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08 위험한 가족과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담배 피운 사장님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41)
  2. 2009.04.12 하늘나라 천국우체국의 감동을 아시나요?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
  3. 2009.02.12 군대 간 아들이 사준 장갑을 찾는 모정 by 진리 탐구 탐진강 (7)


이맘 때가 되면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몇년전 일입니다. 예전 사장님과 있었던 일입니다. 저는 사장님을 비롯한 몇 분과 업무차 시내에서 만났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고 사장님이 즐겨가던 라이브 연주를 하던 카페로 향했습니다. 사장님은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애연가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길거리에 모두 나왔는데 담배가 없었습니다. 저도 담배가 떨어졌고 사장님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담배를 사러 나섰습니다. 당시 우리 일행이 함께 있던 장소는 낯선 곳이라서 담배 가게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한참을 주변을 헤매야 했습니다.

결국 담배 가게를 찾았고 담배 두 갑을 샀습니다. 담배를 기다리는 사장님을 물론 일행들을 생각해 그 장소로 뛰어갔습니다. 그러다 삼거리를 만났습니다. 잠깐 삼거리에서 길이 헷갈렸습니다. 길을 뛰어가다 순간 멈칫했는데 갑자기 왼쪽 발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땅바닥에 주저앉았습니다. 왼쪽 발이 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너무 통증이 심했습니다. 도저히 일행이 기다리는 장소로 가기는 무리인 듯 했습니다. 지나가는 택시를 타고 그냥 집으로 가야할 것 같았습니다.



도로를 지나가는 택시를 붙잡기 위해 고통 속에서 잠시 고민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일행에게서 휴대폰 전화가 왔습니다.
"왜 안오나요? 한참을 길거리서 기다리고 있는데..."
"예, 지금 담배를 사서 가고 있습니다."

휴대폰 전화를 받고나니 몰래 집에 가는 것이 미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일행에게 가고 있다고 답변을 했습니다. 너무나 큰 통증으로 인해 일어설 수 없지만 한쪽 발에 온 힘을 다해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한쪽 발은 겨우 끌면서 다시 일행들에게 갔습니다. 그 짧은 거리가 너무 힘든 고통이었습니다.

사장님에게 어렵게 사온 담배를 건넸습니다. 그리고 우리 일행들은 라이브 카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다리는 여전히 아팠습니다. 누군가 얼음 찜질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중간에 폭탄주 몇잔이 돌았습니다. 마셨습니다. 그런데 술기운에 아픈 다리에 대한 기억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다 사장님이 직접 라이브 연주를 했습니다. 누군가 스테이지로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몸치이지만 춤을 췄습니다. 어느새 고통도 사라진 듯 했습니다.

그렇게 즐거운 저녁을 보냈습니다. 집에 갈 시간이 되었고 택시를 탔습니다. 여름날 밤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잠이 들었습니다. 사실 아내는 맹장 수술로 병원에 입원 중이었습니다. 아침에 잠이 깼는데 너무 발이 아팠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다리가 삔 것 같아 한의원에 가야할 것 같다'고 말했더니 아내는 골절일 수 있으니 병원으로 오라고 했습니다. 그 날은 쉬는 토요일이었습니다. 첫 째 딸과 함께 병원에 갔습니다.

 아내가 병실에서 환자복을 입고 1층으로 나왔습니다. 딸은 아빠를 위해 병원 휠체어를 밀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의 사람들이 전부 지나가는 우리 가족을 쳐다보는 눈길을 느껴졉습니다.

 잠시 우리 가족을 살펴보니 전부 환자였습니다. 저는 다리를 다쳤고 아내는 링겔병을 꼽고 어기적 걷고 있는 환자였습니다.

 아뿔싸, 또 있었습니다. 큰 딸은 얼마 전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 얼굴에 대형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습니다. 그런 딸이 아빠의 휠체어를 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링겔병을 꼽고 환자복을 입은 상태로 곁에서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함께 걷는 우리 가족 모두는 환자였던 셈입니다. 그러니 병원에 찾아온 사람들에게는 우리 가족이 얼마나 웃기는 상황이었겠습니까. 한 마디로 '위험한 가족'이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 가족이 휠체어를 밀며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습니다. 가족 모두가 교통사고로 입원한 것으로 착각할 만도 했습니다.


