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9월 1일 저녁 10시경이었습니다. 

<안철수 서울시장 '고민 중'> 기사가 오마이뉴스를 통해 보도(윤여준의 언플)된 직후 한국사의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안철수는 2002년 이후 박원순의 아름다운 가게, 이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에 지속적으로 금전적 시간적 기부를 해왔던 터라 두 사람은 허심탄회한 관계였습니다. 박원순과 인연은 당시 안철수연구소(안랩)가 사회공헌 활동으로 2002년 아름다운가게 1호점에서 아름다운토요일 봉사활동을 시작하면서 부터 입니다. 당시 안철수  박사는 해외 출장 중이었는데 박원순 상임이사는 자신의 저서에 '멀리서 흠모하고 있습니다.'라는 서명을 하여 안철수 박사에 전달해달라고 했습니다. 인연의 시작이지요. 그 후 안철수연구소는 2003년 설립된 아름다운재단에 전직원이 매월 우수리 돈을 기부하는 운동을 했습니다. 안랩은 아름다운가게와 아름다운재단에 사회공헌을 10년 이상 지속했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기부액도 가장 많았고 아름다운재단 공익광고에도 무료로 출연했습니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약 15년간 안철수의 박원순에 대한 일방적 양보와 헌신, 사회공헌 도움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아름다운 양보에 고마워하기는 커녕 배은망덕 후안무치 양심불량도 모라자 적반하장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요? 2011년 9월 6일 두 사람의 담판으로 아름다운 양보가 이루어졌는데 지금에 와서 배은망덕도 모자라 아름다운 양보마저 왜곡 매도한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 아닐까요? 


2011년 당시 현장에서 본 대로 2012년 5월 '안철수 He, Story' 책에 썼던 글 입니다. 당시 박원순은 수염이 덮수룩한 채로 나타났습니다. 양보를 받기 위한 압박은 아니었을까요? 왜 수염도 안깎고 나타났을까요? 박원순의 수염은 당연히 9월 6일 담판 당시까지 양보는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2011년 9월 6일, 안철수의 박원순에 아름다운 양보,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2011년 9월 6일, 그날은 대한민국 역사가 바뀐 날이었다. 무려 50퍼센트에 달하는 지지를 받고 있던 안철수 박사는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양보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정치 역사상 찾아보기 힘든 선택이었다. 그 당시 나는 역사의 한 가운데에서 현장을 지켜봤다. 직접 기자회견을 준비했기 때문에 더욱 생생히 체감했다. 세종문화회관 지하 1층에 위치한 식당의 연회장 홀을 기자회견장으로 잡았다. 그런데 원래 오후 1시로 예정되어 있던 기자회견 시간이 계속 바뀌는 것이었다. 2시에서 3시로, 다시 4시로 기자회견 시간이 연신 미뤄지며 사안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박원순 상임이사가 백두대간 종주를 마치고 안철수 박사와 만난 시각은 오후 2시.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었다. 


그날 오전에 나는 김미경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 그 전에는 전혀 없던 김 교수의 전화라니 놀랐다. 그녀는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 좀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김 교수는 안철수 박사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갈까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심려하지 말라고 위로해줄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어차피 결론은 안철수 박사와 박원순 상임이사의 만남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만 해도 안 박사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갈지 양보할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오후 4시가 다가오자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진작부터 회사 사무실로 찾아와 기다리던 기자들도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에 도착해보니 200여 명의 기자들이 장사진을 쳤고, 기자회견장은 이미 북새통이었다. 직장 생활 20년 동안 그렇게 많은 기자들을 한꺼번에 본 것은 처음이었다. 넉넉한 공간을 택했음에도 200명에 달하는 기자들이 몰려들자 기자회견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기자들이 “오늘 박원순 변호사도 함께 참석하나요?”라고 내게 물었고, 나는 박 상임이사의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메시지를 안 박사에게 보냈다. 안 박사의 답변은 ‘아마도’였다. 그제야 ‘아무래도 오늘 중대 발표를 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상황대로라면 안 박사는 기자회견장에 입장하는 것도 힘들 것 같았다. 내가 에스코트를 해서 이동하기로 하고 그를 기다렸다. 안 박사는 거의 4시가 다 되어 1층에 도착했다. 팀원과 함께 안 박사를 에스코트해 기자회견장으로 이동하는 과정은 역시나 쉽지 않았다. 카메라 기자를 비롯한 여러 기자들이 순식간에 몰리면서 한 발짝을 떼기 힘들 지경이었고, 인파를 뚫고 나아가느라 카메라에 머리를 부딪히기도 했다.


