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 선수를 보면 수많은 상념이 스쳐지나갑니다. 하나의 민족이지만 남북으로 분단된 국가와 조국의 설움을 고스란히 안고 사는 한 인간에 대한 고뇌인지도 모릅니다.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인데도 같은 민족끼리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싸우는 현실이 안타까움을 더해가는 시대. 그러나 그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스포츠정신으로 최선을 다하는 정대세가 있었던 셈입니다.

남북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권력 유지와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조장하는 전쟁과 대결은 논외로 하겠습니다. 순수한 스포츠정신과 월드컵정신 앞에서는 허상과도 같습니다. 스포츠를 정치에 이용하는 위정자들이 나쁜 것입니다. 인간 본연의 휴머리즘 속에서 오직 축구를 향한 열정의 화신 정대세를 생각해 봅니다.

남아공올림픽 G조 예선 첫 경기에 나선 북한의 정대세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정대세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정대세는 경기장에 들어설 때부터 이미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선수들이 경기장 그라운드에 일렬로 나란히 섰습니다. 식전 행사가 시작되고 북한의 국가가 연주되었습니다.

국가 연주가 울려퍼지자 정대세는 또 눈물을 쏟았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양쪽 볼에 흘러내렸습니다. 경기장내 대형 전광판 화면에 정대세의 눈물이 그대로 비추어졌습니다. 수많은 관중들도 순간 멈칫 했습니다. 유독 짧게 자른 빡빡 머리의 남자는 사람들의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한 남자의 눈물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정대세 선수의 앞에 서 있던 남아공 어린이도 함께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이심전심일까? 정대세의 눈물은 어린 아이의 순수한 마음 속에도 그대로 함께 투영돼 눈물을 쏟아내게 했던 것입니다.

정대세는 왜 눈물을 흘렸을까요?

정대세가 눈물은 한 축구 선수의 꿈이었습니다. 월드컵이라는 최고의 축구 무대에 선 남자의 각오이자 의지 그리고 열정과 자부심이 눈물로 승화된 것입니다. 어쩌면 굴곡진 축구 인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눈물이 아닐까 합니다. 재일교포 3세인 정대세는 원래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대세는 조총련계 학교에서 대부분의 학창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정대세는 2006년 북한 축구 대표팀이 일본에게 패한 것을 지켜본 뒤 북한대표팀에 합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1966년 월드컵 8강 신화의 북한 축구팀이 일본에게 무참하게 패배하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정대세에게는 한국 국적이라 하더라도 북한도 하나의 조국이었던 것입니다. 정대세 자신이 힘을 보태 또 다시 월드컵의 영광을 만들 수 있기를 소망했던 것입니다. 결국 정대세는 J-리그에서 쌓은 실력과 강인한 의지를 바탕으로 북한을 44년만에 월드컵에 출전시키는 괴력을 발휘했습니다. 북한이 44년만에 다시 월드컵 무대에 등장한 것입니다. 거기엔 정대세란 이름이 함께 있었습니다.

정대세는 브라질과의 첫 경기를 마친 후 말했습니다.
"드디어 이 자리에 왔다고 생각해 감격했고 그래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축구를 시작할때 부터 이 날을 상상해 올 정도로 대단한 대회입니다. 그러한 무대에서 브라질이란 세계 최고의 팀하고 경기할 수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정대세는 축구가 인생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정대세가 꿈꾸었던 것은 월드컵 무대에서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대세는 자신이 선망했던 세계 최강의 팀인 브라질과 처음으로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축구 무대에서 최강의 팀과 경기를 펼치고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대세는 감격스런 일이었습니다. 정대세의 눈물의 기쁨과 환희의 눈물인 셈입니다.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자리에 올라 선 선수에게 나타난 불굴의 스포츠정신의 발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정대세의 눈물을 보면서 문득 김연아 선수가 동계올림픽 여자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끝마친 후 흘리던 눈물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혹독한 훈련 과정을 거쳐 결국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 무대에 섰습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한 경기를 펼쳤습니다. 김연아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김연아는 스스로 최선을 다했기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감격과 환희의 눈물이었습니다. 자기 자신과 투쟁에서 승리했고 최선을 다했기에 그것만으로 그 동안 훈련과정의 고통은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김연아의 눈물은 자연스럽게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김연아의 눈물과 정대세의 눈물은 그런 점에서 서로 닮아 있습니다. 최고의 무대를 행해 누구나 꿈을 꾸지만 아무나 그 곳을 허락하지는 않습니다. 김연아와 정대세는 그 꿈을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최고의 기량을 발휘했고 꿈의 무대에 설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김연아와 정대세는 더욱 더 불굴의 의지가 강했습니다. 김연아가 최선을 다해 노력한 과정을 알고 있기에 사람들이 그 눈물의 의미를 알 수 있었듯이 정대세가 눈물을 흘린 의미 또한 이심전심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정대세가 브라질의 미남 선수 카카와 정다운 대화를 하고 있는 장면입니다.
정대세는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 영어, 포르투갈어까지 여러 국가 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브라질 취재 기자들이 정대세를 붙잡자 그냥 멈춰섰고 물 흐르듯이 대화를 나누고 역으로 질문까지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고 합니다. 정대세는 브라질과 G조에 편성되자 마자 자기 소속팀인 일본 프로축구 가와사키 프론탈레에서 뛰는 브라질 선수를 통해 포르투갈어를 집중적으로 익히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정대세는 축구만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 공부를 비롯한 여러 면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범적인 선수임에 틀림없습니다. 

