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색소대'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9.09.25 철책선이 뚫렸다! 20년전 수색작전 그 후.. by 진리 탐구 탐진강 (38)
  2. 2009.06.20 군대에서 왕구렁이에게 복수당했던 공포의 실화... by 진리 탐구 탐진강 (43)
  3. 2009.04.23 면회금지 철책선에 애 엄마가 잠입한 이유 by 진리 탐구 탐진강 (35)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살고 있는 철책선 GOP는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의 철책이 사라진다면 비무장지대는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자연생태공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언젠가 비무장지대가 평화를 상징하는 생태공원으로 세계인들이 찾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비무장지대에는 고라니, 멧돼지, 담비, 열목어, 구렁이 등 수많은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그 뿐 아니라 금강초롱을 비롯한 엄청나게 많은 식물들이 태초의 신비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직접 오갔던 비무장지대 현장에는 아름다운 계곡과 폭포 등 절경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아무튼 평화통일이 되어 천혜의 자연공원 비무장지대가 일반에게 공개되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지나간 20여 년전 군대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제가 근무했던 수색소대는 철책 부근의 후미진 산 속에서 별동대처럼 단독 소대단위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로 훈련과 땅굴 탐지를 하던 시기입니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하고 내부반에서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소대장의 긴급 비상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철책선이 뚫렸다. 적들이 침투한 것 같다. 소대원 전원 수색 준비!"

우리 소대원들은 긴장감어린 눈빛으로 전원 막사 앞에 완전 군장으로 신속하게 집결했습니다. 위장복에 방탄조끼를 걸쳐입고 각각 자신의 임무를 부여받고 나타난 소대원들은 3개 수색분대로 새로 편제됐습니다. 저는 당시 M16 소총에 망원경을 장착한 저격수였습니다. 수색분대는 분대장, 저격수, M203 유탄발사기 사수, M60 기관총 사수 및 부사수, 무전병 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수색작전에 앞서 투입전 제식동작이 시작됐습니다.
"앞에 총! 노리쇠 후퇴 전진!"
"탄창 장착!"
"탄알 일발 장전!"
"작전 개시! 투입!"

각 분대는 철책선이 뚫렸다는 지역의 후방으로 신속히 이동했습니다. 그 때 당시, 소대장은 우리 사단 바로 옆의 00사단 GOP 철책선 일부가 뚫어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북한군이 철책을 뚫고 침투했다는 상부의 추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소대는 인근 00사단과 가까운 곳에 있어 수색에 추가로 나섰습니다.

수색 매복 중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과 동료 전우들 뿐이었다


실제 북한군과 마주칠 지도 모를 위험한 작전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늘상 비무장지대에서 수색과 매복 작전을 수행했던 터라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비무장지대에서 수색과 매복은 오직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무서운 긴장감을 다스리고 언제 닥칠지도 모를 위험에 대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각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야만 자신과 동료 전우의 목숨을 지킬 수 있는 팀워크가 중요했습니다.

어두운 산 속의 오솔길을 지나 각각 분대는 주요 지점에 매복을 서기로 했습니다. 일단 작전에 들어가면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눈빛과 손짓으로 모든 작전이 수행됐습니다. 실제 비무장지대에서의 매복은 밤새 단 한 마디 말도 없이 눈만 뜨고 전방만 바라봐야 했습니다. 아무 것도 절대 먹어선 안되고 심지어 오줌도 별도 오줌통에 소리없이 싸서 마개를 닫아야 했습니다. 어떤 소리나 냄새 등은 자신을 적들에게 노출할 수 있어 금물이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늘 전쟁상태 상황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매복에 들어간 지 2시간 여가 지났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소대장으로 철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무슨 연유인지 설명은 없었습니다. 밤새 작전이 펼쳐질 것으로 기대했던 소대원들은 한편으로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면서도 아쉬운 듯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 날 밤이 지났습니다. 소대장은 끝내 수색 매복 작전이 왜 중단됐는지 이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상부에서 이유를 말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오전과 오후에는 땅굴 탐지 수색조가 각각 주요 땅굴탐지 작전지역에 투입됐습니다. 매일 수색로를 따라서 시추공에 대한 특이사항을 조사하는 임무였습니다. 오후 수색조는 주로 산악지대 쪽을 방향을 잡았습니다. 멀리 북한 쪽에서 대남방송이 들렸습니다. 항상 매일 있었던 방송이라 대수롭지 않게 흘려 들었습니다. 중동부전선이라 남과 북의 철책이 가까운 곳은 직선거리 600미터에 불과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날은 내용이 특이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00사단 00연대 00부대 소속 000입니다. 어제 저녁에 북으로 넘어왔습니다. (계속)"
이럴 수가. 그렇습니다. 어제 저녁에 철책이 뚫린 것은 북한군의 소행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옆 사단의 어떤 남한 병사가 철책을 뚫고 넘어간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듣기로는 철책을 수류탄을 던져 뚫고 북으로 넘어갔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당시 북으로 간 병사는 모 대학에 재학 중 최전방서 근무하다가 어떤 이유인지 불만을 품고 북으로 넘어가 버렸습니다. 그 부근은 남과 북의 철책이 가까운 곳이라 거리상으로 몇 백 미터만 가면 서로 닿는 곳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북한으로 월북하자마자 대남방송을 통해 직접 자신의 신분을 설명하는 그 병사였습니다. 물론 북한측에서 요청을 강요했을 수 있습니다. 남북 대치의 철책에서 벌어진 아주 희귀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미 20년이 넘는 옛날 일이 되었지만 지금도 그 당시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당시는 소대원끼리 어쩌면 황당한 일에 쓴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철책의 분위기나 모습도 과거와 다를 것 같습니다. 철책을 뚫고 넘나드는 일도 없을 듯 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는 사건인 것 같습니다. 남북 분단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비극인지도 모릅니다. 빨리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되어 동족끼리 서로 가슴에 총부리를 겨누고 대치하는 일이 사라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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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군대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1년전 일입니다. 강원도 양구의 산악지대에는 유난히 구렁이가 많았습니다. 비무지대 전초 수색대는 특히 구렁이와 자주 마주쳤습니다.

