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 해당되는 글 7건

  1. 2010.01.20 사내 커플이 연애 결혼 성공하는 3가지 조건과 방법 by 진리 탐구 탐진강 (83)
  2. 2009.12.16 아내가 연말 모임에 다이어트하는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5)
  3. 2009.05.24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추억과 아내의 눈물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4. 2009.05.07 자식위해 평생 불구가 되신 어머님 전상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5. 2009.04.13 아이들과 주말농장을 하는 세가지 장점 by 진리 탐구 탐진강 (25)
  6. 2009.03.09 벌교 주먹이시던 아버님이 약해지신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9)
  7. 2009.03.01 야생에서 호박 먹는 토끼 부부, 순간 포착 by 진리 탐구 탐진강 (4)


직장에서 남자와 여자가 공식적으로 사내 커플로서 결혼 발표는 항상 놀라운 소식 중 하나입니다.

대개 사내 커플은 보수적인 기업문화에도 기인하지만 사귀다 깨질 경우 파장이 두려워 다른 사람들 몰래 데이트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직장에서 사내 커플은 곧 결혼을 전제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직장인들은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취직하는 시기가 대학을 졸업한 이후이고 나이도 적령기에 접어드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이미 취업이 성공한 신입사원을 포함 미혼 남녀 직장인들의 관심은 급격하게 결혼이란 목표로 전환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 만큼 미혼 직장인들은 결혼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입니다. 제가 17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지금까지 목격한 사내 커플의 연애 결혼 성공비결 사례를 살펴보면 일정한 조건과 성공요인이 패턴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내 커플로 만나 스릴넘치는 몰래 연애를 하고 남편과 아내로 부부가 되어 산다는 것도 행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내 커플은 언제 성공하기 쉽고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신입사원 초반 3개월을 공략한다

노총각 K과장과 신입 S 여사원

항상 업무에만 파뭍혀 사는 일벌레 K과장이 어느 날 결혼 청첩장을 돌렸습니다. 청첩장을 받아 든 직장 동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K과장의 결혼 상대가 이제 입사한지 7개월 밖에 안된 신입 여사원 S였기 때문입니다.

사내에서는 K과장과 S사원의 결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여러 목격담으로 수근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도 깜짝 놀란 사건이었기에 귀를 기울여 봤습니다. K와 S가 함께 있었던 장면을 목격한 경우가 많았지만 아무도 의심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주류였습니다.

                             새해 벽두부터 루저의 희망으로 떠오른 김혜수-유해진 커플

K과장은 신입사원 S가 입사한 직후 한 눈에 반했습니다. K과장은 입사 첫 날부터 S여사원에게 다가가 회사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다정다감하게 알려주었습니다. S는 대학에서 공부에만 주로 매달려 왔기에 남자를 사귀어 본 경험이 많지 않은 편이었습니다. S는 K과장의 호의가 고마웠습니다. 게다가 퇴근 후 집으로 가는 방향도 비슷했습니다.  

특히나 K과장 S사원은 같은 팀은 아니었지만 사내에서 서로 업무상 의사소통할 일이 많았습니다. 업무시간에 K과장과 S사원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도 그다지 의심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었습니다. 심지어 낮에 두 남녀가 K의 자동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목격한 사람도 있었지만 통상적으로 K과장이 후배인 S사원과 업무상 이야기를 나눌 것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사실 K과장은 노총각이었지만 워낙 일벌레였기에 결혼을 아예 잊고 사는 남자로 인식되었던 시기였습니다. 설마 K과장이 나이 차이도 많은데 신입 여사원 S와 사귈 것이라곤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퇴근을 해도 방향이 같아서 그런 정도로 넘겨버릴 정도였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직장 상사 또는 고참 선배인 K과장과 신입사원의 업무 관계로 인식해 왔던 것입니다.

직장 선후배들은 K과장과 S 여사원이 결혼 청첩장을 받아들고서야 비로서 두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이 이미 준비된 수순이 아니었나 다시 생각하게 됐던 것입니다.

노총각 K과장과 신입 S사원의 사내 커플 성공 포인트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 입사 초기 3개월내 신입 사원을 공략한다
-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 업무상 직장 선배와 후배 사원의 관계로 인식되게 한다

3년차 H 여사원과 신입 P 남사원

K와 S 커플 이외에도 제가 아는 여러 사내 커플이 신입사원과 고참 사원 사이에 이루어졌습니다. 3년차 직장인 여사원 H와 신입 남자 사원 P의 경우는 고참 여자원 H가 거꾸로 신입 남사원 P에게 먼저 접근해 결혼에 성공한 사례였습니다. 신입 사원의 경우는 직장문화나 분위기에 익숙치 않아 직장생활 초반 3개월이 힘들 수 있는 시기입니다. 이 때 친절하게 업무지식이나 직장상식을 소상하게 가이드해주는 이성의 고참선배가 있다면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는 셈입니다.