그 와중에, 지하 1층 입구 부근에서 수염을 기른 한 사람이 얼핏 보였다. 경황이 없는 상황이라 우선 안철수 박사의 이동이 먼저였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박원순 상임이사임을 알아챘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박 상임이사가 와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힘겹게 기자회견장에 마련된 테이블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동안 안 박사와 동행했던 박경철 원장이 “박원순 변호사님은요?”라고 다급하게 물었다. 나는 다시 되돌아가 박원순 상임이사를 찾았다. 그는 기자회견장 뒤편에 서 있었다. 나는 “죄송합니다. 이리로 오시지요.”라고 양해를 구한 후 박원순 상임이사를 안내했다. 박원순 상임이사의 손을 잡고 다시 북새통 속을 뚫고 나아갔다. 


기자들은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테이블 의자에 함께 앉을 것을 주문했고, 안철수 박사도 함께 앉자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는 기자들 사이에 그냥 서서 안철수 박사의 발표문을 듣겠다고 했다. 그것은 안 박사의 양보에 대한 박원순 상임이사의 사려 깊은 답례였다. 드디어 ‘아름다운 양보’를 발표하는 순간이었다. 안 박사의 발표가 끝난 직후 박경철 원장은 눈물을 흘렸다. 박경철 원장은 “너무 아름답잖아요.”라며 연신 눈물을 보였다. 한 남자의 멋진 양보와 또 다른 남자의 눈물, 그리고 묵묵히 서 있는 남자의 배려. 정말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 다음날, 나는 김미경 교수와 다시 통화를 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전날에 비해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고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그런 편안함은 채 하루도 가지 못했다. 또 다른 안철수 현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안철수 박사는 곧장 대권후보 1위로 수직 상승하며 언론을 달구기 시작했다.


나는 그날의 일이 한국의 역사를 바꾸었다고 생각한다. 안 박사의 아름다운 양보는 정치권을 모두 변화시켰다. 2011년 9월 6일 이전과 이후, 우리나라 정치 지형은 너무나 달라져 있다. 시민들이 정치의 주역으로 다시 나서게 됐고, 여당과 야당 모두 쇄신과 개혁으로 변화를 맞아야 했다. 2030세대가 비로소 정치에 눈을 떴다. 기득권의 탐욕 앞에 소시민으로 살아가던 40대도 다시 청춘으로 돌아갔다. 그날 이후 역사의 대반전이 시작된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처음으로 경험한 대변화의 물꼬였다. 그리고 그 변화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안철수 He, Story' 중에서>

http://jsapark.tistory.com/m/2123


<'안철수 He, Story' 중에서, 2012년 5월 발간>| https://www.ahnsamo.kr/508985
2011년 9월 당시 기자회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했던 필자가 목격한 그대로의 이야기입니다. 

그 후 박원순은 아름다운 양보에 감사와 함께 감격의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또 언론은 물론 민주당과 진보 진영은 아름다운 양보에 찬사를 했습니다. 당시 기사를 찾아보면 다 나옵니다.

9011년 9월 당시 주요 기사입니다.
안철수는 당시 서울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하드웨어에 치우친 행정을 문제로 꼽았는데 구체적인 개선사항에 대한 정치적 의견도 덧붙였다. 