의사의 진찰을 받았습니다. 엑스레이도 찍었습니다. 의사는 왼쪽 다리의 발바닥 끝에 있는 뼈가 골절이라고 했습니다. 제 다리는 삔 것이 아니라 부러진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옳았습니다. 그 이후 왼 발에 기브스로 하고 목발을 짚고 다녀야 헸습니다.

회사에서 월요일에 인사부장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하루 휴가를 낸 상황이었습니다. 인사부장은 제게 어떤 상태인지 물었습니다.
"다리를 다친 것으로 아는데 어떤 상태인가요?"
"일명 댄서 골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날 목발을 짚고 출근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저를 보면 "춤추다 다리가 부러졌다면서요?"라고 했습니다. 인사부장은 일명 댄서 골절을 춤추다 다친 것으로 이야기를 한 모양입니다. 사실은 그것이 아닌데 해명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사장님은 목발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신도 다리를 다친 적이 있어 목발 사용법을 잘 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장실로 함께 갔습니다. 사장님이 담배를 한 대 건네며 한 마디 했습니다.
"난생 처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담배를 피우게 됐네."
"어쩌다 그런 셈이네요." (함께 웃음)

세계에서 가장 비싼 담배는 얼마일까?

몇년전 다이아몬드와 루비가 박혀있는 세계 최고 가격의 담배가 공개되어 큰 관심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약 1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담배를 제작한 곳은 1871년부터 '럭키스트라이크'로 유명한 BAT 담배회사에서 제작한 것입니다.

담배 겉면은 18캐럿 화이트 골드, 루비, 대형 다이아몬드 등으로 담배갑에 뒤덮여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한화로 1억 원이라는 사실에 놀라던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명품들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이 알려진 후에는 수긍을 하는 분위기로 꼭 진기한 세계에서 가장 고가의 담배를 보고 싶다는 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황당하게 다리가 골절되고 위험한 가족으로 몰린 일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담배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담배였습니다. 저는 아직도 사람들에게 춤추다 다리가 골절된 것으로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실제 의료계에서는 해당 골절의 최초 보고는 댄서가 골절한 것으로부터 골절명이 정해졌다고 하니 뭐라 이야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기는 합니다. 앞으로 건강에 더욱 신경써야 겠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뼈가 약해지다보니 사소한 일에도 다리나 팔이 골절되는 일이 발생하나 봅니다.

그런데, 아래 사진은 담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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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돌아가신 장인 어른의 기일을 앞두고 충북 제천에 있는 납골당에 다녀왔습니다. 장모님과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함께 3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타고 오전 이른 시간에 출발을 했습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초여름 날씨이고 고속도로가 봄꽃 구경 행락객들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해 다소 힘든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납골당에 모셔진 어르신을 뵈러 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아이들도 힘들지만 잘 참아주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이전에 장인 어른은 이미 돌아가신 터라 생전의 모습을 뵌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결혼 후 장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 벌초하러 가면 낫질에 일가견이 있던 저는 열심히 묘지의 잡초와 잡목들을 제거하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장모님은 당신의 남편을 위해 뻘뻘 땀흘리면서 쉴새없이 낫질을 하는 사위가 듬직하게 느꼈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지난해 장인어른의 묘소가 재개발 지역이 되면서 지금의 납골당으로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지 벌써 15년이 넘었습니다.

장모님의 상념과 눈가에 비친 이슬 방울

지난해 당시는 바쁜 업무로 인해 찾아뵙지 못했기에, 올해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납골당을 찾게 된 것입니다. 장모님은 장인 어른이 돌아가신지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장인 어른을 찾게 되면 여전히 깊은 상념이 드시나 봅니다. 아이들과 사위들도 있어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려 애쓰시지만 어느새 장모님은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가족들이 함께 납골당에 모셔신 장인 어른의 자리에 꽃장식도 새로 하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가족 예배도 드렸습니다.


가족들과 일정을 끝마치고 납골당을 나오다가 특별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천국우체국 우체통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하늘나라로 보내는 글을 쓸 수 있는 공책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는 없지만 그리운 하늘나라의 사람들을 위해 천국우체국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천국우체국으로 가는 우편함 앞에서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결혼하면 장인어른과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을 꿈꾸었는데 비록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의 아내와 딸이 사위와 함께 잘 살고 있으니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켜보시라'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천국우체국 우체통 옆의 벽에는 꽃잎편지라는 시 구절이 붙어 있었습니다.