신입 사원의 경우는 고참 선배와 함께 있어도 크게 의심을 받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고참 사원이 신입 사원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은 당연한 업무상 이유나 직장 선배로서 역할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입 사원 초기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고참과 신입의 관계는 의심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나중에 서로 가깝게 만나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수상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풍요속 빈곤-등잔 밑이 어둡다

중고신입 H대리와 비서 L 여사원

지방에서 서울로 발령을 받아서 새로 근무하기 시작했던 H대리가 비서 L과 결혼을 발표하자 모두들 어리둥절해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이미 H와 L이 사귄지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H는 직장내 친구였습니다. 서울 본사 근무를 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저는 H와 나이가 같고 지방에서 막 올라와 어리버리한 H를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H는 지방 사업장에서 3년 이상의 직장생활 경험을 이미 갖고 있었지만 서울에는 중고 경력의 신입사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H의 마음에 미녀 여사원인 비서 L이 들어왔습니다. 비서는 직장내 최고위 임원과 가까이 있어 근접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눈에 띄는 곳에 근무해 다른 남자들이 사귀자고 했을 것이란 막연한 상상으로 미리 포기하곤 했습니다. 풍요 속의 빈곤이나 다름없는 자리가 비서와 같이 누군가에게 잘 보이는 자리에 근무하는 경우입니다. 그 결과는 용기있는 자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H가 비서 L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제게 목격됐습니다. H에게 물어보니 처음에는 잡아떼더니 이내 L과 사귀기 시작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렇지만 비밀을 지켜달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친구인 H를 돕고 사내 커플로 본격 사귀기 시작한 H와 L이 잘 되기를 바라면서 비밀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리고 L이 H를 위해 남몰래 싸온 도시락이나 샌드위치 빵을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그 후 1년 정도 후에 H와 L이 결혼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직장 동료들을 감쪽같이 피해 사내 커플 관계를 유지했던 셈입니다. 그러니 직장에서는 H와 L의 결혼 발표가 놀라운 뉴스가 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절친의 지원과 분위기 조성을 활용하라

여기에서도 몇가지 성공 포인트가 있습니다.
- 절친의 지원과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 비밀 유지의 원칙은 발표 전까지 지켜져야 한다
- 만고의 진리,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는다

사내 커플이 끝까지 비밀유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내 커플은 비밀 유지가 생명이나 다름없습니다. 중도에 누군가 알게 될 경우라도 입막음을 잘해야 합니다. 그가 친한 관계라면 그를 매개체로 삼아 사내 커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친구 H의 메신저가 되어 직장내 의심 환자가 발생시 제압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둘이 싸울 때 화해의 메신저가 되기도 했습니다.

만일 사내 커플임을 알게 된 절친이 생기면 그의 도움을 받아 오히려 커플에 긍정적 방향으로 활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사내 커플은 청첩장 찍을 때 까지는 적어도 비밀유지를 하는 것이 두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H의 사례와 같이 용기있는 자가 미인을 얻을 확률이 높습니다. 누군가 이미 차지했을 것이란 생각보다는 진심을 갖고 도전하는 용기가 먼저 필요합니다. 아름다운 꽃에 오히려 나비와 벌이 날아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미혼 남자라면 풍요 속의 빈곤인 미녀들이 주위에 없는지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찾는 파랑새 아니 피앙새 짝꿍은 가까운 곳에 님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많은 사례가 있는데 다음 기회에 추가로 소개해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분들이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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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저녁 퇴근 후 저는 종종 아내와 함께 캔맥주를 마시곤 했습니다. 집에 늘 술과 안주가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혼하기 이전 연애 시절부터 호프집을 자주 애용했던 터라 결혼 후에도 함께 소주 한 잔을 기울이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주말에 술친구가 되어주는 아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도 삶의 윤활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아내는 전혀 맥주나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갑작스런 아내의 변화가 궁금해 물었습니다.
"요즘 무슨 일 있어? 전혀 술을 마시지 않네."
"연말 모임에 참석해야 하잖아. 당신 회사에서 부부 모임도 있다면서..."

"아, 그것 때문에 다이어트하는 거야?"
"얼굴에 볼살도 그렇고 뱃살도 좀 빼야 하거든."

그랬습니다. 얼마 전에 회사에서 제가 속한 본부의 간부급 대상으로 연말 부부커플 모임을 갖기로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했더니 아내는 그 날 이후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식사량도 줄이는 등 다이어트에 돌입한 것이었습니다. 하루 이틀 다이어트 하다가 말겠지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남다른 각오인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계속 다이어트를 계속 해오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자 친구들이나 아줌마들 모임에서도 옷맵시에 신경쓰는 이유

어제 저녁에는 아내가 외투를 구입해 자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옷 샀어. 간이 작아서 비싼 밍크는 안샀어."
"그래. 잘 했어. 지난번에 마음에 드는 옷 사라고 했잖아."