“(지금 서울시는)완전히 하드웨어에만 매몰돼서 남에게 보이는 사업만 (진행)돼왔다.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 실제로 사는 사람의 불편함, 위기 관리는 도외시 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예를 들면, 도로 표지들이 무원칙하다. 직진하다가 갑자기 좌회전이 생기고 이런 것들이 통일이 안 되어 있다. 교통 막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관심도 없다. 주차난도 굉장히 심각하다. 그런 걸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노상 주차장 등에 요즘 같으면 센서를 설치할 수 있다. 이것을 공공 데이터로 만들면 서울시에서는 그것을 이용해서 스마트폰 앱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어디에 자리가 비는지 (시민에게)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에너지 문제, 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부가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선진국은 다 공개한다. 그러면 데이터를 시민들이 가공해서 좋은 정보를 만들어 창업한다. 국가 보완과 상관 없는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알리면 일자리가 생긴다. 저 사람들(정치인들)은 그런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다. 평생 자기만의 전문 분야를 갖지 않으면 그런 아이디어를 갖기 쉽지 않다.”

기존 정치세력들의 분열조장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는데 “대북문제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교육문제에 대해서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 진보인가 보수인가? 그것은 나눌 수가 없다. 그것을 나누고 분열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라고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표명했다.

안철수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9월 4일에 주요 언론사들은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압도적이었지만 안철수는 자신과 오래전부터 각별한 관계였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9월 6일 오후 4시에 박원순과 만나 불과 17분 동안의 대화 끝에 박원순으로 단일화했음을 발표했다. 아무 조건도 없었다. 언론과 시민들은 '아름다운 양보'라며 안철수를 극찬했다. 일단은 ‘누가 출마하느냐’, ‘단일화가 되느냐’ 등이 모두 선거지형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또 다시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이 자리에서 안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그 분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다. 저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우리 미래 세대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겠다. 지금까지 심정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이해해준 박경철 원장님께도 감사하다. 단일화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없다. 출마 안 하겠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꼭 시장 되셔서 그 뜻 잘 펼치시기 바란다.”

박원순은 단일화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시장직 자리를 원한 게 아니다. 진정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결론이 나온 것”라고 말했다. 박원순은 또 안철수에 대해 “아무리 신뢰관계가 있다해도 저보다 10배나 더 되는 지지도를 갖고 있던 분이 정말 아무 조건 없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내 말) 한마디로 양보한다는 게 사실 또 믿기 어려운 그런 일”이라며 “안 교수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어떤 공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해왔던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태도였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후 박원순, 한명숙, 문재인 등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를 통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박원순-한명숙 두 사람은 범시민 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이후엔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인다”라며 결의를 다졌다.

안철수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안 원장은) 50%대의 지지율을 가지고도 5%대의 지지율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했다. 그것은 조중동과 이명박 정권이 그토록 핍박하고 무시하던 시민사회의 상징과 가치에 대한 공개적인 인정이었다.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커밍아웃이다”라고 극찬했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조국 교수는 “우월한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교수 양보. 큰 박수를 보낸다. 이 분의 ‘쓰임’은 또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판이 바뀔 조짐이다. 통큰 단결로 서울시장 선거, 총선, 대선을 맞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중권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안철수, 과연 ‘인물’이군요. 이 정도 열풍이면 보통 사람 같으면 정신이 멀쩡해도 취할 텐데, 50%의 지지율에도 흔쾌히 양보. 이번에 박 변호사 도와주시고, 그보다 더 큰 물에서 뜻을 펼치세요”라고 말했다. 

안철수의 아버지 안영모는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사람이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안 나가는 게 좋겠다’고 말렸다. 그러나 아들 나이도 50이 넘었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 우리가 말려서 되겠나. 이제부터는 일절 말 안 하고 지켜만 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아버지도 아들 안철수의 결심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던 것.

