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1.02.28 김태원 위암 수술 촬영한 이유, 김태원 살린 눈물의 남자의 자격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2. 2009.08.16 솔약국집 아들들, 남녀 질투와 사랑 앙상블 by 진리 탐구 탐진강 (29)
  3. 2009.06.26 독사에 물린 선임하사 'DMZ서 구출하라' by 진리 탐구 탐진강 (39)
  4. 2009.05.07 자식위해 평생 불구가 되신 어머님 전상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5. 2009.03.29 팔 부러진 채 주말농장에서 삽질했던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6)
  6. 2009.01.25 폭설 피해 온 동생이 병원 응급실에 간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3)
  7. 2009.01.24 명절 연휴에도 비상근무하는 직업 10선 by 진리 탐구 탐진강 (25)


'부활'의 김태원이 부활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구요? 그룹사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위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것입니다.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출연 중인 김태원이 '암 특집' 촬영 중 실제로 위암 판정을 받고 극비리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김태원의 암 수술기는 어제 '남자의 자격' 방송 말미 예고편이 살짝 공개되었지요.

김태원은 다행히 위암 초기 단계에서 조기 발견돼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방송 프로그램 진행 중 위암을 발견해 수술을 하고 건강을 회복한 일은 세계 방송사에서도 드문 일이겠지요. 그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가 현실이 된 드라마틱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어쩌면 '남자의 자격'이란 방송 프로그램이 김태원의 생명을 살린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김태원의 리얼한 위암 판정과 수술 진행 경과를 '남자의 자격'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태원도 암의 위험성과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위암 수술 진행을 방송 촬영하는데 동의했다고 합니다. '남자의 자격(남격)' 프로그램 입장에서도 우연치 않게 김태원 덕분에 방송 역사에 남는 장면을 기록하게 된 것이지요. 리얼 버라이어티의 진면목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지요.

김태원에게 닥칠 위험의 전주곡은 이미 1월 방송에 나왔다?


  지난 1월 중순 방송에서 김태원은 위암 검사에 앞서 불안감을 보였는데 이는 실제 전주곡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그 동안 김태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기존 방송을 비롯 여러 보도를 바탕으로 하나씩 그 놀라운 과정을 짚어보겠습니다. 김태원에게 불안감이 싹튼 것은 위암 검사 시작 전부터 였습니다. 지난 1월 16일 방송에서 김태원이 기침 소리를 내자 김국진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이경규도 '우린 안심할 수 없어'라고 거들었지요. 김태원은 검사에 들어가기 전에 "뒤에서 슬프게 바라보는 것도 그거 싫어"라고 말한데 이어 작가에게 "왜 날 그렇게 슬프게 쳐다봐? 뭐 숨기는 것 있니? 아침부터 느낌이 안좋다"고 불안한 예감을 비쳤지요.

어쩌면 김태원에게 닥칠 위험의 전조였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악몽같은 40여일이 김태원과 남격 제작진에 닥쳤습니다. 남격 제작진은 1월 중순 위암 검사를 받은지 하루 만인 다음날 병원으로부터 암 초기인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제작진은 엄청나게 놀랐지요. 김태원이 큰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작진은 이경규까지 불러 김태원에게 어렵게 위암 발병을 알렸지요. 그 후 침묵이 흐르고 제작진과 이경규는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태원의 위암 수술기 방송을 결정한 결정적 이유는?

김태원은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이후 이경규와 제작진은 위암 초기 단계라서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안심을 시켰지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고 중요했지요. 그런데 김태원과 제작진은 이왕 수술받는 것인 만큼 암 특집의 취지를 살려 수술 과정을 촬영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은 김태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작진에게 빨리 와서 촬영하라고 이것 저것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김태원의 암 수술에 앞서 이경규 김국진이 눈물을 짓는 장면이 예고편에 나왔다

비록 자신의 프라이버시일 수 있지만 김태원은 시청자들에게 암의 위험성과 건강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암이란 종합건강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면 수술과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책임감이었겠지요. 바로 2월 16일이 1차 수술이 있었던 날입니다. 윤형빈이 유암종 제거 수술이 있었던 그 날이지요. 김태원은 내시경을 통한 1차 수술 후 종양이 완벽히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월 22일 2차 수술을 받았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김태원의 프로의식이었습니다. 자신이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평소와 같이 행동했습니다. 김태원의 위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수 있어 조심스러웠겠지요. 물론 방송 프로그램이 사전에 알려질 경우 부담감도 있겠지요. 김태원은 수술 후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부 스케줄을 소화하며 비밀유지를 했던 것이지요. 김태원은 '부활' 콘서트도 나가고  '남격' 장래희망, 탭댄스 편 녹화 등 방송 프로그램 촬영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정기적인 병원검진도 계속 받아가면서 그랬지요. 

