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0.08.14 SBS 나이트라인 루저 논란 공식사과와 MB 광복절특사 '위너'는? by 진리 탐구 탐진강 (15)
  2. 2010.03.29 아이폰과 트위터 시작해보니 '딴 세상이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99)
  3. 2009.06.18 고품격 모델과 첨단IT가 만난 WIS 가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38)
  4. 2009.06.06 '바람의 아들' 이종범, 프로야구 신화였다 by 진리 탐구 탐진강 (13)
  5. 2009.05.30 노무현 노제 현장의 사람들과 역사를 사진에 담아보니 by 진리 탐구 탐진강 (11)
  6. 2009.02.15 재벌가의 며느리와 연예인 결혼의 명암 by 진리 탐구 탐진강 (10)


내일이면 8.15 광복절 65주년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 국가의 노예 국민으로 살아야 했던 치욕의 역사로 점철된 굴욕에서 벗어나 해방된 조국을 되찾은 날입니다. 그러나 일제로부터 해방된지 60돌이 지나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곳곳에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 노예의 잔재가 남아 있는 것 같아 씁쓸합니다.

이틀 전인 11일 밤, SBS 뉴스 '나이트라인'이 지방대 출신 젊은 인재를 '루저'로 표현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SBS는 11일 밤 심야뉴스 '나이트라인'에서 유수의 국제광고제에서 수많은 상을 수상한 이제석 씨를 소개하면서 "'루저'에서 '광고천재'로"라는 자막을 내보냈고 이를 본 시청자들은 지방대 출신에 대한 비하 표현이라면서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루저 논란이 가열되자 SBS는 어제(13일) 오후 공식 보도자료를 내고 이번 루저 논란에 대해 해명과 함께 사과를 했습니다.

SBS는 "'루저'란 표현은 이제석씨가 지난 4월1일 학고재 출판사를 통해 발간한 본인의 저서 중 '…나는 루저였다. 과 수석으로 졸업하고도 간판쟁이 밖에 할 게 없었다'라는 대목에서 따온 것이었다"며 "인터뷰에 앞서 이제석씨 본인에게 미리 내용을 알려줬고 양해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이제석 씨 스스로 '나는 루저였다' 밝혔다니...

그리고, SBS는 이제석씨가 지방대 출신이고, 한때 동네 간판장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다만 '루저'란 표현이 갖는 사회적 폭발력과 민감성을 감안해서, 이제석 씨 본인의 표현을 인용하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좀 더 사려 깊게 신중히 고민했어야 했다고 자성하며 본의는 아니었지만 이 표현으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입은 시청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했습니다. 


당초 KBS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 여대생이 '남자 키 180 이하는 루저(Loser)'고 표현한 것이 루저 논란의 시초였습니다. 젊은 여대생의 외모 지상주의 표현을 여과없이 내보낸 방송사의 실수였습니다. 루저 발언이 사회 문제화되자, 방통신심의위원회는 KBS 미수다 제작진에 강력한 경고조치를 한 바 있습니다. 루저라는 표현이 '실패자' '패배자'라는 부정적 인식과 더불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비하 의미가 담겨 있어 사회의 미풍양속을 해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루저라는 단어가 단지 외모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적 신분이나 서열을 구분하는 형태로도 사용되면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정착되는 것 같습니다. SBS 나이트라인이 지방대 출신을 루저라는 자막을 내보낸 것도 결국은 이제석 씨가 출간한 책에서 스스로 루저라고 표현한 것을 인용한 것에 불과했으니까요. 루저는 겉으로는 독성의 표현이겠지만 우리나라 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일 수 있어 안타깝습니다. 현실의 사람들은 결국 '루저'와 '위너'로 나누어져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광복절이 되면 어김없이 대통령은 왕이 성은을 베풀듯이 '광복절 특사' 사면을 발표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번 광복절 특사로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을 비롯한 불법 비리 정치인과 기업인을 대거 특별사면했습니다. 특히 이번 광복절 특사에는 이학수 고문 이외에도 김인주 전 비서실 사장, 김홍기 전 SDS사장, 박주원 전 SDS 실장, 최광해 전 부사장 등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비자금 비리사건 5인방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한마디로 '삼성 광복절'이 된 특사입니다.

광복절 특사의 진정한 위너는 '삼성'이었다

특히, 이건희 회장이 작년 말에 단독으로 특별사면을 받았으니 삼성 비자금 비리 사건은 단 1년만에 유야무야 뭍히게 됐습니다. 소위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이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주는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삼성이 아무리 커다란 불법 탈법을 저질러도 결국은 대통령이 나서 사면해주는 일이 벌어질 정도가 되었으니까요. 대한민국 위에 삼성이 있는 셈입니다.


이번 광복절 특사에서는 삼성 비자금 사건 관련 기업인들 이외에도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 이익치 전 현대증권 대표 등 재벌 대기업 총수들이 대거 사면됐습니다. 대기업 회장들은 아무리 큰 죄를 저질러도 법을 비웃으며 풀려나는 것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이제는 식상할 정도입니다.

