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12.01 장례식에 흰 국화를 쓰는 이유와 유래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80)
  2. 2009.11.26 시한부 암환자를 둔 아내의 눈물, 어떡하나?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3. 2009.05.23 사진으로 본 노무현 대통령의 일대기 '사람 사는 세상'(유서 전문 포함) by 진리 탐구 탐진강 (51)


산골 농촌 마을에서 자란 어린 시절에 간혹 꽃상여가 지나가는 것을 보며 자랐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아이에게 꽃상여와 상여소리는 신기한 대상이었습니다. 꽃상여를 따라가며 구경했던 기억이 아직도 뚜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죽은 이를 마지막으로 보내는 의식이라는 것을 나중에 어른들을 통해 알게 됐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아마도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이었는데 그 때까지도 고인을 떠나보내는 장례식 의식은 꽃상여가 맡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 유학하던 고등학교 시절에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에 갔습니다. 큰 아버지와 큰 어머니의 도움으로 유학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버지와 어머니는 표고버섯 재배를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던 표고버섯 재배였습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에 대한 걱정이 많았던 저는 방학 때 마다 시골에 돌아가 일손을 거들었습니다.

한 겨울에 산 비탈에서 표고버섯 재배를 위한 참나무를 베고 종균을 넣기까지의 과정은 험난했습니다. 어느 날, 아침에 산으로 부모님과 일을 하러 가는데 고향 친구의 아버지가 나와계셨습니다. 건강이 좋지않은 분이었습니다. 지나가면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저녁 무렵에 지게에 나무를 지고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친구의 집 앞을 지나는데 많은 사람들이 슬프게 울고 있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당시 저는 난생 처음으로 상여를 메고 장례식에 참여했습니다. 친구의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는 마지막 의식에 최소한의 도리였습니다. 그 때가 1980년대 초반경이었습니다.

유년시절 꽃상여의 기억과 허망한 인간의 삼과 죽음

어제 저녁에 큰 처형이 입원한 암센터에 갔습니다. 말기암이었던 큰 처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병실을 찾았습니다. 큰 처형은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었고, 처가 식구들을 슬픔 속에서 쾌유를 바라는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함께 기도하며 곁에 서있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 휴대폰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습니다. 직감적으로 큰 처형이 운명하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통한 죽음 앞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서글펐습니다. 

고통 속에서 돌아가신 고인이 하늘나라에서는 아무 고통 없이 편안히 쉴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인생에서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지 번뇌가 뇌리를 감싸고 돕니다. 죽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하고 허망한 사람의 일생을 생각하게 됩니다. 유년 시절의 꽃상여의 기억은 이제 흰 국화꽃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고인에게 할 수 있는 일은 국화꽃을 바치고 부디 하늘나라에서 영면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장례식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이 흰 국화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비는 자리에는 흰 국화가 놓여 있습니다. 왜 우리는 흰 국화를 고인을 떠나보내는 자리에 헌화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몇십년 전만 해도 꽃상여를 메고 향을 피웠습니다. 유교문화가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전통이 서구문화로 급속히 대체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과 100여년전 구한말 개화기에 처음 전해진 문화인 셈입니다.

하얀 소복과 꽃상여가 검은색 상복과 흰 국화로 바뀐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전통이 간소화한 서구 문화에 자리를 내준 셈입니다. 국화는 고결, 엄숙의 의미가 있고 검정색은 죽음을 뜻합니다. 경건하고 엄숙한 장례식에 국화가 갖는 의미는 각별한 것입니다.
 
