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3.25 결혼 반대한 장모, 왜 밥 잘먹는 남자 좋아할까? by 진리 탐구 탐진강 (62)
  2. 2009.04.18 60년 전통 송학반점에서 장모님에 효도하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7)
  3. 2009.04.12 하늘나라 천국우체국의 감동을 아시나요?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


얼마 전, 미국에서 여행온 아내의 이모님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아내가 나중에 하는 이야기가 이모님이 아주 칭찬을 자자하게 했다고 합니다. 이유가 뭔지 물어보니 밥 먹는 모습이 듬직하고 사랑스럽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보니 문득 결혼 당시의 힘든 과정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사실 제가 지금의 아내를 만날 당시에 보잘 것 없었습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지만 일반적으로 따지는 결혼 조건에는 턱없이 부족한 남자였습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제게 끊임없이 맞선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미 앞서 제 글을 읽으신 분들은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 첫 눈에 반한 여자를 우연히 만났습니다. 처음 본 순간, 그냥 마음이 끌렸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 저녁 술자리가 잦았지만 도중에 탈출(?)해 그녀의 집 앞에 찾아가 만났습니다. 중간 과정은 생략하겠습니다.  

저와 여자는 매일 만나는 동안 어느새 서로 사랑의 감정이 싹텄고 저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의 장모님이 당신의 딸이 만나는 남자를 우연히 목격하게 됐습니다. 어떤 놈팽이가 술에 취해 몸도 못가누고 딸의 부축을 받으며 여관 골목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당시 저는 업무상 1차 술자리가 있었지만 빨리 마치기 위해 너무 속도를 낸 탓에 과음한 상태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날도 그녀를 만나기 위해 늘 만나던 호프집에서 맥주 한 잔에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자는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던 저를 부축해 여관에 넣고 나온 과정을 고스란히 어머니에게 들켰던 것입니다. 그 날 이후 여자의 어머니는 놈팽이를 그만 만나라고 불호령을 내렸습니다. 여자는 눈물겨운 단식 투쟁을 했습니다. 여자는 남자가 비록 가정형편을 비롯해 결혼 조건은 그다지 좋지 않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성실한 모습이 좋았습니다. 여자는 어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습니다.

"엄마, 그 남자 놈팽이 아니야. 매일 업무가 많아서 피곤한데 업무상 술자리 빨리 끝내고 나 보고싶어 왔다가 쓰러진 거야"
"아무리 그렇다고 술취해 몸도 못가누고 비틀거리는 남자는 절대 안돼."

"그러면 한번만 그 남자 만나봐. 그 후 판단해도 되잖아."
"만날 필요 없어.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는 거야. 안된다면 안된다. 다시 이야기도 꺼내지 마라."

저는 어머니 마음을 돌리기 위해 몇가지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우선 여자의 언니를 든든한 지원군으로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어머니가 절친한 약국집 부부를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 후 애주가인 약국집 아저씨와 별도로 약주를 대접하면서 마음을 얻었습니다. 특히나 약국집 아저씨는 전 직장이 저와 같아 빨리 친해졌습니다. 당시 여자의 어머니는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홀로 딸들을 키우는 동안 약국집 부부와 이웃 사촌으로 친하게 지내고 있었기에 약국집 부부 마저 우군으로 만든 것은 결정적 반전의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여자의 어머니와의 마지막 담판이 남아 있었습니다. 다소 누그러진 어머니와 식사를 하면서 만남의 자리가 성사됐습니다. 저와 여자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여전히 남자에 대한 이미지는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어떤 부모가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길거리에서 인사불성이 된 놈팽이가 당신의 딸과 결혼을 쉽게 허락하겠습니까?



드디어 여자의 어머니와의 만남의 시간이 됐습니다. 사전에 마음의 준비와 시나리오를 생각하고 왔지만 만나는 순간 머리 속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사실 여자의 가문은 제천에서 대대로 유명한 부잣집이었지만 할아버지에 이르러 다소 몰락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런 집안의 며느리였던 어머니는 카리스마가 넘쳤습니다.

"양친은 무슨 일 하시나요?"
"시골에서 농사짓습니다."

대화가 몇마디 오가는 동안 식사가 나왔습니다. 다소 긴장한 탓인지 반가운 식사였습니다. 무엇엔가 열중할 수 있는 식사 시간이 그렇게 끝났습니다. 저는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생각도 나지 않지만 마음 속에 품었던 생각을 말했습니다.