삼성 비자금 비리 사건 일지

◇1996년
▲10월30일 삼성 에버랜드 이사회 주주배정방식 전환사채(CB) 발행 결의
▲12월3일 에버랜드 이사회, CB 125만4000여주를 제3자 배정방식으로 이재용씨 등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자녀 4명에게 CB 1주당 7700원씩에 배정키로 결의

◇2000년
▲6월 법학교수 43명 이건희 회장 등 33명을 특가법상 배임 혐의로 고발

◇2003년
▲9월 검찰, 삼성 구조조정본부 간부 소환조사
▲10월 참여연대, 검찰에 신속처리 촉구 공개질의
▲12월 검찰, CB 1주 당 거래가격은 8만5000원이라며 허태학, 박노빈 전·현직 에버랜드 사장을 특별경제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

◇2004년
▲11~12월 굿모닝신한증권, 한국회계사협회, 연세대 경영연구소 등 사실확인 조회

◇2005년
▲1월10일 서울중앙지법 결심 공판에서 허태학 징역 5년, 박노빈 징역 3년 구형
▲2월 선고 두 차례 연기
▲10월4일 법원, 업무상 배임 혐의 유죄 판단, 허태학 징역3년에 집행유예 5년, 박노빈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선고

◇2006년
▲6월26일 검찰, 현명관 전 삼성 비서실장 소환조사
▲7월20일 법원, "배임혐의 검찰 입증 부족하다" 석명요구
▲9월28일 검찰, 이학수 삼성 부회장 소환조사
▲12월7일 검찰, 이재용·홍라희 등 서면조사

◇2007년
▲5월3일 서울고법 결심 공판에서 허태학 징역5년, 박노빈 징역 3년 구형
▲5월29일 서울 고법, 특경가법상 배임혐의 유죄 인정, 허태학·박노빈 각각 징역3년에 집행유예5년 및 벌금 30억원 선고
▲10월29일 김용철 변호사, 삼성그룹 차명계좌 '50억 비자금' 폭로. 삼성그룹측은 '사실 무근' 해명. 안영욱 서울중앙지검장 국정감사에서 "수사 대상이 되는지 검토하겠다"고 발언
▲10월31일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떡값 검사 리스트'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 정상명 검찰총장 국정감사에서 "대검찰청과 중앙지검에서 (수사)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
▲11월1일 김 변호사,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삼성의 전방위 로비가 이건희 회장의 직접적인 지시로 이뤄졌으며, 이 회장의 '로비 지침서'가 있다고 주장. 사제단, '떡값 리스트'에 현직 대법관 등 판사들도 포함돼 있다고 주장
▲11월2일 김 변호사 '에버랜드 전환사채 의혹' 사건 증인 조작설 제기. 정성진 법무부 장관 국정감사에서 "삼성 비자금 수사할 용의 있다"고 답변
▲11월3일 김 변호사, '회장 지시 사항' 문건 공개. 삼성, "사실 왜곡"이라며 의혹 전면 부인
▲11월4일 김 변호사, "삼성이 국세청 인사들에 대해서도 억대 떡값 로비했다"고 주장
▲11월5일 김 변호사 기자회견서 "최고위급 검사 여럿 포함됐다"고 주장
▲11월6일 참여연대 및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이건희 회장, 이학수 부회장, 김인주 사장 등 5명 대검찰청에 고발. 특별수사팀 구성 요구
▲12월20일 조준웅 변호사 특검 임명

◇2008년
▲1월9일 김 변호사 "삼성수사에 법원이 내부적으로 통제받고 있다"고 주장
▲1월4일 '삼성 특검팀' 구성, 불법 비자금 조성 의혹 및 편법 경영 승계 의혹, 2002년 대선자금 및 최고권력층에 대한 로비 의혹 수사 개시 

더보기

▲10월10일 항소심 선고공판. 이건희 전 회장 징역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 원, 이학수 전 부회장 징역 5년에 집행유예 5년 및 사회봉사 320시간, 김인주 전 사장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및 사회봉사 320시간, 최광해 전 부사장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및 사회봉사 240시간 선고 / 에버랜드 CB 저가 발행 및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 발행 혐의 무죄
▲10월16일 조준웅 특별검사,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등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
▲10월18일 이건희 전 회장, 이학수 전 부회장, 김인주 전 사장, 최광해 전 부사장 등 4명, 대법원 상고 포기
▲10월21일 대법원, 삼성사건 상고심 1부에 배당
▲11월7일 주심 김지형 대법관, 삼성사건 본격 심리

◇2009년
▲2월15일 대법원, 신영철 대법관 취임에 따라 사건 재배당(삼성특검 사건 2부, 에버랜드 사건 1부)
▲3월13일 에버랜드 CB 헐값발행 사건 상고심, 대법관 모두가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
▲4월3일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 상고심 전원합의체 합의
▲4월28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삼성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사건 재논의
▲5월29일 대법원, 에버랜드 CB 및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 파기환송
▲6월 삼성SDS BW·에버랜드 CB 헐값 발행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부 배당
▲7월9일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준비기일
▲7월21일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사건 파기환송심 결심공판
▲7월29일 삼성SDS BW 헐값 발행 사건 결심공판 / 검찰 이건희 전 회장에 징역6년 및 추징금 3000억원 구형
▲ 9월10일  특검, 이건희 전 회장에게 징역7년 벌금 3천500억원 구형
▲ 10월10일  서울고법, 이건희 전 회장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 벌금 1천100억 원 선고
▲ 12월31일  이건희 전 회장(현 삼성전자 회장) 특별사면