고결함과 엄숙함의 국화꽃을 바치는 인간의 역사

그런데 국화가 인간의 장례에 사용되는 관습은 매우 오래된 역사입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영에 이미 국화가 장례식에 사용된 흔적이 있습니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이 그 지역입니다. 샤니달 유적에서 출토된 네안데르탈인 시신 주변에는 여덟 류의 꽃이 담겨진 화분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20만년전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인 네안데르탈인이 이미 꽃으로 치장하고 헌화하는 관습이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의 아름다운 장례 관습은 오랜 세월을 흘러왔습니다. 한반도에서도 약 4만년전 구석기 시대에 국화가 장례에 사용된 흔적이 나타납니다. 지난
1979년 충북 청원군 두루봉에서 구석기 동굴인 '홍수굴'이 발견되었는데 다섯 살배기 어린 아이 유골도 함께 출토됐는데 유골 위에 고운 흙이 뿌려져 있었고 그 흙 속에서 국화꽃 가루가 나왔다고 합니다. 고인의 안락한 사후 세계를 위한 관습일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죽음 앞에서 국화꽃을 헌화하는 것이 고귀한 행위였던 셈입니다. 사람의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언젠가는 우주 속의 별먼지로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인생을 의미있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슬프지만 고인을 생각한다면 그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고인의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지만, 하늘나라에서 편히 쉴 수 있도록 흰 국화꽃을 바치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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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주변에서 암으로 돌아가시는 분들의 소식을 자주 들어왔습니다. 그러한 죽음이 나의 가족일 경우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못했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몇달전 큰 처형이 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평소 건강을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하고 건강검진도 주기적으로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몸 속에서 암덩어리가 스멀스멀 자라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혀 담배도 피지않고 항상 몸 관리를 잘해왔는데 폐암이란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장모님을 비롯해 아내와 가족들은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얼마 전에 장모님 생신을 맞이해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암으로 투병 중인 큰 처형은 차가운 날씨가 악영향을 줄 수 있어 참석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큰 처형 부부가 사전 예고없이 참석했습니다. 큰 처형은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주기 위해 아픈 몸을 이끌고 다소 무리해서 참석한 것입니다.

이미 가족들은 큰 처형이 말기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큰 동서와 작은 처형이 의사로부터 가망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었던 터라 가족들은 슬픔에 젖어 있었습니다. 사실 큰 처형 부부를 포함해 온 가족이 모두 함께 모인 것은 올해 들어 처음이었습니다. 가족 모두가 바쁜 일상으로 함께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말기암 환자가 있는 가족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큰 처형은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외출도 쉽지않은 몸상태로 보였습니다. 비록 자신의 몸이 아프지만, 어머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려는 큰 딸로서 책임감의 발로였을 것입니다. 큰 처형은 가족들이 걱정할까봐 애써 밝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었고 저도 장모님 생신인지라 가족들 모두를 재밌게 해드리려고 노력했던 자리였습니다.

어쩌면 이번 가족 모임이 큰 처형을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한 마지막 모임일지도 모릅니다. 그 후 최근 병원에서 의사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작은 처형은 병 간호를 하는데 의사는 길어야 6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도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이미 폐암이 말기 불치병 증세로 전이되고 있고 치료가 힘든 암 종류 중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되어 있었지만 장모님과 가족들은 비통에 빠졌습니다.

지난 주말, 아내는 저에게 큰 처형의 상태에 대해 몇가지 상의를 했습니다. 큰 처형은 아직도 자신의 삶이 시한부 인생인 줄 잘 모르는 것 같다고도 합니다. 아마도 그러한 현실을 믿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 않나 생각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큰 처형의 남편인 동서는 그 동안 병수발에 지쳐있어 장모님과 작은 처형이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기로 했다며 우리가 좀 도와주자는 이야기였습니다. 제 명의가 필요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다른 물질적인 부분도 당연히 가능한 돕기로 했습니다. 