정대세의 북한팀은 세계최강 브라질과 맞서 멋진 경기를 펼쳤지만 아쉽게 2대 1로 패했습니다. 정대세는 후반 44분 지윤남에게 헤딩 패스 어시스트를 통해 북한팀의 1골을 만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북한팀이 브라질과도 투지넘치게 경기를 펼친 것을 보고 진정한 스포츠정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1차전에 승리했듯이 북한도 승리하기를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브라질은 너무 강한 팀이었습니다. 비록 북한이 졌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그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입니다.

정대세는 경기 후 브라질과의 경기결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이 곳에서 골을 넣고 승리를 이끌자고 생각했는데 그걸 못해서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16강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르투갈은 이기겠습니다"


죽음의 조로 불리는 G조에서 북한의 정대세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됩니다.
정대세의 좌우명은 '승리를 스스로 믿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라고 합니다. 정대세가 믿는 승리와 눈물의 의미가 감동스러운 이유입니다.

[추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인 듯 하여 액션가면님이 댓글로 남긴 글을 공유합니다

<어제는 6.15 남북공동선언 10주년이었지만 남북 전쟁 위기 정국으로 인해 조용히 지나간 듯 합니다. 남북한 축구팀은 5년전 서울 상암축구경기장에서 하나된 조국과 평화통일을 위해 친선경기를 했습니다.>

6.15 선언 10돌을 맞는 어제 6.15공동선언문의 취지가 무색해질 정도로 냉대받고 있는 민족적 기념일이 가슴아팠습니다. 4년전 6.15를 기념하기 위해 광주월드컵 경기장에서 남한과 북한의 친선경기가 있었는데, 그때 풍물놀이 한마당처럼 신명나게 남북을 함께 응원했던 기억이 바로 엊그제만 같습니다.

연일 천안함 관련해서 북한을 주적으로 몰아가는 언론과 곧 전쟁이라도 일으킬 것처럼 불안을 조장하는 정부를 보면 정말 통일이 올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정대세선수의 눈물은 그래서 더 가슴아픕니다. 제일교포3세로 힘들게 자랐을 그를 위해 한국이 한 일이 뭐가 있을까요? 그가 민족적 아픔을 고통스럽게 안고 살아가야 했던 그 시간동안 한국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다들 말로는 하지 못하지만 그 눈물을 본 우리들은 모두 북한이 선전하기를 그가 흘린 눈물과 땀이 뜻 깊은 결실을 얻기를 가슴으로 응원할 것입니다.

[참고] 정대세는 박지성 선수를 존경한다고 합니다. 정대세는 2022 월드컵 유치전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정대세는 영국 언론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만약 월드컵 경기가 (서울과) 평양에서도 열릴 수 있다면 그건 우리의 원대한 꿈. 그 이상이 될 것입니다. 남북의 정치적 봉합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스포츠는 남북을 하나로 묶을 수 있습니다. 남북 공동 월드컵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된 조국과 평화를 원하는 정대세의 또 하나의 꿈인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축구로 하나되는 월드컵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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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아마존의 눈물을 시청했습니다. 사실 지난 프롤로그 '슬픈 열대 속으로'에 이어 제1편인 '마지막 원시의 땅' 방송을 기다려 왔습니다. 방송을 보는 내내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명품 다큐멘터리라는 생각입니다.

아마존의 눈물은 MBC가 총제작비 15억원, 제작기간 250일을 투입해 만든 다큐 걸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북극의 눈물에 이어 지구의 눈물 시리즈이기도 합니다.

이번 '마지막 원시의 땅'은 아마존 지역에 사는 원시부족 조에족과 와우라족이 등장했습니다. 조에족은 1987년 이후 처음으로 MBC가 이번에 촬영했다고 합니다. 조에족은 브라질 북부 파라주의 아마존 밀림 속에서 문명세계와 접촉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데 남자와 여자 모두 순수 원시 부족 전통 생활방식 자연 그대로 옷 하나 걸치지 않고 완전 알몸으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인상적인 것은 원시부족 조에족의 천연 그대로의 생활과 나래이터 김남길의 차분하고 잔잔한 목소리였습니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르게 다큐 1편이 끝날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습니다. 다큐가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원시부족 조에족은 순수 그 자체였다