"따님과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비록 가진 것 없어도 따님을 행복하게 할 자신이 있습니다."
"....(침묵)...."

여자의 어머니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저는 타들어가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이 끝나고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여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가 만나보니 괜찮다고 했어. 깔깔깔."
"그래. 정말이야. 아무 말씀도 없어 걱정했는데."

"밥 잘먹는 모습을 보고 좋았대. 나 굶겨죽이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나. 대화를 나눠보니 듬직해 보였고,"
"이제 안심이다. 그 동안 마음 고생 많았지. 수고했어."

그랬습니다. 여자의 어머니는 밥 잘먹는 남자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성실하고 진실성있는 남자의 말이 듬직해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그 때 긴장을 좀 해서 밥먹는데 집중이 더 잘 됐고 평소에 비해 말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습니다. 그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하니 지금도 살짝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 후 일사천리로 결혼을 위한 준비가 시작됐습니다. 결혼 후 장모님은 저를 가장 좋아하는 사위라고 합니다. 아내는 어머니가 저를 편애한다고 하실 정도입니다.

저는 반찬 투정을 하지 않습니다. 신혼 시절 아내의 음식 솜씨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무조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시골 어머니가 아버지의 반찬 투정에 마음 고생하시던 모습을 보고 저는 절대 반찬 음식 투정하지 않겠다는 다짐하곤 했기 때문입니다. 아내도 자신은 저를 만나기 전까지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요리나 음식에 대해 배울 생각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맛있게 밥먹는 모습이 너무 고마웠다고 지금도 말합니다. 물론 아내도 지금은 음식이 많이 늘었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던 터라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결혼 이후 부터입니다.

지난 화이트데이에 장모님에게 선물을 드렸더니 활짝 웃으며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O서방, 고마워. 우리 집 큰 아들 같아. 듬직해."
"헤헤. 약소한 선물인데요, 뭘."

어르신들이 사윗감 판단에 밥 잘먹는 남자를 좋아하는 이유
- 건강하고 믿음직해 보인다
- 반찬 투정 안해서 딸이 음식 때문에 고생하지 않을 것 같다
- 성격이 무난하고 자신감있어 보인다
- 무슨 일이든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잘할 것 같다
- 어른들에게 예의바르고 가족을 잘 챙길 것 같다
- 밥 잘먹으면 집안에 복이 들어온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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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최근 충북 제천에 갔을 때 점심 식사를 한 송학반점이라는 중국집이 특이해 소개할까 합니다. 송학반점은 40여년전 장모님이 제천에 사실 때에도 있었다는데 역사만 60여년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장모님은 원래 고향은 진주이신데 18살 꽃다운 나이에 공군 장교이시던 장인 어른과 결혼해 제천에서 사셨습니다. 장인은 이미 고인이 되셨기에, 장인 어른의 납골당이 있는 제천에 오면 장모님은 여러가지 상념이 드시나 봅니다.

우리 가족들은 물론 제천에 사시는 친지 분과 함께 송학반점을 찾았습니다. 장모님은 옛날 생각이 나셨는지 가보고 싶다고 해서 모시고 간 것입니다. 한자로 크게 쓰여진 '송학반점'이라는 간판이 붉은 색 바탕에 금색 글씨로 되어 있었습니다. 대개 붉은 색과 금색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색상이라는 점에서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집이 아닌가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사실 60여년 이상 한 곳에서 중국집을 운영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는 대를 이어 가업으로 장사를 한다는 것인데 그 만큼 음식의 맛은 물론 인심을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송학반점의 출입문 앞에는 '開門見喜(개문견희)'라는 글씨와 함께 중국풍의 왕의 모습을 한 인물이 그려진 그림이 붙어 있었습니다. 송학반점을 수호하는 부적과 같은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개문견희는 문을 열고 기쁨을 즐겨보라는 뜻이 아닌가 싶습니다.

첫번째 중식은 돼지갈비라는 음식입니다. 돼지갈비를 튀겨서 마늘을 잔뜩 섞어 버무린 음식이었습니다. 처음 먹어보는 돼지갈비인데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특이한' 중국 음식이었습니다.