건강이 좋지않은 장모님이 암환자와 함께 살겠다면?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장모님의 건강이었습니다. 사실 장모님은 몇년전 우울증에다가 심장병이 겹쳐 중환자실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의사는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수 있고 수술해도 몇년을 못살 수도 있다는 진단까지 했지만 다행히 급격히 호전되어 수술없이도 다시 건강을 어느정도 회복했습니다. 장모님은 그래도 주변 자연과 공기가 좋은 저희 아파트 단지로 이사와 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장모님이 건강이 좋아지신 상태이지만 큰 딸의 병수발을 하는 것이 저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아내에게 저는 "장모님이 당신의 큰 딸을 생각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건강상 함께 사는 것은 다시 생각해 보자"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아마도 아내는 암환자인 큰 언니에 대한 걱정과 엄마에 대한 고민이 오버랩되어 지나갔던 모양입니다. 어쩌면 너무 담담하게 현실을 말하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도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시한부를 사는 언니를 생각하는 아내와 장모님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저는
건강이 그다지 좋지않은 장모님마저 시한부 큰 딸의 고통 속에 함께 살며 눈물짓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작은 처형이나 다른 가족이 큰 처형과 함께 살고 장모님은 가끔 한번씩 병문안을 들르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제 판단이 옳은지 그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랜디 보시디가 쓴 책 '마지막 강의'를 보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어느 교수가 남은 삶을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대개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은 좌절도 슬픔 속에서 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교수는 하루 하루를 즐겁고 기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인생의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랜디 보시디는 무엇보다 인생을 절대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꿈을 향해 나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인생이 시한부의 삶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책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습니다.
'시간은 당신이 가진 전부다.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 언젠가는 반드시 하늘나라의 별먼지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운명이고 인생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유한한 삶 속에서 늘 꿈과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6개월이든 몇십년이든 시한부 인생을 사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현실 속에서 바로 곁에 있는 가족 중에 한명이 몇개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갑자기 가족이 그런 일이 닥친다면 마땅한 방법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 때, 우리가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봤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시한부 인생을 살 때 할 수 있는 일
- 오늘 우리가 살아 있음에 대해 감사하며 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준다
- 손을 꼭 잡아주고 곁에 있어주며 책도 읽어준다
-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갖도록 희망을 심어준다
- 세상에는 기적도 있듯이 함께 기도하고 위로해준다
- 주변을 함께 산책하거나 평소 하고 싶었던 일을 도와준다

다시 가족 이야기로 돌아가 봅니다. 현재 건강이 좋지않은 장모님은 당신의 딸을 위해 아파트를 얻어 함께 살고자 하시고 저는 장모님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시한부 인생의 큰 딸의 곁에서 지켜드리고 싶으신 마음일 것입니다. 충분히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장모님마저 건강이 악화될까 두렵습니다. 큰 언니를 걱정하는 아내의 눈물을 어떻게 닦아줄 수 있을지 어려운 숙제입니다. 지금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곧 시한부 인생은 아닐까요? 우리의 삶에 있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저와 아내의 입장이라면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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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에 눈물만 하염없이 흐릅니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해 평생을 바쳤습니다.
결국 죽음 그리고 자살 마저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헌신이었습니다.
그이 삶이 올곧았듯이, 구차한 삶 보다는 당당한 죽음을 택했습니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 전문> 내용입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 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나름대로 국정을 위해 열정을 다했는데 국정이 잘못됐다고 비판 받아 정말 괴로웠다.
아들 딸과 지지자들에게도 정말 미안하다.
퇴임 후 농촌 마을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아 참으로 유감이다.
돈문제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이 부분은 깨끗했다.
나에 대한 평가는 먼 훗날 역사가 밝혀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고통없이 부디 편안히 쉬세요.

그의 지난 사진들을 보니 더욱 마음이 아파 옵니다.
독재자들은 여전히 고개를 들고 활보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나라에 민주주의는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빨리 독재의 그 날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은 죽음으로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되살려 주었습니다.

"오직 한가닥 타는 목마음으로"
다시 민주주의의 역사를 다시 되새겨 봅니다.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는 여기서 멈출 수가 없습니다.
비통한 마음으로 "바보 노무현"을 불러봅니다.
우리 모두는 민주주의 역사의 죄인들입니다.
무임승차해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죄인들입니다.

"노무현, 당신은 영원한 우리들 마음 속의 대통령입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진정으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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