아마존 밀림 속에서 사냥과 수렵으로 살아가는 순수 원시부족은 조에족이 유일했습니다. 조에족에게는 칼과 거울 이외의 문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모습은 아래 입술 안쪽에서 턱 아래로 나무 막대기를 꽂고 생활하는 뽀뚜루였습니다. 영구치가 난 이후부터 평생을 그렇게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불편해 보이지만 조에족 뽀뚜루는 선조들이 했던 전통 방식을 그대로 물려받아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조에족은 모두 A형 혈액형만 존재한다고 하니 특이했습니다. 주식은 만주오까로 고구마 뿌리와 유사했습니다. 침보나무로 물고기 잡는 모습은 잠시 마취만 시키는 것인데 신기했습니다. 조에족은 240여명 정도에 불과해 앞으로 문명의 습격으로 멸종하지 않을까 우려도 되었습니다.


                      완전 나체 조에족은 뽀뚜루를 턱에 꽂고 간혹 새털로 머리 장식을 했다

조에족은 숫자도 열 손가락 이상은 세지 못했습니다. 손가락으로 셈할 수 있는 이상이 되면 '많다'로 통용됐습니다. 우리가 계산기나 컴퓨터를 이용하면서 고민하지만 조에족은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은 셈입니다. 또한 조에족은 태양의 움직임을 시계와 같이 생각하며 하루 일과와 사냥의 시작 시간을 정했습니다. 문명의 이기를 경험한 우리가 보기에는 답답할 수도 있지만 화면을 통해 본 조에족은 인간 본연의 자세로 전통을 고집하는 생활양식이 순박하고 순수했습니다.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남편이 둘인 여자와 아내가 셋이 남자

조에족은 사냥을 잘하는 자가 전체 부족을 먹여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조에족 최고의 사냥꾼인 모닌은 사냥을 하면 자신이 가족과 부족의 식사를 거의 책임졌습니다. 모닌의 자신이 사냥한 고기를 부족 사람들에게 골고루 분배했습니다. 조에족 모닌이 전체 부족을 먹여살리는 셈입니다.

              문명이 상당히 지나간 부족은 방송 카메라에 이미 익숙한 것 같았다

화면에서는 무려 2시간에 걸쳐 고심을 하며 고기를 공동 분배할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군대에서 '작전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있어도 배식에 실패한 병사는 용서할 수 없다'는 말과 같이 조에족은 분배가 중요했습니다. 조에족은 탁월한 사냥 능력을 바탕으로 노무, 원숭이, 아르마딜로, 새 등과 같은 여러 동물을 사냥해야 했습니다.

사냥을 잘하는 것이 남자의 능력인 것 같았습니다. 모닌은 아내가 3명이었는데 그 중 둘째와 셋째 부인은 서로 자매 사이였습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닌의 여동생 투싸는 남편이 둘이었습니다. 그야말로 부족내 복혼, 폴로가미(polygamy)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원하면 남자든 여자든 여러번 결혼이 가능한 셈입니다. 자식도 공동으로 양육했습니다. 
 
투싸의 둘째 남편은 사냥을 싫어해서 남자들과 사냥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머리를 다듬고 자신을 가꾸는데 더 신경쓰고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 조에족은 어쩌면 누구나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자율적 민주적으로 배려하고 있는 듯 했습니다. 특히나 배식에 불만 품은 사람에게 화해를 간지럼으로 웃게 해 해결하는 모습이 독특하며 재미있었습니다.

                                              아마존 원숭이 우아카리

더보기

더보기를 보면 보뚜, 슬로스, 지보아, 파라니아 등 특이한 아마존 동물을 볼 수 있습니다.
아마존에는 치명적인 맹독성 뱀 지보아, 무법자 악어 카이만, 시속 900미터 느림보 슬로스 등 신기한 동물을 비롯 동식물 100만여종이 생존하고 있습니다. 
 

비담 김남길의 내래이션 잘 어울렸다

이번에도 김남길은 내래이션을 통해 다큐를 빛냈습니다. 전문 성우가 아니지만 더 신뢰감있고 안정감있는 목소리로 시청자를 편안하게 했습니다. 이번 방송에는 조에족과 와우라족이 비중있게 나왔습니다. 와우라족은 마티스족 마루보족 자미나와족 야노마미족 아쿤슈족 조에족 등과 함께 등장하는 7부족 중 하나였습니다.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의 내래이션을 맡은 비담 김남길의 녹음 장면

와우라 부족은 아마존 싱구 지역에 집단 거주하는데 과거 도전 지구탐험대를 통해 소개된 아마존 부족입니다. 방송에서는 남자들만의 빼끼축제로 여자들을 놀리는 놀이를 3일간이나 했는데 나중에 여자들이 반발해 남자들을 오물이나 진흙으로 무자비하게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문명을 체험한 와우리 부족이 방송을 위해 설정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와우라 부족 여자는 초경 후 1년간 격리생활을 해야 하고 임신하거나 4번 남자와 자면 결혼하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와우라족은 치장을 잘하고 빼끼를 비롯 연중 축제를 즐기는 부족이었다