◇2010년
▲ 8월13일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 등 삼성 비자금 비리 사건 당사자 5명 특별사면

그러나 일반 국민들과 서민들은 어떤가요? 일반 사람들이 대기업 회장들 처럼 특별사면을 쉽게 받을 수 있을까요? 거의 힘든 일입니다. 광복절 특사라는 영화를 보면 모범수로 오랜 고생을 하고도 교도소에서 나갈 수가 없자 탈옥을 하는 에피소드가 주요 내용입니다. 물론 조금만 더 참았으면 광복절특사 명단에 포함되는 행운(?)이 따르는데 도저히 사면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일반인 죄수의 최후의 선택이 바로 탈옥이었습니다. 엄청난 불법을 저질러도 쉽게 사면되는 부자와 달리 일반 서민들은 잡범에 불과해도 형량을 꼬박 채워야 하는 현실입니다.

결국 이번 광복절 특사는 부자가 지배하는 우리나라 현주소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정한 광복절특사 '위너'는 바로 삼성이었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친형인 노건평을 비롯 참여정부 인사의 사면은 삼성 비리 사건 기업인을 포함 서청원 전 친박연대 대표와 여당 정치인들을 사면하기 위한 끼워넣기 거래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그러나 단순 시위를 하다 구속된 일반 시국사범은 전혀 사면되지 않았습니다. MB의 정략적 사면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벌써 이명박은 2년여만에 5번째 대통령 특별사면인데 이대로라면 재임동안 최다 특별사면 남발 신기록을 할 듯 합니다. 서민을 외치지만 특별사면에는 철저히 소외되고...

또 한번 국민들은 배신을 당한 셈입니다. MB는 자신의 임기 중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인사들에 대해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는 약속했지만 거짓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대통령의 행태가 계속 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름지기 리더는 언행일치가 되어야 사람들이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위선, 오만과 독선이 지배하는 국가가 되고 있습니다. 이번 광복절특사는 우리나라의 진정한 '위너' 삼성이라는 사실과 더불어 '루저'는 누구인지 다시한번 확인해준 사건으로 씁쓸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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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지난 주 아이폰을 질렀습니다. 그 동안 사용 중인 휴대폰의 2년 약정 기간이 남아 있어 고민을 했습니다. 나중에 4G가 나오면 그 때 구매할까 생각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기다리는 동안의 기회비용도 비교해보면 당장 바꾸는 것이 더 좋겠다 싶었습니다.

아이폰을 처음 사용해보니 기존 휴대폰과는 확실히 달랐습니다. 왜 스마트폰이라 불리는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 피처폰 휴대폰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느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시골에서 농사짓다 서울에 처음 상경해 마천루를 본 후 놀란 '딴 세상'이라고 할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처음 초보자가 적응하려면 어느 정도 시일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아직도 기능이나 사용법을 잘 모르지만 초보자가 구매부터 지금까지 느낀 점을 그대로 이야기해 볼까 합니다.

스마트폰 판매경쟁 불붙었다

아이폰이 우리나라에 입성한 이후 휴대폰 시장은 급변한 것 같습니다. 다른 나라에 비해 뒤늦게 빗장이 풀린 스마트폰 시장은 SK텔레콤을 비롯한 통신사, 그리고 LG전자 삼성전자 등 제조사 등 플레이어들이 긴장감이 휩싸인 듯 합니다. 특히나 대기업과 하드웨어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에 큰 충격을 주고 있기도 합니다. 어쩌면 손쉽게 장사하던 대기업 행태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드웨어 껍데기만 잘 만들지만 정작 중요한 소프트웨어는 천시한 우리나라의 IT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아이폰발 핵폭풍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무늬만 IT강국이지 실상은 IT후진국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아무튼 아이폰으로 촉발된 긴장감은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일깨운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안철수 박사가 말한 비즈니스 모델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기존 대기업-중소기업 수직 하청구조가 아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수평적 비즈니스 모델을 과연 만들 수 있느냐가 향후 우리나라 경제의 관건이 될 듯 합니다.

아, 이런 문제는 별도 기회가 있으면 언급하기로 하겠습니다. 아이폰을 구매하기로 한 것은 급변하는 시대에 최소한 보조는 맞춰보고 싶고 업무상으로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길거리를 가던 중 KT 영업직원들이 가두판매하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당시 동행하던 지인이 아이폰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당장 아이폰을 구매했습니다. KT 직원이 원스톱으로 기기 변경을 비롯 제반 절차를 처리해주어 간단하게 구매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KT 직원을 만나고나서 느낀 점은 KT 직원이 실적 때문에 아이폰 판매에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나온 직원 중에는 아이폰 기능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나온 분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이폰 세상이 3가지가 놀랍다



아이폰 구매 후 몇가지 기능을 우선 적용했습니다. 가장 먼저 회사 메일을 사용할 수 있도록 설정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초보자인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잘 아는 직원에게 부탁했습니다. 메일을 어디서나 볼 수 있게 되니 업무상 메일이 많은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데스크톱 PC나 노트북PC를 사용하던 기존 업무방식에서 벗어나 이동 중에도 쉽게 손쉽게 메일을 볼 수 있고 당장 답변이 가능했습니다.