"그래도 막상 비싼 옷은 사려니까 겁나더라구. 이 옷은 유행을 크게 타지 않고 오래 입을 수 있거든."
"응. 옷이 따뜻해 보이고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아내는 밍크코트를 처음에 산다고 했는데 옷을 사러 갔다가 매장에서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밍크는 중요한 행사에만 한 두 번 입는 것이라 실용성이 떨어지고 유행도 타기 때문에 안샀답니다. 대신 크게 유행도 타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다용도로 입을 수 있는 외투를 사게 됐다는 아내의 설명이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패션에 민감하던 아내도 이제는 알뜰한 주부로 변한 셈입니다. 이번에는제가 그 동안 옷도 몇번 사준 적이 없어 아내에게 맘껏 원하는 옷을 사라고 했는데 결국 아내는 다소 저렴하면서 실용적인 옷을 구입한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이번에 옷을 산 것도 연말 부부파티 모임이나 아내 친구들 모임 등을 위해 준비한 이유도 작용한 듯 합니다. 아내와 옷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여자들은 왜 다이어트에 신경쓰는지 궁금했습니다.
"여자들은 왜 연말 모임에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거야?"
"그거야 여자의 자존심일 수 있지. 그리고 모임에서 아름답게 보이고 싶은 것이겠지"

"나이에 상관없이 여자들 마음은 비슷한 것 같네"
"아줌마도 부부모임에 가면 옷테가 나는 몸매가 부러운 것 같아. 요즘 아줌마들이 옷맵시가 잘 나면 남편이 잘 나가는 줄 안다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그건 남편이 돈 잘 벌고 잘 나가면 여자가 피부나 몸매 관리할 시간이 많아진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래서 여자들 모임 같은데 나갈 때도 여자들이 옷맵시에 더 신경쓰는 것 같아." 

연말 파티 문화로의 변화가 만든 아줌마 다이어트 풍속도일까?

여자들은 여자 친구들 동창회나 아줌마들 모임에서도 옷과 외모에 신경을 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이 자신을 초라하지 않게 보이는 것이면서도 남편을 빛나보이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자들의 자존심이나 다름없는 일이었습니다. 남자들이 주로 자신의 지위나 월급으로 자존심을 세운다면 여자는 외모와 옷맵시로 스스로를 드러내는 듯 했습니다.

따라서, 아내는 회사의 연말 파티에서 남편의 기 살려주는 방법으로 다이어트를 각오한 셈입니다. 이왕이면 자신의 부부 모임에서 돋보이는 것이 자신과 남편의 자존심을 높여주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여자는 나이와 상관없이 아줌마가 되어도 외모와 몸매에 늘 신경쓰는 것 같습니다. 꺄름한 얼굴에다가 슬림한 몸매가 돋보이는 의상은 여자들의 로망인가 봅니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남편을 더 돋보이게 하고 싶은 여자의 마음인 듯 합니다.

아침에 아내가 싱글벙글하면서 한 마디 합니다.
"이거 봐. 나, 볼 살이 사라지고 갸름해지지 않았어?"

연말 연시 모임이 예년에 비해 파티 문화로 바뀌면서 달라진 풍속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는 회사에서 부부 동반 모임으로 인해 다이어트하는 아줌마들이 많아지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술친구가 사라져 집에서 혼자 외롭게 술을 마시지만 남편을 위한 배려이니 기꺼이 감내하는 요즘 생활입니다. 여러분들 주위에도 모임을 위해 다이어트하는 분들 많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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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제 아침에 청천벽력같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소식에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종일 가슴에는 슬픔의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내리는 듯 했습니다. 연신 담배만 피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마지막 직전에 경호원과의 대화가 눈에 선했습니다. 선문답같은 대화지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습니다.
"담배 있나?"
"없는데요. 가져올까요?"
"저기 사람이 지나간다."

피끓는 청춘 시절을 잊고 20여년을 바쁘게 살았습니다. 한 가정을 일구고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직장 생활을 했습니다. 정치는 '그들 만의 리그'라고 치부하곤 했습니다. '먹고사니즘'이 더 절박한 생활이었기에 평범한 직장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 주어진 선거권은 반드시 행사했습니다.

그런데, 인간 노무현의 등장과 서거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아내가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흐느끼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TV에서는 뉴스특보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하루종일 잘 참고 있던 아내가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아내는 점점 감정이 북받치는지 울먹거렸습니다.

너무 감정이 감정이 격앙된 것 같아서 아내를 진정시키려 해봤습니다.