아무튼 김남길의 호소력있는 목소리가 나래이터와 어울렸습니다. 슬픈 느낌과 분위기가 압도했나 봅니다. 
저는 에필로그에서 처음에는 조금은 어떨까 생각했는데 목소리가 슬픈 느낌과도 맞고 원시 느낌과도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아마존의 눈물 1편은 에필로그에서와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따라서 선덕여왕 비담 역할이었던 김남길이 아마존의 눈물에서 성우로도 가능성을 크게 연 셈입니다. 더욱이 아마존은 눈물은 또 하나 원시부족 그대로의 모습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번 아마존의 눈물 시리즈는 총 5부작으로 이번 1부에 이어 2부 '낙원은 없다'(1월 15일), 3부 '불타는 아마존'(1월 22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에필로그-300일간의 여정'(1월 29일)이 각각 금요일 오후 10시 55분에 방송될 예정입니다. 모 인터뷰 기사를 보니 김남길이 '제작진들, 아직 살아는 있는거죠?'라고 물어볼 정도였다니 아마존의 눈물이 얼마나 혹독한 사투였는지 짐작이 갑니다.



한편 이번 1부에서 원시부족 조에족의 경우 성기 노출 논란 때문인지 모자이크 처리를 한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인 듯 합니다. 또한 아마존의 눈물 1부 '마지막 원시의 땅을 찾아서'는 전국 기준으로 22.5%의 시청률을 기록하여 다큐멘터리 사상 처음으로 20%의 시청률 벽을 깨는 진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한 밤중 방송된 다큐인데도 불구하고 경이롭고 대단한 시청률 대박 대기록으로 다큐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남겼습니다.

아마존 강 유역의 밀림은 면적이 무려 700만㎢ 에 달하는 지구에서 가장 큰 열대 우림지역으로 지구 전체 산소공급량의 20%를 제공하는 지구의 허파로 불릴 정도로 자연의 보고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무분별한 파괴로 아마존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고 이에 대한 인류의 공감대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이번 다큐의 출발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나라 방송이 너무 가벼운 예능 프로그램이나 막장 드라마가 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이번 MBC의 아마존의 눈물과 같은 명품 다큐멘타리도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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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친구 K가 대만 갑부의 외동딸을 만나서 소설같은 사랑을 하게 된 사연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첫번째 이야기가 나간 이후 매일 많은 분들이 다음 편을 기대해 주셨습니다. 이번 최종편은 브라질에서 대만을 거쳐 한국까지 오게 된 이야기입니다. 1부와 2부를 못보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편지'(1부)
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골라'(2부) : 성당에서 둘 만의 결혼식

대만행 비행기를 탄 K와 S는 꼭 축복받은 결혼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대만에서  재력가인 S의 아버지는 외동딸이 사랑을 택해 브라질로 몰래 떠나버린 후 상심해 있었습니다. 이제는 분노 보다는 자신이 반대하는 한국 남자 K를 위해 몰래 야반도주하듯이 브라질로 도망쳐버린 딸에 대한 배신감이 컸습니다.
 
K와 S는 초조한 마음으로 대만에 도착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장인어른과의 만남은 K에게 배수의 진을 친 심정이었습니다. 드디어 K는 S의 아버지 앞에 섰습니다. K는 무릎을 끓고 S의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그 누구 보다도 따님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
"......"

S의 아버지는 이미 엎지러진 물이 되어버린 딸의 사랑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두 사람의 사랑을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K는 타들어가는 심정으로 다시 말했습니다.
"제가 지금은 보잘 것 없지만 따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저희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S의 아버지가 드디어 말문을 열었습니다.
"브라질서 무슨 일을 하며 살고 있나?"
"옷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자네가 브라질에서 옷장사로 최고가 된 후 다시 나를 찾아오게. 그러면 인정해 주겠네."
"예,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K는 장인어른의 제안에 한줄기 희망의 빛을 보았습니다. 자신도 있었습니다. S의 아버지는 자수성가로 갑부가 된 분이었습니다. 순순히 K를 인정해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딸이지만 S가 고생을 통해 뭔가 깨닫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게 K와 S는 대만을 떠나 다시 브라질로 돌아왔습니다. K는 대만으로 떠날 때 보다 더 비장한 마음으로 브라질로 돌아오게 됐습니다.
 
K는 브라질로 돌아오자 마자 더 열심히 "골라 골라"를 외치며 장사에 몰두했습니다. 잠자는 시간 마저 줄여가면서 옷장사에 올인했습니다. 점점 K의 옷가게는 번창해 갔습니다. 당시 브라질의 한인 사회에서도 K의 옷장사로의 성공이 알려지고 있었습니다. 한인들 중에 옷장사를 하는 분들이 꽤 있었는데 K로부터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몰려오기도 했습니다. K는 마음이 넉넉한 친구라서 브라질의 한인들에게 비법 전수는 물론 한인들의 여러 도움 요청을 거절하지를 못했습니다.