두번째는 각종 애플리케이션을 손 끝의 터치로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이폰에 기본으로 깔린 정도만 현재는 사용 중이지만 이미 아이폰을 사용 중인 매니아들로부터 이야기만 들어도 재미있는 어플이 많은 것 같습니다. 휴먼터치에 의해 달라진 모바일 세상이 신기하기만 합니다. 일단 현재 아이폰에 탑재된 카메라, 지도, 나침반 등의 사용법을 익힌 후 필요한 어플에 도전할 생각입니다.

세번째로 도전한 것은 트위터입니다. 먼저 트위터에 가입했습니다. 그리고 아이튠스에 가입해 트위터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tweetdeck를 PC와 아이폰에 다운받았습니다. 아이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트위터를 하게 되니 140자의 마법을 즐길 수 있게 됐습니다. 그렇지만 트위터는 적응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일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간단한 용어부터 잘 모르고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어리버리 했습니다.

그래서 트위터에 대한 몇가지 용어부터 정리하고 시작해야 했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용어도 알고 직접 사용해보면서 알아가는 트위터 세계입니다.

트위터의 기본적 기능은?

Following(다른 사람의 이야기 듣기)
어떤 사람을 내 트위터 목록에 추가해 그 사람의 이야기(글)를 볼 수 있는 기능입니다. Following은 블로그의 구독과 같은 기능이라 할 수 있습니다. Following 버튼만 누르면 다른 사람들의 글이 내 트위터의 첫화면에 시간순으로 배열 되게 됩니다. 유명인이나 대가의 트위터를 구독함으로서 엿듣기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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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L 링크 줄임 기능
트위터는 주로 정보를 주고 받는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에 새로운 소식과 함께 링크 URL을 첨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트위터는 글을 보낼 때140자 제한이 있기 때문에 정보가 되는 링크 사이트를 보내면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긴 URL을 보내는 대신 이를 짧게 해주는 TinyURL.com이나 Bit.ly와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면 URL을 짧게 해주어 도움이 됩니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등 스마트폰이 급격히 보급되면서 트위터 사용자들이 크게 늘었다고 합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나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인사들이 트위터를 사용하며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다소 늦기는 했지만 김연아, 김주하, 김제동, 이외수 등 스포츠 방송 연예 스타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분야 유명인사들도 트위터 삼매경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아, 제가 아이폰 사용 후 블로그와 트위터를 하면서 몇가지 느낀 점을 아래 박스에 정리해 봅니다.

아이폰 사용 후 블로그와 트위터 활용 장점과 느낀 점

* 아이폰의 트위터에서 다음뷰 글을 곧바로 살펴볼 수 있어 좋다
* 블로그 글 발행시 트위터에도 동시에 발행될 수 있는 기능을 사용하면 일석이조이다
* 아이폰을 통해 블로그 글에 댓글도 달 수 있어 편리하다 (단, 저 같은 독수리 타법은 힘이 들더군요)
* 실시간으로 세상의 유용한 정보를 볼 수 있어 PC를 통한 정보 획득은 줄어든다
* 이웃 블로거들을 트위터에서 만나면 더욱 새롭고 반갑다
* 트위터를 잘하려면 어느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 제가 초보라서 그럴 수도 있겠지요) 

저는 이제 갓 아이폰과 트위터를 사용하게 되면서 기능을 잘 몰라 실수를 연발하기도 합니다. 문명의 이기 보다는 아날로그에 더 익숙한 저에게는 곤혹스런 일입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인 만큼 하루라도 빨리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처음 개설하고 무엇이 뭔지 몰라 해매던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쩌면 PC 앞에 앉아서 하던 블로그를 모바일 세상에서 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PC가 아닌 스마트폰으로 옮겨진 '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저를 놀라게 할지 신대륙의 발견과 같은 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입니다.

참고로, 제 트위터 주소는  @tamjingang 입니다. 그리고 제 블로그 글의 맨 아래 오른쪽 post by 탐진강 옆에 retweet은 제 블로그 글을 트위터를 통해 정보 공유하는 기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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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서울 삼성동에 일이 있어 잠시 전시장에 들렀습니다. 월드IT쇼(World IT Show) 즉 WIS가 20일(토)까지 코엑스(COEX)에서 열리고 있었습니다. 새롭게 변화하는 첨단 기술의 향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인 듯 합니다. 오래 전에는 간혹 이러한 전시회를 가보던 때도 있었지만 바쁘게 살다보니 기술과 문화의 공간의 활용할 기회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부족해 첨단 IT기술을 자세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주마간산 격으로 대략적으로 살펴본 전시회 현장을 사진에 담아 보았습니다. 몇년 전과 다르게 느껴졌던 것은 첨단 IT기술과 서비스의 융합화가 많이 진전되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IT전시회를 빛내주는 나래이터 모델들이 고품격으로 느낌을 살릴 수 있도록 복장과 분위기를 연출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 각각의 주요 현장을 만나보겠습니다. 오랫만에 보는 코엑스의 전경이 아름답습니다.