김태원의 프로의식이 빛난 사상초유의 리얼 버라이어티

 

사실 김태원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를 지켜보는 제작진이나 이경규도 괴롭고 마음이 아팠겠지요. 그러나 김태원은 고통을 참아가며 밖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던 것이지요. 그렇게 한 달이 넘는 기간이 지났습니다. 김태원의 위암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이제 회복만 남았다고 하니 다행스런 일입니다. 김태원도 건강검진에 소홀했던 것을 반성하며 새로운 인생을 열 수 있는 반전의 시간이 되었겠지요.

김태원이 극비리에 수술 후 병상에 있었던 기간은 열흘이 넘었고 최근 2월 26일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완벽하게 보안을 유지한 것이지요. 그런 가운데 어제 '남격'에서는 지난 2월 10일 촬영된 김태원의 장래희망편의 나머지 이야기가 방송됐습니다. 김태원이 어린 시절 꿈꿨던 로봇을 만드는 KIST 과학자였지요. 촬영 시점이 위암 판정을 받은 직후라는 점에서 김태원의 투혼이 눈물겹게 느껴졌습니다. 김태원으로서는 '남격' 방송에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지요. 한편, 김태원은 오디션 프로 '위대한 탄생'에서도 따뜻한 멘토의 모습을 보이며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찬사를 받기도 했지요.

이제 다음주 3월 6일에는 김태원의 위암 수술 극복기가 방송되겠지요. 예고편에 보면 이경규를 비롯 멤버들이 눈물흘리는 장면이 나와 가슴을 뭉클하게 하더군요. 당초 2편으로 편성됐던 암 특집이 4회로 확대된 것도 김태원의 위암이 결정적 작용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김태원은 남자의 자격으로 인해 살았고, 남자의 자격은 김태원으로 인해 주목을 받고 더 빛나게 된 셈입니다. 서로가 의미있고 뜻깊은 만남이었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암을 극복하기 위해서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말기 암환자를 비롯 고통받는 가족들도 있다는 점에서 너무 호들갑을 떠는 방송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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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인기 주말드라마인 '솔약국집 아들들'을 가끔 보곤 합니다. 드라마는 거의 안보는 편이지만 '솔약국집 아들들'은 딸아이들이 먼저 채널을 고정하는 편이라 함께 보게 됩니다. '솔약국집 아들들'은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드라마라는 점에서 기존 막장 드라마와는 차원이 다른 인간미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저희 집안도 아들이 많아서 그런지 이심전심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도 많은 듯 합니다.

특히 이 드라마는 김간 '복실이(유선 분)'는 실제 복순이란 이름을 사용하는 제수씨도 있어 친근감도 들어 더 관심있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네 생활에서 간혹 벌어질 수도 있는 가족들과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감정이입이 되는 듯 합니다. 아울러, <솔약국집 아들들>은 가족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가 훈훈한 가족애와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내용은 '대풍(이필모)'과 '복실이'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실질적으로 드라마를 이끌고 있는 주인공 역할로 자리매김한 듯 합니다. 지고지순한 여성상으로 비추어지던 복실이는 천방지축 '대풍(이필모)'에게 그 동안 당한 설움을 날려버리는 복수(?)를 시작했습니다. 간호사 복실이는 제니퍼라는 의사로서 변신을 했고 대풍은 미묘한 질투심에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복실과 대풍의 사랑과 질투는 드라마 '솔약국집 아들들'을 이끌고 있다.

복실을 향한 대풍의 질투와 뒤늦은 구애 "있을 때 잘해"

새로 취직한 병원의 원장이 복실, 즉 제니퍼의 아버지란 사실을 안 후 사표를 썼던 대풍은 복실의 남자 친구 현우의 존재를 발견한 후 사표를 찢어버렸습니다. 대풍은 복실에게 다정다감한 현우를 본 순간 강한 질투심과 위기감을 느껴던 것입니다. 남자들이 실제로 평소에는 쌀쌀맞게 대하던 여자이지만 다른 남자 친구의 등장에 대해 질투심을 느끼는 경우는 자주 있는 일입니다. 둘째 아들이 다소 반항적이고 돌출적인 행동을 하는데 그 이유도 대풍에게서 보여지기도 합니다.

대풍은 자신의 개인병원에서 김간호사였던 복실에게 뒤늦게 집요하게 다가서지만 그녀의 마음을 열지는 못합니다. 대풍은 미국 유학시절 남자친구인 현우에게 질투심을 갖고 쌀쌀맞게 굴기도 합니다. 복실과 현우의 모습을 볼수록 대풍은 복실에 대한 그리움도 커져만 갑니다. 그러나 복실은 "예전엔 당신을 사랑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대풍에게 매몰하게 거절해 버립니다.