"왜 그러는 거야. 진정해."
"우리가 취임식에도 갔던 대통령이 서거했는데...(울먹울먹)..."

"그만 울어. 당신이 울고 있으니 나도 눈물이 나려고 하잖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너무 슬퍼...(훌쩍훌쩍)..."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는 일반 국민 대표들이 함께 입장했다

저는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내의 말을 듣고나니 옛 생각이 났습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 왔습니다. 저녁 식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취임식은 처음으로 일반 국민들의 인터넷 신청을 받아 추첨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운좋게도 난생 처음 대통령 취임식 참석의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국회에서 역사적인 제 16대 대통령 취임식을 관람할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부부가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의 영향과 이를 통한 일반 국민들의 참석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내는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더욱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아내가 이렇게 가족 이외의 특정 인물로 인해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처음 본 모습이었습니다.

너무 허망한 대통령의 서거에 아내는 취임식 당시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당시 취임식은 2월 중순이라 여전히 추웠던 것 같습니다. 결혼 후 처음으로 부부가 특별한 이벤트로 가졌던 취임식 행사 참석이었습니다. 당시 식전 행사의 마지막 노래로 양희은이 '상록수'를 부르자 많은 참석자들이 따라부르며 진정한 민주주의 세상을 염원했습니다.

그리고 취임식은 노무현 대통령이 일반 국민 대표들과 함께 참석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날 취임식은 자라나는 아이들이 보다 행복하고 아름다운 민주주의 세상에서 살 수 있기를 희망했던 소중했던 추억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기존 극우 보수 세력과 하이에나 보수 언론에 임기 내내 물어뜯겼습니다.
 
시청 앞에서 거리 분향소 조문을 전경들이 가로막자 시민들이 항의하고 있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이 세상에는 어느새 독재의 망령이 스멀스멀 엄습해오고 있습니다. 소중한 가치 보다는 눈 앞의 이익과 욕심에만 너무 매몰되어 개인 이기주의, 지역 이기주의, 집단 이기주의가 오히려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예전 보다 물질은 많아졌지만 더 많이 갖기 위해 아웅다웅 다투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가 사람 보다는 물질에 함몰되어 너무 각박한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취임식이 아니라 장례식을 지켜봐야 합니다. 자신을 산화해 희생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울림의 메시지가 큽니다. 고인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 속에서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우리가 잊고 지냈던 소중한 가치들이 많습니다. 그 가치의 중심은 물질 보다는 먼저 사람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여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보다 소중한 가치를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 때의 추억처럼 양희은의 상록수를 다시 한번 들어봅니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상록수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 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 말라고

땀 흘리리라 깨우치리라
거칠은 들판에 솔잎 되리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寧邊에 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좋은 곳으로 가시길.....
[근조 소스 제작 : 예스비님 근조소스 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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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칠순이 다 되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계십니다. 호랑이같은 아버지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어머니는 청춘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자식들은 대도시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막내 남동생이 가까운 도시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곤 합니다.

그러나, 장남인 제가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십니다. 어머니가 불편하신 다리로 평생 산골에서 힘든 농사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제게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불행하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절게 된 사연과 혼자서 저를 키운 새색시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까마득한 두메산골입니다. 아직도 온통 산으로 뒤덮인 고향은 비포장도로를 통해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다닐 정도로 산골 오지입니다. 부모님은 산골 외딴집에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 만큼은 시골 집에 동생들 가족들과 일정을 맞춰서 함께 가곤 합니다.

어머니는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이셨고 아버지는 초등 교육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지난 1960년대는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한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시골 마을에 잠시 머물던 시절에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을 '주먹자랑 하지 말라'고 알려진 벌교에서 지냈던 분으로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결혼 후 신혼 시절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기피한 상태였는데 아버지를 체포하기 위해 헌병대에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헌병대를 피하기 위해 초가집의 흙벽을 무너뜨리고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 후 아버님을 몇년 동안을 도시에서 숨어지냈습니다. 당시에는 군대에 간 후 사망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군대 기피가 많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머니는 새색시가 생과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땔감을 구해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 시골집은 초가집이었고 나무 땔감으로 밥을 짓고, 소꼴을 베어 소를 키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기도 가스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녁엔 방에 호롱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임신 중이었습니다. 혼자서도 힘든데 홀몸이 아닌 상태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소까지 키워야 하는 고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겹게 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혼자서 열심히 밭 일을 하다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서둘러 밭에서 일을 끝내고 머리에는 소꼴을 가득 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길가에 뻗은 칡넝쿨에 걸려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넘어지던 중 머리에 인 소꼴에서 낫이 떨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낫은 어머니 앞에 날이 선 상태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예리한 낫의 날에 닿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어머니는 무릎의 힘줄이 끊기는 대형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를 할 병원도 없었습니다. 곁에는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당시 저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무거운 몸이다보니 칡넝쿨에 걸려 균형을 잡지 못한데다 낫을 피하지 못해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임신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것도 몸 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봐 못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그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가 되셨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어머니는 다시 농사를 짓고 혼자서 저를 낳아서 길렀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그렇게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갓 결혼 후 남편도 없이 무려 5년을 그렇게 농사도 짓고 저를 키웠던 것입니다. 저는 아가 시절을 마당이나 밭을 기어다니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마당에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나 닭과 함께 놀고, 밭에서는 지렁이가 친구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도 일을 하고 계시고, 밭에 가서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워낭소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저의 유년 시절은 밤낮으로 어머니 밖에는 없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호롱불 밑에서 제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5살 때 처음 어버님이 고향으로 돌아오셨지만 저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만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오신 후에도 집안 일은 하지않고 한량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싹텄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마음의 화해가 어느정도 되었고,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과거와 달리 농사 일이나 집안 일도 했습니다.