현장 등록하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전시회는 직접 보는 재미가 가장 큰 것 같습니다.

3층 전시장 입구의 SK텔레콤 부스입니다. 뭔가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SK는 다양한 서비스를 강조했고 그린 IT서비스를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WIS가 그린을 지향했으니 대기업도 그랬을 듯 합니다. 정부가 '그린'하면 대기업이나 단체들도 그대로 따라가야 하는 현실이 못마땅합니다만...

LG전자의 홈씨어터입니다. 외국인도 관심을 표명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안방극장의 변화가 더욱 거세질 듯 합니다. 그 아래 초슬림 TV도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삼성전자 부스에 마련된 김연아와의 포토존입니다. 김연아 사진 모형으로 만든 곳으로 삼성의 첨단 핸드폰을 알리기 위한 곳이었습니다. 예쁜 모델이 카메라가 다가서면 포즈를 취해 줍니다.

삼성의 플랫TV나 앞으로 벌어질 광고판이 변화를 알 수 있는 레스토랑을 꾸며놓은 공간입니다.

KT의 쇼라는 서비스를 보여주기 위해 늘씬한 모델과 자동차가 동원됐습니다. 제가 모델들 이름을 모르는데 이 분은 카메라에 포즈를 잘 취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의 밧데리가 떨어졌습니다. 디카도 안좋은데 밧데리도 떨어져 휴대폰이 고생했습니다.ㅠㅠ

급한 전화가 왔는지 갑자기 모델이 이상한 행동을 합니다. 걸려온 휴대폰을 만지는 것인지 서비스를 보여주기 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자세히 보지는 못했습니다.

여러 중소기업들이 벤처기업들 그리고 기관들도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이벤트를 하는 곳은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득템은 역시 기분 좋은 일입니다.

SK텔레콤의 공간도 쇼를 의식해서인지 두 명의 모델을 배치했습니다. 자동차가 소품으로 등장한 것도 이채롭습니다. 눈길을 끄는 데는 자동차가 제 격인 듯 합니다.

LG전자 부스인데 전시장을 잘 만든 것 같았습니다. 얇은 LED TV 기술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반 디카와 휴대폰으로 대충 지나가며 찍은 것들이라서 선명하지 않은 부분도 있어 보입니다. 너무 시간이 없는 관계로 주요 분위기만 사진에 담은 것이 아쉽습니다. 자세한 기술과 제품을 보시고 싶은 분들은 다른 블로거 분들의 포스팅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전시회는 토요일까지 있을 예정이니 관심있는 분들은 한번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추가] 광파리님의 댓글에 의하면 금요일까지는 입장료 5천원이고 토요일은 무료라고 합니다. 다만 토요일에 사람들이 몰리니 차분하게 보기 위해서는 금요일까지가 좋을 것 같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이용하는 프레스룸도 블로거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고 합니다. 블로거 분들은 현지에서 프레스룸을 이용해 블로깅을 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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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드디어 국내 프로야구 통산 500도루와 1000득점에 성공했습니다. 이종범은 '바람의 아들'을 탄생시킨 '(기아)타이거즈'의 광주 홈팬들 앞에 대기록을 선사하며 감격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프로야구의 전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제가 프로야구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닙니다. 그러나 과거 해태 타이거즈 시절의 프로야구에 많은 추억을 갖고 있습니다. 1990년대 프로야구는 최고의 국민 스포츠 시대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출범한 이후 최고의 명문 구단은 해태 타이거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당시 삼성 두산 등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한 구단들에 비해 해태 타이거즈는 가난한 구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종범을 비롯한 선수들에게는 최고를 향한 꿈이 있었습니다.

꿈을 향해 달리던 이종범의 근성과 도전정신, 그것은 '바람의 아들' '야구 천재' '수비의 귀재' '야구 9단' 등 수많은 별명이 그를 상징해 줍니다. 우리나라 야구 역사상 100년에 한번 나올 수 있는 유격수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번에 이종범이 500도루와 1000득점을 달성한 것은 여러가지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선수 중 사실상 최다 도루 대기록 달성
이종범의 500 도루는 표면적으로는 히어로즈의 전준호의 500도루에 이어 두번째입니다. 그러나 실상을 따져보면 이종범이 한국 프로야구 선수로는 사실상 최다 도루의 기록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종범은 국내 프로야구를 떠나 지난 1998년부터 일본 주니치에 입단해 3년 반동안 53개 도루를 성공시킨 바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과 일본 기록을 합하면 개인적으로는 이종범은 553개의 도루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이다. 국내 최다기록은 전준호가 보유하고 있는 549개이지만, 일본기록까지 더한다면 사실상 최다 기록은 이종범이 보유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전력 질주 모습(주니치 시절)

이종범의 이 날 기록은 프로데뷔 17년, 한국 프로야구 14시즌 만에 거둔 대기록입니다. 일본 주니치에서의 프로야구 시즌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국내 프로야구에서 더 많은 대기록을 만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종범이 1루 주자로 진출하는 것 만으로 투수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가 경기에서 차지하는 진가를 가늠케 합니다.