사실 그 동안 대풍은 김간 복실의 사랑에 매정하게 대해 왔습니다. 그러나 대풍과 복실의 사랑 관계가 역전된 것입니다. 대풍은 이미 변한 복실의 모습에 비통한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복실의 환상과 같은 헛것까지 보기도 합니다. 이미 때는 늦은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대풍이 복실에게 막대하고 모질게 굴었던 것에 대한 인과응보인지도 모릅니다.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생각나는 대목입니다. 항상 가까이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르지만 정말 소중한 것은 바로 가깝게 있을 때가 많습니다.



변호사 수진과 가정교사 정희, 누가 더 결혼 상대일까?
 
'솔약국집 아들들'에서 진풍(손현주 분)은 역시 큰 아들답게 안정적인 면모와 효자로서의 자세를 보여주곤 합니다. 그러나 여자 앞에서 우유부단하기도 하고 어머니에게 장래 며느리감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주는 행동에는 문제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장남의 입장에서 어려움이 있겠지만 스스로 결혼에 대한 강한 결단력을 발휘하면 보통 우리나라 가족에서는 부모도 여자도 따르게 될 터인데 다소 우유부단하고 결단의 때를 놓치곤 하는 것이 아쉽습니다.

진풍은 변호사인 수진(박선영 분)에게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의 장가가 늦어지자 가정교사였던 정희의 결혼을 염두에 둡니다. 진풍은 두 여인과 어머니 사이에게 고민합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가장의 역할도 못하고 홀로 된 오빠와 아이를 부양해야 할 처지인 수진이 결혼 상대로 못마땅합니다. 수진도 진풍의 청혼을 받고 아직은 준비가 안된 상태라고 진풍에게 거절의 말을 합니다. 물론 수진의 진심은 아닐 것이고 사랑하는 남자 진풍의 앞날을 위한 배려일 수 있습니다.

대가족의 현모양처 맏며느리로서 가정교사 정희가 마음에 드는 어머니와 사랑하는 여자 수진 사이에서 방황하는 진풍은 누구와 결혼해야 할까요? 사실 대가족의 집안에서 맏며느리는 동생들과 가족들을 모두 아우르며 화목하게 해야 할 역할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도 일리가 있고 사랑하는 여자를 위한 진풍의 마음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습니다. 다만 대풍이 수진을 좋아했던 일도 있어 진풍과 가족에게는 쉬운 선택은 아닐 수 있습니다. 진풍의 결혼이 궁금해지는 이유입니다.


진부한 스토리 전개로 늘어지는 드라마 구태 재연(?)

주말 드라마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솔약국집 아들들'이 진부한 스토리를 늘여서 방송한다는 의구심도 받고 있습니다. 당초 50부작이었는데 2회를 더 늘릴 예정이고 경우에 따라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시청률이 높으면 방송을 늘리는 기존 구태가 재연된다는 것입니다. 시청자들의 요청에 따라 늘릴 수 밖에 없다는 방송사의 입장도 이해를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노총각 장남 진풍과 수진 사이에 또 다른 여자가 등장하고, 촌스럽던 복실이가 갑자기 커리어우먼 의사로 변신하고 그 사이에 남자친구 현우가 나타나고 병원장 아버지도 개입되는 등 스토리의 변화에 시청자들은 뻔한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미 결말은 어느정도 나와있지만 드라마를 늘리기 위한 설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부분은 시청자들의 눈높이와 판단이 맡겨야 할 일입니다.

주말 드라마는 '탐나는 도다'가 새롭게 시청자들의 호평을 받으면서 '솔약국집 아들들'과 경쟁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솔약국집 아들들이 탐나는 도다를 크게 앞지르고 있습니다. 기존 팬들을 확보한 솔약국집 아들들이 프리미엄을 받는 셈입니다. 솔약국집 아들들이 대풍과 복실, 진풍과 수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질투와 사랑의 앙상블을 시청자들에게 흥미있게 보여줄지가 관건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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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군대 시절 이야기입니다. 지난 1980년대 후반에 일어난 일입니다. 한 여름날이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군사령관이 방문한다는 비보(?)가 전해졌습니다. 비무장지대 내에 있는 GP(Guard Post)를 방문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군사령관이 방문하면 GP나 수색중대는 한바탕 난리가 납니다. 의전이나 경계 근무 등 준비할 것이 많습니다.

드디어 군사령관이 DMZ(비무장지대)내 방문의 날이 왔습니다. GP 경계 뿐만 아니라 DMZ에는 수색과 도로 경계조가 투입되었습니다. 저는 수색분대로 투입됐습니다. 그리고 수색분대는 K선임하사가 분대장이었습니다. 차량경계조는 중대장이 직접 지휘했습니다. 거의 수색중대 수준의 DMZ 작전인 셈입니다.