어느 날, DMZ 차량 경계를 마친 분대가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막사를 향해 고참들이 도로에서 소리를 쳤습니다. 차량 경계조가 도로에서 뭔가를 발견한 것이었습니다. 당신 신병이었던 저를 비롯한 동료들이 도로를 향해 달려 내려갔습니다. 멀리서도 도로에 걸쳐있는 커다란 물체가 보였습니다. 직감적으로  초대형 구렁이라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하나의 분대 요원들이 구렁이의 힘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어느새 구렁이는 도로를 지나 바로 아래 냇물을 지나 반대편을 향했습니다. 다시 차량 경계조는 냇가에 내려가 K-1 소총 개머리판으로 구렁이를 눌렀습니다. K-1 소총은 개머리판이 약간 둥그렇게 구부러져 있어 구렁이 몸통을 누르기가 용이했습니다. 여러 명이 구렁이 몸통의 머리 부근에서 꼬리에 이르기 까지 누르고 있었습니다. 2미터가 넘어 보였습니다. 모두가 난생 처음 보는 초대형 구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습니다.

이 때 저를 비롯한 신병들이 도착했습니다. 막사에서 가져온 대형 포대를 구렁이의 머리 맡에 벌리고 밀어넣기 시작했습니다. 부대원들이 간신히 구렁이를 포대에 집어넣는데 성공했습니다. 고참들은 진 땀을 흘리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저와 신병들은 다시 낑낑대며 산중턱에 있던 막사로 초대형 구렁이가 담긴 포대를 옮겼습니다.

비무장지대에는 2미터 이상의 왕구렁이가 간혹 나타나곤 한다

고참들은 구렁이를 잘 보관해 두라고 했습니다. 당시 우리 수색 소대의 고참들은 몰래 구렁이를 땅군들에게 팔아서 큰 돈을 챙겼습니다. 이번 구렁이는 엄청나게 커서 100만원이 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21년전 100만원이면 지금으로 따지면 500만원 이상이 되는 큰 돈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당시 구렁이는 30만원~50만원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구렁이를 포대 두개를 겹쳐 단단히 밀봉을 해서 막사 옆의 창고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벌써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대원들은 저녁 식사를 한 후 취침시간이 되자 모두가 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저의 온 몸을 칭칭 감은 구렁이가 느겨졌습니다. 너무나 강력한 구렁이의 힘이 온 몸을 조여왔습니다. 거의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구렁이는 밤새 온 몸을 감고 꼼짝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거의 숨을 못쉴 정도의 눌림에 밤새 구렁이에게 칭칭 감겨 있었습니다.

눈을 떴습니다. 아침이었습니다. 어제 밤에 저를 감고있었던 구렁이는 꿈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창고로 달려갔습니다. 저와 신병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포대 속에 있어야 할 구렁이가 없었습니다. 구렁이는 포대 두 개를 뚫고 도망가고 없었습니다. 포대는 도저히 뚫을 수 없는 재질이었습니다. 그런데 손도 없는 구렁이가 포대 두 개를 뚫고 나간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 앞에 모두는 놀라서 할 말을 잃었습니다.

