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8.04 독사가 빠가사리 잡아먹는 현장 사진 공개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7)
  2. 2009.07.14 벌의 비상, 냇가를 따라 꽃들이 유혹한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24)
  3. 2009.05.07 자식위해 평생 불구가 되신 어머님 전상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산골의 계곡으로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여름 휴가철이면 형제들이 함께 가족들만의 여행을 가는 곳입니다. 물맑고 산좋은 최고의 여름휴가지입니다. 바로 탐진강의 발원지 부근 계곡입니다. 부모님과 선조들이 대대로 살던 산골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족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아이들이 1급수 깨끗한 물에서 마음껏 수영을 즐길 수 있도록 자연 수영장도 만들었습니다. 바로 집앞에 논도 있고 계곡과 시내도 있습니다. 그래서 흐르는 시내를 돌로 막아서 아담한 크기의 천연 수영장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이 그들대로 모여서 신났습니다.  

어른들은 냇가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둘째 남동생이 "독사다"라고 외쳤습니다. 냇가의 바위에 독사가 나타나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아주 큰 놈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독사는 특히 면역성이 없는 아이들에게 위험합니다.


▲아이들이 맑은 계곡의 자연 수영장에서 물놀이도 하고 바위 옆에서 물고기집도 만들고 있다 

둘째 남동생의 아이는 바위 주변에서 물고기집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자연 수영장에서 즐겁게 물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독사가 아이들을 물어버린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래 사진이 바로 독사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장면입니다. 이미 물고기는 독사의 강력한 독에 목숨을 잃고 입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습니다. 물고기를 자세히 살펴보니 빠가사리입니다. 표준어로 동자개라고 부르는 물고기입니다. 독사는 살모사 종류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자 독사를 진뜩 경계심을 드러냅니다. 둘째 남동생이 막대기로 독사를 건들자 입에 물고있던 빠가사리를 뱉어버리고 공격 자세를 취합니다. 역시 독사는 공격적입니다. 일반적으로 뱀들은 먹고있던 먹이를 포기하지 않는데 곧바로 사람을 공격하려 합니다.


▲독사는 사람이 다가서자 입에물고 있던 물고기를 뱉고 사람을 공격하려는 자세를 취한다

▲독사는 입에 넣고있던 빠가사리 물고기를 버리고 이내 바위 틈 사이로 도망가려 하고 있다

둘째 남동생은 사람들이 생활하는 곳의 독사는 치명적인 위험이 도사린다고 합니다. 결국 둘째는 안타깝지만 독사를 막대기로 공격해 죽였습니다.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은 물론 다른 사람들을 물게 되면 생명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나 다른 사람들이 자주 들르는 시냇가라서 위험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죽은 독사는 멀리 산 속에 묻어 버렸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독사의 공격을 미연에 방지했습니다. 아이들이 놀던 계곡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독사가 바위 틈으로 도망을 가다가 다시 사람을 향해 공격 자세를 취하면서 웅크리고 있다

독사가 다니는 길목과 바위 틈은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는 위치와 바로 붙어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올해는 독사를 비롯한 뱀들이 많다고 합니다. 산이나 계곡에 놀라갈 때는 독사와 같은 뱀을 주의해야 겠습니다. 햇살이 심한 무더위에는 뱀들도 물가로 내려옵니다. 그래서 물가의 풀숲은 조심해야 합니다. 물가의 풀 숲에는 아이들이 마음대로 들어가게 해서는 안됩니다.