수색분대가 철책선을 통과해 DMZ에 먼저 투입됐습니다. 사전에 DMZ 수색로를 점검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요충지에 근거지를 마련해야 했습니다. 여름날의 더위는 강렬했습니다. 한참 수색 중인데 길가에 독사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상당히 큰 까치 살모사였습니다. 까치 살모사는 독성이 강해 매우 위험합니다. 당시 저는 병장이었고 저격수였습니다. 선임하사에게 아주 작은 소리로 신호를 보냈습니다.
"잡을~까요?"
"그래 잡자."

선임하사는 보기 드문 까치 살모사라서 탐이 났던 것 같습니다. 제가 K-1 개머리판으로 살모사의 머리를 눌러 제압하고 살모사를 잡았습니다. 산 채로 생포한 것입니다. 그러자 선임하사가 까치 살모사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수색분대는 까치 살모사를 생포한 후 매복 요충지로 이동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군사령관이 도로를 무사히 지나 GP에 이르는 도로를 경계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선임하사는 지루했습니다. 사실 이런 수색 경험이 많은 선임하사였습니다. 몇개월 후면 전역을 고려하던 선임하사였습니다.

얼마를 기다리자 군사령관이 DMZ의 작전 도로를 지나갔습니다. GP에서 나오기까지 상당 시간이 지나야 합니다. 선임하사는 살모사를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었습니다. 선임하사가 독사를 다룬 경험이 많아서 걱정은 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만큼은 불안해 나즈막히 말했습니다.
"선임하사님, 조심하세요"
"괜찮아."



얼마 시간이 지났습니다. 선임하사는 살모사를 왼손으로 잡았다가 오른손으로 잡았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살모사를 좌우 손으로 옮기던 중 선임하사가 순간 살모사를 놓쳤습니다. 그러자 살모사가 선임하사의 손을 곧바로 물었습니다. 중요한 작전 중에 선임하사가 맹독성 살모사에 물린 것입니다. 당장 수색을 중단하고 돌아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일단 응급조치를 했습니다. 독사에 물린 손의 팔꿈치 부분은 단단히 묶고 물린 곳의 피를 빨아냈습니다. 

그리고 무전병을 통해 긴급히 도로경계 수색분대 차량을 수배했습니다. 군사령관이 GP를 빠져나가면 도로 차량경계조 차량으로 군병원에 호송할 계획이었습니다. 군사령관이 마침내 GP를 나와 DMZ을 벗어나 철책 밖으로 통과했습니다. 곧바로 차량경계조에 선임하사를 태우고 DMZ을 빠져나갔습니다.

이미 선임하사의 손은 엄청나가 부어있었고 선임하사는 맹독에 의해 거의 인사불성 상태가 되어갔습니다. 차량경계조는 강원도 산골에서 멀리 군통합병원으로 달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 필사적으로 군트럭 모양의 차량경계 수색조가 병원에 도착한 것입니다. 선임하사를 긴급히 호송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수많은 군인들과 사람들이 몰려와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모습으로 쳐다 봤습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왜 쳐다보는 겁니까?"
"...(조용)..."

질문에 오히려 더 놀라는 듯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눈길을 피했습니다. 우리들끼리 쳐다봤습니다. 아뿔싸. 우리 수색분대는 수색 중 복장과 완전무장 상태로 그대로 병원까지 온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 분대는 전쟁상태의 무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탄복에 총알 장전된 각종 개인화기, 기관총이 장착된 도로경계차량, 수류탄과 대검을 매단 수색복장 등은 일반 군인들도 처음 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저희는 장전된 개인화기와 무장을 해제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는 DMZ을 지나 철책의 통문을 통과하면 장전된 총알 등 무장을 해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도시의 군병원까지 완전무장 상태로 왔으니 다른 사람들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DMZ 작전 중이었습니다. DMZ에서만 있다보니 여긴 처음이라..."

다행히 선임하사는 치료를 잘 끝내고 무사히 부대로 복귀했습니다. 소대원들이 한 마디씩 했습니다.
"말년에는 구르는 낙엽도 조심하라고 하시더니...앞으로 낙엽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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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칠순이 다 되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계십니다. 호랑이같은 아버지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어머니는 청춘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자식들은 대도시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막내 남동생이 가까운 도시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곤 합니다.

그러나, 장남인 제가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십니다. 어머니가 불편하신 다리로 평생 산골에서 힘든 농사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제게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불행하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절게 된 사연과 혼자서 저를 키운 새색시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까마득한 두메산골입니다. 아직도 온통 산으로 뒤덮인 고향은 비포장도로를 통해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다닐 정도로 산골 오지입니다. 부모님은 산골 외딴집에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 만큼은 시골 집에 동생들 가족들과 일정을 맞춰서 함께 가곤 합니다.