제 나이가 5~6세 정도일 때도 저는 동네 아이들과 산에 올라가 고사리 손으로 나무를 하곤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오직 어머니 일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저의 일을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시절에도 방학 동안 내내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돕는데 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가 어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 때부터 어머니 혼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왜 다리 하나가 불편하게 되셨는지 얘기를 처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어머니가 다리를 절면서 걷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것이 모두 제 탓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보면, 그 젊은 시절에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참고 이겨냈는지 가슴이 아프곤 합니다. 제가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늘 변함없이 생각하는 정신적 지주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벼가 익어가는 여름 날, 논둑을 걸으면서 저에게 하신 말씀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어머님은 소중한 등불과 같았습니다. 제가 방황하거나 잘못 가려하면 언제
나 등대처럼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다리가 잘리는 듯한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디셨습니까. 그리고 홀로 저를 어떻게 키우셨나요.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만 하셨습니다. 특히 홀로 키웠던 저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유년시절의 기억 마저 희미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주 연락도 못드려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해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지금은 자식들도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어머니의 귀중한 가르침과 사랑 덕분입니다. 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언제나 힘을 주시는 어머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뵙겠습니다. 밤낮으로 기온차가 큰 데 건강 조심하세요.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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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화창한 일요일을 맞아 우리 가족을 비롯해 4가구 형제 가족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사는 곳은 모두 지역이 다르지만 모처럼 모여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거운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이제는 막내 동생도 결혼을 한 상태라서 가족들이 모이면 예전보다 화기애애합니다. 막내 부부를 제외하면 모두 각각 두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이다보니 아이들에게 뭔가 추억을 남겨주는 일도 보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식사 후 모두 함께 주말농장에 아이들을 데리고 총출동했습니다. 우리집 두 아이만 있을 때 보다 여러 아이들이 모이니 더 열심히 아이들이 땅을 갈고 채소를 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과 주말농장을 함께 하면 좋은 장점들이 많습니다. 몇가지 장점들을 소개합니다.

아이들에게 노동의 신성함을 비롯 풍부한 정서를 심어줍니다.

꼬마 아이 농군이 밭을 갈고 있습니다. 이제 5살 아이지만 누나 형들과 함께 하는 농사 일이 재미있는지 연신 밭을 가는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자연과 함께 하는 노동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도시의 삭막한 생활을 벗어나 땅을 밟고 농작물을 재배함으로써 우리가 먹는 먹거리가 소중한 이유를 알게 됩니다. 아이들에게 교육적인 효과가 큰 셈입니다.




직접 채소와 농작물을 재배해 먹어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직접 무공해 채소와 농작물을 재배함으로써 가족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이들도 자기들이 직접 가꾼 채소가 자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기대하는 마음이 큽니다. 이번에 상추, 방울토마토, 봄배추, 가지, 대파 등의 모종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얼갈이배추, 열무 등은 씨를 직접 뿌려 심었습니다. 아이들이 모두 함께 참여해 심어서 그런지 부모들도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주말농장은 농약을 전혀 하지않는 유기농 재배를 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믿을 만한 먹거리도 제공합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화합의 장입니다.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함께 모여서 가족 화합의 장을 자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은 아이들 대로, 어른은 어른들 대로 모여서 즐거운 시간들을 마련할 수 있고 우애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도시에서 사시는 부모님이 계시면 효도 선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음에 채소들이 커감에 따라 함께 모여 삼겹살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도 가족들과 함께 모이는 시간이 가장 즐겁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모처럼 아이들은 물론 네 가구의 가족들이 즐겁고 유쾌한 추억들을 만드는 시간이었습니다. 가족들은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10평 정도의 텃밭인데 가족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정도는 됩니다. 주말농장 텃밭에서 농작물과 채소가 커가는 모습과 같이 아이들은 꿈과 추억도 커져 갈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주말농장을 하는 재미에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요?