사실 납골당에 오기 전 까지는 천국우체국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일반에도 천국우체국과 같은 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살펴보니, 전국의 주요 납골당에는 천국우체국과 같은 곳을 마련하고 있고 사이버 공간에도 서울시의 추모의집을 비롯한 여러 하늘나라우체국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람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그리움과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배달되지 않는 하늘나라우체국의 편지이겠지만 그 간절한 마음은 하늘로 닿아 통하지 않을까 기원해 봅니다.

가슴 뭉클한 사연과 애절한 그리움

잠시 둘러 본 하늘나라우체국에는 가슴을 저미는 그리움을 담은 여러 사연들이 가슴뭉클하고 눈시울을 젖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어머니는 거의 매일 딸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었고 너무나 애틋하고 애절한 사연이라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찡하게 했습니다. 
보고싶은 딸아

잘 지내지.
어저께 까지 쌀쌀하더니만 오늘은 덥다는 생각이 든다.
온도차가 심한 요즘 건강한지.
너무 보고싶어 견딜수가 없어.
일하다가도 문득문들 네 생각에 눈물이 난다.
건강해야 돼. 그렇게 힘들어 했으니 하늘나라에서는 건강하게 하고싶은 일 하면서 마음껏 보내.

이별이란게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가슴아플까.
점더 잘해줄걸.많이 사랑해줄걸.이별후에야 후회하는 바보같은 엄마였구나.
먹고싶은것 실컷 사 주지도 못했고 갖고 싶은것 다 해주지도 못헀는데
이렇게 쉽게 이별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니?
너무나 긴 병원생활에 한없이 지쳐서 힘들어하던 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눈물이 흐른다.

그래도 꿋꿋하게 잘 참아내던 우리 딸이었는데 엄마가 잘 지켜줘야 했는데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다음에 만나면 못해준 사랑 듬뿍 주련다.
엄마 용서해. 그리고 웃는모습 꿈속에서라도 보고싶어.
딸~아 딸~아 사랑해.

먼저 아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남편이 띄운 담담한 사연은 얼마나 두 부부의 사랑이 아름답고 깊은지 느껴지는 가슴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내에게

어느덧 4월하고도 중순이 다가오네.
잘 지내고 있지..오랜만에 오네..
시간이 이리도 잘 가는지..잡고만 싶어...
당신이 나를 잘 이해해 주고 ..
너무 고마워 ..나만 그리 생각하는 거 아니지...
알지..난 항상 ..아니. 영원히 두 딸만 바라보며 살 거라는 거..

이래야 내가 굳게 맘을 먹을거 같아..핑계라도 좋아..
아니 절대 핑계가 아니라는거 알아줬으면 해..
실수하지 않는 실수를 그래도 맘 단단히 먹고 ..
잘지켜가며 살께.. 미안한 맘은 평생 간직하고 살께..
미안함을 더 이상 안하게끔 할께..

울 딸들 잘키울께...중3이 된 큰 애도 ..열심히 하는거같아..
막내역시도..한차례 혼나고 아빠맘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너무 불쌍하지만 ..강하게 키우려면 ..어쩔수없잔아..
이제 5년생인대..자신이 알아서 ..해야지..물론..뒷바침은 잘 할께..

처형네나 처제..처가집 아버님 어머님..처남..
요즘은 통 연락을 못하고 사네..
내가 먼저 해야지...아무래도 ..
당신보내고...우리랑 연락 자주하면 많이 생각날까 ..그런 걱정도 들어..
서로 그런것 같아..하지만..알잖아..당신과약속..
평생 아버님 어머님으로 모시며..살 거라고...가까이..많이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울 하늘 아래 사는 동안.. 그렇게 살거야...
항상 우리가족들...잘 될 수 있게...도와줘...
아버님 한테도 가봐야하는데.. 나같은 아들도 없을 거야...죄송할 뿐이야..
당신한테도 담주에 갈께...
잘 지내고...
또 올께..

사랑해...나 죽는 그 날까지..
당신밖에 없다...
잘자....미안하구.