<독사를 제압하는 요령>
+ 위험한 독사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나무 막대와 같은 것을 이용해 독사의 머리를 누르면 됩니다.
+ 직접 손으로 독사를 잡으면 매우 위험하니 막대기를 이용해 머리를 누르고 커다란 집게로 머리의 입부근을 잡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양파담는 망이나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서 처치할 수 있습니다.
+ 전문가의 도움이 가능할 경우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요청하거나 119에 신고해 전문 요원들이 처리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독사에 물렸을 때 응급처치 요령>
+ 물놀이나 벌초를 하다가 숲을 잘못 건들여 독사에 물렸을 때는 응급처치를 신속하게 해야 합니다. 특히 10월까지는 뱀의 야외활동이 활발한 시기라 세심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 뱀독은 출혈, 혈관내 혈액응고, 신경마비, 세포파괴 등을 일으키기 때문에 신속히 환자의 응급처치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 독사에 물렸을 때는 환자를 눕히고 안정시켜 움직이지 않도록 합니다. 환자가 흥분하거나 걷거나 뛰면 독이 더 퍼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하며 팔을 물렸을 때는 반지와 시계를 제거해야 합니다. 뱀에게 물린 부위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하고 심장보다 아래에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 독사에 물린 환자에게 먹을 것을 주는 행위는 절대 금물입니다. 특히 술은 독을 빨리 퍼지게 하므로 치명적입니다. 안정을 취한 후 병원으로 후송해야 합니다.
+ 살모사류의 독사에 물렸을 때는 빨리 병원을 찾아야 하는데 물린 지 6시간 이내에 치료를 받으면 실제 사망하는 경우는 매우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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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얼마 전 경기도 남양주에 다녀왔습니다. 아름다운 산과 들에는 싱그러운 녹음이 가득했습니다. 작렬하는 태양은 냇가의 꽃들을 비추고 있었습니다. 냇가를 따라 흐르는 꽃들이 유난히 찬란했습니다.

무슨 꽃인지 너무나 청초한 모습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았습니다. 연분홍 그리고 분홍의 꽃잎이 단아한 여인의 자태와 흡사했습니다. 꽃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꽃들은 꿀벌들을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연신 꽃들을 향해 날아다니는 꿀벌들. 일반 디지털 카메라로 그 장면을 포착해 봤습니다.

꿀벌 한 마리가 꽃을 향해 비상하고 있습니다. 꿀벌이 꽃에 다가가는 모습이 경이롭습니다. 꽃을 향해 날아가는 꿀벌과 그를 기다리는 꽃들의 모습, 자연의 숭고함을 느끼게 됩니다. 마치 프로그래밍화된 대자연의 섭리는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산과 들이 멀리 펼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냇물이 흐릅니다. 냇가를 따라 길이 있습니다. 냇가에는 아름드리 꽃들이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꽃들의 향연, 그리고 여심을 닮은 꽃들의 유혹이 시작됩니다. 여름은 그렇게 무르익어 갑니다.

꽃 마다 꿀벌들이 날아다닙니다. 꽃길은 대자연이 숨쉬고 있습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입니다.

꿀벌이 꼴술에 붙어 열심히 꿀을 모으고 있습니다.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합니다. 꽃들에게는 아름다움과 새로운 생명의 잉태를 준비하게 합니다.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꽃들. 그 꽃들은 여전히 거기 있고 꿀벌들은 끊임없이 날아듭니다.

붉은 색을 띤 꽃잎이 연분홍과 어우러져 아름답습니다. 꽃길은 여심도 붙잡습니다.

꽃길을 따라 젊은 여심도 함께 걷습니다. 소나무숲이 뒤에 흐릅니다.

여름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자연의 길을 따라 걷는 여유. 꽃길을 따라 걷는 여유. 우리가 매일 바쁜 일상 속에 살더라도 가끔 흙을 밟고 하늘을 바라보고, 산과 들의 싱그러움을 느껴보는 여유가 필요해 보입니다.

젊음의 계절, 여름입니다. 이제 강으로 바다로 산으로 떠나는 꿈이 영글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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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칠순이 다 되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계십니다. 호랑이같은 아버지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어머니는 청춘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자식들은 대도시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막내 남동생이 가까운 도시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곤 합니다.