[참고 글] 팔 부러진 채 주말농장에서 삽질했던 사연

[참고] 주말농장 임대받으려면

주말농장은 서울 근교의 농지 중 경치가 좋고 일손 부족으로 농사를 짓기 힘든 경작지를 도시민에게 1년 단위로 임대, 주말에 와서 소규모로 채 소를 길러보며 전원생활을 하게끔 해주는 곳이다. 농장주가 자주 찾아오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작물을 돌봐주는 세심한 배려가 있고 부대시설 도 잘 돼있어 이용하기 편리하고 부담이 없다. 임대가격도 평당 1만원 내외여서 적은 비용으로도 가족과 함께 뿌듯한 주말을 자연속에서 보낼 수 있다. 게다가 직접 기른 무공해채소를 1년에 여러번 수확해서 먹을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농협이 전국 1백10여개의 농장을 가족들에게 연결시켜 주고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농장도 있다. 그 밖에 아크리스백화점도 카드회원에 한해서 일정가격에 주말농장을 임대해주고 있다.

처음 시작하는 가족들은 농장주, 농협 지도사의 도움을 받아 작물 재배방법을 배울 수 있고 재배가 간단한 상추, 쑥갓, 시금치 등의 채소류부터 기르면 된다. 꽃을 좋아하는 가족은 계절마다 다른 꽃을 가꾸어 보는 것도 좋다. 씨앗이나 종자, 비료 등은 저렴한 가격으로 살 수 있거나 무료 로 주기도 하며 호미나 괭이같은 농기구도 무료로 빌려준다.

농협은 일부지역에 한해 사과나무, 포도나무 등의 과실수, 꽃사슴도 분양한다.


텃밭 크기는 4인 가족이면 5평, 평당 1만원 내외

임대면적은 4인 가족이면 5평 정도가 적당하나 가족당 보통 10평까지 임대한다. 회원모집은 보통 3월에서 4월 초순까지이고 임대 가격은 평당 1 만원 내외. 포천이나 파주 등 조금 먼 지역은 더 싸게 분양받을 수 있다.

개인농장의 경우는 대부분 한 계좌를 3~5평으로 하여 주말농장을 이용하는 가족이 밭을 일구고 가꾸는 데 부담스럽지 않게끔 분양하고 있다. 계 좌당 5만~10만원이고 농장에 따라 모종이나 씨앗을 무료로 제공하기도 한다.

회원모집은 4월 초순 농장개장식까지 하지만 주말농장을 이용하는 가족이 늘어나는 추세이므로 빨리 신청하는 것이 좋다.

법인체인 양지말 가족농원은 5평의 텃밭과 유실수 두그루를 평생, 인근 산에 있는 30년생 잣나무를 10년간 임대해주는 형식으로 실버회원을 모 집하고 있다.

승마장, 눈썰매장, 노래방, 숙박시설, 식당 등의 부대시설을 30~50% 싸게 이용할 수 있다. 회원비는 부가세를 포함해서 3백85만원으로 다소 비싸 지만 평생 이용이라는 이점이 있다.

아크리스백화점은 카드회원에 한해 서초구 원지동에 위치한 주말농장을 3.5평단위로 7만원에 임대해준다. 3월 20일까지 신청하면 되고 씨앗과 농 기구도 무료로 제공한다. 부대시설로 별장도 있다.


텃밭 돌보는 법은 걱정 없어요. 농장주가 도와준답니다.

4월초에서 이듬해 3월말까지 이용할 수 있는 주말농장은 농장주가 경운기로 일군 밭고랑에 씨앗이나 모종을 심는 것으로 시작된다.

4월 초순에 상추, 시금치, 쑥갓, 셀러리 등을 심어 6월 중순에 수확하고 5월 중순에는 고구마, 토마토를 심어 각각 9월 초순과 8월 초순에 거둘 수 있다. 김장무, 배추 등은 8월 중순에 파종하고 11월초에 거두어 김장을 담그는 데 쓸 수 있다. 농사경험이 없는 가족들을 위해 농장주가 상세 히 가르쳐 주고 가족들이 올 수 없는 때에는 작물을 돌봐준다.

자녀로 하여금 직접 채소를 가꾸게 하고 자라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은 체험학습으로 주말농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큰 장점이다. 또 직접 기 른 무공해채소를 먹거리로 쓸 수 있고, 맑은 공기속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몸을 움직이는 것도 주말농장의 큰 매력이다.