어머니는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이셨고 아버지는 초등 교육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지난 1960년대는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한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시골 마을에 잠시 머물던 시절에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을 '주먹자랑 하지 말라'고 알려진 벌교에서 지냈던 분으로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결혼 후 신혼 시절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기피한 상태였는데 아버지를 체포하기 위해 헌병대에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헌병대를 피하기 위해 초가집의 흙벽을 무너뜨리고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 후 아버님을 몇년 동안을 도시에서 숨어지냈습니다. 당시에는 군대에 간 후 사망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군대 기피가 많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머니는 새색시가 생과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땔감을 구해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 시골집은 초가집이었고 나무 땔감으로 밥을 짓고, 소꼴을 베어 소를 키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기도 가스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녁엔 방에 호롱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임신 중이었습니다. 혼자서도 힘든데 홀몸이 아닌 상태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소까지 키워야 하는 고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겹게 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혼자서 열심히 밭 일을 하다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서둘러 밭에서 일을 끝내고 머리에는 소꼴을 가득 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길가에 뻗은 칡넝쿨에 걸려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넘어지던 중 머리에 인 소꼴에서 낫이 떨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낫은 어머니 앞에 날이 선 상태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예리한 낫의 날에 닿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어머니는 무릎의 힘줄이 끊기는 대형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를 할 병원도 없었습니다. 곁에는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당시 저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무거운 몸이다보니 칡넝쿨에 걸려 균형을 잡지 못한데다 낫을 피하지 못해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임신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것도 몸 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봐 못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그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가 되셨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어머니는 다시 농사를 짓고 혼자서 저를 낳아서 길렀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그렇게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갓 결혼 후 남편도 없이 무려 5년을 그렇게 농사도 짓고 저를 키웠던 것입니다. 저는 아가 시절을 마당이나 밭을 기어다니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마당에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나 닭과 함께 놀고, 밭에서는 지렁이가 친구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도 일을 하고 계시고, 밭에 가서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워낭소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저의 유년 시절은 밤낮으로 어머니 밖에는 없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호롱불 밑에서 제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5살 때 처음 어버님이 고향으로 돌아오셨지만 저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만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오신 후에도 집안 일은 하지않고 한량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싹텄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마음의 화해가 어느정도 되었고,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과거와 달리 농사 일이나 집안 일도 했습니다.

제 나이가 5~6세 정도일 때도 저는 동네 아이들과 산에 올라가 고사리 손으로 나무를 하곤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오직 어머니 일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저의 일을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시절에도 방학 동안 내내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돕는데 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가 어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 때부터 어머니 혼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왜 다리 하나가 불편하게 되셨는지 얘기를 처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어머니가 다리를 절면서 걷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것이 모두 제 탓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보면, 그 젊은 시절에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참고 이겨냈는지 가슴이 아프곤 합니다. 제가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늘 변함없이 생각하는 정신적 지주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벼가 익어가는 여름 날, 논둑을 걸으면서 저에게 하신 말씀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어머님은 소중한 등불과 같았습니다. 제가 방황하거나 잘못 가려하면 언제
나 등대처럼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다리가 잘리는 듯한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디셨습니까. 그리고 홀로 저를 어떻게 키우셨나요.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만 하셨습니다. 특히 홀로 키웠던 저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유년시절의 기억 마저 희미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주 연락도 못드려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해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지금은 자식들도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어머니의 귀중한 가르침과 사랑 덕분입니다. 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언제나 힘을 주시는 어머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뵙겠습니다. 밤낮으로 기온차가 큰 데 건강 조심하세요.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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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다시 주말농장의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주말을 맞아 어제는 몇년전부터 경작한 주말농장을 다시 분양받으러 갔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땅을 고르려는데 예전에 처음 주말농장을 시작했을 때 팔이 부러진 채 땅에 삽질을 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당시 사연은 이렇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년 전인 지난 2007년 3월 초순경입니다. 두 딸아이와 아내와 함께 집에서 가까운 인근 산에 소풍을 다녀오는 길에 '주말농장 분양합니다'라고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습니다.
마침 회사 일로 마음도 심란해 주말농장을 해볼까 생각했던 참이라 곧바로 주말농장 분양하는 곳에 찾아가 가계약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작업복장으로 갈아입고, 장모님을 모시고 온 가족이 다시 주말농장으로 향했습니다.
두 딸들과 장난을 치며 달려가다 가로수를 못보고 부딪쳐 심하게 넘어졌습니다. 가로수에 부딪친 후 아스팔트에 팔꿈치 부근을 강하게 타격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팔에 엄청난 고통이 있었지만 심한 타박상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장모님도 모시고 가는 길이고 가족들도 있어 아픈 내색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주말농장에 도착했습니다.