소대원들과 어제 밤에 있었던 구렁이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두가 같은 꿈을 꾸었습니다. 구렁이에게 밤새 온 몸이 감겨서 죽을 듯한 꿈을 꿨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소대원 전원이 같은 꿈을 꿀 수 있는지 무섭기만 했습니다. 구렁이가 요물이라고 했는데 정말 사실이구나 하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건 구렁이 복수다"라고 고참 한명이 말했습니다. 모두가 공포에 떨었습니다.

악어도 통째로 잡아먹는다는 비단구렁이와 태국의 소년 친구(?)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또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소대원 한 명 두 명이 갑자기 체해서 몸을 가누지 못했습니다. 저도 체해서 한 동안 하늘이 노랬습니다. 거의 모든 소대원이 함께 체했습니다. 어떻게 동시에 체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지 의아했습니다. 그 당시 처음 발생한 단체 급체 사건이었습니다.  왕고참이 말했습니다.
"어제 잡은 구렁이의 복수가 틀림없다. 엄청난 크기와 포스가 비범치 않았다."
"그러면 앞으로 복수가 계속 될까요?

"모를 일이다. 구렁이는 잡지 말자. 앞으로 조심해야 한다."
"예. 알겠습니다."

소대원들은 왕고의 충고에 따라 그 날 이후 구렁이를 보더라도 피해다녔습니다. 사실 전초 수색소대는 비무장지대를 출입하기 때문에 여름이면 매일 구렁이를 보다시피 했습니다. 우리 수색소대 이외에는 아무도 없는 곳이라 비무장지대나 인근 산악지내는 구렁이들의 낙원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길가에서 구렁이를 보고서도 모른 체 지나가곤 했습니다. 구렁이는 먼저 사람을 공격하지는 않는 순한 동물이었습니다.

구렁이와 관련된 수색소대의 일화는 그 이전에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 날 초대형 구렁이 사건을 겪으면서 구렁이와는 가급적 상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너무 무서운 한 여름밤의 구렁이 꿈과 급체 사건으로 공포에 떨었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초대형 구렁이의 창고 탈출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도구도 없는 구렁이가 밀봉된 포대를 두개나 뚫고 어떻게 감쪽같이 탈출했는지. 구렁이는 영물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예로부터 구렁이에 대한 설화가 많은 이유일 것입니다.

요즘 농촌이나 산촌에도 구렁이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포획을 했기 때문에 거의 씨가 마른 것입니다. 비무장지대는 천연 자원의 보고입니다. 앞으로 통일이 된다면 비무장지대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남겨두어도 좋은 곳일 듯 합니다. 수십년간의 천혜의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곳은 비무장지대가 거의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비무장지대에서 머루 다래를 따먹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구렁이와 살모사의 차이
구렁이는 알을 낳아서 새끼를 부화시키고, 살모사는 새끼를 그냥 낳습니다. 구렁이는 기본적으로 매우 크고 길지만 살모사는 길이가 짦은 편입니다. 구렁이는 독이 없지만 몸통으로 휘감아 조이는 힘이 엄청나고 살모사는 독이 있어 물리면 치명적입니다. 특히 까치살모사는 신경독과 출혈독을 모두 갖고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구렁이의 머리는 타원형으로 생겼지만 살모사는 약간 삼각형 모양입니다. 여름철에 물가나 풀과 잡목이 우거진 곳에서는 독사에 주의해야 겠습니다.

국내산 황구렁이의 알낳은 모습(좌)과 국내산 까치살모사의 공격 직전 장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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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군대 시절에 아이 엄마와 군인 아저씨의 특별한 면회의 사연을 이야기 할까 합니다. 당시 제가 근무하던 부대는 철책선 부근에서 별도로 막사 생활을 하는 수색소대였습니다. 일반적으로 GOP 철책선에  근무하는 군인들과는 달리 최전방 DMZ 수색소대는 소대 단위로 별동대 처럼 은밀한 곳에 1개 소대가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 작전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1980년대 중후반의(20여 년 전의) 군대에서는 최전방 철책선이나 비무장지대에 근무하는 군인들은 면회나 외출 외박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GOP 철책선의 군인들은 6개월 단위로 후방 부대와 임무 교대를 하게되면 면회나 외박 등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DMZ 수색소대는 1년 365일을 비무장지대나 철책선 근처에서만 훈련과 작전을 하는 임무인지라 면회 외박은 아예 불가능했습니다. 오직 휴가만이 유일하게 민간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휴가는 수색소대원들 모두가 단체로 휴가를 갔습니다.

