으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만남이 지속되면서 S가 오히려 더 K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S는 사랑하는 K를 위해 브라질에 아예 머물러 버렸습니다. 그러다, S는 비자가 만료되어 브라질을 떠나야 했습니다. 브라질의 공항에서 둘은 약속했습니다.
"다시 돌아 올게. 조금만 기다려."
"언제까지나 그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렇게 둘은 뜨거운 포옹과 함께 브라질 공항에서 이별을 했습니다.

[참고] K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K와 S의 러브스토리는 조금 길기 때문에 여기서 1부는 마치겠습니다. 다음 2부를 기대해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K와 S의 러브스토리는 K를 몇년전 만나서 밤새 전해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탐진강 블로그를 구독하시려면 옆의 RSS 추가버튼을 이용해 주세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에 산촌 마을 고향에 다녀왔다. 아버님 칠순을 맞아 온 가족이 함께 한 자리였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부터 두 딸들은 시골에 눈이 내린다는 소식으로 들떠 있었다. 두 딸에게 가장 신나는 일은 시골에서 비닐 비료 포대로 만든 눈썰매를 타는 일이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는 일 보다 눈 쌓인 산비탈에서 비닐 눈썰매를 타는 일이 겨울방학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싫지 않은 눈치다. 비록 시골에 오는 손주들의 목표가 당신들을 위해서는 첫번째는 아니더라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계시는 시골에 가는 것을 손꼽아 가다리는 손주들이 대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두 딸은 시골에 가는 일이 언제나 즐겁다. 여름에는 마음껏 냇가에서 물놀이를 하거나 물고기를 잡고, 겨울에는 산비탈에서 눈썰매를 신나게 탈 수 있는 천연의 놀이터가 있기 때문이다. 나의 고향집은 산골 외딴 집이다. 그래서 냇가의 물은 전혀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고, 산과 들은 모두가 우리들 만의 자연 놀이터이다.


우리 두 딸을 포함해 아이들만 여섯명이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이지만 인공으로 잘 만든 눈썰매장에서 타는 플라스틱 눈썰매 보다는 시골 산비탈에서 타는 비밀포대 눈썰매가 100배 재밌다고 한다. 아이들은 산비탈에서 눈썰매를 타는 것은 스릴이 있단다. 그리고 줄도 서지 않아도 되고 원하는 만큼 실컷 눈썰매를 즐길 수 있어 좋단다. (참고로, 비닐포대 눈썰매는 다 쓴 비료포대 속에다 짚을 가득 넣으면 간단히 만들 수 있다.)

어른들은 폭설로 인해 어떻게 다시 서울로 돌아가나 걱정이지만 아이들은 계속 눈이 내려 눈썰매를 탈 수 있기를 기대하는 눈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시골에 갈 수 있는 방학을 기다리는 손주들. 산골 외딴 집이라 컴퓨터도 없고 과자 가게도 없다. 그러나 산골은 도시의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다. 개학하면 두 딸은 자랑할 것이 참 많을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제 부모가 된 나와 동생들이 칠순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효도이다.
  

신고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