[두 딸아이가 올해 처음 주말농장을 찾아 밭을 고르기 위해 삽질을 하는 모습]


주말농장 텃밭으로 분양받은 땅에 외발 손수레를 이용해 거름을 날랐습니다. 밭에 듬뿍 거름을 골고루 뿌린 후 삽으로 밭을 갈아엎었습니다. 밭을 갈아엎기 위해서는 땅에 깊숙히 삽질을 해야 했습니다. 삽질은 상당히 허리와 팔에 무리가 가는 일이었습니다. 약 10평 정도의 땅이었지만 밭 전체를 삽질로 갈아엎는 일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삽질을 하는 동안에도 팔에 통증이 심하게 왔지만 참고 삽질을 계속 했습니다. 얼굴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팔의 통증은 더욱 심해지고 허리도 아팠습니다. 도중에 그만 둘 수가 없어 밭 전체를 모두 갈아엎고 평평하게 다지는 일까지 결국 끝마쳤습니다.

일을 끝 마친 후, 저녁 시간이 되어 근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돼지갈비와 함께 소주 한병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쌈을 싸먹으려고 했는데 왼팔이 아예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너무 통증이 심하고 아파서 팔을 움직이는 것이 거의 불가했습니다. 장모님이 그 모습을 보시더니 걱정을 했습니다. 저는 "타박상인데 일을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안심을 시켜드렸습니다. 한 팔로 소주 안주 삼아 돼지 갈비에 쌈까지 싸먹으며 겨우 식사를 마쳤습니다.

집에 돌아와 쇼파에 앉아있는데 엄청난 고통이 계속 되었습니다. 아내가 계속 걱정을 했지만 괜찮다고 버티다 결국은 응급실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병원에 가서 X-레이 촬영을 해보니 의사는 팔꿈치 뼈가 골절되었다는 결과를 통보했습니다. 곧바로 기브스를 한 후 2달 이상을 고생했습니다. 장모님과 아내는 "어떻게 부러진 팔로 그 밭을 다 갈아엎고 일을 했느냐?"며 안타까워 했습니다.


[주말농장에서 밭을 고른 후 파를 심는 모습과 인근에서 꽃을 심는 장면] 


예전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저도 이해가 안갑니다. 이제 주말농장을 한 지도 3년째가 됩니다. 어제가 올해에는 처음으로 밭에 거름을 주고 밭을 갈아엎는 날이었습니다. 아내와 두 딸이 거들어 주었습니다. 땅을 모두 고른 후 작년에 경작한 밭에서 자라고 있던 파를 딸아이와 함께 옮겨 심었습니다. 그 동안 안하던 삽질을 조금 했다고 팔 근육이 욱신욱신 합니다.

주말농장을 올해 또 새로 시작하면서 2년 전 기억을 떠올렸는데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추억입니다.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면서 뼈도 약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좀 더 몸조심하고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주말농장을 일구는 이야기를 계속 전해보겠습니다.

[주말농장에는 여러 사람들이 저 마다의 모습으로 텃밭을 일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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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늘부터 우리집에는 설 명절을 맞아 차례를 지내기 위해 가족 친지들이 모두 모인다. 남동생 가족도 오늘 오후 눈보라를 헤치고 우리 집에 왔다. 오산에서 일산까지 오는 길이었는데 수원 쪽 길이 통제되어 돌아서 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오산에도 눈이 많이 내려 운전하는데 힘들었던 모양이다.

설날을 앞둔 대가족의 평화로운 모임의 시작
매제 가족들도 그 뒤에 도착했다. 나와 아내는 추가로 몇가지 나물 등을 사러 할인점에 다녀왔다.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전을 붙이는데 돕고 있었다. 특히나, 큰 딸이 전을 만드는데 열심히 도왔다.

[아이들이 전을 만들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

남자들은 차례상에 올라 갈 밤을 갔다. 남동생이 먼저 칼을 잡고 밤까는 실력을 발휘했다. 나도 합류해 밤을 까고 모양좋게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아이들도 어른들이 까주는 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밤을 까던 남동생이 칼에 의해 손가락을 베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남동생이 손가락을 감싸면서 "손가락을 베였다"고 아픔을 호소했다. 놀란 여동생이 "칼 조심하라고 조금 전에 말했잖아."하면서 걱정을 한다. 제수씨도 "어떡해"하며 놀란다. 남동생은 밤을 잘먹는 둘째 아들을 위해 밤을 먹기 좋게 잘라주려다 손가락을 베인 것이다.

아내가 소독약과 연고로 우선 응급처치를 했다. 그런데 피가 계속 많이 나온다. 손가락도 하나가 아니라 두개가 베였다. 칼에 상당히 깊숙히 상처를 입은 것이다. 작은 상처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남동생이 "병원에 가서 꿰매야 겠다"고 말한다. 이 정도의 남동생 얘기라면 상처가 상당히 깊은 것이다.