브라질에서 K의 옷장사는 성공적인 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습니다. K의 "골라 골라" 다국어 메들리는 성공의 보증수표와 같았습니다. K는 사업이 번창해 갈수록 조금만 더 고생하면 S의 아버지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커지고 있었습니다. S도 사업의 번창에 따라 부모님을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란 희망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일요일에는 둘 만의 결혼식을 거행한 신부님의 성당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영화 'Love Story' 한 장면]

그러나, 불행은 예기치 않게 다시 찾아왔습니다. 잘 나가던 K의 의류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한 순간에 망하게 된 것입니다. K와 S가 그토록 희망을 꿈꾸던 의류 사업이 이렇게 쉽게 무너질 줄 몰랐습니다. K가 너무 한인들을 믿은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K의 옷장사가 성공을 거두자 K에게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접근한 한인들이 사기를 친 것이었습니다. K는 한인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자금들을 쉽게 빌려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들 한인들이 돈을 빌려간 후 만기가 되어도 갚지않고 도피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K의 의류 사업은 한꺼번에 밀려오는 자금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부도가 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K와 S는 슬픔에 잠겼습니다. 이렇게 허무하게 실패한 것도 서러운데 이제는 대만에 갈 수가 없게 되거나, 다시 처음부터 사업을 일으키려면 수많은 세월이 필요할 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좌절과 포기를 모르던 K도 자신감을 잃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패배감일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희망이 사라진 S는 더 힘든 나날들이었습니다.

K와 S는 늘 믿음과 용기를 주던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신부님은 언제나 그러했듯이 K와 S를 위해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잠시나마 K와 S는 신부님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훌훌 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는 용기를 얻어 성당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자 전화가 왔습니다. S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만에 계신 S의 아버지였습니다.
"요즘 몸은 건강하니?"
"네. 아버지."

"왜 목소리가 힘이 없니?"
"아니예요. 아버지가 웬 일로 전화를 주셨어요?"

"사랑하는 내 딸아. 힘들면 힘들다고 왜 말을 못하니?"
"......"
S는 눈물이 날 것 같아 도저히 전화를 받을 수 없었습니다.

[Love Story / Taylor Swift]

"K를 바꿔주라. 딸아."
"네, 접니다. 어르신."

"브라질 생활 정리하고 대만으로 돌아오게."
"네. 아닙니다."

"자네의 브라질 생활을 다 알고 있다네. 의류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도 알고 있고 사업이 부도난 것도 다 알아."
"네. 어떻게..."

"브라질서 사업하는 지인들로부터 소식을 수시로 듣고 있었어. 자네의 사업 수완과 성공을 이미 듣고 있었어. 자네가 최근에 사업이 부도난 것은 자네의 잘못은 아니잖아. 너무 사람 믿지 말게. 그만 내 딸과 함께 대만으로 돌아오게. 자네가 이겼네."
"장인어른...."

K와 S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K와 S는 브라질 생활을 접고 대만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K는 다시 재기해 성공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장인어른은 두 사람의 사랑과 결혼을 인정한 상태이니 고집을 피울 필요는 없었습니다. 더구나 S가  브라질 생활을 힘들어하고 대만의 고향 생각을 많이 해 더 이상 브라질에 머물기는 힘든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S의 아버지는 오래 전부터 두 사람의 브라질 생활을 거의 다 알고 있었습니다. S의 아버지는 브라질의 지인들을 통해 사랑하는 딸이 잘 지내는지 늘 궁금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K의 사람 됨됨이와 사업 수완을 멀리서 지켜봤던 대만의 장인어른은 K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갑작스런 부도로 인해 S가 상심하고 괴로와 하는 모습을 더 이상 못본체 할 수 없었습니다.

대만에 도착한 K와 S는 거기서 새로운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장인어른의 사업에 참여하기 보다는 선교사의 길을 택하기로 했습니다. 장인어른도 같은 종교라서 적극 후원했습니다. S의 아버지는 당분간 두 사람이 홀가분하게 그 동안의 고생을 잊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것이기도 했습니다. K는 대만의 오지를 돌며 선교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K와 S가 심적으로 안정을 찾고 행복한 시간을 다시 보내게 된 셈이었습니다.

몇년의 세월이 지난 후, K는 한국과의 무역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부산과 대만을 오가는 일들이 많아졌습니다. 부산에 머무르는 기간도 많았습니다. 무역사업도 했지만 주말을 이용해 K는 선교사 일도 병행했습니다. K는 무엇이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친구였습니다. 한국 남자 K와 대만 갑부의 딸 S는 브라질서 시작해 대만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사랑과 행복을 함께 했던 것입니다.