하늘나라에 있는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여러 편지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한 사연들을 읽다보면, 우리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진지하고 숙연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 하나의 사연들이 감동으로 밀려와 눈물이 자꾸 흐를 듯 하여 애써 참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행복과 사랑의 우리 인생



장모님이 납골당에서 하신 말씀이 뇌리에 남아 맴돌곤 합니다. 자식들이 미리 준비한 장인 어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젊은 사진을 준비했어? 그러면 나는 늙어보이잖아." 장모님은 첫 사랑과 결혼하신 후 시집살이도 심하게 하셨고 일찍 장인 어른을 떠나보내시고 홀로 자식들을 키우시면서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면 당신의 남편에 대한 원망도 있을 법한데, 장인 어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히 그 당시 젊은 시절의 마음 그대로 남아계신 것 같았습니다.
 
하늘나라로 보내는 애절한 사연을 담은 천국우체국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영원한 이별과 그리움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애절한지 모릅니다. 서로 미워하고 노여워하고 살기 보다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하루 하루를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복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서로 사랑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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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랫만에 휴대폰의 사진을 정리하다가 눈길을 잡는 사진 한장이 있었습니다. 지난 1월 언젠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붙어있던 공지사항이었는데 우연히 찍어둔 것이었습니다.

사진의 내용을 살펴보니 장갑을 분실한 어떤 어머니의 애틋한 사연이었습니다. 군대 간 아들이 어머니에게 가죽 장갑을 선물했는데 어머니가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장갑을 찾습니다"이라는 제목으로 시작된 글은 "군에 간 아들이 사준 가지색 가죽장갑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들의 사랑이 듬뿍 담긴 너무나 소중한 장갑입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색상까지 고려해 정성껏 작성한 내용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머니는 군대에 간 아들이 사준 가죽 장갑이어서 너무나 소중한 선물이었던 것입니다. 단순히 장갑의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군대에 간 아들이 차가운 겨울철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사준 장갑은 어떤 물건 보다도 소중히 간직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사연이라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아들도 어머니를 위해 장갑을 선물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따뜻한 효자인 듯 합니다.

지금은 아파트내 공지사항의 내용이 없어진지 오래되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아내와 두 딸에게 그 사연에 대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봤더니, 장갑을 찾았는지는 모른다고 합니다.

군대에 간 아들이 사준 가죽장갑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심정이 얼마나 안타까울까 생각하면 부디 장갑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봅니다. 그래도,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은 주위 사람들을 훈훈하게 합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언제나 가슴을 따뜻하게 합니다.

강원도 양구까지 면회 온 어머니, 눈물만 흘리고 그냥 돌아간 그 시절
저도 군대시절에 어머니 생각을 하면 가슴아픈 사연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머나먼 남쪽에서 산 넘고 물 건너 몇일동안 강원도 양구의 오지까지 아들 면회를 온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도 1988년경일 것입니다. 겨울이었는데 얼마나 힘드셨겠습니까?

그런데 저는 DMZ 수색대(민정경찰) 비무장지대 근무라서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연대 본부에서 비무장지대의 비밀 막사로 전화가 다행히 연결되었습니다. 겨우 전화 통화만 했는데 아들 걱정을 하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어머님께 "걱정마세요. 밥 잘 먹고 몸 건강히 잘 있어요."라고 안심을 시켜드리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 통화 도중 저는 약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싫고 고참들의 눈치를 보느라 억지로 눈물을 삼키면서 겨우 참았습니다.

그 후 저는 막사 뒷편의 후미진 곳에서 혼자 소리죽여 한참동안을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머니는 아들 때문에 평생을 산골에서 거의 홀로 농사와 살림을 전담하시면서 고생하신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는 한량이셨고 성격이 불같아 어머니는 오직 일만하시고 자식들 뒷바라지만 하신 일생이셨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저를 위해 맛있는 음식과 떡 등을 정성껏 준비해 오셨는데 저에게 전달이 되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군대내 누군가 배달 사고를 친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를 못 만난 것도 서러운데 소중한 어머니의 정성이 담긴 음식을 빼돌리는 인간들이 있었다는 것에 또 한번의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지금은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때는 쫄병이었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너무나 서러웠던 기억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을 보니 갑자기 저의 옛기억이 지나갑니다. 군대 시절에는 어머니가 더욱 그리워지곤 했습니다. 더구나 차가운 겨울철에는 더욱 어머니가 만들어준 밥 한 공기가 그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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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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