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2.28 김태원 위암 수술 촬영한 이유, 김태원 살린 눈물의 남자의 자격 by 진리 탐구 탐진강 (54)
  2. 2009.05.07 자식위해 평생 불구가 되신 어머님 전상서 by 진리 탐구 탐진강 (86)
  3. 2009.01.25 폭설 피해 온 동생이 병원 응급실에 간 사연 by 진리 탐구 탐진강 (3)


'부활'의 김태원이 부활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구요? 그룹사운드 '부활'의 리더 김태원이 위암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는 것입니다. 일요일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에 출연 중인 김태원이 '암 특집' 촬영 중 실제로 위암 판정을 받고 극비리에 수술을 받았습니다. 김태원의 암 수술기는 어제 '남자의 자격' 방송 말미 예고편이 살짝 공개되었지요.

김태원은 다행히 위암 초기 단계에서 조기 발견돼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방송 프로그램 진행 중 위암을 발견해 수술을 하고 건강을 회복한 일은 세계 방송사에서도 드문 일이겠지요. 그야말로 리얼 버라이어티가 현실이 된 드라마틱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어쩌면 '남자의 자격'이란 방송 프로그램이 김태원의 생명을 살린 결과를 낳은 셈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김태원의 리얼한 위암 판정과 수술 진행 경과를 '남자의 자격' 프로그램에서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보여줄 예정이라고 합니다. 김태원도 암의 위험성과 건강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위암 수술 진행을 방송 촬영하는데 동의했다고 합니다. '남자의 자격(남격)' 프로그램 입장에서도 우연치 않게 김태원 덕분에 방송 역사에 남는 장면을 기록하게 된 것이지요. 리얼 버라이어티의 진면목을 과시할 수 있게 되었지요.

김태원에게 닥칠 위험의 전주곡은 이미 1월 방송에 나왔다?


  지난 1월 중순 방송에서 김태원은 위암 검사에 앞서 불안감을 보였는데 이는 실제 전주곡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그 동안 김태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기존 방송을 비롯 여러 보도를 바탕으로 하나씩 그 놀라운 과정을 짚어보겠습니다. 김태원에게 불안감이 싹튼 것은 위암 검사 시작 전부터 였습니다. 지난 1월 16일 방송에서 김태원이 기침 소리를 내자 김국진은 갑자기 심각한 표정으로 '괜찮냐?'고 물었습니다. 이경규도 '우린 안심할 수 없어'라고 거들었지요. 김태원은 검사에 들어가기 전에 "뒤에서 슬프게 바라보는 것도 그거 싫어"라고 말한데 이어 작가에게 "왜 날 그렇게 슬프게 쳐다봐? 뭐 숨기는 것 있니? 아침부터 느낌이 안좋다"고 불안한 예감을 비쳤지요.

어쩌면 김태원에게 닥칠 위험의 전조였던 것입니다. 이로부터 악몽같은 40여일이 김태원과 남격 제작진에 닥쳤습니다. 남격 제작진은 1월 중순 위암 검사를 받은지 하루 만인 다음날 병원으로부터 암 초기인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청천벽력같은 소식에 제작진은 엄청나게 놀랐지요. 김태원이 큰 충격을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작진은 이경규까지 불러 김태원에게 어렵게 위암 발병을 알렸지요. 그 후 침묵이 흐르고 제작진과 이경규는 펑펑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태원의 위암 수술기 방송을 결정한 결정적 이유는?

김태원은 한 동안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이후 이경규와 제작진은 위암 초기 단계라서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안심을 시켰지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우선이고 중요했지요. 그런데 김태원과 제작진은 이왕 수술받는 것인 만큼 암 특집의 취지를 살려 수술 과정을 촬영하기로 합의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요. 그렇지만 마음의 안정을 찾은 김태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작진에게 빨리 와서 촬영하라고 이것 저것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지요.

                김태원의 암 수술에 앞서 이경규 김국진이 눈물을 짓는 장면이 예고편에 나왔다

비록 자신의 프라이버시일 수 있지만 김태원은 시청자들에게 암의 위험성과 건강의 소중함을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암이란 종합건강검진을 통해 조기에 발견하면 수술과 치료를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책임감이었겠지요. 바로 2월 16일이 1차 수술이 있었던 날입니다. 윤형빈이 유암종 제거 수술이 있었던 그 날이지요. 김태원은 내시경을 통한 1차 수술 후 종양이 완벽히 제거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2월 22일 2차 수술을 받았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김태원의 프로의식이었습니다. 자신이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평소와 같이 행동했습니다. 김태원의 위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이 걱정할 수 있어 조심스러웠겠지요. 물론 방송 프로그램이 사전에 알려질 경우 부담감도 있겠지요. 김태원은 수술 후 후유증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일부 스케줄을 소화하며 비밀유지를 했던 것이지요. 김태원은 '부활' 콘서트도 나가고  '남격' 장래희망, 탭댄스 편 녹화 등 방송 프로그램 촬영도 했다고 합니다. 물론 정기적인 병원검진도 계속 받아가면서 그랬지요. 