[영화 'Love Story' 한 장면]

저는 K가 몇년전 한국에 도착했을 때 대학 1학년때 친구들과 함께 캠퍼스 앞의 주점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K가 대학을 중퇴하고 해외에서 떠돌이 생활을 한지 15년여가 지난 후 처음이었습니다. 그와 밤새도록 그 동안의 해외에서의 삶과 S와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생활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K는 술을 한잔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학 때 주당이던 K가 아니었습니다. 선교활동하면서 술은 완전히 끊었다는 것입니다. K에게 물었습니다.
"야. 그런데 너 어디서 선교를 하냐?"
"주로 술집에서..."


"장난하냐? 술집에서 선교를 한다는 것이 말이 되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 나는 남들이 다 하는 곳 보다는 비록 힘들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곳에서 선교활동을 한단다."

"그런데 술을 한잔도 하지 않고 어떻게 선교가 가능하냐?"
"지금까지 한 잔도 안했잖아. 물 한잔으로 이렇게 있잖아."

저와 친구들은 도저히 K의 말을 믿을 수가 없어 밤새도록 대학교 앞으로 주점을 돌며 K를 시험했습니다. 새벽 5시가 되었건만 K는 여전히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술 한잔도 하지 않았습니다. 겨우 물이나 콜라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친구들이 이미 지치고 졸려서 몸을 가눌수도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K가 한마디 했습니다.

"이래도 못믿겠냐?"
"K야. 우리들이 졌다. 이제 집에 가자."

친구 K의 러브스토리 3부작 최종편은 여기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어떤 분은 요즘같은 현실에 어찌 K와 S의 순수한 사랑이 가능한지 놀라기도 합니다. 그러나 K와 S의 이야기는 사실입니다. 표현상 부족한 부분이 있을 수 있지만 전체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K는 정말 지독한 녀석입니다. 다시 만나면 부산 도착 후 선교 이야기를 들어봐야 겠습니다. 많은 관심을 갖고 K와 S의 국경과 신분을 뛰어넘는 러브스토리를 읽어주신 분들게 감사드립니다. 행복한 5월의 연휴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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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친구 K의 러브스토리(대만 갑부의 딸과 결혼한 친구의 비결 '편지'(1부))가 처음 소개되자 2부를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2부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실제 주인공인 친구 K의 러브스토리는 훨씬 더 감동적인 이야기이지만 세세한 부분들을 표현하지 못하는 점이 아쉽습니다.

한국 남자 K와 대만 여자 S는 브라질 공항에서 곧 다시 만날 것을 맹세하면서 그렇게 애타는 이별을 했습니다. K는 사랑하는 S가 멀리 대만으로 떠난 후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S가 다시 돌아올 것을 믿었습니다.

하루가 한달과 같이 느껴지던 날들이 계속 흘렀습니다. K는 매일 매일이 그리움과 기다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움은 더 애절한 사랑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대만으로 떠난 S의 마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기나 긴 기다림 속에, S가 마침내 브라질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S는 대만으로 간 후, 부모님을 따돌리고 브라질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S는 대만 갑부의 외동딸인지라 부모님은 애지중지 키운 딸이 미국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S가 설마 가난한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져 브라질에 머물기 위해 떠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K와 S는 다시 브라질에서 둘 만의 달콤한 사랑을 키워나갔습니다. 브라질은 사랑에 빠진 K와 S를 위한 지상 낙원과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사이에는 커다란 장벽이 있었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비자가 만료되어 다시 S는 대만을 다녀와야 하는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렇지만, 결혼을 결심한 K와 S에게 만료되는 비자 보다 더 큰 장벽이 있었습니다. 사실 K는 S가 대만 갑부의 딸인지 모르고 그녀를 사랑하게 됐습니다. S도 굳이 자신의 신분을 K에게 밝힐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결심한 이상 S는 자신의 신분을 K에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K는 S가 대만 갑부의 외동딸인 것을 알고나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미 S를 사랑하는 마음은 국경을 초월했지만, K 자신은 가난한 해외 방랑객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K의 마음을 헤아려 자신의 신분을 말하지 못했던 S는 K에게 "부모님을 설득할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켰습니다. 

국경을 넘어, 신분을 넘어 K와 S의 사랑이 결혼이라는 결실로 이어질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S는 다시 비자 만료의 시기가 다가오자, K에게 부모님께 결혼 승낙을 받아오기로 약속하고 다시 이별을 고했습니다. 


[사진]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김태희 김래원 주연)

늘 헤어짐은 K와 S에게 고통스런 날들이었습니다. 이번 이별은 K와 S에게 마지막 도박이었습니다. 무사히 S가 대만의 부모님을 설득해 결혼 승낙을 받아온다면 모르지만 만약 실패하면 두 사람은 영영 이별할 수도 있는 결단이었기 때문입니다. K는 불안한 마음으로 브라질 공항에서 또 다시 S를 멀리 떠나보냈습니다. K는 멀어져가는 비행기를 보면서, 그 동안 S를 처음 만난 때부터 함께 즐거웠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K는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S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에 지쳐갔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런 시간이 지났을까. 드디어 S가 브라질로 돌아왔습니다. K는 너무나 기뻤습니다. 그리고 결혼 승낙을 받았는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부모님께 결혼 승낙은 받았어?"
"아니. 그냥 도망왔어."