이종범은 지난 1993년 해태 타이거즈 입단과 함께 무려 73도루(2위)를 성공시켜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과 함께 첫 해부터 대도의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그 다음 해인 1994년에는 타율 3할9푼3리의 기록과 함께 사실상 깨지기 힘든 84도루를 성공시켰습니다. 그 이후 이종범은 극내 프로야구에서 통산 네 차례의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한 바 있습니다. 

한편, 이 날 2번타자 겸 우익수로 선발 출전한 이종범은 6회말 1사후 선두타자로 나서 삼성 배영수를
상대로 깨끗한 좌익수 옆 안타를 날렸고, 이종범은 관중들의 " 뛰어! " 라는 함성 속에서 볼카운트 2-2에서 5구째를 던지는 순간 2루 도루를 감행해 역사적인 기록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이종범은 도루성공과 함께 자신이 예고한 대로 2루 베이스를 들어올려 자축했고 관중들은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소 경기 1000득점에도 성공
이종범은 최다 도루 대기록과 함께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소 경기 1000득점의 기록도 동시에 세웠습니다. 이 날 이종범은 최희섭의 중전 적시타로 홈까지 밟아 통산 4번째이자 최소경기 1000득점도 함께 기록한 것입니다. 이종범에게는 도루 기록과 함께 기쁨이 두배가 된 셈입니다.

이종범은 1000득점은 1439경기 만에 달성한 것인데 종전 기록은 삼성의 양준혁이 보유하고 있던 1522경기였습니다. 무려 83경기나 앞당긴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야구에서 득점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감안해보면 이종범의 존재 가치는 빛날 수 밖에 없습니다.

1996년 WBC 한국-일본의 경기, 이종범이 결승타를 친 후 장면

이종범과 타이거즈의 한국 프로야구 9회 우승 신화
이종범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는 무시무시했습니다. 당시 해태타이거즈는 김응용 감독을 중심으로 이종범을 비롯해 스타 선수들이 즐비했습니다. 

당시 타이거즈는 초호화 최고의 선수들을 영입한 것은 아니었지만 강력한 팀웍을 바탕으로 한 근성과 집중력이 뛰어났습니다. 신인 선수들은 타이거즈에 입단하게 되면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호랑이'로 거듭 태어났습니다.

타이거즈 우승 신화를 이끌던 1990년대 선수들을 살펴보면 투수에는 선동렬 이강철 조계현 등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타자에는 이종범을 포함 김성한 이순철 한대화 홍현우 김봉연 김무종 등이 활약했습니다. 이들 선수들은 얇은 선수층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뭉쳐 매번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홈팬들의 열정적인 응원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습니다. 해태 타이거즈는 9번이나 우승을 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결국 김응용 감독의 리더십, 선수들의 혼연일체 팀웍, 그리고 팬들의 열정적 응원 등이 삼위일체가 된 프로야구사의 신화였습니다.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살아있는 전설
이종범의 500도루 대기록은 과거 1990년대 프로야구 팬들에게도 큰 추억과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합니다. 당시에는 대중 스포츠가 프로야구 이외에는 드물었기 때문에 어떤 스포츠 보다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종범을 비롯해 걸출한 프로야구 스타들이 많았습니다. 대중들은 프로야구를 보면서 웃고 울었습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는 하루종일 화제의 이슈였던 시절입니다.

이미 1990년대 스타 선수들은 은퇴를 했거나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종범은 여전히 현역 선수로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종범은 나이가 마흔에 도달하고 있는데 젊은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가르고 있다는 점에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이종범이 대망의 500도루 기록을 달성하는 장면과 팬서비스로 2루 베이스를 들고 있는 모습

특히,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구를 세계 속의 프로야구로 한단계 업그레이드했습니다. 1990년대 한국 프로야구는 미국 일본 등의 프로야구에 비하면 역사도 짧고 수준도 다소 낮은 편이었습니다. 이종범은 과감하게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해 후배들이 나아갈 수 있는 미래와 꿈을 심어주었습니다. 주니치 시절에 여러 병마와 싸우느라 제 실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우물안 개구리'가 아닌 진정한 프로가 가야 하는 방향을 마련해준 것입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박찬호가 진출하고, 일본 프로야구에서 이승엽이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이종범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입니다. 쉽고 편한 길을 선택하기 보다는 힘들지만 어려운 길에 도전했던 이종범. 그는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에 있어 하나의 '신화'입니다. 그리고 그 신화는 계속 될 것입니다. 이종범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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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영영 이 세상의 육신이 아닙니다. 영혼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어제(30일)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추모 노제는 수십만명 이상의 사상 최대 인파가 몰려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했습니다. 세계 역사상 이토록 자발적으로 모여 애도하는, 장엄한 광경은 처음일 듯 합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에서도 몇시간 동안을 기다리며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고인이 이 땅에서 못이룬 꿈을 하늘나라에서는 이룰 것을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고인의 꿈이었던 '사람 사는 세상'을 받들어 이 땅에서 이룰 것을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이었던 노제의 현장에서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눈으로 확인하고 가슴에 담아 추모하며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저 마다 함께 하는 장면들입니다.

노제가 시작되지 몇시간 전부터 서울광장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습니다. 새벽부터 도착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노란 모자를 쓰고 햇살을 막으면서 상당히 무더운 날씨에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고인의 뜻을 기리고 영면하기를 기원하는 만장이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노제를 기다르는 동안 사람들이 노란 풍선을 하늘 높이 날려 보내고 있습니다.