김태원의 프로의식이 빛난 사상초유의 리얼 버라이어티

 

사실 김태원 본인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이를 지켜보는 제작진이나 이경규도 괴롭고 마음이 아팠겠지요. 그러나 김태원은 고통을 참아가며 밖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프로다운 면모를 보였던 것이지요. 그렇게 한 달이 넘는 기간이 지났습니다. 김태원의 위암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생명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이제 회복만 남았다고 하니 다행스런 일입니다. 김태원도 건강검진에 소홀했던 것을 반성하며 새로운 인생을 열 수 있는 반전의 시간이 되었겠지요.

김태원이 극비리에 수술 후 병상에 있었던 기간은 열흘이 넘었고 최근 2월 26일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합니다. 그 동안 완벽하게 보안을 유지한 것이지요. 그런 가운데 어제 '남격'에서는 지난 2월 10일 촬영된 김태원의 장래희망편의 나머지 이야기가 방송됐습니다. 김태원이 어린 시절 꿈꿨던 로봇을 만드는 KIST 과학자였지요. 촬영 시점이 위암 판정을 받은 직후라는 점에서 김태원의 투혼이 눈물겹게 느껴졌습니다. 김태원으로서는 '남격' 방송에 피해를 주지않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지요. 한편, 김태원은 오디션 프로 '위대한 탄생'에서도 따뜻한 멘토의 모습을 보이며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찬사를 받기도 했지요.

이제 다음주 3월 6일에는 김태원의 위암 수술 극복기가 방송되겠지요. 예고편에 보면 이경규를 비롯 멤버들이 눈물흘리는 장면이 나와 가슴을 뭉클하게 하더군요. 당초 2편으로 편성됐던 암 특집이 4회로 확대된 것도 김태원의 위암이 결정적 작용을 한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김태원은 남자의 자격으로 인해 살았고, 남자의 자격은 김태원으로 인해 주목을 받고 더 빛나게 된 셈입니다. 서로가 의미있고 뜻깊은 만남이었던 것이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암을 극복하기 위해서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각인시켜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말기 암환자를 비롯 고통받는 가족들도 있다는 점에서 너무 호들갑을 떠는 방송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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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이 다가오면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칠순이 다 되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여전히 산골에서 농사를 짓고 살고 계십니다. 호랑이같은 아버지와 함께 부부의 연을 맺은 이후 어머니는 청춘을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신 분이십니다. 자식들은 대도시에서 결혼해 살고 있고, 막내 남동생이 가까운 도시에서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곤 합니다.

그러나, 장남인 제가 자주 부모님을 찾아뵙지도 못해 늘 죄송한 마음입니다. 어머니는 다리 한쪽이 불편하십니다. 어머니가 불편하신 다리로 평생 산골에서 힘든 농사 일을 하시는 것을 보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어머니는 제게는 아주 특별한 존재입니다. 불행하게도 예기치 못한 사고로 한 쪽 다리를 절게 된 사연과 혼자서 저를 키운 새색시 시절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까마득한 두메산골입니다. 아직도 온통 산으로 뒤덮인 고향은 비포장도로를 통해 하루에 세 번 버스가 다닐 정도로 산골 오지입니다. 부모님은 산골 외딴집에 살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름 휴가 만큼은 시골 집에 동생들 가족들과 일정을 맞춰서 함께 가곤 합니다.

어머니는 도시에서 고등교육을 받으신 분이셨고 아버지는 초등 교육을 받으신 분이었습니다. 지난 1960년대는 교육 환경이 매우 열악한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시골 마을에 잠시 머물던 시절에 우연히 아버지를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됐습니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을 '주먹자랑 하지 말라'고 알려진 벌교에서 지냈던 분으로 엄청난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결혼 후 신혼 시절에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아버지는 군대 입영을 기피한 상태였는데 아버지를 체포하기 위해 헌병대에서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아버지는 헌병대를 피하기 위해 초가집의 흙벽을 무너뜨리고 산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그 후 아버님을 몇년 동안을 도시에서 숨어지냈습니다. 당시에는 군대에 간 후 사망해 돌아오는 경우가 많아 군대 기피가 많았다고 합니다.