교통이 편리한 수도권지역과 도시 주변에 위치

교통이 편리한 것 또한 주말농장의 장점인데 농협의 경우 수도권에만 80여개가 있어 서울지역의 시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고 개인농장도 서초구에 밀집해 있어 가까운 곳을 임대하면 된다. 편리한 교통은 주말농장을 자주 찾고 싶은 사람에게는 큰 장점이고 복잡한 교통을 싫어하는 도시인들이 쉽게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안성맞춤의 장소이다.

일부 주말농장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학습장도 갖추고 있어 둘러볼 곳도 많다. 또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농촌지역 이기 때문에 공기가 맑고 깨끗하다. 농협 주말농장은 인근에 가볼만한 곳도 추천하고 있어 주말을 즐겁고 알차게 보낼 수 있다.


과일나무나 꽃사슴을 분양하는 곳도 있다.

농협 주말농장 중 일부는 텃밭 분양 이외에 과일나무, 꽃사슴도 분양한다.

경기도 가평농협은 사과나무를 한 주당 7만원에, 화성의 서산농협은 포도나무를 한 주당 5만원에 분양하고 있다. 충남 아산 송악농협의 경우에는 2백만원을 농협에 예금하고 1년간 30만원 정도의 사양관리비를 부담하면 꽃사슴 한쌍을 일년간 분양받을 수 있다.


부모님들에게는 주말농장을 효도선물로

도시에서 소일거리 없이 지내는 부모가 있는 가족이라면 효도선물로도 주말농장을 활용할 수 있다.

농협 주말농장의 경우는 각 지역의 농협으로, 개인주말농장은 농장주에게 전화로 분양신청을 하면 된다. 작년에 이용했던 회원들이 다시 신청하 는 경우가 많으므로 신규로 임대를 받고자 할 때는 가급적 빨리 신청하는 것이 좋다. 양지말가족농원은 회원자격으로, 아크리스백화점은 카드를 발급받아 회원이 되면 주말농장을 임대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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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저녁에 '딩동'하고 초인종 소리가 들렸습니다. 시골에서 부모님께서 찹쌀 한 가마와 옥수수 종자를 택배로 보내셨던 것이었습니다. 아내에게 물었더니 "주말농장하려고 어머님께 옥수수 종자를 부탁드렸는데 함께 보내셨다"고 설명했습니다.


아버님은 1950년대 청소년 시절을 벌교에서 생활하셨습니다. 큰 아버님이 벌교에서 고등학교를 다니셨고 아버님은 함께 기거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벌교는  고등학교가 있던 거의 유일한 장소였습니다. 따라서, 인근 농촌 마을이나 멀리 떨어진 산골에서도 벌교로 학교를 보내야 했습니다. 큰 아버님과 아버님은 시골에서 벌교로 유학을 간 셈입니다.


아버님은 당시 벌교에서 주먹을 좀 쓰셨다고 합니다. 과거부터 벌교하면 '주먹 자랑하지 마라'는 말이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로 유명한 곳입니다. 벌교에서는 젊은 청년들은 물론 청소년들 사이에도 결투(?)가 많았나 봅니다. 아버님은 외지에 유학가서 남들에게 구박받지 않고 강한 남자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항상 체력 단련을 했다고 합니다.
 
시골 고향 집에 오면, 나무로 직접 만든 평행봉에서 항상 운동을 하셨습니다. 이소령이 혼자서 무예를 익히는 수련과도 흡사할 것입니다. 벌교에서 당시 청년이던 큰 아버님과 아버님은 함께 다니면서 주먹으로 벌교 지역을 평정하셨다고 합니다. 특히, 아버님은 힘과 체력이 좋아서 5일장이 열리면 씨름대회에 나가서 1등도 여러번 했다고 합니다. 어머님께 전해들은 이야기라서 정확한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다시 산골 고향으로 돌아오신 아버님은 잠시 고향집에 놀러왔던 어머님을 만나 결혼하셨습니다. 외조부모께서 반대하신 결혼이었지만 거의 막무가내로 결혼식을 올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당시 아버님의 기개(?)는 어떤 사람들도 막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 외조부모님은 집안의 평안을 위해 결혼에 승락했다고도 합니다.


[영화 워낭소리 : 촌로 부부의 모습은 부모님을 연상케 한다.]