다음은 탕수육인데 서울에서 먹는 것 보다는 더 진한 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물잡탕입니다. 다양한 해산물을 요리한 것인데 나름대로 특별한 맛이 있었습니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도 맛있게 먹었습니다. 특히나 장모님이 모처럼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맛있게 드시니 모두가 행복한 마음이었습니다. 게다가 소주와 함께 즐기는 중국음식이 안주로서도 별미였습니다. 가끔씩 소주 한두 잔을 하시는 장모님도 이 날 만큼은 기분이 좋으신지 몇 잔째 사위와 잔을 부딪쳤습니다. 제가 일찍 계산대로 나가서 전체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장모님께서는 눈치를 채고 나오셔서 "이러면 안돼지. 이건 내가 사야 하는 건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제가 사위로서 처음으로 장인 어른을 위해 사위가 사는 겁니다.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라고 말씀드리자 장모님도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한편으로 장모님은 고마워하는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당신의 남편인 장인 어른을 일찍 하늘나라로 보내시고 홀로 자식들을 키워오신 장모님은 오늘 만큼은 사위가 큰 아들 마냥 사랑스럽게 느껴지셨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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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돌아가신 장인 어른의 기일을 앞두고 충북 제천에 있는 납골당에 다녀왔습니다. 장모님과 아이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모두 함께 3대의 자동차에 나누어 타고 오전 이른 시간에 출발을 했습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초여름 날씨이고 고속도로가 봄꽃 구경 행락객들로 인해 교통체증이 심해 다소 힘든 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처럼 납골당에 모셔진 어르신을 뵈러 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아이들도 힘들지만 잘 참아주었습니다.

제가 결혼하기 이전에 장인 어른은 이미 돌아가신 터라 생전의 모습을 뵌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결혼 후 장모님을 비롯한 가족들과 벌초하러 가면 낫질에 일가견이 있던 저는 열심히 묘지의 잡초와 잡목들을 제거하곤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장모님은 당신의 남편을 위해 뻘뻘 땀흘리면서 쉴새없이 낫질을 하는 사위가 듬직하게 느꼈졌다고 합니다. 그러다 지난해 장인어른의 묘소가 재개발 지역이 되면서 지금의 납골당으로 모셔지게 되었습니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지 벌써 15년이 넘었습니다.

장모님의 상념과 눈가에 비친 이슬 방울

지난해 당시는 바쁜 업무로 인해 찾아뵙지 못했기에, 올해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납골당을 찾게 된 것입니다. 장모님은 장인 어른이 돌아가신지 세월이 많이 지났지만 장인 어른을 찾게 되면 여전히 깊은 상념이 드시나 봅니다. 아이들과 사위들도 있어 눈물을 보이지 않으시려 애쓰시지만 어느새 장모님은 눈가에 이슬이 맺힙니다. 가족들이 함께 납골당에 모셔신 장인 어른의 자리에 꽃장식도 새로 하고,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보내실 수 있도록 가족 예배도 드렸습니다.


가족들과 일정을 끝마치고 납골당을 나오다가 특별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천국우체국 우체통이었습니다. 그 옆에는 하늘나라로 보내는 글을 쓸 수 있는 공책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는 없지만 그리운 하늘나라의 사람들을 위해 천국우체국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잠시 천국우체국으로 가는 우편함 앞에서 마음으로 편지를 썼습니다. '결혼하면 장인어른과 술 한잔 기울이는 것을 꿈꾸었는데 비록 함께 할 수는 없지만 당신의 아내와 딸이 사위와 함께 잘 살고 있으니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지켜보시라'고 마음을 전했습니다. 천국우체국 우체통 옆의 벽에는 꽃잎편지라는 시 구절이 붙어 있었습니다.


사실 납골당에 오기 전 까지는 천국우체국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일반에도 천국우체국과 같은 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살펴보니, 전국의 주요 납골당에는 천국우체국과 같은 곳을 마련하고 있고 사이버 공간에도 서울시의 추모의집을 비롯한 여러 하늘나라우체국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세상에서 함께 동고동락했던 사람을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 그리움과 슬픔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좋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배달되지 않는 하늘나라우체국의 편지이겠지만 그 간절한 마음은 하늘로 닿아 통하지 않을까 기원해 봅니다.

가슴 뭉클한 사연과 애절한 그리움

잠시 둘러 본 하늘나라우체국에는 가슴을 저미는 그리움을 담은 여러 사연들이 가슴뭉클하고 눈시울을 젖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딸을 일찍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어머니는 거의 매일 딸에게 편지를 보내고 있었고 너무나 애틋하고 애절한 사연이라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찡하게 했습니다. 
보고싶은 딸아

잘 지내지.
어저께 까지 쌀쌀하더니만 오늘은 덥다는 생각이 든다.
온도차가 심한 요즘 건강한지.
너무 보고싶어 견딜수가 없어.
일하다가도 문득문들 네 생각에 눈물이 난다.
건강해야 돼. 그렇게 힘들어 했으니 하늘나라에서는 건강하게 하고싶은 일 하면서 마음껏 보내.