그러나, 단체 휴가를 다녀온 후로 길게는 9개월을 비무장지대나 철책선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굉장히 외롭고 고통스런 일이었습니다. 면회가 안되는 줄 모르고 아들을 만나러 왔다가 그냥 울고돌아간 어머니도 자주 있었습니다. 그 중에 저희 어머니도 있었습니다. 저는 통신보안 군대 전화로 연대본부에 오신 어머니와 짧은 통화를 할 수 있었는데 어머니는 하염없이 우셨습니다. 저는 통화한 뒤 몰래 막사 뒤에 숨어서 소리없이 눈물을 삼켰습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제가 하려는 이야기는 지금부터 입니다. 철책선 밖에서 수색 훈련이나 작전을 수행하던 시절, 어느 날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산 속이라 날이 일찍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소대장이 K상병과 조용히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K상병은 저보다 고참이었고 대학원을 졸업하고 군대에 온 늦깎이 군인이었습니다. 소대장은 K상병에게 무슨 사연을 듣고난 후 상당히 당황한 모습으로 잠시 번뇌에 싸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후 소대장은 결단을 했는지 긴밀하게 K상병에게 지시를 했습니다.

[이준익 감독 영화 '님은 먼 곳에' 2008년작]
(베트남전에 참전한 남편을 면회하기 위해 위문공연단으로 자원한 아내를 소재로 한 영화)

그 날 밤에 K상병은 막사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K상병은 저녁에 조용히 막사를 빠져나가 산등성이를 타고 마을로 내려갔던 것입니다. 사연인즉, K상병은 군대 입대하기 전에 이미 결혼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K상병 부부는 아이도 하나를 낳았습니다. 사랑스런 아내와 간난 아이를 두고 군대에 입대한 K상병은 항상 아내와 아이에 대한 그리움에 괴로와 했습니다. 그것은 아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내는 너무나 남편이 보고싶어 아이를 안고 강원도 최전방으로 오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 부부는 이미 편지를 통해 비밀리에 만날 작전 계획까지 마련해 두었습니다. 몇날 몇시에 수색소대 막사로부터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 만나는 계획이었습니다. 거의 첩보작전에 가까운 감행이었습니다. 아내는 무사히 아이를 데리고 마을로 잠입하는데 성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K상병은 막상 D데이가 왔을 때 고민에 빠졌습니다. 아내와 편지를 주고 받을 때는 몰래 하룻밤을 잠깐 마을에 다녀오면 아무도 모를 것이란 생각이었지만 막상 D데이가 되자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만일 소대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막사를 빠져나갔다가 발각될 경우 탈영죄로 군법회의에 회부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K상병은 사실대로 이실직고하고 소대장의 선처를 받는 길을 택했습니다. 소대장은 원칙대로 한다면 절대 K상병을 마을로 보낼 수 없었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소대장은 K상병에게 도로를 통해 마을로 가지말고 산등성이 수색로를 타고 마을에 몰래 다녀올 수 있도록 지시를 한 것이었습니다. K상병도 모험이었지만 소대장은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할 결단이었습니다.

K상병이 마을로 내려간 길은 일반 군인들은 모르는 수색소대원들 만의 비밀 개척로였습니다. 소대 회식을 할 경우 마을에 몰래 내려가 소주를 추진해 오던 길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K상병은 몰래 마을에 내려가 그토록 보고싶던 아내와 아가를 만나 애틋한 하룻밤을 지내고 다시 소대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나 사무치고 보고싶었으면 K상병과 아내는 이토록 무모할 수 있는 만남을 추진했을까.

당시 K상병이 몰래 마을로 내려가 아내와 아가를 만난 사연은 우리 소대원 이외에는 전혀 모르는 야사로 남아 있습니다. 사실 소대장의 나이 보다 K상병이 나이가 더 많았습니다. 보통 소대장을 소위나 중위가 맡게되는데, 대학원을 졸업하고 온 K상병 정도면 한두 살 이상이 더 많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군대는 나이와 상관없이 계급에 의한 위계질서가 중요합니다. 소대장이 면회 불가 원칙을 고수했다면 K상병은 아내와 아이를 눈 앞에 두고 만나지 못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대장은 나름대로 자신의 군생활 명운이 걸린 위험한 선택이 될 수도 있지만, K상병의 사연도 인간적으로 고려해 배려심을 갖고 현명한 판단을 해주었기때문 입니다.

군대에는 수많은 사연의 군인들이 많습니다. 보고싶은 여자친구가 변심한 것을 알고 탈영하는 군인이 있는 것도 그 젊음의 끊는 피가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탈영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지만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다는 것입니다. K상병과 같이 이미 결혼한 상태에서 늦깎이로 입대해 고생하고 제대하는 경우는 흔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보는 광경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K상병 처럼 결혼 후 입대한 경우는 최전방 보다는 후방부대에서 근무하도록 배려해주는 제도를 시행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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