아버님은 결혼 후에도 시골 마을에서 호랑이로 불리셨습니다. 아버님 앞에서는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기에 당신의 뜻대로 가정과 마을을 호령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한량으로 생활했던 것입니다. 간혹 산에 나무를 하러 갔다가 지게에 나무를 지고오시면 산딸기를 칡잎에 싸오곤 했습니다. 자식들을 위해 따온 것이었습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땐 저는 아버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늘상 어머님께 호통치던 모습에 대한 반발심만 가득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희는 매년 여름이 가족들이 모두 시골에 모여 휴가를 보냅니다. 작년 여름에 자식들이 휴가를 시골에 모였는데 아버님은 어머님을 힘들게 하셨습니다. 그 후 자식들은 어머님 편으로 전부 합세해 아버님이 고립된 적이 있습니다. 자식들이 모두 장성했고 결혼까지 한 상황에서 아버님의 처사는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머님을 모시고 서울로 올라와 버렸으니 당시 아버님의 상실감이 컸을 것입니다. 어버님은 아버님 걱정에 다시 시골에 내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초 칠순이 되신 아버님을 위해 형제자매 가족들이 함께 고향에 모였습니다. 작년 여름에 있었던 앙금도 모두 풀고 다시 가족들이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예전보다 많이 힘이 없어보이시는 아버님을 보니 송구스런 마음이 가득했습니다. 다시 돌아가는 자식들에게 곡식들을 자동차에 실어주시면서, 어머님은 올해 여름에도 시골에 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아직도 아버님은 칠순 나이에 시골 마을 이장을 맡고 계십니다. 젊은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찹쌀 한 가마와 옥수수 종자를 받았습니다. 아내가 부탁드린 것은 옥수수 종자 뿐인데 찹쌀 한 가마도 보내신 것입니다. 사실 찹쌀 한 가마는 아버님이 보내라고 하신 것일 듯 합니다. 아버님은 언제나 그러셨습니다. 어머님에게 옥수수만 보내지 말고 참쌀 한 가마도 함께 보내라고 하셨을 분입니다. 자식들과 어머님 앞에서는 늘 근엄한 모습이었지만 돌아서면 한없이 자식들을 사랑하신 분이셨습니다. 말씀으로 표현을 못하는 산골 마을의 전형적인 아버님이셨습니다.
 
아버님이 보내주신 찹쌀 한 가마를 보면서 아버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젊은 청년시절의 기개를 항상 잃지안고 호령하시던 아버님이 이제는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예전에 비해 아버님이 어머님께 조금은 부드러워 지신 것 같아 다행이지만 한편으로 약해지신 아버님의 모습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벌교에서 주먹을 자랑하던 열혈 남아였던 아버님이 이제는 마을에서도 예전과 같은 호랑이 모습은 많이 약해지셨습니다.

아버님의 자존심은 예전부터 '쌀'이었습니다. 아무리 한량이라고 하시더라도, 논농사는 반드시 당신이 책임을 다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 항상 가장 품질좋은 쌀 농사를 짓곤 했습니다. (지금은 표고버섯 재배를 비롯해 여러가지 일들도 하십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쌀을 보내는 것을 기쁨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오늘 아버님이 보낸 '찹쌀'은 그 이상의 마음이 담긴 선물입니다. 아버님 어머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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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날씨도 풀리고해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작년에 경작했던 주말농장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토끼가 야생의 밭에서 호박을 먹고 있는 신기한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그 곳은 산비탈에 위치한 과수원의 일부 땅을 주말농장으로 사용하던 장소였습니다.

토끼가 채소나 풀을 먹는 모습을 봤지만 호박을 파먹는 장면은 처음이었습니다.

토끼 한 마리가 호박을 파먹고 있는 장면입니다.

토끼가 호박들이 버려진 장소에서 호박 하나를 반쯤 파억었습니다.

토끼가 사람들의 인기척을 눈치채고 도망가 버린 후 호박들만 남겨진 장소입니다.

호박들이 한 곳에 많이 버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개 밥그릇 주변에 다른 토끼 한 마리가 숨어 있습니다.

토끼 부부인지 두 마리 토끼가 함께 모여 있다가 다시 산 쪽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개가 멀리서 토끼 부부를 노려보는 모습이 뒤에 보입니다.

그 주변을 살펴보니 토끼장 우리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여기서 탈출한 토끼 부부인 것 같습니다.

토끼 우리 안으로 배추 잎을 먹이로 주었더니 토끼들이 모여 듭니다.

토끼들이 서로 배추 잎을 먹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벌어집니다.

앞으로 여기 근처에서 주말농장을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아직 장소가 구체적으로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큰 딸은 벌써부터 자신에게도 일부 땅을 달라고 합니다. 자신 만의 채소와 꽃들을 키우고 싶다고 합니다. 아내는 올해 무엇을 심을까 기대하면서 채소들 목록을 떠올리고 있습니다.

작년에서는 상추, 열무, 옥수수, 고구마, 방울토마토, 호박, 오이 등 여러가지 작물을 심었고 가을에는 무와 배추를 심어 김장김치를 담그기도 했습니다. 올해에는 작년 보다 많은 수확을 기대하면서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주말 농장은 아이들에게 노동과 자연 친화에 대한 소중한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주말 동안 함께 지낼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주변에 사시는 장모님에게 신선한 채소를 공급할 수 있어 좋습니다. 일석 삼조이상의 효과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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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