이별이란게 세월이 흘러도 이렇게 가슴아플까.
점더 잘해줄걸.많이 사랑해줄걸.이별후에야 후회하는 바보같은 엄마였구나.
먹고싶은것 실컷 사 주지도 못했고 갖고 싶은것 다 해주지도 못헀는데
이렇게 쉽게 이별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니?
너무나 긴 병원생활에 한없이 지쳐서 힘들어하던 너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라서 눈물이 흐른다.

그래도 꿋꿋하게 잘 참아내던 우리 딸이었는데 엄마가 잘 지켜줘야 했는데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다음에 만나면 못해준 사랑 듬뿍 주련다.
엄마 용서해. 그리고 웃는모습 꿈속에서라도 보고싶어.
딸~아 딸~아 사랑해.

먼저 아내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남편이 띄운 담담한 사연은 얼마나 두 부부의 사랑이 아름답고 깊은지 느껴지는 가슴뭉클한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내에게

어느덧 4월하고도 중순이 다가오네.
잘 지내고 있지..오랜만에 오네..
시간이 이리도 잘 가는지..잡고만 싶어...
당신이 나를 잘 이해해 주고 ..
너무 고마워 ..나만 그리 생각하는 거 아니지...
알지..난 항상 ..아니. 영원히 두 딸만 바라보며 살 거라는 거..

이래야 내가 굳게 맘을 먹을거 같아..핑계라도 좋아..
아니 절대 핑계가 아니라는거 알아줬으면 해..
실수하지 않는 실수를 그래도 맘 단단히 먹고 ..
잘지켜가며 살께.. 미안한 맘은 평생 간직하고 살께..
미안함을 더 이상 안하게끔 할께..

울 딸들 잘키울께...중3이 된 큰 애도 ..열심히 하는거같아..
막내역시도..한차례 혼나고 아빠맘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너무 불쌍하지만 ..강하게 키우려면 ..어쩔수없잔아..
이제 5년생인대..자신이 알아서 ..해야지..물론..뒷바침은 잘 할께..

처형네나 처제..처가집 아버님 어머님..처남..
요즘은 통 연락을 못하고 사네..
내가 먼저 해야지...아무래도 ..
당신보내고...우리랑 연락 자주하면 많이 생각날까 ..그런 걱정도 들어..
서로 그런것 같아..하지만..알잖아..당신과약속..
평생 아버님 어머님으로 모시며..살 거라고...가까이..많이 만나지는 못하지만..

서울 하늘 아래 사는 동안.. 그렇게 살거야...
항상 우리가족들...잘 될 수 있게...도와줘...
아버님 한테도 가봐야하는데.. 나같은 아들도 없을 거야...죄송할 뿐이야..
당신한테도 담주에 갈께...
잘 지내고...
또 올께..

사랑해...나 죽는 그 날까지..
당신밖에 없다...
잘자....미안하구.

하늘나라에 있는 그리운 사람에게 보내는 여러 편지는 다종다양한 사람들의 가슴 아픈 사연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러한 사연들을 읽다보면, 우리가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 진지하고 숙연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 하나의 사연들이 감동으로 밀려와 눈물이 자꾸 흐를 듯 하여 애써 참았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고마운 일인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행복과 사랑의 우리 인생



장모님이 납골당에서 하신 말씀이 뇌리에 남아 맴돌곤 합니다. 자식들이 미리 준비한 장인 어른의 젊은 시절 사진을 보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왜 그렇게 젊은 사진을 준비했어? 그러면 나는 늙어보이잖아." 장모님은 첫 사랑과 결혼하신 후 시집살이도 심하게 하셨고 일찍 장인 어른을 떠나보내시고 홀로 자식들을 키우시면서 고생하신 것을 생각하면 당신의 남편에 대한 원망도 있을 법한데, 장인 어른을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히 그 당시 젊은 시절의 마음 그대로 남아계신 것 같았습니다.
 
하늘나라로 보내는 애절한 사연을 담은 천국우체국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일지도 모릅니다. 영원한 이별과 그리움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애절한지 모릅니다. 서로 미워하고 노여워하고 살기 보다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과 하루 하루를 더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복과 즐거움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하루도 서로 사랑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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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