이명박은 ‘떠오른 안철수 열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들은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특히 정치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변화욕구가 아마 안 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이것을 여러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것을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명박­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민주당은 “모든 문제에 남탓만 해 실망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요동치는 정치판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남 얘기하듯 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답답함을 더했다. 대통령은 정치판의 구경꾼이나 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안철수 바람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라고 지적했다. 박근혜는 기자들이 안철수의 지지율이 자신을 넘어섰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자극적인 질문에 대해 “병 걸리셨어요?”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이후 박근혜는 “지나가는 식으로 농담을 했는데, 표현이 부적절했던 것 같다”라며 사과했다. 

원희룡 의원은 “정치에 대한 불신,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겹치면서 안철수 교수의 태풍현상이 있지 않았느냐. 기존 정치권의 기득권, 그리고 어쩌면 달린 식솔이 없으니까 그렇게 흔쾌히 홀가분하게 던질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바이러스 백신 무료배포, 대기업 독식 비판과 분노 등 안철수 교수의 공적 헌신을 했던 모습의 연장선에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라며 안철수를 호평하기도 했다. 

전여옥 의원은 안철수를 최근 인기몰이 중인 꼬꼬면에 비유하면서 “꼬꼬면이 ‘품절면’이 됐듯이 안철수도 정치권에서 ‘품절남’”이라며 “꼬꼬면과 안철수는 많은 것이 닮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꼬꼬면이 그간 시장의 대세였던 ‘신라면’의 후광을 입고 나타난 ‘신라면 블랙­’의 생산중단과 절묘하게 매치가 된 점” 등을 들어 박근혜를 신라면에 비유하기도 했다.

안철수와 박원순은 단일화했으나, 이전까지 박원순의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은 5%에 불과해 ‘안철수의 지지층을 박원순이 흡수하는지’, ‘민주당에 입당하는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단일화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박원순은 안철수와의 단일화에 힘입어 지지율이 대폭 상승하여 나경원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집전화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답변이 많았으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을 수 있는 휴대전화 여론조사에서는 박원순이 51.6%를 얻어 32.5%의 나경원을 압도했다. 그 후 박원순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최종 당선되었다. 박원순은 5% 지지율에 불과했으나 안철수의 50% 지지율 양보로 결국 서울시장이 됐던 것. 

그런데 박원순은 서울시장이 되면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을 믿고 양보해준 안철수에 감사보다는 적대시하기 시작했다. 비정하고 비열한 박원순의 변심이다. 그리고 서울시청은 시민단체들이 장악했다. 혈세는 시민단체의 주머니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안철수를 세상에 부른 국민의 열망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주말에는 각 방송사 마다 예능 프로그램들이 시청자들의 이목을 붙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주말 예능 프로그램들은 웃음과 재미는 물론 감동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도 '무한도전'은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오랫동안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대표적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 공감을 이끌어내고 우리 사회 공동체를 한번 더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무한도전이 오랜 기간 동안 대중들의 지지를 받고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는 것은 그 만큼 다른 프로그램에 비해 사회적 영향력이 크다는 반증입니다.

이번에 방송된 MBC 무한도전 '新 춘향뎐' 특집에서는 각양각색 6명의 춘향이로 변신한 멤버들이 돌출 입의 메뚝골 유춘향(유재석)과 월매의 늙은 수양딸 불혹 박춘향(박명수), 미간 주름 정춘향(정준하), 묵언 수행 뚱춘향(정형돈), 금발의 털춘향(노홍철), 이두박근 잔춘양(전진)에 이르기까지 전혀 춘향스럽지 않은 분장과 복장으로 나와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었습니다.
 