노제가 열리는 장소를 좀 더 가깝게 보기 위해 사람들이 일부 구조물 위에도 올라가 있습니다.

드디어 노제의 시작을 알리는 크레인이 하늘로 올라가고 김명곤 전 장관이 시작을 알리고 있습니다.

여러 준비나 사진 촬영을 위해 별도 차량도 눈에 띄기도 했는데 사람들이 올라가 있습니다. 차량 위 어떤 사람이 들고있는 '오늘은 철야입니다'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시민들이 준비한 추모 차량인 듯 합니다. '사랑합니다'라는 말이 꽃으로 장식되어 있고 차 앞유리에는 '우리는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방송 카메라가 하늘 높이 높게 달려있는데 MBC 방송 카메라였습니다.

시청 지하철역 부근에도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습니다. 노제가 끝나고 지나가는 장면을 보기위해 남대문 서울역 방향에도 사람들 인파가 모여 있었습니다.

태극기를 노란 풍선이 달린 깃대와 함께 들고 지나가는 사람도 보입니다.

외국인도 이 날은 많이 참석해 역사적인 장면을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가로수에는 줄로 연결해 수많은 노란 풍선들이 계속 달려 있었습니다. 노란색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색이었습니다.

길거리 인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노제가 끝나고 운구차가 지나는 것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멀리 보이는 건물 계단이나 담벼락 위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뒤에 보이는 건물에는 사람들이 각 계단의 층 마다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한 건물의 옥상에는 노란 펼침막을 걸치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운구차가 지나갈 예정인 도로 주변에도 사람들이 꽉 차 있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외침도 함께 했습니다. '파견법은 노예법, 즉각 폐기하라'

자동차 뒷 유리에 붙어있는 문구입니다.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노란 비행기도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날리곤 했습니다.

만장과 함께 운구차가 지나가는 듯 합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삼성 본관 앞 부근의 빌딩 계단에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날 사람들 관심이 노제에 쏠린 사이 삼성은 대법원에 의해 이재용 3세 시대를 공식 승인받은 날과 같았습니다.

남대문 시장 부근의 숭례문 복원 현장을 만장과 사람들이 지나고 있습니다.

어떤 만장에는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여러 차도가 모이고 넓어지는 숭례문 도로 전체가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 서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운구차가 매우 느리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숭례문 복원 현장을 지나가는 길목에 사람들이 운구차의 행렬을 사진에 담고 있습니다.

도로 뒷편의 작은 길에 YTN 중계 차량이 서있고 차량 위에는 여기자가 서 있었습니다.

서울역 부근인데 고가도로 위에도 사람들이 몰려 있습니다. 위에도 '독재 타도'를 위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앞을 운구차가 지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만장의 행렬이 집중해 지나가고 있습니다. 정부가 죽봉을 반대해 그 대신 PVC 파이프로 만들었습니다.

서울 역 앞의 KBS 중계석입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불공정 방송을 심하게 질타했습니다. 이병순 사장과 경영진이 문제인데 잘못된 경영진 때문에 말단 기자들과 아나운서가 고초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운구차 뒤에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함께 뒤따라 걷고 있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지막 가는 날, 함께 하신 분들이나 TV를 통해 애도를 표하신 분들이나,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한 모든 분들의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을 듯 합니다. 고인이 남긴 '사람 사는 세상'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고인의 뜻과 가치를 잊지말고 생활 속에서 각자 실천하면서 열심히 살아야 겠습니다.

역사 속에 남아버린 서울광장에 모인 사람들이지만 가슴 속에 비석 하나씩 세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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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가와의 결혼이 행복의 보증수표일까? 이건희 전 삼성그룸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와 임창욱 대상그룹 회장의 장녀 임세령 씨가 파경 직전입니다. 임세령 씨가 위자료 10억원을 포함해 수천억원대의 이혼 소송을 냈기 때문입니다. 재벌가와 결혼은 '꽃 보다 남자' 이야기에서 백마탄 왕자의 판타지만은 아닌 것이 현실입니다.

과연 재벌가와 결혼한 연예인들은 누가 있을까? 그들은 모두가 잘 살고 있을까 찾아봅니다.
[영화 장면 중]

재벌가와 결혼한 대표적 미녀 연예인은 정윤희입니다. 정윤희는 1980년대 장미희, 유지인과 함께 미녀 트로이카로 불렸습니다.정윤희는 중앙산업 조규영 회장과 결혼해 현재까지 외부와 연락을 끊고 잘 살고 있는 듯 합니다.

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 한성주는 1999년 6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셋째 아들 채승석씨와 결혼했으나 10개월 만에 이혼했습니다. 한성주는 아버지 한석봉 씨가 부성학원 설립자이며 12대 국회의원을 지낸 바 있습니다. 지금 푼수 끼를 보이며 연예 프로그램에서 다시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 장면]

고현정은 이명희(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다섯째 딸) 신세계그룹 회장 장남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사장과 1995년 5월 결혼해 1남 1녀를 뒀으나 결혼 8년 6개월 만에 이혼 도장을 찍고 말았습니다. 법원에는 '성격차에 따른 가정불화'라고 사유를 밝혔으며 정용진 부사장은 당시 고현정에게 위자료 15억원을 주는 대신 자녀 양육권을 갖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과 1970년대 유명 여성듀엣 '펄 시스터스' 멤버 배인순(본명 김인애)의 결혼과 이혼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최원석 전 회장은 첫 결혼 상대가 영화배우 김혜정이었고 이혼 후 배인순을 거쳐, 그리고 현재는 아나운서 출신 장은영과 결혼해 살고 있어 연예계와 인연에 깊습니다.