매제가 급히 남동생을 태우고 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다. 명절이라 응급실은 많은 환자들로 붐벼서 몇시간만에 돌아왔다. 손가락은 꿰맸고 파상풍 주사도 4방이나 맞았다고 한다. 그 사이 작은 어머니들도 도착해 있었다. 아내는 칼을 잘 들게 하려고 아침부터 갈아두었다며 미안해 한다.
[남동생이 밤을 까다가 손가락을 베인 문제의 시간]

남동생은 입이 까다로운 아들이 밤을 잘 먹자 아들을 위해 밤을 작게 잘라주다가 손가락을 크게 다친 것이다. 자식 사랑도 좋지만 조금만 조심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면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제수씨는 손가락 다친 것도 걱정이지만 병원비 8만원이 나왔다는 것에 놀라는 눈치이다.

차례 상을 위해 밤을 까는 것은 대개 남자들 몫이다.(이미 까놓은 밤을 사는 경우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내를 도와서 밤을 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밤을 깔 때는 칼날을 늘 조심해야 한다. 

[병원 응급실에서 칼에 베인 손가락을 꿰맨 후 사진]

'눈 피해 온 남동생 피 본 날' 밤 까는 방법
칼에 너무 강한 힘을 주지말고 신경을 써서 다루어야 한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밤까는 일에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처음 밤을 까거나 익숙치 않은 사람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초보자는 너무 잘 드는 칼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눈 피해 온 남동생이 피 본 날'이라고 아내가 놀린다. 오늘도 지나가면 추억이 될 것이다. 남동생은 손가락 수술로 저녁에 소주 한잔을 못해 아쉬워했다. 병원 응급실에 다녀온 남동생에게는 올해 설날이 지금은 잊고 싶겠지만 나중에 아들에게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준 셈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형의 바람이다.

[참고] 생방송 화제집중에 소개된 밤까는 법에 대해 소개해 본다. (남동생이 걱정돼 찾아본 내용이다.)

[생방송 화제집중에 소개된 밤 까는 법]

겉밤은 딱딱한 밤 꼭지 부분을 먼저 탁탁~ 쳐주고, 돌리고~ 돌리고~ 옆을 까주면 OK!
속밤은 평평한 부분을 먼저 슥슥슥 벗겨주고,
과일 깎듯 돌돌돌~ 돌리면서 까주면 모양도 굿~~~ 속밤 까기 완료!!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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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이라는 설날 연휴이다. 그런데 명절 연휴에도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고 편안한 생활을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명절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음지에서 고생하는 사람들 덕분일 수 있다.

그래서 설 명절에 안심하고 고행에 다녀올 수 있는 것은 연휴에도 자신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해 고생하는 분들엑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들 또한 명절 연휴를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고 싶은 것이다. 문득 명절 연휴에도 비상근무를 해야 하는 직업들에는 어떤 것이 있나 궁금해 찾아봤다.

1. 119 긴급 서비스(소방공무원)
전국의 소방서가 설 연휴 가스를 켜 놓고 출타했거나 전기시설을 차단하지 않아 화재가 우려될 경우 119로 신고하면 안전조치를 대신해 주는 서비스를 해준다. 가스렌지를 켜 놓은 상태로 여행길에 올랐거나 전기·수도를 차단하지 못한 경우, 창문이나 현관문을 잠그지 못한 경우 119로 신고하면 소방공무원이 출동, 안전조치를 대신해 주게 된다.

귀성 중 차량의 고장이나 교통사고시에도 119로 신고하면 가입한 보험회사에 연락을 대신해 주거나 부득이한 경우 119가 긴급출동해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서비스도 제공된다. 또한 귀성길, 집에 있는 가족과 연락이 되지 않아 발을 동동 굴러야 하는 경우 119로 연락하면 소방공무원이 찾아가 확인하고 응급상황시 조치를 취해주는 서비스도 제공된다.



 
2. 산림청 비상근무요원
산림청은 계속되는 건조한 날씨로 산불발생 위험이 높아짐에 따라 설 연휴기간 전국에 '산불방지 특별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산불방지 비상근무 체계가 24시간 가동된다. 산림청은 설 연휴기간에는 산림청 산불상황실을 통해  24시간 산불 비상 경계태세를 유지하며, 전국 8개 산림항공관리소에는 2~3대의 산불진화헬기가 항시 출동태세를 갖추도록 하고 전국 지방산림청을 비롯한 산림기관에도 산불 비상근무체제를 갖추어 운영한다. 명절에도 특히 산불 조심하자.