갑자기 어머니는 새색시가 생과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홀로 농사를 짓고 소를 키우고 땔감을 구해 생활해야 했습니다. 당시 시골집은 초가집이었고 나무 땔감으로 밥을 짓고, 소꼴을 베어 소를 키우던 시절이었습니다. 전기도 가스도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녁엔 방에 호롱불을 밝혀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임신 중이었습니다. 혼자서도 힘든데 홀몸이 아닌 상태로 논농사 밭농사를 짓고 소까지 키워야 하는 고난의 길을 가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겹게 일을 하셨습니다. 

어느 날, 혼자서 열심히 밭 일을 하다보니 벌써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서둘러 밭에서 일을 끝내고 머리에는 소꼴을 가득 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사고가 터졌습니다. 길가에 뻗은 칡넝쿨에 걸려 어머니가 넘어지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넘어지던 중 머리에 인 소꼴에서 낫이 떨어졌습니다.

불행하게도, 낫은 어머니 앞에 날이 선 상태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무릎이 예리한 낫의 날에 닿아버렸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로 어머니는 무릎의 힘줄이 끊기는 대형 사고를 당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님은 사고를 당하고도 치료를 할 병원도 없었습니다. 곁에는 아버지도 없었습니다.

더구나, 어머니는 당시 저를 임신한 상태였습니다. 어머니는 무거운 몸이다보니 칡넝쿨에 걸려 균형을 잡지 못한데다 낫을 피하지 못해 다리를 크게 다치는 사고를 당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임신한 상태에서 수술을 하는 것도 몸 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봐 못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어머니는 그 사고로 인해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불구가 되셨습니다. 그러한 몸으로 어머니는 다시 농사를 짓고 혼자서 저를 낳아서 길렀습니다. 지금이라면 아무도 그렇게 살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갓 결혼 후 남편도 없이 무려 5년을 그렇게 농사도 짓고 저를 키웠던 것입니다. 저는 아가 시절을 마당이나 밭을 기어다니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마당에서는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나 닭과 함께 놀고, 밭에서는 지렁이가 친구였습니다. 어머니는 집에서도 일을 하고 계시고, 밭에 가서도 일을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워낭소리는 부모님의 모습을 생각하게 한다

저의 유년 시절은 밤낮으로 어머니 밖에는 없었습니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호롱불 밑에서 제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5살 때 처음 어버님이 고향으로 돌아오셨지만 저의 기억 속에는 어머니만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고향에 돌아오신 후에도 집안 일은 하지않고 한량으로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싹텄는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마음의 화해가 어느정도 되었고, 아버지도 나이가 들면서 과거와 달리 농사 일이나 집안 일도 했습니다.

제 나이가 5~6세 정도일 때도 저는 동네 아이들과 산에 올라가 고사리 손으로 나무를 하곤 했습니다. 산에 올라가는 것은 오직 어머니 일을 돕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저의 일을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청소년기 시절에도 방학 동안 내내 어머니가 하시는 일을 돕는데 땀을 흘리곤 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제가 어머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모두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 때부터 어머니 혼자서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돕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어머니가 왜 다리 하나가 불편하게 되셨는지 얘기를 처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는 어머니가 다리를 절면서 걷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어머니가 불구가 된 것이 모두 제 탓인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어머니를 보면, 그 젊은 시절에 임신한 몸으로 어떻게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참고 이겨냈는지 가슴이 아프곤 합니다. 제가 아이 때부터 지금까지 늘 변함없이 생각하는 정신적 지주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벼가 익어가는 여름 날, 논둑을 걸으면서 저에게 하신 말씀은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단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어머님은 소중한 등불과 같았습니다. 제가 방황하거나 잘못 가려하면 언제
나 등대처럼 저를 바로잡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비하면 만분의 일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다리가 잘리는 듯한 고통을 어떻게 참고 견디셨습니까. 그리고 홀로 저를 어떻게 키우셨나요. 어머니는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고생만 하셨습니다. 특히 홀로 키웠던 저를 위해 얼마나 힘들게 사셨는지, 유년시절의 기억 마저 희미하지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힘든 일은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주 연락도 못드려 죄송합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해 더욱 송구스럽습니다.

지금은 자식들도 모두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어머니의 귀중한 가르침과 사랑 덕분입니다. 아버님께는 죄송하지만 오늘은 어머니가 그리워집니다. 언제나 힘을 주시는 어머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전화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찾아뵙겠습니다. 밤낮으로 기온차가 큰 데 건강 조심하세요.