특히, 리쌍의 '길'은 여섯 춘향과 함께 하며 임금, 닮아도사, 사또, 방자 등 다양한 감초 역할을 수행하며 춘향뎐에 또 다른 재미와 활력을 주었습니다. 길은 '예능 초보' 컨셉으로 출연해 기대 이상의 끼를 발산함으로써 정형돈으로부터 "나보다 낫다"는 한탄섞인 말을 들을 정도였습니다. 정준하도 오랫만에 빵빵 터지는 애드리브와 식신 몸개그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유재석과 대결에서 패하며 에어컨을 기증해야 하게 된 박명수는 '기부천사'로 거듭 났고, 그네 타기에서 무려 6미터의 물웅덩이를 넘은 전진은 '소림춘향'으로 등극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담은 풍자와 해학 

특히, 춘향뎐 특집의 백미는 우리 사회를 풍자와 해학으로 백성들을 괴롭히는 탐관오리와 임금님을 응징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말을 하면 옥살이를 시키는 장면은 흡사 요즘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온갖 악행에 시달리던 여섯 춘향이 결국은 임금인 길의 얼굴에 먹칠을 하던 장면은 압권이었습니다. 뒷걸음질치는 임금에게 박명수가 '쿠데타야! 쿠데타.'라고 외치지만 방송 자막에서'분위기 파악해라. 정권 바뀌었다.'는 표현으로 우리 사회 현실을 빗대기도 했습니다.



무한도전은 이전의 프로그램에서도 소를 끌고 국회 앞은 지나가며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들을 은근히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것을 비롯해 시대적인 상황을 예능 프로그램에 녹아들게 하는 실험을 해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은 단순한 예능 프로그램을 넘어서 시대정신과 사회적 이슈의 담론을 풍자와 해학으로 승화시켜 대중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중들에게 희망을 선사하는 변화와 도전정신

무한도전이 걸어온 길은 그야말로 변화와 도전이었습니다. 역사가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듯이 무한도전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항상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대중들의 관심과 공감을 이끌어 냈습니다. 이번 '신 춘향뎐'도 여타 프로그램에서는 감히 기획하기 힘든 도전일 수 있습니다. 점차 잊혀져가는 우리 전통과 멋을 현재에 맞게 재해석하고 재미와 감동으로 담을 수 있는 것은 무한도전, 아니 김태호PD의 역량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김태호PD 이외에도 작가들, 그리고 무한도전 멤버들의 헌신적인 열정과 노력이 어우러진 하나의 버라이어티의 진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한도전은 봅슬레이 특집을 통해 비인기 스포츠의 애환과 관심을 불러이키며 감동을 주기도 했고 여성의날 특집의 신선한 시도 등 매번 새로운 아이템과 변신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환기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시청자들과 함께 소통하는 사회공헌 프로그램


무한도전은 시청자들, 그리고 대중들과 함께 소통하고 참여해 만들어가는 공익적 프로그램으로서의 지평을 열고 있기도 합니다. 이번 무한도전에서도 '사장님도 친절하고 가게도 깨끗한 음식점인데 불경기라 사람들이 한산한 음식점을 알고 계신분들은 무한도전 게시판에 남겨달라'는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무한도전이 대중들과 함께 동참해 사회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사회공헌적인 프로그램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입니다.

사실 우리사회가 소통이 부족한 세상에서 무한도전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이 직접 프로그램이나 이벤트를 통해 참여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두고 이를 방송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은 획기적일 수 있습니다.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단발성의 참여 행사가 있기는 하지만 무한도전이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시청자 참여 이벤트와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무한도전 티셔츠를 사겠다는 초등생 딸아이가 하는 말이 생각납니다. "티셔츠를 사면 그 수익금으로 불우한 이웃도 돕는다고 하잖아요."

▲ 이하늘(본명 이근배)이 '김연아' 특집 후 무한도전 게시판에 쓴 글

김태호PD와 여섯 명의 멤버들이 만들어가는 '무한도전'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아직 우리 사회는 곳곳에서 무한도전의 열정과 도전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꿈과 희망이 사라져가는 세상을 바꾸는 힘은 바로 현실을 이겨내는 도전정신에 있습니다. 최고를 향햔 '끊임없는' 무한도전의 용기가 바로 희망입니다. 그래서 김태호PD의 무한도전, 그 시대정신을 담은 실험과 열정에 큰 기대와 성원을 보냅니다. 

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