그러나, 장남인 제가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십니다. 어머니가 불편하신 다리로 평생 산골에서 힘든 농사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제게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불행하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절게 된 사연과 혼자서 저를 키운 새색시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까마득한 두메산골입니다. 아직도 온통 산으로 뒤덮인 고향은 비포장도로를 통해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다닐 정도로 산골 오지입니다. 부모님은 산골 외딴집에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 만큼은 시골 집에 동생들 가족들과 일정을 맞춰서 함께 가곤 합니다.

어머니는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이셨고 아버지는 초등 교육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지난 1960년대는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한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시골 마을에 잠시 머물던 시절에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을 '주먹자랑 하지 말라'고 알려진 벌교에서 지냈던 분으로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결혼 후 신혼 시절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기피한 상태였는데 아버지를 체포하기 위해 헌병대에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헌병대를 피하기 위해 초가집의 흙벽을 무너뜨리고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 후 아버님을 몇년 동안을 도시에서 숨어지냈습니다. 당시에는 군대에 간 후 사망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군대 기피가 많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머니는 새색시가 생과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땔감을 구해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 시골집은 초가집이었고 나무 땔감으로 밥을 짓고, 소꼴을 베어 소를 키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기도 가스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녁엔 방에 호롱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임신 중이었습니다. 혼자서도 힘든데 홀몸이 아닌 상태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소까지 키워야 하는 고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겹게 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혼자서 열심히 밭 일을 하다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서둘러 밭에서 일을 끝내고 머리에는 소꼴을 가득 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길가에 뻗은 칡넝쿨에 걸려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넘어지던 중 머리에 인 소꼴에서 낫이 떨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낫은 어머니 앞에 날이 선 상태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예리한 낫의 날에 닿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어머니는 무릎의 힘줄이 끊기는 대형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를 할 병원도 없었습니다. 곁에는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당시 저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무거운 몸이다보니 칡넝쿨에 걸려 균형을 잡지 못한데다 낫을 피하지 못해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임신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것도 몸 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봐 못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그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가 되셨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어머니는 다시 농사를 짓고 혼자서 저를 낳아서 길렀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그렇게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갓 결혼 후 남편도 없이 무려 5년을 그렇게 농사도 짓고 저를 키웠던 것입니다. 저는 아가 시절을 마당이나 밭을 기어다니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마당에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나 닭과 함께 놀고, 밭에서는 지렁이가 친구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도 일을 하고 계시고, 밭에 가서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워낭소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저의 유년 시절은 밤낮으로 어머니 밖에는 없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호롱불 밑에서 제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5살 때 처음 어버님이 고향으로 돌아오셨지만 저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만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오신 후에도 집안 일은 하지않고 한량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싹텄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마음의 화해가 어느정도 되었고,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과거와 달리 농사 일이나 집안 일도 했습니다.

제 나이가 5~6세 정도일 때도 저는 동네 아이들과 산에 올라가 고사리 손으로 나무를 하곤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오직 어머니 일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저의 일을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시절에도 방학 동안 내내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돕는데 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가 어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 때부터 어머니 혼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왜 다리 하나가 불편하게 되셨는지 얘기를 처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어머니가 다리를 절면서 걷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것이 모두 제 탓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보면, 그 젊은 시절에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참고 이겨냈는지 가슴이 아프곤 합니다. 제가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늘 변함없이 생각하는 정신적 지주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벼가 익어가는 여름 날, 논둑을 걸으면서 저에게 하신 말씀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어머님은 소중한 등불과 같았습니다. 제가 방황하거나 잘못 가려하면 언제
나 등대처럼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다리가 잘리는 듯한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디셨습니까. 그리고 홀로 저를 어떻게 키우셨나요.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만 하셨습니다. 특히 홀로 키웠던 저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유년시절의 기억 마저 희미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주 연락도 못드려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해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지금은 자식들도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어머니의 귀중한 가르침과 사랑 덕분입니다. 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언제나 힘을 주시는 어머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뵙겠습니다. 밤낮으로 기온차가 큰 데 건강 조심하세요.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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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