슬픈 표정으로 S가 대답을 하자, K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렇게 헤어져야 하는 거야."
"K야. 우리 브라질서 함께 살자. 우리 둘이 사랑하면 되는 거잖아."

소설이나 영화와 같은 그들의 운명적 사랑은 아무도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대만으로 가서 결혼 승낙을 받아오려고 했던 S는 아버지의 엄청난 분노와 반대에 직면했고, 그대로 도망치듯 브라질로 건너올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만일 시일을 지체하다가는 아예 대만에 붙잡혀 생이별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떤 갑부의 아버지가 소중한 외동딸을 가난한 외국 남자에게 시집가라고 흔쾌히 허락을 해줄까 싶기도 합니다.)

K와 S의 사랑은 국경이나 신분의 장벽이 가로막을 수록 더 깊어만 갔습니다. 두 사람은 브라질에서 둘 만의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잘 알고 지내던 신부님에게 부탁을 해서 브라질의 모 성당에서 둘 만의 결혼식을 가졌습니다. 비록 초라한 결혼식이지만 두 사람은 행복을 키워나가면서 대만의 부모님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제 K와 S에게 필요한 것은 빨리 경제적인 자립을 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K는 독창적인 사업을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이미 K는 한국에서부터 아르바이트를 두루 섭렵했고, 해외에서도 여러가지 장사를 해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K가 시작한 사업은 밑천이 적게 드는 옷장사였습니다.

K는 기발한 발상으로 옷장사를 했습니다. K는 브라질에서 "골라 골라~ 어저씨도 골라~ 아줌마도 골라~ 한벌에 5천원~" 이런식으로 외쳐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남대문시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지만 브라질에서는 신기한 장면이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니었습니다.

K는 "골라 골라"를 브라질어(포루투갈어)는 물론 한국어 중국어 영어 등으로 돌아가며 외쳤습니다. 한 마디로 '골라 골라'의 다국어 버전 메들리였습니다. 또한, 대학 1학년 시절에 K의 주제곡인 CM송 메들리가 브라질에서 '골라 골라' 다국어 메들리로 승화한 셈이었습니다.

신기한 옷장사를 본 브라질 사람들은 K에게 옷을 사기 위해 몰려 들었습니다.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K는 짧은 기간 동안에 어느정도 돈을 벌었습니다. K와 S는 돈도 벌고 결혼 생활도 즐겁기만 했습니다. 이제 K와 S는 브라질의 사람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브라질에 사는 한국인 사회에서도 K의 장사 수완이 알려지면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K는 경제적으로도 어느정도 자립의 기반을 다졌지만, 축복받은 결혼생활에 대한 갈증이 커져 갔습니다. S는 K와 함께 있을 때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S는 혼자서 대만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슬퍼하는 모습을 보인곤 했습니다. K는 가슴이 아팠습니다. K는 S와 함께 대만을 다녀오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K와 S는 무겁고도 장엄한 심정으로 대만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반드시 대만의 장인어른을 설득하겠다고 마음먹은 K는 비장했습니다.

[친구 K의 러브스토리 2부를 마치면서]
K의 러브스토리가 여러 국가를 망라한 이야기이고 결혼 후에도 우여곡절이 많아서 마지막 3부로 끝내야 할 듯 합니다. 지금까지는 브라질에서의 생활이었고 마지막 스토리 완결편은 브라질, 대만, 한국에 이르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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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에 대학 동창 모임이 있었습니다. 졸업 후 20여년만의 모임이라 친구들의 근황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미 중년의 나이에 모이니 친구들에 대한 소식이 그리움으로 다가섰습니다. 모로코 카사블랑카에 사는 친구나 기사 딸린 고급차를 타고다니는 사모님이 된 동창의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 날의 단연 최고 이야기는 대만 갑부의 외동딸과 결혼한 친구의 사연이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어 그 날 참석은 못했지만 동창 K의 결혼 스토리는 압권입니다. K의 사연은 약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K는 고향이 부산입니다. 부산에서 상경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게 됐습니다. K는 모든 모임을 주도하는 연예인적인 기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K가 대학MT나 모임에서 선보인 노래는 그 날 이후 공식 지정곡이 될 정도였습니다.

K의 대표적인 레파토리는 CM송 메들리였습니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자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콘~~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칩~~~ 농~심~ 크레오파트라~~~ 드세요~ 농~심~ 크레오파트라~   " 1980년대를 풍미하던 CM송의 일부를 메들리로 계속 이어지게 만든 곡들입니다. 80년대의 대학가는 군사독재 타도의 분노가 넘쳐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낭만이 있었습니다. 비록 소주 한잔의 추억 속에서 노래를 부르더라도 장엄한 서사시의 투쟁가가 있었고 한편으론 낭만의 곡들이 있었습니다. CM송 메들리는 그 중간의 흥겨운 화합의 노래였습니다. 