3. 정보보안업체
설 연휴를 맞아 안철수연구소를 비롯한 정보보안업체들은 24시간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는데 혹시라도 발생할 지 모르는 신종 해킹이나 바이러스 등의 보안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안철수연구소는 시큐리티대응센터(ASEC)와 침해사고대응센터(CERT)를 중심으로 악성코드 모니터링 및 분석연구원과 침해사고 대응전문가 30여명이 상시 대응한다.

연휴 기간에 신종 악성코드나 오진 사례, 가짜 백신 등이 발견되면, 사용자는 안철수연구소의 웹사이트 내 바이러스 신고센터, 오진신고센터, 가짜백신 신고센터 (http://kr.ahnlab.com/info/customer/virus_call_new_renew.jsp)나 이메일(v3sos@ahnlab.com)로 신고하면 된다. 정보보안업체 이외에도 캡스 등과 같은 물리적 보안업체도 비상근무를 해야 한다. 명절에는 해킹 좀 하지 마라.


4.응급 비상진료 상황실(전화 1339)
연휴 기간 문을 여는 당직 의료기관과 당번 약국 명단 위치·연락처는 중앙응급의료센터 홈페이지(nemc.go.kr)나 당번 약국 홈페이지(pharm114.or.kr), 각 자치단체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면 국번없이 '☎1339'를 눌러라. 현재 위치를 말하면 가장 가까운 당직 의료기관을 알려준다. 휴대전화를 이용할 때는 지역번호와 1339번을 함께 눌러야 한다. 가벼운 증상이나 증상 위중도를 잘 모를 때 의사와 상담도 가능하다. 서울시도 연휴기간 비상진료대책상황실(☎02-3707-9133∼4)을 운영하고 120콜센터에서 24시간 당직 병의원과 당번 약국을 안내한다.

5.교통경찰
귀성 차량들이 안전하게 고향에 다녀올 수 있도록 교통 안전을 책임진다. 설 명절은 겨울철이라 추위 속에서 고생해야 하는 교통 경찰의 고통은 심할 것이다. 명절 만큼은 넉넉한 웃음으로 교통 경찰에도 고생한다고 덕담이라고 해보자.

6.전방 군인
155 마일 휴전선을 지키는 군인들은 24시간 경계 근무를 강화해야 한다. 육군 해군 공군 등 전방의 군인들이 더 힘든 시기이다. 명절일수록 부모님과 고향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국토 안보를 지키는 그들이 있어 우리는 명절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나도 군대 시절에 비무장지대를 지키는 수색대였기에 항상 비상근무에 긴장해야 했는데 그 시절을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이다. 명절인데 매서운 바람 속에서 허리까지 차오른 눈을 치울 때면 절로 눈물이 난다.



7.병원 응급실
병원 응급실은 명절에도 응급환자들을 위해 고생한다. 응급실에는 주로 레지던트와 같은 젊은 의사 초년생들과 간호사들이 배치된다. 남들처럼 명절에 쉬고 싶겠지만 응급환자들을 위해 명절을 반납해야 하는 것이다.

8.비행기/철도/지하철 등 승무원
비행기나 철도, 지하철 등 공공 교통수단의 승무원들은 명절에도 쉬지 못한다. 그리고 버스나 택시 등 운전사들도 명절에도 고생하는 직업이다. 그들이 있어 명절에도 편안한 이동을 할 수 있다.


9.시장/백화점/음식점 등 장사하는 분들
명절에도 시장이나 백화점 그리고 음식점 등에서 장사를 하시는 분들도 명절에도 고생한다. 명절이 대목일 수 있어 쉴 수가 없다. 그들은 돈을 벌어 좋고 우리는 연휴에도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 좋은 것이다. 택배나 배달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로 쉬지 못할 듯 하다.

10.대한민국 주부들
명절에 쉬지 못하고 가장 바쁜 사람들 중에서 주부들이 단연 최고다. 명절이 가족들과 함께 즐겁고 편안해지는 것은 대한민국 주부들 덕분이다. 남편들은 연휴 후 아내들의 어깨라도 주물러주자.

[댓글 의견] 명절 비상근무하는 분들
* 차 정비/수리
* 자동차 보험 관련 업무
* 특수 TM 전화 관련 직업
* 발전소 분들
* 관광 안내원
* 파출소/지구대 경찰관
* 성당/교회 사무실
* 톨게이트 근무자
* 사회복지사


언급한 분들 외에도 명절에도 못쉬는 분들 많은 것 같다. 에고, 정리하기 힘들다. 이제 그만 해야 겠다. 명절에는 특히 소외된 이웃들이나 이국 땅에서 고생하는 분들도 생각해보자.
명절인데 비상근무하는 분들에 대해 아시는 분들, 댓글로 알려주세요. ^^
설날 명절 서로 덕담들 많이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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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