                               
[KBS 상상플러스 방송 장면]

지난 2006년 고 정몽우 전 현대알루미늄 회장의 아들인 정대선과 결혼해 현대가(家)에 입성한 노현정 KBS 전 아나운서입니다. 정대선은 IT기업 유씨테크를 인수하고 대표이사로 취임한 바 있어 앞으로 노현정은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됩니다.

벤처기업가와 결혼한 연예인으로는 김희애와 황현정이 있습니다. 유명 배우인 김희애는 이찬진 한글과컴퓨터 사장(현 드림위즈 사장, 국회의원 출신)과 결혼했고 황현정 아나운서는 다음 이재웅 사장과 결혼했습니다. 김희애와 황현정은 둘 다 잘 살고 있습니다.

                                         
[황신혜 미니홈피]

황신혜는 재력가 집안 출신인 에스콰이아 상무와 결혼했는데 몇개월만에 파경을 맞았습니다. 황신혜는 당시 최고의 미녀 연예인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화제가 되었습니다. 여전히 미모를 자랑하며 여러가지로 활동 중입니다.

예전 연예인 중에서 문희는 한국일보 고 장강재 회장과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최윤영 아나운서는 전 대우그룹 사장 아들과 결혼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희선은 락산그룹 아들과 결혼했습니다. 또한 연예인 중에는 이요원, 윤손하, 홍진경, 임유진 등이 재계 관련된 분들과 결혼했다고 합니다. 미스코리아 출신 연예인 오현경은 2002년 계몽사 홍승표 사장과 결혼했으나 몇년만에 헤어졌습니다.

이 밖에 유명 가문과 결혼해 이혼한 사례도 재벌가이 있습니다. 이건희 전 회장의 조카인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은 김석기 전 중앙종금 사장과 결혼했으나 결국 이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김석기 사장은 1994년 연극배우 윤석화와 결혼한 바 있습니다. 이동찬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다섯째 딸인 이경주 씨는 광명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장남 광태훈 씨와 결혼했지만 가정불화로 헤어졌습니다. 

남자 연예인 중에는 탁재훈이 김치전문업체인 진보식품 이승준 회장 딸과 결혼했고, 박신양은 유명 아이스크림 사장 딸과 결혼한 바 있습니다. 김주승은 큰 손이었던 장영자의 딸과 결혼했습니다.

중국망이라는 잡지는 중국 연예인들이 재벌가나 갑부와 결혼하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1. 부호 쉬진헝(许晋亨)과 결혼한 리자신(李嘉欣)
 
2. 말레이시아 부호 주자오샹(朱兆祥)과 결혼한 후징(胡静)

3. 과학기술 회사의 CEO 우페이저우(吴飞舟)와 결혼한 순위에(孙悦)

4. 금융계 갑부 쉬야쥔(许雅钧)과 결혼한 샤오S(小S)

5. 상하이 부동산 업자 차이젠궈(蔡建国)와 결혼한 CCTV 메인 앵커 션빙(沈冰)

6. 문화산업계의 핵심 인물 루윈(路云)과 결혼한 저우타오(周涛)

7. 홍콩 사업가 싱리위엔(邢李原)과 결혼한 린칭샤(林青霞)

8. 상하이의 기업가 순즈하오(孙志浩)와 결혼한 자칭원(贾静雯)

9. 홍콩 최고의 부호 리쟈오지(李兆基)의 아들 리자청(李家诚)과 결혼한 홍콩 최고 모델 쉬즈치(徐子淇)

10. 현재는 이혼을 했지만 홍콩의 갑부 훠전팅(霍震霆)과 결혼했던 1977년 미스 홍콩 주링링(朱玲玲)

11. 부호 왕커(王珂)와 결혼한 리타오(刘涛)

12. 타이완 최고 부호 궈타이밍(郭台铭)과 결혼한 무용 강사 정신위(曾馨莹)

13. 홍콩 부호 리자청(李嘉诚)의 아들 리저카이(李泽楷)와 사랑에 빠진 량루어스(梁洛施)

14. 미국 미국 타임워너사 대주주 비비네보(Vivi Nevo)와 약혼한 장즈이(章子怡)

15. 홍콩 부호가문의 훠치강(霍启刚)과 결혼할 궈징징(郭晶晶)


재벌가와 결혼이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즉, 돈과 행복의 척도는 다른 것입니다. 재벌가와 결혼해 파경을 맞고 이혼한 연예인들도 자주 등장합니다. 다만, 돈 많은 갑부가 미녀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습니다.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허황된 욕망이나 판타지를 찾기 보다는 분수에 맞게 안분지족하며 살아가는 미덕을 지키는 것도 필요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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