CM송 풀 메들리 80년대  사례

온 세상에 울리는 말고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 영-창

열두시에 만나요 부라보콘 둘이서 만나요

부라보콘 살짝쿵 데이트
부라보콘------살ㅡ짝-쿵 데이트

해태 부라보 콘

손이가요 손이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어른손 아이손 자꾸만 손이가

언제든지 새우깡 어디서나 맛있게

누구든지 즐겨요 노옹심! 새우깡!!

비비 비벼보자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ㅡㅡ (두손으로 비벼도 되잖아!)

ㅡ팔도 비빔면

아름다운 아~가씨 어찌그리 예쁜가요

----------------아아아아아아아 아카시아 껌
아아아 아아아아----------------아카시아 껌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 칩 (포테이토 칩)
생감자로 만든 포테이토 칩

---------------아아아아아-----------농심농심
농심 크레오파트라---------드세요 농심-------

크레오파트라

쵸코가 외로워 쿠키를 찾네 쵸코친구 쿠키친구

쿠키가 외로워 쵸코를 만나네 오리온 쵸코칩쿠키

오리온 쵸코칩쿠키 쿠키 이이!!!

이상하게 생겼네 롯데 스크류바

삐익삐익 꼬였네 들쑥날쑥해

사과맛 딸기맛 롯데 스크류바

쥬시후레쉬 후레쉬민트 스피아민트

오 롯데껌 좋은 사람만나면 나눠주고 싶어요

껌이라면 역시 롯데껌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손에 담아 드려요 오란씨

아름다운 날들이여 사랑스런 눈동자여

오오오오 오 오 오 오란씨

으쌰으쌰 어기여차 재미로 먹고 맛으로 먹는

오리온 고래밥 오리온 고래밥

오리온 고래고래고래고래 밥! 헤이!!

대학 1학년을 끝마치고 어느 날, K가 대학을 중퇴하고 해외로 떠났습니다. 독재의 그늘을 벗어나 해외로 망명한 듯한 히피가 되었습니다. 처음에 일본으로 건너갔다가 이어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는 놀라운 재주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마련해 떠난 도피 자금으로 다른 나라에서 물건을 팔아서 돈을 모아 다른 국가를 방랑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 국가의 언어를 배웠습니다. 해외 여행을 꿈꾸기 어려웠던 그 당시에는 매우 희귀한 변신의 천재였습니다.

그러나 K는 미국을 떠나 다시 브라질로 갔습니다. 그는 낮에는 중국집에서 일하고 밤에는 중국어학원에서 중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러다 K는 중국어학원에서 그녀(이하 S)를 만났습니다. S는 미국에 유학 중인 대만 출신 여대생이었습니다. S가 방학 기간 동안에 브라질에 여행을 왔다가 잠시 중국어학원의 임시 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K는 첫 눈에 S에 반했습니다.


[사진] 영화 '러브스토리' (1996년작, 배창호 감독)

K의 중국어는 이제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S에게 뭔가 중국어로 말을 하고 싶지만 그럴 만한 실력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날 부터 K는 중국어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중국어 실력으로 편지를 쓰는 일은 여간 힘든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밤새도록 중국어로 편지를 썼습니다. 한 숨도 안자고 정성을 다해 한 통의 편지를 쓰고나면 이미 동이 트고 있었습니다.

동이 트면 K는 자건거를 타고 S가 머물고 있던 숙소를 향해 달렸습니다. S의 숙소에 편지를 넣어두고 다시 중국집으로 가서 일을 했습니다. 저녁이 되면 중국어학원에서 S로부터 중국어 수업을 받았습니다. S는 편지를 받았지만 모른체 눈길도 주지않고 수업만 했습니다. K는 다음 날도 편지를 썼고 새벽이 되면 S의 숙소에 편지를 놓아두고 왔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K의 편지에 S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게다가 새벽 마다 자신의 숙소에 편지를 놓고 도망가듯 자전거를 타고 돌아가는 K를 본 S는 '한번 만나 주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한국 남자 K와 대만 여자 S의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둘은 만나는 동안,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눈빛으로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만남이 지속되면서 S가 오히려 더 K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S는 사랑하는 K를 위해 브라질에 아예 머물러 버렸습니다. 그러다, S는 비자가 만료되어 브라질을 떠나야 했습니다. 브라질의 공항에서 둘은 약속했습니다.
"다시 돌아 올게. 조금만 기다려."
"언제까지나 그대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그렇게 둘은 뜨거운 포옹과 함께 브라질 공항에서 이별을 했습니다.

[참고] K의 러브스토리에 대해
K와 S의 러브스토리는 조금 길기 때문에 여기서 1부는 마치겠습니다. 다음 2부를 기대해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로, K와 S의 러브스토리는 K를 몇년전 만나서 밤새 전해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일부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사실에 근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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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