언제나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해보는 시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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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진리 탐구 탐진강


오늘부터 우리집에는 설 명절을 맞아 차례를 지내기 위해 가족 친지들이 모두 모인다. 남동생 가족도 오늘 오후 눈보라를 헤치고 우리 집에 왔다. 오산에서 일산까지 오는 길이었는데 수원 쪽 길이 통제되어 돌아서 오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고 한다. 오산에도 눈이 많이 내려 운전하는데 힘들었던 모양이다.

설날을 앞둔 대가족의 평화로운 모임의 시작
매제 가족들도 그 뒤에 도착했다. 나와 아내는 추가로 몇가지 나물 등을 사러 할인점에 다녀왔다. 아이들도 엄마를 따라 전을 붙이는데 돕고 있었다. 특히나, 큰 딸이 전을 만드는데 열심히 도왔다.

[아이들이 전을 만들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

남자들은 차례상에 올라 갈 밤을 갔다. 남동생이 먼저 칼을 잡고 밤까는 실력을 발휘했다. 나도 합류해 밤을 까고 모양좋게 만드는 일을 거들었다. 아이들도 어른들이 까주는 밤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밤을 까던 남동생이 칼에 의해 손가락을 베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문제가 생겼다. 남동생이 손가락을 감싸면서 "손가락을 베였다"고 아픔을 호소했다. 놀란 여동생이 "칼 조심하라고 조금 전에 말했잖아."하면서 걱정을 한다. 제수씨도 "어떡해"하며 놀란다. 남동생은 밤을 잘먹는 둘째 아들을 위해 밤을 먹기 좋게 잘라주려다 손가락을 베인 것이다.

아내가 소독약과 연고로 우선 응급처치를 했다. 그런데 피가 계속 많이 나온다. 손가락도 하나가 아니라 두개가 베였다. 칼에 상당히 깊숙히 상처를 입은 것이다. 작은 상처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던 남동생이 "병원에 가서 꿰매야 겠다"고 말한다. 이 정도의 남동생 얘기라면 상처가 상당히 깊은 것이다.

매제가 급히 남동생을 태우고 병원 응급실에 다녀왔다. 명절이라 응급실은 많은 환자들로 붐벼서 몇시간만에 돌아왔다. 손가락은 꿰맸고 파상풍 주사도 4방이나 맞았다고 한다. 그 사이 작은 어머니들도 도착해 있었다. 아내는 칼을 잘 들게 하려고 아침부터 갈아두었다며 미안해 한다.
[남동생이 밤을 까다가 손가락을 베인 문제의 시간]

남동생은 입이 까다로운 아들이 밤을 잘 먹자 아들을 위해 밤을 작게 잘라주다가 손가락을 크게 다친 것이다. 자식 사랑도 좋지만 조금만 조심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면서 나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제수씨는 손가락 다친 것도 걱정이지만 병원비 8만원이 나왔다는 것에 놀라는 눈치이다.

차례 상을 위해 밤을 까는 것은 대개 남자들 몫이다.(이미 까놓은 밤을 사는 경우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아내를 도와서 밤을 까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밤을 깔 때는 칼날을 늘 조심해야 한다. 

[병원 응급실에서 칼에 베인 손가락을 꿰맨 후 사진]

'눈 피해 온 남동생 피 본 날' 밤 까는 방법
칼에 너무 강한 힘을 주지말고 신경을 써서 다루어야 한다. 나는 오랜 경험으로 밤까는 일에 익숙한 편이다. 그러나 처음 밤을 까거나 익숙치 않은 사람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그리고 초보자는 너무 잘 드는 칼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눈 피해 온 남동생이 피 본 날'이라고 아내가 놀린다. 오늘도 지나가면 추억이 될 것이다. 남동생은 손가락 수술로 저녁에 소주 한잔을 못해 아쉬워했다. 병원 응급실에 다녀온 남동생에게는 올해 설날이 지금은 잊고 싶겠지만 나중에 아들에게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준 셈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형의 바람이다.

[참고] 생방송 화제집중에 소개된 밤까는 법에 대해 소개해 본다. (남동생이 걱정돼 찾아본 내용이다.)

[생방송 화제집중에 소개된 밤 까는 법]

겉밤은 딱딱한 밤 꼭지 부분을 먼저 탁탁~ 쳐주고, 돌리고~ 돌리고~ 옆을 까주면 OK!
속밤은 평평한 부분을 먼저 슥슥슥 벗겨주고,
과일 깎듯 돌돌돌~ 돌리면서 까주면 모양도 굿~~~ 속밤 까기 완료!!
 


[아이들이 놀이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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